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친기업 성장과 보수, 문재인 전략적 모호함, 심상정 비교적 친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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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후신인 두 당이 일찌감치 당선권에서 멀어져 군소 후보로 전락하면서 집권당 교체는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상 최대 시위를 다섯 달 동안 벌인 사람들에게는 현 대선 국면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촛불 운동 덕분에 당선권에 쉽사리 접근한 두 주류 야당 후보들이 촛불의 염원을 구현하기보다는 중도보수 유동층 끌어들이기 경쟁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중 비서실장 출신 박지원과 동맹해 호남의 전통적 야권 지지층에 기댔던 안철수는 최근 ‘민주당보다는 기업주 출신이 낫다’는 보수층의 지지를 받으며 그들 입맛에 맞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은 이런 안철수를 정권 연장 적폐 세력과 손잡았다고 비판한다.

경제·노동 공약에서 문재인이 안철수와 차별성이 있다면 공공부문 일자리 80만 개를 창출하겠다하는 계획일 것이다. 그러나 법인세 인상은 기업의 수익성을 낮춘다며 반대하는 문재인이 충분한 재원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것 같지 않다.

그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리자고도 하지만, (엄연히 근로기준법이 주40시간 노동제이고, 예외적으로 52시간까지 허용하고 있는데) 노동부 행정지침을 출발점 삼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주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입법을 대단한 양 포장한다. 52시간 제한은 집권해서 노동부의 행정지침만 폐기해도 되는 문제다.

문재인은 성과연봉제 자체를 반대하지 않고 그 추진 방식을 주로 비판한다. 최근 공무원 노동자 집회에서는 마지못해 공무원 성과퇴출제를 폐기하겠다고 했지만 말이다. 문재인은 줄곧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2012년 대선과 2016년 총선에서 한국노총의 조직적 지지를 받았던 문재인이 2017년 대선 후보 검증과 지지 후보 결정을 위한 한국노총의 노동정책 질의에는 시한까지 답변하지 않았다. 한국노총 지도부가 수모를 감수하며 지각 답변을 받아 줬지만, 노동계와 거리두기로 보수층에게 어필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안철수가 차차기 정권이 들어설 5년 뒤에야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도록 하겠다고 해서 비판 받았는데, 문재인은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만 하고 분명하게 목표와 계획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선 후보 주요 입장

※ 19대 대선 공약 발표(2017년 4월 11일까지) 기준

주요 요구문재인안철수심상정
사드 배치 철회XXO
성과연봉제 폐기XO
한일군사정보협정 폐기입장 없음XO
철도, 의료, 에너지
민영화 반대
입장 없음모호
(삶에 밀접한 관계 있는
공기업 민영화 반대)
O
생명 · 안전 업무 외주화
· 비정규직 사용 금지

(정규직 고용 원칙)
입장 없음O
규제프리존법 폐기XO
최저임금 1만 원
(즉시)
모호
(점진적 인상 노력)
O
(2022년)
O
(2020년)
파견법 폐지입장 없음입장 없음O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O유보O
임금, 조건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X
(주 52시간)
X
(연간 1,800시간)

(주 40시간,
연간 1,800시간)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OXO
공무원, 교사 노동자
노동3권 보장
X
(노동기본권 보장)
X
(전교조 · 공무원노조
법적 지위 회복)
O
국공립 보육시설
40%로 확충
O입장 없음
(비율 제시 안 함)
테러방지법 폐지입장 없음XO
차별금지법 제정X입장 없음O
파업 손배 가압류 금지입장 없음
(제도 개선)
O
법인세 인상XXO
핵 발전 중단
신규 원전 반대

신규 원전 재검토

신규 · 건설 중 원전
모두 중단

문재인은 주요 야당 후보 중 가장 늦게 박근혜 퇴진 요구에 지지를 보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 놓고는 헌재의 평결 결과에 관계없이 승복하겠다고 했다.

안철수와 달리 상대적으로 포퓰리즘적 기반이 있는 문재인은 좌우 양쪽에서 민감한 쟁점에는 입을 다무는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해 비판을 피해 가려 한다. 최저임금만이 아니라, 교사와 공무원의 노동3권, 규제프리존법, 사드 배치 등등. 물론 11일에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계속 핵을 고도화해 나간다면 그때는 사드 배치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해 모호함을 조금씩 더 걷어 내기 시작했다.

문재인의 오른쪽 눈치 보기가 심해진 것은 안철수의 급부상을 의식해서일 것이다.

안철수는 반기업 정서는 실체가 없다며 전통적인 성장 담론을 되살린다. 또 정부는 사기업 성장을 위한 기반 닦는 것만 하고 일자리 창출 등에는 나서지 말라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는 당연히 규제프리존법처럼 박근혜가 혈안이 돼 통과시키려 했던 규제 완화 조처들을 찬성하고 법인세 인상에도 반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동산 보유세나 상속증여세 인상에도 반대한다. 부자 증세에 반대하니 정부 재정을 늘려 복지를 확대하고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노동계급의 소득을 늘리는 계획은 고려 대상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딸의 재산 공개 거부로 구설수에 오른 안철수가 상속증여세 인상에 반대하는 것도 부도덕하다.

당연히 박근혜의 노동 개악 폐기나, 민주적 권리 보장과 회복에 대한 공약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는 테러방지법 제정 때도 찬성했다.

기업주 출신 안철수가 싫어서 차라리 문재인이 낫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실천과 말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반면,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 후보인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캐치프레이즈로 걸고 노동계의 요구를 성과연봉제 완전 폐기나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 파견법 폐지와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주40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계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야당 후보들과 달리 노조 투쟁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금지(노란봉투법)나 위험 업무 정규직화, 고통분담은 상위 1퍼센트부터 등을 분명히 말한다.

원외 진보정당인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도 출마해 노동계 요구를 대폭 수용하고 있다. 부자 증세와 복지 확대도 주장한다. 진보당 해산이라는 국가 탄압을 겪은 후보답게 테러방지법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집시법 개정으로 경찰차벽과 물대포 등을 금지하는 정책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당선 가능성이 큰 두 대선 후보들이 벌써부터 노동자와 퇴진 촛불의 염원을 외면하고 우경화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투쟁과 영향력이 더 커져야 하는 이유다.

청년·학생 모여라! 분노의 촛불 세대를 위한 토론 광장 | 4월 29일(토) ~ 4월 30일(일) |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신세계관(연세대세브란스병원 맞은편) | 주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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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의당 당명 개정 총투표

‘민주사회당’이 새 당명이 되길 바란다


<노동자 연대> 182호 | 입력 2016-10-05



정의당은 9월 25일 임시 당대회에서 결정한 대로 “민주사회당”으로 당명 개정 여부를 10월 6일부터 시행될 당원총투표로 결정한다.


정의당 내에서는 투표 전 열흘 동안 다양한 찬반 운동과 토론이 진행됐다.


당명 개정의 필요성 논거는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되는 듯하다. 하나는 절차에 근거한 것이다. 지난해 진보결집+(더하기),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 등과 통합 때 당명 개정을 합의했고, 이를 통합당대회에서 결정했으니,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논거는 “정의당”이라는 당명이 불평등과 차별이 심화되는 이 체제에서 나름의 가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지향하는 바가 모호해서 더 선명한 이름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정의당 일각에서는 이번 당명 개정 절차 자체가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당명 개정은 정의당이 노동운동의 좌파 리더들을 포함한 상대적 좌파 세력들과의 통합 과정에서 합의했던 것이다.


주류 사회민주주의


현재 당원 찬반 투표 후보에 오른 대안적 당명 “민주사회당”은 좌파 지식인으로 활동해 온 한신대 노중기 교수가 제안한 것이다. 정의당 좌파 다수의 지지를 받는 듯하다. 당대회 투표에서도 압도적으로 1위를 했다.


노 교수 등 “민주사회당” 지지자들은 정의당이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추구하는 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주류 사회민주주의부터 좀 더 좌파적인 민주적 사회주의까지 포괄할 수 있는 “민주사회당” 명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주류 사회민주주의가 그 본산지인 유럽에서 배신과 타락으로 실패한 마당에 “사회민주주의”(사회민주당)보다는 더 왼쪽의 경향까지 포괄 가능한 ‘민주적 사회주의’가 새 당명과 기조로 좀 더 나은 듯하다. 배신의 전력 때문에 주류 사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들(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주류 사민주의는 약화돼 왔다. 대신에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인 영국 노동당의 코빈, 독일의 좌파당 등이 최근 개가를 올렸고,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도 기성 사민당의 대안으로 각각 포데모스와 시리자라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 좀 더 유력하다.


물론 민주적 사회주의는 혁명적 사회주의가 아니다. 20세기 초 독일 사민당에서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 베른슈타인, 스탈린주의에서 사실상의 사회민주주의로 전환한 유러코뮤니즘 등이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여러 버전의 좌파 개혁주의들도 그런 명칭을 쓴다. 오늘날 구 소련의 관료 독재 체제와 정치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보여 주고자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듯하다.


상식의 패권


정의당 우파는 “민주사회당” 명을 부결시키자는 온라인 캠페인을 벌이는 듯하다. 참여계의 일부는 “사회민주당”(당대회에서 2등을 함)을 지지하는 듯하다.


그들은 “민주사회당”이 표방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너무 급진적이고 좌파적이라서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명추천게시판에서는 “사회민주당”이 2백4명 추천으로 1등을 했는데, 당대회에서 밀린 것은 좌파들 간의 협잡이며, 비민주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대회에서 선출된 대의원들에게서 2백2표를 받은 “민주사회당”이 게시판 추천 2백4개보다 지지를 적게 받는 것이라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렇게 따진다면, 좌파가 낸 “평등사회당”도 게시판에서 1백60개 추천을 받았지만 당대회에선 30표도 못 받고 꼴찌를 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온라인 게시판은 민주주의의 정확한 구현 장소가 아니다. 온라인이 민주적이라면, 애초에 당대회도 필요 없을 것이다.(이런 온라인 민주주의론을 더 일반화해 적용하면, 물질적 현실에서의 실천과 조직의 중요성이 망각되기 십상인데, 실제로 억압과 저항이 벌어지는 것은 물질적 현실에서다. 온라인은 단지 가상 현실이거나, 물질적 현실의 극히 일부를 재현할 뿐이다. 그래서 온라인 민주주의론은 현실에서 저항을 진전시키는 데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사회당” 반대론은 좌파 일반에 대한 혐오적 언사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행태는 “민주사회당” 반대론자들이 당 안팎에서 좌파보다 자신들이 더 다수의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좌파에 반감을 가져 온 참여계 당원들의 영향도 꽤 있는 듯하다. 참여계 지도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등 강성 좌파의 발목잡기 때문이었다고 오랫동안 책임을 전가해 왔다. 그들은 ‘상식’의 정치를 내세우는데, 상식은 입헌주의와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관을 넘지 않는다. 또한 상식이 경험주의적 인식에 불과하다는 건 방법론의 입문적 정보이다.


기회


물론 “민주사회당” 반대론자들의 일부는 불평등이 커지는 현실에 반발해 급진화·정치화하는 과정에서 정의당을 생애 최초의 정치적 거처로 삼은 청년들이 포함이 돼 있을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상당히 안착된 상황에서 모종의 좌파 운동과 조직의 경험이 없이 정치 세계로 들어섰기 때문에, (헌법 존중 같은) 자유민주주의적 상식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 게다가 개인주의에 더 익숙할 것이다.


이처럼 저항적이지만 진보적 자유주의 수준의 사고에서는 (혁명적 버전이든 좌파개혁주의 버전이든)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좌파가 비상식적인 집단으로 보이기 쉽다. 일반으로 ‘자율’, ‘개인’, ‘유희’보다 ‘조직’, ‘노동중심성’, ‘계급’을 강조하는 좌파가 ‘꼰대’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


그러나 혼란된 세계관의 다른 표현인 상식으로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사회를 조금치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상식에 도전할 때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이윤 감소에 자본가들과 그 정치인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상식으로 알 수 없다.


지금 경제 불황, 제국주의 간 군사적 긴장 고조, 기후 변화, 세월호 참사, 지진과 핵발전의 위협, 툭하면 안전사고로 죽는 노동자 등의 사례들에서 보듯, 자본주의의 맹목적 이윤/군사 경쟁 시스템은 인류를 몰상식하게 위협하고 있다.


체제의 이런 위기와 혼돈상을 볼 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전혀 황당하거나 엉뚱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사회주의적 투쟁은 노동자·민중을 위해서는 아주 필요하고 공공연히 표방돼야 할 일이다. 그러려면 사회주의적 투쟁의 주축이 될 노동계급 투쟁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조직돼야 한다. 이런 일들이 좌파의 정치적 ‘책임’이다.


이 점에서 “민주사회당”을 지지하는 정의당 좌파의 일부가 민주사회당 명이 꼭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건 아니라는 식으로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안타깝다.


정의당은 최근 지도부 자신이 금융·공공 파업을 지지하면서 파업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정의당 내 우파들은 이를 “민주노총에 구걸”한다고 비하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이야말로 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다. 그리고 지금 청년들 사이에서 보듯이, (조직) 노동자 운동은 전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지 않다.


이런 상황과 정의당 지도부와 의원단이 이 투쟁들을 지지하는 일은 정의당 좌파에게 정치적으로 전진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분명하게 좌파적 비전과 지향성을 내놓고, 새로운 청년 세대들과 인내심 있게 설득과 토론, 논쟁을 해야 한다.


2016년 10월 5일


〈노동자 연대〉 편집팀을 대변해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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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 반대 양대노총 공공부문 파업 결의대회

파업 노동자들이 투지와 자신감을 보여 주다



<노동자 연대> 181호 | 입력 2016-09-29


※함께 읽을 기사: 공공부문 파업 ― 단호함과 함께, 화물연대의 동참이 요구된다


박근혜의 성과연봉제 도입 시도에 맞선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 기세가 상당하다.


3일차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파업에는 오늘 전국적으로 6만 1천여 명이 참가했다. 한국노총 공공연맹도 1만 명 규모의 하루 파업을 하고 양대 노총 공동 집회에 합류했다.


오늘(29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양대노총 공공부문 파업 집회에는 5만 명이 훌쩍 넘는 파업 노동자들이 모였다. 먼저 여의도공원 안에서 집회를 하던 공공운수노조 대열로 공원이 가득 차서 국회 앞 도로에서 자체 집회를 마치고 행진해 들어 온 한국노총 공공연맹 대열이 한동안 집회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정도였다.


