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은 심각한 경제 위기 때문에 경제적·정신적으로 파산 상태에 몰린 ‘중간계급의 반동적 대중운동’이다.


이 반동적 운동의 강령적 모순과 반동적 광기의 특성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은 바로 그 운동의 핵심을 차지하는 계급 기반이다. 핵심 강령, 지도자들의 계급기반, 핵심 지지자들의 구성은 중간계급적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은 경제 위기의 대가를 하층 계급들에게 떠넘기는 대자본을 증오하고, 조직 노동자들의 힘과 조직력을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양대 계급 어느 쪽도 인구의 다수를 위기에서 희망으로 이끄는 데에 실패하고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득세한다.


그래서 파시스트들은 사회적 희생양(유태인, 이주민, 무슬림 등)을 공격하며 사기와 대오를 갖추고 노동계급 조직들을 테러하지만, 한편에선 대자본(특히 중간계급 소자산가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금융자본)을 증오하며 혁명과 노동의 가치를 말하기도 한다.(나치의 명칭은,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가끔은 광기를 주체 못해 국가와 충돌하기도 한다. 


이처럼 자본주의에서 양대 계급 사이에 끼인 중간계급의 모순적 특성 때문에 반자본·반노동을 말한다. 그 강령은 대체로 소기업들로 이뤄진 민족 공동체 같은 유토피아적 모델이다. 


그러나 파시즘 운동의 본질은 애초부터 반노동·반좌파에 있다. 이들은 거리와 지역에서 노동운동가들을 테러하고 노동자조직을 파괴하면서 성장한다. 반노동·반자본 강령과 실제의 본질적 실천 사이의 모순야말로 이 운동의 중간계급적 성격을 명백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소자산가로서 피고용 노동자들을 더 낮춰 보는 습성에서 비롯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 요인이 있다. 중간계급은 자기 계급의 이름으로 사회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 인구의 상대적 규모도 그렇지만, 자본과 노동이라는 양대 계급과 비교해 사회를 운영할 경제력이 없다는 게 결정적이다. 따라서 그들 자신만의 힘으로는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운영할 수 없다. 


그래서 중간계급 소자산가 집단은 극렬한 위기의 시대에 자본가들의 반동으로 쏠렸다가 노동자 운동의 저항에도 기대를 걸어 본다. 그러나 노동계급마저 희망을 보여 주지 못했을 때, 스스로 광기에 찬 반동적 몸부림으로 나가는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들은 자본주의의 극심한 위기 속에서 노동자혁명의 전망이 실패한 뒤에 부흥했다. 


노동계급이 고통의 근원인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재편할 힘을 보여 주지 못한 데서 나오는 절망적 상황이 파시즘 운동의 연료가 된다는 점을 봐야 한다. 


즉 반혁명적 절망의 몸부림, 도저히 이대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고통을 노동계급이 혁명적 권력을 수립해 희망으로 바꿔주지 않는다면, 양대 계급에 대한 증오와 불신에 찬 중간계급의 반동과 광기가 인구의 상당수를 획득할 수 있다. 


파시즘은 이런 배경에서 자본가들의 반동적 일부, 이들과 긴밀히 묶여 있는 상층 중간계급들, 심지어 사기와 의식 수준이 매우 낮은 노동계급 후진 부위 일부의 지지를 모을 수 있다. 그런 단련된 조직 노동계급이 혁명에는 무능했어도 괘멸되지 않는 한, 자본가들에게는 반동의 도구가 필요하다.


결국 노동운동을 싹쓸이하는 모험을 통해서만 자본주의 위기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된 지배계급 일부가 이들을 권력으로 끌어올려줘야 한다. 위기 속에서 참을성을 잃어버린 지배자들이 동의의 방식을 활용하는 지배전략 대신 노동운을 제압할 용병으로 파시스트에게 권력을 주는 모험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험은 일정한 성공과 일정한 배신을 모두 포함한다. 독일 노동운동의 괴멸과 티센의 사례.)


