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혁명이 승리할 때까지 함께 싸울 것” 



 2월 11일 오후 이집트대사관 앞에서 ‘무바라크 퇴진과 이집트의 자유를 위한 2차 집회’가 열렸다.

평일 낮인데도 한국인과 이집트인 1백여 명이 모여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했다. ‘이집트 혁명을 지지하는 이집트 사람들’, 다함께, 나눔문화,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 그리고 고려대 등에서 많은 학생들이 참가했다.

첫 발언을 한 이집트인 칼리드 알리 씨는 무바라크 정부 인사들을 모두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월 25일부터 보름 동안 3백 명에서 4백 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무바라크는 미디어로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거짓은 탄로날 것이다. 무바라크가 30년 동안 폭력, 거짓, 고문, 살인으로 지배해 온 것을 전 세계가 알게 될 것이다.

“무바라크는 30년 동안 이집트 민중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보건의료시스템, 경제, 권리. 더는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광장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독재와 싸워 이긴 나라다. 한국 민중의 연대를 바란다.”

△이집트 혁명의 승리는 우리 모두를 고무할 것이다. 한국인들의 연대도 매우 중요하다. ⓒ유병규



다함께 김용욱 활동가도 연대 발언을 했다.

“무바라크는 지금 겁에 질려 있다. 1940년대 독립 투쟁을 할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집트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거기에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투쟁에 나섰다. 수많은 독재정권들이 무너질 때에는 거리 투쟁과 함께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다. 한국의 민주화도 이 두 힘의 결합으로 공고해졌다.

“이집트 혁명은 [한국처럼 중도에 머물지 말고] 계속 투쟁해 꼭 승리하도록 한국에서도 최선을 다해 연대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정성희 최고위원도 참가해 “이집트 혁명을 열렬히 지지하며 연대를 약속한다”고 밝혔다.

“미국 제국주의자들은 이집트 차기 정권이 친미냐 반미냐만 재면서 반미 정권을 막으려는 예방적 조처에만 열중하고 있다.

“무바라크는 친미ㆍ친이스라엘 정책으로 아랍 민중의 자주권을 유린해 왔다.

“이집트 민중의 투쟁을 끝까지 밀고 나가 완전한 자주를 쟁취하길 바란다.”

이어 참가자들은 박노해 씨가 이집트 혁명을 지지하며 발표한 시 “’분노의 날’이 밝아온다”를 낭독했다. 칼리드 알리 씨가 아랍어로, 나눔문화 활동가가 한국어로 이 시를 낭독했다.

결의문을 낭독하고 참가자들은 아랍어로 함께 외쳤다.

“야스콧 야스콧, 호스니 무바라크”(호스니 무바라크는 물러나라)

이집트 혁명이 새로운 기로에 선 상황에서 한국 내 연대가 꾸준히 이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런 연대 소식은 투쟁하는 이집트 민중에게 힘을 줄 것이다. 이들이 승리한다면 한 참가자의 말처럼 “체제에 맞서 싸우려는 세계 민중은 더 큰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무바라크 즉각 퇴진과 이집트의 자유를 위한 2차 집회 결의문


지난주에 이집트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사건이 벌어졌다.

2월 3일 민주화를 요구하며 2주 동안 굳건하게 싸워 온 이집트 민중이 무바라크 정권이 동원한 깡패의 공격에 맞서 이 운동의 상징인 타흐리르 광장과 이집트 혁명을 방어한 것이다.

2월 4일에는 8백만 명이 넘는 이집트 민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무바라크의 즉각 하야를 요구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무바라크 하야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면서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무바라크 정부와 깡패의 공격 때문에 이집트인 수백 명이 죽고 1천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다쳤다. 민중의 민주화 열망을 수용하고 싶지 않은 무바라크 정부의 권력욕이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었다.

무바라크는 기만적이게도 공격 이틀 전 이집트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자신과 아들이 2011년 9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와 정권 고위 인사들이 진정으로 이집트 민주주의를 위해 정권욕을 포기할 생각이 있다면 왜 깡패들을 시켜 민주화 시위대를 공격했는가?

지금 무바라크 정부는 야당 지도자들을 만나 이집트 민주화에 관해 논의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바라크 정부가 구체적 성과도 없는 회담을 반복하면서 시위대가 지치기를 기다리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바라크 정부가 민중의 요구를 거스르면서 온갖 책략을 부리고 심지어 유혈 공격을 자행한 데는 미국 정부의 책임도 크다. 오바마 정부는 말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민주화 인사와 평범한 사람들을 고문한 비밀경찰 국장 출신인 부통령 술레이만에 대한 지지를 보내는 등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오바마 정부가 중동의 진정한 민주화보다는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포함해 미국 국가와 기업 이익을 더 중요시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 주는 것이다.