△파업 3일차인 이날 집회에는 전국에서 5만여 명이 넘게 모였다. ⓒ조승진


철도노조, 건강보험노조 등 1만 명 넘게 파업에 참가한 대형 노조들이 규모 있게 참가해 집회 전체의 활력을 높였다. 이 노조들은 파업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파업 참가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철도노조 한 조합원은 “이 정부가 웬만해선 양보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마음 단단히 먹고 있다. 전체적으로 지난 2013년 파업 때보다 참가율이 높아 고무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미 주요 언론에서는 철도의 화물운송 차질 등 파업 효과가 나타난다는 우려를 보도하고 있다.


한국노총 공공연맹에서도 성과연봉제 불법 강행의 주범인 노동부 산하로서 더한 압박을 받고 있는 근로복지공단노조가 대규모로 파업과 집회에 참가해 집회 대열을 고무했다.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정부가 불법 이사회를 무효화하고 성과연봉제 강요를 철회해야한다’며 ‘10월 3일까지 노정간 교섭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10월 4일에 2차 전국 집중 총파업 대회를 개최하고 무기한 파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인상 공공연맹 위원장도 무대에서 양대노총 공공부문이 함께 싸우자며 공공연맹도 2차, 3차 파업을 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과 한국노총 공공연맹 이인상 위원장이 연대의 포옹을 하고 있다. ⓒ조승진


여러 정치·사회 단체들이 오늘 파업 집회를 지지해 참가했고, 집회의 규모와 열기에 함께 고무됐다.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 등 양대노총 주요 지도부도 모두 참가해 오늘 집회의 중요성을 보여 줬다. 정치권에서도 정의당 심상정 대표, 이정미, 윤소하 의원, 민주노총의 전략후보로 당선한 무소속 윤종오, 김종훈 의원도 파업을 지지하며 참석했다. 더민주당에서는 우원식 의원이 왔다.


연단에서 가장 호응을 받은 발언은 “국회의원의 필수 공익업무인 국감을 거부하고 있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을 직위해제 해야 된다”, “전경련이 이른바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에 8백 억을 전광석화처럼 모아다 준 것은 바로 노동법 개악을 위한 청탁성 뇌물”이라며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을 신랄하게 폭로한 심상정 대표의 발언이었다. 이어 발언한 이정미 의원도 오늘 오전 중앙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파업이 불법이 아니라는 공식 답변을 얻어낸 일을 보고해 환호를 받았다.


지지와 연대


오늘 파업 집회의 규모와 열기는 단지 파업 노동자들의 투지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주 언론들의 불법, 철밥통 공세에도 파업에 대한 여론은 나쁘지 않다. 철도 노동자들이 서울 주요 대학에 붙인 파업 지지 호소 대자보가 좋은 반응을 얻는 것도 한 사례다.


다른 부문 노동자들도 분위기가 좋다. 23일에는 한국노총의 금융노동자들도 4만여 명이 하루 파업을 벌였다. 단사 임단협 교섭 중인 현대차노조는 26일 전면 파업을 하고 부분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파업 투쟁이 익숙지 않은 한국노총의 노동자들부터 전통적인 선진부분인 대공장과 공공부문의 주요 노조들까지 파업의 형식으로 정권에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정부의 고통전가에 맞서는 투쟁의 선두에 섰다. 근무복을 입고 참가한 철도 노동자들. ⓒ조승진


이런 기세는 박근혜 정권이 총선 참패 후 레임덕 위기로 점차 약화돼 온 데다가, 이를 만회하려고 성과연봉제 불법적 강행 시도, 비리가 드러난 정권 실세 감싸기 등 온갖 무리수들을 둬 온 것이 오히려 국민적 반감과 분노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민심 이반에는 깊어지는 경제 위기에 대한 이 정권의 무능·무책임이 드러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따라서 파업을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더 활성화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철도노조의 또 다른 활동가는 “박근혜 정부가 위기에 빠져 있어서 지금이 싸울 만하다. 여론도 파업 전 우려보다 훨씬 좋다. 지금 더 단호하게 싸우면, 전면 파업을 하면 진짜 성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 지도부는 훌륭하게 파업을 수행하고 있는 기층 조합원들 사이에서 이처럼 더한층의 전투성을 끌어올리는 주장과 계획을 내놓는데 더 애를 써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 조상수 위원장이 노정간 교섭을 국회가 중재하라고 강조한 것은 아쉽다. 정권이 교섭조차 거부하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면도 있지만, 이런 요구는 자칫하면 더민주당이 중재자로서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쥐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더민주당이 일관되게 성과연봉제나 노동 개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자칫하면, 그동안 수차례 반복됐듯이, 이들의 무원칙한 중재안에 노조의 투쟁계획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파업 노동자들의 투지를 고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 공공운수노조의 연대 파업으로 압력이 커지자, 일부 공기업 사측이 한발 물러서기 시작했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력 전선에 김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29일 오후 서울시 산하인 서울지하철노조, 도시철도노조,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노조, 서울시시설관리공단노조, 서울주택도시공사노조 등이 ‘성과연봉제는 개별 노사합의 사안’이고, ‘성과와 고용을 연결시키는 제도는 도입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받아 냈다.


△전체 집회 후 합의안 설명을 듣고 있는 서울지하철노조와 도시철도노조 조합원들. ⓒ조승진


서울시의 합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선 플랜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공공운수노조 파업의 효과도 반영된 것이 분명하다. 그 점에서 특히 연대 파업 효과가 커지고 있는 파업 3일차에 서울지하철노조처럼 비교적 투쟁 경험이 있는 대형 노조가 먼저 합의를 해 파업을 중단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아쉬움이 있긴 하다. 성과연봉제를 완전히 철회한 내용도 아닌데 말이다. 다만, 최병윤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집회 후 기자브리핑에서 임단협 교섭이 남아있기 때문에 철도와 부산지하철에 탄압이 계속된다면 2차 파업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꼭 그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을 처음 폭락시킨 것은 바로 철도노조의 민영화 반대 파업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 위기가 본격화하는 지금, 더 단호한 연대 파업이 박근혜 정부에 그때 미처 날리지 못한 결정타를 날릴 수 있다.


△조직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힘을 보여 주는 것은 더 많은 노동자들과 피억압 대중을 고무할 수 있다. ⓒ조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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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 역대 최대규모로 하루 파업을 벌이다

아쉬움도 있지만, 박근혜의 협박이 잘 안 먹혔다


<노동자 연대> 181호 | 입력 2016-09-23


금융노조가 성과연봉제 반대 하루 파업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오전 9시부터 집결하기 시작한 금융노조 조합원 4만여 명이 참가했다.(주최측 최종 발표 7만 5천 명, 전체 조합원 9만 5천 명)


파업 집회 마지막 순서로 진행한 총회에서는 10월 이후 2, 3차 총파업을 비롯해 쟁의행위를 계속한다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정부는 노동부장관, 금융위원장, 박근혜가 번갈아 가며 파업을 압박하고 모든 지부에서 무지막지한 불법 협박을 해, 사상 초유의 전국적 영업점 마비는 막았다. 그럼에도 금융노조 파업이 역대 최대 규모로 성사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다음 주에 벌어질 민주노총의 공공·보건 등의 파업에도 상징적인 도움이 될 듯하다.


예상대로 NH농협지부와 기업은행지부, 씨티, SC제일은행지부 등이 두드러지게 참가했다. 그 밖에도 부산 등 지방은행 지부들, 신용보증기금 등 공기업 지부들, 수협중앙회지부 등도 할당된 구역을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지도부가 공언한 목표인 영업점 마비 수준에는 못 미쳤다. 파업 경험이 별로 없는 조합원이 다수라 애초에 쉽지 않은 목표였지만, 그럼에도 제일 규모가 큰 ‘빅4’ 지부들의 참가가 저조한 것은 매우 아쉽다.


오전 11시 30분경부터 시작된 파업 선포식과 본대회에서는 조합원들의 함성과 열기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 등 간부들만이 아니라,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을 비롯해 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 사무금융노조 김현정 위원장 등 민주노총 중집 성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최종진 직무대행은 금융 파업에 이어 민주노총이 노동개악에 맞서는 파업을 벌이겠다고 해 박수를 받았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 노회찬 원내대표도 연대 발언을 했는데, 이들은 더민주당이나 국민의당 의원들보다 더 큰 박수를 받았다.


오후 집회에서는 오늘 파업을 적극 조직한 기업은행지부, 산업은행지부 위원장 등이 투쟁 발언을 했다. 지부 위원장들 모두 박근혜 정부를 향한 날 선 폭로와 비판을 쏟아냈다.(기업지부는 전날의 기습적인 탄압에도 근무 조합원의 73퍼센트에 해당하는 6천1백여 명이 참석함.)


조합원들은 연사들이 박근혜를 정조준해 규탄 발언을 할 때마다 환호를 보냈다. 오늘 파업이 고통전가의 주범인 박근혜에 맞서는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의 일부임을 노동자들도 잘 아는 것이다.


<노동자 연대> 판매대에서 기업은행 조합원들은 지점장을 앞세운 사측에 맞서 파업에 참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얘기해 줬다. 그중 한 노동자는 금융·공공이 함께 파업하는 것이니 어렵지만 꼭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성과연봉제를 당장 막기는 어려워도 계속 싸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시중은행 빅4의 5개 지부(우리, 국민, 하나/외환, 신한)가 저조한 참가율을 보인 것은 매우 유감이다.


일단 산별 파업에서 조직력이 있는 대형 지부의 파업 참가도가 낮은 것은 노동자 연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 파업이 고무적인 규모와 열기였음에도 아쉬움이 적지 않은 이유다. 시중은행 사측도 이런 결과를 노리고 산별교섭을 파탄 내고 부당노동행위를 무리하게 자행했을 것이다.


투쟁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조합원들이 이런 탄압을 이겨 내기 어려웠을 수 있다. 그러나 파업 전날 퇴근 불허 등 극렬한 압박을 받았던 기업은행지부나 비슷한 압박을 받은 NH농협지부가 대거 참가했다. 오히려 조합원의 자신감이나 의식이 충분치 않을수록 노조의 구실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대형 지부 지도부의 파업 조직 책임 회피는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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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연대> 181호 | 입력 2016-09-23

△사측의 파업 참가자 축소 강요로 퇴근을 못 하고 있는 기업은행 노동자들. ⓒ사진 제공 금융노조




금융노조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기업은행 사측이 파업 불참을 압박하며 직원들을 퇴근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9월 22일 기업은행 사측은 파업 참가자 명단을 지점 내 조합원 수의 절반 이하로 내도록 강요하고, 그렇게 참가자를 줄여서 명단을 낼 때까지 퇴근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다.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에 따르면, 지부의 파업 참가 예정 규모는 전 조합원의 90퍼센트 규모였다고 한다. 이를 절반으로 줄이라고 한 것이니, 퇴근을 막으며 파업 불참을 강요한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인 것이다.

금융노조와 기업은행지부는 오후 8시 기준으로 이같은 불법 파업방해 부당노동행위가 확인된 곳이 기업은행 불광동지점, 종로지점, 중곡동지점, 중곡중앙지점, 서소문지점, 동대문지점, 목동PB센터, 반포지점, 강남구청역지점, 일산덕이지점 등이라고 밝혔다. 아마 그밖에도 상당수 영업점들이 비슷한 상황이었던 듯하다.

이런 악랄한 탄압은 기업은행장 권선주가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노조의 격렬한 항의로 오후 11시경부터 퇴근은 이뤄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 금융노조 관계자는 “전 영업점에서 동시다발로 똑같은 퇴근 저지 감금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기업은행 경영진들의 총파업 파괴 공모가 있지 않았던 이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성토했다.

한편, 다른 시중은행들에서도 부당노동행위가 광범하게 벌어졌다. 신한은행의 한 임원은 조합원들에게 ‘단 한 명도 파업에 참여해선 안 된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은행들 대부분에서 지점장급 관리자들이 조합원들을 일대일 면담하며 파업 불참을 압박했다고 한다.

합법 파업에 대한 이런 ‘대놓고 불법’인 황당한 탄압은 정권 차원의 공공·금융 파업 엄정 대처 방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9월 20일 노동부장관 이기권, 21일 금융위원장 임종룡이 파업을 비난했고, 22일에는 박근혜가 직접 엄정 대처를 지시했다.

산별 교섭 거부 때도 그랬듯이, 정권의 이런 강경 자세가 대부분이 금융권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뒷배경이 됐을 것이다.

22일 박근혜는 어이없게도 ‘기득권 파업은 국민의 공감을 못 얻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권력형 측근 비리가 줄줄이 터져 나오고 그중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관련 불법 자금 조성 의혹은 박근혜 본인의 퇴임 후 거취와 관계 있다는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그런 비리들을 감싸고 파묻기 바쁜 박근혜가 노동자들을 비난할 자격이나 있나?

대부분 정권에게 잘 보여 된 낙하산들인데다가, 금융·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직원들이나 쥐어짜는 경영으로 연봉을 4~5억 원씩 받는 금융권 경영자들이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권을 침해하는 것은 완전히 적반하장이다.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은행 노동자들은 1년에 OECD 평균보다 8백여 시간을 더 일한다. 순전히 일 때문에 1년을 16개월, 17개월로 사는 셈이다. 가히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이다.

반면,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당일 엄연한 업무시간인 대낮에 7시간을 사라져 놓고도 이를 문제삼지 말라며 무책임의 극치를 선보인 바 있다. 이런 업무태만자 정권이 파김치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감히 ‘기득권’, ‘국민의 공감’ 따위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이런 정권이 사용자들을 앞세워 정당한 파업권을 위협하고 퇴근까지 가로막는 탄압을 사주한 것은 범죄 행위다.

(투쟁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사측이 개별 조합원들을 압박할수록 노조의 강력한 대응이 중요하다. 예상된 이런 탄압에 굴하지 말고 금융노조와 각 지부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사측과 싸우며 조합원들을 파업 집회장으로 조직해야 한다.

금융 파업이 물꼬를 잘 터서 공공·금융 파업이 기세를 올리면 박근혜와 사용자들의 오만함에 반격을 가할 수 있다. 성과연봉제 등 박근혜의 노동개악 저지에 한걸음 더 다가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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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 반대 파업

공공·금융 노동자 비난 신화를 논박한다


<노동자 연대> 181호 | 발행 2016-09-21 | 입력 2016-09-21






금융노조 파업을 사흘 앞둔 9월 20일 노동부장관 이기권은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을 볼모로 하는 공공·금융 총파업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기권은 임금체계 개편이 “법으로 의무화됐다”는 억지까지 부렸다. ‘불법 파업’이라는 암시를 주고 싶어서였을 텐데, 그가 기자회견에서 내민 근거는 법 조항’(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법 제정 당시 ‘속기록’이다.


