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노동자 연대> 169호 | 발행 2016-03-16 | 입력 2016-03-16
안철수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가 대립하면서 공생하는 이 구조를 깨지 않고는 … 국민 편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 정권교체의 희망도 찾을 수 없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사이의 ‘보수적 중도층’을 자신의 대권 도전 기반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최근 안철수가 더민주당의 야권 통합/연대 제안을 거절한 것은 정당 정치에 대한 철학이라기보다는 이런 ‘보수적 중도층’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더민주당을 “낡은 진보”라고 지칭한 것이다.
안철수는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표방했고, 국회의장 직권상정까지 동원한 박근혜의 테러방지법 통과 시도에 ‘여야 모두 문제다’ 하며 양비론을 펴 사실상 새누리당을 도왔다.
더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의 일부는 안철수의 탈당으로 더민주당이 ‘야성’을 강화할 거라 기대했음직도 하다. 실제로 안철수 탈당 직후 오히려 더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유지되지 못했다. 사실 표를 늘리려고 양 날개 전략을 펴 온 문재인도 무게중심은 오른쪽 날개 강화에 있었기 때문이다.(이른바 “싸가지없는 진보”론의 용도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 관련 글 보기)
문재인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훌륭한 인재라고 극찬했던 한미FTA 협상 책임자 김현종(최근 미국의 기업을 위해 한국 정부의 규제 도입을 막으려고 노력한 것이 폭로됨)을 비롯해 제주 강정마을 진압 책임자였던 전 인천경찰청장 윤종기, 삼성전자 경영진 출신 양향자 등을 총선 전략 공천 후보로 영입했다. 수권 정당의 면모를 보이겠다는 계산이다.
가장 상징적인 조처는 문재인이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전략적 야권연대 협의체에 합의하고는 바로 김종인을 영입해 전권을 맡긴 일이다. 김종인은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중용됐고,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공신의 일원인 보수적 인물이다.
김종인은 테러방지법을 막으려는 필리버스터를 “이념 전쟁”이라며 중단시켰고 다른 날도 아닌 삼일절에 “[위안부 협상은] 일단 국가 간 협상을 했기 때문에 고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거세게 반대한 윤종기 등을 전략 공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김종인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의식해 유가족 지지 차원에서 영입한 박주민 변호사에 대해서는 선거구를 뺑뺑이 돌리며 공천을 미루고 있다. 이런 푸대접에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SNS에 “결국 세월호 유가족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인가 … 왜 이렇게 항상 우리의 가슴에 비수만 꽂는가” 하는 분노의 말을 남겼다. 정청래 낙천도 보수층을 의식한 “정치적 참수”로 볼 수 있다.
(가령, 최근 양 노총이 주최한 각 당 노동 공약 비교 평가 토론회에서 더민주당은 최근 공격받는 노동기본권을 유지·방어·강화하는 것에는 공약이 하나도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토론회에서 국민의당은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
결국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보수적 중도층’을 새누리당에게서 빼앗아오는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행보는 2012년 대선 패배 후 민주당 지도부가 내린 결론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진보 정당과의 야권연대 때문에 “중원”, 즉 보수적 중도층을 새누리당에 빼앗겨 패했다고 평가했다.
정의당
한편, 정의당은 더민주당의 우클릭으로 야권연대가 난관에 봉착하자 반발하고 있다. 정의당은 일찌감치 더민주당, 국민의당과 연립정부를 목표로 한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해 왔다. 이제 정의당은 반새누리 야권연대가 사실상 무산된 책임이 더민주당에 있다고 비판하면서 독자 완주를 공언하고, 수도권에서 지역구 독자 출마도 더 늘리겠다고 했다.
정의당이 독자 완주하면서 더민주당을 분명하게 비판하고, 노동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들의 진보적 유권자층의 표를 결집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그 당의 선거 목표 성취에도 이로울 것이다.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서울 지역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당을 앞질러 12.8퍼센트로 치솟았다. 그동안 야당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집권 우파의 독주를 막는 데 너무 무능하고 물렁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민주당의 우클릭은 공식 정치 지형의 우경화를 재촉할 수 있다. 이는 새누리당과 우익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이런 상황은 계속되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국제적으로 전개되는 주류 정치 우경화 현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현재 경제·안보 위기 때문에, 한국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둔 친자본주의 정당으로서 더민주당이나 국민의당도 이 흐름에서 벗어날 순 없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이런 주류 정치의 우경화는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이나 우익 포퓰리즘 정당 지지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급진적인 방향, 즉 노동자 운동이나 사회운동의 성장, 사회운동으로 새로운 청년층의 유입, 좌파 개혁주의 정당의 성장 등을 불러 오기도 했다. 영국, 그리스, 스페인 등지에서 최근 좌파 개혁주의 정당들이 부상했다.
물론 정의당은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 아니라 주류 개혁주의 정당이다. 그래도 국제 운동의 경험을 일반화해 보면, 정의당의 좌파들이 고통 전가와 긴축 정책을 반대하고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자신들의 선거적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 독자·지지자 들의 후원으로 운영하는 노동자 정치 신문을 정기구독/후원 하세요!
정기구독하기 | 후원하기 (1천 원부터 가능)
'기사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주노총 전략선거구의 야권연대에 대해 (0) | 2016.03.24 |
---|---|
민주노총 전략 선거구, 후보 진용이 갖춰지다 (0) | 2016.03.18 |
[개정] 정의당 비례후보 투표 결과 ― 아쉬운 노동운동 홀대 (0) | 2016.03.18 |
정의당 비례 투표 결과 ― 아쉬운 노동운동 홀대 (0) | 2016.03.13 |
정의당 비례: 너무 온건한 후보가 뽑혀서는 안 된다 (0) | 2016.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