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한 건인데,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은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를 알려고 한 것이 연대 단절의 핵심 사유다. 그 결론이 거짓 비방의 손을 들어준 것. 노동자연대의 입장을 지지한 것도 아니고 단지 연대 단절은 무리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개진한 임원들에게까지 담당 실무자들이 2차가해 운운했다는데, 기가 막힐 뿐이다. 무리에 껴서 어울리려고 같이 바보가 될 필요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저들은 급진페미니즘과 사회적 대화에 이견을 가진 것 때문에 투쟁적 노동자 연대의 필요성을 깡그리 무시하고서는 그 결정이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이라고 설명한다. 그 결정을 만일 분열이 아니라 결합이라고 부른다면, 노동계급 연대의 결합이 아니라 중간계급 급진페미니즘이 노동계급의 운동을 정복하는 결합이다.
(전지윤 거짓 비방은 굳이 다루지 않는다. 전지윤의 친구들조차 그를 믿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전지윤의 거짓말은 민주노총 결정에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이야말로 거짓말과 자작극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극도로 실용주의적인 도덕관이 그런 접근법(수단)들을 정당화해 주므로.) 앞으로 불편한 일들이 생기겠지만, 새 친구를 사귀면 된다. 같이 양심불량 바보가 되자는 친구를 사귀어서 남는 게 뭐가 있겠나. 저들의 협박이 가당찮은 이유다.
물론 저들은 그것도 방해하러 뛰쳐 오겠지. 연대 단절의 갑질만으로도 불안해서 아예 고사시켜 입을 막겠다는 것이야말로 저들의 심장 한가운데 진실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 줄 뿐이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혼자 ‘노’라고 할 수 있는 태도가 진실을 추구하는 훌륭한 자세라고 다들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따돌림과 평판 저하의 위협에 처했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과 단체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은 조국 국면에서 받은 충격(서초동에 놀란 게 아니라 노동계 대표 조직들이 논리도 전통도 팽개치고 바보들처럼 조국 변호에 동조한 것에 놀람)이 더 커서 면역력이 생겼는지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당시에 확인했듯이, 상식과 일상이 크게 손상을 입는 시대에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걸렸다고 생각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도덕적 공황이 위선적 도덕에 열광하거나 또는 침묵하는 이들을 만들어내고, 초유의 위기 앞에서 기꺼이 체제와 협력할 준비가 된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정부와 사용자에게 대화를 제안하자고 결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반대한 단체를 따돌리자고 결정한 것은 상징적이다. 그들은 상황에 걸맞는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래서 초반부터 무리수를 두며 동요를 노출한다.
사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게 민주당의 총선 승리가 준 교훈 아닌가? 민주노총 중집과 일부 세력들은 이런 시대 풍조를 잘 배워서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그들 자신이 그 풍조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혼돈의 시대는 진영론과 확증편향, 즉 정치적 맹목의 시대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대중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속는 것도 대중이고, 잘못된 것에 열광하는 것도 대중이지만, 각성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대중일 수밖에 없다. 이론적이고 정치적이면서도 추상적 선전주의나 선전종파주의를 경계하며 개입주의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격동의 시대가 열렸다.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회에서 거리를 둬야 가능한가 보다. 노동자들은 그럴 수가 없다. 위험 때문에 개학을 연기하는 정부가 당연히 제공해야 할 휴업 생계 대책은 안 내놓는다. 정부 맞아? 상황이 이런데도, 유시민이는 정부 비판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라고 볼멘 소리를 한다. 날조 보도가 아닌 이상에야 한국 언론의 경험적 기초는 국민 대중의 경험이다. 그것을 변조하거나 아니면 책임을 피하려고 파편적 사실만 전하든 말이다. 물론 있는 그대로 진실의 조각들을 전하는 쓸만한 보도도 없지 않다.
국민 대중의 경험의 실체는 어떤가? 당연히 불만스러운 게 당연한 상황이다. 대통령이 이제 다 끝났다는 식으로 말한 직후에 확산됐고, 그 뒤 한 달의 경험은 신천지 등에 책임을 떠넘길 수 없는 실패(구조적으로, 당장의 판단에서)가 드러났다.
또한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한국 정부의 대처를 평가할 때, 정부가 효율적으로 안전을 제공하고 있는지에 관한 (국가적 시스템, 정부의 판단, 효율성, 그런 누적된 경험에 바탕한 평균적 기대치 등을 배경으로 해서) 개인적, 집단적 경험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겪어 보지도 않은 다른 나라 정부와 비교해서 평가하나?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마찬가지 이유로 해외 언론의 한국 내 상황 평가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대중의 일반적 경험과 불일치하므로 영향력을 지속 행사하기는 어려운 뉴스들이다. 엉터리 마스크 대책에도 군소리없이 순순이 협조하는 대중을 보면, 안전 대응에 대한 국민 눈높이가 높아서 문제인 것도 아니다. 정부 대책으로 월급 못 받는 노동자들이 기자회견만 하고 다른 액션이 없는 것도 대단히 정부 협조적이고 인내하는 자세다. 게다가 이 정권은 신종플루, 메르스, 세월호 등에서 실패한 새누리당 정권이 중도 퇴진하면서 들어선 정권이다.
종합하면, 유시민의 개소리는 촛불 이후 자기 목소리 내는 국민이 버겁다는 자기 고백에 다름아니다. 집권 4년차가 됐는데도 아직도 집권당으로서의 해결 책임보다는 언론 탓, 야당 탓, 국민 탓만 하니, 사람들에겐 더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걸 내뱉고 언론에 내보내는 걸 보면, 자기 지지층 단속에 사활을 거는 것이다. 피해의식과 공포를 수단으로. 그런데 사실은 박근혜 정권도 그랬다. 임기 내내 야당 탓, 국민 탓만 했다. 그래서 당시엔 그걸 두국민 책략이라고도 했다. 양당간에 선거로 정권을 주고받는 한국 민주주의가 실제 운영에선 집권하면 남탓 일관, 야당 때는 비토크라시 일관인 것이다.
공식정치 구조는 통치의 정당성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것이 큰 목적인데, 그 점에서도 비효율이고 양당 정치인 모두 책임성과 역량도 보여 주지 못한다. 선거 결과와 별개로 여야 모두에 대한 불신도 더 자랄 것이다. 그러니 여야는 더더욱 가짜뉴스 불사하며 자기 지지층 다지기에 열중한다. 여야 모두 두 국민 책략인 것이다. 그래서 이 진영논리 바깥에 서 있는 세력에겐 강력한 배제 압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민주당 위성 정당 논란과 압박은 이를 배경으로 한다.
