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혁명이 서방의 군사 개입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습니다. 간교하게도 서방 열강들은 군사 개입 목표를 카다피 제거와 민주화 시위대 보호로 삼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여러 글을 써 왔는데, <레프트21>에 실린 독자편지에 여러 관련 기사들과 겹치지 않는 내용으로 답변을 해 봤습니다.

리비아 혁명에서 서방 개입이라는 난제

배상진

지난 호 기사에서 리비아 혁명에 대한 두 편향, 즉 독재 국가를 옹호하는 한심한 주장과 민주주의의 'ㅁ'도 가져오지 못할 서방의 개입을 지지하는 어리석은 주장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다. 이 주장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옳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한 가지 맹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만약 서방이 실제로 군사적 개입을 통해 카다피 세력을 공격할 때다. 원칙적으로는 카다피와 서방세력에게 모두 반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 시기에 이러한 충돌이 벌어질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이것은 이후 북한이나 쿠바 등에서 벌어질 혁명의 중요한 전략, 전술 문제가 될 수 있다.

리비아 민중들은 제국주의 세력과 제휴해 카다피를 우선 축출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하는가? 아니면 카다피 세력과 우선 협상하면서 서방 세력부터 몰아내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두 세력을 동시에 축출하는 전략을 써야 하는가? 셋째라고 한다면 원칙상 옳을지는 모르지만 역량이 분산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효과적인 전략인지에도 다소 의문이다.

어떤 전략을 쓰고 어떤 세력과 일시적으로 제휴를 하든, 서방과 카다피 모두 궁극적으로는 리비아 민중의 적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폭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폭로와는 별개로 리비아 민중의 권력 장악을 위한 시도에서 이 문제를 건너뛰고 생각할 수는 없을 듯하다.

<레프트21> 52호 | 독자편지 online 입력 2011-03-17



사실, 이 문제를 놓고 <레프트21>이 여러 기사를 싣고 있으니 먼저 이 기사들을 참고하길 바라며 몇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중동의 민중 반란 기사 모음: 여기누르세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 군사개입을 결정하자마자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곧바로 전투기 출격과 군사 작전을 펼치고 있다. 정확히 8년 전, 미국과 그 동맹들이 이라크 침략을 개시했던 날이다.

이제 리비아 주요 도시는 서방 전투기와 함대의 폭격을 받는 처지가 됐다.
비행금지구역이 평화 조처가 아니라 리비아 전역을 향한 군사 작전이라는 비판자들의 주장이 옳았다는 게 드러났다.

이미 수십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다. 전례를 볼 때 민간인 사망은 필연적이다. 1999년 세르비아 공격 때 나토(NATO)가 자랑한 ‘정밀폭격’은 방송국, 병원, 발전소 등을 부숴 버렸다.


카다피는 민중 혁명이 서방 제국주의 사주를 받은 것이고, 자신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거짓 선전을 정당화할 기회를 얻었다. 서방의 폭격으로 카다피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전쟁 그 자체의 논리에 따라 공중 폭격은 지상군 투입으로 이어질 것이다. 1999년 나토의 코소보전쟁(세르비아 공격) 때도 78일간 무차별 폭격을 했지만 결국 지상군이 투입돼서야 코소보를 점령하고 협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상군 투입은 더 큰 인도적 재앙을 낳을 것이다.

이것은 혁명세력의 명분과 발언권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당분간 혁명 세력은 주변화될 것이다. 이것이 민중 혁명에 도움이 될까.

서방 열강은 중동 혁명을 차단하고, 석유와 패권을 지키려는 전쟁을 시작했다. 저들은 동결된 카다피의 재산을 혁명세력에 제공하는 등 혁명세력을 직접 강화시키는 방안은 수행하지 않았다. 저들은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 중동에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 한다. 민중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이 민중을 해방시킨다는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배상진 씨는 서방의 개입을 반대하는 주장이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옳다’고 지적하면서도 카다피와 서방 군대에 동시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 ‘원칙적 주장’의 “맹점”이라고 주장한다. 역량이 분산돼 혁명에 불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리비아 혁명 세력이 초기보다 위축된 상황을 보고 하는 주장인 듯하다. 이해할 만한 그 사정에도 이 주장은 좀 혼란스럽다. 원칙적으로 옳은 주장이 그 주장이 반대한 실제적인 상황이 오면 쓸모없어진다는 말이니까.


나는 배상진 씨가 먼저 자신의 원칙을 따라 “제국주의 군대가 카다피를 물리치는 것을 ‘자기해방’을 뜻하는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해 보길 바란다.

