유감스럽게도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묻지마” 야권 단일화에 갈수록 집착하고 있다. 5+4 협상이 결렬된 후에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4+4를 추진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진보신당을 빼고 야권 단일화에 합의했다. 안동섭 민주노동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4월 1일 유시민과 ‘손 맞잡고’ 민주당에 단일화를 촉구했다. 광주·전남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 연대를 회피하며 4+4 협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진보 후보 단일화엔 별 열의가 없다. 그 탓에 ‘진보진영 2010 지방선거 대응을 위한 서울 연석회의’(진보서울연석회의)가 서울시의원 후보 둘을 단일후보로 선출했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민주대연합과 진보대연합은 양 손에 쥘 수 있는 떡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는 걸 민주노동당 지도부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당 안에서 반발도 만만치 않다.

3월 21일 서울시장 후보 선출에선 이상규 서울시당 위원장이 단독 등록했는데도 65퍼센트밖에 지지를 얻지 못했다. 흔치 않은 일인데, 이 후보가 반MB 야권단일화를 노골적으로 추구한 데 따른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 

권영길 의원도 3월 30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강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진보신당 사이에서 ‘그래도 단일화 해야 한다’고 홀로 외치[는] … 이런 구도는 잘못된 구도”라고 비판했다. 진보신당과 한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중앙대의원인 이호성 씨(한국노총 조합원)는 민주노동당의 선거방침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과 연합해서] 구청장이나 지방의원 몇 석 차지해도 [정체성은] 더는 ‘민주노동당’이 아닙니다. 당선을 위해 영혼을 파는 겁니다.”

잘못된 구도

박금석 전 지부장 직무대행을 민주노동당 경기도의원 후보로 출마시킨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고동민 조합원은 민주노동당의 선거연합 방침으로는 계급 투표를 조직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 평택시장 후보는 과거 시장 시절, 지역의 노조를 탄압한 잡니다. 한나라당에도 있었구요.
“이런 사람을 놓고 [시장 후보를 내 주고 시의원 단독 후보를 보장받는] 단일화 논의를 하면 조합원들에게 계급 투표를 호소할 수 있겠습니까.”

노동운동의 ‘메카’인 울산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3월 31일 현대차 4공장 차체4부 조합원들의 회식 자리를 방문한 민주노동당 김창현 울산시장 후보는 스스로 “반응이 썰렁하네요” 하고 말해야 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조합원 다수가 “진보가 둘이 나와 될 게 뭐 있노. [따로 나오면] 투표 몬 한다”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반MB’ 정서를 내세우며 민주대연합을 정당화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를 향한 반감은 아주 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명박 정부를 패퇴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선거연합을 정당화할 순 없다.

윤태석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부분회장은 “반MB는 맞다고 볼 수 있는데, 의료 민영화 등을 추진했던 민주당이 반MB 동맹을 할 만한 정당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고 말했다.

탄압이 심한 철도노조의 청량리역 연합지부 유균 지부장도 “민주당은 철도가 민주노조를 띄울 때부터 투쟁만 하면 탄압했던 자들”이기 때문에 “민주당은 죽어도 찍기 싫다”고 했다.

이런 난처한 상황을 피하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진작에 진보대연합을 적극 건설해야 했다.

그러나 두 당은 말과 달리 실천에서 진보대연합은 실종됐다. 진보신당은 5+4도 탈퇴했지만, 진보연합에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한 전교조 활동가는 “한나라당 패배에 ‘묻지마’ 기대감을 갖게 되는 건 대안세력이 부실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대안이 없으니 기대감도 크지 않고 ‘안티’에만 집착하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지방선거 방침도 다소 모호하게 결정됐다.

민주노총은 3월 24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진보정당 통합을 대중적으로 책임 있게 공식화하는 정당의 후보” 중  지지 서약서를 쓰고 단일화한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결정했다.

진보정당들의 단결을 바라는 현장 조합원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도부도 이 결정을 수용했다.

그러나 “‘반MB연대 단일후보’”도 “민주노총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다면 지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연합한 후보가 한편에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신당이 독자 출마한 선거구에서 민주노총은 누굴 지지할 것인가.

쌍용차지부 고동민 조합원은 이런 태도가 장기적으로는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 선거연합은 총선·대선을 보고 하는 건데,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재미 보면, [계속 이 구도로 갈 텐데] 대선 때까지 민주당 2중대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 진보정당에게 선거는 계급투쟁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는 것 아닌가요. 지금 거꾸로 간다는 느낌이에요.”