장관이 거짓말하고 억지 부리는 건 불법이 아닌가. 사실 근무지를 이탈해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신분을 속인 일이 들통나고도 경찰청장이 되는 정권에서 그게 뭐 큰 일이겠는가. 노인 기초연금 20만 원 등 표 받기 좋은 본인의 대선 공약을 모두 폐기 처분해 놓고도, 배신의 정치는 극도로 싫어해서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에게 배신당한 국민에게 배신 정치인을 심판해 달라고 불법으로 선거 개입하는 박근혜가 임명한 장관다운 짓이다.


게다가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노조와의 합의가 안 되면 무시하고 이사회 의결하라고 공식 재촉한 당사자가 이기권 본인이다. 이 결정들은 근로기준법 위반이 너무 명백해 불법 논란을 자초했고 죄다 소송에 걸려 있다. 특단의 계급적 판결이 아니라면 정부가 패하기 십상인데, 문제는 그런 불법이 노동자들의 파업 열기를 더 높였으니 파업을 조장한 책임을 묻겠다면 이기권 본인을 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기권이 대표로 말했지만, 금융·공공기관의 파업에 대해 정부와 기성 언론들은 하나같이 고임금 노동자들이 웬 파업이냐고 부르짖는다. 집단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조선사들이나 한진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듯, 기업 부실에 책임을 져야 할 정부와 사주들은 별 책임도 지지 않는다. 대기업 이윤의 일부인 사내유보금만 해도 수백조 원에 이른다. 자본주의와 기업주들이 불러 온 경제 위기에 애먼 노동자들의 임금을 문제 삼으며 책임 운운하는 것은 가당찮은 억지일 뿐이다.


최근 리얼미터가 조사한 여론조사를 보면, 70퍼센트가 금융·공공기관의 부실 원인은 정부 탓이라고 답했다. 성과연봉제를 정부가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답변이 63퍼센트, 성과연봉제는 공익성과 불합치한다, 사회문제를 악화시킨다는 답변이 둘 다 66퍼센트였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도 세 번은 통하지 않았듯이, 이 정권의 거짓부렁이 잘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연대도 소중하다. 이기권과 기성 언론들의 정규직·비정규직 이간질을 해 왔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공기관의 성과주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빼앗는다”며 파업을 지지하고 이기권을 정면 반박했다.




공공부문은 위기에 같이 책임져야 한다?



도둑질한 돈도 아니고 사용자인 정부도 동의해서 책정한 공공부문 노동자 임금액을 이제 와서 문제삼는 것은 경제 위기 시대에 정부와 사용자들의 태세 전환을 잘 보여 준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임금 삭감으로 재정지출을 줄이고, 이를 지렛대로 민간 부문 임금 삭감으로 나아가려는 속셈일 뿐이다.


그러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이 모두 높은 것도 아니고, 고용이 철밥통인 것도 아니다. 공공부문에서 성과주의 등 시장주의 논리가 보급돼 온 지 오래고, 또 임금과 복지 향상도 기획재정부의 예산 압박으로 크게 제약돼 왔다.


특히, 총액인건비 제도 같은 임금 통제 정책 때문에 공공부문이야말로 임금 억제와 간접고용 비정규직, 허울만 좋은 무기계약직 양산의 주범이 돼 왔다. 인건비 총액을 제한해 놓고 정규직 임금이 오르는 게 문제라는 건 이자를 50퍼센트씩 받아먹으면서 왜 남의 돈 쓰고 안 갚냐는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 없는 억지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가 이런 압박을 더 전면화해 왔다. 지난해에도 멀쩡하게 정년이 있는 노동자들의 말년 임금을 대폭 깎는 임금피크제를 공공부문부터 도입했다.


최근 서울의 지하철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로 숨진 노동자들이나, 경주 지진 발생일에 철로 수리 작업을 하다 사고로 죽은 노동자들이 모두 공공부문의 저임금 하청 노동자인 것은 단지 우연일까.


이런 비극을 봐도 공공부문에 충분한 임금과 안정된 일자리가 제공돼야 한다. 대체로 필수적인 공익 서비스에 충분한 인력이 배치되고,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고용과 임금을 보장해 숙련도를 높이고, 장시간 노동을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사회 다수에게 유리한 일이다. 이렇게 되려면 오히려 정부가 공공부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더 늘려야 한다. 노동계급 관점의 효율성이란 이런 것이다.


금융 고임금이 문제?



최근 금융 산별노조의 임단협 교섭을 파탄 낸 은행권 사용자들도 ‘예대마진이 줄어드는 등 실적이 악화되고 있으므로 성과연봉제로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의 예대마진이 줄어드는 것은 건설 등 위축된 기업들의 경기 부양을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 탓이 더 크다. 그나마도 은행들은 예금 금리를 신속히 낮춰서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하고 있다. 게다가 대출금리도 낮춰 가계대출 영업을 여전히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예대마진 수익이 줄었다고 해도 노동자들의 임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실 최근 집값과 전월세 폭등 등으로 평범한 노동자들조차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은행의 예대마진 수익이 느는 것은 공익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물론 2년 전과 비교해 지난해 시중은행들의 수익이 2조 원 넘게 줄긴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3조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고, 최근 실적 하락 공포는 부실기업들로 인한 충당금 부담이 늘어난 탓이 크다. 역시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여기에는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 같은 금융공기업들도 해당된다. 도대체 이 은행들에서 부실기업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청와대 서별관회의 등에서 대우조선의 부실과 분식회계를 알고도 계속 지원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정황까지 폭로된 상황에서 말이다.


오히려 그동안 은행권이 한때 10조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릴 때조차도 그중 상당수는 주주들에게 고배당으로 지급한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수익을 위해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노동자 탓을 하지 말고, 주주 배당을 줄여야 마땅하다.


자본주의적 관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임금은 노동력 사용권에 대한 대가(노동력의 생산비)이므로 임금 노동자가 (경영권·인사권의 이름으로 그 노동력을 이미 배치·사용한 결과로 얻게 된) 경영 실적에 책임질 아무 이유가 없다.


안보 위기에 웬 파업?



보수 언론은 북한 핵실험 등 국가적 안보 위기 상황에서 웬 파업이냐는 비난도 한다.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도 않는 사안을 끌어와 노동자 파업에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고 보자는 식이다. 김일성이 죽었는데 웬 파업?(1994년) 가뭄에 웬 파업?(2001년) 식이다. ‘파업은 무조건 안 된다’는 계급 본능적 히스테리다.


최근 동아시아에서 악화되고 있는 안보 위기는 근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강대국들 간의 동아시아 패권 다툼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이를 위해 미국이 한미일 간 군사동맹을 강화하려 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지렛대로 북한 악마화와 대북 압박을 활용한 것이 더 직접적인 배경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 등 중국을 포위하는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확실히 줄을 서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야말로 수동적 피해자이기는커녕 한반도 주변의 안보 위기의 한 연쇄고리인 셈이다.


도대체 이런 상황이 노동자가 파업을 자제하고 임금을 삭감하면 해결되는가? 외부의 적에 맞선 국민적 단합을 위해 내부 갈등을 피해야 할 때라면, 왜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을 관철하려고 지금 이 난리인가? 박근혜 식 관점이면 이 정부와 기업주들이야말로 국가적 국론 분열, 갈등 조장의 주범 아닌가?


진실인즉슨,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은 경제·안보·정치 위기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 지배자들이 적으로 보는 국내외 모든 상대에게 호전성을 발휘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오히려 노동자들이 단단하게 파업 투쟁으로 박근혜 정부를 약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획득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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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연대> 181호 | 발행 2016-09-21 | 입력 2016-09-21



금융노조는 ‘9월 23일 은행 영업점들이 영업에 차질을 빚는 실질적인 총파업을 만들자’고 현장에 호소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금융노조 전체 지부 대의원들이 9월 10일에 합동 대의원대회를 열고 최대한의 파업 참가 조직화와 2·3차 파업을 결의하기도 했다. 최종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정세와 열기로 봐서는 금융노조의 역대 최대 산별 파업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늘 그렇듯이 파업 조직화 과정에서 지부별 편차가 있는 듯하다. 올해 말에 금융노조와 각 지부 집행부의 임기가 끝나는 것도 부분적으로 파업 조직화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듯하다. 금융권은 성과주의가 많이 도입돼 있기 때문에 일부 후진적 노동자들은 성과연봉제 도입을 찬성할 수도 있고, 꼭 파업까지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사측은 이런 점을 이용해 조합원들을 이간질시키고 파업 참가 열기를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그럼에도 각 지부 위원장들이 사측의 개별 교섭 방침에 맞서 ‘절대 개별 교섭을 하지 않겠다’는 공개 서약을 하고 파업 참가를 약속한 것은 다행이다. 지난해 공공부문 임금피크제를 투쟁으로 막으려 하지 않은 것이 올해 성과연봉제 도입 강공에 길을 터 준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금융노조와 각 지부들이 지금껏 호소해 온 대로, 현재의 성과연봉제는 단순한 임금체계 변경이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를 임금 삭감과 쉬운 해고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큰 그림 속에서 시도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9·23 총파업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수백만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박근혜의 노동개악에 맞선 투쟁이다.

금융노조는 2000년 이후 두 차례의 산별 파업과 주요 지부들의 화끈한 파업의 전통이 있다. 이 전통이 새 세대 노동자들의 불만·분노와 더 융합될 필요가 있다. 전국의 영업점을 마비시키는 단호한 파업으로 9월 말~ 10월 초 금융·공공 파업의 물꼬를 트자.


△물꼬 금융·공공파업의 스타트를 끊는 금융노조 파업의 성공이 중요하다. 9월 10일 대의원대회 모습. ⓒ사진 제공 금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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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성사 다짐한 금융노조 전체 지부 합동대의원대회

“기―승―전―‘노동개혁’인 정권에 이기려면 파업에 총력 참가해야 한다”


<노동자 연대> 180호 | 입력 2016-09-12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이 예정된 9월 23일 총파업에 총력 동원할 것을 재차 결의했다. 9월 10일(토) 서울 강서구 KBS스포츠월드에서 열린 금융노조 전체 지부 합동대의원대회에는 전국 34개 지부의 대의원 4천8백여 명(재적 5천 9백여 명)이 집결했다. 체육관이 꽉 차서 자리에 앉지 못하는 대의원들이 있을 정도였다. 참석자 규모만큼이나 열기도 높았다.


△총파업 전국에서 올라 온 각 지부 대의원들과 투쟁 열기로 가득찬 금융노조 지부 합동 대의원대회장. ⓒ사진 제공 금융노조



이날 안건은 근무자 전원의 9·23 파업(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집결) 참가 결의와 이후 계획될 2, 3차 파업(시기와 방법은 위원장 일임) 참가 결의였는데, 당연히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지부 대의원들은 산별 대의원들과 달리 대체로 현장의 부서와 영업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므로 이런 높은 참석률은 이번 성과연봉제 반대 파업에 대한 현장 노동자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열의와 투지야말로 이후 파업을 방해하려고 전방위적으로 벌어질 정부와 사측의 협박과 회유를 이기고 파업을 성사시킬 실질적 동력이다. 일부 대의원들은 지부별 참석 규모를 살펴보며 파업 규모를 예상하기도 했다.


금융노조 김문호 위원장은 경총 회장이 성과연봉제만 되면 정년이나 임금피크제가 필요없다고 한 말을 상기시키며, 4~5만 명 규모 파업으로도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전국의 영업점들이 실제로 멈춰야 정부와 사용자들이 움찔이라도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큰 열의를 발휘하고 있는(이날도 가장 많이 참석) NH농협지부와 기업지부와 더불어 시중은행 빅4 지부(KB국민, 우리, 신한, 하나/외환)의 책임이 크다.


사실 그동안 금융산업은 산별 사용자 전원이 사용자협의회(노사 합의로 구성)에 가입해, 비교적 무난하고 괜찮은 조건에서 산별 임단협을 이뤄 왔다. 그러나 이제는 사용자 대다수가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해 산별노조 지도자들은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올해 금융산업 사용자들은 사용자협의회 탈퇴 전부터 성과연봉제 외에도 “호봉제 폐지, 임금 동결, 신입 직원 초임 삭감, 저성과자 관리제” 도입 등을 요구했다. 전반적 임금 비용 삭감(착취율 강화)이 최근 “노동개혁” 공세의 목적임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 쉬운 해고(“해고연봉제”)는 노동자 개개인의 임금을 삭감하기 위한 지렛대이자, 특정한 조건에서는 실제 해고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데서 받침대 구실을 할 것이다.


웰스파고


성과주의는 직접적인 임금 삭감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날 소개된 미국 웰스파고 은행의 대형 스캔들은 그 폐해를 보여 준다. 미국 4대 은행 중 하나라는 웰스파고는 성과지상주의로 직원들을 내몬 결과, 최근 직원들 5천여 명이 허위 계좌 2백만 개를 만든 게 적발돼 벌금 1억 8천5백만 달러를 물게 되고, 수십억 달러를 고객에게 변상하며, 연루된 노동자들도 수천 명이 해고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노동개악 공세가 본격화할 때 우려한 대로, 임금피크제는 성과연봉제로 이어지고, 공공부문 공격은 민간부문으로 확대돼 왔다. 따라서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자세로 싸워야 하고, 가능하면 더 많은 노조들이 이에 반대하는 공통의 목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해 싸워야 한다. 이날 대대에서도 박근혜 정권의 행태 전반을 폭로하고 규탄하는 발언이 많았고 호응도 많이 받았다.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도 참석해 연대 투쟁을 다짐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도 지지하러 왔다. 공공운수노조는 금융노조와 함께 6월 18일 10만 노동자대회를 여는 등 금융-공공 공조를 해 왔고, 9월 27일부터 철도노조 등을 중심으로 파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양대 노총의 두 주요 산별이 시기를 비슷하게 조율해 파업하며 서로 응원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2000년대 초반 연이은 파업들과 2014년 하루 총파업의 경험과 전통이 있는 것이 큰 장점이지만, 새 세대 금융 노동자들은 직접적인 투쟁 경험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금융노조와 각 지부들이 정부와 사측의 협박과 회유에 단호하게 맞서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투쟁 선배 격인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의 파업 계획이 큰 힘이 될 것이다.


또한 하루 파업이지만 먼저 파업을 하는 금융노조 파업의 기세가 공공운수노조 파업에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도 이날 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의 연대 발언을 조직한 것은 좋은 시도로 보인다. 대의원들도 공공운수노조의 금융 파업 지지·연대 약속, 그리고 이후 공공 파업에 대한 지지 호소에 큰 박수로 화답했다.