진정으로 민주화를 바라고 쟁취할 수 있는 세력은 지금도 타흐리르 광장과 이집트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무바라크 하야와 이집트 사회의 민주적 변화를 요구하는 수많은 평범한 이집트인이다.

이집트 민중은 무바라크 정부의 거짓말과 시간끌기에 신물이 났다. 그들은 무바라크 독재를 30년 동안 지지해 온 미국 정부가 이집트 민주화에 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며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들은 무바라크 정권이 당장 물러나야 하며 이집트 민중 자신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 집회에 참가한 우리는 이집트 민중 투쟁과 요구에 지지를 보내며 그들이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이곳에서 함께 싸울 것이다.

  - 무바라크는 즉각 물러나라!

  - 이집트의 자유를!

  - 학살자를 처벌하라!

  - 이집트 노동자 파업 지지한다!

2011년 2월 11일 ‘무바라크 즉각 퇴진과 이집트의 자유를 위한 2차 집회’ 참가자 일동

(이집트 혁명을 지지하는 이집트 사람들, (이하 가나다순) 국제노동자교류센터, 경계를넘어, 나눔문화, 노동전선, 다함께, 랑쩬(rangzen),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사회당, 사회진보연대, 인권연대, 전국노동자회, 진보신당,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한국진보연대, 향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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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의 여명” 작전 후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전력증강 계획을 앞당겨 해군 함정을 확충해 군함을 추가 파견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주장했다. 

‘아덴만 마케팅’이 자극한 애국주의의 압력 속에서 해상 안전을 위해서라면 강경 대응이나 추가 파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감스럽게도 진보신당조차 “해군 선박의 추가 배치 등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대변인 논평을 발표했다.  

△군사적 대응을 강화하자는 것은 군비를 더 늘리자는 속셈에 불과하다. 인질 석방 몸값의 수백 배를 사람 죽이는 무기에 쓰자는 것이다. ⓒ사진 출처 합동참모본부




그러나 군사적 대응을 강화해서는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할 수도, 한국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다. 

그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더 키우는 것이다. 

사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세계 해적 사건의 30~40퍼센트는 말라카 해협과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일어났다.

그때 유엔은 아무 개입을 하지 않았고, 주변국들이 알아서 협조해 대처했다.

그런데 소말리아에 대해선 달랐다. 유엔은 2008년 6월에 각국이 함대를 보내야 한다고 결의했다. 심지어 그해 12월엔 내륙까지 진입할 수 있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서방 강대국들이 함대를 파견한 뒤인 2009년에 이 지역 해적 사건은 전 해보다 갑절로 늘었다. 2010년부터 해적 사건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해적의 활동 범위가 소말리아 연안을 넘어 인도양까지 넓어진 것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주도로 유엔이 허가한 강대국들의 함대 파견은 단순히 해상 교역로를 보호하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의 일부였다. 

특히, 미국은 2003년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WMDPSI)[각주:1]을 주도적으로 구성했는데, 이는 쉽게 말해 미국이 테러 혐의 국가로 찍은 나라들에게 군사적 해상 봉쇄를 하겠다는 것이다. 

서방 강대국들, 특히 미국은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적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고 ‘해적’을 빌미로 삼은 것이다.

아덴만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배들이 지나는 곳이고, 아라비아 반도의 석유가 인도양으로 나오는 바닷길목이다. 

소말리아는 미국이 알 카에다 본거지라 꼽은 예멘과 아덴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나라다. 소말리아 파견 함대는 중동을 포위하는 함대이기도 한 것이다. 

미국은 최근 아프리카에 대한 군사 개입도 늘리고 있다. 현재 미국은 아프리카 사령부를 아프리카 대륙 안에 확보하지 못한 처지다[각주:2].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경제ㆍ군사적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미국에게 소말리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나라인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

그래서 2006년에 미국에 비협조적인 이슬람법정연맹(UIC)이 소말리아 민중의 지지 속에 내전을 끝내고 불안정과 빈곤을 해결하려 나섰을 때, 미국은 그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미국의 사주와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 군대가 소말리아를 침략해 수도 모가디슈를 점령했다. 미군은 폭격 등으로 이를 지원했다. 미국이 세운 괴뢰 과도 정부와 각 세력 사이 내전이 다시 시작됐다.

난민 수백만 명을 낳은 지금의 내전과 기아 상태는 순전히 미국의 개입 때문인 것이다[각주:3].

소말리아 인들이 생계형 해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도 강대국들의 책임이다. 

1990년대부터 소말리아의 혼란을 틈타 각국 어선들이 소말리아 영해에서 불법(약탈적) 어업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버려 왔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의 어업이 붕괴됐다. 지금 함대를 파견한 어느 나라도 이런 행위를 막으려 한 적이 없다. 

