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로 드러난 문재인 정부 한 달대중의 개혁 염원에 못 미치다


부패 의혹 검증 때문에 정권 초 (인수위 과정이 없기에 더욱) 신속해야 할 내각 임명이 늦춰진다는 불평 때문에 문재인은 공약인 소위 5대 인사 원칙을 삭감해야 했다. 그럼에도 청와대 안보실 제1차장으로 내정됐던 김기정을 추문을 이유로 갑작스레 사퇴시켜야 했다.

강경화는 “공직자로서 판단이 매우 부족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딸을 이화여고에 진학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이 사실은 문제가 특권층의 부패 문제임을 보여 준다. 이화여고는 아마 고위층 자녀들을 유치해 학교 위상 등을 높이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의혹은 밝혀져야 한다.

△청문회에서 답변하는 강경화 ⓒ사진 제공 원명국

물론 부패로 말할 것 같으면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 새누리당 계승 정당들과 조중동 등 주류 언론이 딴지를 거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불과 한 달 전에 그들 중 다수는 돼지 발정제로 강간을 공모한 작자를 편들며 대통령으로 뽑자고 했던 자들이다. 그들 대부분이 바로 부패 때문에 집권 여당의 지위에서 강제로 쫓겨나거나 야반도주하듯이 도망나온 자들이다. 한때 “아우라가 1백 개의 형광등이 켜진 것 같다”며 박근혜에게 듣기에도 민망한 아부를 떨다가 그가 권력 투쟁에 밀리자 폭로 보도로 돌아선 것도 그들이다. 이런 자들이 “민주공화국”의 국회의원과 공공 언론이라고 하는 건 너무나 역겨운 일이다.

따라서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구 여권의 악취나는 위선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파의 방해가 이 정부의 알리바이가 될 수는 없다. 촛불 덕분에 집권한 정부가 가장 추진력이 있을 때인 정권 초에 촛불의 기대에 못 미치는 행태들을 슬금슬금 시작하는 것을 진보·좌파는 비판할 자격이 있다.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두드러진 노무현 정부 시즌2

문재인 정부의 초기 인사를 보면 정말로 노무현 정부 시즌2 냄새가 난다. 특히, 한국 지배자들의 위기감이 큰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그런 듯하다.

경제 분야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 정책의 얼개를 세우고 주도했던 관료들이 먼저 나서고 있다. 경제부총리, 청와대(총무비서관), 국무총리실(국무조정실장) 등은 노무현 정부에서 나란히 청와대 정책실장을 거친 박봉흠·변양균의 경제기획원 라인들이다.

외교·안보 라인도 그렇다. 외교부장관 후보자 강경화는 김대중·노무현 시절 외교부에서 중용됐고, 노무현 정부가 당시 외교부장관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선거 도전을 지원할 때, 외교부 간부로서 선거운동을 도왔다. 이후 반기문이 사무총장이 된 유엔으로 아예 자리를 옮겼다.

선택

유임된 외교부 제1차관 임성남, 새로 임명된 국방부 차관 서주석 등이 모두 노무현(과 문재인) 시절 청와대를 거쳤고, 서주석과 국민안전처 차관 류희인은 대통령 자문 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실무진이기도 했다.

이런 인사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안보 노선과 기조가 노무현 정부 때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즉, “자주”라는 포장지를 입힌 친제국주의, 복지와 친노동의 냄새는 피우지만 결국 기업주들을 위한 경제·노동 정책들 말이다. 노무현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 지원 파병, 연금 개악, 비정규직 확대를 고착화한 법 개악, 한미FTA 추진 등을 민족주의적 언사와 모호한 진보적 미사여구와 함께 추진했다.

특히, 한미FTA의 전격적 추진은 (지금은 문재인 정부 지지에 올인하는 듯한) 온건 진보파들도 정권에 등돌리고 격하게 저항하게 만든 일이었다. 한미FTA는 대미 종속 문제가 아니었다. 시장 경제의 확대를 통한 국내 산업과 일자리의 친기업적 구조조정을 위한 것이었다.

노무현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이런 선택을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화했다.(선택과 불가피성은 양립 불가능하다.) 그는 그때 심지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노무현은 대연정 제안을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충정”이라고 변명했으나, 그 ‘진정성’은 좌우의 모두에게 의심받았다. 노무현 정부가 지역주의 타파를 중시한 것은 여당의 재보선 참패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5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것은 배신당한 지지층의 실망과 환멸이 낳은 결과였다. 오히려 문재인이 2006년 부산에서 “노무현 정부는 부산 정권”이라고 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노동자·민중은 자신의 삶이 지역주의 때문에 악화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노무현은 정권 초 자신을 중심으로 한 여당을 만들려다가 첫해를 까 먹고는 또다시 집권 여당을 강화하려는 꼼수로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이번에는 더 큰 이반과 환멸에 직면했다.

이런 배신적인 선택의 결과로 자신감이 증대한 기업주들과 우파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더해 노무현의 배신이 낳은 정치적 환멸이 이명박 정부, 더 길게는 새누리당 정권 9년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민주당 표 “개혁”의 상한선

민주적으로 선출된 최초의 ‘흙수저’ 대통령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노무현 정부의 존재가 지배계급의 차선책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은 노무현과 민주당의 확고한 친자본주의적 성격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이 비록 지배계급의 전통적인 제1 선호 정당은 아니지만(그것은 단연 새누리당이었다), 제2 선호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누리당과의 차별화도 필요하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가이드라인 삼아 충실히 따르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것에 늘 그 스스로 큰 두려움을 느꼈다. 가령 노무현은 퇴임 직후인 2008년 이명박에 반대한 촛불운동에 정권 퇴진은 지나친 요구라며 자제를 호소했다.

이 점은 새누리당 정권을 중도 퇴진시킨 대중 운동 덕분에 운동의 후미 부위인 문재인과 민주당이 집권한 일과 관련해 꽤 시사적이다. 대중 운동의 뒷받침을 받아 집권했다는 사실은 정권 초기에 개혁 동력일 수도 있지만, 지배계급의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는 압력과 충돌한다. 바로 이런 모순 때문에 문재인의 행보도 결국 어떤 한계를 돌파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의 실체가 드러나는 안보 문제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에 관한 허위 보고 색출 소동은 결국 국방부 정책실장이던 중장 위승호를 육군으로 돌려보내는 미봉책으로 끝났다. 이것도 위에서 말한 문재인 정부의 ‘가이드라인’과 연결지어 볼 수 있다. 청와대 안보실장 정의용은 사드 배치 철회는 없을 것이라고 미국 정부에 약속했고, 우파가 반발하는 사드 배치 관련 환경영향평가도 이미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 2기와 레이더가 계속 가동되는 상태에서 진행된다. 사드 배치는 한국 지배자들이 안보 위기를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 돌파하겠다는 생각에서 강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파는 역사적으로 미국이 해 주던 구실을 중국이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니 이런 때일수록 미국이 한국을 핵심 동맹의 지위로 삼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박근혜가 탄핵돼 수감돼 있는 와중에도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가 진행됐던 것이다.

문재인의 “전략적 모호성” 발언 등은 지배계급 다수의 이해관계와 의도를 파악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강경화가 청문회에서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가간 합의는 지키는 것이 국제 사회의 관행이라는 말도 덧붙여 모호하게 답변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모순적인 문재인 ‘애국 통합론’을 그냥 받아들이면 노동운동에 족쇄가 될 수 있다 ⓒ사진 출처 청와대

애국으로 좌우 통합?

문재인은 진보든 보수든 모두 “애국”의 반열에 올려 한국의 “이념 갈등”, “증오와 대립”, “세대 갈등”을 끝내고 “애국으로, 대한민국을 통합[하자]”고 한다.

같은 날 오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정권 인수위 구실을 대신하는 기구)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 비전 키워드로 ‘정의’와 ‘통합’을 설정하고, 조만간 그에 맞는 5대 목표를 정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날카로운 갈등 속에 집권한 정부가 집권 초에 “국민 통합”을 강조한다. 새 정부를 중심으로 국가적·국민적 단결을 하자는 것인데, 사실상 새 정부를 전폭 지지해 달라는 뜻이다.

