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관함식의 해상 사열에 일본 자위대가 군함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직 공식 결정은 아니라는 보도도 있지만, 일본 측 답변을 보면 자위대 군함의 불참은 기정사실화되는 듯하다. 일본 측은 자위대 함선의 욱일기 게양은 법령에 따른 것일 뿐 아니라 자위대의 자랑이라고까지 답했다. 일본 자위대 군함이 오지 않는다면 잘 된 일이고, 그렇게 돼야 한다.
욱일기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욱일기는, 20세기 초중반 일본이 조선,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벌인 침략 전쟁과 강제 점령에 앞장선 일본 육군과 해군의 공식 기였다. 일제의 전쟁범죄를 상징하는 ‘전범기’라고 부르는 이유다.
따라서 일본의 전쟁범죄 피해국 국민의 대중이 욱일기에 분노와 반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일본 국가는 이를 제2차세계대전 후에 다시 일본 자위대의 공식 기로 채택했다. 미국이 용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은 냉전을 배경으로 한 동아시아 패권 전략에 따라 일본을 핵심 동맹국으로 육성하면서 일본의 전쟁범죄를 적당히 덮어 줬다.
일본은 미국이라는 후원자를 등에 업고 다시 힘을 키우면서 피해국 민중에게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았다. 한국민에 대해서도 여전히 식민 강점, 강제 징용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 사죄는커녕 기만책만 남발하는 ‘위안부’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니 한국인 다수가 욱일기를 게양한 자위대 전함의 한국 영토 진입에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정당하다. 단지 욱일기만 떼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기껏해야 욱일기 게양만 문제 삼았다. 반감이 광범하게 일어 정부도 비판 대상이 될 것 같자 태도를 돌변한 것이다.
군국주의적 퍼포먼스
그러나 일본 자위대 군함의 관함식 참가 문제는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이 관함식 행사 자체가 군국주의적 행사이기 때문이다.
관함식의 주 행사인 해상 사열은 각국의 막강한 전함들이 공개적으로 해상 행진을 하는 것이다. 바다에서 펼쳐지는 군비 경연 퍼레이드라고 보면 된다. 이번 관함식에도 미국, 일본(불참 유력), 중국, 러시아 등 제국주의 열강의 전함이 참가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 경쟁의 주역들이 제주에서 무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이 틈에 끼여 군국주의적 성장을 과시하려는 것이다.(노무현 정부 이후 한국 해군은 ‘대양 해군’을 표방하며 끊임없이 군비 확충과 해외 진출을 모색해 왔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모든 일을 다 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이런 군국주의적 퍼포먼스를 "평화의 섬" 제주도 앞바다에서 벌이는 것 자체가 위선이고 문제다.
이 기지 세우기를 결정하고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였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폭력을 동원해 반대를 억누르고 기지를 완공했다. 이 과정을 서두르다가세월호 참사 발생에 큰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래서 해군기지에 반대해 온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은 애초 서귀포와 강정 앞바다에 펼쳐질 관함식 개최에 반대해 왔다. 해상 사열에 참가할 각국 전함들이 바로 강정 해군기지에 정박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수석 이용선을 강정마을에 보내어 주민들을 이간질했다. 그리고 지금 관함식 반대 시위에 폭력을 행사하며 방해하고 있다. 태풍으로 취소되기 전 1차 해상 사열로 예정된 10월 5일을 앞두고 벌인 시위에 해군과 용역들을 동원해 폭력을 휘두르고 협박을 자행했다.
이처럼 제주 해군기지는 민관복합관광미항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과 다르게 저주받은 해적 기지에 불과하다.
결국 이번 행사는 10년마다 개최되는 강대국들의 군국주의 경연 행사라는 목적뿐 아니라 한국 정부도 제주 해군기지 완공과 성장한 해군 전력을 국내외에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열리는 것이다.
9월 6일 이명박 재판에서 검찰은 징역 20년에 벌금 150억 원, 추징금 111억여 원을 구형했다. 재판부의 선고는 10월 5일 있을 예정이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이명박 구속 자체가 이미 촛불 운동의 성과지만, 이명박의 죗값으로 치면 구형 형량인 징역 20년도 부족하다. 이명박은 감옥에서 더 오래 고통받아야 하고, 더 많은 재산을 추징당해야 한다. 이명박이 중형을 받는다면, 쌍용차 노동자, 용산 참사 피해자 등 이명박이 못살게 굴고 궁지로 몰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응어리가 조금 풀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조금’일 뿐이다. 이명박이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야만적 탄압과 야비한 괴롭힘을 떠올리면, 1000년형에 전 재산 몰수를 해도 분이 다 풀리지 않을 것이다.
광우병 위험 소고기 수입 문제를 계기로 불거진 이명박 반대 촛불 운동에서 강경 진압을 해서 여중생, 여고생들까지 경찰 군홧발에 짓밟혔다. 인터넷에 정부 비판 글을 올렸다고 구속되고 직장에서 잘리는 일이 벌어졌다.
2009년 초에는 강제 철거에 반대했다고 경찰특공대의 공격을 받아 철거민 1인이 불에 타 죽었다. 오히려 피해자의 아들이 구속돼 수년간 고초를 겪었다.
해고에 반대해 파업을 한 쌍용차 노동자들도 지옥을 봤다. 진압 경찰은 헬기를 동원해 발암물질 포함 최루액을 수십 톤이나 뿌려댔다. 테이저 건 등 대(對) 테러 진압 무기와 부대들이 동원됐다. 그런 공격을 받으며 노동자들은 수십 일을 물과 전기가 끊긴 공장에 갇혀 있어야 했다.
파업이 끝나고도 이명박이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걷히지 않았다. 구속, 손배·가압류가 또 그들을 옥죄었다. 경찰이 잘한 일로 쌍용차 진압을 꼽았던 잔인무도한 자들은 뻔뻔하게도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20억 가까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충격과 트라우마가 더 오래 간 이유다.
한 노동자는 헬기 소리를 듣고 어린 자녀 앞에서 벌벌 떨며 숨어야 했고, 한 노동자는 혼자 살던 자기 집을 생수통 등으로 가득 채우는 등 요새처럼 만들어 놓고 자살했다.
용산 참사, 쌍용차 파업 모두 이명박이 강경 진압을 직접 지시한 일이 드러났다. 최근에는 이명박이 댓글 공작을 독려한 녹취록까지 나왔다. 폭력 진압을 진두 지휘한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석기(현 자유한국당 의원)와 경기지방경찰청장 조현오도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려면 이명박에게 중형이 내려져야 한다.
이 밖에도 좌파와 정권 반대자들에 대한 광범한 사찰과 음해 공작, 2012년 대선 여론 조작 개입, 경남 밀양 송전탑과 제주 강정 해군기지 공사 강행과 건설 반대 운동 탄압, 노동법 대폭 개악 등 간단히 정리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이를 위해 언론 장악도 시도해 장기 언론 파업이 벌어졌고, 해직 언론인이 다시 생겨났다.
사법 농단을 주도한 양승태를 대법원장에 임명한 것이 이명박이므로 양승태의 죄목 대부분이 박근혜만이 아니라 이명박의 죄목과 연결된다. 이처럼 박근혜의 온갖 야비한 탄압 작태 대부분이 이명박 때 시작됐다.
이명박, 박근혜 같은 사악한 권력자가 범죄자로 선 것은 노동자·민중이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이들을 재판대에 세운 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 이명박에게 중형 선고를 바란다.
본지도 이명박의 탄압으로 곤경을 겪었다.
2010년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1년 넘게 같은 장소에서 〈노동자 연대〉(당시 〈레프트21〉) 신문을 정기 홍보·판매를 해 오던 독자 5명이 “사상 검증” 운운하는 경찰들에게 연행된 것이다. 결국 신문 홍보·판매가 집시법으로 처벌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제주 해군기지를 위한 폭력 진압에 반대한 김지윤 기자도 형사 고발 등을 당하고 국정원과 해군 등의 조직적 음해 공작에 시달렸다.
민간인 사찰 수첩에서 노동자연대 관련 메모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명박은 2008년 촛불 운동에 대항해 인터넷 공작을 벌였는데, 노동자연대에 대한 황당한 인터넷 음해도 이때 매우 극심했고 일부는 아직도 유포되고 있다.(최근엔 친문 열성분자들이 이를 재활용하고 있다.)
특별 사면 어림없다
검찰의 ‘구형 의견’을 보면, 이명박을 대통령의 책무를 저버린 권력형 부패 범죄자로 규정했다. 검찰은 삼성의 뇌물을 받고 이건희를 사면해 줬고, 다스의 실소유주로 비리를 저질렀다고 봤다. 이명박을 거짓말쟁이로 단정한 것이다.
정치체제 안정을 위해서는 (박근혜에게 한 것처럼) 이명박을 처벌해 대중을 달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계산하는 듯하다.
“피고인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을 남용한 것을 넘어 이를 사유화했고 ... 국가 운영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음에도] … 진실을 은폐 ...측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했다.] … 엄중한 사법적 단죄를 통해 …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의 근간을 굳건히 확립할 필요가 있다.”
그럴 만도 하다. 다스 실소유주 의혹은 이명박이 대통령 후보 때 불거진 BBK 주가 조작 사건과 연결돼 있다. 결국 검찰 수사와 새로운 폭로들로 의혹 제기자들이 옳았음이 드러났고, 지배자들은 사기 범죄자를 대통령으로 앉힌 게 된 셈이다.
물론 우파 정부를 이끌다가 대중의 원성을 산 전직 대통령이 둘이나 중형을 받는 것을 지배자들이 썩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중형을 선고해 대중을 일단 달랜 뒤에, 항소를 포기해 빠르게 형을 확정하고는 정치 상황을 보며 대통령 사면권을 재촉할 계산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박근혜는 재판에서 핵심 혐의를 거의 인정하지 않았으면서도 대법원 상고를 하지 않았다. 형이 빨리 확정돼야 사면권 대상이 될 수 있어서 그런 거라는 추측이 공공연하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그럼에도 검찰과 박영수 특검이 뇌물죄 무죄 부분에 대해 상고해 실제로는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문재인이 말과 달리 적폐 청산에 어정쩡한 것이 문제다. 법원이나 기무사 등의 반동적 행태들이 드러났고, 적폐 집단이 하극상을 불사하며 적폐 청산에 저항하는 데에도 대응이 미적지근하다. 최근에 문화체육부 장관 도종환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업에 연루된 문화체육부 직원들을 사실상 징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9월 첫째주 여론조사 대부분에서 문재인 국정수행 긍정평가도가 50퍼센트대 초반으로 취임 후 최하를 기록했다. 한 조사에서는 아예 50퍼센트 밑으로 떨어졌다.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5월 초 80퍼센트까지 갔던 지지율이 넉 달 만에 폭락한 것이다. 게다가 국정수행 부정평가도 함께 늘었다. 지지가 줄어든 것뿐 아니라 반감도 커진 것이다.
청와대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듯하다. 청와대 대변인은 9월 7일 이렇게 말했다.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고,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겠다.”
사실 청와대는 8월부터 심각하게 생각해 왔다. 4월에 약속했던 가을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자더니 결국 9월 4일 김정은에게 특사를 보내어 회담을 추석 직전으로 앞당겼다. 이른바 ‘추석 민심’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일 것이다. 물론 북미간 중재도 고려했을 것이다. 때마침 트럼프도 11월 초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9월 6일에는 대통령 주재로 “포용국가 전략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삶을 전 생애 주기에 걸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대선에서‘혁신적 포용국가’로 내세웠던 주장이다. 당시 대선 캠프에 포용국가위원회를 만들었고, (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김병준보다 먼저)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성경륭 교수가 이를 이끌었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과 지지층 이탈의 연계 조짐이 보이자,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민주당의 새 당대표 이해찬,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까지 모두 공급 확대 카드를 꺼냈다. 국토부는 택지 확보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원인
문재인 지지율 하락에는 결정적으로 대중의 불만이 작용했다.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사실 문재인은 노동정책에서부터 급속히 우선회했다. 특히 설비투자가 줄고 고용지표가 악화했다. 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올해 3월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빚어진 일자리 위기에 정부 개입을 거부한 것은 문재인 본인이었다. 하지만 5월 이후 문재인은 ‘앗 뜨거’ 하는 태도로 삼성과 엘지 등에 투자 확대를 요청했고, 줬다 뺐는 최저임금 삭감 개악을 강행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은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에서도 인기 있는 구호였고,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은 부족했어도 촛불 염원의 일부 실현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인상된 최저임금(시급 7530원)이 적용된 지 겨우 다섯 달 만에 말짱 도루묵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뒤로도 문재인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추진하다가 당시 야당 지지층이 강하게 반대한 의료 영리화 정책을 ‘혁신 성장’의 이름으로 추진하려 한다. 국민연금 개악 추진도 반발을 사고 있다. ‘포용 국가’의 이름으로 평생 복지 운운한 것은 국민연금 개악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교조 노조 인정 등 간단한 노동적폐 청산조차 거부했다. 삼성 노조 파괴 공작에 대한 단죄 등도 속시원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개각에서도 기업과 노동정책을 다루는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는 보수적인 친기업 관료들을 장관으로 지명했다. 이들은 진선미, 유은혜 등과 달리 인사청문회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고, 업무를 개시하면 경제부총리 김동연과 보조를 맞출 것이다.
김동연과 대립한다는 장하성은 결코 친노동 개혁파가 아니다. 이 점에서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김동연과 장하성이 보수 대 진보 대결을 벌인다는 프레임은 웃기는 허수아비 놀음이다. 처음부터 우파에게 유리하다.
물론 부차적으로 여권의 분열도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가령 친문 핵심 그룹이라던 전해철(노무현 정부에서 문재인 후임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냄)이 보수적 경제관료 출신인 김진표 등과 손잡고 이재명 경기지사를 찍어내려 한 것이 그런 효과를 줬을 것이다.
특히 적폐 청산 등을 내세워 지지를 받는 정부에서 대통령 측근 실세가 상대적 개혁 인사들을 몰아내는 모양새는 우파에게 자신감을 회복할 기회를 줬을 것이다.
장차 여권 내분을 사전에 막고 김경수 등 친문 후계 구도 구축을 위한 것이었을 텐데, 효과는 거꾸로 나타난 셈이다.
우파 사기 재장전
문재인이 우선회하자 지지율이 하락하고, 그래서 좌측 깜빡이 켜는 시늉을 하는 것은 촛불 염원과 우파 통치 9년 적폐 사이에 문재인 정부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한때 그토록 높았던 지지율은 개혁 염원 때문이지 문재인의 ‘혁신 성장’ 따위를 지지해서가 아니었다.