다만, 시중은행 ‘빅4’의 일부 지부가 대의원 동원에 눈에 띄게 소홀했던 것은 옥의 티였다. 지금 한국의 사용자들이 노동개악에서 만큼은 일치단결해 공격하고 있으므로, 예전처럼 노사 협조로 각개약진이 가능하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다가는 각개격파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식으로 연대 투쟁을 약화시키면 다른 노동자들까지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날 토의 안건으로 발표된 ‘대의원 행동 지침’에는 ‘총파업 조직을 해태하는 지부는 산별 본조에 신고하라’는 지침도 있었다. 지금은 ‘단결’, ‘총력’, ‘파업’이 필요한 때다.


△총파업 대고객 안내문 파업을 위한 준비가 현장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사진 제공 금융노조



△연대 이날 합동대대에는 금융노조 파업을 지지하며 한국노총, 민주노총, 정의당 등 여러 노동계 인사가 참석했다. ⓒ사진 제공 금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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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사측의 성과연봉제 강행 시도에 맞서는 금융노조

9·23 총파업은 정당하다



<노동자 연대> 180호 | 발행 2016-08-31 | 입력 2016-08-31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 강제 도입 시도에 맞서 9월 23일 하루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민간금융기관인 KB국민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등 시중은행 행장들이 주도해 금융노조와의 산별 임단협 교섭을 파탄냈다. 8월 26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소속의 23개 기관이 모여 탈퇴를 결의한 것이다.


사측이 밝힌 탈퇴 이유는 ‘금융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과연봉제를 강제로 도입하고 총파업을 방해하기 위해 금융노조 각 지부별로 각개격파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은 것이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이 단체는 산별 임단협 교섭의 ‘제도화’(정착)를 위해 2010년 노사 합의로 만든 사용자측 연합이다. 34개 기관이었으나 올 봄에 금융공기업 7곳이 탈퇴해 27곳이 남아 있었다.


지난 3월 금융공기업들이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주택금융공사)


이들이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한 후 한 일을 보면, 사측 도발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공기업 사측은 정부가 정한 성과연봉제 도입 공기업 가이드라인 시한에 맞추려고 대대적인 인권 유린을 저질렀다.


노조와 합의를 추진하는 대신 성과연봉제 도입에 찬성하는 동의서를 직원 개개인들에게 받아내려 한 것이다. 승진, 인사고과, 인간관계, 왕따 등을 이용한 협박이 가해졌다. 그 과정이 어찌나 강압적이고 모욕적이었는지 산업은행 한 노동자는 “정신적 강간”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치욕”, “모멸”, “희롱”, “부담”, “당혹”으로 묘사했고 “솔직히 .. 너무 무서워요. ㅠㅠ” 라고도 했다. “일제시대”, “유신”, “공산주의”에 비유하는 직원들도 있었다.(《공공·금융부문 성과연봉제 관련 불법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진상조사단 조사결과 보고서》)


그 금융공기업 일곱 곳의 CEO 연봉이 최소 2억 5천만 원을 넘고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은 각각 3억 7천, 3억 6천만 원이 넘는다.(기본급은 다들 비슷해 2억 원가량이다.) 시중은행 행장들은 이보다 연봉이 훨씬 더 세다. 연봉은 물론이고 ‘지성과 품위’를 갖춘 최고 엘리트 행세를 하던 금융권 CEO들이 노동자 임금을 쥐어짜는 데선 먼지 풀풀 날리는 그 옛날 구로나 청계천의 배불뚝이 사장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심지어 노조가 그런 행위의 부당성을 입증하려고 찬반투표를 해 압도적으로 반대가 나왔는데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이사회에서 통과시켜 버렸다. 노동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할 때 직원 과반이 노조로 조직돼 있으면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을 어긴 것이다.


더민주당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자산관리공사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자신들의 행동이 대법원까지 갈 불법(의 소지가 분명한) 행동이라는 걸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직원 개개인들부터 지부 집행부에게까지 가해진 전방위적 압박은 일부 취약한 공기업 지부를 흔들었다. 한국감정원지부는 집행부가 총사퇴해야 했고, 주택금융공사지부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합의하고는 금융노조를 (징계 직전에) 탈퇴했다.


원칙


정권과 사측이 그렇게까지 막무가내인 것은 세계경제가 언제 금융 위기에 처할지 모르니 미리 임금을 낮추고 인력 감축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놓으려는 것이다. 정부와 사측은 노조의 반대를 고려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다.


정부와 사측의 부당한 탄압에도 금융노조와 노동자들이 단호하고 강력한 투쟁으로 힘을 보여 줘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조합원들의 분노는 커져 왔다. 금융노조와 대부분의 지부도 지금껏 성과연봉제 반대라는 원칙을 지켜 왔다.

금융노조는 노동절과 6월 18일에 수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로 정권과 사측에 항의했다. 지부별로 사측을 고소하기도 했다. 휴가 중인데도 87퍼센트가 참가한 파업 찬반투표에서 95.7퍼센트가 총파업에 찬성했다. 9월 10일에는 전 지부 합동대의원대회를 열고 9월 23일에 하루 총파업을 할 계획이다. 금융노조는 파업에 각 지부별 90퍼센트 이상 참가 지침을 내리는 등 총력 동원을 선언했다.


조합원들이 집회에 대거 참가하고 파업 지지가 높은 것은 성과주의의 폐해를 경험으로 이미 알기 때문이다.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대량 감원 폭탄을 맞았던 금융 산업은 20년 전부터 정부 주도로, 그리고 어느 정도 후에는 금융회사들 스스로 경쟁체제를 강화해 왔다.


△단결 투쟁 사측이 산별 교섭을 거부한 것은 노동자들의 단결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다. ⓒ조승진


은행 간 실적·비용 경쟁이 심화하면, 경쟁적 인력 감축, 직원 간 경쟁과 실적 압박으로 이어진다. 이는 노동조건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키고 과다 대출이나 불완전판매 같은 금융 사고 등을 초래하기 십상이다.(2008년 ELS 펀드 사태 등) 이런 배경에서 성과연봉제도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집단성과급이나 비조합원 상위직급부터 개별성과급을 도입하는 형태로 조금씩 도입돼 왔다.


그래서 오후 4시에 영업점 철문을 내려도 해피콜이니 뭐니 하면서 개별 영업 행위를 해야 하고, 줄어든 인력 탓에 늘어난 업무량을 감당해야 한다. 대략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서 빨라도 저녁 9시가 넘어야 퇴근을 하니, 성과 경쟁의 스트레스 속에서 적어도 하루 열두 시간을 직장에 잡혀 있는 셈이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성과연봉제가 무엇을 뜻할지는 뻔한 일이다.


또한 지금 상황에서 그것을 조금이라도 막는 것은 집단적 투쟁뿐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두드러졌던 시중은행들의 전면 파업들은 더한층의 구조조정을 막는 효과를 내 왔다.


올 봄 공기업 인권유린 행위들이 벌어질 때, 조합원들은 노조에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장난 아님. 점거농성이라도 해야 투쟁의 힘 받지 무너질 듯”, “개개인의 히스토리를 모두 들고 있는 인사팀 직원과 독대하면 여기서 버틸 수 있는 사람 몇 안 됩니다. 꼭 와 주세요” 하며 도움을 요구했다.


이런 메시지를 보면, 당시 금융노조와 지부들이 더 강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측 압력에 개별로 노출되면 노동자들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지부 집행부가 찬반투표에 패배한 것도 집행부 자신이 원장에게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바람에 사측의 입김이 더 먹혔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노조 김문호 위원장은 사측의 교섭 해태는 이미 예상했다며, 그럼에도 파업 조직화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한 산업의 노동자들이 동시에 일을 멈추는 파업은 확실히 정부와 사용자들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9월 하루로 안 되면, 10월 파업 등 계속 파업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특히, 시중은행 행장들의 집단적인 교섭 거부는 역으로 총파업 성공의 관건이 시중은행에 있음을 보여 준다. 시중은행 빅4(국민, 우리, 하나/외환, 신한)와 NH농협, 기업은행 등 대형 지부들이 파업을 제대로 조직해 전국의 점포 수천 곳이 영업을 하지 못한다면, 노동운동 전체를 고무할 수 있다. 금융노조와 지부들은 정권과 사측의 이간질에 넘어가지 말고 약속대로 총파업 조직화에 매진해야 한다.


아울러, 공동 투쟁을 선언한 민주노총의 공공부문 노조들이 투쟁을 단호하게 조직해서 양 노총의 투쟁이 서로를 고무한다면 힘을 극대화할 수 있다.




개별 교섭 압박에 넘어가지 말고 파업 건설에 집중해야


 


금융산별에 속한 사측의 행보를 보면, ‘공공에서 시작해 민간으로 성과연봉제를 확대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계획대로 움직여 왔음을 알 수 있다. 한통속인 것이다.


막강한 권한의 금융위원회가 성과연봉제 도입의 선봉장이다. 상반기에 금융공기업을 직접 압박하던 금융위원장 임종룡은 하반기에는 은행연합회를 통한 가이드라인 발표 등으로 민간 시중은행을 압박해 왔다.


더민주당 조사에서 공개된 자산관리공사의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회사와 노조가 합의를 해야 하는 안이지 않습니까?” 하는 질문에 “노사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사회에서 개정안 또는 정부 권고안을 의결해야 할 필요성, 불가피성에 대해 설명”, “정부는 조기 도입기관에 대해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도입이 부진한 기관에 대해서는 패널티를 부여하겠다”는 등의 답변이 나왔다. 즉 불법인 줄 알지만, 일단 정부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회의 내용인 것이다.


노동부는 4월에 노조의 동의 없이도 성과연봉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황당한 지침을 내렸다. 7월말에는 정부 차원에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악해 성과연봉제 도입의 길을 열었다. 그러자 시중은행 사용자들은 법에 맞춰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총파업이 관건


금융노조는 시행령이 임직원을 ‘임원과 금융투자업무담당자’로 규정하면서도 오직 성과보수 지급대상에서만 대상을 ‘전체 임직원’으로 확대했다고 정부의 꼼수를 지적했다.


애초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은 경영진의 지나친 성과 보수가 금융 불안정을 높이는 걸 막으려는 취지의 법이다. 모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시행령 개악을 한 것이다. 물론 너무 명백한 무리수라서 임종룡조차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해당 시행령은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규정이 아니며, 성과연봉제는 노동법에 따른 노사 합의 사안이라고 답해야 했다.


그럼에도 시중은행 경영진은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하면서 정부의 조처를 이용해 성과연봉제 도입이 법의 명령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었다. 정부와 사측이 한통속이라는 것은 산별로, 양대노총 연대투쟁으로 맞서는 것이 더 효과적인 이유가 된다.


이제 사측은 개별 동의서, 불법 이사회, 개별 집행부 회유 등 온갖 공작을 벌일 것이다. 특히 이런 압박은 파업 전에 집중될 것이다. 9·23 총파업이 무력화되면 성과연봉제 반대 투쟁의 구심이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노조와 각 지부들은 지금껏 그랬듯이 개별 교섭에 절대 응하지 말고 오로지 산별 총파업 건설에 복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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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용에 반대하는 한국외대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는 왜 정당한가법원 판결: 성희롱 교수 보호와 노조 불법 탄압을 위한 “횡령”

<노동자 연대> 178호 | 입력 2016-08-13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들이 8월 9일부터 총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하고 있다.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명에 반대해서다.


박 전 총장은 현 김인철 총장의 전임 총장으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재임했는데, 임기 첫해부터 11.4퍼센트나 되는 등록금 인상과 선제적인 단체협약 해지를 시발로 한 불법적 노조 탄압으로 유명했다. 또 임기 8년 내내 학생 간 경쟁 격화와 대학(교육 환경, 커리큘럼 등)의 (친)기업화를 추진해 학생과 직원들에게 원성이 자자했던 인물이다.


2011년에는 총장 판공비를 개인 용도로 썼다는 혐의도 받아 학내의 퇴진 요구에 직면했지만, 검찰이 신속히 내사 종결(불기소)을 해 정권과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바도 있다.


결국 두 달 전인 올 6월에 법원에서 횡령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임기 중, (주로 등록금으로 조성돼) 교육 목적에만 쓰게 돼 있는 교비회계에서 노조 파괴용 불법 탄압에 따른 소송과 패소 비용 등을 지급한 사실이 유죄로 판결난 것이다.


그런데도 올해 정년퇴직을 하는 그를 외대 당국은 명예교수로 임용하겠다고 한 것이다.


대강의 사정이 이러하므로, 외대 학생들이 그 조처에 반대하며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까지 시작한 것은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다. 대학노조 외대지부도 이미 6월의 유죄 판결을 환영하며, 명예교수 임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외대 학생들은 8월 10일부터 총장실 농성에 들어갔다. ⓒ사진 출처 〈노동자 연대〉


김인철 총장 등 외대 당국은 최근 점거를 시작한 학생대표자들과 만나 박철 전 총장의 유죄 판결이 1심 결과이고 항소를 했으므로, 무죄 추정에 따라 명예교수를 임명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죄 추정 원칙은 형사소송법상 형사절차에서 (검사의 유죄입증 책임, 진술거부권, 불구속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피고인의 시민적 권리에 관한 것이지, 교육자로서의 자격과 책임을 묻는 것과는 관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재판 과정을 봐도 실질적으로 유무죄와 관련한 사실관계를 다투는 재판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박철 전 총장 측은 여러 횡령 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사립학교들의 관행이었다는 요지로 변론했다.(물론 파업 파괴가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일이었다는 뻔뻔한 궤변도 빠뜨리지는 않았다. 뒤에 살펴 보겠지만, 이조차도 사실관계에서 맞지 않다.)


재판부는 이런 변론을 하나도 수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다]”고 판결했다. 노조와의 소송 비용은 고용주체인 학교법인의 법인회계에서 지출돼야지 교육 목적에만 쓰여야 할 교비회계에서 지출돼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무엇보다 그 지출의 내용이 과연 한국외대에서 교육에 직접 필요한 것이 맞는가 하는 점은 법적 판단만이 아니라, 교육적·도덕적 견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 성희롱 교수 보호를 위한 지출


횡령죄 판결을 받은 지출에는 4천3백만여 원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성희롱 결정 취소소송에 쓰였다.(성희롱 피해자에게 지급한 패소 비용 포함)


2006년 6월 26일 당시 외대 용인캠퍼스 학생처장이던 이 모 교수는 파업 기간 중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항의하러 온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 학교 측은 이후 사실 무근이라며, 이 사실을 유인물로 배포한 학생을 무기정학시키는 등 온갖 무리수를 뒀다.


