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최병천 비판을 보충하려 한다. 전형적인 인도주의 개입 찬성 논리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병천 씨[각주:1]가 “미국의 군사 개입을 찬성”한다며 밝힌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및 국민주권) 가치 중에서 전자가 ‘상위 가치’”다.

2. “‘민주주의 없는 ‘반제론’은 실패했음이 북한, 리비아를 통해 역사적/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

3.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굳이 국제적인 군사적 개입을 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데 지금 리비아에서 대결 구도는 ‘민중 vs 독재자’다. 리비아 혁명에 관한 태도를 결정하려면, 리비아의 혁명적 민중을 지지할 것이냐, 카다피 독재 체제를 지지할 것이냐 가운데에서 선택하면 된다.

이것이 ‘보편적 인권 vs 주권(반제국주의)’으로 바뀌는 것은 실제로는 대결 구도를 ‘민주적 제국주의 vs 카다피 체제’로 설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생기는 의문은 이것이 왜 ‘보편적 인권 vs 독재’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 vs 주권’인가 하는 것이다.

국가의 주권이란 사실상 국경 안에서 무력을 합법으로 독점하는 권리를 뜻하는데, 그 점에서 최병천의 구도는 오히려 카다피의 학살을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인정해 주는 것과 같을 수 있다.[각주:2]

그러나 리비아 혁명 민중의 편에 서면 카다피의 주권 논리는 가증스런 것이다. 어떤 합법 절차도 없이 무력을 독점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국가에게 ‘주권’이 있다고 인정할 민중은 없다.

결국 최병천은 이 혁명과 군사 개입 논쟁을 계급 분단선의 문제가 아니라 국경선의 문제, 즉 강대국 정부와 후진국 독재정부의 문제로 보는 셈이다.

그래서 ‘보편적 인권’을 대변할 행위 주체는 리비아 민중이 아니라 ‘민주적’ 제국주의 국가의 군대다. 

리비아 민중은 독자적 행위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역설적으로 승리할 가망이 있다면 군사 개입을 찬성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최병천에게 그들은 민주적 제국주의가 대신 해방시켜줘야 하는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다.[각주:3]

최병천은 ‘민주적’제국주의와 카다피 독재 정부 둘 가운데서 ‘민주적’ 제국주의를 지지하자고 말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보편적 인권 vs 반제국주의 주권’ 구도에는 좀더 이데올로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병천은 그동안 북한 같은 아류 스탈린주의 독재정권들의 실패에서 온건 개혁주의 노선의 정당성을 찾으려 해 왔다. 그에게 리비아나 북한은 유엔 등을 통해 절차만 거치면 인권을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가 ‘처리’해도 되는 국가다.

이 정권들이 위선적이게도 급진적이거나 반제국주의 수사들을 즐겨 써왔기 때문에 이 나라들의 독재와 가난은 오히려 급진적 반제국주의 정치의 신용도를 추락시킬 좋은 소재였다.그럭저럭 남는 장사였던 것이[각주:4].

그러나 세계경제에 깊숙하게 엮여 있는 한국경제에서 세계자본주의[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전략이 아니고선 불가역적인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없다.

초기의 환호가 잦아든 지금, 리비아 혁명은 목적의식적인 연속혁명을 추구해야만 카다피의 반동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그 점에서 이런 개혁주의 사고는 처음부터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설정한 문제틀에서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결국, 민중혁명도 신뢰하지 않고 제3세계 독재정부가 신뢰하지 않는 진보가 리비아 같은 사태에 직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것은 서방의 가치를 미화하며 민주적 제국주의의 구실에 기대는 것 뿐이다.

사실은 바로 이런 사고 방식 때문에 서방의 많은 자유주의 좌파들이 1990년대 이후(달리 말하면 냉전 이후) 서방 강대국들의 ‘인도주의 개입’ 논리에 휩쓸려 갔다

이와 관련해 토니 블레어는 1999년 나토의 세르비아 공격을 정당화하면서, 강대국들이 세계의 경찰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제3의 길’식 세계화 담론을 주장한바 있다. 

