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신문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은 6인의 첫 재판이 916일 오전에 열렸다.

6인은 57일 서울 강남역 앞에서 <레프트21> 정기 거리 판매에 참여했다가 “사상 검증” 운운하는 서초경찰서 소속 경찰들에게 폭력적으로 연행된 바 있다.

그뒤 약식 기소된 6인은 미신고 불법 집회를 개최했다는 죄목으로 벌금형 총 8백만 원을 선고 받았다.

부당한 연행과 판결에 굽힐 수 없다고 판단한 <레프트21> 판매자 6인은 “<레프트21> 판매자에 대한 벌금형 철회와 언론 자유 수호를 위한 6인 대책위원회(6인 대책위)”를 꾸려 정식 재판을 청구하고, 각계 인사 1백여 명의 서명을 받아 항의서한을 제출하는 등 활동해 왔다.

오늘도 이들은 재판이 열리기 전인 940분에 법원 앞에서 “<레프트 21> 판매자 벌금형 철회·언론 자유 수호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 집회는 미디어행동·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단체 뿐만 아니라 참여연대·다함께·민주노총·민주노동당 등이 공동 주최했다[각주:1].

“억지 수사와 반민주적 판결은 정부 비판적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

이 집회에서 김인식 <레프트21> 발행인은 “<레프트21>의 신문 판매는 기성 언론과 다르다. 우리는 판매 과정에서 독자와 소통하려 하므로 거리와 작업장, 대학에서 직접 대화하며 판매를 한다. 검찰이 이를 집회로 규정해 탄압하려는 것은 이런 네트워크를 가로 막는 것으로 이런 의견 교환의 자유마저 막는 것은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조차 안 된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정성희 최고위원은 “<레프트21>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를 일관되게 비판하며 진실을 말해 온 신문”이라며 “세계적으로 빈익빈부익부를 만들려는 게 G20인데, 이 정부가 G20 개최를 계기로 민주적 권리를 심각하게 탄압하려 한다. 그래서 <레프트21> 탄압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동희오토지회 이백윤 지회장도 “<레프트21> 판매자들과 함께 연대하겠다”고 발언했다. 동희오토 조합원들은 56일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 촛불집회 도중 연행됐다가 서초경찰서 유치장에서 <레프트21> 판매자들을 만난 바 있다.

결의문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이지은 간사가 대표 낭독했다.

이어 서울중앙지방법원 408호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6인대책위 김지태 대표는 검찰의 기소 내용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모두진술 전문 보기)

그는 검찰이 기소장에 정당한 신문 판매 행위를 집회로 규정한 것 자체가 잘못이며, 유료로 판매하는 신문을 유인물 배포로 묘사한 것은 명백한 사실 조작이라고 폭로했다.

김지태 대표는 독자와 소통하려는 <레프트21>의 판매 방식을 인정하지 않고 불법 집회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상 정부 비판적인 언론을 탄압하는 정치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서른 명이 넘는 방청객들이 김지태 대표의 통쾌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형사22단독 소병진 판사는 갑자기 모두진술을 중단시켰다.

다른 재판도 진행해야 하니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앞으로 재판이 계속 될테니 그때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에게 부당하게 기소된 이들이 첫 재판에서 기소 내용 전반에 대한 반박 의견을 밝히는 모두진술과 재판 과정의 심문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더구나 모두진술권은 피의자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다.

판사는 자신의 법정에서 정부 비판적인 변론이 계속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듯하다. 결국, 판사는 모두진술 재개 1분 만에 발언을 다시 제지하고 항의하는 김지태 대표에게 퇴정 명령을 내렸다. 김지태 씨는 청원경찰에 의해 법정 밖으로 끌려 나갔다[각주:2].

