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시간이 좀 지났지만 올려 둔다. 아래 글은 <레프트21>에서 벌어진 온라인 논쟁(http://wspaper.org/article/13900)에서 내 글만 퍼 놓은 것이다. <레프트21>116호의 내 기사들인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재판: 자유민주주의의 낮은 기준도 지키지 않는 마녀사냥 중단하라와 국가보안법은 친북사상뿐 아니라 북한과 아무 관계 없는 급진적 사상도 공격하는 무기다에 대한 비판에 대한 내 반론이다.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최용찬 동지는 통합진보당 마녀사냥에 맞서 사상의 자유를 방어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내 주장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통합진보당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종북’사상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투쟁해서 일궈낸 성과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부당하게 대립시키는 최용찬 동지의 주장은 놀랍다.
그러나 최용찬 동지의 주장과 달리 사상의 자유야말로 노동계급에게 민주주의가 중요한 핵심 이유다. 그래야 노동계급이 자기 해방 사상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이에 따라 조직을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투쟁이 진전시켜 온 민주주의의 역사는 바로 사상과 표현, 결사의 자유를 확대해 온 역사였다.
나는 “국정원이 한국 민주주의에 개입하는 것을 우려하는 [해외 한국학] 학자들의 성명”을 최용찬 동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 성명은 공안탄압을 비판하며 “한국이 …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연설ㆍ사상ㆍ정치 행동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행위로 옮겨지지도 않은 “내란음모 여부”, ‘RO’의 실체 여부가 그토록 쟁점이 되겠는가. 최용찬 동지는 왜 “내란음모”가 ‘조작’이라는 데 매달릴까. 통합진보당 활동가들이 “평화운동 건설”이라는 사상 토론만 했으므로 무죄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 아닌가. 반대로 지배자들은 바로 그 사상 토론을 “내란음모”의 증거로 만들려 하기 때문 아닌가.
따라서 최용찬 동지 스스로 통합진보당 활동가들의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당하게 대립시키며 논지를 전개하는 핵심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이다.
진보당 탄압에 맞선 투쟁에서 사상의 자유 문제가 핵심이라고 규정하면 그 사상을 지지하는지 비판하는지도 언급해야 하는데, 그게 싫은 것이다. 그러니 사상이 아니라 ‘운동이 탄압받는 민주주의 문제’라고 규정해, ‘닥치고 방어’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최용찬 동지는 “‘RO’의 실체나 조작 여부는 진정한 쟁점이 아니”라는 내 주장을 진보당에 대한 종파적 비판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진보당을 무비판적으로 방어해야 진정한 방어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제목이 “마녀사냥 중단하라”이며, 굵은 고딕체로 강조하면서까지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구속자들이 즉각 석방되고 무죄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내 글을 “함께 투쟁하겠다는 연대의 목소리가 없다”고 매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매도
그러나 사상 탄압에 맞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변론은 단순히 저들의 탄압이 “조작”이라는 주장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지배자들이 그어 놓은 선, 즉 ‘현재의 헌정 체제, 즉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상은 법적 단죄의 대상’이라는 대전제(합헌ㆍ애국 프레임)에 도전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좌파들을 체제에 순응시키려는 지배자들의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둘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볼 때, 사실 진보당 활동가들이 어떤 토론을 했건 사상과 토론의 자유이므로 법적 단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만큼 명쾌하고 강력한 반박이 어디 있겠는가. 방어에도 더 효과적이다. 진보당 지도부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함께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글은 진보당 활동가들을 방어하면서도 논리 자체는 독립적(비판적)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무조건적 그러나 비판적인 지지ㆍ방어” 정신이다. 노동계급 대중은 자본주의를 변혁하고 해방의 주체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흔히 자본주의 지배질서에 근본으로 도전하지 않는 이런저런 개혁주의 사상들을 가지고 운동에 참여한다. 따라서 노동계급 운동 일부인 동지들과 한편에 서지만(무조건적인 지지ㆍ방어), 노동계급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되거나 그 잠재력을 훼손하는 사상이나 전술을 향해서는 독립된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진보당의 해명, 활동, 사상에 무비판적이어야 제대로 방어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그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 “연대”를 설득하는 데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진보당의 초기 말 바꾸기 실수 때문에 낭패를 겪었을 것이다. 또한 조작 여부에 확신이 없는 사람은 확실히 사실이 규명될 때까지 방어를 유보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내 글의 핵심 취지는 박근혜의 공세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인 좌파의 전술이냐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최용찬 동지는 박근혜의 최근 공세에서 진보당 탄압이 차지하는 비중을 과장해서 본다. 곤경에 처한 박근혜 정권이 진보당을 해산 위기로 몰자, 그 때문에 노동자들이 위축돼 싸우기 힘들다고 주장한다.(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박근혜 정부도 촛불 지켜보니까 ‘별거 아니네’ 하면서 정면돌파로 나오[면서] ... 약한 고리를 공격한 것"이라는 서강대 이호중 교수의 진단이 더 일리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마녀사냥에] 기죽지 않고 자신들의 요구를 내놓고 저항에 나서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반격”이라는 내 주장이 “한참 부족하다”는 비판을 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11월의 양대 노총 노동자대회나 최근 전교조 총투표, 학비 노동자 파업, 인천공항 노동자 파업 그리고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준비 상황, 12월 7일 시국대회에서 드러난 분위기를 보면 그것은 기우인 듯하다. 나는 이런 노동자 투쟁이 돌파구를 열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최용찬 동지가 나를 비판하면서 제시하는 전술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우리가 파업을 앞둔 철도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말을 걸고, 투쟁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지 전술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동시에, 박근혜 정권의 진보당 탄압에 맞서서도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자는 것인가? 이것은 이미 <레프트21>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철도 노동자들에게 왜 진보당을 방어해야 하는지를 주장하면서 말을 걸고, 진보당을 방어하지 않으면 ‘종북’으로 몰려 위축되고 분열해 투쟁은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하자는 것인가?
최용찬 동지의 주장이 후자라면, 현실적이기보다는 도식적이다. 엘리트 활동가들의 ‘정치투쟁’ 도식에 현실을 꿰맞추려는 태도는 노동자들이 투쟁 경험을 통해 계급의식을 발전시킨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이야말로 노동자 투쟁에 대한 종파적 태도 아닐까.
끝으로 나는 ‘RO’ 모임의 강조가 ‘평화운동 건설’이었다고 말한 바가 없다. 나는 진보당 차원의 공식적 강조점에 관해 말한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런 진술이 이들을 방어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토론했든 사상의 자유를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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