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노동자후원회 소식지 기고] 풀잎의 소리
4·11 총선을 돌아보며
박근혜의 어부지리, 사람들은 더 본질적인 심판을 바랐다
꼭 4년 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포함한 우파들은 국회 의석의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을 얻고 개선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적 세력 관계가 선거 결과와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 때문에 촛불항쟁이 터져 나왔다. 최고조일 때는 1백만 명이 거리에 나와 취임 석 달 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이 운동은 비록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이명박 4년 동안의 세력 균형의 기초를 놓았다. 야당이 1백 석도 안 되는데도 집권당은 거듭 힘겨운 날치기에 의존해야 했고, 그럴수록 사회적 분위기는 우파의 득세 대신 반우파·반신자유주의 정서가 ‘대세’가 됐다.
그럼에도 촛불운동 그 자체와 쌍용차 등 주요한 투쟁에서 승리를 못 거두고, 노동자 운동의 전진이 더디면서 급진적 분노는 투쟁의 폭발보다 선거 심판론으로 수렴돼 왔다. 그 결과,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2009년 재보선에도 졌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패배했다.
이 과정에 희망버스 운동이 승리했고, 한미FTA 반대 운동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정권의 통제력이 느슨해져,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문제로 다투다가 선관위 사이버 테러 사건이 폭로되고,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까지 드러나며 집권당은 진정 해체 위기에 몰렸다.
이명박의 불법 사찰 건마저 터진 선거에서 사람들은 4년 만에 우파가 지배한 의회를 끝내고, 집권당의 참패를 속 시원하게 축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박근혜당’의 국회 과반 확보였다.
우파들은 총선 이후 4년 전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주도면밀하게 우파 우위의 의회 세력 관계를 사회적 세력 관계에 반영하려고‘우파적 정치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우파들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도 정치·사회적으로 진보적 의제가 우위를 점했던 상황을 만회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박근혜가 어울리지도 않게 붉은 옷을 입고, ‘경제민주화’니 ‘복지국가’니 하는 녹음기 유세를 펼치고, 이명박이 ‘친서민’, ‘공정경제’, ‘재벌의 사회적 책임’ 같은 단어를 국정 목표로 제시해야 했던 굴욕적 수모를 이제는 뒤집어 보겠다는 것이다.
조중동 등은 민주통합당이 ‘좌클릭’하다가 중도층을 박근혜에게 빼앗겨 선거에 진 것이라고 우긴다. ‘김용민 막말’,‘김지윤 해적 기지 발언’ 등이 패인이란 주장도 강조한다. 문제된 두 사람은 4년 동안 반MB·반우파 투쟁 속에서 떠오른 인물이고, 문제 발언의 핵심 취지는 반제국주의 정서의 표현이었다.
우파들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둘을 문제 삼는 것은 바로 눈엣가시를 확실히 묻어 버리고 ‘안보’ 등의 우파적 의제로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 점에서 통합진보당을 ‘종북’ 좌파라고 공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한미FTA 반대 투쟁, 제주 해군기지 반대 등이 ‘종북’의 지표라고 말한다. 비열하고 역겨운 마녀사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김진표 등은 이런 평가와 중도층 강화론에 동조한다. 총선 후 민주통합당은 호전적 대북 결의안에 새누리당과 합의했고, 제주 해군기지, 영리병원 확대 문제에서 입을 다물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불법 사찰 문제에서도 별 대응이 없다.
민주통합당의 이런 행보에는 <한겨레> 류의 개혁 언론들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한겨레> 등은 “박근혜의 훌륭함은 중도층을 끌어들인 것”이라며 이런 우경화론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한겨레21> 기사가 인정하듯이 “김용민 막말 파문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은 30퍼센트 미만이고, 정권 심판론, 민간인 불법 사찰 등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은 그 두 배”였다. “부동층의 4분의 3 가량이 야권 성향인데 이런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지 못한 것”(서강대 서복경 교수)은 민주통합당의 약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진보적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고 새누리당과 뭐가 다른지 신뢰를 주지 못한 민주통합당의 정권심판론에서 진정성을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4년 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전국 정당 득표는 642만여 표였다. 여기에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의 득표를 더하면, 우파 3당의 정당 득표는 985만 표에 의석수 185석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정당 득표가 912만 표, 자유선진당을 더하면 981만 표, 157석이다. 충청권 지역구 약진도 절반은 자유선진당의 의석을 뺏어온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비관도 아니고, 정체도 불분명한 중도층 운운하며 ‘우클릭’하겠다는 민주통합당을 추수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중도화 전략은 우파적 의제를 강화해 우파의 주도권 회복에 이용될 뿐이다.
통합진보당은 역대 최대 성적을 거뒀다. 수도권에 교두보를 만들고, 호남 두 곳에선 민주당과 겨뤄 당선했다. 낙선한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도 통합진보당은 역대 최다 득표를 했다.
18대 총선과 비교하면, 북구에서는 투표자가 2만 5천여 명 늘었는데 김창현 후보는 이중 80퍼센트인 2만 표를, 동구에서는 1만 5천여 명 늘어난 투표수를 고스란히 이은주 후보의 득표로 흡수했다. 창원에서도 통합진보당 후보와 진보신당 후보의 득표를 더하면, 당선이 가능했다.
즉, 영남 진보벨트에서 통합진보당의 패배는 늘어난 득표수를 볼 때,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분열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진보신당 김한주 후보가 석패한 거제에서는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이 공동 유세를 하지 않았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집권 우파들은 여전히 위기를 겪고 있다. 박근혜는 ‘좌클릭’ 변장극과 색깔론, 지역주의 선동을 총동원하고서도 소선거구제의 도움을 받고서야 절반의 의석을 차지했다. 역설이게도 박근혜와 이명박의 잠재적 충돌 가능성은 더 커졌다.
이는 여전히 반우파·반신자유주의 정서가 더 강하고 진보적 의제가 사회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총선 이후 재개된 집권당 내부의 암투와 분열이 이명박과 박근혜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고, 광우병 분노가 다시 일고 있다. 한일병원 노동자는 승리했고, 아직 언론 파업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이런 정서를 담을 그릇이 아니라는 것도 드러났다.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가 아니었다면 민주통합당은 더 나쁜 성적을 거뒀을 것이다. 엔지오 지도자들과 한국노총을 끌어들였어도 자본가당의 본성을 바꿀 순 없다.
참여당과 통합하면서 노동 중심성과 진보 정체성이 후퇴했지만, 우경적인 한국 정치 지형과 색깔론 공격을 고려하면, 통합진보당의 약진은 '진보정치'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 준다.
우파는 이를 역전시킬 공세를 계속하고 싶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2008년처럼 선거 결과와 밑바닥 정서가 다르므로 이는 대중의 반우파 분노를 다시 자극할 것이다.
진보 진영은 선거 심판론에 지나치게 기댄 것이 약점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분간 우파들의 공세가 먹히느냐는, 특히 민주노총이 더 진보적이고 계급 투쟁적 방식으로 반우파 투쟁을 능동적으로 건설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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