촛불 운동은 전혀 혁명적이지는 않았어도 꽤 급진적인 개혁을 바랐다. 어쨌거나 정권 교체는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행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개혁주의의 헤게모니 탓에 정부의 개혁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개혁 조처들이 순전히 현 여권 덕분이라거나 자신들의 무임승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의 우선회가 왼쪽으로의 이탈을 낳은 것이다. 몇몇 조사에서 문재인 지지 이탈층의 다수가 20대 진보적 청년층이라고 한다. 또한 문재인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유일하게 정의당만 지지율이 올랐다. 늘어난 정의당 지지층 안에서 문재인 국정수행 지지율은 대폭 낮아졌다.
문재인의 민주당은 한국 지배계급의 제2선호 정당으로, 자신들이 전통적 여당보다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지배계급의 이익을 오히려 더 잘 보호할 수 있음을 입증하려는 정당이다. 그래서 그들 자신이 적폐 구조와 연결돼 있고, 대중이 바라는 적폐 청산을 전혀 일관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이 초기에 위세를 떨치며 구 여권을 강하게 압박한 것은 간절한 개혁 염원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우선회의 결과 지지율이 급속하게 떨어졌다. 이는 우파에게 사기 재장전의 계기가 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는 4월 남북정상회담 때는 만찬에 야당 대표들을 안 불렀다고 불평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고 동행 초대를 거절했다.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양보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김학용(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 추가 개악 의사를 숨기지 않는다. 또한 사법 농단이 확연히 드러났는데도 법원은 대놓고 증거 인멸 위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 판결을 내린다.
노조 파괴 공작 혐의를 받고 있는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이상훈의 구속영장은 또 기각됐다. 삼성은 이재용 구속 시점에서 약속했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약속을 최근에 뒤집었다.
〈중앙일보〉는 이런 주문을 했다. “불신을 씻으려면 정치적 경쟁자를 끌어안는 협치, 진영을 초월한 인재 등용, 현장의 외침을 듣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동굴을 뛰쳐나와야 한다.” 문재인이 “현장”의 사용자와 구 여권에게 불신을 샀으니, 양보와 후퇴로 해소하라는 것이다.
인천에서 개신교 우익이 성소수자 행사를 무산시킨 것, 난민 반대를 내세워 우익이 새로 결집하려는 시도 등도 눈여겨 보며 대응해야 한다.
물론 우파 야당들의 지지율이 즉시 회복되지는 않고 있다. 촛불 운동의 반우파 정서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그래서 또한 문재인은 개혁 포장지를 폐기하지 않고 있고, 몇몇 조처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회복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경제나 안보 상황이 불확실한 탓에 이런 아슬아슬한 상태가 오래가지는 못할 듯하다.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회복되지 못하면 이 나라 공식정치를 지배하는 두 정당 모두 위기인 셈이다. 구미에서처럼 정치 불안정과 새로운 양극화가 일어날 수 있다. 기성 정당들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말이다.
이런 때 진정한 진보, 즉 좌파는 반자본주의적·반제국주의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 개별 투쟁들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다. 이 투쟁들을 (정치적으로) 보편화하려 해야 한다. 우파들의 악선동에 맞서 난민 문제 등에서 노동계급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개혁주의적 운동 지도부들은 문재인 정부의 약화가 우파를 되살릴까 봐 문재인 비판에 더 주저하는 듯하다. 특히, 민주노총 지도부는 단연코 노동개악 때문에 문재인 지지율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사회적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해 현장 조합원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
문재인의 우선회가 우파 사기를 회복시켜 주는데도 노동운동이 문재인 비판을 삼가면 우파는 더 신이 날 수밖에 없다. 문재인을 두들겨서 그 왼쪽까지 침묵시키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는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계와 노동운동이 문재인에게 인내심 많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을 자초하는 길이다. 노무현 정부 후반부(대략 2005년 이후)의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박근혜 시절의 양승태 사법부가 자행한 사법 농단 수사에 대해 잇달아 영장이 기각됐다. 현 문재인 정부와 동행하는 김명수 사법부도법원 권력을 유지하는 데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 농단으로 드러난 권력 3부 간 삼각 거래는 다음과 같다.
법원은 뒷거래와 음모적 공작을 통해 최고 사법기관으로서 대법원의 위상을 확고히 하려 했던 듯하다. 대법원의 기능을 분할해 별도로 상고법원을 세우면 대법관급 고위 판사직도 늘어나고, 경쟁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도 더 쉽다고 본 것이다. 그리되면 장차 법원 고위 판사들의 지배계급 내 위상이 높아질 터였다.
법원은 청와대가 여당을 움직여 법원의 바람대로 국회에서 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주길 바랐다. 이를 위해 법원은 우파 정부의 안정적 통치를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사법권을 행사했다. 아마 당시 여당 실세들은 법원의 청탁을 수용하려는 청와대에 협조함으로써, 이후 총선 공천과 후계 구도, 지역구 예산 등에서 이득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이런 거래가 가능한 것은 양승태 법원의 이해관계와 나머지 국가기관들, 그리고 지배계급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 이해관계인즉,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저항에 맞서 공통의 이익을 수호하려는 이해관계이다. 본질적으로 양승태 추문은 권력 3부가 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위해 손잡고 거래한 사건인 것이다.
법원은 노동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의 고통과 미래를 거래 품목으로 삼았다: 일제 강제 징용·동원의 피해자들, 유신 독재 피해자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쌍용차 노동자, KTX 노동자 등. 그 결과 억울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악랄한 판결들이 나왔다. 일제 강제 징용자들의 국가 배상 요구 판결을 미루는 판결에는 박근혜 정부의 법무장관 황교안과 박근혜의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도 연루됐다.(박근혜가 몰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법원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공통분모(계급 이익)를 찾아 청와대에 제시한 것이다. 독재 정권 때처럼 판사들이 정치권력에 굴복해 자신의 양심과 이익에 반하는 판결들을 갖다 바친 게 아니다. 3권 분립을 훼손한 게 사건의 진정한 성격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분권의 기반 위에서 서로의 권한을 교환하려 했다.
진단을 잘못하면 처방도 잘못되기가 쉽다. 양승태의 농단 문제를 사법부 독립(또는 중립)을 해친 문제로 보면, 처방은 3권 분립론에 입각한 사법부의 독립성을 더 강화하자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수사를 법원이 ‘합법적’으로 방해하고 있는데, 이 사태야말로 사법부의 독립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실감나게 보여 준다. 법원은 사법 농단 피해자들의 항의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급기야 비밀 문서를 다 파기한 뒤에야 압수수색을 허가했다.
이처럼 법원은 지배계급으로부터는 독립적이지 않고,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가 강화된 상황에서는 사법부의 독립성(또는 중립성)을 추구하는 것이 진보적 목표가 될 수 없는 이유다.(이 점은 촛불 운동 무력 진압을 모의한 군부에 정치적 중립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너 서클
사법 농단 관련 문건을 보면,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이 국민적 지지를 받자 당시 경찰의 청와대 방향 행진 금지 통고에 법원이 집행정지처분을 내린 게 “시의적절한 결정”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또한 ‘중산층’(‘여론 주도층’의 다른 말)의 성향은 “대북 문제를 제외하고 정치는 진보, 경제/노동은 보수”라며 판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박근혜 퇴진 운동 국면에서 지배계급이 어떤 기조와 방식으로 대중의 분노와 저항을 달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자칭 ‘촛불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 염원을 받아 안는 방식 — 어느 요구는 실행하고 어느 요구는 묵살하는가, 어디에서 우선회가 시작됐는가, 어디에서 지지층을 잃고 있는가 등 — 과 당시 법원의 판단을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국정 기조와 당시 법원의 판결 가이드라인이 무척 닮았으니까 말이다.
이는 법원(특히 상급으로 갈수록)의 판결이 (단지 법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 내 ‘여론’과 함께 계급 간 세력균형을 (계급 지배 안정이라는 전략적 목적 아래 정교하게) 고려해 내려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법을 개정해 줄 국회를 움직이려고 (즉, 입법부의 협조를 얻으려고) 법원이 청와대에 로비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매우 우파적인 정권 아래서는 대통령 권력이 집권 여당을 움직일 효과적인 지렛대였을 것이다.
구 여권 세력(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독재 정권의 후신 정당들로, 국가 기구들을 수십 년 동안 장악해 온 지배계급의 제1선호 정당이다.
선출직 정치인, 행정관료, 자본가, 언론인, 판사 등이 수십 년 동안 다져 온 네트워크는 적폐의 원천이다. 말만 무성하고 알맹이도 없는 문재인 개혁, 예컨대 시급 7530원인 최저임금(그나마 법 개악으로 월 총액은 낮춰 버린)으로 나라가 망한다며 이들이 어깃장을 놓는 걸 보라.(시급 8350원은 내년부터 적용된다.)
문제는 이런 네트워크에 민주당 정치인, 친민주당계 관료, 언론인, 지식인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그 네트워크의 마디를 이루는 좌장들이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친민주당 대법원장 체제 하에서도 법원이 구 여권의 부패를 감싸는 것을 한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국가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정당들은 대체로 지배계급 정당들이다. 그러니 3권 분립이라는 것도 지배계급 내 권력 분점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대통령제 하에서 의회 다수당과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일치한다면,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기가 어렵다.(사실 견제할 의지나 있겠는가?) 내각제는 다수당과 내각이 일치하므로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경우에 권력 분립론을 교조적으로 적용하면, 대통령제 하에서는 야당이 의회 다수당인 경우가 이상적일 것이다. 우파 정부 하에서는 개혁파 야당이 다수당인 편이 나을 것이다.(그렇지 않다고 해서 저항과 개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떤가? 1970년에 집권한 칠레의 좌파 정부(아옌데 대통령) 사례를 보자. 당시 군부를 자기 편으로 두고 있는 지배계급/우파 야당은 좌파 정부의 작은 개혁에조차 딴죽을 걸었다. 이럴 때 지배계급 언론이 ‘여론’이라며 대안으로 내놓은 게 바로 ‘여야 협치’였다. 기득권을 침해하는 개혁은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결국 아옌데 정부가 우파의 공격에 직면해 헌법 존중을 이유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국가 밖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산업을 통제하고 정당방위를 위해 무장하려 했다. 그러나 아옌데 정부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을 막음으로써 사실상 스스로 무장해제를 해 버렸다. 결국 미국이 후원한 피노체트 장군(아옌데가 임명함)의 군부 쿠데타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아옌데 정부의 요인들은 대부분 살해당했다. 노동조합과 좌파 운동도 마찬가지 운명을 겪었다. 그 여파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됐다.
요즘 사례를 들면, 영국에서 좌파인 제러미 코빈이 총리가 돼 실질적 개혁을 추진할 경우, 노동당 우파를 포함해 공식 정당들을 가로지르는 반(反)개혁 연합이 등장할 것이다.
요컨대, 제도 개선이나 정권 교체보다 계급 갈등과 투쟁이 더 중요하다.서로 다른 계급들 사이의 대결이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요인이다.(부차적이지만 지배계급 내 분파 간의 갈등도 주목할 요소다.) 아무리 정치적 중립을 제도화해도 법원은 물론이고 군부나 경찰 등이 바뀔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 야당다운 야당은 공식 정치 밖에서 독자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노동계급 기반의 급진 좌파일 것이다.
물론 오늘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는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같은 노동자 정당들도 집권한다. 그러나 그 집권은 그들이 자본주의 국가의 통치 규칙을 준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 정당들이 집권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움직여 실질적 개혁을 이루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가 장기화하는 시기에는 특히 더 그렇다. 결국 순응하거나 칠레의 아옌데처럼 제거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두고 레닌은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좌파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정치 개혁을 크게 중시할 수는 없다. 물론 지역주의를 거스르는 비례대표제 확대 같은 조처는 노동계급의 대표자를 늘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그것으로는 노동계급에 유리한 개혁의 시행을 보증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와 권력 분립론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사회계약론에 대해
국가기관 내 권력분립론은 17세기 유물론 철학자 토마스 홉스로 거슬러 간다. 권력 분립론은 영국 혁명 직후인 17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존 로크, 18세기 미국 혁명을 지켜봤던 몽테스키외 등에 의해서 (각자 조금씩 다르게) 발전했다.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은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의 독립 국가인 미국의 국가 구조에 반영됐다.
이 철학자들은 사회계약론자들이기도 했는데, 당시의 신흥 부르주아지를 대변했다. 권력 분립과 사회계약론은 왕권신수설에 맞서는 것이었다.
이 사고의 출발점은 ‘재산을 소유한 개인’들이다. 이들이 보장받아야 할 ‘천부인권’은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귀족들과 달리 자신의 노동으로 얻은 재산에 대한 권리(소유·처분권)이다.
개인들이 모이면 곧 사회라는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국가도 ’각 개인들’이 사회 유지를 위해 서로 합의 하에 구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사회계약). 사회계약적 국가는 개인의 기본권 행사(상품 교환)를 각자에게 중립적으로 보장하고 장려할 존재이다. 이 국가는 계약 당사자들에게 중립적(“공정”)이어야 하므로 기본권 침해를 하지 말아야 하고 되도록 개입을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권력을 분산시켜 내부적으로 서로 견제하게 해야 한다. 재산을 소유한 시민들이 참정권을 통해 견제하거나 직접 그 운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이들에게 헌법은 이 사회계약의 계약서인 셈이다.)
이는자본주의 정치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자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3권 분립 사상이 현실의 국가들을 만들어 낸 건 아니다. 반대로 당시 성장하던 부르주아 계급이 정치투쟁을 벌이며 쌓은 역사적 경험의 영향을 받았다.
봉건 군주제(왕정) 하에서 부상한 신흥 부르주아지는 지배계급이 되기 전에 (일부 귀족과 동맹해) 군주(왕)에게서 자신들의 권력·이익·생명을 보호할 권리를 얻어 내려 했고 이를 위해 왕권을 억제하는 투쟁도 벌였다.
가령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인신 구속을 하거나 세금을 부과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왕이 가진 권력의 일부(자의적 구속·고문 등 군주에게 속한 자의적 사법권과 징세권)를 박탈하거나 제약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부르주아지의 정치투쟁은 대체로 왕권에서 사법권 일부와 입법권 일부를 떼어 갖는 식으로 벌어졌다. 이는 의회가 입법을 명분으로 왕의 통치에 간섭하는 형태였다(입헌군주제).