1990년대 초반 국제구호단체들이 선진국들의 남는 식량을 마구잡이로 푼 결과, 소말리아 농업의 자생력이 오히려 파괴됐다. 이런 행위가 오히려 소말리아 식량 위기를 구조적 문제로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도시에서도 바다에서도 생계를 해결할 방법을 빼앗긴 어민들은 바다로 나가 불법 어선들에게 ‘세금’을 받았다. 미국과 친미 강대국들은 이런 사람들을 ‘해적’이라 부르며 (불법 어선이 포함된) 자국 선박을 보호하겠다고 함대를 파견한 것이다.

해적의 규모가 커졌다 해도 이들을 양산하는 내전과 기아의 책임은 제국주의와 그 동맹자들에게 있다. 

소말리아 민중의 삶과 존엄을 파괴하는 제국주의 군대가 모두 철수하고 내정 간섭을 중단해야 소말리아에 평화와 민주적 재건의 싹이 피어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소말리아의 기아와 빈곤을 해결해 나갈 때 ‘해적’은 사라질 것이고 선원들의 안전도 지켜질 수 있다.

 부메랑이 될 ‘아덴만 마케팅

‘아덴만의 여명 마케팅’은 동이 채 트기도 전에 박살이 나는 듯하다. 
해양경찰청 수사본부는 7일 삼호주얼리 호 석해균 선장이 맞은 총탄 네 발 중 하나가 한국 해군의 탄환이라고 밝혔다. 
잃어버린 한 발의 총탄에 관한 의혹도 커지고 있다. 나머지 한 발은 교전 과정에 생긴 파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정작 해적이 쏜 게 분명한 총탄은 하나뿐인 것이다.
해경은 “새벽 시간 배의 조명이 꺼지고 링스헬기가 엄청나게 사격을 가하는 상황에서 우리 해군과 해적이 서로 총을 쐈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정부와 군을 변호했다.
그러나 이 해명은 ‘교전 없이 해적을 제압했고 석 선장은 이미 쓰러져 있었다’는 국방부의 애초 발표와 정반대다. 
그동안 이명박은 자신이 직접 지시한 작전이 완벽히 수행됐다며 자랑해 왔다. 한나라당 대변인 안형환은 총알에 관한 의혹을 제기한 이들에게 “간첩이나 다름없다”고 호통친 바 있다. 
이 모두가 거짓이었다. ‘완벽하고 성공한 작전’이기는커녕 해적 여덟 명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인질들의 생명도 도외시한 무모한 도박이었던 것이다. 국방장관 김관진도 작전 며칠 후 기자들에게 무리한 작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대통령의 지시로 그냥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금미305호 선원들이 9일 극적으로 석방됐는데, 정부는 6~7억 원에 불과한 몸값 지원조차 거절한 바 있다.
(여당은 원칙의 승리라고 논평했지만, 협상을 맡았던 케냐 교포 김종규 씨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석방금 지불 사실을 시인했다. 석방 과정의 의문점은 ①석 선장이 위중하고 해군의 총탄에 맞은 것이 확인된 시점에서 석방, ②케냐 교포인 협상 당사자가 석방 시점에서 서울에 와 있었던 점 등이다.) 
청해부대 파병 목적 자체가 ‘선원 안전 보호’에 있지 않다.
한국 지배자들의 소말리아 파병은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에 편승해 군사력을 과시하고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려는 속셈에서 나온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에 꾸준히 참여하고 한미FTA 체결에 집착하며 “연안 해군”에서 “대양 해군”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청해부대는 미군이 유럽 여러 나라의 해군과 함께 구성한 연합함대(그 가운데 CTF-151[각주:4]) 지휘 아래서 한국 선박보다 갑절이나 많은 해외 선박을 호송했다. 한국 선박 가운데 직접 호송한 비율은 13퍼센트에 그친다. 
군사력을 대외에 과시하겠다는 한국 지배자들의 전략적 목표와 ‘레임덕 탈출’ 기회를 만들려는 이명박의 계산이 모두 무모한 군사 작전의 배경이 됐다. 
길게 보면, 한국민의 위험은 정부가 미국의 침략 전쟁을 도우러 중동에 파병한 대가다. 파병으로 도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지금 소말리아를 망친 주범이니까 말이다. 
2009년 청해부대 파병 직후 예멘에서 한국인이 표적 테러를 당한 일을 떠올려야 한다. 
한국 정부는 즉시 철군해야 한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50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 가기
  1. 영어 풀네임은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미국 주도로 여러 나라들이 맺은 협약 같은 것으로, 그 내용은 대량 살상 무기를 실을 것으로 의심되는 항공기나 화물선을 공해상이나 우방의 영해 및 영공에서 강제로 검문하거나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북한, 이란 등을 주요 대상국으로 함. [본문으로]
  2. 현재 미군의 아프리카 사령부 본부는 독일에 있다. 그 전에 미국에게 아프리카 사령부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중부 사령부와 유럽사령부가 분할 관할하다 아프리카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2007년 아프리카사령부를 신설했다. [본문으로]
  3.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혼란과 1991년 정부 붕괴 후 내전으로 일어난 인도적 재난을 악화시킨 것은 서방 강대국들의 구호단체들이었다. 이들이 소말리아 지역 사회와 협의없이 식량을 푼 대가로 소말리아 농업은 붕괴 위기에 빠졌고, 이는 식량 위기를 가속화했다. [본문으로]
  4. 한국 정부와 해군은 대 테러 작전 함대인 CTF-150 배속을 원했으나, 같은 해역에서 대 해적 작전을 초점을 두고 한국이 파병 직전인 2009년 1월 창설된 CTF-151에 배속됐다. 그래봐야 이 둘 모두 미국 제5함대의 연합해군사령부(CMF)의 지휘를 받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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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에 승리를! ‘중동의 민중 반란’ 기사 모음(속보 포함)