관심을 모은 정의당 비례 선출 결과에 충격과 실망, 허탈감을 느끼는 정의당 지인들이 여럿 보인다. 결과 보니, 앞순위는 예상과 많이 닮았지만 말이다.20세기에 시작해 십수 년을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지낸 나도 알고 나름 친하게 지냈다고 (나혼자) 여기는 이름들이 다 뒤로 밀려서 당황하긴 했다. 꽃도 못 피워 보고 강제로 세대 교체 당하는 느낌도 들 듯하다.그럼에도 성찰의 계기로 삼고 더 단단한 좌파 정치인들로 더 성장하길 바란다.
결과표를 주욱 보니, 뽑힌 후보 면면과 별개로(개개인의 자질이나 성향을 평가할 정보가 내겐 없다),강력한 어퍼머티브 액션이 일부 노동운동 고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듯 보인다. 환산 전 단순 득표순으로 하면, 고득표는 대부분 현직 노조 간부, 노동계 출신, 노동계 연루자들이다.
시민선거인단 득표에서도 조직노동 출신자들의 성적이 훨씬 더 좋았다. 선거인단 득표에서 2000표를 넘긴 사람이 10명인데, 1명 빼고 광의의 노동운동(노조, 노동단체 등) 출신이고, 그 중 3인은 민주노총 중집 이상 출신이다.
그런데 이들 중 저명한 일부(특히 고위 지도자 출신 또는 고참들)가 후순위로 밀리거나 탈락했다. 진보정당 운동 경력이 화려한 일부 유명 활동가들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것이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으로 비친 듯하다.다득표를 하고도 뒤로 밀려서 상심도 큰 듯하다.
이런 이번 비례 선출 결과는 정의당 비례선출 제도의 취지/설계와 관계 있어 보인다.최종 순번 정하기에서는외부 선거인단보다는 당원 득표가 더 영향을 미쳤고, 총 득표보다는 전략명부 순위 같은 어퍼머티브 액션 요인들이 최종 당선권 순위에는 더 영향을 미친 듯하다. 아마 일부 노동계 출신자들은 강력한 선거인단 조직으로 제도적 약점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계산했으나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확정된 비례 순번 10번까지의 명단을 보면, 조직노동이 배제됐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노동계 출신/연루자가 과반이다. 역설적으로 정의당의 노동 기반 성격을 드러낸 것이다.
노동계 출신이냐 아니냐보다는 노동계 안에서도 누가 더 외연 확대에 유리한가, 즉 (고정 지지층 밖에서 더 소구력을 가질 수 있는가)가 당원들에게도 더 유력한 기준이 된 듯하다. 당원 득표가 외부 선거인단 득표보다최종 순번에 더 영향을 더 미쳤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점에서 그동안 정의당의 구조와 정치 문화가 의원 중심 운영, 의원 배출 중심 활동주의(선거 득표 활동 중심)에 너무 편향돼 왔던 것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분석이 가지는 함의는 정의당이 좀 더 왼쪽으로 가기를 바라는 당 안팎의 좌파들에게는 더 긴 호흡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대중 스스로 각성하고 정치 지형을 바꾸는 대중운동 전략 없는/배제한 선거중심주의는 현상(현재의 정치의식, 정태적 진단)에 대한 추수/굴복으로 귀결되기 쉽다. 선거중심주의가 위험한 이유다.
앞으로 이런 발상과 구조.정치 문화를 바꾸는 게 쉽지 않을 테고, 당 자체로는 결코 바뀌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이런 선거중심주의 정치가 진보계의 주류로 일방적으로 굳어지는 경향에 도전하고 문제 제기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물론 그 도전은 당내 투쟁에 몰두하거나 단순히 약점을 폭로하는 식의 내향적·선전주의적 방식이 아니라 당 밖의 노조, 사회운동, 좌파들과 연대해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해야 성과가 있을 것이다. 공동전선에 관한 코민테른 초기의 풍부한 논의와 전통을 오늘날 이론과 실천에서 되살려야 하는 이유다.
[꼴불견] 아침에 청와대 김상조가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 안 써도 된다는 말, 김어준이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이자 신천지 사태라고 했다. 환상의 케미다. 정부가 신천지 때려잡는 명분이 바로 감염자, 감염 의심자들이 마스크도 안 쓰고 막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우후죽순 등장한 마스크 무용론 전도사들(그렇다, 요새는 교회 예배가 억제된 대신 마스크 무용론자들이 설교를 하고 다니신다.)이 말하는 "건강한 사람은 안 써도 된다"는 것과 똑같은 생각을 신천지 교도들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감히 나랏님들과 같은 생각을 한달 정도 먼저 실행한 대가로 문재인 정부의 속죄양이 되고 있다.이제 와서 신천지 신도들이 숨었다고 2주전, 3주전에 반사회적 집단으로 마녀사냥한 일을 정당화하려고 하지 마시라. 지금 마스크를 안 쓰면 안 되는 분위기를 만든 건, 정부가 편견과 공포를 조합해 속죄양 삼기 여론을 조장한 탓이 크다. 반사회적 사이비 종교 괴물들이 사회 곳곳에서 바이러스를 내뿜고 다닌다는 공포. 결국 실패한 방역 책임은 신천지에 떠넘기고, 실패한 공포심 관리는 마스크 무용론 설교로 때우고 있다. 사실 나는 이미 1월에 종합병원 입원동에 자주 있었고, 거기에서 마스크 착용의 1차 목표가 자기(환자 가족, 면회객) 방어가 아니라 타인(환자) 배려라고 설명을 들었었고 이해했었다. 지금 같은 감염증 공포 기간에는 마스크 착용 자체가 타인에 대한 연대와 배려의 표시이기도 하다. 나는 나로 인해 당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는. 이건 마치 독감이 유행할 때 독감 환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과 같다. 게다가 마스크 무용론자들은 우리처럼 밀폐된 지하철 타고 축축해지는 마스크 답답해 죽겠어도 손도 못 대고, 20분, 30분을 견뎌야 하는 처지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상황에선 서로 마스크를 써 줘야 한다.그러므로 지금 마스크 착용은 감염 예방만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 공포 확산을 막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최근 마스크 대란이나 신천지 여론에서 대중의 공포가 아니라 정부의 무책임성에 회초리를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시중에서 마스크 구하기 어려워진 것은 이미 설날 연휴 때부터였다. 바이러스 발생과 유포 자체는 자본주의 체제의 영역이다. 물론 그걸 수호하고 확산하는 데 일조해 온 개별 국가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그러나 방역 단계에서부터는 명백하게 국가와 정부 책임이 주된 것이다. 오늘날 국가에 대한 보편적 이론이 돼 있는 사회계약론의 관점에서 봐도 국가의 계약 위반 문제다. 한국 국가는 바로 여기서 또 실패했다. 최근 10년 새로 보면,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모두 실패했다. 