17~18세기 부르주아 혁명들에서 부르주아지를 대표한 직업 정치인들이 대체로 법률가 출신인 것도 이와 연관돼 있을 것이다. 또한 영국 혁명 이후 권력 분립론을 발전시킨 로크가 입법권과 집행권(행정부)의 분리를 강조한 것이나, 로크와 몽테스키외가 삼권 중 입법권을 중점에 둔 것 등도 이런 현실을 반영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권력 분립은 전(前)자본주의적 왕권을 제약하고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진보였다. 그러나 의회는 사실 말만 많은 곳이지, 국가 업무가 실제로 집행되는 곳은 아니었다. 자본가들은 19세기 후반 이후 노동계급의 압력에 떠밀려서야 투표권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단계적으로 그랬다.
그러면서 보통선거권 허용이 무해한 것이 되게 하려고 그들은 꾸준히 애썼다. 그들은 선출되는 기관이 주민의 다수인 평범한 대중에게 장악될까 봐 두려웠다. 미국의 정치 체제(국가 형태)를 규정한 제헌헌법의 기초를 놓았고 4대 대통령을 역임한 제임스 매디슨은 3권 분립 구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부르주아 협력자들의 동의를 얻어 냈다.평범한 대중의 대변자들이 입법권을 쥔 (하원)의회에서 다수가 될 수도 있으니, 하원이 통과시킨 법률을 추가 심사하는 상원(의회)을 만들고, 집행부를 지휘하는 대통령은 간선으로 선출하게 했으며, 대통령에게 법률안 거부권도 부여했다. 대법원에는 위헌법률심사권을 줬다. 하원은 대통령 탄핵권이 있지만 탄핵의 최종 결정은 상원이 한다.
물론 의회주의자들은 반대의 경우도 두려워했다. 프랑스에서 두 명의(삼촌-조카) 나폴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행정부 수반이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선출된 군주’가 될까 봐 의회에 예산 편성권이나 전쟁 개시권 같은 견제 권한을 부여했다.(한국 국회는 예산 심의권만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입법부와 행정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라고 보는 건 공식 정치가 정당 정치인 현실에서 지나치게 순진한 견해일 것이다. 특히 두 제국주의적 부자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미국 의회는 더더욱 민주주의의 진전과 아무 상관도 없다.
국가의 중립성?
마르크스주의는 사회계약론의 가정과 달리 사회 속에 개인들을 자리매김하며, 국가는(계급 사회의 산물로서)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지배하려고 만든 무장한 정치조직이라고 본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맞게 탄생되거나 재구성된다. 국가기구 전체가 자국 경제의 성공에 의존한다. 이윤율이 높고 자본 축적이 잘 될 때 국가의 재정 능력을 좌우하는 조세 수입도 늘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반적인 이윤율의 위기 속에서 개개 자본주의 국민국가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이유다. 정권 인수 전략으로는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 회복 노력의 포로가 되기 십상이다.
한편 세계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각국이 관할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운 좋게 성장하면 국가도 커지고 각 국가기구의 비대화·관료화, 기능과 기구의 분화 등이 일어난다.
그래서 개인들이나 분권화된 국가기관들을 파편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지배계급의 정치조직으로서 국가의 중앙집권적 성격에서 출발해 각 국가기관들을 설명하는 것이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보여 준다.
위기 때 진가가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미국 헌법은 전쟁 개시와 대내외 선전포고를 연방 의회의 권한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에서 의회는 선전포고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은 의회 승인 없이 대통령의 명령으로 시작됐다.
미국 의회는 자신들의 권한이 침해당했다고 투덜거렸지만 이 전쟁들을 지지했고 그래서 전쟁 비용도 추인해 줬다. 이후 정부의 이런 행동을 제약하는 여러 법안들이 생겨났지만 추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예컨대,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대통령의 핵 발사 명령권에는 법적으로 의회의 개입 권한이 없다. 오직 임명직 관료들이 잘 ‘견제해’ 주길 바랄 뿐이다!
한국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비상대권’ 문제도 살펴보자. 내우·외환·천재지변 등의 상황에 대통령은 국회를 무시하고 법률을 공포하고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물론 헌법 조항상으로는 사후에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계엄 실행 상황이라면,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조짐이 보이는 경우 국회는 소집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계엄 선포 등 비상대권을 국회에서 해제시킬 수 있는 정당이 있다면, 그것은 군대와 관료, 기성 언론 등에 훨씬 더 깊게 오래 뿌리내린 전통적인 지배계급 정당일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그런 정당들에 속하지 않은 대통령이 그런 정당들을 거슬러 비상대권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리라 가정하기는 힘들다. 전시 계엄이라면 모든 기성 정당들이 찬성할 테고 말이다.
반면, 전통적 지배계급 정당 소속 대통령이 계엄 같은 비상대권을 행사했다면, 다른 변수가 없는 한 국가기구 안에서 이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위기가 너무 심각해 지배계급이 파시스트(중간계급을 기반으로 한다)에게 정권을 양도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지배계급의 지지를 받아 집권한 파시스트들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건 독일 나치당 사례에서 보듯 헌정 질서 안에서도 가능하다.
결국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서만 움직일 뿐이다. 진보파 정치인들이 기존 정치 구조 안에서 쌓아 놓은 명망도 아무 소용이 없다. 민주주의는 원래 “민중의 지배”라는 뜻인데, 이에 비춰 볼 때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전혀 민주적이지가 않다. 노동계급에게는 자본가들의 독재일 뿐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이 스스로 조직할 권리를 어쩔 수 없이 허용한다는 점에서만 독재나 파시즘보다 진보적이다.(그조차 투쟁으로 쟁취하지 않으면 보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기구가 대중 저항에 밀려 양보한다면, 그것은 저항의 기세가 아주 거세서 일단 한 발 물러서는 것이 지배계급에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이거나 그보다 더 나아가 군대의 사병이나 말단 공무원·경찰 등이 저항에 가담해 국가가 마비되는 혁명적 상황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주류 정치학계의 권력분립론은 선거로 여야 정권 교체가 가능한 ‘다당제’도 권력 분립의 한 형태로 본다. 선출되지 않은 관료(공무원)의 신분과 독립성 보장(국가 행정의 안정성·지속성 보장), 지방자치제도(지방 ‘분권’화), 여론(을 반영하는 언론의 자유) 등도 권력 분립(견제) 기능으로 본다.
오히려 국가기구 사이에 얽히고설킨 ‘견제와 균형’의 구조는 자본주의 국가를 이용해 개혁을 추진하려는 사람(개혁주의자)들에게는 끝없이 이어지는 과속 방지턱 구실을 한다. 상호 견제 과정을 통과하려면, 오히려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정책과 인사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지배자들끼리의 견제는 결국 모종의 절충과 합의로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그 결과, 선출된 의원들은 국가적 업무의 집행에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늘날 의회에서 다루던 많은 문제가 법정에서 해결되는 것(“정치의 사법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대해진 관료 기구 속에서 고위 관료, 법원, 검찰, 경찰, 군부, 각종 정보기관이 실권을 행사한다. 때때로 개혁에 저항하면서 말이다.(그러므로 정치의 사법화는 “사법의 정치화”로 달리 볼 수도 있다.)
국가기구 내 선출되지 않은 부분은 공식·비공식(지배계급 인맥 네트워크 등을 통한 추천, 로비, 낙하산 등) 임명권자들에게만 책임을 진다. 권력 분립은 자본주의 국가의 특정 부분을 담당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책임지기(떠넘기기)를 할 뿐, 피억압 대중에게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점이 가령 촛불 무력 진압 모의를 군부의 정치적 중립을 제도화한다고 해도 그들의 반동성이 억제될 수 없는 이유다.
누구에게 책임지는가
권력 분립 이론과 지향은 국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착각하게 만든다. 자본주의 국가의 실제 운영에서 3권 분립은 허상에 가깝고,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이런 진단에 따른 적절한 처방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계급성과 3권 분립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직시하는 일일 것이다. 즉,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정상 상태를 추구하며 그에 적응하려 애쓰는 개혁주의 전략의 부적절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기성 정치 질서 안에서 단순히 인적 청산·교체를 하는 것만으로는 국가를 개혁에 이용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 물론 촛불 운동이 바란 인적 적폐 청산은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대중이 요구한 것으로, 정당한 응징이다. 그 응징이 성공하면 지배계급에 경고가 될 것이며, 세력균형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줄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러나 대중 저항에 직면했을 때 국가의 태도 변화를 사람의 교체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국가의 구조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다. 박근혜의 검찰·경찰, 박근혜의 법원, 박근혜에게서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를 봤던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돌변한 2016년 11월에 박근혜는 아직 직무 수행 중이었다. 집권당은 분열해 일부가 국회 탄핵에 합류했다. 대법원보다 더 박근혜와 유착했던 헌재가 박근혜를 만장일치로 파면했다.
그러나 비슷한 때 군부 중심으로 친박 친위 쿠데타 모의도 시작됐다. 이 논의는 맞불 집회를 후원하고 기회를 엿보며 헌재 탄핵 당일까지도 이어졌던 듯하다.
아래로부터 저항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쿠데타 모의도 모의로 끝났고, 지배계급이 운동에 양보했다. 박근혜를 속죄양으로 내주고 운동을 구슬려 정치 상황을 다시 안정시킬 수 있어 보였기 때문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선택을 피했던 것이다.(현재까지는 그들로서는 현명한 선택이 됐다.)
촛불 운동이 더 나아가려고 했다면, 운동은 반동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 때문에 온건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운동이 더 나아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혁명가들을 모험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모든 전진은 역풍을 부르기 마련이다. 작용은 반작용을 낳는다. 그리고 일정 수준에서 자제한 그런 계급 간 평화의 대가는 무엇인가? 문재인은 1년 만에 촛불 염원을 배신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고 그 탓에 우파의 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문재인과의 협력을 통한 개혁을 여전히 기대하는 운동 내 온건 개혁주의가 이 상황에 일조해 왔다. 그래서 지금 개혁주의가 성장하는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종합하면, 지속되는 자본주의 경제 위기 속에서는 기성 정치체제 안에서 추구하는 개혁은 아무리 급진적이라도 성공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기구는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없다.
파리 코뮌 이래 20세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혁명적 상황에서는작업장에서 선출돼 언제든지 작업장 동료들에 의해 소환될 수 있고, (자본주의국가의 의회와 달리) 선출한 계급 대중에게 책임지는 형태의 노동자 권력 기관(의 맹아)들이 거듭 등장했다. 그 기관들의 선출·집행·소환은 모두 계급의 의지를 나타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런 노동자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화로 등장할 수 없다. 자본가 계급의 무장한 정치조직인 기존 국가에 맞서 그것을 해체시켜야만 노동계급이 승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배계급이 효과적으로 저항(심지어 저항을 폭력적으로 분쇄)할 것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혁명적 전망과 조직화로 이 싸움을 이끌 정당은 그런 싸움이 본격적인 정치 일정에 오르기 전부터 건설돼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이 진실된 목표라면, 적자를 감수하고 서민층 소득 향상에 돈을 대폭 풀었어야 했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에서도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지출을 억제하는 (한국 국가의 전통적 기조인) 균형재정을 유지한 것이다.
오히려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 곧바로 최저임금 인상이 지나치다는 기업주와 우파의 볼멘 소리를 수용했다. 그러면서 혁신 성장을 강조했는데, 이는 우파 정부들의 낙수 효과론과 규제 완화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이나 포용국가론이 나온 배경은 그 주창자들 스스로 인정하듯이 점점 심해지는 불평등 문제였다. 실질임금이 수년간 노동생산성 향상보다 낮게 인상됐다.
이렇게 보면,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시키는 제도 개악을 해 놓고도 복지 강화 포용국가론을 들고 나온 것은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개혁 염원과 기업주들 사이에 낀 문재인 정부의 갈팡질팡을 보여 주는 일이다.
이율배반
애초 문재인이 대선에서 내세운 국가 비전은 ‘혁신적 포용국가’였다. 당시 대선 캠프에 포용국가위원회를 만들었고,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성경륭 한림대 교수가 이끌었다.(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김병준도 나중에 정책실장 자리에 앉았다.)
지난해 성경륭 교수는 포용국가 위원회에 참가한 교수들과 함께 포용국가론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 포용국가》(성경륭 외, 21세기북스, 2017)를 발간한 바 있다.
이 책은 포용국가를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 즉 시장 혁신과 복지국가의 결합이라고 요약한다. 즉, 문재인의 포용국가론은 애초부터 ‘혁신적 포용국가’였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 성장과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가 서로 대립되는 게 아니라 한 몸을 이루는 세 요소라고 할 때, 그 세 요소의 종합이 바로 ‘혁신적 포용국가‘였던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시장 경쟁력을 경제, 고용, 교육 등의 측면에서 제고하되(혁신), 사회 통합을 위한 복지를 강화하자(포용)는 것이다. 포용을 위해서 사회적 협치(대화)가 방법으로 강조된다.
이는 1997년 경제 공황 이후 한국 국가의 큰 방향과 다르지 않으며, 특히 노무현 정부의 사회투자국가와도 별 다를 게 없다.
그 핵심은 복지가 더는 노동자들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의 필요(경쟁력 강화와 수익성 향상)에 부합하도록 재편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노인 연금은 줄이고 미래 노동력에 대한 투자인 아동수당(교육 투자)은 늘리는 식이다. 물론 사회의 급속한 노령화 국면에서 실제 정책 집행이 그토록 단순하지는 않다.
국가와 시장(기업), 사회(노동)이 국가로 표상되는 공동체에 서로 책임을 다해 상생을 하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셋 사이에 공정(정의)이 유지돼야 한다. 그래서 구체적인 정책 실행은 사회적 협치(대화)로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그 원리는 분명하다. 기업 혁신(경쟁력 증진)을 중심에 두고 국가와 사회(노동), 기업이 권리와 의무를 교환하는 것이다. 노동자들도 자신을 쥐어짜기 여념 없는 기업주들을 포용해야 하는 것이다. 시장의 규율에 복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복지는 생활의 필요가 아니라 노동력 판매의 대가다(근로연계복지). 포용국가론이 가정하는 패턴은 대략 다음과 같다.