이들에게 권력을 넘겨받을 환심을 사려고 파시스트들은 ‘거리의 반동’과 ‘선거 참여’라는 이중 책략(‘이중 전략’)을 쓴다. 부르주아 지배의 틀과 형식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의 도구로서 유용함을 모두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계급은 생활 공간과 작업장에서 노동계급과 밀착돼 있다는 점에서 이들 개개인이 반동의 구실을 하는 파시스트 운동으로 동원될 때, 외부자로서 억압하는 경찰보다 훨씬 더 유용한 노동운동 파괴자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파시스트 지도자들은 일차로 바로 이 점을 증명해야 하며, 이차로는 그럼에도 그런 공격성과 광기가 기존 지배자들의 권력과 질서를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증명해야 한다. 


히틀러가 선거로 제1당이 되고 힌덴부르크의 도움으로 집권한 것, 무솔리니가 왕의 지명으로 총리가 된 것이 모두 그 사례다. 최근 유럽의 파시스트정당들도 선거적 규칙에 순응하는 척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조금 다른 사례지만, 스페인 파시스트들은 군부와 왕당파, 카톨릭 등 지배자들과 군사연합으로 반혁명에 성공했다.)


파시스트 운동의 이런 속성 때문에 집권에 성공한 파시스트 운동이 강령에 충실하려는 내부 ‘혁명파’를 숙청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SS(나치 친위대)와 SA(나치 돌격대) 간의 갈등. 룀과 돌격대를 숙청한 긴 칼의 밤 등. 


파시스트 ‘혁명’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중간계급은 파괴할 수 있을지언정, 창조하고 건설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는 오직 노동계급이 역사적 권능을 발휘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파시스트 국가는 독특한 형태의 자본주의 국가를 재구성한다. 그것은 개별 자본에게조차 독재적이지만,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려는 국가이고, 나치 깡패들과 군부가 위태롭게 공존하는 국가다. 무엇보다 중간계급의 밀착된 생활조건을 노동계급 조직 파괴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권위주의적 독재보다 더 가혹하고 유능하다. 파시스트 국가에서 노동계급 조직은 훨씬 더 철저하게 파괴되고 노동자들은 원자화된다.


이런 파시즘의 성격에 비춰볼 때, 지배계급 주류가 국가기구의 권위주의적 잔재에 기대 국가를 통해 억압을 강화하는 박근혜 식의 반동을 파시즘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각주:1]


권위주의 통치형태를 곧장 ‘파시즘’으로 보는 것은 파시즘을 ‘대자본의 테러독재’로 규정한 스탈린주의 분석 개념의 잔재로 볼 수 있다. 상황의 위험성을 과장하는 이 분석은 불필요한 공포감만 조장해 재앙적인 ‘인민전선’ 전략 정당화에 이용됐을 뿐이다.


그럼, 어버이연합이니 일베니 하는 것들이 반동적 ‘대중운동’일까. 이들은 국가적 반동의 그림자일 뿐이다. 기껏해야 국정원의 조종과 지원을 받으면서 우익 정부에 좌파 단속을 ‘청원’할 뿐인 우익 관변단체들을 파시스트로 볼 수는 없다. 성격이 다른 것이다.


과장된 분석은, 적과 타협할 수 없다는 정서의 반영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필요 이상의 공포를 자아내고, 우리 편을 오히려 위축시킨다. 그럼으로써 첫째, 시선을 엉뚱한 데로 돌려 (요즘의 경우엔 국가가 아니라 대중의 보수화로) 당면 투쟁의 진전을 가로막는 기초가 되기도 한다. 


둘째, 이 때문에 날카로운 계급 분단에 기초한 현실적 투쟁보다는 일부 선량한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전선에 노동자 투쟁들(과 그 주도성)을 종속시켜 버린다. 이 경우, 소수 과두 지배자들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한 듯 보이지만, 과두지배층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의 화해와 화합(계급연합)을 추구함으로써 노동자투쟁의 예각을 꺾어 버린다.


문제는 바로 노동자 투쟁들에 파시즘의 모태인 자본주의에 맞설 유일한 힘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파시즘은 중간계급의 모순된 처지를 반영하므로, 오로지 노동계급이 그 역사적 권능을 현실에서 발휘해 중간계급을 자신의 미래로 끌어당길 때만, 이겨낼 수 있다.  


지금 국면은 세계자본주의 위기에서 비롯한 경제·안보 위기의 심화 속에서 지배계급 주류를 대표한 박근혜의 통치스타일이 공안통치 성격을 강화하는, 그러나 쉽게 관철되고 있지는 않은 국면으로 보는 게 옳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박근혜는 공세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편 역시 만만치는 않다. 전교조의 함성에 이어, 철도노조가 주먹을 가다듬고 있다.


