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에 지인에게 보낸 글을 (문장과 문맥 모두 거친데, 도움됐다는 분들이 있어서) 그런 거칠고 미진한 부분을 고치고 보완해 올린다.



강남역 사건 하나를 여성혐오범죄로 규정하는 게 진정한 쟁점이 아니다.이 범죄 사건의 사회적 맥락과 이후의 과제에서 ‘여성 혐오’가 차지하는 비중/역할이 진정한 쟁점이라고 본다.


이 문제에서, 노동자연대의 입장은 ‘여성혐오사회라는 담론 자체가 과장된 것이고, 이 사건에서도 규정적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여러 다양한 사회적, 개인적 요인들이 겹쳐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개인이 끔찍한 살인범죄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환경이 같다고 반응이 같지 않고,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정서나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해서 행동까지 같아지는 건 아니다. 비슷한 행동 욕구에서도 표출 방식은 다르다. 그러니 비슷한 처지 속에서도 개인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성급한 단정이나 단순 환원론을 경계하는 이유다. 계급과 계급의식의 관계를 떠올려 보자.(그래서 매개인 조직들이 필요함.) 


각 과정에서 매개가 되는 요소들을 분해해 가며 살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 이면의 사회적, 상황적, 개인적 요인들을 각 과정마다 살펴야 한다. ‘남자가 여자를 죽였다’는 겉으로 드러난 피상적 사실만으로 범죄의 성격을 섣불리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떤 남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동기로 어떤 여자를 어떻게 죽였는가?” 게다가 개념적 수단도 명확히 해야 한다. (여성)혐오범죄는 특수한 표지를 지닌 특정한 사회 집단을 사회에서 배제/배척하고 싶다고 보고, 의식적으로 위해를 가하려는 것이다.(이 글은 범행의 실제 동기를 추적하는 글이 아니다. 그 방법에 대해 간단히 다룰 뿐) 그러므로 사회구조에서 파생된 일반적인 편견과 차별/천대의 표현들과 목적의식적인 혐오범죄는 다르다.


이 조현병 환자의 살인 범죄를 여성혐오범죄를 단정지으려면, 조현병 여부를 부정하거나, 조현병 발병에 여성혐오가 의식적 살인에 이를 정도로 강렬하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전자(조현병 부정)는 범인과 프로파일링 대화 한 번 한 적 없는 일반인이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니, 논리적 검토에서 배제돼야 한다. 조현병과 여성혐오의 상관관계를 확증해 여성혐오가 조현병의 원인이고 그 점이 목적의식적 여성 살해로까지 이어졌다고 증명하려면 단지 그 정도 추론으로는 어림 없을 것이다.

 

따져 보자. 여성혐오사회론자들은 대상을 여성으로 삼은 것 자체가 여성혐오의 반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범인의 정신세계에서 피해망상과 여성혐오의 관계는 어땠을까? 여성혐오사회라면, 여성혐오는 그 사회의 하나의 상식일 텐데, 여성혐오를 표현한 범인의 생각을 ‘망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조현병 환자의 환청, 환시를 ‘망상’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1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된 생각을 또는  생각[비슷한 말] 망념().
2 .

<심리> 근거가 없는 주관적인 신념사실의 경험이나 논리에 의하여 정정되지 아니한믿음으로, 몽상 망상체계화 망상피해망상과대망상 따위가 있다.

- 네이버 사전의 ‘망상’ 항목.


또한 여성혐오가 피해망상의 결과물이었다면 어떨가? 그래도 여성혐오를 원인으로 볼 수 있을까? 그 경우, 이 논의는 정신질환 범죄로 종결될 것이다.(물론 이 경우 정신질환과 사회의 관계를 살필 문제는 남을 것이다.)