서방 군대가 카다피를 제거하는 것은 결코 혁명이 아니다. 그래서 서방 개입에 침묵하거나 용인하는 것이야말로 ‘일관된 혁명 전략’을 포기하는 것이다.

서방 지배자들은 리비아 해방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이 사우디아라비아·UAE 군대가 미군 제5함대 기지가 있는 전략적 요충지 바레인의 민주화 시위 진압을 위해 바레인에 진격한 것에는 침묵하고 있다.
 
그들은 동결한 카다피의 재산을 혁명 세력에게 제공하거나 심지어 무기를 제공하는 등 혁명세력을 직접 강화하는 정책은 한사코 거부했다.

서방의 군사 개입과 절친 동맹인 사우디 등의 바레인 진격 시점이 유사한 것은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와 아랍의 그 동맹자들이 반혁명을 시도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게다가 리비아는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지 60년밖에 되지 않았다. 군사 개입을 주도할 미국은 1986년 수도 트리폴리를 폭격해 민간인 수백 명을 죽였다. 서방 강대국들은 20여 년 동안 경제 제재로 리비아에 가난을 강요했다.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우리가 지금 보다시피, 단지 카디피만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리비아 민중의 머리 위에서 서방의 폭격이 벌어지는 것을 뜻한다.

혁명 역량에 관해 말하자면, 민중 혁명의 힘은 단순히 군사력의 크기로 결정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제가 아무리 잔인해도 그 옹호자들은 결국 피억압 민중 안에서 반혁명 군대를 모집하는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혁명의 힘은 우리 편을 확고하게 단결시키고 구 체제에 묶여 있는 민중을 혁명의 편으로 끌어당겨, 저들을 약화시키고 우리 편을 강화시키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는 리비아의 진정한 혁명가들이 혁명의 사회적(계급적) 내용을 더 심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혁명이 더 많은 정치ㆍ사회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중동의 민중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대혁명에서도 러시아혁명에서도 구체제를 지지하는 제국주의의 군대는 혁명의 대의로 단결한 민중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이것은 혁명세력의 강령과 실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체제가 아니라 혁명에 가담하는 것이 진정한 이익과 해방을 얻을 수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베트남과 2006년 레바논에서도 압도적인 무장력을 갖춘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대는 각각 베트남 인민 게릴라와 레바논 헤즈볼라를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리비아 혁명세력은 군사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서방 강대국의 방해와 구체제 이탈 인사들의 존재 때문에 혁명을 더 심화시키거나 서방 개입에 일관되게 반대하지 못하는 듯하다. (비록 구체제 이탈 인사들의 존재는 혁명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폭격이 시작된 지금 리비아 혁명가들이 서방 개입에 무기력하게 대응한다면, 독재자도 싫어하지만 식민 지배 경험과 강대국들의 경제 봉쇄 때문에 제국주의도 혐오하는 민중을 자기 편으로 끌어 당기거나 단결시키지 못할 것이다.

리비아에서 온갖 “난제”를 해결할 혁명 전략은 서방의 군사 개입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혁명의 사회적 내용을 더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공개 포럼 안내]
○ 서방의 “인도주의적” 개입 ― 누구에게 이익인가? _24일(목) 7:30 대학로 한성대 에듀센터 807호

○ 서방 군사 개입은 왜 중동 혁명의 걸림돌인가? _24일(목) 7:30 강남역 8번출구 모임전문공간 모토 S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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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21> 24호가 새로 나온 지난 목요일 저녁 몇 분 독자들이 4면의 "노조법 개악의 주범 추미애는 중징계를 당해야 마땅하다"는 기사의 주장이 적절하냐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제목을 추미애 징계 요구로 뽑아야 했냐는 의견도 있었고, 민주당에게 추미애 징계를 요구하는 건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견의 강도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민주당 지도부나 추미애나 '초록은 동색'이라는 점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놈이 그놈'인데, 한쪽에 '징계권'을 주는 건 민주당 지도부가 노조법 개악 저지에 진지했던 것처럼 포장해 주는 건 아니냐는 거죠. 그날은 짧게 토론하다 보니 제 생각을 적절히 전달 못한 것 같습니다.

