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창이란 출판사에서 《열한 살의 한잘라》라는 만평(카툰) 모음집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는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나지 알 알리라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위대한’ 만평가다. 


한 컷짜리 흑백 카툰으로, 시대와 국제 질서를 꿰뚫는 통찰력과 땅을 잃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비통한 역사적 기억과 감정, 그리고 불굴의 저항의지를 두루 담아 표현한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의 작품 속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 뿐만 아니라 그들의 꼭두각시가 돼 팔레스타인 저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만 할 뿐인 [PLO를 포함한] 아랍 지배자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도 담겨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나지 알 알리는 1948년 ‘나크바’[각주:1] 때 팔레스타인 북부 갈릴리 지역에서 살던 열한 살 소년이었다. 나지 알 알리의 작품마다 등장하는 뒷짐진 소년 ‘열한 살의 한잘라[각주:2]’는 바로  작가 자신의 분신인 것이다.


재앙의 시간대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현실, 그리고 그 기억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저들이 우리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면, 저들의 시간도 더 앞으로 갈 수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지에 바탕해 그는 단순한 반서방 아랍 민족주의적 감성에 머물지 않고 아랍 세계 내부의 분열을 직시하며 무엇보다 단호한 아랍 민중의 단결과 저항을 부르짖은 작가였다.


이 이미지는 작품집에 포함된 것으로 블로그 http://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6Hl1#ajax_history_3 에서 빌려 왔다. 이 그림은 미국이 아랍 지배자들의 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쪽저쪽 적도 많았다는[각주:3]] 나지 알 알리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후 활동 공간이 된 쿠웨이트에서 추방된 후 안타깝게도 영국 런던에서 1987년 의문의 암살을 당했다.[각주:4] 인티파다를 촉구하며 기다려 왔던 그가 제1차 인티파다[각주:5]가 시작된 해에 죽고만 것이다.


‘열한 살의 한잘라’는 영원히 어른이 못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아끼는 많은 팔레스타인 인들이 ‘내가 한잘라’라고 한다니, 승리하는 한잘라, 드디어 인간의 시간을 돌려 나이 들어가는 현실의 한잘라들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사실, 2007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복사집 제본 형태의 아랍어로 된] 나지 알 알리 작품집을 산 적이 있다. 그해 나는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반전회의에 한국의 대규모 참가단 중 하나였다. 


그때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지 알 알리에 대해 잘 알았던 건 아니다. 다른 동지의 소개와 추천이 있었고, 이 작가의 만평엔 뒷짐 진 소년이  나온다, 아랍 쪽에서 매우 유명한 만평가다 하는 정도였다. 



작품 몇 컷으로도 느낌이 팍 오는 것도 있고, 아랍에 대한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침략과 개입 문제가 화두였던 국제반전회의 참가자로서 가장 걸맞는 지출이 아니겠냐는 생각으로 기꺼이 구입한 기억이 난다. (설사 소장용에 그칠지라도) 그걸 현지 동지들의 부스에서 사면서 연대감을 표시하는 건 덤이고 말이다.


내가 그 책을 보면서 느꼈던 건, 만평에게도 [심지어 언어 장벽을 넘어] 가슴 깊은 곳을 울릴 수 있는 힘이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내가 보기에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고, 팔레스타인과 아랍 민중의 속시원한 대변자이며, 불굴의 선동가다. 


그런데 이번에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망록의 [만화] 작가 조 사코의 서문을 달고서 나온 것이다. 추가 해설도 있으니, 배경 설명이나 일부 작품 속 짧은 단어 해석이 아쉬웠던 나로선 반가운 출판이다. 지인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 팔레스타인 현대사를 글로 다루는 책 중 최근 내가 읽은 것은 9월에 나온《나의 아버지는 자유의 전사였다》(램지 바루드, 산수야, 2012)다. 

생생하면서도 현대사를 개괄할 수 있는 이 책도 신간들 중에선 내 개인 추천도서다. 아랍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저항에 관해 관심 있는 분이라면 두 책을 함께 봐도 좋을 듯하다. 