그런데 지금은 문재인 정부가 국가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문재인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그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실패의 진정한 징후다. 자신들이 국가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2020.3.5] 1~2월부터 일관되게 마스크 무용론을 펼친 이가 있다면 인정한다. 당시 나는 아버지 병 간호 때문에 종합병원 입원동에 더 자주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빠르게 손소독제와 마스크 사용을 일상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입원병동에서 간호사들의 설명도 면회 가족이 환자에게 뭔가를 옮길 것을 막으려고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감염증 환자들은 아니었으니, 이 설명이면 충분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1월엔 병원 밖에서 마스크 무조건 쓰라고 정부가 겁주는 것에 반감이 컸다. 자기 방어보다 타인 방어 성격이 더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이 확산되는 와중에는 상호간 연대와 배려 차원에서(나는 혹시 모를 나의 위험이 당신에게 가는 걸 원치 않는다는 의사 표시) 병원 생활을 마감한 이후 매일 마스크를 매일 쓰고 다녔다. 2~3일씩 아껴 쓰면서. 왜? 이미 설 연휴 직후인 1월말부터는 약국에서 마스크 구하기가 심각하게 어려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 연휴 지나고서는 신촌 세브란스는 환자에게 주는 마스크도 한계를 두고 통제하기 시작했고, 방문객에게 무조건 나눠주던 것을 중단했다. 1월 31일, 2월 1일 아버지 장례식장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 마스크를 구해 놓으려고 했으나 인근 약국, 다이소 등에서 단 하나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3월에 와서야 미약하고 허술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 그리고는 이제 와서 마스크 무용론 펼치는 건 짜증 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신천지를 때려잡는 이유가 바로 그곳의 감염된 신도들이 마스크도 안 쓰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다는 것 아닌가? 정부 지지자 조직들은 그런 놈들이 문제이지 정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고. 편견과 공포를 조합하며 마스크를 안 쓰고는 안 되게끔 사회 분위기를 패닉으로 유도한 것은 바로 정부 자신인 것이다. 정부 자신의 책임을 묻는 사회적 논의를 막으려고 속죄양 삼기를 한 결과가 그렇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마스크 안 써도 된다고? 그러면 정부가 마스크업체들과 계약 맺으며 생산과 공급을 통제하려는 이유는 뭘까? 정부가 모든 면에서 솔직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한 결과가 바로 "이게 나라냐? "국가는 어딨냐?"는 물음이다. 국가의 실패는 정부들의 실패를 매개로 인식된다. 지금 갑작스레 우후죽순 등장한 거의 대부분의 마스크 무용론자들이 짜증을 유발하는 건 그래서다. 마스크에 관한 말 자체가 아니라.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인용한대로, 솔레이마니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상하러 가던 길에(그 이유 때문에) 죽은 것이라면, 중동에서 미국의 입지 약화를 해결하기가 더 어렵게 보인다. 미국이 이란의 영향력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협력할 만한(그리고 도움을 받을 만한) 우방이자 지역 강국인 나라는 현재 (여러 지정학적 전략가들이 지적하듯이) 터키 뿐이다. 그런데 바로 지난해 가장 미국을 괴롭게 한 나라도 터키였다. 러시아 무기 수입 문제로 말이다. 이라크 정부는 의심스러운 구석 천지이고, 터키와 협력이 삐끗삐끗한 상황에서 사우디마저 흔들린다면? 미국은 세계 1등 국가 지위를 천명하려고 스스로 이라크 후세인 정부를 붕괴시킨 대가로 자신이 중심축이 돼 관리하던 중동 내 세력균형을 무너뜨렸다. 지금 오바마와 트럼프 정부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어느 경우엔 미국이 힘의 균형을 관리하면서 갈등 억지력을 발휘해 왔다는 부분적 측면에서 어떤 개혁주의자들은 중동이나 동북아에서 미국의 축출이 오히려 통제 불가능한 불안정을 낳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상황이 불안정해질수록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를 약화시키려고 한다.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관점이다. 이런 사고는 각각의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반란, 계급투쟁도 함께 혼란의 변수로만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없다고 해서 나날이 위기로 내몰리는 세계자본주의를 관리하는 문제를 두고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갈등이 격화되지 않을 리가 없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 체제의 본성이다. 불안정은 세계자본주의의 본성 때문에 위로부터 심화될 것이고 아래로부터 이에 맞서는 운동이 필요하다. 미국의 약화가 곳곳에서 억제된 내부 반란의 힘을 풀어놓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가령 2011년 아랍 혁명은 경제 위기와 미국의 약화를 배경으로 친미 국가들에서 시작됐다. 혁명들은 이내 비친미 국가로 번졌다. 지금 시리아의 인도적 재앙을 미국이 약해진 탓으로 돌린 순 없지 않은가? 물론 터키, 시리아, 이란 등에서 미국의 일부 공백을 대체하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개입을 빼놓을 순 없다. 그들도 악독한 제국주의 국가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달라진 상황과 조건, 국가 역량상 미국이 하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어떻게 약화되느냐에 따라 이 나라들이 받아들일 교훈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장차 자본주의적 위기와 불안정(경제 위기, 지정학적 불안정, 생태 위기 등)을 해결할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당장은 그것이 미국의 이란 공격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 돼야 한다. 당연히 이는 한국 정부의 파병에 반대하는 것을 중요한 구호로 삼을 것이다.