1990년대 이후 국제 구호 단체들 안에서도 균열이 일어나 중립주의에서 개입주의로 전향이 많이 일어났는데, 옥스팜의 각국 지부들이나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단체가 그렇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정치단체가 독일 녹색당인데,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등장한 이 당이 사회민주당과 연합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지지한 것은 참으로 몹쓸 장면이었다.

한때 혁명가였던 이 당의 리저 요슈카 피셔는 한때 슈뢰정 정부에서 장관직을 맡기도 했고, 녹색당 자체도 사민당의 단골 연정파트너 정당이 됐으나 좌파적 신용은 상당히 잃어 버렸다.

서방 군사 개입에 찬성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이렇듯 분명하다.

문제는 최근 잠시 소강 상태인 듯하던 리비아 국내 상황이 바뀌어 카다피가 우세해 보인다는 데에 있다.

서방의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같다.

첫째, 서방 강대국들이 결코 인도적이나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관련 글 보기 ☞ 제국주의와 인도주의)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인도주의 개입의 이름으로 학살과 약탈을 자행해 왔다. 바레인을 침공한 사우디 군대를 후원하는 것은 미국이다.

서방 강대국 정부들은 또 2000년대이후 카다피 정부와 유착해 왔다. 이명박 정부의 리비아 간첩 사건도 리비아 정부에 좀더 좋은 [로비] 선(線)을 대려는 시도에서 나온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쓴 다른 글을 보시오. ☞ 관련 기사 / 관련 포스트)

둘째, 서방의 군사 개입은 카다피의 가증스런 ‘학살 주권’이 아니라 리비아 혁명의 ‘주권’과 충돌할 것이라는 점이다. 혁명 세력이 장악했다는 석유 관련 시설 80퍼센트를 서방 군대는 가만히 둘 것인가.

서방 강대국들 입장에선 국유화된 석유 통제권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혁명 정부에게 맡길 수 없을 것이다. 벌써 EU 지배자들은 반군측에 카다피와 맺은 자신들의 석유개발권을 그대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혁명을 이끄는 세력은 과도정부와 전국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과도정부에는 구체제의 법무장관 등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 전국위원회는 이 과도정부와 명확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교착 상태 때문에 비행금지구역을 찬성하는 부류가 있을 만통일성이 부족하다. 

셋째, 리비아에서는 이집트나 튀니지와 달리 노동계급의 주도성이 적다. 그래서 기득권층의 과도 정부와 혁명위원회의 내부 분화가 충분하지 못한 것이고, 반카다피 대중을 혁명으로 동원하는 문제에서 사회적 내용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가 오일머니로 주택 제공 등 복지 혜택을 약속한 바가 있는데, 혁명위원회의 전국위원회는 이를 뛰어넘는 변혁 강령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다시 말해 리비아 혁명이 직면한 어려움은 서방의 지원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혁명 과정에서 폭력의 힘은 절대적으로 정치적 설득력(지지세력의 결집과 동원 능력)에 달려 있다.

군부가 감히 혁명에 총부리를 못 겨누고 후퇴한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에서도 이 점은 증명됐다. 2006년 레바논 헤즈볼라가 최정예 이스라엘 군대를 이긴 것도 이런 사례다. 지금까지 혁명 세력이 승승장구한 것도 그 때문이고, 그 점에서 카다피가 일방적으로 혁명세력을  ‘학살’하는 듯한 일부 보도는 과장에 가깝고, 가끔은 의도가 의심스럽다.

어려움이 있다면 앞서 말한 혁명 주도 세력의 내부 약점에서 비롯한 것과 더불어 혁명의 선제공격에 대항한 구체제의 반동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군대가 바레인 민주화 저항세력을 진압하려고 출동한 것을 보라. 사우디 군대를 후원하는 나라가 어디인가. 서방 강대국 가운데 사우디 군대를 막을 군사 개입을 말하는 나라가 있나?