《한잘라》의 서문을 쓴 조 사코의 만화들도 모두 좋다. 출간 시기를 더 길게 잡으면 더 많은 좋은 책들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인티파다》(책갈피)를 추천한다.






  1. 재앙이란 뜻의 아랍어라고 한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나크바는 1948년 이스라엘이 영국 등 서방 제국주의 진영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인들을 그 지역에서 쫓아내기 시작한 역사적 사건을 일컫는 고유명사다. [본문으로]
  2. 한잘라는 아랍어로 쓰라림, 고통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본문으로]
  3. 나지 알 알리의 카툰을 본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가 격노하여 "나지 알 알리가 대체 누구야? 이따위 카툰 그리는 걸 당장 멈추지 않으면 손가락을 산성 용액에 담가준다고 전해!"라고 소리쳤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4. 이스라엘의 소행인지, 아랍 쪽의 소행인지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다. [본문으로]
  5. 1987년 12월 가자지구 난민 캠프에서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살해된 것을 계기로 폭발한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 제2차 인티파다는 2000년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의 도발과 이스라엘 군대의 소년 살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1. 2011년 아랍 혁명의 의의
고전적 민중혁명의 귀환, 마르크스주의 혁명 전략의 현실성.

□ 노쇠한 자본주의의 장기불황 시대

 - 경제 위기와 정치 위기의 결합
 - 일국 위기와 국제 위기의 결합


□  지배계급의 본질
 - 제국주의든 자국의 독재자든 지배계급은 매우 잔인하고 교활하다는 점.
 -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새로운 대안권력 기구를 창출해야 한다는 점.
 - 부르주아민주주의 정치구조라는 완충지대가 없다는 점이 혁명의 속오를 오히려 높여.

□  고전적 민중혁명이 실현가능한 현실적인 사건임을 증명
 
- 민중의 자기조직화 능력: 평범한 사람들(노동자, 여성, 실업자)의 잠재력이 어마어마.
 
- 노동계급의 구실.
 
- 민중의 무장봉기.

□  국제적 위기가 혁명의 국제적 확산으로.
 
-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결합
 
- 정치혁명과 사회혁명
 
- 제국주의의 반혁명적 개입


2.   아랍 혁명의 성과

  ○ 세계자본주의 질서(제국주의)에 타격을 준 혁명.
  ○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와 고통전가 시도에 저항하는 혁명.
  ○
 부패한 아랍 독재 체제 아래서 누적된 정치적 불만이 독재자들 타도.

이 세 가지를 종합해야, 튀니지 혁명이 아랍 전역의 혁명으로 번진 것을 이해할 수 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와 연관성이 세계 지배자들을 또 두렵게 한다. 이것이 이 혁명의 또다른 국제적 성격이고, 국제적 확산의 또다른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또이 아랍혁명이 유럽의 노동자 투쟁과 상호작용을 하고, 올해 미국 위스콘신 점거, 스페인 점거 운동과 월가 점거 운동 등에 미친 영향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일국 혁명이 범아랍 혁명으로, 아랍혁명이 서구와 교류하는 혁명으로 발전한 계기.



□ 독재자 축출  표면적으로 보면, 평균 1인당 32년 집권의 독재자들이 쫓겨났다.

1월 15일 튀니지 벤 알리(23년) 퇴진

2월 11일 호스니 무바라크(30년) 퇴진

6월 5일 예멘의 살레 사우디로 도망

8월 23일 리비아 트리폴리 함락

10월 20일 카다피(42년) 사망

11월 23일 살레(33년) 권력이양 서명
 

이 독재자들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모두 장악한 지배자들. 비대한 억압기구로 일상적으로 사찰과 억압, 착취. 저항은 잔인한 탄압. 엄청난 부. 한마디로 정리하면 1천 미터 지하 암반수보다 더 뿌리 깊은 증오의 대상.