일단, 추미애 징계는 국회 차원의 징계와 민주당 차원의 징계 두 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등은 국회 차원의 징계도 정식으로 요구했죠. 환노위 진행을 독단적으로 했다는 겁니다. 국회 차원의 징계란 결국 의원들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민주당의 징계 수위에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결국, 민주당의 징계 문제가 핵심인데, 민주당 지도부는 분명히 노조법 개악 저지에 진지하지 않았습니다.[각주:1] 그래서 민주당 안에선 추미애 징계 논란이 차기 지도권을 둘러싼 다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에겐 분명히 다른 성격의 쟁점이라고 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동운동과 좌파의 추미애 징계 요구는 '추미애 노조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입니다. 

애초 추미애 징계 논란의 발단이 '개악 노조법날치기한 행위'입니다. 추미애는 직위를 이용해 복수노조의 자유로운 설립을 막고 노동조합에 전임자를 둘 권리를 사용자의 의사에 맡기는 개악 노조법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추미애 덕분에 한나라당은 매우 쉽게 개악 노조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추미애 중재안 - 지금은 통과돼 현행 법이 된 - 을 지지한 한국노총 지도부는 추미애 징계에 반대하며 민주당 지도부에 항의했습니다. 조선일보도 추미애를 편들었습니다. 마치 추미애가 민주당 무능 지도부의 책임전가 희생양인 것처럼 묘사하더군요.

반면, 개악 노조법에 반대하는 진보정당들과 민주노총은 추미애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주저하면서도 말로는 '중징계' 운운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민주당이 이제는 제일 큰 야당으로서 진보단체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는 국회에서 대리하는 모양새를 취해야 지지세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민주당 내부의 추미애 중징계론은 그 동력이 민주당 바깥에 있습니다.

가관이게도 추미애는 자신이 주도한 노조법이 지금 상황에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신장한 최선의 법안이었다고 '거리에서' 강변하고 있습니다. 친사용자 일간지인 <한국경제신문>은 전교조가 개악 노조법을 찬성한 듯 왜곡 보도했습니다.[각주:2] 민주당 안에서도 더 보수적인 의원들은 '소신'을 징계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맞불

그래서 추미애 중징계 요구로 개악 노조법이 내용과 형식 모두 잘못 됐고 반드시 개정 투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게 필요합니다. 추미애 중징계는 노조법 재개정 투쟁에 매우 상큼한 출발점이 될 겁니다. 민주노총과 왼쪽의 압력으로 추미애 징계를 요구해 관철되면 경고도 되고 우리 편 사기도 올라갈 겁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든 불리할 건 없습니다. 민주당이 추미애를 중징계 하면, 개악 노조법의 권위와 신뢰는 상처를 크게 받을 겁니다. 우리 운동에 해를 입힌 정치인이 군색한 처지가 되는 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징계를 어설프게 하면, 민주당의 정치적 신뢰도는 다시 추락할 겁니다. 반mb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본질을 자백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에 추미애 징계를 요구하는 건,이명박에게 김석기 파면을 요구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추미애 징계 공방의 초기에 제가 썼던 기사(추미애 징계 공방 - 민주당, 참 별 볼 일 없다)를 다시 봤습니다.  그때 추미애 중징계를 요구해야 한다고 봤지만, 나온 기사에는 그 표현들이 빠졌습니다. 양비론에 가깝습니다. 그때는 연말 국회도 일단락한 마당에 진보 쪽의 과도한 반mb연대 집착을 비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이틀 후 이 블로그 포스트('추미애 핑계로 민주당 면죄부 줄 수 없다' )에서도 비슷한 각도에서 다뤘죠. 다만, 추미애의 출당과 국회 징계를 요구하자고 했네요. 전 분명하게 추미애 징계를 요구해 개악 노조법을 찬성하며 추미애를 옹호하는 자들에게 맞불을 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24호에 새로 기사가 실린 것은 이 점이 충분하지 않아서일 겁니다. 그래서 예리한 토론들이 자주 있어야 합니다. <레프트21>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피드백해 주는 게 소중한 이유죠.
 