오히려 서방의 군사 개입이 거론된 이후 서방의 음모에 맞서 아랍의 주권을 지킨다는 카다피의 거짓말이 먹힐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과도정부나 전국위원회가 서방 개입에 찬성하면 혁명 진영은 크게 분열할 수 있다. 실제로 서방의 군사개입 얘기가 나온 뒤로 혁명이 주춤하고 카다피의 반혁명 공세가 거세졌다. 

그렇다고 혁명이 후퇴하거나 끝장난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카다피는 리비아의 더 적은 지역을 톶제하고 있고, 공식 군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용병에 의존하고 있다. 벵가지가 쉽게 함락될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혁명은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다. 초기의 환호와 역습, 후퇴와 전진 등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 각 정치세력의 실체와 실력이 드러나는 치열한 대결의 장이다. 그리고 현재 중동 혁명은 단순히 독재자가 아니라 서방의 후원을 받는 독재자에 맞선 혁명이다. 

따라서 열쇠는 서방의 군사 개입에 있는 것이 아니다. 리비아 혁명의 운명은 이집트가 조금씩 그러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혁명으로, 다른 중동혁명과 연대하는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느냐에 달린 듯하다.

카다피의 이권이 다른 기득권 집단의 이권으로 넘어가는 식의 과도 정부 대안이 아니라 노동자권력 대안만이 카다피가 해결 못한 빈곤과 자유, 진정한 민중주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성마른 이들에게 이런 결론이 매우 무기력하거 냉소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실패가 명백한 길로 갈 수는 없다. 서방 군사 개입이 아니라 서방의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 혁명을 돕는 길이다.



  1. 진보신당 서울시당 부위원장/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본문으로]
  2. 그래서 그는 주권도 중요하긴 하므로 유엔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3. 여기서 주권 국가가 사라져도 국가가 통치하던 그 사회는 남는다. 주권을 가진 억압적 국가기구는 외국군대가 파괴할 수 있어도 그 사회에 사는 민중은 제국주의 군대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최병천에게 이 문제는 고려사항이 없다. 다른 좀더 덜 현학적인 표현과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룰 것이다. [본문으로]
  4. 그래서 온건 진보파들은 북한 정권과 일체감을 느끼는 민족해방파 식의 반제국주의 노선 뿐 아니라 다함께 같은 반자본주의적 반제국주의 노선도 혐오하는 것이다. 후자는 현재 국내외에서 현존하는 자본주의 질서(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질서)에 혁명적으로 도전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현존 질서에서 안주하려는 온건 진보파에겐 매우 거북스런 존재인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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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강대국들이 리비아에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카다피의 학살을 막고 리비아 민중을 구하려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혁명을 돕고자 하고, 독재자 탓에 죽어가는 희생을 막으려는 심정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목마르다고 소금물을 들이킬 순 없다.

서방 강대국들은 카다피보다 더한 살인마들이라는 점, 카다피와 서방 강대국들 정부 서로 진지하게 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 잘못된 외부 개입이 혁명을 왜곡하고 방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군사개입 찬성론은 목적과 반대되는 수단에 찬성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진보신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이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인 최병천 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미국의 군사 개입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및 국민주권) 가치 중에서 전자가 ‘상위 가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상위 가치를 대변하는 존재가 왜 서방 강대국의 군대여야 하는 것이냐인데,그는 우선 “‘민주주의 없는 ‘반제론’은 실패했음이 북한, 리비아를 통해 역사적/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면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한다.

또 그는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굳이 국제적인 군사적 개입을 할 필요가 없겠죠”라고 말하는데, 리비아 민중의 자기해방 능력에 대한 불신 때문에 서방 군대의 개입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셈이다.

결국 최 위원의 주장은 민중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이룰 가망이 없으니 강대국 군대가 강제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리비아 혁명의 수도 구실을 하는 벵가지의 한 건물에서 서방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혁명 투사들.