사우디, 바레인처럼 너무 억압이 심해 반란이 없을 법한 곳들에서도 시위와 파업 발생. 탄압하면서도 양보를 해야 하는 처지. 시리아와 레바논, 팔레스타인도.

시리아: 알아사드는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군경을 동원해 무참히 짓밟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희생자 수는 5천명을 넘어섰다. 가족 정권이라 정권 균열이 상대적으로 적음. 리비아와 유사. 시민의 저항은 점차 조직적으로 발전하는 양상. 노동자 파업으로 전이. 서방과 연계된 야권 세력이 시리아국가위원회(SNC)를, 정부 이탈 반군이 `시리아자유군'을 각각 결성. 시리아위원회는 망명자들 중심으로 서방과 연계를 맺으려 한다.

바레인: 3월 사우디아라비아 군대와 아랍에미리트(UAE) 경찰 동원 시위 진압. 시위 계속.

쿠웨이트: 시위로 최근 내각 총사퇴 의회 해산.
 

한편에서는 양보도 제공했다. 주로  정치적 완충 구조, 즉 불만을 체제 내부에서 흡수할 수 있는 정치 구조를 수립하는 것으로 대응.

이집트: 자유 선거(대선과 총선) 약속, 계엄 해제 약속 

사우디/UAE/카타르 등 걸프 지역의 군주제 국가들: 넉넉한 사회복지 혜택

사우디: 차기 지방선거에서 여성의 참정권 허용

카타르: 2013년 첫 총선 실시

UAE: 연방평의회 간접선거인단 대폭 확대
 


□ 제국주의 질서에 타격   

아랍 혁명은 미국의 세계패권과 그를 위한 중동 패권 질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중에서도 이집트가 가장 중요. 아랍혁명의 성패도 상당 부분 이집트 혁명에 달림. 가장 인구가 많고, 가장 산업화, 가장 강력한 군대. 1천 년 가까이 아랍세계의 중심 국가. 그래서 미국의 중동전략에서 핵심 지역 동맹은 이스라엘, 사우디, 이집트.

제국주의는 모든 곳에서 모두를 지배할 수 없다. 가장 전형적인 방식: 현지의 부패한 독재자들과 결탁하는 것. 불가피할 때 민주적 외양.

이집트 친미화는 이스라엘의 안전(이스라엘을 워치독으로 하는 미국의 전략)에도 타격.


1952년 자유장교단 쿠데타: 나세르는 애초 반미주의가 아니었으나 미국의 적대로 전향.

1956년 수에즈운하 국유화: 국가자본주의/아랍민족주의/아랍공화국/토지개혁/복지국가

1967년과 1970년 연달아 이스라엘에 패배

1974년 후계자 사다트가 국가자본주의 해체.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1981년 무바라크는 신자유주의/친미 노선으로 완전히 기울어. 토지개혁도 되돌려.


미국은 이집트를 동맹으로 해 아랍민족주의를 타락시키고 이스라엘의 군사적 안전을 보장하려 해. 이집트는 그 대가로 이스라엘을 제외한 나라 중 가장 많은 원조를 매년 수혜.

냉전 이후 패권전략 재조정. 이라크에 직접 친미 신자유주의 정권 수립 목표, 실패. 
이라크 침략 후 약화된 미국의 위상: 억눌려 온 반제국주의 정서의 표출.
무바라크 정권의 친미·신자유주의 정책에 불만.
친이스라엘 고수 어려움. 이스라엘의 무력 정책이 오히려 반감 키워. 최근 미-이 갈등.

 - 특히 경제 위기로 취약해진 배경에서 아랍 혁명 발발. 줄줄이 친미정권 무너짐.
 
- 미국, 시늉으로라도 혁명을 지지하게 해야 하는 옹색한 처지로.
 
- 이집트혁명은 이스라엘의 약화와 고립, 반미/반이 인티파다 가능성. 가자지구 개방.
 
- 미국과 서방은 혁명이 위기를 겪은 리비아에서 기회를 잡음. 시리아도 개입 기회 노림.