기업은 투자(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늘리기)를 늘려야 한다. 노동자들은 고용 유연화를 받아들이고 임금을 적정 수준에서 억제해야 한다. 정부는 재벌 개혁, 규제 개혁(완화)으로 시장을 활성화하고 복지의 효율적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 복지 확대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여 주고 노동자들이 고용 유연성을 수용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부동산 가격 억제도 생활비를 줄여 임금 인상 압력을 줄이려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이 강화돼 경제가 좋아지고 고용률이 늘면 세수도 늘어나 이 메커니즘은 선순환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전망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포용적 복지를 하려면 의료·바이오 산업(의료 민영화), 환경·에너지 산업(원전 수출) 같은 일들이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포용국가의 핵심은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포용이다. 포용을 해야 성장한다고 하지만,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안 되면 포용 기제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기를 바라서 포용국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포용국가론은 이율배반일 것이다.
실제로도 문재인 정부의 말과 행동은 모순된다. 지난 몇 달 동안 투쟁하는 노동자들,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장애인 등은 포용 대상이 못 되거나 노골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남북 화해 국면에서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나오고 있다. 우파를 안심시키려고 말이다(우파 포용).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는 게 노사 모두에게 좋다지만, 필요한 조처를 회피해 부동산은 폭등하고 있다. 부자들을 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가 더 나빠지는 상황에서 기업주들은 더 노골적인 개악을 바란다. 비유하자면, ‘혁신’은 최대한 하고 싶어하지만, 모순투성이인데도 ‘포용’은 가능한 최소화하고 싶어 한다. 더 근본적으로 계급으로 예리하게 분단된 사회에서 자본주의 국가가 모든 구성원을 진짜로 포용하거나 그런 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다. 우리가 우파와 사법 농단 판사들, 노조 파괴 기업주들을 포용해야 하겠는가?
〈조선일보〉는 9월 7일 재원 대책도 없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는데, 그 다음날에는 아예 “포용국가 얘기하기 전에 눈앞에 닥친 일이나 제대로 하라는 것이 국민 심정”이라고 비아냥댔다. 최근 문재인의 우선회로 기가 산 우파들은 일단 복지 확대에 반대하고 볼 것이다.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거나 악화되지 않도록 하려면, 포용국가 담론에 기대를 걸 게 아니라, 정부와 기업주를 상대로 대중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연대를 건설할 계급정치가 중요하다.
9월 1일 국군기무사령부가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이름을 바꿔서 출범했다. 인력도 축소하고 민간인 사찰, 정치 개입 등도 억제하겠다고 했다.
박근혜 정권 연장을 위한 촛불운동 무력 진압 모의를 기무사가 주도한 것이 폭로됐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쌍용차 해고 반대 파업장 침투 등 민간인 사찰 작태도 연이어 폭로됐다.
사실 군의 정치적 중립, 정치 개입 방지는 쿠데타로 집권한 과거 군사정권도 하던 말이었다. 물론 자기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자기 흉내를 내는 군인들이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지만 말이다. 그들도 장관, 국회의원, 공기업 사장 등의 자리에 앉을 때는 군복 벗고 민간인 신분으로 그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역 기무부대가 민간인을 뒤지고 체포해 고문하는 일이 사라지진 않았다.
말이 아니라 행동을,외관이 아니라 그 이면의 본질을 봐야한다.
이번 개편은 문재인이 8월 초 직접 기무사 ‘해편’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해편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인데, 청와대는 ‘해체에 가까운 개편’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달리 말하면, 본질의 존속인 것이다. 기무사의 계엄령 준비 문건을 폭로한 군인권센터나 기무사 해체를 주장해 온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은 8월 14일 합동으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기무사와 다를 것이 없다”며 이번 기무사 개혁을 “실패”라고 규정했다. 즉,
“법령이 부여하는 임무와 목적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기무사가 민간인 사찰의 명분으로 들먹이던 ‘군 관련 정보 수집’ 항목도 그대로 존재하고, 불법 행위의 근간이 된 대공수사권에 대한 조정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간판만 바꿔 달았다는 것이다. 나름 보안 수사·첩보 기관다운 위장술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인력 축소의 경우를 보자. 축소분 대부분은 인력의 자연 감소분(산하 사병 전역시 보충 안 함)이라서 언제든 다시 늘릴 수 있다. 일부 고위직은 계엄 논의나 세월호 등 민간인 사찰 등에 연루돼 어차피 옷을 벗어야 한다.
민간인 사찰과 연결되는 대공수사권 등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국방부는 민간인 수사권 중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나 집시법 위반 부분은 ‘군사법원법’을 개정해서 폐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조차 턱없이 미흡하고 기만적이다. 기무사(전신인 특무대, 보안사를 포함해)는 원래 민간인을 감시하고 수사하면 안 되는 것이다. 1990년 10월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던 윤석양 씨(당시 이등병)가 민간인 사찰 실태와 명단 일부를 폭로했을 때도 민간인 사찰은 불법이었다. 당시 일부만 공개된 사찰 명단에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이후 대통령이 되는 정치인들도 포함돼 있었고, 주로 야당·재야 인사들이었다.
그 명단이 1989년에 만든 청명계획이라는 계엄 대비(모의) 계획의 일부(예비 검속)였다는 건 나중에 밝혀졌다. 이번에 드러난 촛불 계엄 문건에서 국회의 계엄 해제를 막도록 야당 의원들을 미리 체포하려고 한 것과 같다. 1989년 당시에도 군부는 민주화 흐름을 반동적으로 뒤엎을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의 고조기가 1987년 그해 몇달로 끝나지 않고 수년간 이어지면서 민주화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이 흐름 속에서 폭로됐기 때문에 노태우 정부는 국방장관 사퇴, 이듬해 보안사 명칭 변경(기무사) 등으로 양보를 해야 했다. 보안사의 사찰 명단에 있던 김영삼은 집권하고 나서 안전기획부(옛 국정원)의 수사권을 축소하는 법 개정도 했다.
그러나 김영삼 본인이 경제 공황을 앞두고 안기부 수사권을 되돌리는 날치기를 했다. 기무사의 수사 관행도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JT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26년 경력의 기무사 수사관이 제보자로 나왔다. 그는 윤석양 씨의 폭로 당시 상부 지침이 ‘민간인 수사를 하지 마라’가 아니고 ‘군(인) 관련성을 집어넣어서 하라’는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런 과거가 있는데도, 안보지원사를 먼저 출범시켜 놓고 수사권 축소는 향후 국회에서 한다는 것이니 어음으로 치면 불량 어음이나 다름없는 듯하다. 문재인이 국회로 미루고 외면해 버린 적폐 청산 과제가 한둘도 아니니 더욱 그렇다.
한때 전두환 군사정권 출범의 사령탑 구실을 했고, 안기부, 경찰 보안수사대 등과 찰떡 공조로(뒤로는 치열한 실적 경쟁을 하면서 말이다) ‘빨갱이’ 사냥을 하던 군사기관의 억압적 성격을 위축시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세월호 구조를 방기하고 실패한 책임에 대해 집중 조사받아야 할 해경을 박근혜가 해체해 버린 일이 떠오른다. 형식상 기구가 해체됐으니 적어도 해경 대상 수사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 군부 독재가 만든 중앙정보부가 그동안 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꿔 왔지만, 지난 정부 동안 본질은 바뀐 게 없다는 게 드러났다. ‘안기부 X파일’ 간첩 조작, 쌍용차 개입, 세월호 개입, 대선 댓글 공작 등은 모두 선출된 민간 정권 아래서 벌어진 일들이다.
예상대로 박근혜와 군부는 퇴진 촛불 운동 초기부터 무력 진압을 고민했다. 가장 최근에는 기무사령관이 촛불 시위 초기부터 탄핵 당일까지도 박근혜 청와대를 들락거리며 소통한 일이 드러났다.
1987년 이후 최대 규모의 정권 퇴진 운동에 맞서 자기 선배들처럼 친위 쿠데타 모의를 주도했던 것이다.(1987년의 선배들처럼 힘에 밀려 거사를 포기해야 했다.)
이런 역사와 현실은 이 핵심 억압 기구들의 임무가 기존 국가를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변화(개혁), 혁명적 도전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임을 보여 준다. 필요할 때 반동적 거사를 일격에 성공하려면 이들의 일상도 그것을 위한 준비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지키려는 체제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일상적 시기에도 유사시를 대비한 준비와 훈련으로서 민간인 사찰과 수사 등의 임무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기구들 때문에라도 개혁가들이 몇몇 요직에 진출해 국가의 성격을 노동자·서민을 위한 개혁을 위해 바꿀 수가 없다. 아래로부터의 투쟁만이 국가를 움직이게 할 수 있고, 그조차도 어느 수위가 되면 이런 억압 기구들이 반동적으로 작동하게 마련이다(촛불과 친위 쿠데타 음모처럼). 자본주의적 국가의 민주화라는 신기루를 좇기보다는 운동 속에서 혁명의 현실성을 바탕으로 주장하고 실천하는 정치조직이 필요하다.
기무사의 반동적 역사와 실태
기무사는 미군정청 국방사령부의 정보과를 모태로 한다. 이 기구의 성격은 분단이 굳어진 1948년 대한민국 건국 후 군 내부 (반反이승만이나 좌익 성향 군인) 숙청을 담당할 육군본부 정보국 특별조사대와 방첩대로 이어지면서 확고해졌다.
권한과 기능, 실태·행태들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확대·개편된 특무부대(CIC)를 실질적 효시로 봐도 될 것이다. 특무대는 전시 민간인 학살(남한 전역에 걸친 보도연맹 학살 등), 정치 공작 개입(경남 산청·거창 등 민간인 학살 진상 은폐 공작 등) 등으로 워낙 악명 높아서 1960년 4월 혁명 이후에 새 정부 하에서 이름을 방첩부대(간첩만 잡는 부대라는 의미로)로 바꿔야 했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소탕하는 일본군의 앞잡이 노릇하던 김창룡이 이 특무대장을 지냈다.
1977년 육해공의 방첩 부대가 통합돼 오늘날 기무사인 국군보안사령부가 출범했다. 1979년에 박정희를 살해한 걸로 오늘날 유명한 김재규가 통합 전 육군 보안사령관을 지냈고, 이후 전두환, 노태우가 1979년에서 1981년까지 연달아 사령관을 지낸 걸 봐도 군부 실권자들의 억압 기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79년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이 될 때 박정희는 자신의 유고시 중앙정보부 등 각종 정보기관을 통합 지휘할 권한을 보안사령관이 가지도록 해 놓았다.(그 덕분에 전두환은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체포할 수 있었고 수장이 체포된 중앙정보부 기구를 통제할 수 있었다.)
전두환·노태우가 정권을 잡은 뒤 보안사령관은 하나회 심복들이 주로 임명됐다. 광주항쟁 진압에 출동한 20사단장 박준병도 노태우 후임으로 보안사령관을 지냈다. 김영삼은 하나회 숙청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군 기반이 취약한 김대중은 군내 비주류인 호남 출신들을, 이명박은 TK 출신을 썼다. 박근혜는 자신의 친동생 박지만의 육사 동기이자 절친인 이재수를 기무사령관으로 임명했었다. 노무현은 군 인사에 적극 개입하지 못했던 것 같다. 기무사만이 아니라 노무현 때 군 요직을 맡았던 인물들은 훗날 박근혜 정부에서 중용된다.(김장수, 김관진, 남재준 등)
보안사는 군사 독재 시절에 중정·안기부 못지 않은 권력을 휘둘렀다. 민간인 수사는 기본이었다. 도청, 미행은 물론 열쇠를 따는 전문가까지 뒀다. 대학가에 보안사가 운영하는 술집을 낼 정도였다.(서울대 ‘모비딕’ 호프)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한 기무사 수사관은 항상 출발은 민간인 수사(내사)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이들은 사찰 단계에서 이미 기소할 혐의와 줄거리를 다 짜놓는다. 수사 과정은 혐의자가 이를 인정하게 하는 단계다. 고문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기소 단계에는 안기부(국정원), 검찰, 경찰이 모두 팀으로 협조하고 재판 단계로 가면 민간인의 경우 기무사는 빠진다는 것이다.
보안사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씨는 학생운동 활동 중에 입대했다가 보안사(그 유명한 서빙고분실)에 끌려갔다. 고문 협박에 공포를 느끼고 학생운동 동료들의 명단을 넘기고 프락치(밀정)의 일원으로 일하게 됐다가 일부 문서를 들고 탈영해 폭로했던 것이다.
윤 씨는 “서빙고 분실에 의자가 있는데, [수사관들이] ‘의자 버튼을 누르면 그 의자 밑에 있는 바닥이 열리면서 한강으로 연결된다’고 협박했다”고 했다. 쥐도새도 모르게 죽어나갈 수 있다는 협박이었던 것이다.
재일교포 유학생으로 전두환 시절 보안사에 체포돼 (서빙고분실에서) 고문과 협박을 받아 유학생 간첩단으로 조작됐던 김병진 씨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그의 증언은 1985년에 출간·절판됐다가 2013년에 새로 나왔다.(《보안사 - 어느 조작 간첩의 보안사 근무기》, 김병진, 이매진, 2013)
김병진 씨는 간첩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구속 대신 보안사에 특채돼 수사 보조로 근무해야 했다. 그의 증언은 당시 보안사가 어떻게 민간인을 사찰하고 (특히 취약한 재일교포 모국 유학생을 상대로) 간첩을 맘 먹고 조작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잘 묘사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김대중 집권기에도 비슷한 간첩 조작 사건들이 벌어졌고, 심지어 간첩 제보자가 간첩 혐의 유도까지 했다고 보도했다.
최근에는 ‘백야 사업’이란 이름으로 현역 병사들 중 2011년 반값 등록금 시위, 2014~15년 세월호 시위 등에 참가했던 이들을 감시하고 내사한 일도 폭로됐다. JTBC에 제보했던 기무사 수사관도 시위 전력자는 A급, 학생 임원은 B급, SNS 유저가 C급 정도로 분류된다고 증언했다.
징병제인 나라에서 사병들의 입대 전 활동을 체계적으로 감시하는 것도 크게 보아 민간인 사찰이다. 그러나 노무현 때 기무사령관 김영한은 2006년 국회에서 사병 사찰은 적극 인정했다. “지금은 이적단체 가입경력자들도 군에 들어오고 있다. 이들에 대해 평소에도 감시하고 있다. ... 대략 수백 명 되는데, 군내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소수다. 이들은 검찰에 넘기고 있는데 2000년부터 지금까지 20여 명 정도다.”
2009년 쌍용차 점거 파업 때도 기무사 요원들은 국정원과 함께 공장 내 침투, 공장 밖 연대 활동 감시 등을 했다. 당시에 평택역에서 연대 집회를 감시하던 기무사 대위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발각되기도 했는데, 그는 쌍용차 투쟁에 연대한 민주노동당 당원들을 사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기무사·국정원 연합팀이 공장 안까지 들어간 건 이번에 새로 드러났다.