이는 정부의 초기 공약 집행에 힘을 실어 주기도 하지만, “국민의 지지”를 표방하기 때문에, 지지층의 지지를 받은 정책을 일방으로 실행해선 안 된다는 자기제한성도 함축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처럼 강력한 대중 운동의 (썩 흡족하지 않은) 결과물로 등장한 정부의 ‘통합’론은 개혁(적폐 청산)이 그다지 날을 세우지 않을 것임을 구 여권에게 안심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럼에도 정권의 정당성 문제 때문에 적폐 청산과 정의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통합론은 과거 박근혜가 대선과 정권 초에 내세운 “1백 퍼센트 국민 대통합”과 다르다. 박근혜는 반대자들의 입을 틀어막고서 자기 정부 뜻대로 하는 걸 “국민 대통합”이라고 우겼다. 그래서 주류 언론을 장악해 비판 목소리가 안 나오게 하고 민주적 권리를 무시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반발을 억눌렀다. “1백 퍼센트 통합”은 권위주의적 사고의 발로였다. 당시 유행한 “1 vs. 99” 담론에 대항해 우파가 반박으로 내놓은 슬로건이었던 셈이다.

“1 vs. 99” 슬로건은 미국 뉴욕 등지에서 벌어진 광장 점거 운동에서 유행해 한국에서도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사회가 부와 권력에서 1퍼센트 특권층과 99퍼센트 민중으로 구분돼 있다며 이런 불평등에 맞선 투쟁을 호소했다. “1 vs. 99”는 포퓰리즘(피억압 민중의 계급 동맹)적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계급 특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서도 “1 vs. 99” 구호는 거듭 인용됐다. 퇴진 운동에 참가한 대중이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에 크게 분노해 있다는 징표였다.

촛불 계승 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은 이런 불만을 어느 정도 정치의 기조에 반영해야 한다. 박근혜는 정권 반대파를 “반(反) 대한민국 세력”으로 취급했다. 문재인은 민주화 운동, 노동자들 모두 “애국자”라고 포용하자고 한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다]”고도 한다. 박근혜식 통치가 오히려 국민 분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이런 (포퓰리즘적) 언행은 ‘국가 발전(경제·안보 등 국가적 위기의 극복)을 위한 계급 화해’라는 통치 기조의 일단을 보여 준다. 박근혜의 대결적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방식으로 화해하자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 형식을 통해 노동계급에게 고통 분담(사실은 고통 전담)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포용의 형식을 띤 배제의 협박이다.

이는 친민주당계 지식인들이 특권층의 범주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까지 포함시키는 식으로 “정의”와 “불평등”을 말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 대표격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장하성이다. 사실상 조직 노동계급이 임금 등의 조건을 양보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문재인의 계급 통합이 실제로 성공할 것 같지 않다. 담론 상으로도 그렇다. 한국전쟁의 “호국 용사”들의 행위가 애국이면, 그들에게 짓밟힌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애국이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첫 선거였던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한 제주 4·3 항쟁의 정당성은 어떻게 인정될 수 있을까? 백남기 농민을 살인 진압한 경찰의 “애국”과 박근혜를 몰아내 나라를 바로잡자고 생각한 사람들의 “애국”은 공존할 수 있을까? 경제 위기 고통 분담을 명분으로 내세운 사회적 합의 강요를 노동자들이 거부하면 그것은 “비애국”일까?

‘국민 통합’은 “계급 화해”를 강요한다. 그러나 이병철과 전태일을 하나로 묶는 “국민”은 부와 권력의 불평등 때문에 일상적으로 분열해 있다. 적대적 계급 관계는 잠시 봉합되거나 폭력으로 그 갈등이 억제될 순 있어도 영구 화해하거나 통합될 수 없다. 그러니 계급 화해는 봉합과 억제를 일시적으로 뜻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서구의 복지국가 체제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장기 호황이 끝나고 1970년대 중엽 이후 위기로 가면서 지속적으로 해체와 공격의 대상이 돼 왔다. 바로 그런 시스템을 만든 한 당사자인 정부와 기업주들, 공식 정치를 지배하는 정당들에 의해서 말이다.)

실용주의자들에게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박근혜와 문재인 모두 “애국 vs 비애국”을 포용과 배제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애국”은 평범한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국가와 체제에 ‘희생으로’ 충성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선 수백만 노동계급 대중이 바란 적폐 청산은 지배계급의 기득권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사실상 (약간일지라도) 계급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국민 통합”(“계급 화해”)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다. 자신의 계급 기반에 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무현 정부가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하고 참여(케 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뿐 아니라 파업권을 제약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두 정부에게는 지배계급을 위한 산업(노사관계) 평화와 ‘팍스아메리카나’라는 목적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중에게 적폐 청산은 새누리당을 선거에서 심판하는 것(그 당과 대립하는 당에 투표하는 것) 이상의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의’와 ‘통합’은 퇴진 운동에서 분출된 박근혜 정권 청산(“적폐 청산”) 염원에 미칠 수가 없다. 아무리 촛불 혁명 계승 정부, 6월 항쟁 계승 세력을 자처하며 자신들을 포장해도 그 과제는 일관되게 구현될 수 없는 것이다.


맑시즘2017: 17년 전통의 국내 최대 마르크스주의 포럼 / 7월 20일(목) ~ 23일(일) / 장소: 서울 / 주최: 노동자연대

독자·지지자들의 후원으로 운영하는 노동자 정치 신문

1,000원 후원 정기구독전국 곳곳 거리와 대학에서 <노동자 연대>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문재인 정부의 개혁 ‘선물’을 기다리지 말자


5월 23일 아침 박근혜가 수갑을 차고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는 장면을 보고 진정한 개혁과 진보를 염원하는 많은 이들이 통쾌해 했을 것이다.

△마침내 수갑 차고 재판에 나온 박근혜. ⓒ사진 노동자연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현 정부는 민중이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려 구속시킨 결과로 등장한 정부인 것이다. 이는 문재인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민중의 자신감과 열망은 그에게 부담스런 압력이기도 하고, 잘만 수렴하면 공식 정치 내 경쟁자들을 제압할 동력일 수도 있다. 이 둘 사이에서 문재인은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은 일단 취임 2주 만에 세월호 참사 재조사, 국정교과서 폐지, 4대강 사업 정책감사 등을 지시했다. 또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를 맡았던 윤석열을 서울지검장으로 기용하고,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추가로 밝히고 왜곡을 차단하겠다고 하고, 아예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는 개헌을 하겠다고 했다. 새누리당 정권 9년의 적폐를 청산한다는 기치로 대중의 열기를 정권의 동력으로 수렴하려는 것이다.


이런 조처들 덕분에 문재인의 초기 국정수행 지지율은 80퍼센트가 넘어 역대 정권 중 상위권에 속한다.(1987년 이후 취임 초 지지율이 가장 낮은 건 당연히 박근혜였다.)


그런데 높은 기대치는 정권 초기에 민중이 다양한 개혁 요구들을 저마다 내놓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참가자의 다수가 미조직 노동자들이었고, 운동을 이끈 주요한 축이 노동운동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개혁은 경제·안보 위기에 처한 한국 자본주의를 더 효율적으로 재편하고, 박근혜가 대내외적으로 떨어뜨린 국가적 위신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가령 윤석열의 서울지검장 기용은 박근혜 게이트 수사와 재판 때문인데, 이 문제는 지배자들의 위신과 관련 있을 뿐 아니라, 정권의 입지와 더 관계 있다.


계급 문제

노동계급에게 박근혜 적폐 청산은 그 이상을 뜻한다. 그런데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철회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마자, 문재인 청와대는 그럴 계획을 “한 번도 논의하거나 구체적으로 협의한 바 없다”고 즉각 부인했다. 국무총리 내정자인 이낙연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나 법학자이기도 한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노동부의 행정처분만 취소하면 될 일이므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다.


노조 인정은 대단한 개혁도 아니고 소위 ‘시민권 회복’에 관한 것이다. 전교조는 가장 먼저 박근혜 퇴진 요구를 하고서 해직 등 징계 위협에 맞서 싸워 왔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박근혜 촛불의 알맹이인데, 새 정부 아래서 단순한 기본권 회복이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선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언급했던 문재인이 일본에 특사로 보낸 문희상은 위안부 합의 해결의 “제3의 길”을 언급했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민주당의 10대 공약에서는 ‘재협상’이라고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홍석현 등을 통해 한미동맹을 기본 기조로 천명한 이상, 일본과의 선린 관계에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미동맹의 연장선이 동북아의 한미일 동맹이기 때문이다.


불법적 노조 탄압을 자행한 사측의 대리인을 한 박형철을 반(反)부패 비서관으로 임명한 것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와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적폐 청산’(부패 척결 또는 사회 정의)의 정치·사회적 의미가 다른 것이다.


최근 문재인 지지자들이 노동운동과 그와 연계된 좌파들에게 신경질적 공격을 퍼붓는 것은 이런 문재인 개혁의 (본질적) 성격 문제가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대중의 합격점에 도달하도록 노력하기보다는 합격선을 낮춰 버리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개혁을 대하는 태도는 개혁의 양적 차이나 시간에 대한 인내심 문제가 아니라, 목표와 지향의 차이 문제다. 그리고 계급 문제인 것이다.

