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노동자연대가 말로는 인민전선에 반대한다면서도 실천에서는 인민전선을 추종해왔다고 말한다. 


그들은 공동전선은 노동계급 내 공동행동이므로 '계급 대 계급'의 노선 아래서만 진정한 가치를 구현한다고 말한다. 이말대로면, 나는 반대로 이렇게 비판할 수 있다. 어떤 초좌파들은 공동전선을 지지한다면서 실천에서는 종파주의로 일관했다!


왜 그렇게 되는가. 사실 “계급 대 계급” 노선은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의 초좌파 종파주의(이른바 사회파시즘론) 노선이 내세운 핵심 논거였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개혁주의)를 파시즘과 똑같이 취급했다.그래서 심지어 나치와 협력해 사민당 지방정부를 탄핵하려고도 했다. 노동운동이 어마어마한 내부 불신 속에서 분열해 무기력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런 스탈린주의 공산당들도 말로는 공동전선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계급 대 계급 노선에 기초해야 진정한 공동전선이라는 것은 자가당착적 헛소리다.


노동계급의 일상, 노동계급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는 순수하게 노동계급 고유의 것들이 아니다. 일상에서 계급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특히 일상적으로 피지배자이자 소외된 처지인 노동계급은 상층 계급들에 기원한 이데올로기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영향 받는다.


지배계급의 우익 정치나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물론이고, 사회민주주의, 좌파 민족주의, 자율주의 등 다양한 버전의 개혁주의들이 그렇다. 아나키즘도! 자본주의 일상에서 객관적 처지(계급적 이해관계)는 같더라도 노동계급 대중은, 서로 다른 계급들에 기원을 두는 정치나 이데올로기로 분열돼 있는 것이다.(이 때문에 노동계급의 삶과 운동, 이데올로기들을 다룰 때,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적 분석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는(현상적으로는) 노동운동 내 공동행동을 추구하는 공동전선이 서로 다른 계급 기반의 정치와 협력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공동전선은 명백히 노동계급 대중이 광범위하게 단결해 스스로 행동에 나서도록 조직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혁명가들이 개혁주의 리더들과 체계적으로 협력하는 전술이다.)


아주 엄밀하게 따지면 사회민주주의조차 노동계급 대중이 아니라 노조 상층관료에 기반한 정치이니 노동계급이 아니라 (협상과 조화를 추구하는) 신중간계급적 세계관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나 혁명적 신디칼리즘 정도가 노동계급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하겠다. 혁명적 신디칼리즘은 그 이데올로기의 계급 기원(토대)보다는 그 이론 자체의 결함이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대중투쟁 속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열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려면, 객관적 이해관계를 기초로 단결를 추구해야 한다.(그래서 사회연대전략 따위가 해롭다는 것이다.) 그렇게 단결한 투쟁 속에서 어느 정치가 계급적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하고 실현하는 데 더 효과적인지 대중 스스로 경험을 통해 검증하는 방식을 추구해야 현명하다. 노동자들의 대중에 영향을 미치는 상층 리더들의 이데올로기만 보고 해당 운동이나 부문을 일면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니 공동전선을 지지한다면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을 기준으로 '계급 대 계급' 노선을 구현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공동전선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경우, 매우 종파적 초좌파주의에 빠지거나 아니면 자기 기만적인 기회주의(인민전선)로 타락하기 십상이다. 스탈린이 지휘한 1930년대 공산당들도 '계급 대 계급'을 내세운 초종파 노선에서 계급타협적인 인민전선 노선으로 순식간에 옮겨갔다. 종파주의와 계급타협주의의 본질은 둘다 기회주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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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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