※ 늦었지만, 보관용으로 올려 둔다. 집회를 앞둔 8월 26일 금융 노사는 잠정합의를 했다. 크게 성과는 없지만 그렇다고 배신적 합의도 아닌 애매한 합의였다. 어쨌거나 노사 합의의 결과로 피업은 물론이고 8월 29일 수도권 집회도 취소됐다. 원래 쓰기도 22일에 썼는데, 25일 올라갔으니 올라간지 이틀도 채 안 돼 집회가 취소된 것이다. 글의 효력이란 면에서 요즘 말로 망글이 된 셈이다.
금융노조 ― 9·14 하루 파업, 8·29 수도권 집회성과주의 폐지, 인력 확대로 장시간 노동 해결하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엠브레인과 공동으로 산하 지부 33곳의 조합원 1만 8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간 노동시간 기준으로 한국의 금융 노동자들은 OECD 평균보다 5.5개월, 한국 평균보다 약 4개월을 더 일한다.(※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 조사에는 직장 내 성희롱 실태도 포함됐다고 한다.)
매일(주5일) 연장근로를 하는 노동자가 전체 조사 대상의 절반이다. 70퍼센트 이상이 적어도 주 3일 연장근로를 하고 있다. 노동강도도 높아서 조사 대상 중 일주일(주5일 근무)에 한 번이라도 점심을 굶은 노동자가 절반을 넘고 10명 중 3명은 이틀 이상 점심을 굶었다. 10년 전 이명박 반대 촛불운동에서 청소년들이 외치던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하던 구호가 떠오른다. (관련 기사: ‘장시간 노동과 과당경쟁에 내몰린 금융 노동자들’을 보시오.)
성과주의
조합원들은 70퍼센트가 업무량 과다와 인력 부족을 초과 노동의 이유로 꼽았다. 업무량 과다와 인력 부족은 동전의 앞뒷면 같은 일인데, 특히 지난 20년간 금융산업 구조조정이 꾸준히 추진되면서 은행 간 경쟁이 격화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금융기관마다 성과주의가 강화되고 실적 압박과 직원 간 실적 경쟁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로사도 많다. 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이 지난해 발표한 10년간(2008~2017년) 과로사 신청자수는 금융·보험업이 160명으로 건설업(800건) 다음이었다.
“고연봉 고스펙 직장”이라는 허울 뒤에 가려진 쉼없는 실적 경쟁 스트레스, 밥 먹을 틈 내기도 힘든 장시간 노동(특히 영업점), 성별을 떠나 한창 가장으로서 책임이 커져가는 나이에 명퇴냐 임금이 절반으로 깎이는 임금피크제냐 고민해야 하는 고용 불안 상황. 툭하면 귀족 노동자라고 비난받기 일쑤인 금융 노동자들의 냉혹한 현실이다.
금융노조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KPI(핵심 성과 지표)와 CS(고객 만족)제도로 대표되는 실적주의를 축소·폐지하고 노동시간 제한과 대규모 신규 채용(금융노조 산하 기관에서 2만 9000명 규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금융노조는 지난해 KPI 항목이 많을수록 직원 스트레스는 증가하고 소비자 보호도는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올해 산별 임단협에서 금융노조는 이 요구들을 포함해 임금 인상 4.7퍼센트, 임금피크제 개선, 국책금융기관 자율교섭(기획재정부의 예산 빙자 간섭 반대), 2차 정규직(기존 정규직 임금체계에 편입되지 않는 방식의 불완전한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동이사제 도입 등 노조 경영참여 보장 등을 요구했다.
상반기 산별 교섭에서 진전이 전혀 없었다. 지난해 당기순익이 11조 원을 넘긴 은행들은 임금 인상(물가인상률 수준인 1.7퍼센트 인상안 고수)은 물론이고 실적 경쟁과 노동강도 완화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은행마다 최고 경영진이 연루된 채용 비리가 터져 나왔지만, 은행들은 여론을 의식한 사회 기부에만 조금 돈을 썼을 뿐, 정작 채용을 늘리라는 요구는 거부했다.
반면, 채용 비리 연루 의혹을 받는 KEB하나은행의 김정태 회장과 함영주 행장은 상반기 보수로만 각각 13억 5100만 원과 7억 2500만 원을 챙겼다. 신한금융지주 회장, 신한은행 행장, KB국민은행 행장 등이 모두 상반기 보수로만 7억 원 넘게 받았다. 대부분 올 상반기 실적으로 성과급이 대폭 올라 지난해보다 보수가 늘었다.
파업
문재인 정부가 연초부터 노동 정책에서 우선회를 시작한 탓에, 지난해에는 ‘혹시나’ 하며 눈치를 보던 사용자들이 이제 노조를 강경하게 대하기 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8월 9일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금융노조가 문재인 정부에게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이유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은행원들의 고용 위기감을 조장하는 점이 있어 금융노조가 반대해 온, 은산 분리 완화도 추진할 태세다.(문재인은 대선 전 금융노조와 금산분리 준수 등을 약속했고, 금융노조는 대선과 올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
노동 존중을 약속하고 심지어 당선 전 금융노조와 정책협약까지 맺었던 정부의 배신과 이를 이용한 사측의 오만한 태도는 조합원들을 자극할 만하다. 8월 7일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휴가철인데도 조합원 82퍼센트가 투표해 93.1퍼센트가 찬성했다.
금융노조는 8월 23일 지부 대표자회의를 통해 9월 14일에 하루 파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8월 2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릴 수도권 조합원·분회장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중요한 징검다리가 될 것같다.
파업 조직화를 위해 8월 20일부터 부산은행 본점을 시작으로 지역과 주요 지부들을 순회하며 집회들을 열고 있다. 부산 500명 참석 등 조합원들의 지지가 있다. 9월부터는 정시 출퇴근, 프로모션(경쟁적 판촉 행사) 업무 중단 등 강도를 높여간다는 계획이다. 8월 14일에는 노동부에 장시간노동 특별근로감독도 요청했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지도부로선 정치적 압박과 부담도 있겠지만, 주춤거리면 안 된다. 투쟁으로 현장의 정당한 요구를 대변하는 게 진정으로 중요하다.
실적 경쟁과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금융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지지를 보내자.
대통령 국정(직무)수행평가 여론조사에서 긍정적 평가가 문재인 집권 후 처음으로 60퍼센트 아래로 내려갔다(한국갤럽, 리얼미터 조사).
모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두 달째 하락 중인추세가 의미심장하다. 부정적 평가도 30퍼센트대로 늘었다. 남북 정상회담과 구 여권 청산 염원 등이 더해져 6월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압승을 거둔 뒤부터 지지율이 하락해 온 셈이다.
물론 여권 일각의 변명처럼 같은 기간 역대 대통령의 지지율보다는 높다. 그러나 대선 득표율(41퍼센트)을 기준으로 볼 때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던 지지율이 정상화하고 있는 거라는 변명은 어처구니없다. 지지율 40퍼센트면 올해 5월 지지율이 반토막 난 것인데, 그 정도라면 아예 레임덕의 시작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전통적 보수층의 일부가 자유한국당이 너무 무능하고 지리멸렬해 홧김에 민주당에 표를 주었던 것이거나(서울 강남, 부산·경남 등), 잠시 지지하다가 철회해서 생긴 변화라면 지지율의 정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지율 하락에는 노동계급과 서민층이 염원한 개혁이 지지부진하거나 후퇴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진보층의 이탈이 가장 많았고,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정의당 지지가 늘어나면서 정의당 지지층의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적 평가도 낮아졌다고 조사됐다.
군색한 변명은 어떤 이들이 왜 문재인 정부에게서 지지를 거두는지를 반성적으로 돌아볼 의지가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러니 청와대 대변인이 (고가의 외제차) BMW 화재에 둔감하게 대응한 것을 지지율 하락 요인의 하나로 꼽는 한가함을 보이는 것일 게다.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평양 정상회담을 9월에 개최한다고 서두르는 데에는 지지율 걱정이 있을 것이다. 물론 북·미 간 협상이 잘 진척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한반도 평화 진전의 답보도 지지율에 악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지지율 하락
그래도 문재인의 지지율 하락은 그의 우선회로 일어난 왼쪽에서의 이탈이 주된 요인이다.
이를 방증하는 점으로, 〈조선일보〉와 〈매일경제〉 등 보수 언론들이 최근 며칠 새 “고독한 결단”, “노무현이 생존해 있었다면” 운운하며 문재인을 걱정하고 격려하는 글들을 쏟아 낸 것이다. 노무현이 그랬듯이 지지층의 진보 염원에 역행하는 정책을 계속 추진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지난 두 달간 벌인 일을 보면 보수 언론들의 격려를 받을 만도 하다.
여당 주도로 국회에서 최저임금 삭감법을 통과시켰다. 현재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방식의 허구적 실체(자회사 방식 등)가 드러났는데도 강행하려고 한다. 장시간 노동을 근절한다더니 오히려 근로기준법을 개악해 장시간 노동 관행을 합법화했다. 그도 모자라 그조차 못 지키겠다는 기업들의 처벌을 유예해 줬다.
의료 영리화와 건강보험 약화를 앞당길 삼성 등의 규제 완화 요구도 “혁신 성장”의 이름으로 허용하려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진 청와대, 사법부(대법원 고위 판사 집단), 국회의원들 사이 추악한 반(反)노동계급적 재판 거래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그저 침묵이다. 쌍용차 노동자들, 위안부 할머니들, 강제징용 피해자들, 세월호 유가족들, 독재정권 간첩 조작 피해자들, 진보당 당원들, 전교조 등의 당연한 원상 회복 요구든 또는 반성은커녕 구속·수색 영장을 계속 기각하며 수사를 방해하는 법원에 대한 것이든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도 말이다. 문재인이 임명한 대법원장 김명수도 문제의 일부가 돼 가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 원죄가 있는 KTX 승무원들만이 그나마 다행이게도 (원직이 아닌 자리로) 복직됐다.(그러나 지금 문재인 정부는 KTX 승무원 해고 문제의 결정적 원인인 자회사 채용 방식을 정규직화 방안으로 고집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 간단한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철회조차 거부하고는 청와대 앞 폭염 속에서 단식하던 전교조 위원장도 외면했다. 그 기간에 문재인은 휴가를 가서 신간 대하소설을 읽었고, 교육부총리 김상곤은 “대학이 혁신 성장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새 정책을 선전하고 다녔다. 결국 전교조 위원장은 단식 27일 만에 병원에 실려갔다. 이게 “노동을 존중”하고 “사람이 먼저”라는 대통령의 관저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는 삼성 총수 이재용을 정부의 최고위 인사들이 환대한 것과 대조된다. 이재용은 제3자 뇌물죄 등 핵심 혐의를 재판부가 무죄로 봐줬는데도 2심까지 유죄 판결을 피하지 못하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부패 범죄자다. 이재용은 그룹 차원의 조직적 노조 파괴 혐의로도 수사 대상이 돼야 할 사악한 사용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삼성의 인도 공장에 가서 이재용을 만나 격려했다.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8월 초 평택 공장에서 이재용을 만나 규제 완화 요구를 경청했다. 김동연은 “대기업도 혁신성장의 파트너라는 정부의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방문”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이재용 등 박근혜 정부에 뇌물을 준 재벌들을 다루는 재판부에게, 또는 현 정부 눈치를 보던 유성기업과 세종호텔 등 악덕 사용자들에게 주는 문재인 정부의 메시지가 무엇일지는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과감한 호의가 어찌나 고마웠던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주류 경제학의 격언처럼 이재용도 신규 투자 계획 발표로 화답하며 규제 완화를 꼭 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정부 내에서 기업주들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김동연 등을 경질하라는 요구가 정당한 이유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게는 혁신 성장과 마찬가지로 “노동 존중”조차 그 파트너는 기업인 것 같다. 말만 요란하고 알맹이는 없는 기만적 노동 ‘개혁’의 실체를 보면 말이다.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문재인 정부의 은산분리 완화 방침에 한국노총 금융노조는 정부가 (대선 당시 노조와 맺은) 정책협약(“금산분리 원칙을 준수한다”)을 깼다며 반발했다. 산별 임단협 결렬로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된 금융노조는 쟁의조정 과정에서도 정부가 사측 눈치만 봤다며 비난했다.
누진제 전기료 걱정 때문에 서민층 다수는 이미 7월부터 에어컨 가동을 어려워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8월 둘째주에 와서야 대책을 발표했다. 그조차 쥐꼬리만큼 깎아주는 것이라 서민들은 화가 나는데, 정부는 국민연금 고갈론을 다시 꺼내며 개악을 예고했다.
핵심은, 국민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만68세까지 늦추고, 보험료를 인상하고, 받는 돈을 깎는 것이다. 연금을 내는 중년 노동자들에게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의 반복된 개악은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하는 노랫말을 떠올리게 할 것 같다.(국민연금 지급 개시 연령은 처음 60세에서 65세까지 잇달아 늦춰져 왔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잇달아 폭염을 선물한 셈이다.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7월 발표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은 온건한 진보 교수들에게서조차 비판을 받았다. 보유세를 대폭 올린 것도 아니면서 거래세도 건드리지 않아서, 이도 저도 아닌 방안이라며 말이다.
지지층 이탈을 최소화하려고 기무사 문건을 폭로한 듯하지만, 요란한 소동 뒤에 간판만 바꾸는 개혁안이 추진되고 있다. 진보당 등 정치수에 대한 광복절 특사를 거절한 문재인 정부는 최근 한 대북 사업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그런데 구속을 정당화하려고 경찰이 증거를 조작한 것이 드러났다. “시민이 곧 경찰”이라며 7월 하순에 취임한 새 경찰청장 민갑룡의 첫 작품이 이런 것이다.
연인원 십수만 명이 참가한 몰카 대책 요구 시위에는 미온적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 법무부가 8월 7일 발표한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도 그동안 진보진영이 요구해 온 차별금지법 제정 등은 후순위로 밀렸고, 사회적 약자 목록에서 성소수자 항목을 빼버렸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을 믿은 사람들에게도 실망과 배신을 선물한 것이다.
지방선거 직후 문재인은 “등골이 서늘”, “식은 땀”, “두려움” 등의 단어를 쓰며 “높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이후 두 달 간의 상황을 보면 문재인의 우려는 그 자신이 진보 염원층의 기대에 부응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던 셈이다.