이렇게 민주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서 법의 권위가 설 리 없다. 결국, 판사는 변호인의 항의를 받아들여 다음 재판에서는 김지태 씨의 모두진술을 보장하기로 했다. 김지태 대표와 5인의 당당하고 단호한 태도와 많은 사람들의 지지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다음 재판은 1021일 오전 11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1. 공동 주최 단체는, 6인 대책위, <레프트 21>, 미디어행동,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연대, 촛불네티즌 공권력탄압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 구속노동자후원회, 다함께, 참여연대. [본문으로]
  2. 불구속 재판에서 피고인을 퇴정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판사 자체가 재판을 거부한다는 것인데, 참 황당한 상황이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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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과 종로통 일대는 주황색 풍선과 붉은 손팻말을 든 사람들로 북적댔다. 풍선과 팻말에는 “흘러라! 강물, 들어라! 청와대” “생명 파괴 민생 파괴 4대강 공사 중단”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날 시민사회·노동·종교·정당 등 단체들은 ‘4대강 공사 중단을 위한 국민행동’을 개최했다.

경찰청장 ‘조혐오[각주:1]’ 취임 후 첫 대중 시위였다. 경찰은 집회를 불허하고,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동화면세점 앞 등에 모인 시민들을 에워싸고 이동을 가로막았다. 광화문 우체국 근처에선 인간띠잇기를 하는 시민들을 방해했다.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항의는 넘쳐났다.

많은 시민들이 “집회의 자유도 없는, 이런 게 공정 사회냐”고 항의했다. 인터넷 공지를 보고 참가했다는 한 시민도 “이명박 정부는 수백억 원을 들여 홍보하고, 그것도 부족하다고 방송 장악한다고, PD수첩 막고, 낙하산 사장 보내고 하면서 우리는 모여서 목소리도 못 내게 한다”고 말했다.


산발 시위가 끝나고 시민들은 이날 유일하게 허가가 난 보신각 앞 문화제 장소로 모였다. 집회가 시작하자마자 비가 쏟아졌지만, 장소를 꽉 메운 시민 2천여 명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날 야 5당 정치인들도 참가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 민주당 사무총장 이미경, 국민참여당 대표 이재정 등이 연단에 섰다.

이들은 모두 국회 차원의 ‘4대강 사업 검증 특별위원회’(검증특위) 구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매우 정당한 요구다. 4대강 사업의 효과와 진행 절차가 모두 의혹투성이기 때문이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최근 4대강 사업 적자가 투자 예산의 4분의 3이나 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각주:2].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 30만 개 창출도 실패했다. 현재 공사 시작 후 늘어난 일자리는 24백 개에서 13백 개(이 중 정규직 130) 사이로 추정된다[각주:3].

그러나 검증특위가 국회 내 기구라 해서, 야당의 협상에 맡겨 놓고 국회만 쳐다 보고 있으면 위험할 수 있다.

첫째, 검증특위 자체는 4대강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할 기구가 아니다. 오히려 한나라당 의원도 참여해야 하는 기구다. 따라서 검증특위 구성을 두고 한나라당과 벌이는 전투는 정부의 시간끌기에 이용되는 소모적인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각주:4].

둘째, 검증특위가 공사 중단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검증특위가 구성돼 폭로를 효과적으로 하더라도 대중행동이 아니면 막을 수 없다. 이미 4대강 공사가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것이 갈수록 분명해지는 데도 이명박 정부가 강행을 하는 것은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말처럼 “4대강 사업마저 못하면 완전히 레임덕이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대강 공사 반대 운동은 어떤 요구든 국회에 압력 넣기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보진영은 4대강 문제를 다른 운동과 연결시키며 운동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이날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4대강 예산] 22조 원이면 최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 불법 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면서 4대강 예산을 비정규직 노동자 850만 명에게 사용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방식으로 노동자운동 등과 4대강 반대가 결합되는 것도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의 한 서울지역 당원은 “4대강 공사 반대 여론이 높지만 이명박을 막는 힘이 부족한 것은 반대 여론이 표출될 공간이 없어서인 듯하다”고 대중 시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저녁 문화제 연단에서 4대강 모두에서 공사가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영산강과 금강을 관할하는 민주당의 전남도지사(박준영)와 충남도지사(안희정) 등이 4대강 공사를 찬성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민주당에게 분명한 태도를 취할 것을 좀더 공개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민주당의 모호함을 볼 때 진보진영은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에서도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필요성이 크다.