△노동자들은 개혁을 기다리지 말고 자신의 요구를 내세우고 힘을 발휘해 행동해야 한다. ⓒ사진 조승진


한국 자본주의의 효율적 개혁

5월 21일 발표된 경제·외교 인사도 문재인 개혁의 성격을 보여 주는 듯하다. 문재인 지지자들의 〈한겨레〉 비판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인사의 약점을 거론하는 주류 언론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장관이자 경제 부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동연이 아무리 ‘흙수저’ 출신이라 해도 그가 한 행적들을 노동계급 운동이 마냥 환영할 수는 없다.


그가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의 지휘 아래 참여한 ‘비전 2030’ 문서는 개방형 선진통상국가를 지향하며 선제적 FTA 체결을 핵심 과제의 하나로 설정했다. 그 결과는 약화될 대로 약화된 노무현 정부의 남은 지지층마저 등돌리게 만든 한미FTA 추진이었다. ‘비전 2030’은 한미FTA 추진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셈이다.


대화와 토론을 중시했다는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를 전격적으로 추진했고, 그에 대한 저항에는 물대포로 답했다. 나중에 문재인은 자서전에서 그때 등용한 김현종을 참여정부가 발탁한 고급 인재라고 칭찬했다.


이 ‘비전2030’ 문서의 50대 핵심 과제에는 노무현 정부의 국민연금 개악, 박근혜 정부가 실행한 공무원연금 개악 계획도 담겨 있다. 이는 이 문서를 주도한 ‘변양균 라인’의 관료들이 전통적으로 국가 예산을 다뤄 온 이른바 ‘경제기획원’ 출신인 점과 관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라인의 주요 관료들이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와 경제 부처 요직에 배치된 것이다(경제부총리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홍남기, 대통령 비서실 총무비서관 이정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장하성의 소액주주 운동도 결국 기업 경영이 주주들의 이익에 맞춰지고 감시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 20년 동안 주주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력 감축 구조조정을 당해 온 노동자들에게는 뭐가 개혁인지 모를 인사로 썩 반기기 힘든 것이다. 그는 고려대 경영대 학장 시절에 성적이 낮은 학생들의 등록금을 두 배 올려야 한다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결국 학생들의 항의로 말을 거둬들였다.)


비겁한 거짓말, ‘친노 왕따론’

그동안 민주당과 유시민, 문재인 등 친노 정치인들은 우파의 압력뿐 아니라 진보·좌파와 노동운동의 투쟁도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스스로 자초했다. 노무현 정부에 좌우의 압력이 동시에 작용했던 그 때에, 노무현 정부는 의식적으로 우파와 기업주들과 한편이 되기로 선택했다.


가령 2004년 노무현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의해 국회에서 탄핵됐을 때, 탄핵 반대 여론은 노무현의 지지율보다 훨씬 높았다. 〈노동자 연대〉 같은 급진 좌파도 탄핵을 우파의 반동 공세로 보아 탄핵에 단호히 반대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이 실패하자, 더 분명히 우경화했다. 그해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추가 파병을 강행하고, 공공부문 노사관계 개악안을 마련했으며, 비정규직 관련 법 개악, 평택 미군기지 합의 등을 준비하거나 실행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노무현은 2005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고, 2006년 한미FTA 추진, 국민연금 개악, 비정규직 개악 입법 등을 끝내 추진했다. 바로 이런 노무현 자신의 선택 때문에 대선자금 차떼기 수사와 탄핵 역풍으로 찌그러졌던 우파가 사기와 지지를 회복한 것이다.


즉, 좌파가 우파와 함께 노무현 정부를 왕따시킨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가 기업주·우파와 손잡고 노동계급 대중을 공격한 것이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지지층이 정권에 등을 돌리고 그 중 일부가 저항에 나선 것이다. 또한 같은 이유로 다수가 2007년 대선에서 투표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환멸로 2007년 대선은 1987년 이후 대선 투표율이 가장 낮은 해였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법 개악으로 대량 해고 위협에 처해 저항에 나선 이랜드 노동자들 ⓒ사진 노동자 연대

노무현 정부의 의식적 선택으로 자신감이 오른 우파와 기업주들은 정부에 더 많은 우경화를 재촉했다. 노무현 정부가 이에 타협할수록 지지자의 이반과 왼쪽에서의 반감은 더 강경해졌다. 오죽하면, 이명박 집권 초기 ‘노명박’이라는 평가까지 나왔겠는가.(이런 강경함은 이명박의 우익적 정책에 맞서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세력, 자유주의 야당이 연합해야 한다는 포퓰리즘 전략(전략적 “야권연대”)이 유행하면서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과거를 반복할까 봐 하는 걱정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최근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기사다.(“‘새 시대의 첫차’가 출발했다”, 505호, 5월 18일)


그는 이 기사에서 우파의 “적폐 청산이냐, 국민 통합이냐” 하는 “가짜 질문”에 넘어가면 안 된다면서 “합의 기반이 넓은 이슈를 다루는 전장에서는, 과감한 공세가 통합을 오히려 촉진한다”고 정부에 조언한다. 그러면서 “반대로 사회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이슈도 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 문제 … 조세 개혁, 복지 자원 배분, 연금 개혁 등도 속성이 비슷하다”며 이런 쟁점에서 “적폐 청산하듯 밀어붙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 쟁점들의 개혁은 뒤로 미룰 것을 조언한다. 이 쟁점들을 섣불리 건들면, 우파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가 다다르는 논리적인 결론은,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좌파와 노동운동도 이런 문제를 초기에 제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지지 세력이 정권 초부터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같은 전통적인 친민주당 언론까지 겨냥해 비판하는 것은 이 친민주당 포퓰리스트 언론들이 좌파와 노동운동에게도 가끔 우호적으로 지면을 할애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진보진영 일부가 반새누리 연합정치의 향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반면, 영악한 친노 정치인들과 그 지지자들은 재빠르게 정권 방어 태세로 전환한 셈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난처함을 겪을 수 있는 쟁점들에서 선제적으로 비판을 차단하는 공세를 벌이는 것이다.


누구보다 박근혜 퇴진을 바랐을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경북 성주 주민들이 홍준표 지지율이 지역에서 50퍼센트 넘게 나왔다는 이유로 대선 직후 비난을 받은 것이나, 민주노총과 정의당, 노동계급 중심성을 표방한 좌파들이 비난의 초점이 된 것은 시사적이다.


그러나 대체로 인기가 높은 정권 초기에 개혁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그나마 진정한 개혁은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대중은 경험으로 안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의 “기다리라”는 말은 개혁의 지체가 아니라 대중의 기대와 다른 종류의 개혁 추진임이 곧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노동자들 스스로 개혁을 쟁취해야 한다

“촛불 혁명”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정부가 추진하는 진정한 방향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는데도 진보정치 지도자들 일부가 마치 ‘정신적 여당’이나 된 듯이 덕담 행렬에 동참하는 것은 안타깝다. 정의당의 노회찬 원내대표나 추혜선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행태와 인사에 칭송 일변도로 계속 논평하는 것은 특히 우려스럽다.


물론 노동자들이 지금 당장 행동할 태세는 아닌 듯하다. 끔찍한 9년이 이제 막 끝났고, 부수적이지만 퇴진 운동의 결과물로 탄생한 정권이니 지금 당장은 기다려 보자는 생각이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인식하는 것과, 문재인 정부가 잘 하고 있으니 기다려 보자며 요구를 삭감하고 행동을 자제시키는 것은 다르다. 후자의 주장들은 노동계급 스스로 자기 요구를 위해 행동하며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일을 지체시키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진정한 개혁을 얻을 수 없다. 최근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자회사 고용 방안이 ‘정규직화’라고 불리는 것은 명백한 후퇴다. 이런 유순한 태도는, 기껏해야 노동운동의 목표 달성 실패로 끝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의 사회적 대타협주의의 재현으로 발전할 공산이 크다.


좌파는 영국 노동당 개혁주의의 1백 년 역사를 돌아보고 내린 영국 사회주의자 고(故) 토니 클리프의 다음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

아래로부터 쟁취한 개혁은 계급 조직을 강화하고, 그리하여 미래의 진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위에서 선사한 개혁은 수동성을 부추기고, 노동자들을 체제 내로 포섭시키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억제할 수 있다.”



맑시즘2017: 17년 전통의 국내 최대 마르크스주의 포럼 / 7월 20일(목) ~ 23일(일) / 장소: 서울 / 주최: 노동자연대

독자·지지자들의 후원으로 운영하는 노동자 정치 신문

1,000원 후원 정기구독전국 곳곳 거리와 대학에서 <노동자 연대>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문재인 정부를 옹호하는 변호론들


문재인의 초기 조처들은 전혀 흡족하지 않다. 이 점에서, 정의당이나 노동당이 문재인 정부의 일부 개혁 조처들을 지지하는 듯한 대변인 논평은 내놓은 것은 유감스럽다.