한 공무원노조 활동가는 하루 빨리 진보 양당이 진보의 원칙을 지켜 단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정당들이 선거에 따로 나오는 건 이혼한 부모들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묻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 단결해 싸우는 게 제일로 중요한 때다. 공무원노조도 나눠졌다가 다시 합쳤지 않나.”

진보정당들은, 특히 민주노동당은 계급투쟁에서 노동자들을 분열·약화시킬 선거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의 재통합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 이 글은 <레프트21> 29호에 실린 기사를 좀더 보충한 글입니다.

현장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의 반MB연대를 비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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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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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 급식회사의 경영자인 순재와 보석, 이들과 결탁(?)한 교감 자옥, 그리고 이들의 가족인 평교사 현경. 이들은 무상급식에 어떤 의견일까요. 갈비를 나눠 먹기 싫어하는 해리가 무상급식을 좋아할까요. 집없는 신애와 세경에게 전교생 무상급식과 선별 무상급식 어떤 게 좋을까요.

무상급식 문제가 쟁점입니다. 한나라당과 우익들은 ‘사회주의’(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그 반대편에선 사상 최대의 연대 기구라는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약칭, 친환경무상급식연대)를 만들었습니다. 무상급식 도입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쟁점처럼 됐습니다.

민주노동당 이수정 서울시의원이 1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무상급식 찬성이 79퍼센트(78.93)나 되네요. 응답자의 절반은 고교까지 무상급식이 이뤄져야한다고 답했습니다. 엊그제 출범한 ‘친환경무상급식연대’에 2천 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한나라당 일부도 찬성한다죠. 저들의 우려대로 무상급식은 이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요구가 됐습니다.

지난해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과 한나라당이 장악한 경기도의회의 충돌로 시작한 무상급식 논쟁이 이렇게 큰 지지를 받는 사회적 쟁점이 된 겁니다. 진보 공직자가 해야 할 좋은모범을 보인 거죠. 올 지방선거는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런 복지 의제가 주도할 듯합니다. 경제 위기가 갈수록 개별 가정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금융권은 사상 최대인 가계 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할 정도입니다.

한나라당은 부자에게 웬 무상급식이냐고도 합니다. 그렇겠죠. 부자에게 단체급식은 ‘사랑하는 우리 아이’에게 최상의 식단을 못 준다는 뜻이니까요. 저들은 무상급식을 위해 돈도 내기 싫고, 밥상도 섞기 싫은 겁니다. 

바로 얼마 전에 ‘저출산 대책’ 어쩌구,‘생명 존중 낙태 금지’ 저쩌구 하던 자들이 아이들 밥값 부담 좀 덜어주는 일에 핏대 세우며 반대하는 꼴이 우습네요. 저출산이계속되면 급식 예산 같은 건 금방 줄어들텐데, 뭐하러 애 낳으라고 선동하는지, 참.

저들은 보편적 무상급식이 낳은 정치적효과를 우려합니다. 누구나 혜택을 받는 보편적 복지제도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보편적복지제도의 도입과 확산은 증세(와 부자증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혜택이 보편적이므로 재원 부담도 국가와 사회의의무가 되니까요. 그들은 무상급식 만큼이나 무상급식 도입 후가 두려울 겁니다.

저들이 말하는 선별 급식(잔여주의 복지)은 기본소득 관련글에서 지적했듯이 사회적 낙인 효과가 있습니다. 시혜 대상이라는 게 떳떳하게 내세울 꺼리가 못 됩니다.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합니다. 심지어는 가난을 유지해야 하기도 합니다. 어설픈 소득 향상이 혜택을 앗아가 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들은 경기도선관위를 앞세워 무상급식 지지 서명이 불법 선거운동이라며 탄압에 나서는 한편, 한나라당 이름으로 선별 급식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선별 복지(잔여주의 복지)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복지 정책입니다. 최소한의 보장은 해주되, 나머지는 개인들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겁니다. 자본가들은 당연한권리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하나 주면 하나 더 달라고 하는 거지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각주:1] 

덧붙여, 기업의 구실을 살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정부가 보장하는 무상급식은 당연히 직영급식이 돼야 합니다. 지금 다수 학교가 위탁 급식입니다. 급식 회사와 계약해서 외부 민간 기업이 급식을 공급하는 거죠. 이 급식 기업들이 LG나 CJ 같은 대기업들입니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대기업의 노다지 시장을 위협하는 주장입니다.

