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12월 20일 연평도 포격 훈련을 강행하며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영토방위를 위해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북한 정부는 “남조선 괴뢰들이 떠드는 ‘북방한계선’은 쌍방 아무런 합의 없이 생겨난 것으로 ‘정전협정’은 물론 … 괴뢰들 자신의 ‘해양법’에도 어긋나는 유령계선”이라고 주장했다.

1999년 제1차 교전을 포함해 세 차례 벌어진 서해상 교전은 모두 NLL(북방한계선) 남쪽 인근 해역에서 벌어졌다. 서해상 군사 위기에서 NLL은 남북간에 큰 쟁점이다.[각주:1]

그런데 NLL은 남한 호전파들의 주장과 달리 국제적으로 공인된 국경이 아니다. 오히려 ‘남한 해군의 북상을 막으려고 미국 정부가 그은 선’이다.

△ 서해 5도를 빼면 한강 하구의 두 선이 겹치는 부분만 정전협정 때부터 합의된 유일한 서해의 영해선이다.



1953년 휴전 협상 당시 이승만은 휴전에 반대해 북진 무력 통일 주장을 고수했고, 해군을 동원해 황해도 연안을 계속 군사 공격했다. 이런 이승만을 막으려고 미국 정부는 유엔사령관을 통해 NLL을 발표했다.

당시 한국전쟁을 마무리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한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의 호전성을 우려해 반(反) 이승만 쿠데타까지 모의할 정도였다.

그래서 미국 정부도 이 선을 해양 국경선으로 공식 인정하지 않는다. 연평도 남북 포격 사태 후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이 ‘NLL을 북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남쪽으로 변경하자’고 주장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심지어 베트남전을 주도했던 미국의 전쟁광 헨리 키신저마저 외교 문서에서 “NLL은 일방적으로 설정됐고 … 국제법과 미국법에 배치된다”고 말했던 것이 최근 공개되기도 했다[각주:2].

남한의 우익들이 NLL의 효시라고 내세우는 클라크 라인은 한국전쟁 당시 ‘해상 봉쇄선’으로 영해선과는 다르다. 더구나 유엔의 국제 공인을 받지 못해 미군 스스로 1953년 8월에 철폐한 선이다[각주:3]

그래서 북한 정권은 NLL을 국경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1956년부터는 해마다 NLL을 넘으며 불인정 의사를 드러내 왔다. 더구나 서해 5도는 남한 영토보다 황해도 연안에 더 인접해 있어서, 백령도(천안함)나 연평도(포격훈련)에서 벌인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북한에 실질적인 군사 위협이 된다.

그래서 북한은 1977년에 서해 5도 이남에 자체 군사분계선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선도 NLL처럼 근거 없긴 마찬가지다.

1953년 정전협정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상호 합의한 군사분계선만 인정한다고 한 바 있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는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고 해 합의한 경계선이 그동안 없었음을 분명히 했다. 이 말은 우익인 노태우 정부도 NLL이 국경이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주권 행위” 운운하며 위협적 군사훈련을 강행하고 미국이 이를 응원한 것은 전혀 명분이 없는 짓이다.

사실 NLL의 진실을 이해하고 나면 연평도 포격 사태의 본질이 ‘남북 상호 포격 사태’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휴전선 남북의 두 사고뭉치 정권은 평화와 한반도 민중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자존심 대결을 지속하고 있다.
바다 위에 멋대로 선을 그어놓고 자칫 국지전을 불러올 수도 있는 군사적 위협 행위를 반복하는 일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아무튼 휴전선 남쪽에 있는 정권이 NLL 문제에서 명백한 거짓말을 하는 사고뭉치 정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이 글은 다듬고 약간 축약해 <레프트21> 47호에 기사로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 더 상세한 내용을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故 리영희 교수의 명저 <반세기의 신화>를 참조하세요.