“문재인은 취임 초기부터 … 속 시원한 개혁 추진을 보여주고 있다”(‘문재인 정부에서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의 역할’ 〈미디어 오늘〉 5월 15일치)는 주장도 피상적이기 짝이 없다. 이 기사의 필자인 전지윤은 “[좌파가]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착각하지 마라. 이것은 기뻐할 일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옳지도 현명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좌파의 반응을 앞질러 비판한다. 그조차 반가운 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한다는 이유로, 그런 처지를 악용해 기만하는 조처들을 환영하라고 말하는 게 좌파가 할 일인가? 이런 훈계는 비정규직에 공감하는 면보다는 오히려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아첨하는 것으로 들린다.

실제로 전지윤은 이렇게 주장한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 연말 여론조사에서 촛불 참가자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었고, … [촛불] 대열 속에서 수많은 민주당 깃발과 지지자들을 볼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문재인의 당선과 그의 개혁을 촛불의 연속으로 치장하려 한다. 그러나 현실을 왜곡해 가며 아부하기보다는 현실을 정직하게 보고 말하기를 택해야 한다.

촛불 초기에 민주당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기는커녕 박근혜와의 뒷거래를 계속 시도했고, 국회 탄핵 추진 선언 뒤에도 좌고우면했다. 그래서 광장에서 민주당은 별 인기가 없었다. 박근혜 지지율이 추락하며 차기 정권의 대안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올랐을 때도 문재인 지지율은 따라 오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야당 구실을 제대로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퇴진 염원에도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광화문광장에만 1백90만 명이 모인 12월 3일, 곳곳의 자유발언에서 중고등학생들조차 민주당을 규탄했고, 큰 환호를 받았다. 이때만 해도 민주당은 촛불집회에 와도 청계천에서 집회를 하고 광화문광장 복판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12월 하순경, 국회 탄핵과 철도 파업 중단 등으로 민주당의 헤게모니가 부분 회복되고 촛불의 기세가 초기보다 누그러지면서 문재인의 지지율이 1위로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권 교체가 촛불의 (부차적) 성과이기도 하지만, 문재인 당선을 촛불 염원의 온전한 구현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유다. 민주당은 당시에 지배계급 다수의 여론이 박근혜를 포기하기를 기다린 것이고, 그 대체재로 자기가 부상하도록 태도를 조율한 것이다.(그러므로 그의 내각은 어정쩡한 협치 내각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런 현실을 보지 않는 것은 전지윤이 기회주의적으로 온건 개혁파 다수에게 아첨하려 하기 때문이다.

적반하장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 덕분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개혁(적폐 청산) 염원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오히려 친문(친노) 인사들이 더 잘 아는 듯하다. 유시민은 대선 직전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정의당 평당원이기는 하지만, 범진보 정부의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당내 지도적 정치인의 이런 발언에 정의당 내부에서 징계 요구가 나오기는커녕 비판조차 눈에 안 띄는 게 유감이다.)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 때 대중의 경험을 왜곡해 어용 지식인론을 정당화했다. “[선거 때] 편들어 줬던 여러 세력들이 … 10개의 사안에서 9개를 지지하더라도 1개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 있으면 다 때린다 … 그 악몽이 또 되풀이 되면 거의 99% 망한다 … 참여정부에 있을 때, 또 여당에 있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은 …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는 지식인·언론인이 너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마치 진보·좌파와 노동운동의 무리한 비판 때문에 부당하게 곤경에 처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등장해 유시민·문재인 등이 자신들의 저서 등에서 반복한 주장이다. 좌파와 노동운동의 정부 비판과 행동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개발된 적반하장 논리다.

노무현 정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도 최근 자기 저서에서, 마치 노무현이 모종의 좌우 합작으로 왕따를 당했다는 듯이 얘기한다. 그러나 그 근거를 그의 책에서 찾기는 힘들다. 노무현 비판이 나쁘고 노무현은 억울하다는 억지만 반복할 뿐이다. 가령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악법 입법에 대한 비판에 조기숙은 이렇게 대꾸한다. “참여정부에서 통과시킨 건 ‘비정규직법’이 아니라 ‘비정규직보호법’[이다!]”

그 법으로 고통받은 노동자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단 말인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이다.

이런 변호론자들의 결론은 문재인이 왕따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보위하자는 것이다. 앞뒤 안 가리고 일체의 비판으로부터 문재인 정부를 옹호하는 것이 노무현이 강조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의 임무라는 것이다. 앞서 지적한 전지윤이 아첨하고자 하는 대상은 이런 세력일 텐데, 아마도 그가 일체의 비판적 언급을 포기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친노 인사들의 억지와 달리, 노무현 정부가 집권 초에 겪은 곤경과 불안정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초기만 살펴보겠다.

탄핵 역풍으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여당이 됐지만, 고(故) 김선일 씨 참사는 총선 후 지지층의 부푼 개혁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진 <노동자 연대>

노무현 정부가 처음 곤경을 겪은 것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 때문이었다. 한나라당과 우파는 현대그룹의 비자금 일부가 북한으로 간 것을 찾아내어, 이를 김대중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보낸 돈이라며 주장하고 특검을 요구했다. 남북 화해 기조에 흠집을 내고 여권 내 분열을 노린 것이다.

신당 창당에 몰입하던 노무현이 이 요구를 수용해, 취임 직후 3월에 대북송금 특검을 실시하면서 당시 여권 내부가 첨예한 갈등에 빠졌다. 이 특검으로 권노갑과 박지원 등 DJ계 실세들이 구속됐다. 또한 김대중의 업적이 훼손된 것 때문에 전통적 야권 지지층에도 균열이 생겼다. 이 갈등은 결국 그 해 말, 노무현을 지지한 여권 내 신주류가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만들고, 잔류 민주당이 이듬해 초 한나라당과 함께 노무현 탄핵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노무현이 추진한 대북송금 특검을 옹호하는 친노 인사들은 진보 언론들이 너무 결벽적이어서 오히려 개혁 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들고 궁지로 내몬다고 비판하는 것이 자가당착임을 알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아래로부터의 무리한 요구나 반발이 아니라 정국 주도권을 두고 여권 내 권력 투쟁을 벌이다가 시작부터 일이 꼬여 버린 것이다. 이 갈등은 지금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대결로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 열린우리당으로 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았던 이낙연을 문재인이 총리로 지명한 것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조처로 보인다.

지지층과의 충돌도 노무현 정부가 먼저 자초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전쟁 개시 당일(3월 20일)에 지지하고 파병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비판적이고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한 노무현을 지지하던 많은 청년 지지자들이 실망한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당시 파병 반대 집회를 주도한 진보 단체들은 노무현을 규탄하기보다는, 장외 반대 집회가 노무현 정부의 파병 거부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주장을 많이 폈다. 노무현이 미국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병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파병 반대 운동 연합체에서는 노무현 비판이나 퇴진 구호를 하지 말라는 압력이 컸다. 그러니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진보·좌파가 노무현 정부를 초기부터 무리하게 비판하고 궁지에 몰았다는 것은 진실과 다른 얘기다.

노무현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전북 부안군에 핵폐기장을 설치하려고 저지른 폭력도 충격이었다. 핵 폐기장에 반대하는 주민 여론을 무시하고 민주당 소속 군수가 정부 방침에 따라 핵 폐기장 유치를 신청했다. 마치 성주군의 사드 배치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시위를 벌이자, 인구 2만 5천 명의 부안읍에 전경 8천 명을 투입해 준계엄 상태를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도 모자라 부안의 저항을 핑계로 ‘폭력 시위’를 막을 집시법 개악을 주문해 한나라당과의 공조로 통과시켰다. 핵심 내용은 소음 규제 등 경찰의 집회 개입 권한을 늘린 것이었다. 여권 분열로 여당이 국회에서 더 소수로 전락하던 때였다. 임기 첫해 의석이 소수라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것이 핑계임을 보여 준 사례이자, 형식적인 민주적 권리를 늘리는 것에조차 진지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 사례였다.

추가 파병도 이어졌다. 예를 들어, 이듬해인 2004년 탄핵 역풍으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고 지지층을 다시 결속시킨 듯한 때에도 노무현은 또다시 파병으로 지지층을 분노케 했다.