‘내란음모’ 탄압으로 분위기를 조성한 뒤 펼친 전교조 법외노조화 압박의 실패는 공안통치 스타일을 경계하면서도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걸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과장된 공포 대신 앞으로 박근혜가 본격화할 고통전가 정책들에 맞설 노동자투쟁을 참을성 있게 건설하고 연대하며 기회를 노리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1.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지배질서 안에서 노동자민주주의의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87년 이후 노동계급 운동의 성장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진척한 상황에서 박근혜의 유신스타일 통치가 곧바로 권위주의 독재인 유신체제 부활을 가져올 순 없다. 유신 회귀론은 과장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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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신청 ①

낡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좌파 단속과 반민주 폭거 



집권 반 년 만에 각종 복지공약 파기와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으로 강성우파의 발톱을 드러낸 박근혜가 또 하나의 반민주 도발을 했다.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것이다.


진보당은 대표적 진보정당으로서 지난해 총선 정당비례에서 2백19만여 명의 지지를 받았다. 국회의원도 여섯 명이나 된다. 총선 뒤 우여곡절 끝에 분당한 것을 감안해도 적어도 1백만 명 남짓에게서 지지받는 정당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당을 대통령과 장관들 열몇 명과 헌법재판관 6명이면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라면서, 우파 정부의 이데올로기 기치에 맞지 않는다 하여 [대중적 지지까지 받는] 자유로운 정치결사체를 맘대로 없앨 수 있다는 식이다.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게 얼마나 기만적이고, 평균적인 자유민주주의조차 못 되는 반민주적 특권 질서인지 알 만하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까지 허용해야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사건은 경제 위기를 앞두고 좌파 단속을 위한 선제 조처며, 반민주 폭거다. 새누리당이 연이어 ‘국민주권주의’에 반하는 강령을 가진 시민사회단체들을 해산시키는 법을 내놓겠다고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박근혜는 이런 야만적 탄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대선 개입 의혹에서 딴데로 돌리고, 우파 결집과 정국 주도권 회복을 노린다.


또한 해산청구는 이석기 의원 등 ‘RO’ 사건 재판부에 유죄 판결을 압박하는 것이기도 하다. 거꾸로 ‘RO’ 사건 재판부의 유죄 판결은 통합진보당 위헌 판결을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이 8퍼센트로 적지 않게 득표한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내핍 정책에 대한 불만이 왼쪽으로 수렴되는 것을 미리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선거 전략 측면에서 보면, 해산청구는 진보당과 야권연대를 했던 민주당을 압박하는 전술이기도 하다. 


M16


한편, 현 정치 상황을 ‘유신 회귀’ 또는 ‘공안정국’이라 보기는 힘들다. 좌파 일부가 법적 배제와 협박을 받고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매주 서울 도심 촛불집회와 여러 활동이 큰 제약 없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적 상황은 박근혜의 유신 스타일 통치가 유신 체제를 곧장 만들어낼 수 없다는 분석의 올바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다.(사회적 세력관계상 박근혜의 스타일이 뜻대로 관철될 수 없다는 모순) 


예를 들어, 김기춘이 검찰총장으로서 주도한 1989년 공안정국 때는 경찰에게 저항하면 발포하라고 일선 경찰서에 M16 소총이 지급됐다. 한동안 신문 1면은 연일 민주화운동의 지도적 인사들에 대한 체포와 구속 소식으로 채워졌다. 현대중공업 파업 등에 내전을 방불케하는 폭력 탄압이 벌어졌다.(노동자들의 저항도 당연히 격렬했다.) 1천5백여 명이 해직된 전교조 탄압도 바로 이 때였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고 상당한 조직력이 있는 진보당 해산을 헌법재판소가 섣불리 결정할 순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헌법재판소는 정치·사회적 세력관계의 추이를 살피며 판결을 차일피일 미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따라서 정부와 집권당은 헌법재판소법 제57조 가처분 조항을 이용해 진보당 활동 일시정지 가처분이라도 하라고 법원을 압박하려 할 것이다. 