 


3.   이집트 혁명의 현재  

혁명의 미래? 혁명은 활쏘기나 사격, 육상 경기가 아니다. 
기성 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적대 계급 간에 권력과 사회 질서 재구성을 놓고 다투는 장. 그러므로 한 편의 의지만으로 혁명/반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혁명들이 어느 세력과 어떤 질서에 타격을 입혔는가를 봐야 한다. 그래야 그 작용과 반작용이 어떻게 이뤄질까를 전망할 수 있고, 우리의 미래와 과제를 예측하고 도출할 수 있다.

지정학상, 정치적, 전개상 가장 중요한 이집트혁명을 살펴 보며 혁명의 현재 상황을 따져 보자. 


□ 이집트혁명에서 세력간 비교


- 석유 판매 수익 커도 아랍 지역은 
부패한 독재로 빈부 격차 심화.

- 무바라크의 신자유주의 본격화: 민영화로 복지 후퇴, 청년실업률 40퍼센트, 인구 5분의 2가 극빈층.

- 2008년 경제 위기 후: 외환보유고 급감/식량가격 폭등
 

○ 군부

- 군부는 이집트 경제의 30퍼센트 지배.

- 혁명 초기, 혁명의 열기 때문에 이집트 지배계급, 특히 군부는 갈림길에 봉착.

첫째, 지배전략을 놓고 분열,

둘째, 사병이 혁명 열기에 동화. 진압 명령 내리면 군대 붕괴 위험.

- 미국 등과 협의 끝에 무라바크 버리기로 나머지 군부가 결정한 것.

그러나 사람만 제거하고, 체제는 남기는 것이 이들의 목적.

- 정치적 완충 구조 신설로 불만을 흡수하고 특권을 보존하려 함.

의회 선거 제도 개혁해 무슬림형제단 등이 완충세력으로 등장하도록 협상.

대통령 선거는 반격의 시간 벌려고 2012년으로 멀찍이 일정 잡음.

- 6월과 11월, 혁명세력의 강도를 측정하려고 도발 시도. 종단간 이간질.(콥트교도 공격)


○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주의 부상

- 1950년대 시작한 아랍민족주의의 실패가 역사적 배경.(좌파 무능, 인민전선, 탄압)

-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등의 모태.(이 조직들은 모두 아랍지역 무슬림형제단의 해당국 지부였음)

- 정치 활동과 함께 빈곤층 지원 사업 등 하면서 영향력을 키워 옴. 단원만 수십만 명.

- 종교단체인 만큼 다계급 구성. 민중혁명은 무슬림형제단이 공식으로 구상하는 집권이나 사회 개혁 프로그램과 거리가 멈.

-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혁명 중간에야 공식 지지. 그러나 노동계급 청년 단원들은 적극 초기부터 참여. 내분과 모순, 공식 기구에서는 혁명 지지파 숙청.

- 의회주의 체제 도입을 기대하며 그 정치 체제에서 정치적 완충물 구실: 지도부는자신이 집권하는 수준에서 혁명을 멈추고 군부와 타협하길 바람.

- 7월 이슬람 시위에 살라피주의자들이 선제 제안에 뒤늦게 참여.

- 10월 이후 1,2차 선거에서 연달아 1위 성적. 지도부는 군부와 타협 노선으로 기움.

- 자신들이 만든 정의발전당의 부대표를 기독교인으로 하는 등 군부와 미국(서방)에 79년 이란과 다르다는 걸 보여 주려 애씀.

- 미국과 군부가 계속 무슬림형제단을 파트너로 삼을지는 미지수.

※ 이밖에도 세속적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세력이 있음. 무바라크 타도와 선거 실시 합의 후에는 노동자 등 기층 혁명세력과 등돌림. 최근 좌파 마녀사냥에 가세.


○ 
 혁명세력

- 세속파 민주화운동세력/독립노조들/혁명좌파

- 200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 반전운동,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퇴적물, 2006년 이후 마할라 중심 노동자 조직화와 파업 운동 부활.

- 혁명 초기 이미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운동은 노조운동, 리비아 등과의 차이.