위탁 급식은 기업 수익성을 위한 조치라는 점 말고도 또다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입찰 계약제는 저가 입찰을 유도하므로 급식업체 직원들의 임금과 식재료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위탁 계약이 종료되면, 급식업체에서 해당 학교에 보낸 직원들은 일단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대기업이 돈을 버는 동안, 파견노동의 불안정성, 급식의 질이 모두 사실은 악화됩니다.

이런 식의 신자유주의(복지)야말로 지난 30년간 경제를 망치고 인구의 다수를 고통과 절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거품 호황이 사실은 개인들의 소비 부채에 의존해서 유지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소득은 역재분배됐는데, 복지는 비효율적 투자라고 외면 당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교육과 복지 예산이 조 단위로 삭감됐습니다.   


반면, 무상급식 찬성파들은 여론을 등에 업고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17일에 이정희·조승수 등 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모여 의무교육 대상자 무상급식을 위한 학교급식법 발의를 했습니다. 헌법이 규정한 “의무교육의 무상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취지를 반영했다고 합니다.

‘부자 급식’어쩌구 하는 자들에게 급식은 교육 과정의 하나라고 반박한 것입니다. 전국 초중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에 드는 예산 추정치는 1년에1조 7천억 원 정도라고 합니다.(국회 예산처) 이명박이 4대강이나 국정 홍보에 쓰는 돈을 생각하면, 이 예산은 진짜 별 거아닙니다. 오세훈의 서울시 예산을 보면, 시정 홍보 예산이 급식 예산의 거의 열 배더군요. 민주노동당 이상규 서울시장 후보는 지금 서울시 예산이면, 무상교복, 반값 등록금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아쉬운 것은 법에서 정한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라는 것이겠죠. 고교생 때야말로 먹어도먹어도 배고플 땐데....
보편적 의무 (공)교육 자체가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것이므로 무상급식도 노동계급의 문제기도 합니다. 꼭 돈 문제만은 아닙니다.

맞벌이 부부 노동자는 좀더 삶의 여유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보편적 권리 의식을 교육받는  노동계급 아이들은 훨씬 더 사회적 자신감을 갖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될 겁니다. 직영급식을 하게 되면, 급식 관련 직무에 더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겨날 것입니다. 똑같은 비용이라도 직영이면, 위탁업체에 들어가는 관리비용이 줄고 식자재 구입을 더 책임있게 할 수 있으므로 친환경 급식으로 노동계급 자녀들 영양 상태도도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정치인들도 매우 열심히 여기에 참여한다는 겁니다. 무상급식 실현하겠다는데 과거를 들춰서 미안하지만, 집권당 시절에 민주노동당이창당 때부터 요구해왔는데도 거들떠도 안 봤습니다. 오히려 친환경 급식을 못하게 할 수도 있는 한미FTA를 추진했죠.

그런데, 지금은 김진표마저 “무상급식은 전국적 의제”라며 무상급식 찬성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참여정부 교육부총리 시절에 무상급식에 반대했죠. 이는 중도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이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태도를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민주당이 올해 다시 내놓은 뉴민주당플랜은 비정규직 사융사유 제한을 두자는둥 진보 성향을 강화했습니다.

5+4협상 국면에서 “가치연대를 추구하자”는 진보신당의 목소리가 대중적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 데는 이런 상황도 조금 작용했다고봅니다. “무상급식” 의제도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심상정 전 대표 등이 먼저 핵심 과제로 제시했지만 지금 더 큰 세력이 자신의 의제로 삼으니까 역시 묻히네요.[각주:2]

민주당안의 무상급식 찬성파 중 천정배·이종걸 등과 유시민 등은 자신들의 특정한 복지 전략(논리)에 바탕한 듯합니다. [각주:3]

참여정부는 유시민이 복지부장관일 때, “사회투자 국가(정책)론”을 국가복지노선으로 채택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정권이 레임덕으로 들어간데다(한나라당이 조금의 복지 확대도 반대했죠) 주무장관인 유시민이 국민연금 삭감에만 열을 올려서 동력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사회투자(국가)론" 영국의 신노동당이 '제3의 길'을 표방하며 제시한 복지정책 묶음입니다. 
복지가 경제 성장과 배치되는 비생산적 지출이 아니라 성장과 연계된 투자라고 말합니다. 복지를 투자로 보는 개념은 “결과의 평등”(고전적 복지국가) 대신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한마디로, 공정한 경쟁을 위해 출발선을 맞춰줘야 한다는 정책입니다. 그래서 이 노선은 아동·교육 복지를 매우 강조합니다.[각주:4] 영국의 블레어 정부에서 거의 유일하게 늘어난 복지 부문이 아동급여 액수와 아동보육 예산입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다뤘듯이 고용 분야에선 기존의 실업급여 지급보다 재교육과 재취업 지원에 예산을 주로 쓰죠. 그것이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면서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이는 ‘투자’니까요. 