지금 노동운동은 이런 공안정국의 위험성을 경계하면서도, 박근혜의 의도와 모순을 직시하면서 위축되지 말고, 좌파 단속 시도 일체에 항의·규탄해야 한다. 아울러, 자신의 계급적 요구를 가지고 진정한 대중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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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기 짝이 없는 박근혜가 대통령 비서실장을 김기춘으로 교체했다


박근혜 후원 원로그룹 7인회의 일원인 이 자는 중앙정보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을 거치면서 공안수사의 총지휘자 구실을 하던 자다.


유신헌법의 기초 작업 실무를 관장해 박정희의 이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그래서 젊은 나이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직을 맡아 출세가도를 달렸다.(당시 그의 직속 상관인 중정부장도 정치검사 출신인 신직수) 그 시절, 각종 간첩단 조작 사건과 고문 수사가 판을 쳤다. 그가 87년 이후 공안검사들의 원조 격 취급을 받는 이유, 공작정치, 공안통치의 대가로 취급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정희와 표면상 차별화를 하고 싶었던 전두환 때 요직에는 진출하지 못했으나, 노태우 때 초대 검찰총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그는 1989년 공안정국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공안정국은 일선 경찰에 시위 대비용으로 총기가 지급될 정도였다.


김기춘이 주도한 1992년 ‘초원복집 사건’이란 것도그 본질은 부산 지역의 시장경찰검찰안기부교육감기무사기업주 등이 모여 반동적 정치 공작을 음모한 것이다.


국정원이 선봉에 선 총체적 탄압 공작이 분노의 초점이 된 상황에서 총체적 공안 공작의 전문가를 정권의 컨트럴타워로 영입한 것이다. 유신 시절 대통령 휴양지로 지정한 저도에 가서 질낮은 저도의 추억억을 되새기더니 남들 다 하는 말로 유신의 추억을 되새기고 온 듯하다.


김기춘은 국무총리 정홍원과 법무장관 황교안의 검찰 내 고위 상관 출신이다. 이는 박근혜의 반동적 친정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애초 정홍원을 총리로 추천한 자도 김기춘이라는 설도 있다.)


특히, 새로 임명한 민정수석 홍경식도 대검 공안부장 출신으로 [김기춘과 마찬가지로] 법무부장관 황교안과 검찰총장 채동욱의 상관 출신이다. 검찰을 확실히 장악해 정권의 위기 탈출 수단으로 더 효과적으로 써먹겠다는 뜻이다


아니나다를까, 7일 검찰은 '사이버 명예훼손 사범 엄정처리지침'을 발표해 ‘악의’만 있으면 사실이라도 명예훼손을 적용하고 사이버 명예훼손도 구속 수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상호 기자는 이를 두고 ‘박근혜식 긴급조치 1호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검찰이 판단하니 말이다. 



<한겨레> 8.1. 장봉군 만평.



박근혜는 임기 초 부패·유신 코드 인사로 위기를 겪었는데, 취임 다섯 달만에 더 노골적인 반동적 친정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나이 80이 다 된 배후세력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강성우익의 본색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큰 압력은 대중의 분노가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7월말에만 전국 50곳에서 촛불이 타올랐다. 6월에 3백여 명으로 시작한 촛불이 지금은 매주 수만 명이 결집하는 양상으로 발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기춘이 등장한 것을 보면서, 1989년 공안정국을 떠올려 보는 것도 도움은 될 듯하다. 


노태우는 당선은 했지만, 1987년 이후 고양된 대중운동, 특히 노동운동 때문에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88년 말에는 쿠데타 베프인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보내야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군부 내 강경보수파들이 공개 반발하기도 했다. 여전히 경제호황의 여파가 있었지만, 좋은 시절은 정점을 찍고 끝나가고 있었다. 


1989년 3월 현대중공업 점거파업과 서울지하철 파업이 벌어지고, 문익환 목사가 방북을 했다. 이를 빌미로 체제 위협론을 들먹이며 노태우는 공안관계장관대책회의를 주재해 공안정국을 개시했다. 


곧바로 공안정국 아래서 일선 경찰에 총기가 지급됐다. 현대중공업에 경찰 병력을 쏟아부어 폭력 진압을 실행했다. 