그러나 해당 학생은 법원 판결로 복학했다. 국가인권위는 2007년 3월 말에 해당 발언이 실재했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규정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는 해당 교수에게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하는 특별 인권교육을 받을 것”과 박철 당시 총장에게 “[해당 교수에게] 경고 조치를 취할 것과 성희롱 재발장치 대책을 수립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보고할 것을 권고”했다.


박철 전 총장이 지출한 비용은 이 결정을 취소하려고 국가인권위원회와 피해 직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쓴 것이다. 이 소송은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모두에서 기각됐다. 당연한 결과였다. 박 전 총장은 이 소송을 위해 국내 4대 로펌 중 하나라는 태평양까지 끌어들였고, 결국 무리한 항소로 인한 패소비용까지 교비회계에서 전부 지급한 것이다.


그럼에도 성희롱 가해자인 이 모 교수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이행하지도 않았고, 사과나 반성도 하지 않았으며 지금껏 대학에서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정말로 백번 양보해도 이런 소송은 성희롱 가해자 본인이 자비를 들여 해야 할 일이었다. 이런 소송을 버젓이 학생들 등록금으로 진행한 비양심적 행태는 이들이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뿐만 아니라, 얼마나 학생들을 우습게 여기며 교육자로서의 책임에는 무감각한지, 또한 노조 파괴 공작의 정당성에 흠집이 날까 봐 노심초사했는지를 모두 보여 준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박 전 총장은 불법 횡령을 저지른 것이다. 노조 탄압의 앞잡이로 나선 성희롱 가해 교수를 보호하려고 학생들 등록금을 사용하는 것이 교육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야말로 파렴치한 반교육적 행위이며, 교육자의 책임과 양심을 저버린 불명예 행위 아닌가?


2. 불법적인 탄압 때문에 늘어난 소송비용


유죄 판결을 받은 박철 전 총장의 횡령 지출 대부분(8억여 원)이 노조와의 소송비용에 쓴 것이다. 그것도 파면, 해고 등 부당징계에 관한 소송들이 대부분이고, 이를 위해 태평양, 세종 같은 대형 로펌과 노조 파괴 공작의 상징처럼 된 창조컨설팅 등을 고용했다.


문제는 이 소송들이 거의 다 패소했다는 것이다.( 《노동을 변호하다: 변호사 김선수의 노동변론기》, 김선수, 오월의 봄, 2014) 그래서 박 전 총장의 횡령 지출 내역에는 ‘불법’ 해고, ‘불법’ 파면에 대한 1억 원이 넘는 패소비용도 포함돼 있다.


이런 결과는 단지 횡령만이 문제가 아니라, 횡령의 내용도 문제라는 뜻이다. 즉, 2006년부터 시작해 여러 해 동안 지속한 대량 징계 해고 등 노조 파괴·탄압 행태는 애초 불법이었다. 박 전 총장은 불법적인 노조 탄압을 지속하려고 교비회계 횡령이라는 또다른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뒤늦게 법에 호소해야 했던 노동자들이 소송에서 이긴 것은 그만큼 박 전 총장의 反노조 행태가 막무가내였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와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법원이나 수억 원을 받고 사건을 수임한 대형 로펌들조차 이 불법·불의한 노조 탄압을 합법으로 바꿔 주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결국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지성의 대표’를 자처하는 대학총장에 의해서, 법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노동권조차 힘으로 짓밟히고, 불법을 감추려고 불법을 감행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진 것이다.


박 전 총장의 극악한 反노조 행태의 후폭풍은 결국 2012년 말 당시 대학노조 외대지부 위원장의 자살과 그의 빈소를 지키던 수석부위원장의 갑작스런 심근경색 사망으로 이어졌다. 당시 소송의 상당수를 담당했던 김선수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대학 측이 노조간부들을 막무가내로 해고하고, 대형로펌을 선임해서 재판절차를 끝까지 끌고 간 것이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노조간부들이 승소하여 정의를 확인한 것은 의미 있겠지만, 해고자들과 노동조합이 겪은 고생은 어디서,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노조간부 두 사람의 죽음은 어디에 하소연할 것인가?” ( 《노동을 변호하다: 변호사 김선수의 노동변론기》)


그래서 우리는 외대 당국에 묻는다. 박 전 총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막장 비극의 어느 구석에 교육이 있고 명예가 있는가? 불법을 마다않는 박 전 총장의 ‘전투적’인 反노조주의는 교육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반교육적, 반지성적, 반인권적 행태들을 감싸고 명예교수라는 명예까지 선사하려는 한국외대 당국이야말로 공범임을 자임하는 것인지, 도대체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3. 노조 파괴공작으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과의 유착


박 전 총장은 2006년 지방노동위원회에 제기된 부당노동행위 문제에 대한 대응부터 창조컨설팅을 끌어들인다. 횡령액의 3분의 1가량 되는 4억 원 가까운 돈이 바로 이 창조컨설팅으로 들어갔다.


창조컨설팅은 노조 파괴 공작 컨설팅으로 악명 높다. 미리 파업 손실 등에 대비책을 세워 두고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노조가 투쟁에 나서면 무차별 노조 탄압과 손해배상 가압류 등으로 사기를 떨어뜨려서 노조를 와해·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유명하다.(그렇다고 모든 노조가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기업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시 얼마 지급’ 하는 식으로 기업주와 계약을 맺은 일이 폭로되기도 했다. 외대 개입 이후에는 용역경비(깡패) 회사들과도 유착해 실질적 하청으로 두고. 공격적 직장폐쇄와 개악된 노동법의 복수노조 조항을 악용하는 등 폭력과 징계, 회유와 압박을 두루 이용하는, 한층 더 교활해진 기법들을 써먹었다.


창조컨설팅의 악행 문제는, 용역경비회사인 컨택터스와 합작해 폭력까지 써 가며 노조를 와해시키려 한 에스제이엠노조 사건으로 정치 쟁점화됐다. 결국 여론의 지탄 때문에 새누리당 정권 하의 친사측 노동부조차 이들을 징계해 자격 박탈을 해야 했을 정도로 악질인 자들이다.


박 전 총장과 창조컨설팅의 유착 의혹은 2006년 노조 탄압 비용 4억 원가량만이 아니다. 이후 노조 탄압 결과에 만족했는지, 박 전 총장은 2009년에 창조컨설팅의 대표인 심종두를 외대 법대 겸임교수로 임명한다.


과정은 이렇다. 그해 이명박 정부는 국비 지원 사업으로 ‘선진노사관계전문가’ 과정을 대학에 설치해 운영하도록 하고 모집을 했다. 여기에 고려대, 한국외대 등이 선정됐는데, 바로 이 과정의 교육 책임자로 심종두를 영입해 법대 겸임교수로 임명까지 한 것이다. 최근 <한겨레>의 보도를 보면, 이때 심종두는 고위 공무원, 용역경비 회사 사용자 등과 인연을 맺는 계기로 활용했다고 한다.


존재만으로도 노동자들의 치를 떨게 만드는 노조 파괴 집단들을 대학에 끌어들여 불법적인 노조 탄압을 자행하고, 그런 불의한 폭력의 연장선에서 벌어진 한 보직 교수의 명백한 성희롱을 덮으려고 학생들 등록금을 불법으로 가져다 쓴 것만으로도 박철 전 총장은 교육자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없다.


△총장실에서 농성중인 외대 학생들이 만든 팻말들. ⓒ사진 출처 〈노동자 연대〉



오늘날 대학은, 여전히 일부 학생들에게 계급/계층 상승의 사다리 구실을 하지만, 다수의 학생들에게는 졸업 후 취업 시장에 나가 노동계급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박철 전 총장과 외대 당국의 反노동자적 행태는 신자유주의적(친기업적) 학내 정책들과도 연관이 깊고 간접적으로는 자기 제자들의 미래 권리를 짓밟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고도 이들에게 교육자 자격이 있는가? 이런 일들을 저지르고도 정년을 채우게 된 것이 오히려 황당할 뿐인데, 거기에 명예교수 임용이라니. 한국외대 당국은 스무살 학생들에게 가진 자의 불의를 명예라고, 가진 자의 불법을 잘 배워 익히라고 가르칠 셈인가?


박철 전 총장은 명예교수는커녕 규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외대는 반교육적인 박철 전 총장 명예교수 임용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이를 요구하는 외대 학생들의 점거농성은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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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대표성 위기’론, 어떻게 볼 것인가



<노동자 연대> 178호 | 발행 2016-07-16 | 입력 2016-07-16



이 글은 쓰면서 생각이 계속 변했는데, 쓰고 나서도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보라는 조언을 받고 고민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

자본주의 속성 때문에 처지부터 경험, 의식까지 불균등한 노동계급을 대표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왜 그래야 하는가? 대표할 수 있을까? 무엇을 대표하지? 누가 대표하지? 대표해서 뭘 하지? 등등.
그럼에도 뭐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고, 내가 썼으니 재미는 있을 것이고, 사람들이 별로 다루지 않는 방식으로 다룬 것이니까 참고는 될 것이다. 참고하시되, 과도적인 글로 봐 주시길.(다음엔 과도 대신 더 클래 식칼한 맑스주의로 돌아...)




민주노총은 8월 정책 대의원대회 준비 과정을 포함해 정책대대를 “조직 강화를 위한 토론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여러 대안들을 치열하게 검토하고 토론해 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여기에서는 노동운동의 ‘대표성 위기’ 문제도 다뤄진다. 경제 불황과 신자유주의로 조직 ‘노동계급 대표성 위기’가 심화됐고,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조 운동’이 됐다는 주장이 일각에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직)노동운동이 고립됐다는 것을 진실로 보기 힘들다. 가령 박근혜와 지배계급 단체들이 ‘노동개혁’을 해야 일자리가 생긴다고 열띠게 홍보해 왔지만, 다수가 이 거짓말을 믿지 않는다. 우익 언론 <동아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조차 ‘박근혜의 노동개악이 일자리에 도움이 안 된다’는 답이 과반인 55퍼센트를 넘었다.

총선에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한 후보가 노동개악과 구조조정 저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울산과 경남 창원에서 집권당 현역 의원들에게 압승을 거둔 것도 (연속성 있는 현상으로) 마찬가지 방증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한데, 최근의 위기 담론은 노동운동의 ‘고립’을 ‘대표성의 위기’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인으로 지목되는 ‘대표성의 위기’를 살펴봐야 한다.

대표성의 위기 담론에는 이론적·실증적으로 두 가지 쟁점이 깔려 있는 듯하다. 하나는 더는 노동계급이 ‘다른 피억압 민중보다 더 힘이 있으며 사회변혁에서 중심 구실을 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노동계급 중심성에 대한 반대·기각’으로도 표현된다.

또 하나는 노동계급 안에서 노동조합 또는 조직 노동계급의 기여가 대단하지 않고 하찮아졌다는 것이다. 낮은 조직률이나 계급 내 격차가 커졌다는 주장이 근거로 제시된다.

두 주장은 종종 서로 결합된다. 그릇된 가정으로서, 노동조합이나 정당으로 조직된 노동계급이 노동계급 전체를 대표하는 주체로 형상화된다. 따라서 조직 노동운동이 충분하게 경제적·정치적 힘을 보여 주지 못하면 노동계급 그 자체의 힘과 주도성도 의심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 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는데, 노조나 정당을 매개로 조직 노동계급을 소위 대표한다는 상근 지도자들(고위 간부층)의 존재다. 이들은 개혁주의의 행위주체다.

지난 20여 년 동안 민주노조 운동 내부에서 현장 조합원과 상근간부층의 분화가 점점 더 예리하게 일어났다. 1987년 대투쟁 이후 대중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운동이 한국 자본주의의 주요 산업에 등장해 조직되면서 국가형태의 변화(권위주의 →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 활동의 보장, 저변 확대와 정치의식의 성장, 개혁주의 정당 건설 등의 정치적 전진이 있었다.

노사간 교섭 구조의 정착 등에 기초해 노동조합 안에서도 목적의식적으로, 아래로부터의 투쟁보다 협상을 전문으로 추구하는 고위 상근간부층이 형성돼 안착했다. 조직 보존주의, 협상력을 높이는 수준으로만 투쟁을 통제하는 자기제한적 보수성, 정치와 경제의 목적의식적 분리를 추구하는 경제주의·부문주의, 투쟁 대신 선거와 의회를 통한 대화와 타협을 더 중시하는 사회적 합의주의(와 이를 돕는 담론들) 등이 오늘날 노동운동 개혁주의의 주된 형태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노조 운동의 계급 대표성 문제는 이 고위간부층이 주도하는 개혁주의 노동운동의 실천과 전략이 대표성을 제대로 구현하느냐는 문제로 볼 수 있다.
 (노동계급의 객관적 변화 문제와 정치적 함의들에 관해서는 <노동자 연대>에 실린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계급은 분절되고 파편화됐는가? ― 임금 격차, 노동조합, 그리고 연대”(173호), “21세기에 노동자 계급은 약화됐는가”(175호) 등이 매우 잘 다루고 있다.)

조직률

민주노총은 ’2016년 정책대의원대회 현장 토론자료’에서 “전체 노동자 대비 조직률은 한국노총 4.3%, 민주노총 3.5%, 기타 미가맹 노조 2.2% 수준임. 즉 민주노총의 3.5% 조직률로 전체 노동자를 대표한다고 주장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더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해 행동에 나서는 것은 좋고 필요한 일이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하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 계급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고,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의 자력 투쟁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률이 낮다고 해서 노동운동이 계급 대표성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노동개악 저지 등 노동계급 전체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법 개정(또는 개악 저지)을 위해 조직력(그리고 투쟁력)을 진지하게 동원하는 것도 계급을 대표하는 행위다.

반대로 노조 조직률이 높아도 제때 투쟁을 하지 않거나, 지도부가 배신적 타협을 하고 실망을 준다면, 노조는 계급 대표성은커녕 노조 내 대표성도 훼손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조직률이 한때 50퍼센트가 넘던 영국노총(TUC)은 1970년대 후반 노동당 정부와의 협력에 집착하다가 노동당 정부의 공격에 제대로 맞서지 못해 운동 자체가 약화됐고, 결국 대처주의 공세에 큰 타격을 입었다. 2000년대 이후 독일과 스페인에서도 노조들이 노동개악에 합의해 주고 약화됐다. 사용자의 공세와 노조의 신뢰(대표성) 추락이 조직률 하락을 낳았다.