- 2월 이후 노동자들의 경제투쟁 활성화: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상호 영향.

- 민중의 자기조직화: 혁명수호민중위원회, 독립노조, 정당

- 민주주의 투쟁 중요: 대중 시위로 국가안보국 습격과 해체

- 2월 이후 임금과 노동조건 둘러싼 파업 물결

- 좌파 정당들 등장, 혁명 좌파와 독립노조운동이 함께 민주노동자당 결성

- 콥트교도와 무슬림, 좌파와 미조직 대중을 이간질하려는 공작에 잘 대처하고 있음

- 급진좌파들은 7월 기반만 새 헌법을 부결시키자는 운동했으나 역부족이었음.

- 혁명좌파는 선거에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으나 거리에서 영향력 커지며 성장

- 무바라크 개인만이 아니라 군부 자체를 타도해야 한다는 주장 영향력 커지고 있음.

- 11월 18일 시위는 군부의 반혁명 시험대였고, 광장 사수에 성공. 

- 거리 시위와 광장 점거를 주도하는 청년들과 노조운동의 결합이 관건 
 
 
서구식 자유주의 혁명? 쿠데타? 다 헛소리



4.    혁명은 어디로?


- 위기의 강도에 달려 있다: 판도라의 상자, 탄압만으로 억누를 수 없다. 
이집트도 선거 예정 등이 있기 때문. 다른 나라도 이런저런 양보를 함.

- 경제 위기와 생활 수준 향상 요구를 군부와 임시정부들은 해결할 수 있는가.

- 이슬람 개혁주의를 포용할 수 있는가.

- 이스라엘 등 전통적 반제국주의 정서에 부합하는 정책 펼 수 있나? 팔레스타인 독립 문제 해결 여부.

- 신자유주의 정책 전환 여부: 이집트 IMF에 돈 빌려 달라 요구. 군부는 미국에서 시위진압무기 대량 구입.

- 지배계급의 재구성: "청산" 과정, 얼마나 이행되느냐. 


□ 주관적 요건 
=> 혁명은 계속돼야 하고, 계속될 것.

앞서 언급한 요소들에서 아랍, 특히 이집트 지배자들이 혁명 대중의 요구를 들어줄 객관적 능력이 없음.
친미 부패 지배계급 청산 가능하지 않다.


- 노동자 투쟁의 전진에 달려 있다.(이집트와 시리아): 노조운동은 경제투쟁의 활력을 일반화하는 정치총파업 등 추진 필요. 독자정당 통해 무토지 농민을 혁명 지지로 할 수 있어야.

- 독립적 정치: 나쁜 예는 리비아, 시리아도 시험대. 독립적 정치는 군부의 종단간 이간질 시도와 좌파 마녀사냥에 맞설 수 있도록.

- 파업과 노조, 정당: 조직화

- 국제적 연대: 직접 연대, 더 중요한 것은 각국에서 투쟁을 전진시키는 것. 각국 투쟁의 확산은 제국의 개입 능력을 무력화함. 예) 베트남.
 


□ 우리에게 필요한 것

- 혁명적 낙관주의: 외양 속에 감춰진 본질 속에서 혁명의 현실성을 이해. 즉,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가 제기하는 인류에게 제기하는 과제는 체제의 혁명적 재구성이라는 사실.

- 노동계급의 중심성: 노동자들의 고유한 계급적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의 위력. 그것을 정치적으로 단일세력화하는 것의 중요성.

-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결합: 정치투쟁이 경제투쟁, 특히 노동자들의 부문 투쟁과 조직화를 고무하는 패턴, 경제투쟁이 정치투쟁의 저수지 구실을 하는 패턴, 둘의 결합으로 대중투쟁의 계급적 성격이 분명해지면서 운동의 계급적 분화와 대중의 계급적 각성과 행동이 고무되는 패턴을 이해하고 이것을 현실 운동에 적용하려 해야 함.