당시 청년 김선일 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게 납치되는 일이 생겼다. 납치 단체는 한국군 철수를 공개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김선일 씨를 처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협상을 시도하기는커녕 파병 철회는 “테러에 굴복하는 것”이라며 철군을 거부하고 오히려 추가 파병 방침을 확정 발표해 결국 김선일 씨가 죽도록 만들었다. 당시 김선일 씨의 무사 귀환과 한국군 철군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는 평일 저녁에도 수천 명이 모였다.

거듭된 뒤통수치기

노동운동은 어땠을까? 2003년 상반기에 꽤 인상적인 투쟁을 벌인 노동자들은 화물연대, 조흥은행, 철도 노동자들이었다. 각각 노동자성 인정과 처우 개선, 구조조정을 동반한 강제 합병 반대, 철도 민영화 반대 등을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 자체는 방어적 성격이었고 고용 등 생존권 문제에 가까운 요구였다.

노무현 정부는 5월 화물연대 파업의 요구를 들어 줬다. 문재인은 자서전에서 그때 정부가 양보했는데도 노동자들이 2차 파업에 나선 것은 심한 처사였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정부의 양보로 화물 노동자들이 파업을 끝냈는데, 정부가 뒤통수를 치고 약속을 번복했다는 것이 진실이다. 오히려 탄압이 집중됐고 화물연대의 2차 파업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미리 대비한 정부는 혹독한 탄압으로 답했다. 화물연대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바람과 다르게 파업을 일방으로 철회해 버렸다.

정부는 5월 조흥은행 파업에도 양보했지만, 파업이 끝난 이후 노조 집행부를 집중 탄압했고, 결국 합의안과 달리 조흥은행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후퇴되는 식으로 은행이 합병돼 버렸다.

철도노조의 6월 파업 때도 정부는 노동자들이 집결한 연세대에 대규모 경찰 병력을 투입했다. 강제 해산을 당했지만, 직장에 복귀하기는 거부하고 있던 철도노조 조합원들에게 복귀를 명령한 건 노조 지도부였다. 수천 명이 징계를 받았고, 정부는 노조에 손배 가압류를 걸었다.

2003년 상반기 투쟁들이 정부의 배신과 탄압 속에서 사그라지면서, 분위기가 돌변했다. 기대가 컸던 탓에 배신감도 커서 노무현 정부의 1년차 하반기는 노동자들의 자살 정국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항의의 형식으로 (분신) 자살을 택하는 것은 절망의 표현이다. 가령 박근혜 당선 직후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이 안타깝게도 그런 사례다. 당시 한 노동자는 이명박 5년도 힘들었는데, 또다시 박근혜 5년을 버틸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배부른 노동자들이 이기적으로 정부를 곤혹스럽게 해서 개혁 동력을 약화시켰다는 것은 천인공노할 왜곡이다.

2003년 10월 노무현 개인과 연계가 컸던 한진중공업노조의 김주익 지회장은 파업 중 정부가 보인 태도와 사측의 손배 가압류에 절망해 자결했다. 이를 보며 괴로워한 같은 작업장의 곽재규 조합원도 투신 자살했다. 그 하루 뒤에는 근로복지공단의 비정규직 이용석 조합원이 서울 종묘공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대회를 앞두고 분신 자살했다. 세 명의 죽음이 모두 10월 한 달에 일어났다. 그리고 11월 17일 세원테크의 이해남 조합원도 정부와 사측의 탄압에 절망해 분신 자살했다.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과 곽재규 조합원 ⓒ임수현

당시 노무현은 “이제는 죽음으로 싸우는 시기는 끝났다”며 냉소했다. 오히려 “노동귀족론”을 꺼내 들어 노동운동을 이간질하고 정규직 노조를 고립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용석 열사에 이어 2004년 2월에도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박일수 열사가 자살했다.

학생들의 개인 정보를 빼돌리려 한 네이스 계획에 반대한 전교조의 투쟁도 정당했다. 다 막아 내진 못했지만, 연가 투쟁까지 불사한 투쟁으로 정부의 계획을 약화시켰다. 친노 인사들은 정보 인권을 지키려 했던 이 운동도 비난한다.

역대 가장 민주적인 정부라던 노무현 정부가 기본권인 파업권을 인정하지 않고, 학생들의 정보 인권을 무시한 것에 반대한 것이, 배부른 노동자들이 이기적으로 정부를 괴롭힌 일인가?

지속 불가능

선거 때는 “반미면 어떠냐?”,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던 노무현 정부가 정권의 안정을 위해 지배계급 주류와 손을 잡고 자본주의 국가의 수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려고 취한 조처들이야말로 환멸과 분노를 낳았다. 노무현 정부 때 구속된 노동자들은 1천 명이 넘는다. 김영삼이나 김대중 정부 때보다 많은 수치다.

그러나 당시 조직 노동운동 상층 지도자들은 노조 운동과 오래 연계를 맺었던 노무현 정부에 기대를 갖고 사회적 합의로 친노동 개혁을 얻어 내려고 했는데, 그런 헛수고가 현장 노동자들의 전투성을 희석시켰다.

이런 온건함과 소심함 때문에 투쟁을 건설할 시간을 놓쳐 2004년부터 추진된 비정규직법 개악을 사실상 막지 못했다. 그 개악으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이 양산됐고, 그것이 2007년 7월 이랜드·뉴코아 파업의 배경이 됐다.

썩어빠진 박근혜 정부를 퇴진시키고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에 견줘 당장에는 유리한 면이 많다. 당연한 일만 실행해도 개혁적 조처로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상징적 제스처만으로 감격해 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노무현 정부 첫해의 경험은 개혁을 표방하는 민주당 정부가 결코 노동자의 벗이 아님을 보여 줬다. 언론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라고 광고하면서, 정작 비정규직 당사자들에게는 기업 부담 운운하며 기다리라거나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것에서 이미 그 조짐을 볼 수 있다.

정권 초기에 친노 인사들뿐 아니라, 착시 효과로 인한 정부의 초기 인기에 편승해 노동자, 청년들의 절실한 요구를 삭감하는 쪽으로 유도하려는 기회주의적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좌파는 이에 대항해 대중의 개혁 염원을 진정으로 대변하며 계급 정치를 굳건히 추구해야 한다.



맑시즘2017: 17년 전통의 국내 최대 마르크스주의 포럼 / 7월 20일(목) ~ 23일(일) / 장소: 서울 / 주최: 노동자연대

독자·지지자들의 후원으로 운영하는 노동자 정치 신문

1,000원 후원 정기구독전국 곳곳 거리와 대학에서 <노동자 연대>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안철수의 정치쇄신안은 우리와 80퍼센트 같다. 이 염원을 받아 안는 게 우리의 도리다.”


이것은 문재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말이다. 안철수 사퇴 전까지 “무면허 정치인”, “호객꾼”, “기회주의자” [심지어 마르크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등 막말을 퍼붓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민주당이 흘리게 한 안철수의 눈물을 우리가 닦아줘야 한다’며 안철수 지지층을 조금이라도 더 흡수하려고 책략을 부리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뜻대로 안 되더라도 두 지지층 사이를 이간질시켜 문재인에게 가는 표를 줄이면 보수 지지층 결집으로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총선과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포함한 주요 우파 정당이 얻은 득표 합계는 엇비슷하다. 그런데도 2008년에 우파가 얻은 의석수가 30석가량 많은 것은 반우파층의 투표율과 결집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는 한동안 지지층 확장성의 한계와 이명박 레임덕의 여파로 위기를 겪었다. 

이 때문에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보수대연합’ 색채가 두드러졌다. 어차피 반우파 정서의 벽을 확인했으니 확실한 우파 결집 후 반우파층의 투표율 낮추기 책략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반우파 정서가 막강하고 검·경 갈등 등 레임덕 등 위기의 요소들은 여전하다. 다만, 보수층 다지기에 열중하는 동안, 문재인과 안철수가 감동과 비전 없는 단일화 과정 때문에 기회를 못 살려 숨돌릴 틈을 얻은 것이다. 


이회창, 나경원이 몰려 들고, 박근혜에게 ‘칠푼이’라고 막말하던 김영삼마저 지지 선언을 준비한다고 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에게 국민대통합은 없고, 보수대연합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숨돌린 박근혜가 안철수 지지층을 노리고 위장막을 쳐도, 그것이 두드러지기보다는 우파 본색이 더 짙어지고 있다. 


사람들 속이려고 내놓은 유신피해자보상법이 딱 그렇다. ‘보상’은 적법한 행위 때문에 생긴 불기피한 피해에 대해 쓰는 용어다. 국가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피해는 ‘배상’이 맞다. 여전히 박근혜는 유신의 정당성을 신봉하고 있다는 뜻이다.