  1. 나는 이게 그 자의 본명인 듯 느껴진다. [본문으로]
  2. 정부와 우익들은 정부 재정 적자가 커지는 것을 우려해 공공요금 인상, 공공부문 구조조정, 공기업 민간 매각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말을 흘린다. 그러나 진정한 예산 낭비는 이명박 정부가 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안그래도 부채덩어리가 된 수자원공사에 8조 원이나 되는 부채를 새로 안기는 것도 4대강 죽이기의 ‘성과’(?)다. [본문으로]
  3. 어제 집회에서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2천4백 개를 인용했고,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1만 3백 개를 언급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새로 생긴 일자리가 3천여 개라고 밝혔다. [본문으로]
  4.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은 검증특위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상황 봐서 불리하다 싶으면 못 이기는 척 협상을 하는 척 하면서 지역 토호들의 압력에 야당 시도지사들의 입장이 후퇴하길 기다리는 방식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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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개각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고위 공직자들과 이 나라 기득권 엘리트들의 추한 일상이 곳곳에서 까발려졌습니다. 결국, 김태호 총리 후보 등 네 명이 자진 사퇴를 했죠.

뇌물, 투기, 위장전입 등. 네 명만 문제가 아닙니다. 경쟁교육=특권교육의 앞잡이인 이주호나 유일한 생계수단인 일자리를 빼앗지 말라는 노동자를 살인무기에 가까운 진압 도구와 작전으로 진압한 일을 ‘보람’으로 여기는 조‘혐오’ 같은 자들도 자리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니 이젠 개각에서 유임된 유명환의 딸이 문제가 됐네요. 무단 결근하고 자기 부모 통해 해결하는 등의 일로 별명이 “외교부 3차관”(아버지인 유명환이 당시 외교부 제1차관[각주:1])이었다고 하죠. 이번 특채 응시에선 채용 자격 자체를 유명환 딸에 맞춰 바꿨군요[각주:2].

결국 방금 사의를 표명한 유명환은 민주당 찍은 젊은이는 모두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는 막말을 했던 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외교부 공무원 직을 세습하는 유명환이야말로 북한으로 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새로 임명할 자들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기존의 인물들 모두 문제가 넘치는 자들입니다. 진정한 이 나라 주류 특권층의 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쓰는 인재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것이 계급사회에서 가진 자들에게 만연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억울해 하며 감싸주기도 잘 합니다. 물론, 가끔은 대중의 불만이 너무 클 때는 나머지들이라도 살려고 다른 놈을 쳐 내기도 합니다.

그게 집권당 내분이나 여야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더 큰 시야에서 보면 둘다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최근 민주당이 제 식구 비리 감싸는 걸 보면 이 문제는 더 선명해집니다.

민주당은 뇌물 먹은 의원 강성종의 구속을 막으려고 한나라당과 방탄 국회를 해왔고, 지난 체포동의안 처리도 사실상 반대했습니다. 이때 한나라당 당론은 체포동의안 찬성이었는데, 당론 이탈표가 꽤 되더군요. 전북 고창군수 이강수의 성희롱 사건도 여태 미적지근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전남 여수의 뇌물 사건이 또 터졌구요.