☞ 2008년 촛불 때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이라도 각지에서 번졌다면, 그러면서 촛불투쟁을 지지한다는 선언들이 조직됐다면 어땠을까. 직접적인 정치파업은 아니더라도 촛불항쟁의 성격과 위력을 한껏 고무했을 것.
 


※ 1월 25일을 이집트혁명 1주년으로 국제적 차원에서 기념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하순 공개토론회 두 군데서 이 주제로 발표한 내용의 발표용 메모를 기념으로 올립니다. 세부 진행 과정 묘사보다는 큰 그림에서 혁명 전반의 상황을 이해하고, 혁명의 의의와 성과, 전망을 검토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이집트 혁명에 승리를! ‘중동의 민중 반란’ 기사 모음(속보 포함)


△2월 2일 민주화시위대가 무바라크의 깡패로 부터 타흐리르 광장을 지키고 있다. ⓒ사진 출처 Nasser Nouri


이집트는 미국의 중동 지배 전략에서 지렛대 같은 나라입니다. 아랍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나라(주도 국가이자 강국)면서 32년 동안 미국-이스라엘과 혈맹 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아랍권 역대 최대의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에서 중동 지배가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그 중동 지배의 핵심 열쇠 가운데 하나인 이집트에서 일어난 민중 혁명이 승리한다면 그것이 가져올 세계의 변화 가능성은 어마어마합니다. 

이집트 민중의 혁명은 제국주의의 심장부를 타격하는 도전입니다.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곧 미국 중심의 국제 정치·경제 질서이므로 결국 세계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그리 손쉽게 무바라크를 無발악 상태로 팽개쳐두지 않을 겁니다.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말하는 ‘질서있는 전환’은 혁명 민중을 향한 ‘질서 있는 반격’을 뜻합니다.

이집트 혁명은 크게 봐서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해 터져 나왔다고 봅니다.

세계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경제 위기의 전이, 중동 지역의 억압적 정치 구조와 경제적 불평등이 쌓아온 민중의 절망과 분노. 이 둘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혁명은 엄청난 규모로 사람들을 고취하고 변화시켰기 때문에 이집트 혁명은 단기간의 정권 교체 문제를 넘어선 듯보입니다.

지난주부터 타흐리르 광장을 둘러싼 쟁탈전이 시작됐듯, 혁명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입니다.

허약하고 별 볼 일 없는 야당, 서방의 눈치를 보며 몸 사리는 무슬림형제단, 강한 탄압으로 아직은 세력이 작은 사회주의 혁명가들. 이런 취약한 주관적 조건에서도 혁명이 전진한 것은 민중의 폭발적인 자생성 덕분인 듯합니다.

그러나 저들이 시간을 벌며 질서 있는 반격을 추구할수록 이 혁명도 가장 전투적이고 가장 명확한 부위를 중심으로 혁명적 지도력을 창출하는 과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독재가 민중항쟁에 항복했는데도 군부 일당의 정권이 5년, 일당국가체제가 10년 유지됐으며 이른바 민주 야당이 집권해서는 신자유주의로 민중의 삶을 더 어렵게 했던 한국의 경험을 돌아보면 혁명의 진전은 혁명의 성공과 생존을 위해 정말 필수적인 것입니다. 여러 정치적 논쟁과 우여곡절을 통과할 것입니다.

민중을 혁명적 방향으로 단결시킬 지도력 구심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위대한 이집트 민중이 지금 해야 할 일인듯합니다. 무엇보다 혁명에 참여한 민중이 자신들의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으로 조직해 힘을 결집한 수단들을 만드는 게 급선무겠지요. 그래야 무바라크가 고용한 깡패와 경찰의 폭력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노동자평의회 만들기, 민중의 생존권 보장 등 생활상의 요구와 정치 요구를 결합하기, 노동자와 무토지 농민들이 투쟁으로 동맹하기, 군대 사병들에게 혁명에 가담하고 병사들의 혁명위원회를 만들라고 호소하기, 민중 스스로 무장하기 등의 조처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집트 혁명으로 제국을 거꾸러뜨리고 중동을 혁명의 봉화대로 바꾸길 바랍니다. 이 혁명은 세계경제와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평화적 정권 이양을 거부할수록 혁명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4년 전 걸었던 그 거리들이 지금 혁명의 거리가 돼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놀랍습니다.