  1. 민주당의 최종 당론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와 전임자 임금 타임오프제를 수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블로그에서 '추미애 핑계로 민주당 면죄부 줄 수 없다' 글을 참조해 보십시오. [본문으로]
  2. 전교조는 특별법으로 교섭권을 제한하는 정부에게 일반 노조법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얄궂게도 법 개악으로 일반 노조법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전교조의 오랜 이 요구가 오해를 낳고 있습니다. 전체가 단결할 요구를 만들기 위해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재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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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4일에 올린 포스트(철도파업 중단 소동과 <레프트21> 평가 기사 유감)와 <레프트21> 인터넷판 독자편지(전면 파업을 하지 않아 문제였다는 주장은 과도하다, 12.10)에서 <레프트21>의 철도 파업 평가 기사(노조 지도부가 기회를 붙잡지 못하다)를 비판한 바 있습니다. (저에 대한 재반론은 "철도노조 지도부가 불필요한 타협과 후퇴로 패배를 자초했다는 평가는 옳다")

그때 제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철도 조합원들이 전면 파업을 할 자신감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명박은 철도 파업을 온 힘을 다해 탄압했다.
철도노조 지도부는 탄압에 정치투쟁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철도노조 지도부의 파업 중단은 잘못이다.
그래도 파업 중단과 전면 파업 회피(합법주의)는 패배를 자초한 배신이라 볼 순 없다.
철도 파업은 패배하지 않았고, 지도부가 재파업을 약속했으므로 재파업 가능성이 있다.
민주노총이 12월 중순부터 총력투쟁에 들어갈 것이므로 연대투쟁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돌아보면, 시간은 제가 틀렸다고 판정했습니다.

철도노조 탄압은 계속되고 있는데, 철도노조 지도부는 재파업의 'ㅈ'자도 'ㅍ'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찰에 자진 출두하며 꼬리를 내렸습니다. 민주노총의 총력투쟁도 흐지부지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전 투쟁을 회피한 철도노조 지도부를 순진하게 믿은 게 돼 버렸습니다. 그들의 소심하고 비겁한 행태를 옹호한 것입니다.

제 주장대로 하면, 조합원들이 전면 파업의 자신감도 없고 파업 철회를 나서서 비판하지 못했는데 재파업 동력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제 논리에 따라 보더라도 재파업 여부는 결국 철도노조 지도자들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노조 지도부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전망한 것입니다. 거대 노조 지도부들의 생리를 많이 경험한 제가 이렇게 큰 판단 실수를 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요?

돌이켜보면, 저는 철도 파업이 사실상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철도 파업은 간만에 노동 쪽 전선이 반MB 전선의 선두에 선 투쟁이었습니다. 비록 전면 파업은 아니었지만 꽤 파장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 상황에 비춰 투쟁의 강점과 약점을 골고루 살피며 평가와 전망을 하질 못하고 심정적 기대감에 치우치다 보니. 갑작스런 후퇴에 당황해 냉혹한 현실을 회피하는 식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실망스런 결과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우스꽝스럽게도 싸우다 도망가는 철도노조 지도부의 "다음에 보자"는 말을 '믿으려' 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를 들어, 더 깊숙이 취재하고 기대를 걸었던 쌍용차 투쟁은 결과가 실망스러웠지만 그렇게 엉터리로 평가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의 전개를 더 파고 들어가면서 전 사실 철도 파업과 이를 둘러싼 상황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전 처음부터 전면 파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명박 정부가 엄청난 탄압을 했습니다. 

총력을 다하는 투쟁이 아니면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총력을 다할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이 파업은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저쪽이 10의 힘으로 덤비는데 이쪽의 3이나 4 이상의 힘밖에 쓸 수 없고 그게 당연하다면 누굴 탓하고 말고 할 필요도 없는거죠. 애초에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제 글이 국가 탄압의 효과는 과장했고, 우리 편에게 유리한 조건들은 무시하다시피 한 것입니다.
사실 기층의 투쟁과 대중의 잠재력에 확신이 없고 국가권력과 대결하길 두려워하는 노조관료주의와 개혁주의의 사고방식이 이와 똑같습니다.

그리곤 저는 거기에서 전 한번 더 도약(안 좋은 쪽으로!) 했습니다. 이길 수는 없는데 패배를 인정하긴 싫으니 현실 직시를 거부합니다. 안 그래도 상황이 우리 쪽에 어렵다고 보는데 철도 파업마저 패배라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비관주의가 늘 좌절감만 드러내는 건 아닙니다. 종종 현실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감추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돌고돌아도 진취적 과제로 결론내길 회피한다는 점에서 결국 현실에 순응한다는 본질은 같습니다.