민주당이 지금은 이명박의 반민주 정책 때문에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야당하던 흉내를 내지만 그들은 불과 3년 전에 10년을 집권해 온갖 호사를 누리던 자들이었습니다. 그 권력을 이명박과 별 다를 바 없는 정책을 추진하고, 한나라당 엘리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특혜를 추구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기업주들의 후원에 기대는 기득권 정당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지배계급을 포함한 기득권 집단 안에서 더 주류인 당(한나라)과 조금 덜 주류인 당(민주당 등)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1987년 이후 가장 많은 국가보안법 구속자를 냈고, 노무현 정부는 가장 많은 노동자를 구속했습니다. 반면, 살인마 전두환·노태우는 사면됐고, 수백억 탈세한 이건희는 아예 재판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보다는 낫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는 정부는 아니었습니다[각주:3].

그래서 어느 분들의 예상과 달리 민주당은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도 별로 날카롭지 않았습니다. 민주노동당 한 보좌관은 트위터에서 전직 국회의원 지원 금지법안 발의 서명을 민주당 의원들도 좀체 하지 않으려 받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이런 자들이 국회를 점령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체제에서 삼권분립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출신과 정책 지향에서 그놈이 그놈이기 때문에 국회가 행정부를 진정으로 견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국회에서 위장전입 같은 건 합법으로 바꿔주자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1인1표는 현실에서 공평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습니다. 늘 뭔가 세상 돌아가는 데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제도교육과 기성언론, 형벌제도는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쥐어줍니다. 

돈이 있기 때문에 늘 더 많은 선전수단을 사용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을 자신들을 위해 동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들을 만들어 냅니다. 수권능력이니, 품위니, 학벌이니 하면서 자신들을 포장합니다. 급할 땐 지역감정 같은 것도 이용해 먹습니다. 그래서 돈과 권력을 더 많이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표를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그 점에서 자기들끼리는 당연하게 여기지만 대중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욕망을 추구하고, 속마음을 교환하고 협력하며, 때론 경쟁하기도 하는 가진 자들의 네트워크가 진짜 권력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출되진 않았지만 이들이 각 권부의 수장으로, 때로는 뒤에서 국가기구와 대기업, 조중동 등 언론 등의 연결망을 짜면서 도사리고 있습니다. 법보다 세다는 ‘삼성공화국’도 어쩌면 이 네트워크가 가진 다양한 이름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각종 사회단체들이 필요합니다. 가진 자들의 네트워크에 맞설 노동자와 없고 차별 받는 자들의 조직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대중은 그런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집단적인 저항을 할 때만 의식과 삶, 세상의 혁신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진보정당이 할 일은 민주당 꽁무니 따르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진보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이라면 업무상 불가피하게 기존 기득권 정당들의 정치인들과 연관을 맺더라도 늘 경계하고 주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칫 근묵자흑[각주:4]되서 진보정당이 하는 기존 체제 비판, 요구와 대안이 모두 명분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헌정회육성법도 그런 점에서 문제인 것입니다. 이정희 대표의 해명을 보면 이 대표가 법안의 성격을 몰라서 그런 판단을 했던 게 아닙니다. “이것까지 반대할 수 있나” 하고 판단했던 것 자체가 다른 당 의원들의 눈치를 봤다는 것이고, 그들의 기득권 구조에 대한 예리한 대립각을 스스로 무디게 하면서 그 구조적 문화에 ‘적응’해 간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이번에는 8월 31일 관보에 신규 선출직 공직자들의 재산이 공개되면서 민주노동당 소속 전북도의회 이현주 비례의원의 투기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6·2 지방선거 때 전북도당 유세 모습.


이현주 의원은 보건노조 군산의료원지부 지부장으로 민주노총의 간부 활동가인 분입니다.노동운동 출신의 진보정당 공직자에게서 드러난 부동산 투기 의혹은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우파 언론의 물타기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의원의 직장인 군산의료원에서 휴직 처리를 해 주지 않아 안팎에서 지방공기업 직원과 의원직을 겸직한다는 공격을 받고 있는 터에 이런 식의 도덕성 흠집내기는 지역에서 진보정당의 위세를 매우 약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현주 의원은 부부 명의로 아파트 네 채(각각 두 채씩)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중 두 채가 소아마비 장애인인 친동생을 위해 마련한 것이고, 친정 부모 명의의 다섯 채는 자신과 상관없는데 직계존비속의 재산을 함께 신고한 결과일 뿐이라고 해명합니다. 

