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담배 피던 때인 2005년에 프랑스에서는 극좌파가 주도력을 발휘해 유럽헌법을 부결시킨 바 있다. 그 시절 프랑스에서도 혁명적 좌파는 우파만이 아니라 개혁주의자들과도 첨예한 논쟁을 벌였다. 그때 일을 잊은 게 문제가 아니다.


진짜 쟁점은 EU의 실체이고, 그것과 평범한 다수의 삶의 관계인데, 한국에서 ‘브렉시트’를 규탄하는 누구도 그 문제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역만리의 국민투표 결과를 멋드러지게(황당무계하게) 해석하며 윤똑똑이질을 해댄다.


나는 솔직히 투표 결과 해석으로 논쟁할 능력도 그럴 생각도 없다. 그건 일차적으로 그쪽 좌파들이 할 일이고, 사실 이미 통찰을 주는 투표 분석들이 일부 나와 있다.


나는 그저, 불과 두 달 전 자기들이 발 딛고 살고 심지어 출마도 하는 그런 현지(한국) 총선 결과를 예측도, 분석도, 평가도 제대로 못 한 이들이 (EU의 실체라는 진정한 쟁점은 회피하면서) 인종주의 투표라거나, 부자 노인들의 몽니라는 식으로 되지도 않고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제 논에 물대기 식 해석들을 해대며 정의의 담지자 놀이를 하는 게 우습고 처량할 뿐이다.


그러나 영국 노동계급 다수의 투표를 30년대 독일 나치의 부상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지하다 못해 비열한 짓이고 화가 나는 일이다. 나치는 선거로 집권하지 않았고, 나치 집권 전인 1932년까지도 독일 노동계급의 다수는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에게 투표했다.(그리고 둘을 더하면 여전히 나치보다 많았다.)


개혁주의자들이 멍청한 공상주의와 본질적인 보수주의 때문에 노동계급의 삶의 현실과 변화/도전을 외면할 때, 우파의 포퓰리즘은 기회를 얻는다. 바로 그 점에서 제레미 코빈이 실수를 한 것이라고 본다. 그가 노동당 좌파의 전통을 따라서 탈퇴를 지지했다면, 논쟁 구도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마치 브렉시트가 우파의 의제인 듯 보이는)


영국 노동자 다수가 일관된 좌파라서 EU 탈퇴를 지지했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종주의니, 반세계화니, 고립주의니 뭐니 하는 ‘담론’ 이전에 EU로 표상되는 ‘국제주의’적 신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불러 온 경제적 고통이라는 ‘계급’적 ‘현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헛소리들을 보며, 한국의 진보/좌파가 영국과 유럽에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제 구실을 하려면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 돌아보게게 된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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