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 단상
여성혐오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반감이 과장되게 표현되는 건 ‘백래시’ 때문이 아니라 높아진 자의식과 기대치에 사회 변화 속도가 부응하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본다.
이 밑바탕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한국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들도 사회(경제활동)에 진출하고 그에 따라 독립성이 고취된 현실이 있다고 본다.(부엌데기×)
다르게 표현하면, 여성 노동계급이 대거 형성되면서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것인데, 그 배경 하에서 고위층 성비도 조금 변화했다. 자본주의는 체제 안정을 위해서도 계급 사다리를 열어놔야 하는데, 그게 직장 안팎의 젠더 문제로도 확장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 전반에서 변화가 일어나긴 했다. 예전엔 진보와 보수의 경계선과 소위 여권(여성의 권익)에 대한 태도가 거의 일치하는 듯 보였는데, 지금은 인식의 개선 때문에 그렇게 동조화돼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박근혜가 꼴보수 노인층의 지지를 크게 받았던 걸 봐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익적 행태들을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행하거나 묵인하던 종류의 페미니즘이 최근 중동 출신의 난민들에게 쏟아붓는 인종차별적(우익적) 폭언(멸시와 천대)들을 봐도 알 수 있다.
(※ 추가: 그럼에도 정치적 진보·좌파와 조직 노동운동이 사회의 평균보다 더 여성의 권익에 친화적인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생물학적 여성을 중심에 놓은 분리주의(정체성정치)의 급진주의에 동조할 수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비록 그들 언행의 사회학적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공감의 지평은 넓힐 수 있어도 말이다.
평범한 다수 여성(노동계급이 대부분인)에게는 삶의 문제인 취업, 임금, 일자리, 낙태, 육아 등등이 중요하다. 이 문제들에서 진보를 이루려면, 일반으로 말해 성별을 가리지 말고 계급으로 단결해야 유리하다. 계급으로 단결하려면 국경 밖으로도 시야를 넓혀야 한다.
우리랑 비슷한 처지의 외국인들을 못사는 나라에서 온 난민 약자라고 우습게 보고 천대해 봐야, 계급적 편견만 강화돼 국내인들끼리의 관계에서는 여러모로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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