촛불 염원으로 불리는 진보 염원을 차곡차곡 배신해 온 결과다. 조국은 그 배신을 위선으로 감춰온 게 드러나는 계기, 즉 지지율 하락의 방아쇠인 것. 그런데도 문재인 청와대는 "Go" 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왼쪽만이 아니라 오른쪽에서도 그간의 지지층이 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마치 개혁 추진 때문에 역습을 받는 듯 꾸민다. 중도 정부가 좌우의 불신을 받는 국면으로 진입했으므로 당분간 현 정부의 정치 위기는 경제 상황 악화와 함께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여권발 위기에서 한국당이 곧바로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무당층이 증가한다. 우파의 사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촛불 여파(반한국당/반우파 정서)가 반작용하는 것이다. 결국 공식정치 전체가 정치적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다. 날로 뚜렷해지는 경제 침체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정 증대와 이 정치 상황이 맞물리면, 각 정치세력의 갈등은 더 증폭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진보진영 안에 민주당vs.한국당 식의 진영논리가 자리잡고, 또 완강히 버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이다.(9.20)
하나의 서사가 강력하게 구성됐다. 거악인 검찰이 의로운 개혁가들을 괴롭히고 포위해 몰락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대표자는 문재인과 조국이지만, 이 서사에 동조하는 온갖 상충하는 세력들이 ‘개혁가’의 범주에 자신을 투영시킨다. 그러나 똑같은 방법으로 벌인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가 바로 이 자칭 개혁가들의 찬양을 받았던 일을 되돌아 보라. 고삐는 그때 이미 풀려있었고. 그 고삐를 풀어준 것이 현 정부였다는 점을 환기해야 한다. 바야흐로 내로남불의 시대다. 검찰이 악이라고 그 상대가 다 선은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 정말 가장 중요한 전선이 모호하고 위선적인 신화적 서사를 추종하는 것인지 모두 따져볼 일이다. (9.26)
[소회?] 대개 숫자가 본질을 이루진 않는다. 하지만 양적 변화가 누적돼 질적 도약을 이루듯이, 어느 숫자를 넘어서면 본질이 달라지기도 한다. 조국 방어 서초동 집회 주최측이 참가자 규모를 터무니없이 뻥튀기한 건 바로 그런 효과를 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말이 실질을 바꾸진 못한다. 그럼에도 ‘검찰 개혁’을 진보적 대중의 화두로 만들기에는 충분한 규모인 것 같기는 하다. 문재인/조국 수호엔 동의하지 않지만 검찰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고, 검찰이 개혁 대상인 건 진실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검찰 개혁에 대해서는 몇 차례 다뤄왔지만 여전히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똥 묻은 개(한국당)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것은 분명히 욕먹을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겨 묻은 개가 (둘 다에게 맞아서) 피 흘리는 개를 비웃는 것이나, 그것에 침묵하는 것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숫자가 실제로 200만이라고 해도 이 운동이 진정한 이 사회의 진실을, 또는 긴급한 진보 개혁의 과제를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6년 10월말의 5만 명은 적어도 4천만 성인 중 과반에 육박하는 대중을 대변했을 것이다. 이 점은 그 운동의 이후 성장과 성공이 증명했다. 태극기 집회의 뻥튀기까지 꺼내서 모욕하고 싶지는 않다. 친문 정치인들은 그렇게하지만 말이다. 가치중립적으로 표현해, 이날 서초동 집회와 청와대 앞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는 반(反)박근혜/우파 기치 아래 모였던 촛불 운동이 진작에 정치적으로 분화했음을 이제서야 입증하는 풍경이었을 뿐이다. 친문 정치인들이 제2의 촛불 운운하는 것은 그 촛불의 상징성, 국민적 대표성을 가져가고 싶어서지만, 그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촛불의 분화는 계급정치적 분화이기 때문이고 그것은 이 사회의 근본 분단선이다. 그 집회가 이 더러운 사회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는 깊은 불만과 분노를 털어놓는 광장을 마련해 주는가? 그런 전망과 영감, 광화문 광장에서 모두(내용은 동상이몽이었을지라도) 느껴봤을 가슴 벅찬 희망 같은 걸 주는가? 3년 전 시작된 촛불에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는 비루한 삶들이 촛불로 달라질 수 있냐고 ‘촛불 참가자로서’ 물었다. 지금 그 광장에 어떤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런 회한을 참가자로서 털어놓을 수 있는가? 아빠 찬스, 엄마 찬스 화려한 조국 일가를 지키는 집회에 김용균과 김태규와 이민호의 자리가 있을까? 있더라도 그건 침묵의 공존일 것 같다. 진영논리가 판치는 상황에서조차 이런 이의 제기가 소수의 마음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소리를 내야 공명이 생기는 것이고, 공명은 그렇게 키워가는 것이다. 되찾을 것만 있고 빼앗길 게 없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진실이 똥 되는 세상에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9.29)
기레기 담론이 기성 언론의 편향성과 왜곡에 대한 반발과 진실 추구보다는 각자 자기 진영에서 생산하는 소위 가짜뉴스 유통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인 점이 거듭 증명되고 있다. 정권 초 잘 팔린 조모 교수의 책을 보고 이미 지적한 바 있는데, 진영 내 집단 확증편향 현상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혹세무민하는 정치가 판을 치는 것을 보면, 20년 전 이른바 한국 초유의 경제공황을 배경으로 언급되던 "세기말" 현상이 떠오른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자본주의라는 현 사회 구조에 더 적응해 살라는 압박은 갈수록 커져 가는데, 자본주의는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대안없음의 한 현상으로 보인다. 기성정치 틀 안에서 기성정치를 부정하고 격하게 저항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가짜뉴스와 음모론만큼 편리한 자기정당화 수단이 어디있겠는가.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 자기 기만이지만 말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현상은 미개한 이성에게 깨우침을 주겠다는 식의 엘리트주의적 계몽의 헛된 언사보다는, 실제로 체제를 허무는 운동, 즉 체제를 수호하는 기성정치 바깥에서 대중적인 정치 대안을 건설함으로써, 그것이 현실적 대안임을 보여 줌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현실의 여러 정치 쟁점들을 외면해서는 건설될 수 없다. 주어진 현실(역사적, 정치적 등등의 조건) 속에서 주어진 자원들을 동원해 건설돼야 하므로. 이런 대안은 계급투쟁 속에서 발전할 것이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심이자 전위일 것이다. 우리의 말과 글은 그것을 건설하기 위한 수단이다.(10.6)
낮에 이 인터뷰 보고, 기사 제목이 준 인상과 기자의 강조가 다른 점, 왜 이걸 지금 보도하는가, 이 보도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에 대한 확신이 엿보이지 않길래 한겨레가 무리수를 던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줄줄이 나오는 얘기들이 그렇게 흘러간다. 암튼 아직은 신중하게 지켜 본다만... 어느 편이든 어설픈 모략 말고 진실!(10.11)
여권발 조기 명퇴 출구 전략은 진작부터 나온 얘기였는데, 솔직히 이렇게 빠를지는 몰랐다. 그만큼 위기감이 커진 듯하다. 이제야! 진보·좌파에겐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다. 그들(정부) 스스로 오만하게 오판한 결과이기도 하고, 우파의 반사이익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계급적 관점이 중요하다. 문재인 개악 시도에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출 때다.