15일에 열린 복지국가 제안대회에서천정배가 발표한 교육 분야 발표문의 제목은 “교육이야말로 최고의 ‘복지’이고 ‘최선’의 투자이다” 였습니다. 17일 학교급식법개정안 발의 기자회견문은 민주당 쪽에서 작성한 듯 보이는데, "무상급식의 전면실현을 이뤄내는 과정은 건설토건사업 중심의 성장전략을 대체하는 ‘사람중심의 역동적 성장전략’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시장주의의 상식에 나름 부합합니다. 현실에서 제3의 길이 거부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과 복지의 조화를 이룰 거라는 앤서니 기든스의 말은 틀렸습니다. 도리어 경제 성과와 관계 없이권리로 제공돼야 하는 "보편적 복지"의 정당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그 결과, 영국에서 이런 복지 전략은 성공보다 실패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동 복지를 늘린 대신, '투자 효율성' 없는 다른 보편적 복지제도들이 희생됐습니다.

한편, 교육 투자가 성장을 위한 인적 자원 투자라면, 교육은 경제의 하위 개념이 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각주:5]. 복지의 관점에선 학생의 권리가 강조되겠지만, 이런 인적 자원 '투자'의 관점에선 학생들이 권리와 (수혜의 대가로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라는) 의무를 함께 부여받습니다. 수월성 교육과 돈 되는 학문의중시, 규율의 강조가 뒤따릅니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진영은 보편적 복지를 도입·확대한다는 취지에서 무상급식을 오래 전부터 요구해 왔습니다. 보편적 복지제도는 누구나 혜택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복지가 국가와 사회가 사람들에게 당연히 지급해줘야 할 의무라고 규정하는 겁니다. 사람들에겐 당연한 권리가 되겠죠.

그래서 이런 전략에선 무상급식 도입이 끝이 아니라 이를 디딤돌 삼아 국가부담 증가를 위한 부자 증세를 요구하고, 다른 복지제도를 늘리라는 요구로 일관되게 나갈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아동·교육 복지에 특화된 사회투자국가론보다는 '확장성'이 크다고 할까요.

어떤 취지에서 도입되든 저는 무상급식에 찬성합니다. 무상급식 찬성파의 세력이 커진 것도 환영합니다. 비록 하이킥의 순재 가족들은 좀 힘들어 지겠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개혁 요구라도 사람들이 뭉쳐서 행동하며 쟁취하려 하는것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지지자가 많아져야 대중운동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크고, 요구를 쟁취하는 데도 유리합니다.

많은 경우, 하나의 요구로 뭉친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선 요구 실현 방법론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저는 대차게 싸워야 한다고 봅니다.  대기업주들과 조중동, 이명박 정부는 보편적 무상급식 같은 초보적 개혁조차 극렬 반대하는 더러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을 대화와 토론으로 설득하는 데 주력하려면. 지난해 등록금 인하 논쟁시 이종걸의 협상이 보인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각주:6].
저들이 버티는 건 현실의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인데, 그 권력을 약화시키는 투쟁 없이는 협상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세력관계에 변동이 생겨야 저들이 버틸 힘이 줄어듭니다. 지금 출발은 좋습니다.

개혁 요구를 함께 내놓아도 이를 실현할 방법론에서 차이가 나는 건 '지향점으로서 대안'(=이념과 전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진보정당들이 정책 대안 뿐만 아니라 이념적(거대담론) 대안 제시도 게을리 해선 안 되는 까닭입니다.