그런데 과연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존재인가.

냉전 이후 서방 강대국들은 패권적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들먹여 왔다. 이른바 ‘인도주의 개입’론은 소말리아, 코소보와 세르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해 줬다.

그러나 현실과 명분은 달랐다. 제국주의 군대는 ‘인도주의 개입’ 때마다 자신이 보호하겠다고 한 바로 그 사람들을 학살하고 인도적 재앙에 빠뜨렸다.

소말리아에서 민간인 수천 명을 죽였고, 세르비아에선 민간인 지구가 폭격 대상이 됐고, 폭격은 민족간 증오를 더 부추겨 세르비아에선 알바니아계가 쫓겨났고, 코소보에선 세르비아계가 수십만 명 쫓겨났다.

세르비아 정부와 의심스런 코소보 해방군을 제외하면 그 두 민족의 평범한 대중은 그 전까지 이웃으로 살아왔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수백만 명이 학살당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했듯이, 제국주의 점령군은 이곳들에서 카다피보다 더 끔찍한 짓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제거하겠다고 했던 후세인, 탈레반, 알카에다 등은 모두 미국이 키운 악당들이었다.

지금 카다피가 사용하는 무기들도 죄다 서방이 판매한 것이다.

최 위원의 주장처럼 리비아에서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가 대립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카다피는 후세인의 몰락을 보며 미국에 항복했고, 그 뒤에는 서방 정부들과 유착해 왔다.

이런 상호 유착 때문에 혁명 초기 서방 국가들은 카다피 비판을 애써 피했다. 지금 그들이 군사 개입을 망설이는 것은 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발목이 잡혀 개입할 지상군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개입이 또 실패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서방이 군사 개입을 한다면 그 목표는 강대국들의 패권과 석유 자원 확보이지 리비아의 민주화가 아니다.

이 때문에 리비아 혁명 세력의 ‘전국위원회’는 일단 서방의 지상군 개입에는 반대하고 있다. ‘비행금지구역’ 문제에서는 혼란스런 입장을 내면서도, ‘외국 군대’의 주둔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고, 강대국들의 경제제재로 오랫동안 고통 받아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방이 군사 개입을 시작하면 ‘저항세력은 서방의 사주를 받은 세력’이라는 카다피의 악선동에 오히려 힘이 실릴 것이고, 혁명 세력은 분열할 것이다. 심지어 리비아 혁명에 우호적인 국제 좌파 진영도 분열할 것이다. 

일단 발을 들여 놓은 서방 군대는 ‘안정’과 ‘평화’라는 이름 아래 리비아의 모든 국내 세력과 석유 자원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친미독재 국가들을 위협하는 민중 반란 물결을 분쇄하려 할 것이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사실상 카다피의 대공능력을 무력화해야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므로 선제 폭격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것은 리비아의 혁명 열기를 식히고, 확산하던 중동 혁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폭격과 서방 군대 개입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끔찍한 재앙과 비극을 낳을 것이다.

제국주의 군대는 결코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혁명은 제국주의 폭탄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 자기 해방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리비아 민중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혁명을 지지하는 서방 대중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카다피는 고립될 수 있고, 그렇게 돼야 그의 반혁명적 저항은 위력을 잃을 것이다.

서방 강대국들의 군사 개입을 지지하는 치어리더가 돼선 안 된다.

※ 이 글은 축약돼 <레프트21> 52호에 실렸습니다. 기사 보기 ☞ 민주와 인권을 위한 서방 개입이 필요하다?

※ 이 글의 보론은 여기로  ☞ 보편적 인권 vs 국가 주권 구도는 허구다 를 읽어 보시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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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파업 찬반 투표가 가결됐군요. 총원- 4,700명, 투표- 4,697명(99.9%), 찬성- 4,516명(96.2%).  (3.16)
   현재 매각 관련 쟁점에 관한 제 의견은 http://enlucha.tistory.com/106를 보시오.