노동계급 대중이 절절한 마음으로 들었던 촛불에 비춰 보면, 이제 문재인 정부에게는 적폐 청산 의지가 없다는 게 보일 것이다.
당대표 선거가 중반을 지나자 전해철은 결국 김진표 지지 선언을 했다. 다소 무리수를 둔 듯하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박지원·정동영 등과 갈라서면서 문재인 당으로 재편된 민주당이지만, 김진표의 당선 가능성이 경쟁 후보인 이해찬(노무현 시절 친노 좌장 출신이다)보다 높지 않기 때문이다.
김진표는 그 화려한 경력답게 보수적인 인물이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를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는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를 지내며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등을 적극 찬성하고 서울대 법인화 등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의 일원으로 금산분리 완화를 지지하고 (불법 논란을 낳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입을 지지한 것도 김진표였다. 김진표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선봉장으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전해철은 청와대에서 (문재인의 후임자로서) 민정수석을 지냈다.
따라서 문재인의 우선회와 친노·친문 진영의 김진표 지지 선언은 어색한 조합이 아니다. 김진표는 자기 저서에서 과거 재경부 관료 시절에 교육 문제 토론 그룹을 현 경제부총리인 김동연 등과 함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보수 언론은 노무현이 개인의 이념보다 국익을 우선했다며 문재인에게 노무현의 길을 따르라고 충고한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기존 지지층이 떠나는데 새 지지층이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걱정까지 해 준다.
그 길은 대연정 제안과 한미FTA 체결 등으로 노골적인 우경화를 하던 노무현 정권의 후반기 노선이었다. 자연히 지지층이 이반함에 따라 여권 내 반발도 심각했다. 법무부 장관 출신 천정배는 한미FTA에 반대해 단식 농성까지 했고, 좌파 출신인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김근태(2011년 사망)도 반발했다. 당시 통일부총리 정동영도 노무현을 비판했다. 결국 차기 대선 주자급 인물 중에서는 유시민만이 노무현을 지지해 남고 나머지가 연쇄 탈당해 당시 여당 열린우리당의 과반 지위가 붕괴했다.
친문 인자들이 이런 부끄러운 배신적 과거에서 얻은 나름의 교훈은 여당을 한층 더 문재인 친정 체제로 구축해 친문 재집권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 때문에 기업 편을 들어야 하는 문재인 정부가 위기에 빠지는 것을 미리 차단하려면 2020년 총선 공천권을 쥐어야 하고 당내 개혁파도 미리 숙청해야 한다.
이런 우경적인 동기가 친문 인자들이 민주노총이나 정의당 등을 모욕적 언사로 공격하고 이재명 지사 등 당내 개혁파 인사들까지도 공격하는 까닭이다. 특히 이재명 지사가 혹여라도 개혁 정책을 실행해, 우선회하는 문재인 정부와 대비돼서 반사이익을 얻는 일을 막으려면 임기 초부터 각종 공격으로 힘을 빼놔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재명 지사에게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친문 인사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재명 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를 대하는 이중잣대가 그 방증이다. 의혹설만 있고 그조차 대부분 개인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의혹을 받는 이재명 지사에게는 탈당을 촉구하는 반면, 민주당도 특검(드루킹 특검) 도입에 동의해야 했던 김경수의 구체적인 혐의(여론 조작)에 대해서는 “정치 공세”라며 적극 방어한다.
그래서 오히려 이재명 지사의 기업 규제 방침에 불만을 품은 대기업들이 공작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이재명 지사는 경기도 내 관급 건설공사에서 원가 공개를 추진하는 등 건설사에 불리한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8월 13일 이재명 경기도정 인수위는 남경필 전 지사가 추진한 사업 8개의 검증을 경기도에 요구했다.
공교롭게도 SBS의 대주주는 남경필이 경기도지사를 하던 시절에 경기도청 신청사 건설을 수주한 태영건설이다. 한편, 백혈병 유발 삼성전자 공장이 있는 수원 영통구에서 3선을 했고 삼성 장학생으로 불리는 김진표가 이재명 찍어내기에 앞장선 것도 시사적이다.
이런 우경적인 공격에 맞서 살아 남으려면 이재명 지사는 친문 인자들과 타협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약속한 진보적 개혁을 단호하게 실행하고, 의혹들은 투명하게 해명해 지지층에 책임지는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우선회하는 문재인 정부를 보호할 민주당원으로서의 책임이 아니라).
문재인의 레임덕을 미리 방지하겠다는 친문 인자들의 행태는 우파에게도 사기를 회복할 자신감을 준다. 선거에서 남경필 지지는 한 에피소드다. 정권 초기부터 정권 퇴진을 주장해 온 우파에게 여권의 분열은 그 자체로도 고무적이겠지만, 여권 내 상대적 진보파 숙청 시도는 정권의 우경화를 재촉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지지층의 염원에 고약하게 찬물 끼얹는 친문 진영이다.
문건들을 보면, 양승태 하의 사법부가 상고법원을 신설하려 한 이유는 현행 정치 구조 속에서 법원의 위상, 즉 지배계급 내 대법원 판사들의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였던 듯하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의 기능을 쪼개어 신설하는 것이므로, 대법관의 위상을 가진 고위 판사 수가 늘어나고 기존 대법원이 판례를 남길 재판에 집중하게 돼, 헌법재판소와의 위상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본 듯하다.
그래서 재판의 결과와 시점 등을 상고법원 판사 임명권 등과 거래 항목으로 삼은 것이다.
이런 거래 동기와 양상을 보건대, 양승태 주도의 재판 거래는 일각의 주장과 달리 3권분립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게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소위 3권분립 구조를 반영하고 동질적 계급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해 사법부의 힘을 키우려는 거래였다.
이는 박근혜와의 유착이 대법원보다 더 심했던 헌법재판소가 박근혜를 탄핵한 것이나, 법원과의 거래 능력을 잃은 박근혜·이명박 등의 구속에 법원이 동의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박근혜의 청와대와 사법부 고위 판사들 사이에 계급적 이해관계가 동질적이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재판 거래가 가능했겠는가? 게다가 법원조차 정부를 비판하는 민간인을 사찰했음이 드러났다. 그 기간에 벌어졌던 국가정보원이나 기무사 등의 민간인 사찰과 국정 개입도 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사태를 ‘사법부의 독립성’ 문제로 보면, 지금 판사 집단이 자기 보호를 위해 영장 기각 등으로 재판 거래 수사를 방해하고, 김기춘을 풀어 주는 등의 도발적 작태를 보이는 상황을 설명하기가 힘들어진다.(물론 김기춘 석방에 책임 있는 김명수를 문재인이 임명했고, 검찰이 김기춘 구속 연장을 더 강력하게 요구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문재인에게도 간접 책임은 있다.)
최근 법원의 행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법원을 현행 자본주의 국가 구조(헌법으로 표상되는) 안에서는 민주적으로 제어하기가 어렵다는 걸 보여 준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3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추구하는 것이 진보적 대안이 되기 힘든 이유다.
예컨대, 임명권과 인사청문회, 입법권과 위헌법률심사 같은 상호견제 시스템은 (재판 거래에서 보듯)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자본주의 정치인들과 관료들, 기업주들이 영향을 미쳐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와 이명박에 대한 대한 사법부의 태도 변화는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으로 표출된 개혁 염원을 핵심 요인으로 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가 없다.
지배자들끼리 벌이는 공개적 견제와 갈등은 대중이 저항에 나설 자신감을 고무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중의 커다란 압력이 지배자들끼리 벌이는 상호견제 과정을 심각한 분열로 이끌기도 한다. 집권당이 분열해 국회가 압도적으로 박근혜를 탄핵한 것이나, 2017년 초 이재용 등의 구속을 놓고 특검과 법원이 갈등을 빚은 것이 그런 사례다.
그런데, 바로 그런 변화를 강제했던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에 맞서 군대를 동원한 무력 진압을 시도했던 일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기관들
두루 알다시피, 6월 말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이 폭로됐다. 기무사는 대통령 탄핵 상황에서 통상적 검토 문건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7월 구체적인 실행 계획(검토) 문건이 새로 폭로됐다. 그러면서 기무사는 해체 압력을 받는 수준으로까지 몰렸다.
기무사가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점도 드러났다. 군사독재가 끝난 뒤에도 기무사는 도청·미행·연행 등 민간인 사찰을 이어 왔다. 김대중 정부 때도 도청 등을 했고, 이명박 정부 때는 민주노동당 당원 등을 사찰하다 들킨 적도 있었다.
이는 기무사가 한국전쟁 전후로 악명을 떨친 특무부대, 전두환의 보안사령부 등을 전신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공 수사권까지 갖고 있는 막강한 기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무사는 국방장관에 대한 항명을 불사하며 버티고 있다. 결국 문재인은 기무사 “해편”이라는 신조어까지 동원해 ‘군사안보지원사령부’라고 이름과 내부 구조만 바꾸는 기만적인 개혁을 용인할 태세다. 과거 안전기획부가 이름만 국가정보원으로 바꾸고 거의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을 떠오르게 한다.
올 3월부터 폭로된 군부의 문건을 보면, 청와대와 기무사뿐 아니라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와 국방부, 육군본부의 일부도 연루된(또는 묵인한) 쿠데타 모의 자체는 실재한 듯하다.
이들은 촛불 초기부터 군대 투입을 고민했으나 12월 초까지 촛불의 규모와 기세가 파죽지세로 성장해 순식간에 국회 탄핵 국면까지 가면서 기회를 못 잡았다. 이후 태극기 집회로 우파가 결집을 유지하고 규모를 키우면서 마지막 모험수를 생각해 본 듯하다.
문건은 어느 쪽이든 헌재의 탄핵 심판에 대한 반발로 치안이 마비될 때를 군대가 나서는 기회로 삼는다고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박근혜 파면으로 치안이 불안해질 개연성이 없었으므로, 사실상 탄핵 기각 시 항거에 나설 퇴진 촛불을 진압할 친위 쿠데타 기획이었던 것이다. 계엄을 당시 여당의 협조로 유지한다는 문건의 계획이 이런 성격을 보여 준다.(계엄령 선포를 공개 호소하던 우파가 헌재 탄핵 당일 경찰 버스 탈취 등의 시위 양상을 보인 것이 이와 관련해 시사적이다. 물론 당시 우파는 대중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고 사기도 높지 않았으므로, 군부 출동의 명분을 줄 상황은 만들어 낼 수 없었다.)
7월에 공개된 계엄 실행(검토) 문건은 진짜로 전격적인 도심 점령 계획을 담고 있었다. 이런 무모한 계획이 필요한 이유는, 앞서 살펴봤듯이, 역설이게도 성공 가능성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과연 친위 쿠데타 모의 세력이 문건에 등장하는 부대의 지휘관들을 모두 사전 포섭했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만약 박근혜와 군부가 오판했다면 5·16의 재판(再版)이 아니라 혁명적 상황이 됐을 거라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인 추론일 것이다.
우파 친박 군부의 쿠데타 모의는 혁명적 수준에 전혀 이르지 못했던 촛불 운동이 군부의 주관적 오판을 계기로 혁명적 수준으로 고양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세계적 경제 위기 조건에서 벌어질 대중 저항이 내포한 “혁명의 현실성”을 보여 준다.
또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군부가 언제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중단시킬 잠재적 위험 세력이라는 것도 오랜만에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 문건이 통상 2년마다 갱신하는 합동참보본부의 계엄실무편람과 다르므로 당시 구체적으로 기획된 문건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군이 늘상 계엄 실행 작전계획을 갖고 있고 주기적으로 갱신한다는 것 자체가 국내 억압 기구로서 군대의 성격을 보여 준다.
그런데 군부는 헌재의 결정과 자신들의 결행 의지를 연동시켜 놓았었다. 결국 헌재는 강력한 저항을 달래어 체제 안정을 이루려고 만장일치로 박근혜를 탄핵해 버렸다. 이런 실제 상황의 경과를 봐도, 군부 등 반동 집단의 음모를 막는 힘은 노동계급의 저항에 내재한 혁명적 잠재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안착(또는 심화)을 전략적 목표로 삼고 노동계급 저항의 급진성과 전투성을 억제할수록 반동을 막는 힘은 오히려 약해진다.(이런 민주 개혁론과 맥락을 같이하는 인민전선 전략도 마찬가지 약점을 지닌다.)
이런 점에서 대법원 사법 농단 파동을 3권분립의 확립 등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개혁의 관점에서 보는 것의 부적절함도 새삼 확인된다. 법원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아래서도, 아래로부터 대중이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을 쥐고 선출된 좌파 정부를 무시하거나 대중의 절절한 개혁 염원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개혁과 혁명
양승태의 재판 거래 문건과 기무사의 계엄 모의 문건이 공개된 것은 아마도 우선회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우파의 위험이 여전함을 환기시켜, 지지층 이탈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일 개연성이 높다.
아마 법원과 기무사 측 모두 강력하게 몽니를 부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기득권의 핵심 구조를 건드리지 않아 온 문재인 정부가 불리해지니 이중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안 자체가 국가 기강을 흔든 문제로 커지면서, 문재인 정부의 책략이 꼬인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이 풀어놓은 체제의 비밀을 감당하기 힘들어 한다.
적폐 구조와 세력을 건드리지 않고 적폐 청산(개혁)을 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꼬인 스텝을 보면, 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들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열기 속에 77개의 워크숍이 열린 맑시즘2018이 나흘간의 일정을 마쳤다. 매년 개최되는 맑시즘은 올해에는 7월 19일(목)부터 22일(일)까지 서울 고려대학교에서 열렸다.
해외 연사인 로라 마일스가 “성폭력과 자본주의”를 주제로 강연한 폐막 토론에는 250여 명이 참가했다. 청중 토론에서 발언들이 쉴 틈 없이 이어져 나흘간의 분위기가 어땠을지를 짐작케 했다.
올해 맑시즘 등록자는 지난해보다 많았다. 낮 기온이 35도 이상 이틀 연속 이어질 때 발령되는 폭염경보를 뚫고서 수백 명이 마르크스주의와 운동의 전략·전술을 다루는 토론에 참가한 것이다. 주제가 77개나 되다 보니, 올해도 분강이 많아 참가자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주최 단체인 노동자연대는 8월 공개 토론회, 대학 마르크스주의 포럼, 세미나 모임 ‘마르크스주의 ABC’ 등을 맑시즘2018의 후속 행사로 토론을 이어 갈 기획을 마련했다.