  1. '무상급식'이 아니라 '책임급식' 등으로 표현하면 반발이 적을 거라는 의견도 있더군요. 마케팅 차원인지, 프레임론 차원인지 모르겠지만, 문제의 출발점을 헷갈린 거라고 봅니다. 단어를 바꿔 홍보했다고 그들이 반대하지 않았을까요. 부자들과 이 정부는 단어가 아니라 내용에 반대하는 겁니다. '책임급식' 표현도 나름의 효용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상'복지가 '권리'라는 생각을 더 늘리려면 이런 인기 있는 쟁점에서 '무상'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2. 진보신당이 처음부터 너무 온건한 의제를 잡은 게 문제 아니냐는 의견도 있긴 합니다. 저는 복지가 완전 꽝이고 기득권 보수파가 꼴통들인 한국의 객관적 현실 탓으로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3. 정동영은 최근 '역동적 복지국가'가 앞으로 자기가 내세울 정책브랜드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종걸·심상정이 유시민을 두고 '무상급식 반대'라고 비판했던데, 요건 좀 실수라고 봅니다. 유시민은 예산 조정에 현실적으로 시간이 걸리니 단계별로 실시하자고 한 것 뿐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국정 운영 경험을 과시하려 단계별 실시를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으로]
  4. 민주당 이종걸이 대학 등록금 문제에 열의를 보인 것도 이와 연관있는 건 아닐까요. [본문으로]
  5. 애초에 이런 의도가 사회투자국가론의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제 3의 길 노선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 고전적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본에게 일부 복지 분야(아동과 교육처럼 어차피 자본에게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투자 유인이 있는 분야)를 자본의 재생산에 도움이 되거나 투자 가치가 있는 분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6. 바로 이 점 때문에 대자본의 신자유주의와 타협하려 한 '제3의 길'은 진보와 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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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민주노동당 10주년 기념 학술대회 - 진보정당의 미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민주노동당이 10년 됐습니다. 요샌 이래저래 위상이 떨어졌지만 한때 지지율이 20퍼센트에 육박한 적도 있었고, 2000년대 초반에는 많은 진보 대중들의 기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분당 때를 빼면 개인적으로 제일 강렬한 에피소드는 바로 창당 첫해에 있었던 총선이었습니다. 그 때 전 울산 북구 선거운동에 자원해서 내려갔습니다. 울산 북구는 현대자동차공장이 있어 전설의 투사들이 인구의 다수입니다. 그래서 권영길 전 대표가 출마한 창원(을)과 함께 유일하게 당선 가능 지역으로 본 곳입니다.

그러나 현대차 조합원들을 볼 새도 없이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정자동이라는 한적한, 그러나 풍경은 끝내주는 어촌에서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원래 한나라당이 전통적으로 강세인 지역이었죠. 까막눈인 어촌 할머니들 대상으로 기호5번 대신 손가락 다섯개를 꼽아주며 왼쪽에서 다섯번째 칸이라고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개표 날, 출구조사 방송은 창원은 낙선, 울산 북구는 민주노동당 당선으로 나왔습니다. 새벽2시까지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 후보를 앞섰습니다. MBC 메인 방송에서 당선 인터뷰를 하고, 한겨레신문은 선거운동원들이 모두 만세삼창을 하는 '1면용' 사진을 찍어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에 제가 선거운동을 했던 마지막 투표소에서 대역전(패)극이 시작됐죠. 5백 표차 낙선!! 충격 두 배, 민망함 두 배, 분함 두 배 였습니다.

그 민주노동당이 10년을 버텼습니다. 원내 정당으론 7년째입니다. 그러나 지금 희망이 되질 못합니다. 분당은 계기인 것이고, 가치와 세력, 전략에서 대안을 만들지 못했습니다.(최근엔 정치 위기에 시달리는 이명박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10년 만의 최대 탄압입니다. ☞관련기사)

그래서 국제 진보정당운동의 경험을 돌아보며 전략 노선을 재검토할 주제가 창당10년 토론회에 반영된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라틴아메리카 21세기 사회주의 실험.

차베스가 대표하는 21세기 사회주의 모델은 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과 비교해 훨씬 더 급진적이고 투쟁적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온건한 의회 정치 전략인 유럽 사회민주주의 지지 대 급진적 대중행동을 함께 추구하는 라틴아메리카 21세기 사회주의 지지로 분명히 갈렸습니다.

