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선거 풍경
― 녹색당 서울시장 포스터가 아니라 ‘포스터 논란’에 대한 단상]
녹색당 서울시장 선거 포스터는 명백하게 소수를 타겟팅한 것 아니었나? 기성 진보정당 지지층 중 (그 당들이 충분히 페미니즘적이지 않다고 불만이거나 하는) 일부를 뺏어 오겠다는 선거전략으로 봤고, 그건 그 나름으로 채택할 수 있는 정책으로 본다. 어차피 (선전과 초기 지지층(종자돈) 형성이 목표이지) 당선이 목표인 선거가 아니니.
그렇다면, 그 타겟팅 바깥에 있는 인물들이나, 그 타겟팅에 불안이나 반감을 느낀 기존 진보정당 사람들의 불평도 자연스러운 것.
그런데 반응이 좀 의아하다. 이런 반응들은 포스터 뜯는 것과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알려진 숫자를 봐서는 무슨 서울시 전역에서 공격이 가해지는 그런 건 전혀 아니라고 본다. 구의원 한 선거구에서만도 그보다 많이 벽보 붙을 텐데.
그런데 워마드 같은 데서 홍대 사건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페미니즘의 대표를 참칭하는 시절에 ‘페미니스트’ 호칭에 대한 물정모르는 반감 같은 게 일부에서 서툴게 표출될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걸 대중적 백래시 취급하는 건 과하다. 번역서 한 권 나오니 아무거나 백래시 백래시 갖다 붙이는데, 현실을 살펴 보면, 부적절해 보인다.
백래시 론에 깔린 정치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1980년대 백래시 론은 적어도 계급세력균형과 공식정치의 지형이 모두 우경화하는 레이건 시대를 배경으로, ‘68 시대’가 전진시킨 여성해방 담론, 권리 등에 우경적 공격이 가해지고 역진이 일어나는 걸 가리켰다. 적어도 현실 분석에 기초해 있긴 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이 그런 정치 상황인가??? 우파는 찌그러져 있고, 페미니즘 또는 여성 권리 신장 운동은 고양되고 있다. 이미 1년 전에 문재인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보조 슬로건을 써서 당선했다.(문제는 그러고 약속을 안 지킨다는 거지만)
아쉬운 건, 노동계급 남녀의 단결된 운동으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여기엔 상호간 책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과 단결이 아니라 과장된 피해자성과 생물학적 환원론을 연결시켜서 자기 진지를 방어하려고 하는 정체성 정치의 방어적 급진성이 오늘의 정세에 정말 효과적인 방향인지 모르겠다.
내가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가장 불만이었던 것도, 현실의 과장 측면보다는 소설 안에서 여성도 남성도 단 한 명도 현실에 저항하는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었다. 작품은 일부러 다큐처럼 구성했는데 말이다. 공감은 시선의 방향과 첫걸음일 뿐이지, 문제 해결에 관해 무엇도 말해주는 건 없다.
지금 필요한 게 ‘함성’일지, ‘비명’일지는 각자 판단할 몫이겠지만, 현실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별개로 ‘비명(미러링도 일종의 비명이라고 본다)’의 방식이 여성해방이라는 목적을 향해 가는 길에서 적어도 효과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운동에서 협력을 추구할 줄 알면서도 치열하게 논쟁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82년생 김지영》의 출간년도(2016년)와 1982년생을 맞춰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경력단절 위기에 처한 자녀가 매우 어린 기혼 여성의 분노를 컨셉으로 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여성의 삶과 주변 환경들을 우리가 경험적으로 두루 살펴 보면, 이 소설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시기 여성들에게 가족 안팎에서 가해지는 유무형의 (실재하는) 압력이 어떤 개인들에게는 남성 결탁 음모처럼 여겨질 법하다.
물론 그런 판단이 정확한 건 아니다. 핵심에는 노동계급에게 육아 책임이 전가되는 문제가 있음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은 가지만, 여러 억울함과 차별을 ‘개개인의 피해자화’라는 정서적 방법보다는 좀 더 분석적 계급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더 유용하고 해방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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