두 가지 경우가 남는데, 여성혐오가 정신적 병증의 원인이 됐거나, 여성혐오와 조현병이 어느 하나의 원인으로 보기보다 상호작용으로 보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여성혐오가 조현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도 너무 과학적 개연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조현병은 사회적 원인과 함께 실제로 물리적 뇌 기능의 이상과도 연결된다. 무엇보다 여혐사회의 여성혐오는 망상이 아닌데, 그것이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고 망상 취급을 받는다는 게 성립하기 힘들다.


따라서 남는 경우는 상관관계 뿐인데, 이는 합리적으로 추론 가능하다. 완전히 소외된 남성 개인이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근거없는 피해의식을 가질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일부 극단적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도 상관관계까지밖에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인과관계라고 주장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우리는 이 상관관계도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조현병(환청, 과대망상) 환자에게까지 여성은 죽여도 싼 존재라는 인식을 줄 정도의 사회라면, 어마어마하게 여성의 처지가 매우 열악할 텐데, 왜 굳이 그런 열악한 존재에게 피해망상을 가졌을까? 왜 사건 후 수많은 갑남을녀들이 ‘혐오 존재가 잘 죽었다’가 아니라 애도와 공감을 표했을까?


오히려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피해망상을 가졌다면, 사실 그건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보다는 개인의 피해망상(환청, 환시 등)이 더 큰 요인인 게 아닐까? 이런 추론이 몰상식의 여성혐오적 의문인가? 오히려 더 개연성 더 높은 추론이 아닌가?


실제로 조현병의 피해망상 환자 중에는 환청 때문에 자기의 갓난애를 잔혹하게 살해한 엄마도 있다. (이것을 아동혐오라고 부르진 않을 것이다. 유명한 맑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도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정신착란으로 아내를 살해했는데, 이도 여성 혐오 범죄인가? 덧붙여, 이런 정신질환 살인범죄가 끔찍하기는 하지만, 내가 그런 경우를 겪을 일은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과 비슷하다. 정신질환 범죄에 대한 공포를 과장해서도 안 된다.) 즉, 조현병의 환상적 피해망상과 여성에게 거절당하거나 피해를 본 것에 대한 앙심 등은 그 발생 맥락이 다르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피해망상과 앙심이 곧 범죄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범죄가 모두 살해범죄인 것도 아니다.(정신착란과  결합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조차도 여성혐오 범죄라고 단정하기는 부족하다.)


아예 조현병이 범죄와 상관없고 여성혐오살인인데, 병자인 척 하는 경우일 가능성은 없을까? 그 경우도 장기 입원 경력과 주변의 증언으로 미뤄 짐작할 때, 거의 개연성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정신적 병증이 사건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일 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 여성혐오에 대한 동조라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뿐이다.


따라서 일부의 논리에서, 조현병과 여성혐오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확증해 주는 결정적 근거는 결국 범인이 남자라서다. 건 초기에, 일부 적대적 분리주의 경향의 페미니스트들은 범인의 말(“여성들이 나를 무시했다”)는 ‘말’을 결정적 증거로 제시했다. 현상적 증거에만 집착하는 것인데, 단순히 범인의 말을 근거로 삼는 것은 취약해 보인다. 이 역시 범인이 생물학적으로 남성인데, 여성이 싫다고 했기 때문에 특별히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욱 살폈을 때, 지금 단계에서 여성혐오범죄라고 단정짓는 것은 모든 남성을 여성혐오의 잠재적 가해자처럼 보지 않으면 논리적으로는 성립하기 힘들다. 이처럼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범죄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와 개인의 문제를 다룰 때는 이런 매개 과정들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런데 매개 과정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결론에만 부합하는 몇 가지 증거에만 집착하는 확증편향적 방법에 의존하니, 그 방향성만이 아니라 주장의 논리 자체에 허점이 생기고, 합리적 토론보다는 우기기와 비난, 허수아비 때리기로 대처하는 것이다.