조합원들의 사기가 충분하지 않았더라도(당장은 전면 파업을 현실화 못 하더라도) 현실에선 투쟁과 연대를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며 정면 대결하느냐, 아니냐  둘 밖에 선택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파업 후엔 지도부의 후퇴에 저항하느냐, 마느냐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전술 모형'을 그려 놓고 제3의 선택이 가능했던(또는 가능한) 것처럼 말했습니다. 마치 우파 지도자들의 약점을 비판하지만 실천은 비슷하게 하는 노조관료주의 좌파 버전 같은 결론을 내린 거죠. 
도망가는 지도부의 재파업 약속을 믿었다기보다 '믿고 싶어 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우습게 됐습니다. 대한민국에선 초등학생도 "다음에 보자는 놈치고 무서운 놈 없다"는 걸 아는데, 말입니다. (물론 와신상담의 고사가 있긴 한데, 이 고사에서도 오왕 부차나 월왕 구천이 닥친 현실을 회피하면서 다음 기회를 노렸던 건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와 맞서는 운동들이 겉으로 지지부진한 것에 알게모르게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쌍용차 투쟁의 여진이 제게도 있었다고 봅니다. 물론, 상황을 비관적으로 본다고 꼭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는 건 아닙니다. 그에 맞게 과제를 내놓으면 될 일입니다.

예를 들어, 제3차 철도 파업의 가능성은 아직도 있습니다. 그러나 3차 파업에 가더라도 똑같은 문제에 다시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비관을 낙관으로 바꾸는 길은 단지 후퇴하는 지도자들의 뒤를 따라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런데 저는 '내 안의 비관주의'에 맞서 싸우지 않고 순응했습니다. 이미 12월 하순에 제 철도 파업 평가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려놓고도 즉시 글로 정리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돌아 보면, 단순히 전술 판단이 다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그리고 그건 부차적인 차이입니다)  짧게나마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잃었던 것이라 스스로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자존심 강한 저로선 <레프트21> 기자 명함을 달고 이랬으니 스스로 화가 나는,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짜 와신상담[臥薪嘗膽] 해야 겠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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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21>은 격주 신문입니다. 그래서 신문이 나오는 주는 정신이 없죠.

월요일과 화요일은 기자들이 기사 마감하고, 기자들이 쓴 기사와 각 칼럼 기고문, 독자편지, 외부 기고 글들을 교정·교열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수요일엔 마지막 교정·교열과 디자인 제작, 사진 찾기 등을 합니다. 거의 새벽까지 가는 작업이죠. 그러고 나면 목요일 오후에 인쇄된 신문이 나오고 우편 발송과 배포가 시작됩니다.

오늘 나온 <레프트21>20호는 비운의 호가 아닌가 합니다. 이번 호 <레프트21>은 애초에 철도 파업 지지 기사를 1면 헤드라인 기사로 정했습니다. 보충 기사가 3면에 실렸구요. (이 녀석은 세상 구경도 못해보고 폐지가 되는...)

관행대로 목요일 오후에 모든 기자들이 우편 발송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 옵니다. '철도 파업이 중단될 지도 모른다'는 소식입니다. '충격과 공포' 속에 일손을 멈추고 이리저리 아는 채널들을 동원해 확인한 결과, 최종 결정을 위한 회의 중이며 6시쯤 결과가 나온다는 겁니다.

결국 철도 파업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결정이 전해지고 기자들은 허탈감 속에서 새 판 작업을 시작합니다. 한상률게이트와 두바이 몰락을 1면을 대체할 기사를 정하고 논설 포함 철도노조 파업을 언급한 관련 기사들 모두 내용을 손 봐야 했습니다. 1면과 3면을 대체하는 기사들의 사진을 새로 찾습니다. 인쇄소가 정해준 시한에 겨우 맞춰 일을 끝냈습니다. 배송이 하루 늦었기 때문에 금요일(오늘) 오전까지 신문이 나와야 했으니까요.

결과는 수천 부의 신문이 그냥 쓰레기통으로 직행, 결과적으로 에너지 낭비, 돈 낭비 한 셈이 됐습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난 오늘 오전, '새 20호'의 우편 발송을 모두 마치고 신문에 큰 실수가 생긴 걸 발견합니다.

1면을 대체한 두바이 기사의 3면 나머지 기사에서 무려 여덟 단락이 반복된 것입니다. 한 기사 안에서 기사의 3분의 1가량이 중복된 것이죠.(좋은 글은 반복해 읽어도 좋긴 합니다) '새 20호' 너마저... 또다시 찾아온 충격과 공포. 모든 기자들이 큰 실수에 대해 낭패감과 독자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으로 오늘 남은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게 철도노조 파업은 왜 중단해서리... 하는 원망이 계속 든 게 사실입니다. 모든 게 철도 탓이다 하고 싶지만, 저희들의 실수를 누구에게 떠넘길 순 없잖아요. 