이 혁명의 기운은 한국에서 MB라크(명바라크)와 싸우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연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오늘(68일)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가  한국에 온다

페레스는 깡패국가의 대통령답게 이번 팔레스타인 구호 선박 학살 사건[각주:1](☞ 관련 기사  /  /  / )이 “한국에 대한 북한의 도발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호전적인 주변 국가의 도발에 대해선 엄중히 대응하는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천안함 사태를 두고는 "명백한 군사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매일경제> 63일치)

이래서 이명박은 페레스를 좋아한다. 이명박은 이미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서도 페레스와 회담을 한 바 있다. 이명박은 올 2월 따분하기 짝이 없는 국정홍보 라디오 연설에서 페레스가 해 줬다는 말을 자랑스레 소개하기도 했다.

이 뿐인가.
이명박 정부는 이번 구호 선박 사건이 나자, 6월 1일 책임 소재 언급 없이 “깊은 유감”과 “심심한 애도”를 표하는 애매한 외교부 논평을 낸 뒤, 6월 2일 이스라엘 정부를 규탄하는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안 투표에서 기권했다[각주:2]

한국 정부는 지난해 연초에도 비슷한 사건을 두고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했다

그때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무차별 폭격해 민간인 수천 명을 죽였다.(☞ 관련 기사) 유엔인권이사회는 이를 규탄하고 이스라엘 군 철수와 폭격 중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두 번 다 결의안에 반대했다)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對 팔레스타인 정책(깡패국가의 짓)을 사실상 지지하는 몇 안 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다.

이스라엘과 군사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 정부는 이번 방한을 무기 수출을 늘리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군수업체 기업주들을 위해서다. 전경련은 이를 위해 6월 10일 삼성 소유의 신라호텔에서 페레스 일행과 비즈니스포럼을 열 계획이다.

<
예루살렘 포스트>(528일치)를 보면, 페레스와 함께 오는 이스라엘 기업인들은, 주로 벤처 기업인들로 구성됐다는 한국 쪽 보도와 달리, 주로 엘빗시스템스, 이스라엘 에어크래프트, 엘타 등 이스라엘의 주요 군수업체 경영자들이다.[각주:3]

페레스는 방한 전 한국의 훈련용 초음속 제트기인 “T-50”에 관심 있다고 밝혔다. 아니나다를까, 페레스의 방한 보도가 나간 뒤, T-50에 부품을 납품하는 방산기업 삼성테크윈과 퍼스텍의 주가가 급상승세를 탄다는 주식 보도가 나왔다

양국의 전쟁광들이 무기와 이권, 외교적 지지를 놓고 거래하려는 게 이번 페레스 방한의 진짜 모습이다. 한국 정부는 혹시나 페레스 방한 반대 시위가 벌어질까봐 벌써부터 경찰 경호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반면에
애초 페레스가 방한 뒤 가려던 베트남에선 정부가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방문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 정도만 봐도 우리가 페레스의 방한에 반대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Left21.com

 

 

ⓒ<레프트21> 33호 | 발행 2010-06-05 | 입력 2010-06-04

 이 글은 기사 원문을(http://www.left21.com/article/8213) 보충·변형한 것이다.

 

  1. 6월 5일에도 이스라엘은 아일랜드 국적의 구호 선박을 나포했다. 이번엔 천만다행이게도 인명 살상이 없었다. [본문으로]
  2. 한국은 부끄럽게도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이다. 이번 표결 관련 정보는 유엔인권이사회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ohchr.org/en/NewsEvents/Pages/DisplayNews.aspx?NewsID=10095&LangID=E) [본문으로]
  3. “The business delegation includes CEOs from companies such as Elbit Systems, ECI Telecom, Israel Aircraft Industries, Elta, RAD Data Communication, and Naan, among others.”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