그 한 사례가 노동자연대의 대단히 상식적인 주장(여성억압에 반대하고 맞서 싸워야 하지만 모든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인 건 아니다, 즉 이 사회가 여성혐오를 보편적 특징으로 규정될 사회인 것은 아니다, 혐오와 차별은 개념상 구분해야 한다)을 여성혐오 그 자체로 몰아붙이는 反지성주의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은 여성이 아니므로 여성의 고통을 결코 알 수 없다는 식의 정체성 정치인데, 이런 식의 적대적 분리주의는 오히려 분열의 분열을 거듭하게 만든다. 1970년대 미국의 양성 분리적 페미니즘은 기혼여성과 이혼여성 사이의 갈등, 이성애 여성과 동성애 여성 사이의 분열로 귀결됐다. 이것이 여성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노동자연대가 이런 논리적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다른 시각에서 다른 분석을 내놓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이번에 불거진 여러 사회적 쟁점의 실체와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히려 필요하고 합당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게다가 남자가 여자를 죽였다는 경험적 현상에서 곧바로 여성혐오사회론, 여성혐오범죄로 단정하기 등 확증편향적이고 환원론적으로 섣불리 결론을 내서 남성과 여성의 분리주의를 조장하는 것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가 여성혐오사회가 아니다, 그런 주장들은 과장돼 있고, 그 과장의 한 켠에 잘못된 개념 확장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여성혐오사회론은 일종의 허수아비 때리기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었고, 여성들은 경제력과 자의식이라는 면에서 과거보다 훨씬 성장했다. 4년제 대졸자도 늘었고 곳곳에서 남성이 지배하던 정신노동의 영역에 여성의 진출이 늘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가 전혀 아님이 분명해졌다.


따라서 여성들은 대체로 자존감과 사회에 대한 자의식적 요구가 많아졌는데, 막상 현재 자본주의가 가하는 여성차별적 사회구조와 지배계급이 조장하는 여성 천대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 격차가 오늘날 여성들의 사회적 분노와 비판의식의 성장의 배경으로 보인다. 이런 분노는 매우매우 정당하다. 당연히 이런 사회는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


다만, 그 분노가 굳이 여성혐오사회라는 억지 규정(과장된 일반화)으로 혐오범죄가 만연하다는 식의 과장된 공포를 부추겨 여성들에게 좋은 게 무어냐는 것이다. 여성혐오를 피해 집에 숨어 있어야 하는가? 집에서 벌어지는 성차별, 성폭력이 더 많은데? 본질적으로는 ‘시선강간’론과 같은 발상이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서 여성에게 부르카를 강요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물론 이 형식은 남성/사회의 여성 보호다.) 이런 모순들을 알아야 한다.


여성은 곳곳에서 단지 공포에 질린 피해자가 아니라, 이미 사회적 노동에서도, 사회 변화를 위한 투쟁들에서도 중요한 주체다. 억압과 차별의 현실만이 아니라 이 점도 우리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일베 따위 집단의 세계관이 사회에 큰 영향력이나 미치는 듯이 보는 건 완전한 과장이거나 아니면 세계관 자체가 너무 주관적 경험주의 때문에 협소하다는 말이다. 한국의 성인으로만 놓고 봐도 일베와 전체 여성 성인 사이에는 각기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2천만 명의 남성들이 있다. 그들은 일베가 아니고 사회구조의 영향으로 이런저런 편견도 있겠지만, 그들의 다수가 (이번 사건의 충격을 포함해) 여성들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할 줄 안다. 또한 그들의 압도다수는 여성 대상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는다. 과장된 공포라고 보는 간단한 이유다.


이런 도덕적 공포에 합류하는 좌파 개인들 중 일부는 대체로 세계관도 협소하고 이런 문제들에서 이론도 방법론도 엉터리인데다가, 너무 추수주의적이라서 조금이라도 비판받을까 봐 벌벌 떤다. 그래서 심지어 의리도 없다. 그렇게 잘못된 통념에 끌려다니지 않고도 우리는 성장할 수 있고, 이론과 전략들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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