이때 공안정국을 주도할 주체로 공안합동수사본부(공안합수부)라는 게 구성됐다. 안전기획부(중앙정보부의 바뀐 이름)와 검찰, 경찰, 보안사 등을 모아 만든 이 기구를 사실상 주도한 것이 당시 검찰총장 김기춘이다


구성을 보면, 공안합수부는 이번 국정원게이트처럼 안기부가 정치와 탄압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것도 공개·합법적으로 말이다.(지금은 해도 몰래 해야 하는 처지다.)


이 공안합수부의 명목상 본부장이 김기춘의 직속 부하인 대검 공안부장 이건개였다. 이건개는 김기춘과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총애를 받던 극우 공안검사 출신이다.(이건개의 아버지가 박정희의 군 선배로 친하게 지내던 장군 이용문이다. 이건개는 지난해 대선에 출마했다가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했다.) 


김기춘은 공안정국을 시작하면서 평검사들을 모아 놓고 “좌경세력은 무좀과 같아서 약을 바르면 치유된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난다. 체제 수호에 검찰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고 강조했다. 준 군사정권의 수호를 위해, 재벌 독재화의 유지를 위해, 민주화 반동을 위해 진보세력을 ‘박멸’하라는 것이다.


공안합수부는 결성되자마자 신문 1면을 연일 장식하며 당시 전민련 간부들(이재오, 김근태 등)과 리영희 교수 등 진보적 지식인들을 체포·구속하는 탄압 선풍을 일으켰다. 


전교조 대량 해직 사태 등 노조 탄압, 민주화 활동가 대량 구속, 노동·학생 운동가들의 의문사가 연이어 벌어졌다. 심지어 보안사령부는 계엄령을 검토하며 민간인을 사찰하며 체포 명단을 작성했다.(‘청명계획’)


이런 총체적 탄압과 공작은 보수대연합을 구성해 정권의 기반을 확대하는 정계개편으로 이어졌다.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이런 반동은 전노협 결성과 연대 투쟁, 19915월 투쟁 등으로 우리 운동이 치열하게 맞선 결과, 반동적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합당시 3분의 2에 이르는 의석을 가졌던 민자당은 1992년 총선에서 과반수에 한 석 미달하는 수준의 결과만 얻었다. 


김기춘은 1991년 5월 투쟁 중에 이번에는 (승진해서) 법무장관으로 긴급 투입돼 유서대필 사건 조작 등을 배후에서 지휘하며 투쟁의 찬물 끼얹기에 한몫했다. 법무장관에서 물러나 뒤 1992년 12월에 부산에 가서 공작을 진행하다 사단이 난 것이 그 유명한 초원복국집 사건이다. 


1997년에는 민주노총 총력 파업 후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평가받던 김영삼도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검거 선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해 대선에서 일당국가 해체를 막을 순 없었다.


이런 역사적 사례로 알 수 있는 것, 첫째, 박근혜는 집권 반 년만에 반동 본색을 드러낼 만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둘째, 반동적 우파 정책을 수행하려면 박근혜는 지금 물러설 수 없다. 셋째, 그래서 신경질적으로 반동적 태도를 더욱 노골화할 수 있다. 넷째, 그러나 운동이 위축된 수세적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다. 


지금 박근혜는 겨냥하는 운동의 속도를 늦추거나 국정조사 따위에 운동의 잠재력을 한정하며 박근혜에게 시간벌기를 허용하는 것이 잘못인 이유다. (사실 이 글이 김기춘을 소재로 했지만, 김기춘만이 주인공인 글은 아니다. 왜 그런 내력의 인물을 전면에 세웠는지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고 경계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저들이 그토록 애를 쓰며 정권을 쥐려한 것은 그냥 청와대에서 근무 한 번 해 보고 싶어서, 예전에 살았던 집에 다시 들어가 보고 싶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정권을 잡고 그 권력을 이용해 하려고 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유린이고,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들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대중적 불만과 시위가 박근혜의 반동에 맞서는 총체적 분노로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스런 게 아니다. 이를 위해선 거리와 1퍼센트 지배자들의 눈치를 보며 두길보기 하는 민주당에게서 독립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거리의 촛불은 쟁점을 확대해 진정으로 힘을 가진 노동운동과 만나야 한다. 그 방향으로 전진해야 박근혜의 신경질적인 반동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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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정치쇄신안은 우리와 80퍼센트 같다. 이 염원을 받아 안는 게 우리의 도리다.”


