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네덜란드의 고용 기적”을 되풀이하자고 말한다.


네덜란드에서 1970년대 중반 이후 25년 동안전체 고용의 5퍼센트이던 시간제 일자리가 35퍼센트로 늘어났다. 새 일자리의 3분의 2가 시간제였고, 그 대부분이 여성 노동자의 몫이었다.


사실 이런 현상이 정부가 말하는 “바세나르 협약”의 결과인 것은 아니다. 시간제 일자리는 1970년대부터 늘어나고 있었다. 1970년대에 세계경제의 장기 호황 물결이 끝나면서 일자리의 질이 나빠진 것이다.

 

바세나르 협약은 이런 추세를 승인한 것으로서, 정규직 고용 보호를 사장들이 건드리지 않는 대신, 임금을 낮추고 신규 일자리를 유연화(단시간 비정규직화)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1979년부터 1997년 사이에 취업자 수는 28퍼센트가 늘었는데, 고용량(고용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단 9퍼센트만 늘었다. 2000OECD 조사를 보면, 이렇게 고용 구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보호 수준이 크게 줄었다.


종합하면, 네덜란드 “기적”의 실체는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기존 전일제 일자리를 쪼개서 시간제 일자리를 늘린 것이다. 노동자들끼리 경제 위기 고통을 분담하게 된 것이다.

 

늘어나는 실업을 줄여서 실업수당 등 복지 지출을 줄이고, 일자리를 제공했으니 경제 위기 대가는 개인이 치러야 한다는 일자리 복지의 철학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런 네덜란드의 길을 한국 노동자들이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박근혜 정부와 사장들은 네덜란드는 그나마 임금 차별이 적고, 복지제도가 최소한의 안전판 구실을 했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1990년대 이후 새로운 경제 위기가 찾아오자 사장들이 먼저 “합의주의”를 깨려 한 것도 말하지 않는다. 결국 이 때, 일부 복지기금이 민영화되고 실업수당이 삭감됐다그나마 최소한의 안전판 구실을 한 복지마저 후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 위기의 깊이와 폭이 훨씬 더 크고 깊은데다가, 박근혜 정부는 임금과 고용의 유연화를 동시에 이루려 한다. 정규직, 비정규직을 동시에 공격하려 한다. 진지한 사회적 타협이 될 리 없고, 오히려 이른바 강성노조들을 하나씩 표적 삼아 두들겨 패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네덜란드 노조운동이 ‘사회적 합의주의’에 발목 잡혀 파업과 투쟁을 멀리하다가 힘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노조가 묵인한 노동 유연화도 노동계급 단결과 투쟁의 힘을 약화시킨 요인이다. ‘유연안정성’ 논리가 허구인 까닭이다.


이처럼 노동조합의 발목을 잡고서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수월하게 하려는 것이 박근혜와 사장들이 한통속으로 네덜란드 모델을 노동운동에게 강요하는 이유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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