[장정일 비판]
1. 좌파진영이 대체로 여러 종류의 양비론을 펴며 서초동 집회를 지지하지 않은 것에 서초동 주도자들이 불편해 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걸 장정일의 막말로 알 수 있다. (태극기만이 아니라, “좌좀” 용어도 우파에게서 뺏으려나 보다.) 2. 그런데 정작 정공법이 아니라 허수아비를 때린다. 조직된 좌파들이 공식 입장에서 서초동 집회를 파시스트라고 부른 바도, 검찰 개혁을 정치가 아니라고 한 적도 없다.(그것이 노동계급 정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지. 이 정치에서 검찰은 개혁 대상이 아니고 해체 대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가 온존하는 속에서 검찰만 해체될 수 없다는 데에 서초동파 정치의 비극이 있다.) 3. 결국 장정일이야말로 오늘날 ‘계급/노동계급’과 ‘사회주의/혁명’에 관한 말과 실천이 정치가 아니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러니 개개인들이 좀 거친 방식으로 표현했더라도 서초동에서 김용균 등을 찾을 수 없다는 취지의 언사들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4. 정치란 국가권력에 관한 것이므로, 그가 좌파의 정치를 정치가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좀비라 부르는 건 너희는 권력을 쥘 가능성도 자격도 없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가 불러오는 위기의 깊이와 규모, 범위는 “혁명의 현실성”에 기초한 정치만이 현실적일 것임을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은근히 일러 준다. 5. 신경질이 아무리 나도, 죄없는 애먼 좌파 탓 하지 말고, 대통령 탓을 하시라. 버티지도 못할 임명을 하고, 사퇴 당일 검찰도 개혁의 주체라고 말씀하신 분이 누구시던가? 이번 서초동 동원은 좌파가 지지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수의 의제를 대변하지 못하는 운동이라서 패한 것이다. (10.17)
조국 사퇴 이후 국면, 우파가 움메 기 살어 하지만, 여전히 중도층의 반한국당 정서 벽이 완전히 허물어졌을지 불확실하다. 회복세인 건 분명하다. 문재인도 재계의 지지를 받아 흩어지는 중도층을 붙잡으려고 한다. 재계는 그 대가를 원하는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이번 주에는 ‘한국당 집권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집중적으로 살펴 봤다.(10.17)
한 국면에서 여권이 낭패를 입은 것이지, 사회적 세력균형이 보수파 우위로 바뀐 것은 아니다. 괜한 공포심, 헛된 동일시/차악론, 무용한 오불관언, 모두 답이 아니다.
[참새와 허수아비] 정태석 교수의 연재 글을 다 읽었다. 도덕정치가 진보·좌파의 덫이 된다는 형식적 결론만 보면, 별로 차이가 없다. 사실 우리가 계속 해 온 얘기. 개인주의적 도덕주의가 강화되면, 오히려 정치가 위축되고 편협해지며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가령 혐오 반대를 내세우는 진영이 이율배반적이게도 연대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번 국면에서 공교롭게도 그런 교조적 "도덕정치"를 그동안 앞세워왔던 진영은 대체로 침묵했다. 이분법 진영논리 국면에서 진보 쪽에서 침묵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다들 잘 알리라. 그래서 드는 가장 큰 의문은, 도대체 정 교수가 그토록 규탄하는 도덕정치를 앞세운 진보좌파, 진보를 분열시키고 정의당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파워있는 진보좌파는 누구냐는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진보의 대표 3조직이 모두 조국 편을 들었다. 지도자들이 대의명분도 없이 자기 대중의 생각과 정서 대변을 거부했기 때문에 위기가 생기고 분열을 겪은 건 진보·좌파진영이었고, 분열의 책임은 조국 편을 든 쪽 때문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민주노총 상층의 침묵과 암묵적 투쟁 자제는 너무 문제적이라서 눈 밝은 사람들끼리는 더 말할 꺼리도 못된다. 정의당 내에서도 청년 당원 중심의 조국 비판 목소리가 지도부의 태도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성인 좌파 리더들이 목소리를 보태지 않았다. 민중당은 조국을 측면 지원하며 침묵했고, 이에 대한 일부 당원 개인들의 불만은 그저 목소리로 끝났다. 조국 문제에서 문재인과 조국에 비판적이었던 쪽을 보면, 노동당이 가장 먼저 조국 임명 철회 입장을 내놨지만(임명 뒤엔 사퇴), 거기에 조롱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고, 현수막 걸기와 선전전 성격의 기자회견 정도 했을 뿐이다. 변혁당은 비판적이었지만 큰 열의는 없었고 조국 사퇴 이후에 괜찮은 글을 내놨다. 나머지 단체들은 주목할 만한 입장을 논란 한복판에서 내놓은 게 별로 없다. 지배계급끼리 다투는 것에 끼지 말고 투쟁이나 잘하자는 분위기가 일각에 있었고, 이는 정 교수 등이 오히려 싫어하는 전투적 조합주의의 잔재일 것이다. 노동자연대가 지속적으로 논평을 냈지만 정 교수가 말한 그런 영향력이 발휘됐다는 증거는 없다.(우리 같은 아직 작은 조직이 논평만으로 그런 영향력을 내는 건 특별한 국면 아니면 힘들다. 그때조차도 행동과 연결시키는 제안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생겼다면, 이토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노연은 좌파적 양비론을 지향해 폭로에 초점을 두고 임명 반대나 사퇴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권력형 부정이 확인되기 전엔 우파의 공세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장문의 격문으로 정 교수가 규탄하는, 여러 저명한 지식인들이 이 글을 공유하며 동조 규탄하는 정체불명의 진보·좌파는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아니라면 이 글은 예방주사인가??? 그렇게 보면, 이 글이 말하는 연대(의 범위)와 정치의 의미가 분명해지기는 한다. 또한 정 교수와 그 동류들이 도덕정치 힐난을 통해 얻고자 하는 도덕으로부터의 자유의 의미도 말이다. 진보정당이 지지기반인 노동계급 정치의 도덕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지금보다 더 체제의 일부가 되는 것을 뜻한다.(10.20)
증명서도 안 내고 병에 걸렸다는 언론플레이만으로, 증거인멸 혐의까지 있는 인물이 검찰 조사를 살살 받고 구속을 피한다면, 참으로 대단한 인권 수사로 기록될 것이다. 심지어 낸 서류 자체는 가짜 서류에 해당하는데 말이다. 우리 같은 이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막강한 변호인단이 머리를 써 준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참으로 여러 의미에서 대단하다. 구속을 바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늘 예상보다 한 수준 높은 초법적(법 위에 있는) 특권 행각과 사고 때문이다. 나는 정말 재벌이나 이렇게 해도 통하는 줄 알았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일하다 목숨을 잃어도 산재 인정 하나 받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는가? 온갖 조사 결과와 증빙 서류를 갖다 바쳐도 회사에서, 공단에서, 법원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런데 이따위 초법적 특권 행태를 감싸는 게 검찰 개혁이라고?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10.20)
신산업 육성을 위한 친기업 지원 강조나 입시, 검찰개혁 강조는 많이 보도하는데, 그것 말고 내 눈에 딱 띈 것 중 하나는 이것. 노동자들은 "을들의 반란", "갑을 개혁" 말하는데, 문재인의 "갑을 개혁"엔 노동 문제가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일 뿐. 사실 갑을 담론에 한계가 있긴 하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대등하게 '공정거래'하자는 것이니까 자본주의의 임금노동 착취는 다루지 않는 담론이긴하다.