재벌 중심의 성장론과 색깔론 안보 공세 같은 전통적 우파 의제들도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다. 투표율 낮추기를 위한 무차별 네거티브 폭로전과 ‘종북’ 마녀사냥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캠프 총괄 지휘자인 김무성은 2008년 촛불항쟁을 두고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죠. 촛불을 보며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공개해 국민을 실망시켰다”고까지 말했다. 


박근혜의 새누리당은 최근 국회에서 투표시간 연장법안을 무산시키더니 제주해군기지 예산안도 국방위원회에서 날치기했다. 지난 번엔 면담 요구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끌어내더니, 어제는 반값등록금 요구하는 학생들을 전원 연행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중요하다더니, 박근혜 정권의 ‘미래’를 화끈하게 미리 보여 준 셈이다. 


그래놓고 박근혜는 지금 문재인을 ‘실패한 노무현 정권의 실세’라는 식으로 비난한다. “비정규직이 그때 양산됐고. 등록금이 폭등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문제들은 문재인의 약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지층의 개혁 염원을 배신했다.


문제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이런 비판을 할 자격이 있냐는 것이다. 유신잔당들이 할 소리는 아닌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망스런 노동법 개악마저도 너무 ‘친노동’이라며 더한 개악을 주문했던 자들이 바로 오늘의 새누리당이었고, 박근혜는 바로 그 당의 대표였다. 


23명이 억울하게 죽어갔는데도, 쌍용차 국정조사조차 못 하겠다는 것이 박근혜의 ‘민생정치’고,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를 모른 체하는 것이 새누리당의 ‘법치주의’다.


박근혜가 민생법안이라고 내놓은 ‘사내하도급법’을 두고 노동자들은 ‘정몽구법’이라고 부른다. 이 법안대로면, “과거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몰래 관리해 왔지만 이 법이 통과되면 합법적으로 하청 노동자들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권두섭 변호사) 현대차 8천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무효화되는 것이다.


박근혜는 “최저임금이 5천 원도 안 되냐”며 무지를 드러냈는데, 올해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법안을 한사코 거부한 것이 새누리당이다. 


영남대의료원지부는 박근혜가 사실상 소유주인 영남대재단 소속인데, 이 노조에 대한 노조 파괴 탄압이 시작된 것은 1989년 재단 비리로 쫓겨났던 박근혜 일당이 재단 복귀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 2006년부터다. 박근혜 복귀를 위해 눈엣가시인 노조부터 파괴하려 했던 것이다. 육영재단 이사장 때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결혼 후 퇴사를 강요한 바 있다.


박근혜의 법과 원칙은 우파와 기업주를 위해 노동자를 때려잡는 것이고, 박근혜의 소통은 불법 사찰과 탄압 따위를 위해 정부의 억압기구와 기업주가 연계하는 것일 뿐이다. 오죽하면, 한국노총조차도 2007년과 달리 지지하는 곳이 거의 없겠는가.


철두철미하게 ‘유신스타일’을 고수하는 반노동 우파 박근혜의 집권에 노동대중이 우려하는 이유는 이처럼 명백하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여기저기 전문가들이 정리하는 한미FTA 독소조항들을 잘 읽어 보면 이 조항들은 직접적인 교역조건인 관세 완화 등과는 거리가 멉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한미FTA가 없애자는 무역 장벽은 비관세장벽으로, 그것은 한 사회가 공공의 복리를 위해 기업 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주거 안정을 위해 토지 소유를 규제할 권리(국가의 의무), 건강 증진을 위해 사보험을 규제하며 전국민 의료서비스를 확대할 권리(의무), 주요 공공서비스를 공기업화해 저렴하게 공급할 권리(의무) 등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저들은 공공복리를 위한 기업 규제를 ‘비관세 무역장벽’이라 부르는 겁니다. 즉, 돈벌이에 방해되는 장애물로 본다는 거죠. 

래칫(역진방지) 조항, 투자자-국가 제소권, 공공서비스 사유화, 서비스산업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 비위반 제소, 간접 수용에 의한 손실 보상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한미FTA의 진정한 몸통입니다.

평범한 다수 대중의 삶을 위한 복지와 일자리, 환경 등의 사회·경제 정의를 위한 사회 개혁을 가로막고 오히려 이를 거꾸로 후퇴시키는 것이 FTA의 본질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FTA는 친기업·친부자의 반노동·반복지·반민주 협정입니다. (구체적이고 쉬운 사례 설명은 민주노동당이 작성했다는 아래 박스 글을참조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한국의 대기업주들은 이명박 정부가 자동차 관세 등에서 후퇴했는데도 쌍수를 들어 환영한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에 FTA 체결을 로비한 삼성이 노리는 바도 이것입니다. 외부 충격을 빌어 국내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완성하려는 것입니다. 공기업 사유화, 각종 기업 규제 완화, 비정규직 일자리 창출, 이것은 한국의 기업들이 사회 지배와 돈벌이를 위해 오래도록 추구해 온 목표입니다. 

예를 들어, 가장 큰 변화가 오는 산업은 서비스산업일 텐데, 삼성 등은 이미 의료(바이오) 산업이나 금융(보험)산업이 차세대 돈벌이 사업이라며 투자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와 공기업 민영화, 비위반 제소, 간접 수용에 의한 손실 등은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후퇴, 병원 영리화, 공공서비스의 사기업화와 비용 인상 등에 이용됩니다. 

미국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나쁘다?)를 맺은 캐나다에선 정부의 우체국서비스가 택배기업의 이익을 침해당한다고, 멕시코에선 환경 규제가 미국 기업 공장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1억 달러가 넘는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습니다.

이런 국제 소송들에서 미국 기업이 패한 사례가 없습니다. 왜냐면, 미국이 가장 강대국이기도 하거니와 기업 대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대 공공서비스의 대결이니 신자유주의국제기구들은 모두 기업의 편을 드는 것이죠. 
 

볼리비아 사례도 있죠. IMF의 구조조정 요구로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상하수도 사업을 미국 다국적기업 벡텔이 사유화했는데, 물값이 비싸져 사람들이 빗물을 받아 먹으니까 이를 제소해(투자자―국가제소권
) 정부가 빗물통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드는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이 사례에는 이밖에도 비위반제소나 역진방지 조항 등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코차밤바는 전설적인 민중봉기로 이 수도물 사유화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볼리비아는 미국과 FTA를 맺은 상태도 아니었는데 민중이 그런 피해를 입었던 겁니다. FTA의 본질과 그 저항 전략을 모두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한미FTA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가장 말 많은 투자자-국가 제소 조항이 체결돼도 이미 다국적 기업인 한국의 대기업들은 미국에 현지 법인 설립해 한국 정부를 압박할 수 있습니다[각주:1]. 그를 통해 복지를 위한 규제, 노동권을 위한 규제,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라는 압박, 환경을 위한 규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도 아니면 미국 기업과 동등한 기업 활동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겠죠.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것은 결코 국익과 기업 이익의 불균형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기업간 국가간 단순한 산업별 교역 조건의 문제는 전혀 본질이 아닙니다. 그 점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유화 문제도 그 점에서 한미FTA의 단순한 사전 단계가 아니라 그 본질적 일부인 것입니다. 

주권이 침해받는다는 주장에는 복합적 의미가 배여 있을 텐데, 사법주권 같은 관료의 권한이나 국익이 그 본질이 아닙니다. 국익은 국가를 지배하는 세력의 이익을 포장한 단어일 뿐입니다. 정부를 선출해서, 선출된 정부를 대중적으로 압박해, 공공 복리를 확대할 수 있는 민중의 민주적 권리가 침해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계급전쟁

또다른 배경도 있는데, 한미FTA에는 한미 지배자들의 동맹 강화로 안보(전쟁)동맹도 강화하려는 의도도 배여 있습니다. 한국 자본가들은 이를 통해 미국 중심의 질서 아래서 한국 지배자들의 국제적 지위를 격상시키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결정적 거점 하나를 확보하고요.[각주:2] 

미국의 패권전쟁에 적극 협력했던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군 평택기지 이전과 제주도 강정기지 건설을 결정하던(추진은 이명박이 하는 그 제주 강정기지) 시점에 한미FTA를 추진하고 협상을 시작한 게 단지 우연일까요?

애초 이 협정을 추진한 부시 행정부는 대테러 동맹에서 한국과 안보동맹 강화가 절실히 필요했고요. 경제영토 확장을 넘어서 군사패권 동맹의 영토 확장인 겁니다. 이번에 오바마가 ‘다원적 전략동맹’이라고 한 것은 이런 다면성을 염두에 둔 것이겠죠. 