△2월 2일 민주화시위대가 무바라크의 깡패로 부터 타흐리르 광장을 지키고 있다. ⓒ사진 출처 Nasser Nouri


이집트는 미국의 중동 지배 전략에서 지렛대 같은 나라입니다. 아랍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나라(주도 국가이자 강국)면서 32년 동안 미국-이스라엘과 혈맹 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아랍권 역대 최대의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에서 중동 지배가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그 중동 지배의 핵심 열쇠 가운데 하나인 이집트에서 일어난 민중 혁명이 승리한다면 그것이 가져올 세계의 변화 가능성은 어마어마합니다. 

이집트 민중의 혁명은 제국주의의 심장부를 타격하는 도전입니다.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곧 미국 중심의 국제 정치·경제 질서이므로 결국 세계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그리 손쉽게 무바라크를 無발악 상태로 팽개쳐두지 않을 겁니다.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말하는 ‘질서있는 전환’은 혁명 민중을 향한 ‘질서 있는 반격’을 뜻합니다.

이집트 혁명은 크게 봐서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해 터져 나왔다고 봅니다.

세계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경제 위기의 전이, 중동 지역의 억압적 정치 구조와 경제적 불평등이 쌓아온 민중의 절망과 분노. 이 둘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혁명은 엄청난 규모로 사람들을 고취하고 변화시켰기 때문에 이집트 혁명은 단기간의 정권 교체 문제를 넘어선 듯보입니다.

지난주부터 타흐리르 광장을 둘러싼 쟁탈전이 시작됐듯, 혁명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입니다.

허약하고 별 볼 일 없는 야당, 서방의 눈치를 보며 몸 사리는 무슬림형제단, 강한 탄압으로 아직은 세력이 작은 사회주의 혁명가들. 이런 취약한 주관적 조건에서도 혁명이 전진한 것은 민중의 폭발적인 자생성 덕분인 듯합니다.

그러나 저들이 시간을 벌며 질서 있는 반격을 추구할수록 이 혁명도 가장 전투적이고 가장 명확한 부위를 중심으로 혁명적 지도력을 창출하는 과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독재가 민중항쟁에 항복했는데도 군부 일당의 정권이 5년, 일당국가체제가 10년 유지됐으며 이른바 민주 야당이 집권해서는 신자유주의로 민중의 삶을 더 어렵게 했던 한국의 경험을 돌아보면 혁명의 진전은 혁명의 성공과 생존을 위해 정말 필수적인 것입니다. 여러 정치적 논쟁과 우여곡절을 통과할 것입니다.

민중을 혁명적 방향으로 단결시킬 지도력 구심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위대한 이집트 민중이 지금 해야 할 일인듯합니다. 무엇보다 혁명에 참여한 민중이 자신들의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으로 조직해 힘을 결집한 수단들을 만드는 게 급선무겠지요. 그래야 무바라크가 고용한 깡패와 경찰의 폭력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노동자평의회 만들기, 민중의 생존권 보장 등 생활상의 요구와 정치 요구를 결합하기, 노동자와 무토지 농민들이 투쟁으로 동맹하기, 군대 사병들에게 혁명에 가담하고 병사들의 혁명위원회를 만들라고 호소하기, 민중 스스로 무장하기 등의 조처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집트 혁명으로 제국을 거꾸러뜨리고 중동을 혁명의 봉화대로 바꾸길 바랍니다. 이 혁명은 세계경제와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평화적 정권 이양을 거부할수록 혁명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4년 전 걸었던 그 거리들이 지금 혁명의 거리가 돼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놀랍습니다.

이 혁명의 기운은 한국에서 MB라크(명바라크)와 싸우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연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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