그나저나 공수처 신설을 엄청 강조했는데, 공수처로 기무사 수사하자는 말은 안 한다. 그러면 찬성 여론이 올라갈 텐데 말이다. 법 조문 들여다 보니, 공수처법이 규정한 고위공직자범죄에 내란 범죄 따위는 해당 사항 없다. 그렇다면, 이제 기무사는 누가 수사하지?? 윤석열도 못 건드리고 수사하다 만 기무사. 경찰이 할 리도 없고 말이다. 고위층 비리 수사라니 나서서 반대할 것도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찬성하며 목매는 것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노동계급이 대중적으로 강력하게 나설 때만 지배계급의 권력형 범죄들에 대한 수사나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을 기무사 계엄 검토 폭로처럼 보여 주는 일도 없는 듯하다. (10.23)
최근 선택적 신속함과 선택적 침묵 사이를 왔다갔다하던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가 여야 노동개악 합의 처리 시한 합의 문제에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정의당, 민중당도 묵언 수행 중이다. 여야가 비밀 합의를 한 것도 아니고 공개 합의하고 언론에도 공표했는데 이토록 모른 척을. 침묵이 길어지면 의도로 해석된다. 이런 유감스런 현상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민주노총의 시간이 시작돼야 한다고 보는데, 민주노총 등 진보계 대표 3조직에게는 아직도 조국의 시간이 지속되고 있나 보다. 제 노동단체들의 공동 성명(입장 표명)을 지지한다.
1.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상류층 학부모의 품앗이 프로그램인 것이 드러났다. 꼭 청문회 탓은 아니지만, 동양대 총장에게 조국이 직접 전화한 일은 쇼킹했다. 조국 의혹에서 분노의 포인트가 민주당, 한국당 가리지 않은 그들만의 리그 실체와 속칭 강남좌파 지식인의 위선에 있었는데, 그 정서의 정당성이 재확인됐다. 2. 청문회에서 한국당의 화력이 약했던 건 무능한 집단임도 드러냈지만, 믿는 구석은 있었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검찰 기소로 현 정부의 정치적 위기는 본격화됐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의 실체가 드러났다. 검찰의 중립성이 뭘 의미하는지도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산 권력을 수사하라고 고무한 현 여권이 윤석열을 비난하는 것도 우스워 보인다. 조국의 안대로라면, 공수처가 할 일이다. 그런데 그걸 지금 대검이 하는 것은 공수처에 반대하려고 하는 일이다. 이 갈등은 공수처 신설이 어떤 성격의 개혁인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공평한 무기이자 실제로는 덮어주기, 가정해 보건대, 공수처가 검찰을 견제했다면 검찰이 이런 수사를 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게 뭘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한국당 김진태는 이제 껍데기(허명)만 남은 조국의 좌파성까지도 삭감하고 순치시키려고 했다. 사실 청문회 같은 제도가 하는 게 그런 일이다. 3. 민주당과 조국 측의 준비도 한국당과 마찬가지로 부실했는데, 압권은 딸의 진단서 요청에 대해 딸의 페북 "돼지됐나봉가" 캡처 글을 자료로 낸 것이었다. 차라리 내지 말지, 기본 수준이 의심되는 이런 태도는 지금 청와대와 친문의 의지가, 현재의 정치적 양분 상태를 총선 때까지 지속하겠다는 뜻인 듯하다.(대선도?) 즉 온갖 세력에게 민주당이냐, 한국당/검찰이냐 하고 줄세우기를강요하는 방향으로 몰고가려는 것 같다. 이미 지적했듯이, 한국당은 진작에 그러고 있었고. 4. 나경원과 한국당이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식으로 하는 것도 웃기지만, 친문진영 고위 리더들이 공직자의 도덕성 검증 문제에서 드러낸 이중성, 멀리 갈 것도 없이 조국과 이재명에 대해 보인 사악한 이중성은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다. 그리고 정의당에 대해서는 반론할 수 없는 고인을 팔아서 비난하는데, 좀 역겹다. 5. 민주당과 한국당, 신 여권과 구 여권이 조국 문제로 한국 사회를 반으로 갈라 싸우며, 사회의 모든 세력에게 조국 임명이냐 아니냐로 줄서기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많고 많은 사람들을 열받게 만든 것이 바로 신 여권, 구 여권 모두 한 성채에서 살고, 그때문에 계급 문제에서는 이해관계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조국 임명 찬반 양극화는 정당한 계급적 분노를 표현하는, 즉,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사장시켜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다운 책략들이다. 6. 따라서 노동계급은 이 강요된 줄서기를 거부해야 마땅하다. 그것은 조국 임명 찬반 문제로 어느 한편에 서는 게 아니라 당면한 노동개악 투쟁에 계급 불평등 현실의 폭로, 대안 정치를 결합시키려 노력하는 것, 즉 계급정치를 전진시키는 일이 과제라는 뜻이었다. 민주노총, 정의당, 민중당 지도부 모두 그 과제에서 실망을 줬다. 정의당이 장고 끝에 오늘 내놓은 입장은 양쪽에서 다 욕먹기 딱 좋다. 필요한 길이 당장은 외로운 골목길, 험한 오솔길처럼 보였어도, 그 길을 가려고 했어야 하고, 그렇게 목소리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했다. 자충수다.
7. 공정 경쟁이 아니라 원천적인 기회의 평등 문제다. 문재인이 말하는 기회의 평등으로는 결과의 정의는 불가능하다. 정의로운 결과가 가능해야 기회가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려고 촛불 들었나 하면서 열받는 급진적 청년들에게는 마르크스주의 정치, 사회주의 정치에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고 호소하고 촉구한다. 8. 검찰 기소 뉴스까지 보고, 이번에 관련 주제로 쓴 3편을 다시 살폈는데, 좀 뒤늦긴 했지만, 그 시점에서 사태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정치적 맥락과 추이를 잘 짚은 듯하다.
지난주 기사이고, 애초에 개인 사정으로 좀 늦게 나온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몇 가지 단상을 추가해 본다.