신문이 아깝기도 했지만 대통령이 탄압을 진두지휘하는 상황에서 8일간 버텨온 철도노조였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얻은 것 없이 후퇴한 건 잘못입니다. 저들이 우리를 죽이려 해서 파업한 건데, 저들이 양보 안 하니 파업을 중단한다는 것은 그냥 스스로 죽겠다는 것 아닙니까.


※ 이 글을 쓴 후 한 달 간의 사태 추이와 토론을 거쳐 스스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바뀐 내용은 엮인 글을 따라 가서 읽으시면 됩니다. 아래 내용은 개인 증거 차원에서 수정하진 않습니다. 더는 글쓴이 스스로 보증하지 않는 내용이므로 굳이 읽으실 필요 없기도 합니다. 위 내용만 해도 충분한 이야기 꺼리가 됐다고 봅니다. 참고하십시오.

험난한 운명을 겪은 20호 신문에 새로 실린 철도 파업 평가 기사는 신속한 평가 노력은 좋았으나 내용에선 문제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 기사는 철도노조가 처한 상황을 공정하게 바라보고 평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철도노조는 사측의 일방적인 단협 해지로 방어적 차원에서 파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파업 사흘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실상 파업 파괴를 진두지휘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합법 파업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불법으로 바뀌고 지도부 체포영장, 노조 사무실 압수수색, 손배 청구 협박, 무려 8백여 명의 직위 해제, 보수언론의 총공세 등이 숨가쁘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기사는 이런 사실들을 언급하면서도 철도노조 지도부에게 왜 유리한 정세에서 후퇴를 했냐고 다그칩니다. 객관적인 정치 상황이 노동운동에 유리한 건 사실이었지만, 철도노조 자체로는 지배계급 전체의 총공세를 받고 있었고, 한국노총 지도부의 배신으로 민주노총도 잠시 주춤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철도노조 자체로나 상급단체 차원에서도 연대 파업 등 철도노조를 엄호할 준비도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는데 불법을 감수하며 속전속결 전술을 사용하라는 것은 한 지인의 표현처럼 "철도노조 혼자서 이명박을 뛰어넘으라"는 주문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광폭한 탄압에도 처음으로 8일간이나 파업을 벌인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용기를 고무하고 지도부가 3차 파업을 선언한 마당에 다음 파업을 잘 준비하도록 독려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요. 전 이 점을 강조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판한다면, '(예상치 못했을) 강경한 탄압에 어떻게 맞서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까' 하는 관점에서 비판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협 해지라는 부문적 요구로 시작한 파업이 의도치 않게 정치 파업으로 '내몰린'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철도공사 사장 허준영의 탄압이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애초에 정치적 성격이 부분적으로 있었습니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 게 중요했습니다.

공기업 선진화 철회, 노조탄압정책 중단 등을 요구하면서 저들의 '정치파업' 협박에 진정한 정치파업으로 맞불을 놓는게 진짜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합니다. 투쟁의 요구가 진짜 '우리 모두'의 것이 될 때 연대투쟁을 호소하고 건설하기가 더 쉬웠겠죠.

하지만 노조 지도부는 단협해지 철회와 대화 재개에만 머물렀습니다. 이 점이 저는 지도부의 실책이라고 봅니다. 시야가 협소하니 탄압의 효과가 더 커보인 듯합니다. 합법 파업도 불법이라고 난도질 탄압을 하면서 마치 파업을 유도한 걸로 보일 정도로 몰아부치는데 불법 파업 전술을 사용하는 게 관건이라 보지 않습니다.

파업 중단 문제는 아쉽지만, 지방 지역 복귀율에 대한 엇갈린 의견들도 있고 하니 좀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듯합니다. 개인적으론 파업을 더 지속하면서 앞서 말한 전술을 구사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차피 상황은 재파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결정적 실책이라고 보긴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조합원들이 대체로 집행부 결정을 수용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국 집결 집회(사실상 총회)에서 진퇴 여부를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게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 번엔 제대로 준비해 연대 파업으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연대 건설에서도 양 노총 공공부문이 함께 한 집회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명박의 공세가 더 다급하게 이뤄진 것 같기도 합니다. 연대파업 일정을 왜 당길 수 없었는지는 더 알아봐야 겠습니다.

좀더 상황과 정서를 파악해 보고 <레프트21>에 기자가 아니라 애독자의 자세로 독자편지를 보내볼 생각입니다. 부족하고 단편적이지만 제 생각에 의견 있으신 분들은 주저없이 댓글 달아 주세요.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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