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에 찬성한 좌파들을 1930년대 독일 공산당에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엉터리없는 무지거나 사기질이다.


독일 공산당은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독일 사민당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해서 문제를 일으켰는데, 지금 영국 노동당(코빈은 물론이고 블레어도 포함해)이나 개혁주의 좌파를 파시스트에 비유하는 브렉시트 찬성 좌파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무엇보다 나치의 집권에는 공산당의 초좌파적 종파주의만이 아니라, 독일 사민당의 차악론(나치가 위험하니 우파 공격을 자제하고 심지어 협조하기)도 결정적 문제였다. 즉 둘 다 문제였다. 독일 공산당이 초좌파주의적 종파주의로 노동계급의 단결과 총명함에 해를 끼치고, 스스로 고립의 길로 나아가 잠재력을 소진시켰다면, 독일 사민당은 최악을 막자는 차악론과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서) 합헌주의를 내세워 192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갈수록 우익 정부와 정당을 추수했다. 즉, 당시 고통전가의 진짜 주역인 국가와 맞서길 회피했다.


바로 그 바이마르 공화국의 당시 수장들(주류 우파들인 힌덴부르크, ,브뤼닝, 슐라이허, 피펜 일당)이 히틀러를 총리에 앉혔다. 따라서 나치 국가의 등장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독일 공산당의 황당한 종파주의만이 아니라, 독일 사민당의 거지 같은 우익 추수주의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나치가 번성할 조건을 1920년대 내내 만든 것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 제국주의 경쟁과 전쟁 배상금 등이었고 이로 말미암은 고통을 노동계급과 빈민들에게 전가한 것은 독일 지배계급 주류 정치인들이었다. 따라서 사민당이든 공산당이든 노동계급을 이 문제들에 대한 반대와 저항으로 단결시켜야 했다. 그렇게 되면 바이마르 공화국의 반혁명적 구조 문제에 부딪쳤을 것이고, 그 과정을 겪고 이겨내야만 나치가 아니라 혁명적 좌파들이 대중을 반체제 행동으로 단결시킬 가능성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자본주의 국가 자체에 맞서는 방향으로 투쟁을 상승시키지 못한 것이야말로 독일 좌파들의 잘못이었다. 1918년 세계대전을 마침내 끝낸 바로 그 노동자 혁명이 사민당의 노골적 배신과 공산당의 어리숙함으로 1923년에 패배하고 한동안 사기저하 시기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1929년의 위기는 다시금 위기와 긴장, 저항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사민당과 공산당의 지지세와 득표가 성장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두 당은 상황을 이용하고 바꾸는 데 실패했다. 초좌파주의와 추수주의는 고조되는 불만을 이를 체제에 대한 혁명적 반대로 끌고 나가지 않았다. 바로 이 점에서 실패한 것이 나치에 대한 대응에도 약점을 낳았다. 훗날 올바른 입장을 채택했음이 입증된 트로츠키의 지지자들은 수백 명에 불과해 사태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반복하는데, 공식정치에서 위기 극복에도 실패하고, 오히려 고통전가로 나오는 상황, 이런 공식정치에 대한 반대를 좌파가 제대로 조직하지 않는 상황 등이 서로 화학 작용을 일으켜 나치가 자본도 싫고 좌파도 싫다며 성장할 틈을 준 것이다.(그러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기구로서 작동하는 EU에 잔류하자는 현상에 대한 보수적 태도를 좌파들이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1930년대 좌파에 브렉시트 찬반을 비유하는 것도 엉터리없이 무지하지만, 독일 공산당의 초좌파주의만 말하고, 독일 사민당의 결정적 과오는 언급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이는 은연 중에 자신들의 (기회주의적인) 정치/전략을 고백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이 경우는 의도적 누락(무지)라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여전히 트로츠키가 반나치 전략에 대해 말한 바, 쥐들도 청소해야 하지만, 쥐들의 서식처가 되는 하수구도 청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유효하다. 우리는 파시스트들의 싹을 짓밟으려 해야 하지만, (파시즘의 득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들에게 성장할 틈을 주는 야만스런 자본주의의 문제를 폭로하고 주류 정치(국가)의 고통전가/우경화 등에 맞서는 데서 전진해야 한다. 그럴려면, 단지 중심 없는 (그래서 그 달콜함과 달리 실상에선 실속없고 허무한) 대동단결론이 아니라 올바른 입장으로 단결을 추구할 행위주체로서의 혁명적 정치조직의 존재가 중요하다.