둘 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토론자는 없었습니다. 다만, 정성진 교수가 유럽에서도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약화를 딛고 급진좌파정당들이 성장했다는 점을 들어 유럽 좌파에 온건 사회민주주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고, 그 점에서 전체 상황도 나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토론 내용은 위의 관련 기사 링크 참조)

한국에서도 사회민주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정치단체 등에선 제3의 길을 많이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현지 진보진영에서 워낙 평판이 안 좋아 국제적으로도 인기가 형편없습니다. 그러나 이날 유팔무 교수는 한국이 복지 등 여러 면에서 유럽보다 열악하므로 제3의 길 수준의 사회민주주의라도 추구하자는 게 결코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전 그런 심정은 공감이 갑니다)

노동계급과 기층민중 정체성도 버리고, 의원 입법활동이 중심이 도는 국민정당으로 거듭나자는 겁니다. 노동자 경영참가 제도 같은 게 도입되면, 투쟁도 필요 없다는 겁니다. 저는 유 교수 주장을 보면서 사회민주주의야말로 '소망'의 정치, '공상'의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 교수는 집권이야말로 '선'(善)이라고 했지만, 집권이 개혁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말로만 서민 개혁을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조차 우파들에게 탄핵의 수모를 겪고, 결국 집권 3년차에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말하기에 이릅니다. 완전 항복선언이었던 거죠.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은 대기업의 소유주와 대주주 들입니다. 그리고 이 이너써클 출신이거나 이 집단의 후원을 받는 정치인, 행정관료, 사법관료, 군부의 장성 들이 폐쇄적 주류 지배계급 집단을 이룹니다. 

그들의 힘의 원천, 즉 자본주의의 절대반지는 대기업들의 이윤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합니다. 지금처럼 기업 이윤(수익성)이 충분하지 않을 때 저들은 노동계급에게 양보하고 개혁과 변화를 제공하기는커녕 그나마 과거의 개혁들을 되돌리려 합니다.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 기업 수익성에 해가 된다고 보면 정부도 괴롭힙니다. 그래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부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한때 집권 도미노를 일으켰으나 지금은 모두 왜소한 상태로 밀려나 있습니다. 애초부터 시장권력에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차베스 정부는 그 반대였죠. 사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1999년 차베스를 시작으로 유럽처럼 중도좌파들의 집권 도미노가 벌어졌습니다. 여기서도 중도좌파 정부 무력화 시도가 벌어졌죠. 

베네수엘라 지배계급 주류도 차베스 정부를 3번이나 전복하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차베스 개혁을 지지하는 대중운동이 이를 막아냅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쿠아도르 등에서 활발히 벌어진 라틴아메리카의 21세기 사회주의는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도 지배계급 주류가 후원한 이명박 정부가 집권해 각종 반동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 정치 위기 속에서 저항의 싹을 자르려 합니다. 심지어 중도우파 정당인 민주당조차 심심치 않게 거리 정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유팔무 교수의 제3의 길 찬양이나 온건한 의회정치 전략은 개혁을 성취하기엔 무력합니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21세기 사회주의 전략도 전진이 쉽지 않습니다. 지배계급의 권력 원천에 더 진지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날선 토론이 진행된 만큼이나 앞으로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주제입니다. (틈틈이 민주노동당 10년을 쟁점별로 돌아보는 글을 쓰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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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14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농수산위) 전체회의에서'4대강 관련' 예산인 '농업용 저수지 둑높이기' 예산을 한나라당과 합의로 통과시켰습니다.

어제 저녁 <민중의 소리>와 <오마이뉴스> 등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면 이 합의가 야당 공조에도 파장을 주는 듯합니다.

통과 내용은 4대강 사업에 포함된 전국 96개 '농업용 저수지 둑 높이기' 예산 4천66억 원이 모두 통과된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민주당 이낙연 상임위원장의 의사봉을 붙들고 항의했다는데, 양당 합의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을 겁니다.

사람들이 이 결과에 놀라는 것은 이 농수산위의 위원장이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라는 겁니다. '날치기 통과'라는 MB 시대 '상식'이 깨진 거죠. 그러니까,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독주하고 민주당은 의석수도 딸리고 체력도 딸리지만 독주를 막는 야당 공조의 큰 형이라는 상식.

이번 농수산위 사건에서 이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 상식인지 잘 드러났습니다.

이 문제로 민주노동당, 운하백지화공동행동 등 진보 단체들이 비판하자 민주당 일각에서 이낙연을 비판했는데, 본인은 꿋꿋하다고 하는군요. 이낙연은 4대강과 관련 없는 물관리 대책 예산이며 이번 [합리적] 결과를 토대로 여야 대화 국면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합니다.(오마이뉴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새로 보를 설치하는 게 홍수 저지 등에 별 효력이 없으며 오히려 물 흐름만 왜곡해 새로운 환경 파괴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미 낙동강 공사 중에 피부병에 걸린 물고기들이 나오고 있다는데, 4대강 예산은 무조건 전액 삭감을 목표로 '싸워야'합니다.