1.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과 외환카드를 합병할 때, 의도적인 주가 조작을 했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가 10일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 외환은행과 외환은행 대주주 LSF-KEB Holdings,SCA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것이죠. 이 사건은 그동안 1심 유죄 → 2심 무죄 → 3심 무죄 파기환송 순으로 엎치락뒤치락을 해 왔습니다.

명백한 사안인데도 재판 결과가 왔다갔다한 것은 거대 자본을 처벌하기가 참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은, 2003년 11월 론스타펀드 경영진들이 ‘Project Squire(시골 대지주)’라는 작전명[각주:1] 아래 고외환은행의 외환카드 합병을 앞두고 고의로 외환카드 거짓 감자설을 유포해서 주가를 폭락시키고 이득을 챙긴 사건입니다. 

론스타는 당시 단순한 주식 차익 따위가 아니라 합병 과정에서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유지하려고 주가를 조작한 것이었죠. 당시 주가대로 합병하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이 50퍼센트 밑으로 떨어질 수 있어 감자설을 유포해서 주가를 폭락시키고, 외환은행의 계열사 지원을 끊어 외환카드를 경영 위기로 몰아갔습니다.  

이 조작은 씨티그룹, 법률사무소 김앤장 등과 함께 공모해 이뤄졌습니다. 외환은행 불법 인수 작전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일이었습니다. (이때 작당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인데, 당시 인수 허가의 담당 국장이 지금 금융위원장인 김석동이었죠.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과 기업이 유착한 권력이 더 강한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식 합병 비율을 조작하고, 경영권 프리미엄(향후 주식을 팔 경우 시가보다 더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이득)을 갖는 대주주 자격을 유지한 것이죠.

이번에 대법원 재판부는 “성실히 감자 여부를 검토, 추진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자검토 내용을 발표했다”며 “이는 주가하락을 통해 론스타 펀드 등이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감자발표 감행을 공모한 것”이라고 판결했습니다[각주:2].

이 판결의 파장이 큰 것은 투기자본의 돈벌이 패턴 하나가 단죄를 받게 됐다는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외환카드 합병 과정에서 합병에 반대하던 노동자들이 탄압당하고,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됐습니다. 그런데 합병 자체가 부도덕한 기업주의 손으로 이뤄진 불법이기 때문에  당시 합병에 반대한 노동자들의 정당성을 다시 인정해야 하고,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을 원직 복직시켜야 합니다.


2. 이 판결로 론스타가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매물로 넘기고 수조 원의 돈을 챙겨 나가려던 계획에 큰 장애물이 생겼습니다. 

의혹투성이인 외환은행의 외환카드 합병 과정이 사실상 불법이라면, 외환카드를 인수한 외환은행도 장물이 됩니다. 도둑이 장물을 제값 다 받고도 프리미엄까지 챙겨 가는 거죠. 

아무리 한국 자본주의가 이익공유 같은 개념도 모르는 개판이라지만, 그로 말미암은 피해는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지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죠.

외환은행 노동자들도 론스타의 인수 후 인력 감축을 당했습니다. 지금 하나금융지주는 론스타가 요구하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감당 못해 국제 사채=투기자본에게서 돈을 꿔왔습니다. 인수합병후 기본적인 인력감축 말고도 경영 부실로 노동자들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금 외환은행 노동자들이 몇 달째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에 반대하며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2월 28일에도 서울시청 광장에서 외환은행 노동자 4천여 명이 촛불집회를 했었습니다. 거의 전 직원이 다 왔다해도 지나친 과장이 아닐 텐데, 분위기도 매우 뜨거웠습니다. 

그날 한국노총,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 등 몇몇 분들과 얘기를 나눴는데, 대체로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지주회사의 외환은행 인수 쪽으로 결론 내릴 의사가 크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석자 모두 자신감은 있어 보였습니다. 