이것은 문재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말이다. 안철수 사퇴 전까지 “무면허 정치인”, “호객꾼”, “기회주의자” [심지어 마르크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등 막말을 퍼붓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민주당이 흘리게 한 안철수의 눈물을 우리가 닦아줘야 한다’며 안철수 지지층을 조금이라도 더 흡수하려고 책략을 부리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뜻대로 안 되더라도 두 지지층 사이를 이간질시켜 문재인에게 가는 표를 줄이면 보수 지지층 결집으로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총선과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포함한 주요 우파 정당이 얻은 득표 합계는 엇비슷하다. 그런데도 2008년에 우파가 얻은 의석수가 30석가량 많은 것은 반우파층의 투표율과 결집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는 한동안 지지층 확장성의 한계와 이명박 레임덕의 여파로 위기를 겪었다. 

이 때문에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보수대연합’ 색채가 두드러졌다. 어차피 반우파 정서의 벽을 확인했으니 확실한 우파 결집 후 반우파층의 투표율 낮추기 책략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반우파 정서가 막강하고 검·경 갈등 등 레임덕 등 위기의 요소들은 여전하다. 다만, 보수층 다지기에 열중하는 동안, 문재인과 안철수가 감동과 비전 없는 단일화 과정 때문에 기회를 못 살려 숨돌릴 틈을 얻은 것이다. 


이회창, 나경원이 몰려 들고, 박근혜에게 ‘칠푼이’라고 막말하던 김영삼마저 지지 선언을 준비한다고 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에게 국민대통합은 없고, 보수대연합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숨돌린 박근혜가 안철수 지지층을 노리고 위장막을 쳐도, 그것이 두드러지기보다는 우파 본색이 더 짙어지고 있다. 


사람들 속이려고 내놓은 유신피해자보상법이 딱 그렇다. ‘보상’은 적법한 행위 때문에 생긴 불기피한 피해에 대해 쓰는 용어다. 국가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피해는 ‘배상’이 맞다. 여전히 박근혜는 유신의 정당성을 신봉하고 있다는 뜻이다.


재벌 중심의 성장론과 색깔론 안보 공세 같은 전통적 우파 의제들도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다. 투표율 낮추기를 위한 무차별 네거티브 폭로전과 ‘종북’ 마녀사냥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캠프 총괄 지휘자인 김무성은 2008년 촛불항쟁을 두고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죠. 촛불을 보며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공개해 국민을 실망시켰다”고까지 말했다. 


박근혜의 새누리당은 최근 국회에서 투표시간 연장법안을 무산시키더니 제주해군기지 예산안도 국방위원회에서 날치기했다. 지난 번엔 면담 요구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끌어내더니, 어제는 반값등록금 요구하는 학생들을 전원 연행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중요하다더니, 박근혜 정권의 ‘미래’를 화끈하게 미리 보여 준 셈이다. 


그래놓고 박근혜는 지금 문재인을 ‘실패한 노무현 정권의 실세’라는 식으로 비난한다. “비정규직이 그때 양산됐고. 등록금이 폭등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문제들은 문재인의 약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지층의 개혁 염원을 배신했다.


문제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이런 비판을 할 자격이 있냐는 것이다. 유신잔당들이 할 소리는 아닌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망스런 노동법 개악마저도 너무 ‘친노동’이라며 더한 개악을 주문했던 자들이 바로 오늘의 새누리당이었고, 박근혜는 바로 그 당의 대표였다. 


23명이 억울하게 죽어갔는데도, 쌍용차 국정조사조차 못 하겠다는 것이 박근혜의 ‘민생정치’고,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를 모른 체하는 것이 새누리당의 ‘법치주의’다.


박근혜가 민생법안이라고 내놓은 ‘사내하도급법’을 두고 노동자들은 ‘정몽구법’이라고 부른다. 이 법안대로면, “과거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몰래 관리해 왔지만 이 법이 통과되면 합법적으로 하청 노동자들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권두섭 변호사) 현대차 8천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무효화되는 것이다.


박근혜는 “최저임금이 5천 원도 안 되냐”며 무지를 드러냈는데, 올해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법안을 한사코 거부한 것이 새누리당이다. 