진보정당 정치인이라고 무조건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원래 물려받은 재산이 많다면 그것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사느냐가 문제겠지요.

그 점에서 일부 언론이 자극적으로 아홉 채 보유 어쩌고 하는 건 좀 과장입니다. 자산가 집안에서 서로 명의를 주고 받으며 투기를 할 수준도 아닌데, 부모의 투기까지 정치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부모 앞으로 명의 돌려놓고 부모 명의의 재산은 신고하지 않은 작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여러 정황을 따져 보면 특권층 비리와는 명백히 다르고 탈세 사실도 없으며, 차익의 규모도 적은 듯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자산 증식 수단으로 부동산 다주택 소유를 선택했다는 점 자체는 부인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이 의원의 해명을 그대로 믿더라도 새로 삼학동 대우아파트로 동생의 거처를 옮길 때 처음 동생에게 사 준 나운동 주공아파트를 왜 처분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은행 대출도 총 1억 원 가까이 받았던데요[각주:5].

관보에 실린 아파트 내역과 군산 지역 언론, 이 의원의 해명을 종합하면(현재까지 사실로 밝혀진 바), 나운동에 소재한 아파트 두 채가 자산 증식용으로 구입한 것으로 보입니다[각주:6]. 굳이 살지도 않는 집을 적어도 두 채나 보유한 건 노동운동 간부 활동가로서나 진보정당의 공직자로서 적절한 처신으로 볼 순 없습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어렵게 구입해 사는 집 한 채의 가격이 올라 자산이 늘어난 것과 다릅니다. 우리가 부동산 투기를 비난하고 진보정당의 공개적인 정책으로 1가구 1주택을 요구하는 것은 그런 의도적인 자산 투기가 부동산 가격을 올려 그 비율 만큼 따라 상승하지 못하는 노동자와 서민들의 자산을 사실상 강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분명하게 해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시급히 사건을 판단하고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으로만 보면, 특권층 비리와는 다르므로 의원직 박탈 같은 징계는 과도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적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광역 비례 의원이면 전라북도 전역에서 개인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표로 당선한 것입니다. 진보정당답게 판단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길 바랍니다.



  1. 외교부 제1차관은 인사와 기획조정을 담당하는 장관 다음의 실세. 차관 시절에 해고 걱정 없는 계약직으로 들어와 아버지가 장관되니 이젠 정규직으로... 정말 누구 말대로 유명환의 딸이 특채로 뽑힌 직무의 전임자는 왜 그만 뒀는지까지 궁금해지네요. [본문으로]
  2. 이쯤에서 복지부장관에 내정된 진수희가 자기 딸의 미국 국적 부분을 질타하는 여론에 “나라 위해 큰 일을 할 애”라며 안타까운 해명을 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ㅋ 이 정부를 보면 그 큰 일 안 해주면 좋겠어요. [본문으로]
  3. 두 정부가 집권할 때 받았던 기대감을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그 기대가 무너진 대가가 2007년 대선에서 높은 기권율과 이명박 당선이었습니다. [본문으로]
  4. 근묵자흑 [近墨者黑]: 먹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으로, 사람도 주위 환경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바뀌어 간다는 것을 비유한 한자성어임. 이 글에선 나쁜 무리와 어울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뜻으로 썼음. 좋은 사례로도 쓸 수 있음. 같은 뜻의 대구가 되는 성어로 근주자적[近朱者赤]이 있다. [본문으로]
  5. 이 의원은 당시 추가 대출을 4천9백만 원 받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6. 나운동 쪽 재건축이 많던데, 재건축 프리미엄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합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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