또한 EU 같은 제국주의 및 신자유주의 세계화 기구들의 약화에도 기여해야 한다. 운동이 더 많은 것들을 다루며 체제 일반에 맞선 투쟁으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이자 제국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려면 그런 일들을 잘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고, 그런 정치로 무엇보다 사람들을 조직할 주체가 필요하다. 궤변과 교묘한 왜곡, 논점 회피 등으로는 그런 조직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무지한 게 죄는 아니지만, 그러려면 엉터리없는 역사 유비로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총체적 진실을 왜곡해서 사람들을 현혹하려고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면 무지가 사기질이 된다.


그리고 EU 잔류 찬반 투표였고, 그 결과와 입장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논쟁이므로, 자꾸 EU는 쟁점이 아니란 식으로 눙치지 말고, EU 자체가 무엇인지부터 살펴 보길 바란다.


참고 기사:

1933년에 나치는 어떻게 쉽사리 권력을 장악했는가?


+++++(7/8 추가)


한심 그 자체다. 그가 독일공산당에 노동자연대를 빗댄 것은 노동자연대가 종파주의라는 인상을 한국의 코빈 애호 좌파들에게 심어줘서 이간질하려던 의도인 걸 뻔히 아는데.


이제 와서는 독일 사민당은 어차피 개량적이라 자본주의에 혁명적 반대를 할 수 없으니 행위주체 차원에서 '독일공산당의 관점에서' 실수를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독일공산당에 대한 유비가 갑자기 노동자연대에서 필자 본인으로 바뀌는 광경이다.(그런 입장이라면, 코빈은 도대체 왜 지지하는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자기 글을 자기가 반박하는 모순)


그런데 말이다. ‘사민당은 개량주의라 어차피 반체제 투쟁을 안 할 것이니, 제쳐 두고 사민당 지지 대중에게 직접 함께하자고 설득하자’(아래로부터의 공동전선)고 한 것이 독일공산당의 ‘사회파시즘론-기층공동전선론’의 핵심이고, 처참한 과오의 실제 내용이다. 그러니 그는 독일공산당의 실천적 결론으로 (그 결론의 전제가 되는) 독일공산당의 분석을 비판하겠다고 용감히 나선 것이다!


그러나 사민당 지도부를 노골적인 반혁명/파시스트 (부역) 세력으로 치부하면서 어떻게 사민당 지지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었겠는가. 그건 계급의 단결투쟁이 아니고, 그냥 공산당 가입 캠페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사민당 정치에 전혀 도전하지 않는 기권주의로 귀결됐다는 게 비극의 핵심 내용이다. 따라서 20세기 전반기 독일의 경험은 분석의 문제도 있지만, 개혁주의에 대한 전략·전술의 문제도 대단히 중요한 자산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탈린의 그따위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을 가장 강력히 반대했던 트로츠키의 이름을 끌어들여서 그따위 허접 변명을 정당화하려 하다니. 장난 지금 나랑 하나? 이견의 문제도, 무지의 문제도 아니고, 부정직의 문제임을 알아야 하고, 정말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의 무지(단지 알지 못한다는 의미에서)와 건망증에 베팅을 거는 셈이다.


오히려 당시의 세계사적 비극은 독일 노동운동 안에 제대로 된 행위주체의 부재가 결정타였다고 볼 수 있다.(http://wspaper.org/article/13822) 어떤 현실적 근거를 찾아내서 그것을 무엇으로 변화시키려고 개입하지 않고 관조적으로 이러면 이렇게 되고, 저러면 저렇게 될 거라는 관조적 논평이나 해대는 것으로는 그런 행위주체를 만들 수 없다. 따라서 그 무엇도 능동적으로 바꿀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또 한 번 지적하자면, 이 국면에서 독일공산당 얘길 끌고 나오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한국이든 영국이든 브렉시트 지지 좌파는 대부분 코빈을 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나치의 등장에 유비하는 것이 황당하다. 지금 국면은 영국 독립당이나 일베 같은 것에 공포심을 느낄 때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존 국가(를 운영하는 전통적 지배계급)의 노동자 공격(경제 위기 고통전가든, 인종차별 억압과 이간질이든, 경찰폭력이든, 제국주의/친제국주의 군사경쟁 때문이든)이 문제인 국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가 기존 통치자들의 악행에 대한 반대를 대표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우익포퓰리스트들의 성장도 견제하는 길이다.


그럴려면, 좌파에게는 정치적 명료함과 기민함, 응집력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 개입주의 조직을 건설하려는 노력에 개인적 앙심으로 부정직한 방식으로 재나 뿌리려는 자들에게 연민을 가지기 힘든 이유다.



국제 사회주의자들의 토론혁명가들은 좌파적 개혁주의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영국혁명가들은 제러미 코빈의 노동당 좌파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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