이미 제 글에서 몇 차례 민주당의 4대강 예산 방침이 전액 삭감이 아니라 '불필요한 예산 삭감' 방침이라 일관되지 않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20호, MB 예산 뒤집어야 /블로그 MB의 예산 사유화)

민주당이 발행한 '4대강 사업 실체 20문20답'이란 자료집의 '민주당의 대안'이란 항목을 보면,"'대운하’의심사업, 불필요하거나 효과가 의심되는 사업예산은 전액 삭감" 으로 조건부 삭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홍수, 물부족 등에 대비하는 수자원 관리는 필요하다는 거죠. 이것은 이명박이 4대강 사업을 재난 대비 사업인 것처럼 홍보하는 상황에서 사족인 듯합니다.


4대강만 그런 게 아닙니다.

며칠 전엔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에 반대하는 당론을 정했다면서 파병반대 결의안 서명에 빠지고 기자회견에도 불참했습니다. 파병에 찬성한다는 소속 의원들을 강제하지도 못하구요. 애초 파병을 시작한 것도 민주당 집권 시절이죠.

지난해엔 촛불항쟁으로 이명박이 속절없이 밀리고 있을 때 이명박의 소고기 협상에 면죄부를 주는 가축법 개정안 협상에 합의해 촛불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2월엔 미디어법을 6월까지 표결처리한다는 합의를 해 언론노조와 언론지킴이들을 힘빠지게 했죠. 7월엔 한나라당의 안에서 소폭만 바꾸는 미디어법 합의안을 내놓고 심지어 박근혜 안도 합리적이라고 칭찬했지요.

대운하 반대한다고 했는데 막상 경인운하엔 소속 지역구 의원들이 찬성했고, 지난 달엔 민주당 소속 지자체 단체장들이 4대강 기공식에 참석해 MB어천가를 불렀습니다.

10.28 재보선에선 한나라당에 공천신청 했거나(김영환), 한나라당 도의원 출신(이찬열)을 버젓이 공천하고 나머지 야당들에게 자기 후보로 단일화하라는 떼를 썼죠.

쌍용차 파업은 민주당이 집권 시절, 상하이차 기업에 매각한 것이 문제의 발단인데, 쌍용차 조합원들이 MB의 특공대와 사측 구사대에 포위돼 살인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을 때 민주당은 자신들의 원죄를 사과하지도 진압을 막으려는 실질적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은 집권 시절, 삼성 재벌과 강부자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자신들이 여당이고 국회 다수당일 땐, 친부자 정책들을 추진하다 이제 소수파 야당이 되니 정권을 비판하고, 그러면서도 결정적일 때 타협하고 후퇴하며 과거는 반성하지 않는 것이 민주당의 온전한 모습입니다. 그들의 反MB엔 진정성을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여전히 민주당은 국회 등에서 몇몇 악법 저지 공조에 함께 할 수 있지만, 반MB 전선에서 결코 1백 퍼센트 믿어서는 안 되는 동맹자인 겁니다.
민주당이야말로 反MB 진영의 제5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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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이것이 "MB 양극화 예산"이다


16일(월)부터 국회 예산 심의 기간입니다. 그래야 올해 안에 예산안을 통과시켜 내년도 예산을 차질 없이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집권 여당에게는 밀어붙이기와 야당 달래기를 잘 섞어야 할 때입니다. 야당들이 이 때를 여당에게 양보를 얻어낼 기회로 여기기 때문이죠. 지역구 의원들에겐 자기 지역구 관련 예산을 늘리느라 바쁠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정부의 총액 예산 안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의 예산을 늘리려 하니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예산 전쟁"이라고 합니다.

이런 예산  다툼이 단지 협잡인 것만은 아닙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누구를 위한 예산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느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레프트21>이 줄기차게 이명박 정부의 2010년도 예산안을 비판하고 폭로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올해 야당들은 4대강과 세종시 문제로 이명박 정부의 예산안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특히 4대강 예산과 세종시 문제에 열의가 높습니다.

이명박이 말을 뒤집은 탓에 세종시 문제가 한나라당 내분을 낳고 있고 4대강 반대 여론도 많지만 이들의 문제제기는 정략적인 면이 큽니다. 본질을 말하자면, 4대강이나 세종시 모두 대규모 토목 공사입니다. 세 당들은 단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 유리한 토목 사업에 더 많은 예산을 넣기 위해 싸우는 것일 뿐입니다.