올해 맑시즘은 대학생과 조직 노동자의 참가가 두드러졌다. 이론에서부터 실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골고루 관심을 끌었는데, 그중에서도 노동자 운동과 여성 운동의 쟁점을 다룬 토론·강연들에 대한 관심이 좀더 두드러졌다. 난민, 심리학 등 여느 좌파 토론회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주제들도 관심을 끌었다. 촛불의 여파가 다양한 운동이 성장할 자양분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총 211개 단체가 후원했다. 그중에서도 노동조합 등 노동단체의 후원이 늘었다. 민주노총, 현대중공업지부, 철도노조, 공무원노조 등 174곳에 이른다. 노조의 지회, 분회들이 많은 게 인상적이다.
적극성
올해도 20대 청년·대학생들의 참가가 가장 많았다. 마르크스주의 기초 이론에서부터 한국·세계 노동계급·민중 저항의 역사까지 다양한 주제에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경청하고 질문하는 대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으로 승리한 경험을 해, 사회운동 참여에 우호적인 이 새 세대 참가자들은 노동운동 등 다양한 운동과 주제에도 관심을 보였고 또 적극적이었다. 맑시즘 기간 중에 열린 대학생 교류 행사들에도 대학생 50여 명이 참석해 소속 학교에 구애받지 않고 허물없이 토론하고 교류했다.
올해 맑시즘에는 노동자 운동의 쟁점들을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다루는 주제가 많았다.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미래와 한국 노동계급의 상태 등 같은 일반적 주제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삼성전자서비스,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등 여러 부문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해 경험과 방향 모색 등의 고민을 교류하는 주제까지 다양했는데, 거의 모두 인기 강연이었다.
경영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구조조정에 맞서 파업 농성 중인 현대중공업 조합원 활동가의 워크숍도 생생하고 고무적이었다. 주최측은 현대중공업 파업 노동자들에게 보낼 지지 메시지를 적어달라고 행사 중간에 급히 참가자들에게 호소했는데, 200명 이상이 메시지를 작성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조직 노동자 참가가 예년보다 대거 늘어 200명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은 다른 부문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과 노동운동 역사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해당 주제에서 선배 노동자들이 말한 경험담도 꽤 유익했을 것이다.
조직 노동자의 관심이 꽤 높으리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맑시즘2018 후원 현황에서도 미리 볼 수 있었다. 노동조합들의 후원 중에 지회와 분회의 후원이 많았는데, 직접적인 연대 경험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맑시즘이 노동자 연대의 장이자 계기가 되고 있는 것도 같다. 가령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의 연대 메시지가 특히 인상적이다.
“2017년 [맑시즘]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의 문제점과 예상되는 향후 상황들에 대해서 듣고 배웠습니다. 그때 그 문제들과 예견된 상황들은 고스란히 현실이 되어서 … 80일간의 서울역 농성으로 화답해야 했고, 이젠 더 강고한 투쟁을 준비해야 할 입장이어서 맑시즘 2018[이] 너무나 기다려집니다!”
해외 연사인 로라 마일스의 강연도 모두 1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였다. 1975년부터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한 로라 마일스는 영국 대학노조(UCU) 트렌스젠더로서는 최초의 전국집행위원이고, 대학노조 내 좌파모임의 사무국장도 지냈다. 이 경력이 웅변하듯이, 마일스는 성소수자 차별부터 교육, 심리학, 노동조합 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소화하며 귀한 경험들을 들려 줬다.
한편, 맑시즘 개최 장소인 고려대학교의 총학생회, 문과대학생회, 정경대학생회, 자유전공학부학생회, 미디어학부학생회 등 학생단체들과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고려대분회(이하 서경지부 고대분회) 등 13곳이 후원해 행사가 안정적이고 쾌적하게 진행되는 데 큰 힘이 됐다. 이 단체들은 정성이 담긴 연대 메시지도 보내 줘서 참가자들을 환영했는데, 특히 연초에 투쟁을 벌여 승리한 서경지부 고대분회가 보낸 정성 어린 메시지는 참가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맑시즘의 인기 장소인 맑시즘 책방에서는 올해에도 마르크스주의 서적이 600여 권 팔렸다고 한다. 국내에서 25년 이상 마르크스주의 해설서로 스테디셀러였던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알렉스 캘리니코스, 책갈피)가 전면 개역판으로 새로 나와 주목받았고, 《마르크스주의로 본 한국 현대사》도 관심을 끌었다.
주요 내용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소수 정당의 의회 진입 장벽 해제, 선거연합정당 허용 등이었다.
현행 선거제도 하에서는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가 제대로 의회(국회든 지방의회든) 의석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나마 2002년 지방선거부터 도입된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전체 의석수의 적은 일부만을(국회는 의원정수의 14.3퍼센트인 43석, 각 지방의회는 9.1퍼센트) 할당한다.
그래서 2012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큰 혜택을 봤다. 지역구든 비례든 그 당들은 자신이 실제로 얻은 득표보다 훨씬 더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반면, 진보정당들은 매번 손해를 봤다. 가령 100퍼센트 비례대표제라면, 민주노동당(2004)이나 통합진보당(2012)은 원내교섭단체(국회의원 20석)를 만들고도 의원이 열 명 넘게 남았을 것이다. 정의당(2016)도 원내교섭단체 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비례대표 확대는 진보진영의 오랜 요구였다. 물론 기성 정당들은 이를 반대해 왔다.
지난해 노동당, 녹색당, 민중당 등이 꾸린 “정치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제정당 연석회의”는 그동안 전국 단위 100퍼센트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요구하고 캠페인을 벌였다.
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선거연합정당 허용 요구다. 선거 시기에 한정해 각 정당과 정치세력들의 연합을 하나의 정당으로 등록 가능하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현행법으로는 금지돼 있다.
사실 이 선거연합정당 아이디어는 노동자연대가 여러 해 전부터 제기해 온 것이다. 노동자연대는 2016년 민주노총 정치방침 대의원대회에서도 이 아이디어를 내놓은 바 있다.
전에는 진보정당들이 부정적이었다. 선거법 때문이기도 했지만, 각자의 이해관계 불일치가 더 컸다. 당시로선 가장 규모가 컸던 자민통계는 통합된 정당이라는 대안을 고수했다. 이는 독자성을 중시해 온 옛 진보신당, 그리고 노동당이나 자민통계와 통합진보당에서 분리한 진보정의당, 또한 정의당이 진보 통합에 소극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일터와 거리에서 투쟁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는 해도, 선거 시기에는 강력한 진보 염원이 모이도록 초점을 제공할 필요도 있다.
여전히 자유한국당은 개혁과 평화 염원에 역행하고 있고, 민주당은 이들에 대한 반감 덕분에 선거적 이득을 보지만 그 실체는 노골적인 친자본주의 개혁에 불과하다. 때마침 문재인 정부는 우회전하며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노동자 투쟁이 성장할 조짐이 있고, 최근의 전국 선거들에서 진보·좌파의 득표도 꾸준히 성장했다. 한 달 전 지방선거에서도 그랬다.
다음의 전국적인 선거에서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정당(정치조직)들이 연합해 선거적 대안을 내놓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현실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세계적 경제 침체 상황에서 진보와 개혁의 성격에 대한 태도, 북한과 안보 위기에 대한 태도 등에서 진보·좌파 세력 안에서 정치적 차이는 더 깊어졌다. 최근 선거들을 보면 노동자들과 진보 염원층에서 정의당에 표를 몰아주는 현상이 굳어지는 듯하다. 물론 정의당이 너무 온건하다는 불만도 이들에게서 감지된다. 같은 이유로 정의당에 투표하지 않는 진보 염원 대중도 적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하나의 단일 정당이라는 프로젝트는 더는 유용하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각자 강령과 조직을 유지하면서, 선거에서 합의 가능한 개혁 공약 묶음과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지지를 중심으로 선거 연합을 형성하는 것도 유용하다.
사실, 노동당은 예로부터 좌파의 독자성을 내세워 진보측 선거연합 정당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노동당이 선거연합정당을 도입하자는 입장을 취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지역구로 선거를 치르지만 한 정당이 얻은 지역구 득표의 총합 비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 정당별 배정 총 의석 수와 지역구 당선자 수의 차이를 비례대표가 채우는 것. 종종 지역구 당선자 수가 정당 득표를 초과할 때도 있다. 보통 그 경우 초과의석을 허용한다. 연석회의는 총선에서 이 제도를 전국 단위로 적용하고 지역구와 비례의 의석 비율은 1:1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7월 5일 국군기무사령부의 반동적 친위 쿠데타 기획이 폭로됐다. 올 3월에 이어 두 번째 폭로다. 둘을 종합하면, 군부는 촛불 초기부터 군대 투입을 검토한 걸로 보인다.
이번 폭로에는 지방선거 후 급속한 우회전으로 지지층 이반 위기 조짐을 겪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계산도 담겨 있을 것이다.올 초에도 군대의 무력 진압 논의 의혹이 폭로됐지만 아무 조처도 하지 않았던 문재인은 7월 10일에야 기무사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 일부 쿠데타 기획 관련자들은 문재인 정부 아래서 승진도 했다.
한편, 기무사의 쿠데타 기획을 보면 향후 운동의 전략과 관련해 큰 시사점을 준다. 그 점을 주로 다뤘던 기존 기사에 새롭게 드러난 사실들을 보강해 증보판으로 발행한다.
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제압을 위해 계엄 선포 등 친위 쿠데타를 검토·기획한 사실이 드러났다.
7월 6일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입수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2017년 3월 국군기무사령부 작성, 사령관 조현천)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박정희나 전두환이 그랬듯이,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출동시킬 명분을 국가 혼란과 안보 위기에서 찾으려 했다.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도 상존’하는 상황에서 국가적 혼란이 빨리 해결돼야 하므로, 국민 권리를 침해하거나 위헌의 소지가 있어도 군대가 출동해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 군의 우선적인 책임이라는 식이다.
이런 명분을 위해 이들은 상황을 왜곡했다. 촛불과 태극기는 영향력과 규모에서 비교도 안 됐는데, 정국이 좌우로 대등하게 양분돼 국정이 혼란에 빠진 것처럼 말이다.(“촛불 집회 : 18차 연인원 1,540만 여명, ‘기각되면 혁명’ 주장 / 태극기 집회 : 15차 연인원 1,280만 여명, ‘인용되면 내란’ 주장”)
또한 주목할 점은, 쿠데타 기획 세력들은 (알려진 것과 달리) ‘탄핵 기각시에만’ 출동하려고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촛불로 고양된 정국 상황 자체를 제거하고 싶어한 듯하다.
“탄핵심판결과에 불복한 대규모 시위대가 서울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청와대·헌법재판소 진입·점거를 시도”, “유언비어가 난무하고,진보(종북) 또는 보수 특정인사의 선동으로 인해 집회·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돼 “치안 불안” 초래.
탄핵심판 결과에 상관없이 군대가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이 문건이 계엄 선포 과정의 난점들을 검토하며 해법을 제시하는 점도 반동적 군사 반란을 해내려는 이들의 ‘의지’를 보여 준다.
계엄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고려해 위수령으로 시작할 것, 국회에서 위수령을 무효화하는 법안 제정시 대통령(탄핵이 되면 대통령권한대행은 황교안, 탄핵이 기각되면 박근혜가 다시 대통령직 수행)의 거부권 행사를 통해 2개월의 시간을 벌 것, 국군조직법상 육군참모총장(당시 장준규)에게 병력 출동 승인권이 없으니 편법으로 선 승인 후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에게 사후 별도 승인을 받는 식으로 할 것 등등.
물론 박정희와 전두환이 그랬듯이, 군부 쿠데타가 감행됐다면 그 총구는 촛불, 노동자 운동, 진보·좌파들을 향했을 것이다. 군대가 일단 나섰다면, 박근혜가 헌재에서 탄핵됐다고 해서 태극기 집회가 계속 난동 같았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명분을 제공한) 군부를 환영하며 협조했을 것이다.
(※3월 10일의 태극기 집회를 떠올려 보자. 박근혜가 헌재에서 파면된 날, 태극기 집회 측은 경찰버스를 탈취해 들이받고 집회 참가자가 사망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계엄 선포의 명분이 되기엔 소박한 규모였지만 말이다. 그날의 난동이 해프닝으로 끝난 건 이들의 의도와 실제 상황의 큰 격차도 보여 준다. [결국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하면, 이들이 나설 수 있는 상황이란 건 헌재의 탄핵이 기각됐을 때 국정에 복귀하는 박근혜의 친위 쿠데타 형식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문건은 위수령부터 계엄령으로 가는 로드맵과 계엄사령부 구성과 병력 배치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탱크와 장갑차 수백 대 등 중무장한 기갑사단과 공수부대를 동원해 청와대, 헌법재판소, 정부 청사, 국방부, 국회 등 정부 주요 시설과 광화문 등 시위 예상 장소, 전국의 주요 도시, 방송 등을 장악하려 했다.
친박의 친위 쿠데타 몽상?
문건에 따르면, 서울 지역 위수령 발동시에는 무력 진압 논의를 주도한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이 위수사령관이 되고, 편법으로 부대 출동을 승인하도록 한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작전을 짠 기무사령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를 맡도록 했다. 계엄사 합수부는 계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색출·사법처리”와 “언론 통제” 등을 담당한다.
이런 계획은 1979~1980년 전두환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전두환 본인이 쿠데타 당시 보안사령관(지금의 기무사령관)으로 계엄사 산하 합동수사본부를 맡아 중앙정보부, 보안사, 보안경찰 등 모든 정보기관을 통제하면서 실권을 잡았다. 기무사령부는 과거 악명높았던 방첩부대, 특무부대의 후신인 군부 내 정보기관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아래서는 사이버 심리전 부대를 만들어 여론 공작을 벌였다. 그 일환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감시하고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일도 벌였음이 최근 폭로됐다.
기무사령관 조현천이 전두환 구실을 하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최순실의 추천으로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걸로 알려진 조현천은 육군 내 육사 출신 사조직인 알자회 출신이며 친박 실세 부총리였던 최경환의 고교 후배다. 또한 우병우(구속), 국정원 국장 추명호(구속) 등과 함께 군 인사 등에 개입해 온 의혹을 받아 왔다.(추명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우익 단체들을 지원해 키우고 민간인 사찰과 여론 공작 등을 벌인 혐의로 구속돼 있다.) 문건에는 “국가 사이버 대응 조직 활용”도 계엄시 할 일로 포함돼 있다.
