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현 지도부는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에서 개혁주의의 우파적 한계를 그대로 보여 줬다. 8월 28일(수) 당일만 해도 이정미 명의의 논평은 신중론이긴 했으나, 기계적 양비론은 아니었다. 비판의 무게중심은 국정원 비판에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상무위원회에서 기조가 바뀌었다. 아마 하루종일 이석기 의원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도 여러 루트로 확인한 결과도] 녹취록의 존재가 사실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듯하다.
무엇보다 단순 국가보안법 사건이 아니라 ‘내란음모’ 건이니 최근 부쩍 ‘국가에 대한 책임’을 강조해 온 정의당 리더들은 진보당을 애매하게 방어하는 게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듯하다.
자칭 ‘신중한 태도’를 공식 방침으로 하더니 급기야 ‘헌법 밖 진보는 보호할 수 없다’(심상정)는 발언을 거쳐 결국 체포동의안 찬성까지 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진보당과의 경쟁심리 같은 것이 작용했을 수 있다. 진보당을 밀어내고 민주당과의 야권연대 제1파트너가 되겠다는 욕심 같은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부차적 요소로 본다.)
천호선, 이정미, 박원석 등 현 지도부들은 수사를 받아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치적’ 책임이라며, 자신들을 진보당에게 그걸 요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무소불위의 국가폭력을 휘두르려 하는 국정원에게 현역 의원이 끌려가는 것이 어떻게 “정치적 책임”인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심지어 이는 수사기관에 범죄의 입증 책임이 있다는 부르주아 근대 법 논리에조차 못 미치는 발상이다.
“헌법 밖의 진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그렇다. 4·19 혁명, 광주민중항쟁 등을 정부 주관 기념일로 정해 놓은 나라에서 진보정당 정치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황당하다.
물론 소수의 무장 음모와 다수 민중의 봉기는 다르다. 그러나 이런 민중항쟁을 통해 쟁취하려 했던 민주주의가 바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 없이 보장하는 것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기존의 헌정질서가 정당하냐 아니냐는 헌법에 대한 물신숭배가 아니라 정치적, 즉 민중의 의지를 실천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결국, 정의당 지도자들이 [아마 좌우 극단을 멀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확고히 기존 국가의 편에 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강요한 기준에 부합하는 사상만 허용하고, 기존 체제 바깥을 상상하고 전복하려는 사상에 자유가 없다면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 국가가 허용하는 사상에게만 자유를 준다는 것은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그러므로 심 원내대표의 말대로라면, 정의당의 개혁주의는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는 데서도 무능할 수밖에 없다. 헌정질서를 지키려 대북심리전을 했다는 국정원의 국내수사권을 결국 인정하게 되므로 국정원 개혁을 일관되게 요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한술 더 떠 체포동의안 가결 다음 날 “아직도 골방에 앉아 1980년대 사회변혁 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이런 후퇴를 정당화했다.
국가가 보기에 ‘정의롭지 않은 논리’는 골방에 모여 자신들끼리 한 토론마저 여론재판을 받고 비밀경찰과 사법기구의 단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이런 정의당 지도자들의 엘리트적 국가 사랑은 사회민주주의 최신 버전의 ‘국가 공동체’ 논리로 뒷받침되고 있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1987년 이후 형성된 ‘민주적 공동체’를 위협한 세력에게까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표상은 87년 민주적으로 개정된 헌법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근거해 이들은 진보당을 방어해야 한다는 논리가 공동체를 뒷전으로 놓는 ‘진영 논리’라고 하고 있다. 즉 진영 논리는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논리라는 것이다.
이 ‘공동체’ 논리는 사민주의의 ‘국가·국민주의’(국민vs계급)의 새 버전이다. 공동체를 위해 모두 책임져야 하니, 노동자도 증세해야 하고, 진보정당도 무조건 노동운동 편을 들 순 없으며,(안 그러면 진영 논리니까.) 헌법을 존중하는 틀 안에서 게임의 룰을 지켜가며 점진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공동체’ 논리는 틀린 이유는 이 사회가 근본에서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 따위는 없다. 이 사회를 뿌리부터 분열시키는 그 분단선이 바로 계급인 것이다. 이들의 공동체 논리야말로 반자본주의 노동운동을 배척하는 친자본주의 ‘진영 논리’에 불과하다.
이들은 현재, 새누리당의 제명안에는 반대하고 있다. 마녀사냥이라는 것이다. 마녀사냥을 국회로 불러들여놓고 마녀사냥 반대라니 우습지만, 그거라도 반대를 하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결국, 정의당 일부 지도자들의 모순된 논리는 지배계급이 정한 게임의 룰에서 벗어나 현 기득권 질서에 도전할 의사가 없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들린다. 이런 자세니 박근혜와 동맹을 할 수 있다느니, 노동자증세를 포함한 보편증세에 함께하겠다느니 하는 번짓수 없는 주장도 하게 되는 것 아니었을까.
그러나 국정원게이트에서 드러난 것은 우파 지배자들은 목적을 위해서 현행 법과 선거정치의 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정희 독재가 끔찍한 유신 독재로까지 연장된 것은 대통령 직선제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본격화하려는 반동의 진격을 막고 복지와 민주주의의 확대를 이루려면 노동계급의 대중투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투쟁을 위해서는 체제에 도전하는 사상과 표현, 결사의 자유가 필요하다.
저들이 법과 제도를 어길 각오를 하고 반동으로 가는데, 헌법 내 게임의 법칙을 준수하는 데 강박을 가진 진보로는 이런 것을 쟁취할 수가 없다. 신호등만 믿고 길을 건널 순 없다. 차들이 신호등에 맞춰 멈춰서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진정한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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