세종시 원안대로 행정부처가 옮겨가봐야 현지민들에겐 집값 좀 오르고 서비스업이 조금 활성화되는 것 말고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그렇다고 기업도시로 바꾸면 현지민들이 취업할 일자리가 특별히 늘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FTA 실험 도시가 될 확률이 크죠.

충남 서산의 동희오토 공장은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주 공장인 화성보다 생산성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공장은 전원 비정규직 공장으로 유명하죠. 그래서 서산에는 동희오토에 일 안 해 본 젊은이가 드물 정도지만  거꾸로 거기서 일하다 안 잘려본 젊은이도 드물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불황기에 이렇게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 아니라면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늘릴 만한 시설 투자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도시형 수정안도 별 볼 일 없긴 매한가지입니다. 송도형 기업도시라면 오히려 평범한 현지민들에겐 재앙입니다.

그래서 진짜 예산 싸움은 세종시냐 4대강이냐, 아니면 세종시 원안이냐 수정안이냐에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폭 추경예산을 늘렸던 지난해와 올해 예산과 달리 '작은 정부' 지향을 분명히 하며 예산 축소와 지출 통제를 표방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복지예산이 대폭 삭감됐죠) 진보 진영의 예산 싸움은 단순히 주어진 총액 안에서 우선순위를 다투는 문제로만 다룰 수 없습니다.


지출을 늘리라고 말해야 하고 지출을 줄이는 근본 배경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정부의 세금 수입이 줄었습니다. 수입이 줄었는데 균형 예산을 하려면 지출을 줄여야죠. 정부의 수입이 줄어든 것은 재벌과 부자에게 대규모 감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재벌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줘 그들에게 돈을 많이 쥐어줘야 투자가 활성화돼 경기가 살아나고 그러면 상품 판매와 고용이 늘어나 오히려 세금이 늘어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실패한 레이거노믹스 플랜은 현실에서 복병을 만납니다. 정부 전망대로 하더라도 지난해 말과 올초 최악의 경기 침체에서 벗어난 대가로 내년 늘어날 세금 수입은 정부의 감세 규모에 못 미칩니다.

그래서 부자 증세와 공공·복지 지출 증대가 우리의 구호가 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주요 진보적 엔지오들이 '재정건전성' 악화를 MB예산안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빚더미 예산"이라 표현했고 정창수 함께하는시민행동 연구원은 "빛의 속도로 늘어나는 빚"이라고 지적합니다.

물론, 늘어나는 국가채무의 부담을 서민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높고 4대강은 낭비 예산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비판엔 나름 합리성도 있지만 균형 재정 기조는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적 발상입니다. 바탕에 수익성 논리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이런 논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예산을 늘려서 4대강과 세종시 사업을 모두 진행하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여당일 때는 그런 논리로 늘 복지예산 축소를 정당화했습니다.

마침 투기자본감시센터 활동으로 친분이 있는 송종운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연구원이 최근 한 토론회에서 저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발표한 적이 있어 이런저런 자문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송 연구원은 복지예산 확충 같은 예산 각론과 더불어 정부 재정 정책의 기조로서 "수익성 vs 공공성"이라는 거대담론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도 "재정건전성 문제의 근본 원인이 과다 지출이 아니라 과소 세입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저는 지금 채무 수준에선 재정건전성이 화두가 되는 것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봅니다. 오 실장님과 약간 생각이 다른거죠.

예산을 무한정 늘릴 수 없다해도  '필요'가 먼저고 여기에 수입을 맞춰야 합니다. 여전히 한국은 OECD 평균보다 GDP 대비 국가재정 비율이 10퍼센트 넘게 낮습니다. 건전성이 문제가 아닌 거죠.

당연히 부자 증세가 '필요'를 맞춰야 합니다.(자칫 통화량 증가로 지출 확대를 실행하려단 인플레이션으로 '시망'할 겁니다) 우리는 부자 감세를 철회해 삭감된 복지 예산을 원상복구하고 오히려 부자 증세로 공공·복지 지출을 더 늘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업 살리기에만 특단의 대책을 추구할 게 아니라 평범한 다수를 살리는 데도 특단의 대책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민주노동당이 이정희 의원의 대표 발의로 소득세-고용안정세-자본이득세 등 부자증세안을 발표한 것을 환영합니다.

숫자만 나오면 당황하는 제가 몇 번의 기사로 부끄럽게도 마치 예산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괴로운 일이지만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묻고 또 묻는 길밖엔 없는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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