그러므로 계급 대표성은 조직률 같은 형식적 지표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해 투쟁을 잘해서 성과를 냄으로써 쟁취해 나가는 지도력과 비슷한 개념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한국노총이 민주노총보다 조직률이 조금 더 높지만, 우파 정권에 너무 타협적인 한국노총에게 계급 대표성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많지 않은 이유다. 최근 곳곳에서 노조 가입 자체가 탄압받는 경우들을 봐도 조직률 향상을 위해서라도 투쟁과 성과의 문제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조직률은 간접적이고 사후적인 지표로 봐야 한다. 대표성 쟁취에서도 투쟁성이 더 중요한 것이다. 1997년 정리해고 등 노동법 날치기 철회 파업은 노조를 강화하고 대표성을 높였다. 민주노총 상근간부층의 정치세력화 프로젝트였던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들의 대표 정당처럼 인식된 것도 그런 경험들이 누적된 것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반면 한국노총은 2002년 민주사회당을 창당했으나 별 성과없이 2년 만에 해산했다.)

그러나 정리해고 등을 철회시킨 지 딱 1년 만에 당시 민주노총 배석범 비대위는 ‘IMF 위기 극복을 위해 고통 분담을 한다’며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 정리해고 등의 도입에 합의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즉시 이 합의를 부결시키고 당시 좌파인 단병호 비대위를 선출했으나 이 비대위 역시 굴복해, 총파업을 철회했다. 그해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다시 좌파인 이갑용 씨가 선출됐으나 관료 기구의 무사안일로 제대로 투쟁이 조직되지 않았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현장에선 좌파, 당선하면 우파”라는 냉소가 나오게 된 것이다. 2002년 발전노조 파업, 2006년 비정규직 악법 반대 파업, 2007년 이랜드 점거파업, 2009년 쌍용차 점거파업 등에서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연대 투쟁(파업)을 약속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이 투쟁들은 여론의 지지를 받았고, 조합원들도 그만큼 관심과 지지가 컸는데도 말이다.

이런 자기제한적 회피와 보수주의, 배신적 타협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민주노총의 대표성은 미조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자기 조합원들에게서도 조금씩 약화됐다. 계급 대표성과 제대로 된 투쟁 건설의 문제는 노조원 대 비노조원이 아니라 노조의 고위 상근간부층 대 기층 노동자라는 구도에 비춰 볼 때 더 선명하고 잘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노조 운동의 대표성 위기는 날로 강경해지는 정부와 기업주들의 공세에 맞불을 놓을 만큼 강력한 투쟁을 하는 것을 그 지도부가 꺼리는 데에 있다. 민주노총은 특히 수출 대기업들과 핵심적인 공공부문에 집중적으로 포진해 있어 잠재적 힘 자체는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힘이 없어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 위기는 기존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현장 노동자들의 투지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실업의 위협은 개별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이럴 때일수록 운동의 지도부가 명료한 이데올로기와 집단적 투쟁의 정치를 강조해야 한다.

그런데 지도부들의 보수주의가 그런 확신을 충분히 못 주는 상황인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장 노동자들은 반감은 있지만, 지도자들이 파업을 취소할 때 아래로부터 투쟁을 직접 건설할 자신감에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지배자들의 고통전가에 대한 반감도 크기 때문에 지도부가 진지하게 투쟁을 조직할 것이라고 판단되면 투쟁 호소에 응할 태세는 돼 있다. 조선산업을 중심으로 표출되는 최근의 노동자 투쟁 분위기는 적어도 현장의 투지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준다.

결국 대표성이 의심받는 것은, 제대로 싸워서 정부와 기업주들의 공세를 좌절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정한 조직률이 대표돼야 노조가 명분과 힘을 가지고 정권과 자본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은 상황을 거꾸로 보는 것이다.

아무리 여론의 지지와 사회적 명분이 노동운동에 있어도 정부와 기업주들은 대놓고 무시하기도 한다.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악법, 미국산 쇠고기 수입, 진주의료원 폐쇄,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드 배치 등은 명분과 여론의 지지가 있어서 정부들이 강행했던 게 아니다.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박근혜가 성과연봉제 도입이나 노동개악 강행을 추진하겠다고 설치는 걸 보라. 

경제 위기 때문에 기업주들이 노동자를 공격해 이윤을 만회하려 애쓰고, 제국주의 간 갈등이 고조돼 대외적 압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렇게 나올수록 그에 맞선 실질적인 압력이 아래로부터 가해져야 한다. 조직률 높이기보다 얼마나 실질적으로 투쟁에 힘쓰냐가 훨씬 더 먼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계급 내 격차와 투쟁

대표성 위기와 관련해 노동계급 분절을 강조하는 주장도 있다. 그런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노동계급 내부 격차가 커져서 이제는 하나의 계급으로 부르기도 힘들 정도다. 애초에 가입하기 쉽거나 상대적으로 지불 능력이 있어 노조를 허용할 수 있는 기업에 주로 노조가 있다. 그 노조는 자기 조합원 이익만 챙긴다. 따라서 기존 노조는 대표성이 없고, 굳이 미조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할 이유도 없다.’

이런 분절론을 받아들이면 개별 노동조합의 경제투쟁 자체를 문제 삼는 길로 가기 십상이다.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따내는 것은 계급 내부 격차만 더 벌릴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논리적 결론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자제하고 자기 임금 늘리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보수성과 투쟁 회피주의가 낳은 문제점을 더한층의 개혁주의로 해결하자는 퇴행적 해법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경험에 의해 반증된다. 노동조합 운동의 존재가 미조직 노동자를 포함한 전반적 임금 인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한국에서 최소한 제조업 부문에서는 노동조합의 존재가 같은 사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사이의 임금불평등과 노조 사업체 간에 임금불평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으며 산업 전체적으로도 임금불평등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강승복·박철성 2014, <임금분산에 대한 노동조합의 효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따라서 사회적 고립을 피한답시고 조직 노동계급이 고유의 투쟁 방식을 자제하고 자기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계급 전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 위기 시대에 비용(특히 임금비용) 절감에 혈안이 된 기업주들은 양보하지 않으면 더 큰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 쉽게 양보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투쟁을 수줍어하고 회피해 자기 이익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투지와 사기는 떨어질 것이다. 다른 노동자들을 자극·고무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이익도 제대로 못 지키는 노조나 자기 이익만 겨우 지키는 노조, 그 어떤 경우도 계급 대표성을 높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지배계급이나 중간계급 친화적 사상들이 사기가 떨어진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조직 노동운동을 고립시키기가 더 쉬워진다.

지난해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 투쟁 때 이충재 당시 공무원노조 집행부가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를 회피하고 급기야 포기하면서 노동개악 저지 전선(노동계급) 전체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운동 내 분열만 커진 일이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런 분절론과 양보론에는 노동자 상당수가 스스로는 임금 인상, 고용 안정 등을 쟁취하기 어렵다는 가정도 깔려 있다. 이처럼 노동자들 스스로 자기 처지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보는 비관주의는 편협한 부문주의를 강화한다.

이런 위험들을 피하려면, 노동자들이 자기 이익을 지키는 투쟁을 하는 것과 협소한 부문주의를 구분해야 한다. 자기 이익을 지킬 줄 아는 노동자들의 자신감이야말로 계급 전체가 수행해야 할 정치투쟁의 중요한 자산이다.

문제는 노동조합 자체가 부문에 기초한 조직인데다가, (자본주의 발전 자체에 내재한 불균등성이 초래한 경제적 처우와 의식, 경험의 불균등성, 소외 등에서 비롯한 모순된 의식 때문에) 일상적 시기에 노조 운동을 지배하는 것이 개혁주의이고, 노동자들이 경제투쟁을 잘 수행하면서 그것이 더한층의 정치의식과 계급적 연대 투쟁으로 나아가도록 하려면 모종의 의식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좌파의 책임이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 많은 좌파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경원시하거나 임금체계나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같은 투쟁에 별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재벌개혁이나 최저임금 문제를 강조해 왔다. 이는 노동계급의 이익이라는 관점에 기초하지 않고, 노동계급을 민중(다양한 피억압 계급들)의 한 부분으로만 여기는 민중주의 전략과 타협하는 것으로, 좌파로서는 일종의 후퇴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중요성은 노동계급만이 자신의 이익과 사회의 보편적 이익을 일치시킬 수 있는 계급이라는 데에 있다.

정리하면, 조직 노동운동은 지금 고립돼 있지 않다. 노동계급의 잠재적·객관적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나 개혁주의 지도부의 자기제한적 정치가 효과적 투쟁을 제약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면 노동운동에는 혁명적 정치와 효과적인 전략·전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운동 안에서 구현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삼는 사회주의 조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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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퇴출법’ 발의를 환영하며

국가 통제적 역사교육 강화 반대한다


<노동자 연대> 177호 | 발행 2016-06-29 | 입력 2016-06-28


6월 23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대표 발의자로 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도록 하는 경우에는 국회의 심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는 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위해 공동 입법을 한다는 야3당 합의에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뒤로도 교과서 집필진과 집필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예비비로 편성된 예산 44억 원의 사용처 정보도 밝히지 않는 등 문제를 일으켜 왔다.


44억 원 예산의 용도를 밝히지 않으려고 세금으로 변호사를 5명이나 사서 여덟 달을 버텼지만, 결국 44억 원 중 25억 원을 교과서 국정화 홍보에 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부 문서에는 국정화 반대 여론을 “소모적 논쟁”이라고 부르고 이를 잠재울 홍보가 필요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홍보 예산을 세금에서 갖다 썼어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노동개악, 세월호 참사, ‘위안부’ 문제 한일 합의, 보육 예산 사태 등과 겹쳐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한 이유가 됐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역사 교육에 대한 국가 통제 강화를 뜻한다는 점, 이는 교육 내용에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등 역사 왜곡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평범한 사람들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국정화 강행 당시, 박근혜는 친일이나 독재 미화 같은 건 있을 리 없다고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랬다면 굳이 기존의 교과서 검인정 체제를 국정화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궁극으로는 자유발행제로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역사서들도 교과서로 채택될 수 있어야 한다. ⓒ사진 조승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한 우익적 역사 왜곡과 재해석은 단지 박근혜가 자기 아버지 박정희를 미화하려는 의도(“효도”)에서 한 일만은 아니다. 한국 지배자들의 독재, 친일, 부패, 착취 경력을 은폐·미화해 한국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재확립하려는 것이다.


즉, 1987년 민주화 과정 시작 이후 학계와 교육계 모두에서 현 주류 지배자들의 과거(실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가 부정적으로 다뤄진 것을 되돌리려는 의도다. 어느 정도는 경제 성장과 국제적 지위 향상을 경험한 한국 지배자들의 자부심도 반영됐을 것이다. 전경련은 뉴라이트 등장 전부터 교과서 전반이 기업과 기업주들, 자유시장 체제를 긍정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며 이를 바꾸려고 애를 써 왔다.


그런데 이제는 세계경제 위기와 동아시아 안보 위기 때문에 한국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과거 냉전을 배경으로 경제 성장을 위해 벌였던 일, 즉 노동계급을 억눌러 쥐어짰던 일을 (1백 퍼센트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되풀이해야 할 처지에 있다. 그러므로 독재와 착취의 과거를 미화하는 것은 오늘날의 반동을 정당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박근혜에게는 선거 참패 때문에 포기하기엔 더 장기적이고 중요한 일들이 교과서 국정화의 배후에 있다. 따라서 “국정화 재검토를 협치의 시금석으로 삼자”(참여연대)는 일각의 요구를 박근혜 정부가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근혜는 오히려 총선 참패의 효과를 조기에 차단하려고 구조조정 공세를 펴며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를 강행하는 등 안간힘을 써 왔다.


그럼에도 대중적 반감이 강력하기 때문에 여권 내에서도 슬금슬금 레임덕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여전히 정권에 불리한 요인이다. 물렁한 야당들도 여소야대 구도를 만든 대중의 압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 대선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선 직후 좋은 기회를 놓치긴 했지만 사회운동의 대응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대형 집회들을 보면, 주최 측 예상보다 참가자도 많고 분위기도 밝다. 2016총선시민네트워크가 총선 직전에 온라인 설문과 심사 등을 거쳐 선정해 최근 발표한 “20대 국회: 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10대 과제”의 두 번째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폐지”다.(첫 번째가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이다.)


국회를 무대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되돌리는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역사 교육에 국가주의를 강화하려는 것은 체제의 정당성이 의심받는 경제·안보 위기 상황에서 현존 계급 지배 질서의 정당성을 재구축하려는 시도이므로, 국정 교과서를 반대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이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정제 저지에서 더 나아가, 자유발행제를 통해 다양한 역사 해석들이 교육에 반영돼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에 입각한 훌륭한 역사서들이 늘어나고 교과서로 채택될 기회가 보장되는 것이 노동계급의 정치의식 함양에 훨씬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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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공기업 성과연봉제 강요

정부 협박에 위축되지 말고 단호하게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노동자 연대> 174호 | 입력 2016-05-18



4월 말 박근혜가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을 직접 챙기겠다고 한 뒤, 곳곳에서 무법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총선 참패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기대를 ‘배신한’ 그 결과를 뒤집겠다는 뜻이다. 총선 결과로 고무된 노동자들이 기대감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려는 것으로도 보인다.


박근혜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 쟁점을 부각해야 자기 계급을 단속해 레임덕도 막을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바로 그런 통치 전술이 총선 참패의 큰 요인이 됐음도 봐야 한다. 기층의 반발은 더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공부문 노조 지도자들은 6월 18일 10만 노동자대회를 열고 9월 총파업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저항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박근혜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 얘기를 꺼내 들었지만, 그런 구조조정은 지배계급 안에서도 분열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정작 그 문제에는 조심스러운 대신 임금 개악에는 앞뒤 안 재고 달려들고 있다.


△우리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나? 한 금융공기업에서 노동자들을 줄 세우고 성과연봉제 동의서 작성을 강요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나 고용안정 수준이 높은 공기업 노동자들을 ‘철밥통’으로 몰아붙이면 여론에서 불리하지 않다고 봤을 것이다. 게다가 정부와 기업주들은 상반기에 공무원, 공기업 부분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에 성공하면 내친김에 민간 대기업, 은행들로도 이를 확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박근혜도 5월 13일 야당 원내대표들과 만나 “[성과연봉제를] 공공기관에서 도입해야 민간으로도 전파된다”며 속셈을 분명히 드러냈다.


노동자들도 성과연봉제가 저성과자 퇴출 등 노동 개악의 일부로서 노동자의 처지를 크게 불안하게 할 것을 안다. 5월 1일 노동절 한국노총 노동자대회에서나 14일 금융공기업지부 합동대의원대회에서는 ‘해고(노예) 연봉제 철회’라는 구호가 인기를 끌었다.