1. 어제 간담회를 봐도 서민층 청년들을 허탈하고 열받게 만든 문제에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는 본질을 인정했고, 그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은 회피했다. 2. 기레기 얘기가 나오는데, 오후 1시에 공지받고 3시30분에 시작했는데, 오히려 언론사들이 예고되지 않은 임의의 퍼포먼스를 생중계까지 해 준 것이야말로 조국 측 편의를 너무 봐 준 게 아닌가? 진행도 심문식 질문(문답을 반복 진행하며 답변에서 문제점을 끄집어내거나, 답변에 대한 반박 증거 제시하기)이 불가능해 뭔가를 끌어낼 수 없고 해명자에게 유리한 방식이었다.(활동가라면, 대의원대회 같은 데서 질의 시간에 집행부를 추궁하는 질문을 하면서 부딪치는 그런 문제.) 3. 조국 관련 기사가 수십만 건이고 황교안과 비교해 부당하다는데, 적어도 그 절반은 조국 옹호일 텐데 과장스럽다. 그만큼 현정부가 중요한 인물로 부각시켰기 때문 아닌가? 사실 황교안과 비교하는 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4. 오히려 과소대표되는 것은 수백만 노동계급·서민의 허탈감과 분노다. 공식정치에서든 언론에서든 이들의 불만이야말로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5. 요즘 기레기/가짜뉴스 담론은 기성매체들의 계급적 보수성에 대한 비판 측면보다는 매체 환경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새 매체와 기성 매체 간, 즉 정치세력 간 경쟁에 (필요에 따라 선호하는 매체의 신뢰도를 높이려고) 활용되는 성격이 더 강한 듯하다. 물론 야밤에 문 두들기는 그런 행태를 옹호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조국 논란의 본질이 거기에 있는가? 6. 계급 문제로 조국을 비판하는 건, 출신 따져 사람들을 단정하는 천박한 노동자주의(기계적 유물론)가 아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강남좌파’는 바로 마르크스의 사상적·실천적 동반자 엥겔스였다. 여기서 강남좌파 얘기가 나오는 건 계급 문제가 드러나면서 위선도 동시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천박한 개념 사용은 유시민처럼 서울대·고려대 학생 집회를 특권층의 불평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입장들이라고 본다.(그러면서도 권력자 편에 서서 마스크를 문제삼는 야비함을 보라.) 7. 문재인이 취임사에서 말한 기회의 평등은 경쟁에 참여할 기회의 평등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다른 측면에서 근본적인 기회 평등을 말한다. 자이실현의 기회가 평등하려면 그것을 위한 자원(과 자원 배분 과정)에 접근할 권한 자체가 평등해야 한다.(그것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일부다.) 서민층 사람들이 조국 딸 문제가 합법이라도 분노스럽다고 하는 건, 본능적으로 이 점에서의 불평등을 문제삼는 것이다.(의식하든 못하든, 뭐라 표현하든) 그러니 조국을 옹호하는 이른바 진보적 자유주의 명사들이 이 점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또는 직시를 회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마르크스가 혁명적 공산주의로 내딛은 첫발은 독일 슐레지엔 직공 반란에 대한 옛 동료들의 경멸적 태도와 결별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대중의 현재 의식과 삶을 덮어놓고 찬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추수주의가 대중의 의식이 발전할 가능성을 무시하고 현 상태에 머물도록 현혹하는 것이라며 경멸했다.
마르크스는 현재의 노동계급이 가진 온갖 낡은(후진적) 편견과 분열 상태를 비판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노동계급 대중의 지적 역량과 해방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비록 현재는 잠재력일지라도) 마르크스는 그래서 즉자적 계급과 대자적 계급을 구분했고, 후자로 가려면 그들 스스로 투쟁에 나서야 하고, 그럴 경우에만 필요한 계급의식을 쟁취할 수 있다고 봤다. 이 계급의식은 당연히 분열된 노동계급을 혁명적(해방적) 계급으로 단결시키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그가 관여한 조직들에서 그가 반복해서 핵심 기치로 포함시킨 것은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였다.
마르크스는 슐레지엔 직공이 고용주들에게 일으킨 반란을 지지했고, 찬양했다. 그리고 그것이 노동계급이 장차 혁명의 주도적 계급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그의 옛 동료들은 반대로 몇몇 약점들을 잡아서 슐레지엔 노동자들을 비난했고, 무지하고 무도한 대중이 사회 변화의 선두에 서서는 안 되는 증거로 삼으려고 했다.
마르크스는 혁명적 공산주의자로 변모하는 데서, 슐레지엔 직공 반란 지지 문제를 놓고 옛 동료들을 격하게 비판하고 결별한 것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물론 이 전환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선진적인 노동운동, 사회주의운동, 정치경제학, 정치철학 등을 접하고 무엇보다 엥겔스와 만난 것이 기여했지만 말이다.
영국과 중국을 가리지 않고 경제 급성장 과정(과거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에서 홍콩 노동계급에게 강요된 희생은 만만치 않았다. 홍콩 노동계급은 단 한 번도 행정부 수반을 직선으로 선출해 본 적이 없다.
이런 곳에서 노동계급이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고 희생을 계속 강요하는 정부에 비판적이고, 현 수반(행정장관 캐리 람)의 퇴진과 직선제 요구를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중국 정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간단히 이 거대한 대중운동을 미국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놀라운 주장들! 한국의 민주화 시위도 미국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갖고 있었고, 정확하게 87년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는 하고많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 중에서도 미국식 형태를 요구한 것이기도 했다. 이것도 미국의 사주일까?
이런 황당한 소리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것을 보고, 마르크스는 어떤 생각을 할까. 사실 바로 이런 일들을 보고 마르크스가 말했던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계급사회에서는 민주주의조차도 계급통합적이지 않으므로 계급적 성격을 따져야 한다는 것은 옳다. 문제는 그 성격을 판단하는 게 누구냐는 것이다. 그 판단 주체는 중국공산당도 아니고 미국 첩보기관들도 아니다. 그것은 홍콩 노동계급의 자주적 행동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초보적 이데올로기일지라도 저항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편에 서는 것. 그것이 심층적이지만 또한 단순한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출발점이다.
권석천 칼럼은 이른바 진보적 자유주의 시각의 전형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이 정부의 이데올로기와 공명이 있었다고 본다. 이번 칼럼도 문재인 정부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고언인 듯하다. 물론 친문 진영이 귀 기울여 들을 것 같지는 않다. 여야 모두에게 조국 임명 문제가 총선과 정권재창출을 위 한 권력 투쟁의 최일선이 돼 버렸다.
그래서 이 칼럼의 지적대로 조국 쟁점은 "블랙홀"이 돼 버렸다. 답정너 식 확증편향과 요설이 난무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를 통해 자기들 의제를 해결하려고 문재인을 지지해 온 진보측 일부도 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있다. 덕분에 이 쟁점에서 운동은 분열해 있다.
조국 쟁점의 핵심 진실은, 상류층 집단이 자신의 계급 지위를 물려 주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거래를 벌이면서도, 서민들에게는 도덕과 준법을 설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친문측 오피니언 리더들의 핵심 옹호 논리는, 누구나 신분 상승 또는 유지를 위해 허용된 제도 안에서 노력할 권리가 있고, 또 누구나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 않냐는 것이다.