  1. 12월 20일 상황을 두고 북한의 외교술이 이겼고, 남한 정부가 고립됐다는 평가도 있던데 이것은 단견이다. 북한이 굴욕을 당한 것이고, 한미동맹의 압박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여 준 것이다. [본문으로]
  2.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를 인용해 한국 언론들이 12월 중순 일제히 보도했다. [본문으로]
  3. 故 리영희 교수의 저서 ‘반세기의 신화’를 참조하시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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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가 ‘문제적 발언’을 쏟아내며 ‘연합정치’ 행보를 재개했다.

심 전 대표는 11월 17일 민주당의 이른바 486 의원 모임인 ‘진보행동’ 출범식에 진보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해 “386세대”란 말 대신 “87세대”라는 표현을 쓰자며 공통점을 부각했다.

그는 23일 부산 ‘진보광장’ 토론회에서 “나는 개혁세력에게 … ‘개혁세력이 진보 이슈를 먹어버려라’고 얘기한다. 반면에 진보 세력에게는 ‘개혁세력의 힘을 먹어버려라’고 얘기한다. 양 쪽 다 성찰이 필요하다. 이렇게 좁혀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17일 심상정의원이 민주당 모임에 참가해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이인영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출처 민주당


심 전 대표가 했다는 “성찰”은 이렇다.

“용산, 비정규 집회... 열심히 외치고, 농성하고... 공허한 일이었다. 그들과 ‘함께 비를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는 비를 함께 맞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각주:1]

이제 그에게 진보적 개혁의 주체는 국가기구에 올라탄정부(집권) or 의회에 있는 ― 엘리트들이고 대중은 수동적인 개혁의 수혜 대상일 뿐인 것일까.

이런 발상에 따라 그는 (민주당을 포함하는) “야당 간 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한 상설협의체를 제안”했다[각주:2].


그래서 “개혁세력이 진보 이슈를 먹어버려라” 하는 말은 민주당이 비정규직 같은 이슈에 관심을 보여 연합의 명분을 만들어 달라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진보세력에게
‘개혁세력의 힘을 먹어버려라’ 하는 그의 주문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까[각주:3].


투쟁은 “공허”하니 민주당과 연합하자?


근로자파견법과 비정규직 악법 등을 만들어 비정규직을 공격해 온 장본인인 민주당과 손잡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우리 편의 입장을 후퇴시키고, 투쟁을 가로막을 수 있다[각주:4].


이래로부터 투쟁이 “공허”하다며, 민주당과 하는 협력을 통한 ‘위로부터 개혁’을 강조하는 그는 국가기구의 위신과 권능을 인정하는 태도까지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3년 만에 상승[常勝]의 최정예 우리 군은 연전 연패의 당나라 군대가 되어가고 있는 … 우려스런 현실”이라는 주장은 그의 이런 태도를 보여 준다.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등 침략적 한미군사동맹에 반대해 왔던 그로선 명백하게 진보에서 후퇴하는 변화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 부원장 노항래는 “이제 진보·개혁 진영이 이명박 정부의 ‘안보 무능’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각주:5], 심 전 대표가 어떤 정치세력과 코드를 맞추고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성찰”을 통해 민주당의 “87세대”와 차이를 “좁혀 나가”는 방식이다.

따라서 자신의 ‘연합정치’는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연합’이라는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 스스로 진보의 가치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그의 ‘연합정치’는 진보적 대의와 강령에서 후퇴하는 선거공학적 정계 개편 시도에 가깝다.

심 전 대표가 “공허”하다고 폄하했지만, 용산 철거민들은 “열심히 외치고, 농성한” 덕분에 그나마 총리 사과와 생계 보장을 받아냈다. 최근에는 기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구호대로 “함께 비를 맞은” 사람들과 끈질기게 싸워서 승리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투쟁 속에서 자본가 야당과는 다른 진보적 대안을 건설하는 일이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6호에 실었습니다.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9008