한미FTA는 전쟁을 해서라도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제국주의에 협력해 오히려 동아시아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정책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 제국주의 궁극적 목표는 미국식 사회 체제를 수출해 제국 자본가(그리고 부차적이지만 그들과 협력하는 친제국 자본가들)들에게 ‘평평한[각주:3]’ 세계를 만들어 주는 데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단순히 ‘국익’ 논리로 FTA 재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이 논리적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입니다. 아래 열두 가지 독소조항은 애초에 한미FTA에 포함돼 있던 것들입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더 나은 교역 조건에 합의한 듯 보이는 것은 저런 결정적 독소조항들을 모두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향력 있던 지위에 있던 분들은 이명박의 FTA 강행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정직한 성찰도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각주:4] 민주당에 비준 저지를 요구하되, 믿지는 말아야 할 까닭이며, 재재협상이 아니라 완전 폐기를 목표로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FTA 몇 조항만 바꾸면 된다는 민주당식 논리는 이명박이 개과천선할 수 있다는 얘기죠.) 

이 점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이번 한 번 겨우 막아내더라도 한미FTA는 계속 유령처럼 우리를 배회할 것입니다. 국회 몸싸움만이 아니라 민주노총 등이 중심이 돼 완전 폐기를 목표로 하는 대중적 저항이 결정적으로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일각의 국민투표 요구론도 헛다리 짚기(아니면 꼼수?)입니다. 2007년 한미FTA 반대 투쟁 과정에서 국민투표로 막자는 방안이 나왔지만 다수가 반대했습니다. FTA 반대는 다수 여론을 거슬러 체결한다는 형식적 민주주의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삶이 걸린 실질적 민주주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내리면, FTA는 
미국과 한국 기업들이 돈 벌 자유를 위해 노동대중의 삶을 해치려는 것이고, 자본이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가는 수단으로 99퍼센트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겠다는 선전포고입니다. 고장난 자본주의를 더 끌고 나가 우리 삶을 시궁창에 계속 머물게 하겠다는 도전장입니다.  

1퍼센트 정권, 이미 심판받아 정치적 정당을 잃어버린 정권의 FTA 강행에 맞서는 우리도 이를 계급 전쟁으로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한미FTA를 막는 행동은 세계적인 99퍼센트 행동의 일부인 것입니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둘러싸고 벌이는 오랜 계급전쟁의 한 전투인 것입니다. 

이건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에서 출발해 현실을 재단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대한 해석과 대응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쟁점이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다수의 삶을 위한다면 FTA 반대와 완전 폐기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보의 길입니다. 

☞ 추천 기사 읽기 ―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선생의 칼럼  / /
☞ 
조중동의 한미FTA ‘괴담’론을 반박한다
 



한미FTA를 폐기해야 할 12가지 이유(민주노동당 작성으로 알려진 자료. 일부 설명이 부정확하다는 평이 있으나 대체로 무난함. 굳이 따지면, 예시에서 과장된 설명이 있긴 함. 전반적으로 한미FTA 자체를 비준 후 전혀 되돌릴 수 없다고 한 것은 정확하지 않음. 국내법으로 폐기할 수 있음, 다만 국제법적 효력이 남아 있어서 제소 대상 가능성이 큰 것임. 이 경우, 민중항쟁 방식으로 정치적 무효화의 길이 가장 효력 있음. 예를 들어, FTA를 비준한 정권 자체를 항쟁으로 퇴진시켜서 쫓겨난 정부가 맺은 조약을 무효로 한다고 하면 함부로 못 함. 볼리비아의 경우 FTA는 아니었지만 외국과 맺은 계약을 민중항쟁으로 피해 없이 무효로 함)


1. 래칫조항(톱니바퀴의 역진 방지장치)
낚시에 쓰는 미늘 같은 것인데 거꾸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즉 한번 개방된 수준은 어떠한 경우에도 되물릴 수 없게 하는 조항이다. 선진국 및 산업국가 사이의 FTA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소조항 중 하나이다. 
<예>
- 쌀 개방으로 쌀농사가 전폐되고 식량이 무기가 되는 상황이 와도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 광우병 쇠고기 수입으로 인간 광우병이 창궐하는 상황이 와도 수입을 막지 못함
- 의료보험이 영리화 되고 병원이 사유화 된 후 아무리 부작용이 나타나도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 전기, 가스, 수도 등이 민영화 된 후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나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 교육 및 문화가 사유화된 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


2. 금융 및 자본시장의 완전개방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욱 더 한국 금융시장이 국제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게 하는 조항이다.
<예>
- 외국 투기자본이 한국 내에서 아무런 제재없이 은행업을 할 수 있게 됨
-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은행의 주식을 100% 소유할 수 있게 됨.
-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감소로 많은 중소기업이 떼부도를 맞게 됨
- 사채 이자율 제한이 없어지고 사채 천국이 됨

3. 지적재산권 직접 규제 조항(Trips+)

미국의 특허권자가 한국 국민이나 기업에 대한 지적 단속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예>
- 고가의 오리지널 약보다 값싸고 효과 좋은 카피약 사용 불가능
- 미국의 경우 완벽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성인 1인당 1달에 70만원(700달러)의 약값을 지출함(4인가족 기준 월 200만원 2000달러 지출)

4. 스냅백 조항(snapback)

한국 정부가 미국과 약속한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미국이 한국에 부여한 자동차 특혜관세 혜택을 언제든지 임의로 일시에 철폐할 수 있게 하는 조항
<예>
-미국의 무역보복이 일상화 되고 한국경제는 막장으로 내몰리게 됨

5.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Negative List)

개방해야 할 분야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것(Positive 방식)이 아니라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을 적시하는 조항이다. 따라서 미래에 생겨날 새로운 서비스 시장은 무조건 모두 개방해야 한다.
<예>
- 온갖 도박장, 섹스산업, 피라미드 판매업 등 미국의 서비스산업이 국내에 마구 들어오게 될 때 군말없이 이것들을 수용해야 함

6.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Future MFN Treatment)

미래에 다른 나라와 미국보다 더 많은 개방을 약속할 경우 자동적으로 한미FTA에 소급 적용하는 것이다.
<예>
- 일본과 FTA를 체결할 경우 농산물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더 강점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보리나 콩을 개방했을 경우 원래 한미FTA에는 없던 콩이나 보리도 즉각 미국에게 개방해야 함.

7. 투자자-국가 제소권(ISD)

한 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나 기업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 민간 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투자자본이나 기업이 피해를 보았다고 판결나면 한국 정부가 현금으로 배상해야 한다.(이 경우 당연히 한국보다 힘센 미국의 투기자본 및 초국적 기업이 승리)
한 마디로 초국적 투기자본이나 기업이 자신의 이윤확대를 위하여 상대국가의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독소조항이다.
<예>
- 이 제도로 인해 미국 자본이나 기업은 국내에서 재판받을 필요가 없음
- 오스트리아 등 미국과 FTA를 추진하거나 맺은 국가들 대부분은 이 독소조항을 채택하지 않았음.
- 한국과 유럽의 FTA협상에서는 이 독소조항을 논의조차 하지 않았음
- 대한민국 헌법상의 주권국가의 사법권, 평등권, 사회권이 무너짐
- 한국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포함한 공공정책을 사실상 포기하게 됨

8. 비위반 제소

FTA를 위반하지 않았을 경우라도 세금, 보조금, 불공정거래, 시정조치 등 자본이나 기업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기대하는 이익을 못얻었다고 판단되면 국제 민간기구에 상대 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제도
<예>
- 자본이나 기업 자신의 경영 실수로 기대이익을 못얻었을 경우라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
- 국제민간기구에 제소해서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타낼 수 있음

9. 정부의 입증 책임(necessity test)

국가의 정책, 규정 등 상대국가는 그것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책임을 지는 조항이다.
<예>
-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의 광우병 쇠고기 반대여론 같은 경우 과학적 입증 자체가 터무니 없는 일임.
-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국제적 위상이 취약함

10.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상대국가의 정책이나 규정에 의한 직접적인 손해가 아니더라도 이를 통해서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면 이를 보상해야 하는 제도이다.
땅이 좁고 인구가 많은 한국은 토지공개념 등 사유를 제한하는 공동체적 법제를 가지고 있음(미국은 한국과 정반대). 그러나 이 독소조항으로 인해 한국의 모든 정책과 규정의 공동체적 법체제가 완전히 사라지게 됨
<예>
- 한미FTA가 한국정부의 모든 정책과 규정의 상위법인 양 해석되게 됨
- 대한민국의 주권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11. 서비스 비설립권 인정