종합해서 보면, 최근 공공부문 사측의 무리수는 정부의 의지가 강해서만이 아니라 노조가 쉽게 양보할 태세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금융노조 소속 공기업지부들이 교섭권은 산별노조에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 개별 교섭을 거부하고 (아직은 미약하지만) 저항을 시작한 것이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악’과 임금체계 개악이 노동계급 전체의 임금을 줄이려는 목적인 만큼 먼저 맞붙게 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1차 저지선 구실을 해야 한다. 나머지 노동자들이 이 투쟁들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그 점에서 노동운동 일각에서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을 지지하길 꺼리는 분위기를 부추기는 것은 운동의 심각한 약점이 될 수 있다.


공기업 경영진들과 정부의 억지와 위선


금융산업을 총괄 지휘하는 금융위원장 임종룡도 금융공기업 노사를 강하게 압박해 왔다.


올초 이 기업들 경영진들은 산별교섭을 위한 금융사용자협의회에서 일방 탈퇴했다. 개별 협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라는 금융위의 종용이 배경이었음이 일부 드러났다. 임종룡은 5월 10일 금융공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불러 또 성과연봉제를 닦달했다.


임종룡은 “금융 공공기관은 대표적인 고임금 구조 …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보수가 필요하다"는 비난도 했다. 노동부장관 이기권도 “공공기관과 금융회사는 정부의 보호와 지원으로 상위 10퍼센트의 임금 … 정년 연장의 최대 수혜자”라고 장단을 맞췄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금융을 수행한 대가로 이 노동자들이 그 유탄을 맞고 고통을 겪어 온 일은 말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일은 줄지 않은데 사람이 줄어서 금융권 전체가 연평균 2천5백 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에 시달린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정책금융 등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업무 성과를 어떻게 개별로 매길 수 있을까? 시중은행에서도 성과 압박은 오히려 부실 대출을 늘리는 등 부작용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한술 더 떠 이기권은 “노조가 임금체계 개편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동의권 남용”이라고까지 얘기했다. 노조가 노동자의 이익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시키는 대로 하라’)는 오만하고 역겨운 발상이다. 결국 ‘노조가 동의 안 해 준다고 성과연봉제 강행을 기권하지 마라’고 독려한 셈이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94조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임종룡, 이기권이 임금이 너무 높으니 성과연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 것은 명백히 노동조건의 불리한 변경을 촉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노조 동의가 없어도 된다는 것은 ‘지배하는 힘이 곧 정의’라는 궤변일 뿐이다.


이처럼 부패한 특권층다운 언사들로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 공공부문 현장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개입한 결과, 곳곳에서 인권까지 유린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금융노조는 5월 13일 직원들이 죄인처럼 서서 추궁당하는 장면으로 보이는 사진을 공개했다. 회사 간부가 성과연봉제에 찬성하는 개별 동의서를 내지 않은 직원들을 불러서 협박하는 모습을 노조 간부가 긴급 출동해 찍은 것이다. 알고 보니 산업은행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작태들 때문에 애초 성과연봉제는 찬반조차 물을 필요가 없다고 했던 금융노조 공기업지부들은 신속히 조합원 찬반투표를 조직해야 했다. 주택금융공사지부가 85.1퍼센트, 기술보증기금지부에서는 98.57퍼센트, 주택도시보증공사지부도 90.2퍼센트가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성과연봉제에 반대했다. 산업은행지부에서도 94.8퍼센트가 반대했다. 노조 위원장의 독단적 배신에 당해 버린 예금보험공사노조(상급단체 없음)도 애초 조합원 전체 투표에서는 62.7퍼센트가 반대했었다.


자산관리공사에서는 사측이 직원 76퍼센트가 성과연봉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발표하자 노조가 곧바로 찬반투표를 실시했는데 80.4퍼센트가 성과연봉제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사측은 5월 10일에 동의서 결과를 근거로 취업규칙 변경을 이사회에서 통과시켰다. 노조는 당연히 이를 부산지방노동청에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다만 성과연봉제 관철이 어려워서 사퇴하겠다는 최고 경영자를 설득하려다가 뒤통수를 맞고(사측이 기습적으로 사퇴를 걸고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조합원 총회를 소집하려 함) 오히려 노조의 동력을 약화시킨 금융노조 한국감정원지부 사례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지금 국면에서는 경영진을 설득할 수 있다거나 속마음은 다르겠지 하는 식의 생각을 조금치도 해서는 안 된다. 결국 지부 집행부는 총사퇴했고 현재 선거를 준비 중이다.


조선업 구조조정과 은행 성과연봉제가 무슨 상관?


임종룡은 5월 10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 두 기관에 대한 자본 확충이 절실한 만큼 성과연봉제 도입 등 철저한 자구노력이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주채권은행 구실을 해야 하고 수출입은행은 현대중공업에 가장 많은 대출을 해 준 금융기관이다. 그런데 산업은행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4조 원 규모나 되는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추가 지원을 결정한 것은 청와대와 금융위였다.


자신들의 결정 때문에 부실 채권 문제가 더 커진 것인데도, 정부가 그 책임을 노동자들의 임금에 전가하려는 것은 파렴치하다. 더구나 정부 차원에서 조선업 구조조정을 다루는 국면에서 사실상 정부의 개입 수단이 될 두 은행을 성과연봉제 문제로 옭아매는 것은 행여나 있을 반발을 잠재울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의 결과적인 책임마저 엉뚱하게 금융공공 노동자에게 떠넘기려는 치졸한 꼼수다. 그리고 경제 위기를 빌미로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고통전가 책략이다.


조선업 구조조정이나 자금 지원과 해당 기관 노동자들의 임금은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자들끼리 반목하게 만들려는 비열한 술책을 중단해야 한다.(글을 마무리한 상황에서 산업은행 사측이 금융위의 자본 확충 협박을 핑계로 노조를 무시하고 확대된 성과연봉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총력 저항을 다짐한 금융노동자들


5월 14일 서울 강서구의 KBS스포츠월드 체육관에는 전국에서 모인 금융노조 공기업지부 8곳(금융위원회 산하 7곳, 국토교통부 산하 2곳 중 집행부가 총사퇴한 한국감정원지부를 제외한 8곳) 대의원들과 시중은행지부 상임간부들 1천여 명이 모여서 9월 파업을 공식 결정했다.


△1천여 명이 모여 9월 파업을 결정했다 5월 14일 금융공기업지부 합동대의원대회. ⓒ사진 제공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이날 참가한 대의원들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연설을 경청하고 구호를 외쳤다. 대부분 젊어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금융노조 투쟁을 경험하진 못했겠으나, 새롭게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는 세대일 것으로 보인다.


금융노조 김문호 위원장은 이날 대회사에서 기업은행장에게 항의 면담을 갔더니 사측이 은행장실이 있는 층 전체의 방화벽, 철문 등을 모두 내리고 막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부는 어떻게든 상반기에 공기업을 해치우고 올해 안에 민간 은행들까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고 한다면서, 9월 파업에 이어 2차, 3차 파업도 실행하자고 했다.


한 공기업지부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는 퇴출을 통한 일자리 돌려막기를 일자리 창출이라 부른다’고 성토했다. 모든 대표자들이 결사 반대를 약속했다.


최근 금융노조는 4월부터 기업은행, 산업은행, 자산관리공사 등 공기업지부들을 순회하며 결의대회를 해 왔다. 이 순회 결의대회에 근무 중인데도 수백 명이 참석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2천 명이 넘게 모이기도 했다. 금융노조는 6월 18일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자대회(서울 여의도 예정)에는 역대 최대로 참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한국노총이 최초로 서울 도심에서 노동절 집회를 열었을 때 금융노조는 2만여 명이 참가해 분노가 차오르고 있음도 보여 줬다.


물론, 5월 안에 금융공기업 성과연봉제 도입을 완료하겠다고 정부와 사측이 협박을 하는 마당에 9월 파업은 늦어 보인다. 아무래도 20대 국회에 대한 기대감이 큰 듯하고, 사측의 불법 무리수가 법원에서 불인정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불만은 크지만 기층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이 많지 않고 지도부가 철밥통론에 맞서 파업 같은 수단을 과감히 사용할 자신감이 높지 않은 듯도 보인다. 그래서 선도적으로 공공부문의 투쟁을 이끌기보다 시중은행 지부들까지 포함해 합법파업을 하려는 소극적 생각에서 파업 시점을 9월로 잡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측의 교섭 거부로 낸 쟁의조정신청에 중앙노동위원회가 성실교섭을 권고하는 행정지도 결론을 낸 것(16일)에서 보듯 저들만큼이나 우리도 투쟁 상황이 뜻대로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자산관리공사, 산업은행 등이 노조 반대에도 이사회에서 성과연봉제 강행을 결정했다.(기업은행도 성과연봉제(안)을 사내망에 공개했다.)


만일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해 성과연봉제가 지난해 임금피크제 때처럼 어이없게 도입되면 나머지 노동 개악의 현장 관철도 더 쉬워질 것이다. 따라서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 파업을 앞당긴다는 태세를 갖추려 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층의 전투성을 드높일 투쟁들을 늘려가야 한다. 시중은행 지부들도 행여라도 방심하지 말고, 6월 18일 집회에 최대로 힘을 집중하는 등 지금부터 투쟁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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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총선 참패로 고무된 한국노총 노동자들 

<노동자 연대> 173호 | 입력 2016-05-01 


한국노총은 5월 1일 노동절 맞이 대규모 집회와 행진을 벌이며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악 강행 시도와 구조조정 협박에 항의했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한국노총 노동절 대회(“지침 철폐! 노동법 개악 저지! 임단투 승리를 위한 한국노총 5.1 전국노동자대회”)에는 조합원 3만여 명이 모였다. 특히 금융위원회를 통한 정부의 성과주의(성과연봉제 등) 도입 압박에 맞서 투쟁의 시동을 거는 금융노조 조합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2만여 명이 참가한 금융노조는 본대회 전 사전 대회를 열어서 파업을 포함한 투쟁을 결의했다.)

△126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5월 1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국노총 조합원 3만여 명이 모여 ‘지침 철폐! 노동법 개악 저지! 임단투 승리를 위한 한국노총 5.1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한국노총

지난해 노동절 대회를 처음으로 야외(서울 여의도 문화공원)에서 개최한 한국노총은 올해도 서울시청 광장에 수만 명을 동원해 박근혜의 노동 개악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매우 광범위함을 드러냈다. 한국노총이 노동절에 종로 대로를 행진한 것은 올해가 최초다. 

이날 집회는 새누리당이 참패한 총선 결과 덕분인지 매우 활력 있었다. 한국노총은 총선에서 ‘반노동자 정당 심판’을 내걸고 사실상 새누리당에 반대했다. 

몇몇 노조들은 예상치보다 조합원들의 참여가 높다며 고무됐다. 연단에서는 메르스세월호 등에서 보인 정부의 대처를 재차 폭로하는 발언들이 나왔고, 박근혜 정부야말로 저성과 해고돼야 한다는 발언은 큰 호응을 얻었다. KT노조의 부패를 비판하며 나온 KT노조 민주동지회 소속 조합원들의 홍보 활동도 주목을 받았다.

집회에 초대된 정의당 노회찬 당선인과 한국노총 임원 출신들인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당선인과 한정애 당선인(현 의원), 김기준 현 의원 등은 조합원들에게 총선 결과를 이어받아 박근혜의 노동 개악에 맞서 앞장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특히 맨 처음 발언한 노회찬 당선인은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반면에 한국노총 중앙 방침을 어기고 새누리당에 비례후보 신청을 해 당선한 임이자 전 한국노총 여성위원장은 조합원들의 야유로 자기 이름도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다. “[집회에] 초대받지 못했지만 ... [여권에서] 할 말은 하겠다”고 변명했지만, 쌓인 분노 앞에서 통하지는 않았다. 앞으론 새누리당 의원은 초대도, 무대 연단 제공도 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126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5월 1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국노총 조합원 3만여 명이 모여 ‘지침 철폐! 노동법 개악 저지! 임단투 승리를 위한 한국노총 5.1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김문성

대정부 투쟁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4.13 총선결과는 … 정권과 집권여당에 대한 노동자들의 준엄한 심판”이었다며 노동 개악 강행 시도에 맞서 싸울 것을 주장했다. 또한 “구조조정은 대량감원과 임금삭감과 같은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윤은 사유화하되 손실은 사회화하는 친재벌정책”이라고 규탄했다.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불이익변경이 산업현장으로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공공 금융 노동자들의 성과연봉제 저지투쟁에 적극 함께하자”고도 했다.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한 마무리 집회에서 공공연맹 이인상 위원장은 “한국노총 지도부가 조합원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큰 박수를 받았다. 공공연맹은 한국노총 내 금속연맹화학노련과 함께 지난해 한국노총 중앙의 노사정위 복귀와 야합에 반대한 바 있다. 또한 박근혜가 공공기관 성과주의 도입을 직접 챙기겠다며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노총 공공부문(주로 금융노조공공연맹공공노련 등에 속해 있다.)도 연합해 저항을 개시하고 있다. 이런 저항 덕분에 정부는 4월말까지를 성과연봉제 선도 도입 시한으로 했으나, 최근 5월말로 미뤄졌다.

이날 한국노총 노동자대회는 박근혜의 총선 참패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자신감을 고 있음을 보여 주는 고무적인 집회였다. “5~6월 임·단투에서 정부의 양대지침을 무력화 시키[자]”고 결의했다. 을지로, 종로, 청계천으로 이어진 행진도 힘차게 진행됐다. 다만, 한국노총 지도부가 구체적인 투쟁 계획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언론과 조합원의 눈이 쏠리는 노동절 대회에서 중앙 차원의 대중 투쟁 계획을 발표했다면 고무된 분위기에 초점을 부여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5~6월 임·단투에서 노동 개악 지침을 현장에서 무력화시키는 투쟁도 필요하지만, ‘총선 심판을 무시하고 거스르려는’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고 물러나게 하려면 대정부 투쟁을 집중해서 건설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 그나저나 이렇게 즐거웠던 집회에서, 1년에 한번 노동절에나 만나는 여러 반가운 님들께서 하는 첫마디가 다들 체형이 부르주아가 됐다는 것이라니...









KT전국민주동지회가 KT노조의 부패를 규탄하며 홍보전을 하고 있다.


KT전국민주동지회가 KT노조의 부패를 규탄하며 홍보전을 하고 있다.