따라서 기무사가 작성한 시나리오는 촛불에 대한 박근혜와 군부의 반동적 친위 쿠데타 기획으로 볼 수 있다. 3월에 폭로된 무력 진압 논의와 추가 폭로 사실들을 더해 보면, 수방사령관, 기무사령관 등 정권과 직결되는 지휘관들이 모두 연루돼 있고 그 시기도 촛불 초기인 2016년 11월부터다.
이런 문건이군의 공식 계통에서 누군가의 지시로 기획되고 보고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쿠데타 음모를 적발하는 것이 공식 임무인 기무사에서 쿠데타 검토·기획 문건을 작성하고 있겠는가? 특히청와대가 몰랐다면 그것 자체가 쿠데타 모의이므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군부의 핵심이 연루돼서 문재인 정부가 3월에 공개 폭로된 뒤에도 딱부러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걸 수도 있다.)
기무사, 수방사 등의 관련 지휘관들, 육군참모본부와 국방부의 육군 고위 장성 출신들(가령 당시 국방장관 한민구, 청와대의 안보실장 김관진과 경호실장 박흥렬 등 포함)과 함께 박근혜 본인, 대통령권한대행 황교안 등이 모두 수사 대상이 돼야 한다.
촛불의 기세가 쿠데타 시도를 포기하게 했다
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군인권센터는 올 3월에도 ‘[촛불 초기인] 2016년 11~12월부터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구홍모 주도로 촛불 시위 진압에 군대를 동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을 폭로한 바 있다. 군부는 청와대로 진입하려는 시위대에 대한 대응 검토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올 3월에 〈노동자 연대〉는 군부가 시위 진압에 나온다는 것은 (단순한 진압 보조가 아니라) 당시의 정세상 어떤 명분이든 사실상 친위 쿠데타였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를 돌아 보자. 퇴진 운동 초기에 민주당 대표 추미애가 계엄령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낌새를 눈치 챈 태극기 집회에서도 12월부터는 군대가 (계엄을 선포하고) 나서라고 촉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런 일들은 화제가 됐지만, 사람들이 진지하게 그 가능성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계엄령은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당시 정권 퇴진 여론과 촛불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정치 상황상국회가 계엄령에 찬성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집권당 의원들이 분열했다. 그래서 국회가 박근혜를 압도적으로 탄핵해 직무를 정지시켜 버렸다. 문건을 보면, 그들도 국회가 계엄령은 물론이고 위수령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때문에 박근혜 측이 위수령이나 계엄령을 선포한다면 도심만이 아니라 국회, 법원, 방송국 등을 일시에 장악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전격적인 유혈 쿠데타를 각오하는 도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운동의 기세 때문에 이런 도박은 성공할 가망이 거의 없었다. 당시에박근혜와 군부가 도박을 했다면, 5·16의 반복이 아니라 혁명에 의한 카운터펀치를 부를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러나 당시 대중의 기세가 너무 커서 박근혜 정권에 대한 수사와 검찰, 법원, 국회 모두 운동에 양보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시기에는 노동계급의 투쟁성이 (발휘되지는 않았어도) 잠재해 있었다.
모두가 경멸하는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시도에 대중은 격분했을 것이고, 사병들도 동원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순식간에 혁명적 상황이 조성됐을 것이고, 당황한 지배계급 내 일부가 박근혜를 비합법적으로 자리에서 제거해 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대중의 분노와 사기는 오히려 올랐을 것이고, 대중의 격렬한 저항 태세가 결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저항의 최종 성패는 결정돼 있지 않았다. 우리 쪽 대응 태세가 중요했는데, 그 점이 어떨지 미리 결정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부가 쿠데타를 검토·기획해 놓고도 끝내 포기한 일은 5개월간 평화로운 집회와 행진이 주된 특징이었던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이면에서 계급 간에 치열한 힘겨루기(세력균형에 대한 가늠과 도발)가 지속해서 벌어졌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운동의 승리를 위해서는 노련하고 명확한 판단에 기초한 단호함을 갖춘 지도력의 존재가 중요했다. 그런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의 온건파 지도자들 일부는 12월 초순에 촛불 집회를 중단하자고 했다.(황교안 퇴진 요구도 처음엔 반대했다.) 좌파가 강력히 반대했고 대중이 호응해 계속 대규모 집회가 유지됐는데, 돌아보면 (군대가 보복을 검토하던 그 순간에) 촛불 중단은 오히려 매우 위험한 시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 정치적 실패가 명백한 박근혜 정부를 지키려고 지배계급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위험 부담을 감수했을 것 같지 않다. 박근혜 임기 내내 정권과 코드를 맞춰 왔던 헌재가 ‘만장일치’로 박근혜를 파면한 것이 그 방증이다.(박근혜 측에게 행여나 오판하지 말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청와대나 군부 일각에서도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이런 답 말고는 잘 나오지 않으니, 기회를 잡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군대 출동 시나리오까지 만들고도실행에 옮길 생각은 최종적으로 포기한 것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작동·유지하는 동력이 기층 대중의 힘에 있음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이를 뒤집어 지배계급의 처지에서 보면, 퇴진 운동에 양보해 박근혜를 퇴진시킨 것, 집회·행진을 허용하고 (퇴진 수단으로) 헌법재판소라는 헌법 절차를 통한 것 등이 결과적으로는 혁명으로 발전할 작은 가능성을 억제하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방어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도 계급 독재
군부의 쿠데타 모의가 확인됨으로써,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아래서도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얼마든지 “민주주의”, “문민 통치” 같은 기존 통치 질서와 공언을 뒤집고 유혈 참사를 일으킬 수도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100년이 넘은 영국에서도 1970년대 초에 북아일랜드 사태 진압을 위한 군부 쿠데타 논의가 있었다. 2010년 그리스에서도 트럭 기사 파업에 군대가 투입됐다.
1918년 독일 노동자와 사병들의 혁명을 막으려고 사회민주당에 정권을 넘긴 독일 군부는 결국 1933년 초에는 노동운동과 진보·좌파를 쓸어버리려고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해 나치가 집권하는 길을 열어 줬다.
프랑스 지배자들은 1934년 파시스트의 의회 공격을 막아 낸 노동계급의 투쟁과 사기가 오른 덕에 1936년 공산당이 포함된 민중전선의 집권을 용인했고, 5월 대중 파업에 커다란 양보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1940년 독일 나치 군대의 점령에 협조하며 꼭두각시 비시 정부를 통해 이 양보들을 원상 회복하려 했다.
1973년 칠레에서는 미국의 후원을 등에 업은 군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좌파 정부를 뒤엎고 좌파와 노조원들에게 유혈낭자한 복수극을 펼쳤다. 그때까지 칠레는 라틴아메리카 나라 중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가장 오래 정착된 극소수 나라에 속했다.
한국 노태우 정부 때에는 일부 시위 진압 경찰에게 M16 총기가 지급된 적이 있었고, 군부 내에서 쿠데타를 검토했음이 폭로된 바 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도 지배 계급인 자본가 계급의 지배가 위험해졌다 싶으면 계급 독재로서의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다.
혁명은 점진적 과정인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분석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도 혁명이 단지 점진적으로 다가올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적 가능성(현실성, 실재성)을 지닌 사건이라는 점도 보여 준다.
1934년 봄 프랑스에서 파시스트 쿠데타가 공산당·사회당 공동 시위에 부딪혀 좌절되자 트로츠키는 프랑스 혁명의 서곡이 울렸다고 선언했다. 2002년 미국의 도움을 받아 차베스 정부를 뒤집으려 한 우익 지배자들의 쿠데타가 실패한 뒤에 베네수엘라에서는 대중운동이 고양되는 새로운 국면이 열렸었다.
세계적 장기 침체 시기에는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불안정해지고, 불안정과 저항에 맞서 지배계급이 반동으로 돌아서서라도 계급 지배 질서를 지키려 할 수 있다. 따라서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정상 상태를 준수하고 그에 적응하려는 개혁주의는 전략적으로 부적절하다.
가령, 퇴진 촛불 때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어떻게든 운동이 국회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헌정 절차로 수렴되게 하려고 애썼다. 국회 탄핵 후에는 집회도 멈추려 했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인 황교안의 대통령권한대행 체제도 인정해 주려 했다. 만일 국회 탄핵 이후 12월 중순에 퇴진 촛불을 멈췄다면, 일부 우익에게 오판할 기회를 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헝가리인 마르크스주의자 죄르지 루카치(1885~1971)는 레닌주의 정치의 핵심은 “국제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사건 모두를 혁명의 현실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중의 자발성을 뒤따르다가 오히려 혁명적 자발성의 발목을 잡으려 했던 나머지 좌파들과 달리 레닌과 볼셰비키가 결정적 순간에 대중과 함께 혁명적 권력 장악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다.
개혁주의자들의 소심함과 달리, 한국 지배자들 다수는 오히려 ‘혁명의 현실성’을 계산에 넣었고, 그래서 당시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더 심화·안정시키는 쪽으로 비교적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심화시킨 것은 ‘혁명의 현실성’이 주는 압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그들이 앞으로도 오판을 안 한다는 보장은 없다. (임박한 가능성은 아닐지라도) 제국주의 시대는 “전쟁과 혁명의 시대”, 격변의 시대이므로 누구든 큰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혁명의 현실성’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심화시킨 동력이었다는 역설과 현재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불안정성이 점증하는 상황은 혁명이냐 개혁이냐 하는 전략 문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양승태 대법원의 반노동 재판 거래 의혹이 결국 검찰 수사로 번졌다. 6월 15일 현 대법원장인 김명수는 수사에 협조하겠다 했다. 하지만 김명수 자신을 포함한 대법관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부인했다. 법원행정처도 검찰에 하드디스크 제출을 거부했다.
대법관들이 이렇게 나온 마당에 검찰 수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이나 구속 등이 필요해도 그것을 허가할(영장 발부) 권한이 법원에 있기 때문이다.
수사를 잘해도 재판 거래 범죄를 제대로 판결할까 의심스러운 판국에 수사마저 부실해지면 더더욱 단죄 가능성이 낮아진다.
재판 거래의 일부였던 대법관들이 (어쩔 수 없이 수사에 들어간) 검찰이나 여론을 향해 ‘해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적폐 범죄자들이 적폐 청산 수사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6월 28일 쌍용차 노동자 한 명이 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이명박 정부의 살인 진압 피해자였다. 대법원이 재판 거래로 쌍용차 노동자들을 또다시 궁지로 몰지 않았다면 그렇게 세상을 뜨지 않았어도 될 목숨이었다.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은 파업 후 사회에 이렇게 호소했다. “왜 우리를 구속시키는 법만 적용하고,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는 법은 적용되지 않는 건가?” 재판 거래 의혹의 폭로는 그 이유의 일단을 알려 준 사건이다.
노동자들이 이길 것으로 예상됐던 판결이 양승태 체제 아래서 대법원에서 뒤집히자 KTX 승무원, 쌍용차 노동자들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생겼다. 전교조에서는 수십 명의 해고자들이 양산됐다. 진보당 의원과 활동가들이 정당한 시민권을 빼앗기고 부당한 징역형을 살았거나 아직도 살고 있다.
양승태와 그 측근들은 증거 인멸과 다름없는 일들을 자행하고도 자기는 죄가 없다고 뻔뻔하게 부인했던 것이다.
사법부 개혁이 가능할까
사법 농단의 중심에는 법원행정처가 있다. 양승태와 전 법원행정처장 박병대 등의 컴퓨터를 디가우징[하드디스크를 복구 불가능하게 지우기]한 것도 법원행정처가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법원행정처는 부인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판사 인사 관리, 재판 배당 등의 사법 행정(사법부 관리와 통제)을 담당하는 핵심 행정 기관이다. 사법 행정의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이다. 가령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 임명권을 통해 주요 인물 구속영장 기각 등 박근혜 권력 농단 수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서열이 엄격한 조직인 법원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한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그가 임명한 보직 판사들이 인사, 재판 관리 등 법원 행정을 담당하니, 법원행정처의 권력이 막강할 수밖에 없다. 법원행정처의 주요 보직들이 사법부 내 고위직(대법관 등) 승진에 유리한 출세 코스인 이유다. 법원행정처는 사법부가 (자유주의자들의 이상과 달리) 독립적인 판사들의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곳이 아님을 보여 주는 증거다.
이번 사법 농단 스캔들에서 양승태의 심복인 임종헌이 바로 법원행정처의 2인자 자격으로 앞잡이 구실을 했다. 그렇다면 법원행정처장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까? (임종헌의 윗선인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등의 컴퓨터를 디가우징한 것은 현 법원행정처가 임종헌 선에서 꼬리를 자르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비록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이지만 대통령이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하고 그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들을 추천하므로(그리고 그 대법관들 중 한 명을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하므로), 국회에서 과반 다수당을 이뤘던 우파 정부 아래서 유착이 더욱 손쉬웠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와 양승태 체제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동안 자유주의적 사법 개혁론자들은 법원행정처를 판사가 아닌 일반 공무원이 맡고 판사는 재판만 맡게 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기관이며, 기성 체제의 법률에 따르는 곳이다. 따라서 서열에 따른 운영이나 인적 구성만이 아니라 기능도 가장 보수적인 곳이다. 3권 분립이 최초로 구현된 미국에서 그 토대를 놓은 인물들은 선출되지 않는 사법부의 기능이 혹시 ‘민중적’으로 구성될지도 모를 의회에 대한 견제라고 못 박았다.
사법부가 대통령의 임명권이나 국회의 임명 동의권을 거쳐 고위직을 충원하는 구조는 권력 3부가 모두 동의할 만한 사람들로 사법부 상층을 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법) 적폐 청산을 주창한 문재인이나 김명수 모두 이번 사법 농단 의혹 앞에서 주춤하거나 청산 의지가 없는 것을 봐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3권 분립 강화로는 반노동계급적 사법 농단이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다. 1심, 2심, 3심을 모두 독립적인 기관으로 하자는 일각의 개혁 방안도 진정으로 노동계급에게 공정한 재판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은 못 된다.(유일하게 대법원에서 뒤집어진 KTX 승무원 판결을 보라.)
6월 21일 대법원장 김명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근로기준법의 휴일 초과 근무에 대한 초과수당을 할증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기업주들이 원한 결과였다. 양승태 체제에서 법 개악을 기대하며 무려 7년이나 미뤄 둔 것이었고, 마침내 2월 말 국회는 할증 지급을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으로 법을 개악했다. 이 개악이 이번 판결의 근거였다.
이처럼 반(反)노동 재판과 입법이 서로 돕는 현상은 권력층 안에서 어떤 거래가 오가는지 잘 보여 준다. 계급 권력 아래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노동계급의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