영남대의료원지부는 박근혜가 사실상 소유주인 영남대재단 소속인데, 이 노조에 대한 노조 파괴 탄압이 시작된 것은 1989년 재단 비리로 쫓겨났던 박근혜 일당이 재단 복귀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 2006년부터다. 박근혜 복귀를 위해 눈엣가시인 노조부터 파괴하려 했던 것이다. 육영재단 이사장 때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결혼 후 퇴사를 강요한 바 있다.


박근혜의 법과 원칙은 우파와 기업주를 위해 노동자를 때려잡는 것이고, 박근혜의 소통은 불법 사찰과 탄압 따위를 위해 정부의 억압기구와 기업주가 연계하는 것일 뿐이다. 오죽하면, 한국노총조차도 2007년과 달리 지지하는 곳이 거의 없겠는가.


철두철미하게 ‘유신스타일’을 고수하는 반노동 우파 박근혜의 집권에 노동대중이 우려하는 이유는 이처럼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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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세론이 ‘박근혜 필패론’으로 바뀔 조짐을 보이면서 집권당이 자중지란에 빠져드는 듯하다. 


인혁당 사건 관련 발언 이후 반우파층이 결집하며 지지율 1위를 추월당하고 일대일로는 문재인에게도 뒤지는 상황이 한 달 가까이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감 때문에 추석을 앞두고 5ㆍ16과 유신이 “헌법 가치 훼손”이라고까지 ‘양보’했지만, 별무효과다. 박근혜는 정작 인혁당 문제 사과를 건의한 당 대변인 홍일표를 잘라냈고, ‘사과’ 당일 부산에 내려가 말춤을 추면서 [맘 없는 사과로 생긴] ‘스트레스’를 풀었다. 



참여연대 페북에서 퍼옴.



그래서 10월 4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선 당 전면 쇄신과 친박 측근 총사퇴 등이 거세게 제기됐다. “[박근혜가] 머리 풀고 몸뻬라도 입고 나올 정도로 변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친박들의 반발 때문에 이런 쇄신도 어려울 뿐 아니라, 대선을 코앞에 두고 섣부른 ‘쇄신’ 시도가 오히려 붕괴를 낳을 거라는 위기감도 제기되고 있다.


위기 돌파를 위한 외연 확대 차원에서 끈 떨어진 동교동계 한광옥을 영입했으나, 앞서 영입한 안대희가 “무분별한 비리인사 영입은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같은 날 또 다른 영입인사 김종인은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당은 아무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 이런 식으로는 일을 할 수 없다”며 결별을 암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박 측근들의 골프 회동과 선거 돈 살포 추문에 박근혜 사촌들의 부정축재 의혹까지 줄줄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총체적 위기 시점에서 박근혜가 직접 건의까지 한 무상보육 정책에 이명박 정부가 어깃장을 놓고, 내곡동 특검 임명을 거부했던 것도 의미심장하다. 


새누리당은 내곡동 특검에 대해 청와대 편을 들면서도 이명박이 특검을 거부하면 생길 파장에 곤혹스러워했다. 


이런 혼란과 동요는 이명박의 레임덕과 박근혜의 딜레마가 겹쳐진 결과다. 


박근혜의 우파적 본질로 말미암은 [지지율 확장성의 한계 때문에] 중도적 외연 확대가 필요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너무나 작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파 결집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기면 안 되므로 이명박을 내칠 수도 없다. 


이런 모순과 한계 때문에 박근혜는 그동안 우파 결집과 중도적 외연 확대 사이에서 동요해 왔고, 이명박과도 확실한 차별화를 못 하고 줄타기를 해 왔다. 


그런데 수도권과 청년세대 사이에서 반우파 정서가 커지고 결집하는 것을 놔두면 [우파 결집도 흔들리면서] 대세론은 무너지게 된다. 투표 시간 연장 제안을 결사 반대하듯이, 젊은 층이 투표소로 몰려오면 ‘멘붕’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베드로가 예수를 배반한 것처럼 아버지를 부정”했지만, 그럼에도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박근혜도 박정희의 사도이길 포기한 것은 아니다


결국 박근혜의 모순과 위기는 박근혜가 그 정체성 탓에 우파적 기반과 결코 단절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만큼 노동계급 청년세대 중심으로 기층의 반우파 정서가 강력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진보진영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박근혜 필패론’을 더욱 가속화할 공격과 행동에 더 박차를 가하며 독자적 대안을 건설해야 한다. 


※ 이 기사는 약간 축약해 <레프트21> 90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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