  1. 11월 23일 부산 진보광장 강연회에서. 출처는 심상정 블로그. 그래선지 그가 속한 진보신당이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지원에 열중하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울산을 방문하지 않았다. 다만, 부산에 입원해 있는 분신한 황인화 조합원에게만 위문 방문을 했다. [본문으로]
  2. 11월 13일 전태일 40주기 추도식에서. [본문으로]
  3. 개혁세력이 진보의 이슈를 붙잡는 게 공동의 의제로 연합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면, 진보세력이 개혁세력의 힘을 먹겠다는 것은 사실은 진보세력이 개혁세력과 조직을 합친다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는 진보정당들이 더 큰 민주당 등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본문으로]
  4. 이것이 이명박의 비정규직법 개악 막기, 촛불항쟁 때 소고기 수입 막기, 미디어법 개악 막기, 타임오프제 막기, KEC/MBC 파업 등에서 숱하게 반복된 일이다. [본문으로]
  5. 12월 2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 진보신당 상상연구소와 평화네트워크 공동 주최 토론회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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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무능’이 문제라고 말하는 진보진영 일각의 주장은 우려스럽다.

가령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 군의 대포들이 왜 유사시에는 새떼를 쫓고, 허공을 가르는지 의문 투성이일 뿐”이라며 “이명박 대통령 집권 3년 만에 상승[常勝]의 최정예 우리 군은 연전 연패의 당나라 군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질타했다.

심 전 대표는 앞뒤 맞지 않게 ‘평화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긴 하지만, “우리 군”의 ‘군사적 무능’을 걱정하는 그의 주장은 호전적 매파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상승(常勝)의 남한 군대에게 바라는 것이 이런 전투인가.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종북주의’ 낙인이 찍힐까 봐 국회의 대북규탄결의안에 기권한 반면,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옳게도 반대표를 던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회대북규탄결의안―민주당의 호전성이 드러나다 를 보시오.)

그런데 정작 진보신당 안에선 아연실색케하는 주장들이 나온다.

최병천 사회민주주의연대 집행위원은 “나치즘과 파시즘은 ‘무찌르는 것’이 역사적 정의(正義)이지, ‘양비론적’ 평화를 외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대북결의안을 찬성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단체 기획위원인 홍기표도 “외국의 포탄이 본토에 떨어진 마당에 … 단호하고 신속한 대응을 … 요구하는 게 … 무리한 건가” 하고 말하고는 조 대표의 표결로 “반공 정서에 물든 노동계급을 탈환해서 … 수권가능한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는 … 구상이 물 건너 가는것이 아닌가” 하고 비판한다.[각주:1]

냉전 우익의 반공주의를 연상시키는(수사와 구호를 일부 차용한) 이들의 주장은 제1차세계대전에서 제국주의 조국의 수호를 외치며 전쟁을 찬성한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 당들은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혁명을 분쇄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야합했고[각주:2], 체제에 충성을 바친 대가로 기성 정치권에서 입지를 다졌다.

지금 북한은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각주:3] 세계 민중과 남한 민중의 안전을 위협하는 주범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 제국주의와 남한 정부가 진정한 위협 세력이다[각주:4].

이런 상황에서 진보신당 내 온건파들이 북한을 향한 호전주의 주장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남한 자본주의를 향한 충성심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을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6호에 실었습니다. 기사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8995

  1. 최병천과 홍기표는 국회대북규탄결의안이 호전적이라는 점을 부인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들의 반공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아전인수다. [본문으로]
  2. 이들은 반공을 당 강령에 포함시키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에서 반파시즘 레지스탕스 세력의 집권을 막으려는 미국의 시도에 협조했다. 미국은 이 레지스탕스들을 공산당이 주도한 점을 문제삼았다.경제적으로 마샬플랜을 제공했고 이탈리아 같은 경우 지중해 함대를 배치하고 위협했다.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서유럽 공산당들은 순순히 미국의 협박에 따랐다. 그리스는 그 결과 반나찌 저항세력이 미군에게 물리적으로 궤멸됐다. [본문으로]
  3. 쇠락한 독재국가 북한은 오히려 혐오 대상이다. 반공주의는 이 점을 이용해 북한 체제나 정권의 노선과 관계 없는 좌파 전체(그리고 사회주의 대안)의 신용을 떠어뜨리려 한다. [본문으로]
  4. http://www.left21.com/article/8993 를 보시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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