그날 인상적인 연사는 민주노총 소속인 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의 연설이었습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몇 년 전 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했다가 그룹 자체가 부실 위기에 빠졌습니다. 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은 그 자체로 엄청난 규모의 대기업이라, 당시에도 금융권에선 이 인수합병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인수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처음엔 인수합병의 기본 수순인 피인수 합병 기업의 인력 구조조정(감축)이 진행됐는데, 인수 자금을 무리하게 끌어쓴 대가로 결국 인수한 모(母) 그룹 소속 기업들도 부실해져 인력 구조조정을 해야 했습니다. (관련 기사 ☞금호타이어 1천3백77명 대량해고 계획 철회하라 금호타이어는 대량해고를 중단하라)

권수정 위원장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인수되는 기업의 노동자 뿐아니라 인수하는 기업의 노동자들도 구조조정을 동반하는 인수합병에 함께 반대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노동자가 함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것이 현실적 사례인 것이죠.

그것은 합병에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동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례일 뿐아니라 하나은행의 노동자들에게도 지지와 연대를 촉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무리하게 투기자본(사실상 국제 사채)을 끌어들여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는 하나금융지주회사에게 ‘승자의 저주’를 경고하는 것이 외환은행 노동자들만은 아닙니다. 하나은행의 인수자금에서 절반이 빚입니다. 반대로 론스타는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르고도 막대한 돈을 챙겨 유유히 한국을 떠납니다. 

외환은행 노동자들은 론스타는 돈 벌어 떠나고 또 새로운 투기자본이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을 지배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아쉽게도 하나은행노조는 공식적으로 외환은행 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잘못입니다. 같은 은행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켜 함께 살자는데, 응당 지지와 연대로 답해야 합니다.


3. 김대중 정부부터 지난 10여 년 동안 은행 대형화 전쟁이 계속돼 왔습니다. 지금 대형 시중은행 4강권에 있는 은행들은 모두인수합병으로 그 자리에 올라 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은행 대형화로 각 은행들은 서로 영업 분야가 똑같아졌습니다. 경쟁 심화는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인수합병으로 인력 감축이 반복되면서 정규직 일자리는 줄었고, 그 결과는 다시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두세 사람이 하던 일은 이제는 한 사람이 하면서, 더 많은 실적 압박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그러니 은행권 고임금이란 건 어쩌면 허상일 수 있습니다. 일이 는 만큼 임금이 올라간 건 아니니까요. 게다가 노동자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상시적인 인력 감축 압박에도 시달리게 됐습니다. 

은행간 경쟁의 심화는 돈 되는 영업으로 은행들을 몰리게 했는데, 그것이 서민금융의 위축과 가계대출 시장의 비대화를 낳았습니다. 가계대출 확대와 카드/부동산 거품은 이 결과이기도 했는데, 이쪽으로 돈이 쏠린 이유는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회복이 불충분하게 이뤄지고, 1997년 이후 한국경제가 회복되지 못한 배경 속에서 기업 투자가 부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금융정책은 한국의 저축률을 심하게 떨어뜨렸는데, 이는 지금의 숫자 상의 경기회복이 빚더미 위에서 이뤄진 것이란 뜻입니다. 

집권 직후 추진한 이명박 정부의 기업과 부자 감세도 기업 투자의 부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근본에서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들이 돈만 쌓아 놓은 거죠.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경기부양 정책은 이런 패턴으로 오히려 돌아간 것이었고, 이것은 폭락 위기에 있던 한국 부동산 시장을 빚으로 되살린 것이고, 이것이 한쪽에선 전월세 대란을 낳고, 한쪽에선 저축은행 파산을 낳고 있습니다. 

한국 지배자들의 신자유주의 경제(금융) 정책은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4. 외환은행 노동자들은 내일(15일) 총파업 찬반투표를 합니다. 12일 전 직원 집회에서 결의한 것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예상대로 16일 하나금융의 인수계약을 승인하면 파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찬반투표는 정부에 대한 마지막 압박이자 경고입니다. 