서울 노동청을 돌아 종로 대로를 향해 행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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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결과 평가 논쟁


<노동자 연대> 172호 | 입력 2016-04-23


이 기사를 읽기 전에 다음 연결 기사를 읽기 바랍니다 : [총선 결과가 보여 준 것] 박근혜 정부의 참패, 노동계급(그리고 정의당)의 전진


박근혜는 총선 직후, “어려움이 있지만 노동개혁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 하에 …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 경제 위기 때문에 자본가들을 위한 노동개혁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막무가내 화법이, 총선 참패로 만천하에 확인된 정치 위기에 대한 박근혜식 대처법일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노동개혁” 호소는 총선 참패 전과 총선 후의 맥락이 같지는 않다. 당장 악법들 통과에 나서야 할 새누리당 의석 수가 과반이 안 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분노도 더 분명하다. 박근혜가 총선 참패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자, 선거 일주일 뒤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의 국정수행 지지도와 새누리당 지지율이 모두 취임 이래 최저로 떨어졌다.

총선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조직 노동계급의 자신감도 좀 더 고무될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한 이유다. 20대 총선은 명백한 박근혜 정부 심판 선거였고, 지난 3년 동안 박근혜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며 분노를 결집해 온 것이 바로 노동운동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참패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추리자면, 대체로 박정희 향수를 무색하게 만든 경제 불황, 박근혜의 불통 통치 스타일,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그의 사악함, 노동계급에 경제 위기 고통을 전가하려는 “노동개혁” 시도 등일 것이다.

노동자 투쟁은 이 요인들에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며 박근혜에 불리한 요인들이 숙성하는 데에, 특히 노동계급의 정치적 표현 욕구에 영향을 미쳤다. 여론조사는 늘 부정확성을 안고 있지만 지지율 곡선의 상향, 하향 추세를 비교 검토함으로써 시간적 추세를 보는 데는 유용할 수 있다. 여러 기관의 박근혜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 추이가 그렇다. 취임 후 첫 위기를 겪은 것은 바로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노조 파업 때였다. 그다음이 세월호 참사 때였고, ‘성완종 리스트’로 널리 알려진 청와대 측근들의 부패 의혹 파동과 공천 파동 등으로 이어졌다.

즉, 박근혜 정치 위기의 진행 방향은 박근혜 지지층 밖에서 시작돼 안으로 번지는 식이었다. 따라서 노동자 투쟁을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지 않는다 해도 박근혜 심판 정서의 확산에서 주요한 요인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노동자 투쟁 외의 요인으로는 단연 세월호 참사를 들 수 있다.

노동계급 정치세력의 재가동

박근혜 지지 하락은 전국적 현상이었다. 총선에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단지 수도권에서만 타격을 입은 것이 아니다. 텃밭인 영남의 핵심 도시들에서도 큰 타격을 입었다. “진박”을 대거 공천한 대구에서 전체 의석의 3분의 1(4석)을, 울산에서는 절반(3석)을 잃었다. 부산에서도 3분의 1 의석(6석)이 더민주당(5석)과 무소속이다. 정당 득표를 봐도 새누리당은 2014년 지방선거보다 대구에서 14만 표, 부산에서 27만 표, 울산에서 8만 표가 줄었다.(세 곳 모두 투표자 수는 늘었다.) 부산과 울산에서 새누리당 정당 득표는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을 합친 것보다도 적다.

따라서 “영남 노동벨트”(특히, 울산과 창원)에서 민주노총 전략후보들이 큰 다수 득표로 당선하고 경주 등지에서 예상보다 선전한 것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진이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전국적 박근혜 심판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영남 노동벨트에서 새누리당 후보는 모두 득표가 줄었고, 민주노총 전략 후보들의 표는 비약적으로 늘었다. 울산 북구의 윤종오 당선인은 자신이 출마해 낙선한 2014년 지방선거(북구청장)보다 이번에 2만 2천여 표를 더 얻었다. 2년 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표는 9천4백여 표였고, 이번에 새누리당 표는 그때보다 5백 표 줄었고, 투표자 수는 1만 2천여 명 늘었다. 대강 말해, 윤 당선인이 이 표들을 모두 흡수한 셈이다.

울산 동구의 김종훈 당선인도 자신이 동구청장으로 출마해 4천 표차로 낙선한 2014년 선거보다 이번에 2만 표를 더 얻었다. 2년 전 노동당 후보는 4천3백 표 정도를 얻었고, 이번 선거 투표자 수는 그때보다 8천여 명 늘었고, 새누리당 후보는 이번에 7천 표 줄었다(민주당 계열의 야당 표는 2년 전과 비슷함). 그러므로 김종훈 당선인도 대강 말해 이들을 모두 가져온 것이다.

한마디로 울산에선 노동계 후보에게 대단한 표 집중이 일어난 것이다.

경남 창원성산의 노회찬 당선인은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후보가 얻은 표를 더한 것보다 7천 표를 더 얻었다. 2012년총선에는 자본주의 야당(국민의당) 후보가 없었는데, 이번에 국민의당 후보가 1만 표가량 득표했고, 새누리당 강기윤의 표가 4천 표 준 것을 고려하면, 늘어난 투표자(약 1만 4천 표)의 대다수를 노회찬 당선인이 흡수했음이 분명하다.

덧붙여,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당선한 경기 고양시 덕양구도 서울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주로 사무직인 조직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함)이 많은 선거구다. 금속노조 실세 출신인 심 대표 자신도 민주노총 상근간부층 기반을 많이 확보하고 있고, 선거운동에서 ‘노동개악’ 저지를 강조했다. 심 대표는 더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고도 야권단일후보였던 4년 전보다 표가 늘어(2만 7천 표). 새누리당을 크게 눌렀다.

민주노총 전략후보들뿐 아니라 진보·좌파 정당과 후보들 수십 명도 박근혜의 ‘노동개악’ 저지를 핵심 공약으로 걸고 지지를 모았다. 그 결과, 민주노총이 정당투표 지지 정당으로 공지한 진보·좌파 정당 4당은 합쳐서 2백13만 표나 얻어 냈다. 이는 지금과 같은 4개 진보 · 좌파 정당 구도로 치른 2014년 지방선거에서 네 당 광역비례 득표의 총합(2백23만 표)애 근접한 수치다.

욕심에 못 미칠 수도 있고, 그새 유권자가 늘어 득표율로 치면 조금 더 낮아진 걸로 나타나 아쉬울 수도 있다. 정치 경험이 적은 청년들이 특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아닌 총선이라는 점(전국적 성격이 더 강하다), 지난 2~3년간 진보·좌파 정치의 인지도와 관심도가 낮아져 올해 초에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5퍼센트 미만에 불과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 점에서 결과를 선거 전 현실적 예상치와 비교해야지, 선거 전에는 기대도 안 하다가 ‘교섭단체도 못 됐느니’ 하는 비현실적이거나 과도한 기준을 들이밀며 냉소하는 것은 옳지도, 솔직하지도 않은 태도다. 그렇게 조직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 능력도, 정치적 표현 능력도 평가절하하는 태도가 도대체 무엇에 보탬이 될까 하는 점에도 생각이 미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계급 투표가 위력을 발휘했다. 노동운동은 고립돼 있기는커녕 (당선한 영남 노동벨트 전략 후보들처럼) 일정한 조건이 되면 지역구 선거에서도 막강한 흡인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 ‘노동자 정치가 부재’했다거나 ‘진보가 실패했다’고 보는 것은 억지로 현실에 눈 감지 않고서는 내놓기 힘든 ‘분석’일 것이다.

주류 야당

이렇게 전체 그림을 그리면, 더민주당이 정당 득표에서 3등을 하고 전통적 지역 기반이던 호남에서 참패를 당하고도 국회 1당이 되는 역설적 어부지리를 얻고, 호남 밖 지역구에서는 단 두 석밖에 건지지 못한 국민의당이 정당 득표에서는 2위를 한 또 다른 역설을 해석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유권자들이 지역구에서 반박근혜 심판 투표를 했고(당선 가능한 비새누리 후보에게 표 몰아주기), 적잖은 야권지지층에서 (호남과 정당득표에서) 더민주당에게 불신을 나타냈다. 두 부르주아 야당이 총선에서 우클릭 경쟁을 했지만, 선거 결과를 전반적인 사회 보수화의 결과처럼 보거나, ‘보수 양당 체제가 보수 3당체제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식의 현상적인 분석은 진정한 객관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두 부르주아 야당은 질질 끄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국제적인 주류 정치 우경화 흐름에 영합하겠지만, 그 과정이 직선이지는 않을 것이다.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의 기대와, 지배계급에게서 수권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우클릭 압력 사이에서(특히, 대선을 염두에 두고 눈치 보기를 하면서) 때때로 모순과 균열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의 수위가 좀 더 올라가고 그에 따라 정치적으로 더 전진하려는 시도가 진행된다면 이런 모순과 균열은 아마도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근원이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감의 확산과 심판 정서가 커져 온 것에 있고 그 때문에 결국 보수층에도 균열이 생겨 새누리당 지지층의 일부 이탈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 비춰 보면, 국민의당 지지표에 새누리당 지지층이 얼마나 옮겨갔나 하는 따위의 물음은 부차적인 쟁점이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선권에서 경쟁할 수준까지는 못 됐던 진보 · 좌파 후보들의 지지율이 기대에 못 미쳤던 것도 설명할 수 있다. 소선거구제와 승자독식 제도 때문에, 야권단일화가 없어도 투표 때는 양강으로 투표가 몰리는 효과가 나는 것이다.

종합하면,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사악한 통치 행태가 전국적 규모로 노동자 대중의 다수에게 거부당한 선거였다. 조직노동자 투쟁의 요구와 대의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민주노총, 피억압 대중을 대변하려 한 진보·좌파 정치세력들의 단결된 선거 도전은 박근혜를 향한 대중적 분노의 주요한(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구성요소였다.

정의당

한편, 진보·좌파 진영의 일부는 이번에 노동계급이 선거에서 전진하는 과정에서 큰 수혜를 입은 세력이 정의당인 점을 문제 삼는다. 정의당의 강령이나 야권연대 시도, 친노 참여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 등. 물론 정치적 경험이 충분하지 않아서 조급한 경향이 있는 일부 좌파적 청년들이나 산업현장에서의 충돌 문제에 더 전투적인 노동자들이 개혁주의가 노골적인 정의당이 진보 ·좌파 정치 당선자의 다수를 차지한 것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정의당의 강령과 지도자들이 지지하는 이데올로기가 주류 사회민주주의인 것은 사실이다. 그 당 내에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더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경향도 있다. 안보 정책에서도 충분하게 진보적이지 않다. 또한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보다는 제도권 ‘정치’를 더 강조한다.

그럼에도 이 당의 주요 계급 기반은 노동계급에 있다. 이 당의 리더십 배경, 당원 구성 등이 모두 그렇다. 이 당의 지도자들은 또한, 자신들이 더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갖추려면 조직 노동운동의 물질적 · 정치적 지지를 충분히 받아야 함을 이해한다.(참여계 리더들의 영향력이 최근에 두드러지지 않는 것도 이와 연관 있다고 볼 수 있다.) 노회찬 전 당대표가 경남 창원성산에 출마해 민주노총 전략 후보 경선까지 치르면서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받으려 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의당이 조직 노동자들에게서 더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에 기초해 평가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정의당이 약진한 것은 앞서 살펴 봤듯이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물론 노동자 투쟁이 아직 충분하게 고양되지 못한 상황이라 정의당 안에서도 좌파가 약진하거나, 정의당보다 더 급진적인 좌파정당들도 함께 성장하는 수준에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정당득표에서 정의당이 크게 앞선 것은 상대적으로 당선가능성이 더 높은 당으로 표가 몰린 결과로 해석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서 박근혜와 집권여당의 사악한 대응을 지켜보며 치를 떨고, ‘노동개혁’ 같은 박근혜의 친기업 정책으로는 좋은 일자리를 보장받기 어렵다고 본 청년들도 급진화의 첫 표현으로 정의당에 투표했을 것이다. 정치와 투쟁 경험이 아직 부족한 새세대 진보 청년들에게는 그나마 언론 등에서 다뤄지고 유명 인사도 있는 정의당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정리하면, 노동계급의 정서가 다시 활성화하면서 주류 개혁주의 정치가 일차적인 수혜자가 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노동자 연대>는 이런 계급세력 관계 분석에 기초해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의 선거적 성공을 예측한 것이다.

따라서 대중의 실천과 의식을 그 흐름과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않고서 지도자들의 온건한 이데올로기만 보고서 평가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대중 투쟁으로써 지금보다 대중의 자신감과 의식이 전진할 때, 정치 지형도 더 한층 좌경화될 수 있다. 그러려면, 노동자들이 이번 총선으로 고무된 것을 이용해 더 투쟁에 나서도록 독려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좌파적인 관점일 것이다.

기회주의

노동자들이 반기는 선거 결과를 어둡게 평가하고 정의당의 약진을 노동계급의 정치와 무관한 것으로 보는 이들은 이런 일을 잘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초좌파적이거나 아니면 기회주의적인 언사로 (진보 · 좌파 정당 가운데 가장 많은 정당득표를 한) 정의당의 약진과 “영남 벨트” 조직 노동자들의 계급 투표 등을 무시함으로써 결국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진까지도 없던 일 취급하기 때문이다.(왜 전진인가 하는 점은 앞에서 다뤘으므로 다시 다루진 않겠다.)

이런 평가들에 따르면, 박근혜가 참패했지만, 야당은 우경화해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고, 정의당의 득표도 민주당과 야권연대에 집착해 얻은 성과니 좌파적 결과라고 보기 힘들며, 나머지 좌파 정당들은 득표가 적었으니 노동 · 진보 정치가 전진한 것도 아니라는 식이다. 비관적 전망에 기회주의적이거나 아니면 종파적인 태도까지 더해,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서 이룬 노동 정치의 전진마저 없는 일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평가들을 읽다 보면, 과연 이번 총선이 우파가 패배한 선거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선거를 치른 것인가? 도대체 이런 평가로 지금 새누리당 안에서 내분 조짐이 생기고, 박근혜 지지율이 레임덕 수준으로 떨어지고, 우파 언론들이 청와대에 불만을 쏟아내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 집회의 활기(일주일 전 집회와 비교하면 더욱더 두드러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이들은 이 집회 참가자들이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 몫으로 당선한 박주민 당선인에게 박수를 보낸 것조차 훈계하려고 한다.

요컨대, 이들의 선거 평가는, 정당 지도자들의 면면만 보고, 투표에 참가한 대중의 시각, 감정, 바람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오만한 관점 때문에 이들은 개혁주의자들이 이끄는 운동 속에서 끈기 있게 그 대중과 대화하고 그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 급진적이고 초좌파적인 언사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기회주의적 회피에 불과한 이유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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