상 대국가에서 사업장을 설립하지 않고도 영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설립되지 않은 회사를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따라서 서비스 비설립권 조항으로 인해 한국 정부는 이들 기업들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거나 불법 사실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예>
- 미국은 각 나라와 FTA를 맺으면서 ‘FTA이행법’을 만들었음. 이 법에서 “미국의 법률에 저촉되는 모든 FTA 규정은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미국인에게 무효이다.” 라고 선언했음. (미국에서는 FTA가 단순한 행정협정일 뿐임)
- 한국정부는 한미FTA에 저촉되는 한국의 모든 법(30여개)을 고치려고 함(한미FTA가 조약이며 법률이라고 함)

12. 공기업 완전 민영화와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 철폐
한국의 공적이며 독점적인 공기업을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들에게 맛좋고 수월한 사냥감으로 던져주는 조항이다.
<예>
- 의료보험공단, 한전, 석유공사, 농수산물, 유통공사,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토지공사, 도로공사, KBS, 중소기업은행, 도시가스, 수도공사, 우체국, 지하철공사, 철도공사, 국민연금, 공무원 연금 등 :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에 넘어가 사유화도 가능성이 농후함
- 수도요금, 전기료, 지하철 요금, 가스요금, 의료보험료, 등이 대폭 인상되게 됨으로써 서민경제가 파탄나게 됨


  1. 이 경우 ISD는 한국 자본이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겠죠. 또 한국자본이 미국에 문제제기할 수도 있구요. 애국-매국 문제가 결코 아닌 이유입니다. [본문으로]
  2. 미국과 중국은 2000년대 동안 경제적 협력과 군사적 긴장 관계를 형성해 왔죠. 그동안 협력과 견제가 두 나라의 기본 관계였는데, 경제 위기가 해결 안 되는 지금, 경제에서도 경쟁 관계가 더 부각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3. 신자유주의 세계화 찬성론자들은 세계가 평평하다고 주장하죠. [본문으로]
  4. 올해 문재인 씨는 베스트셀러가 된 자신의 자서전에서 한미FTA를 잘한 것으로 자화자찬하고 김현종을 높이 평가했는데, 김현종의 친미 행위가 드러난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죠.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

많은 사람들이 북한 3대 세습을 비판하면서 삼성과 <조선일보>, 대형 교회 등의 세습도 비꼬았다.

남한도 그러니 북한도 문제삼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라면, 소수 지배자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세습하는 행태는 남북이 다르지 않다는 이런 통찰은 정확한 것이다.


그런데 자칭 ‘민주·진보’라는 사람들 일부가 이런 비교를 부당하다고 비판한다.

사회민주주의연대는 “정권의 세습이라는 문제와 기업 경영권이나 재산이나 직업의 세습이라는 문제를 같은 차원에서 뒤섞어 물타기하는 궤변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 단체의 공동대표인 주대환은 이런 비교가 “더 나쁜 경우”라고 단정한다.

국민참여당 유시민은 “기업은 사적 권력”으로 “한 기업이 세습 때문에 망하면 다른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하니까 간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생각은 우리가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은 ‘사유재산’이므로 이를 ‘상속’하는 것은 ‘공공의 것’인 정치 권력을 ‘세습’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들으면, 삼성과 <조선일보> 등이 그 이른바 사적인 권력과 부를 이용해 선출된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해 온 일들이 떠오른다. 이들의 범죄는 단지 시장질서를 어지럽힌 데 있지 않다.

이들은 정치권력과 유착돼 있고 자신들이 로비로 만든 법을 위반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위에 도전하는 행위를 결코 ‘관용’하지 않는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과 세습을 위한 불법을 가리고, 이른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위해 수조 원대 비자금으로 행정·사법부 관료들을 관리해 왔다. 

<조선일보>는 상속세 폐지 등 꾸준히 부자 감세를 부르짖으며 보편적 복지 염원을 매도해 왔다. 면세 혜택과 신도 성금으로 덩치를 키운 대형 교회들은 진보 개혁에 반대하는 일에 신도를 동원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에 호응해 1백조 원이 넘는 부자 감세를 실시하고 부동산 부자를 위해 4대강죽이기를 강행하며 대기업을 위한 알짜 공기업 매각과 의료 민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사적 권력들이 공공의 것인 권력을 사실상 사유화하려 온갖 방법을 다 쓰는 현실에서 시장과 사기업은 ‘사적 영역’이므로 공적 논의의 장에서 다룰 필요 없다는 주장은 부당하다[각주:1].

오히려 이런 분명한 사례들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돈과 권력이 결코 분리돼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세습된다.

올해 7월 기준으로 억대 주식을 보유한 미성년자가 220명이다. 이 가운데 열두 명은 보유 총액이 각자 1백억 원을 넘는다. 모두 재벌가의 자식들이다. 이들이 재산을 세습하는 것은 그것이 보장해 주는 권력()까지 세습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식도 주요한 세습 대상이란 점에서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고, 주주들이 인정했으므로 삼성 세습 같은 일이 북한 세습과 다르고, 별 문제 없다는 주장도 틀렸다[각주:2].

사실 주주들은 배당금과 차익으로 투자의 대가를 모두 받아간다. 그러고도 세습 받은 주식으로 기업의 주인 행세를 한다는 건 불공정한 일이다[각주:3]

이처럼 소수 지배자들이 세습을 통해 평범한 다수를 지배할 특권을 대물림한다는 점에서 남한 자본주의도 북한의 정치·경제 구조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기업주의 권력과 부를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문제삼지 않는 종류의 개혁주의 정치로는, 아무리 북한 세습을 비판해도, 막상 지금 여기에서 우리 삶을 개선하거나 기업의 횡포에 맞서 삶을 보호할 힘을 발휘할 수 없다[각주:4]. 주대환이나 유시민 등은 기껏해야 시장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북한 세습을 비판할 뿐인 것이다[각주:5].

그것이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자조한 노무현 정부 수준의 개혁이 처참하게 실패한 까닭이다[각주:6].

물론 국가와 자본이 항상 유착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삼성의 비자금과 로비, <조선일보>의 악다구니는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사적 세습 권력들이 단순히 정부를 지배하는 관계라면 뭐하러 그렇게 애를 쓰겠는가.

무엇보다 삼성 같은 거대기업들을 개인의 소유물로 인정해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오늘날 거대기업들이 조직하는 생산은 세계적 규모에서 협력적 노동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각 기업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이다[각주:7]

사실, 개인 소유로 감당할 수 없게 커진 경제단위당 생산력을 자본주의 방식으로 조직한 게 주식회사다. 마르크스는 “[주식회사는] 자본주의 생산양식 그것의 한계 안에서 사적 소유로서의 자본을 철폐하는 것”[각주:8]라고 말한 바 있다.

심지어 국민 세금으로 특혜도 준다. 2008년 한 해 삼성전자 혼자만 1조 원이 넘는 세금을 감면 받았다. 이 돈이면 1년간 서울에 있는 모든 유치원···고등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할 수 있다. 삼성그룹 자체가 파산 위협에서 국가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노동자의 노동과 국가의 보호가 없다면 이건희 일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각주:9]. 이건희 없는 삼성은 존재할 수 있어도, 노동자 없는 삼성은 그럴 수 없다.


기업과 경제를 세습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사회적 소유와 민주적 계획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 이 글은 <레프트21>43호에 실은 내 기사에 몇 가지 내용과 각주을 덧붙인 글이다. 바뀐 글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기사 원문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8753)

※ 격주간 신문의 특성상 약간 뒤늦은 감이 있다. 지난 번처럼 이 글도 보론을 써 조만간 올릴 예정이다.



  1. 신자유주의의 탈정치화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인데, 형식과 달리 매우 보수적인 실천을 낳는다. [본문으로]
  2. 주주총회는 1주식 1표다. 얼마나 자본주의적인가. 즉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가. 재산 액수대로 표 수가 정해지는 ‘주주 민주주의’를 인정한다면, 북한 세습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본문으로]
  3. 세습받을 정도로 규모 있는 지분이 돼야 경영권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4. 경제 위기 시대에 보편 복지 도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사유재산과 사유기업이 정치의 영역 밖이라면 무슨 수로 부자 증세를 할 것인가? [본문으로]
  5. 시장자본주의가 더 우월하다, 시장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두 생각 모두 취지는 달라도 시장 자본주의가 최선이고, 이걸 벗어나는 체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의 북한 비판은 시장자본주의 틀 안에 있다. [본문으로]
  6. 요즘 들어 좌고우면하며 우경화한 진보정당들이 대안정당으로 부상하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7. 삼성전자의 거대 수익은 순전히 반도체 노동자들의 땀값, 목숨값이다. [본문으로]
  8. 사적 소유와 사회적 생산의 모순을 지적한 것으로서 발전하는 생산력이 갈수록 사적소유라는 자본주의의 형식(생산관계)과 모순(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뜻한다. [본문으로]
  9. 국가의 보호라는 것도 상당수는 노동자들의 수행하는 노동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