사실 이 시점에선 지금 때를 놓치면 승리는 물 건너 갑니다. 파업을 하지 않으면 인수합병을 막기 힘들 것입니다. 이명박과 하나금융 회장 김승유의 관계 때문에 하나금융이 능력도 안 되는데 인수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죠. 

이 투쟁은 사실상 청와대를 향한 싸움입니다. 

은행 대형화 정책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모두 재경부 모피아들, 대형 금융자본(투기자본을 포함한)과 합작해 추진해 온 것이라는 점, 이명박 정부가 은행 대형화의 한 줄기로서 하나은행에 특혜를 주려는 합병이라는 점, 그 두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은행 부실과 노동자 인력 감축,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질 것이고, 더 길게는 대형 은행들이 수익성 위주 경영으로 내달려 금융의 서민 배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나쁜 것입니다.

따라서 이에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당합니다. 이 싸움이 이제 결론을 내야 할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2003년에 론스타에 맞선 싸움을 석연찮게 접었던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랍니다. 이제는 여론전이 아니라 노동자 고유의 힘을 동원한 힘 대결의 국면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은 외환은행 국내 임원들이 한 편인듯 하지만, 그들이 어느 경우든 자리를 잘 보전하려면 정부와 하나은행에 밉보여선 안 됩니다. 그들은 파업을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내부에서 합병에 반대하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는데, 이에 맞설 주체는 노동자와 노조 뿐입니다. 

하나금융의 부실 문제, 론스타의 먹튀와 불법 주가 조작 문제 등으로 정부와 금융위원회도 쉬운 결정이 아닐 겁니다. 1백만 명이나 외환은행 합병 반대 서명에서 보듯 국민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나은행보다 재정 상태가 더 좋은 국민은행도 3년 전 비싼 가격과 (부차적이지만) 여론을 이유로 합병 직전에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인수를 승인해도 론스타가 먹튀하고, 인수 승인을 하지 않아도 론스타가 또 고배당으로 먹튀한다고 딜레마라고 합니다. 사실 이는 핑계입니다. 

하지만, 온 좋게도 대법원이 답을 줬습니다. 론스타는 금융 불법 행위자입니다. 이들에게서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고 주식 거래를 정지시켜야 합니다. 외환은행은 국책은행으로 독자 생존하도록 하는 것이 낫습니다.

파업 찬반 투표는 아마도 압도적으로 가결될 것입니다. 금융위원회도 승인 심사를 다시 유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수록 하나금융지주는 무리한 계약조건 때문에 불리해지겠죠.

그럼에도 정부가 이 마지막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명박은 그토록 경계했던 민주노총이 아니라 점잖은(?) 은행 노동자들에게서 한방 먹고 레임덕이 심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려면, 외환은행 노동자들이 스스로 칼자루를 쥐어야 합니다. 저들의 일정에 맞춰 파업 경고만 하지 말고 유리한 기회를 잡았을 때 밀어붙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2월 28일 집회 같은 대규모 도심 집회로 말이죠.



※이 주제 관련한 최근 기사 ☞ 외환은행 매각 저지 투쟁 ― ‘먹튀 자본’ 론스타의 지분을 몰수해야 한다


  1. “이 작전의 실체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수사하던 대검 중수부가 2006년 9월 씨티그룹을 압수수색하면서 드러났다. 씨티그룹증권(옛 살로먼스미스바니)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자문을 맡았던 자문회사였는데, 검찰이 이 회사와 론스타 관계자, 김앤장 법률사무소 관계자들이 주가조작을 위해 주고받은 이메일을 손에 넣었던 것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주도로 열린 론스타 처벌 요구 기자회견문 가운데서 인용. [본문으로]
  2. 2008년 1심 재판부도 "실제 감자 의사가 없으면서 감자계획 검토를 언론에 발표해 외환카드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려 했다”고 인정해 유회원에게 징역 5년을, 외환은행과 대주주인 LSF-KEB Holdings, SCA에 각각 벌금 250억 원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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