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평균 노동시간은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도] 2천1백 시간이 넘어 OECD 평균보다 4백 시간 많다. 사실 이것도 많이 준 것이고, 주당 40시간 일한다고 계산하면,OECD 평균보다 일 년에 석 달을 더 일하는 셈이다.


전일제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각종 수당과 사내 복지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이런 조건에서 시간제(파트타임) 일자리가 충분한 임금과 복지를 받는 정규직 일자리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4시간 일자리가 법정 하루 노동시간(8시간)의 절반을 일한다고 해서 정규직 임금의 절반을 줄 사장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사장이 그러겠는가. 


게다가 공공부문 총액인건비제로 고용비용 한도를 정해놓은 정부가 공무원부터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겠다면, 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겠다는 말밖에는 더 되겠는가.


정부와 사장들은 직무급을 도입하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할 수 있고, 임금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말한다. 쌩 거짓이다. 경력 단절을 걱정하거나, 육아 등의 이유로 시간제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이용해 자기들 욕심을 채우려는 술책이라는 말이다.


우선, 시간제 일자리에 정규직 직무를 부여할 리 없다. 이미 직무급을 부분 도입한 기업들에서 사장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무를 분리해서 임금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직무급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위한 불가피한 쓴 약이 아니다. 그냥 정규직의 기존 임금을 낮추려는 개수작이다. 직무급 도입은 그 자체로  임금 안정성을 흔든다. 직무에 따라 임금이 임금을 들쭉날쭉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직무 배정 권한이 ‘인사권’이란 이름으로 사측에게 종속돼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작업장 자율성은 크게 후퇴하고, 사측에 대한 종속성이 더 커진다. 이는 임금 유연화(불안정성 증대)와 더불어 노동의 권리를 위축시킬 무기가 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비정규직의 근속년수를 인정해 정규직 호봉 체계에 포함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1990년대 초반에도 이렇게 여성 노동자에 대한 제도적 임금 차별을 해소한 바 있다.


상시업무는 비정규직 고용을 금지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이런 식의 해결이 가능하다. 사장들이 이런 방식의 해결책을 거부하는 것이다. 


다만, 일부 정규직 노조들이 부문주의적 시각으로 이런 해결책을 꺼리는데, 이를 약점 삼아 직무급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해법으로 사기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노조가 상시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정규직 호봉제 임금 체계 편입을 추구한다면, 직무급에 관한 헛소리들을 날려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전일제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시간제 일자리는 정규직의 절반은커녕 잘해야 3분의 1, 4분의 1을 받는 일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이 하루 열 시간, 열두 시간을 일하는 마당에 4시간 짜리에게 임금 절반을 줄까? 6시간 짜리에게 4분의 3을 줄까? 직무도 임금도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불안정 파트타임 노동인데, 임금도 여전히 쥐꼬리라면, 그 모든 환상적 [헛]소리들이 다 무슨 소용이랴. 직무도, 대가도 허접하다면, 총액 뿐아니라 시간당 임금 자체가 낮을 가망이 높다. 


그렇다고 박근혜와 경총 방식으로 임금을 줄이는 노동시간 단축을 하면, 정규직 여부를 떠나 전일제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하락하게 된다. 이런 식의 하향 평준화해서 이루는 임금 격차 해소는 사장들 배만 불리는 것 아니겠는가.


정부의 ‘로드맵’은 근로시간 감소가 2000년대 이후 다른 요인보다 “최근 고용증가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엄청난 위기감을 갖고 있는 정부와 사장들은 임금 유연화와 연계해 노동시간을 줄이면 돈을 더 들이지 않고도 외형적 고용률 수치를 크게 올릴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기존 전일제와 시간제 노동자들이 일감을 놓고 다투게 만든다. 전일제 의 임금이 낮아지면 그들도 더한 장시간 노동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물론이고, 기존 전일제 비정규직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이들도 투잡으로 몰릴 수 있다. 


결국 박근혜의 고용률 70% 로드맵은 정규직 임금 하락과 비정규직 일자리 확산을 통해 전반적인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노동 현장에서 세력관계를 자본에게 기울게 하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노동시간 단축이 삶의 질 개선과 일자리 창출과 연결되려면, 기존 임금과 노동조건 후퇴 없이 일하는 시간만 줄이는 것이 돼야 한다. 공공부문 총액인건비제도 없애야 한다. 박근혜의 고용률 헛소리 로드맵을 전면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법정 노동시간을 35시간까지 크게 단축해야 하고, 일정 시간 이상의 노동은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임금 체계도 지금처럼 고정급이 낮은 구조에서 고정급이 높아서 추가 노동이 필요없는 구조라 바꿔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육아휴직에 대한 임금 보장 기간을 늘리는 등 더 많은 복지가 함께 결합돼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들 속에서만 시간제 일자리가 노동자들 서로를 할퀴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일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노동시간 단축이 제대로 시행되면, 시간제 일자리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자리를 나누면, 양질의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 민주노총도 최근 주당 48시간으로 노동시간을 규제하면, 1백14만 개 일자리가 나온다는 분석을 인용했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정부의 ‘로드맵’조차 근로시간 감소가 취업을 늘리는 데 효과가 크다는 것을 인정한 이상, 이런 요구들은 매우 정당하다.


[이런 요구를 현실에서 쟁취하려면 투쟁이 필요하다.이에 대해선 <레프트21>의 내 기사이 블로그 앞 글에서 간결하게 설명해 놓았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처럼 재벌과 부패 우파가 슈퍼 갑으로 행세하게 내버려 두고서 좋은 일자리와 희망있는 삶이 자동으로 보장되진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의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한 것이고,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는 투쟁은 그 일부인 것이다.

다만, 당장의 삶의 조건을 지키려는 투쟁조차도 그 투쟁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할 희망과 용기, 확신을 줄 수 있다. 


※ 이 글은 <레프트21>106호 관련 기사에 대한 내 개인의 보론이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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