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사: <레프트21>15호 "
법 질서 확립? 너나 잘하세요~"
엊그제 113명의 야당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일방 표결로 정운찬이 국무총리가 됐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김정훈 원내수석부대표가 "한나라당이 똘똘 뭉쳐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제2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고 하네요.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반대파에 대해선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겠다는 겁니다. 청문회를 글로 배운 정운찬이나 서양식 아파트를 너무 사랑한 한식 전문가 백희영이나 자기를 처벌해야 하는 이귀남, 이런 자들을 그냥 그 자리에 앉히고 가겠다는 겁니다. (이런 내각이 친서민 내각? 그건 니 생각이고~)
정운찬의 총리 임명 반대는 단순히 정파적 반대 목소리가 아닙니다. 여론의 과반이 총리 임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정운찬과 나머지 인물들의 비리와 혐의들이 주류 특권층의 부패한 실상을 여지 없이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정당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죠. 상대적으로 특권층 기반이 적었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투기, 탈세 의혹으로 총리 후보가 낙마한 일이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이 정권은 좀더 노골적입니다. 이들이 특권층의 3~4세대 들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커왔으니까요. 마치 "우리집은 가난해요. 아빠도, 엄마도, 집사 아저씨도, 정원사도, 식모도, 유모도......"하는 오래된 우스개소리처럼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 첫 내각 후보 중엔 "땅을 너무 사랑해서" 땅을 샀다는 환경부 내정자도 있었고, 유방암 진단에서 이상 무 판정을 받은 기념으로 남편에게 받은 선물이 강남 30평 오피스텔인 청와대 비서관 내정자도 있었죠. 오세훈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11평 집에서 어떻게 발 뻗고 자냐?"고 말했습니다. 도심에 30평대 '서민형' 오피스텔을 만들겠다면서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머리 속에 떠올릴 수조차 없는 일들을 이들은 당연하게 저지르고 내뱉습니다. 점점 가벼워지는 유리 지갑의 월급쟁이 노동자들은 상상도 못할 탈세와 위법을 저지르고도 처벌은커녕 무사히 장관직에 안착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이 사회의 정치 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냉소와 환멸은 커집니다. "그놈이 그놈" "있는 놈들이 다 그렇지 뭐" "니들끼리 다 해먹어라". 내각 인사가 있을 때마다, 또는 고위층 비리 사건이 날 때마다 듣는 표현들입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이 당장은 승리한 듯 보일지 모르지만, 더 깊은 곳에서 '통치'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근시안적 '실용주의'는 주류 특권층이 독점하는 정치체제의 위기를 더 크게 만들 것입니다. (딱히 밀어붙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정부죠, 사실)
이 문제가 조용히 넘가는 듯 보이는 건 한나라당의 생각처럼 사람들이 망각하거나 그 몹쓸 추진력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현실을 바꿀 가능성에 아직 확신이 부족하고, 또 바꿔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 사람들은 사회에서 맡게 되는 지위와 권한이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배웁니다. 처음부터 그런 일에 맡게 교육되고 길러진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막대한 예산을 다루는 일, 공장을 짓고 투자를 결정하는 일, 외국에 나가 협상하는 일 등.
그래서 '민중'이 스스로 운영하는 사회보다 선덕여왕 같은 좋은 정치인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주류가 가르치는 기성 교육은 4년에 한 번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만 국가의 주인이 되는 사회가 민주주의고, 이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반민주적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를 다스리고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죄다 "그놈이 그놈"이라면 도대체 누구로 바꿀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기름때 묻은 '공돌이공순이', 여염집의 '갑남을녀'가 장관을 하고 기업을 경영할까요? 이러니 "대안이 없잖아"하는 푸념에 빠지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경제가 망가지고, 4대강 예산은 복지 예산을 갉아먹으며, 갈수록 살기 더 힘들어지는 현실을 보면, 쟤네들이 썩 그 일을 잘 하는 것 같지도 않네요. 조기 영재 교육 받아서 영어 백날 잘해 봐야 소고기 협상처럼 하고 온다면 특권층의 지위와 능력을 존중한다는 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런 자들이 자기들이 만든 법적 의무조차 안 지키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용해 배를 불려 온 자들이라면 말입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구호로 의회 체제와 타협하고 왕제를 유지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 표현을 빌어 고위 공직자 시비에서 드러난 이 나라 주류 특권층의 구호를 요약하면, "통치하고 군림하되, 책임지지 않는다"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제대로 '잉여' 존재인 겁니다.
그렇다면, 공장을 실제로 돌리는 노동자가 공장을 경영하고, 여염집의 갑남을녀가 경제와 사회, 정치에 대해 뜻을 모아 결정하는 게 그리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최소한 스스로 결과에 책임지는 결정들을 할테니까요.
또 어차피 사회가 돌아가는 건 노동계급 대중이 하는 일들 덕분입니다. 집과 도로를 만들고 제작과 운송을 기획하고 사회서비스를 관리하는 수많은 갑남을녀가 없다면 소수에 불과한 특권층이 뭘 할 수 있을까요.
냉소는 분노의 다른 표현입니다. 환멸과 냉소가 분노와 행동으로 바뀌는 데에는 불쏘시개가 필요합니다. 알리고 선전하며 대안을 주장하는 일, 즉 장작을 쌓는 일이 지금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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