계급 불평등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무감각한 이 논리는 그저 이 친문 진영의 인적 기반이 평범한 서민층이 아니라는 것만 드러내고 만듯하다. 사실 누구나 이재용이 되고 싶어 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그래서? 뭐? 그건 박정희, 전두환 때도 보장됐던 권리다. 합법이라고? 서민은 그래서 더 열받는 것이다. 계급간 소통의 벽만 확인해주는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게 죄인가? 이명박근혜의 가장 큰 죄가 (노동개악 같은 계급 문제가 아니라) “불통”이라고 해 온 건 민주당 인사들이었다.
결국 서민층 사람들이 민주당에게 묻는 건, 당신들이 자한당과 다른 게 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한당은 되는데 왜 우리는 안 되냐고 묻는다. 공직의 자격을 묻는데, 상류층 개인들의 관행을 옹호한다. 정치에 문외한일수록 자한당의 기득권 정치인들과 민주당, 친문 셀럽들의 뻔뻔함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지는 이유이다.
그래서 피장파장 프레임으로 갈수록 우파에게 유리해진다.(이것의 달인은 박근혜다. 이명박의 민간인사찰 폭로 나오자 박근혜가 자기는 이명박은 물론이고 노무현한테서도 사찰당했다며 물타기해서 우파 단결을 유지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지지층을 분열·와해시키는 민주당의 프레임은 박근혜에 비하면, 아마추어다.)
이제 검찰 수사로 조국 문제는 또 새로운 국면이 됐다. 당장은 조국에게 불리해 보이지만, 합법/불법 문제로 프레임이 옮겨지면 어쨌거나 방어할 전선이 좁혀져 덜 불리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금 같은 국면에서는 검찰 수사가 어디로 불똥을 튀길지 미리 알기가 어렵다. 더 확실한 건, 검찰 수사 개시로 말미암아 조국의 임명은 기정사실이 됐다는 것이다.
조국 이슈는 당분간 계속 "블랙홀"일 듯하다. 저들에게는 권력투쟁 이슈라서 그럴지 모르겠지만, 서민층 청년들에게는 계급 불평등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여야 모두 그것을 해결할 의지와 역량을 못 보여 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계급 문제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 이번에도 건져야 할 교훈인 듯하다. (8.27)
물론 개중 좀 민감한 인물들이 문제는 “(경쟁) 기회의 평등(과 경쟁의 결과는 각자 감수)”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이라고 뒤늦게 고백했다. 여러모로 뜻밖이다. 결과의 평등 추구론을 (제3의 길 노선에 입각해) 반대해 온 게 친노들이었기 때문이다.(“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가 바로 이 제3의 길 노선의 압축적 표현) “결과의 평등”론은 전통적으로 분배를 중시한 사민주의 담론이다.
지금 국면에서 결과의 평등이 문제라는 담론은 제3의 길식 기회 평등론보다는 진일보하지만, 원천적인 기회의 불평등(권력의 원천, 근원적 평등에 접근할 기회) 문제는 덮어버리자는 취지로도 들린다. 그러나결과의 평등도 필요하지만 계급 문제는 근원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기회의 평등(마르크스주의적으로 표현하면 생산수단의 통제에 접근할 기회의 평등) 문제다.
결국 기회만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중요하다는 최신 담론은, 진일보와 함께, 결과에서 좀 양보할 테니, 원천의 기회 문제(즉 조국의 위선과 합법적 특권 문제)는 덮자는 것이다. 얄궂게도 자신들의 실체가 폭로돼 위기에 몰리자 진일보한 담론을 내놓고 양보하겠다는 것이다.(8.29 본문에서 따로 빼서 수정)
👉 성명: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한국 배치 반대한다 — 문재인 정부는 미사일 배치에 협조해선 안 된다 wspaper.org/m/22535
우파 지배자들은 안보가 불안할수록 기댈 곳이 미국 뿐이라고 본다. 그러니 미-일-한 위계 서열을 받아들여 안보동맹으로 가는 게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우파는 미국이 일본을 택하고 한국을 버린(또는 경시한) 역사적 선택이 또 반복되는 걸 두려워한다. 민주당과 자유주의자들은 우파의 공포까지 동의하지 않지만, 현실 인식이 크게 다른 건 아니다. 다만, 한국 자본주의의 달라진 위상, 세계적 정치·경제의 세력균형 변화가 한국와 외교·안보에 반영돼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우파가 모험주의라고 비판하는 것)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미국과 일본 경제와 서로 통합돼 성장해 온 과정을 되돌릴 생각인 건 아니다. 일본의 보호무역주의적 경제 보복이 한국 자본주의에 위협적인 이유인데, 그것은 또한 경제 ‘침략’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세 경제 모두 최근 20여 년 간 중국 경제와도 통합을 해 왔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가간 경제적 비중과 균형이 크게 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간에 역전된 것 말고 위계 서열이 뒤바뀐 것은 또 아니다. 말 그대로 옛것은 갔는데, 새것은 오지도 않고 오기도 힘든 시절인 것이다. 불확실성이 특징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제는 그냥 이런 불안정과 갈등을 일상으로 여기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시작된 듯하다. 이제 좌파에게도 일국적 관점으로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는 시대다. 한국 좌파에게 혁신은 선거주의 도입이 아니라 국제주의와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실천론을 발전시키는 것인 듯하다.
길지 않은 글인데, 깊이가 상당해서 곱씹어 가면서 읽었다. 친구들에게 일독을, 이왕이면 숙독을 권한다. 얼마 전에 이 주제로 필자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진가를 알지 못해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
정체성정치가 차별 문제를 개별화시킴으로써 문제를 차별을 자아내는 구조에서 개인의 주류 질서 편입 문제로 바꿔버린다고 비판하고 그 메카니즘을 요약한 것은 탁월하다. 부족한 나로선 좀 더 설명과 예시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말이다.
차별을 자아내는 사회 구조를 변혁하는 것은 피억압집단이 체제에 맞서 단결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문제가 개별화되면, 체제 편입 요구가 정당화되면서 미시적 차별로 쟁점이 협소화된다. 이렇게 되면, 노동계급이나 하층민이 아니라 중간계급 전문직 계층의 개인주의적이고 성공 지향적인 세계관과 닮게 된다.
이에 비춰 보면, 최근 차별 문제에 대한 한국 진보진영의 담론 지형도 후자의 경향이 우세해져 왔다. 차별을 구조에 대한 집단적 저항에서 개인들이 사용하는 혐오 표현의 문제로, 개인의 태도(attitude) 문제로, 미시적으로 해결할 (“내 삶이 달라져야 ~~”) 문제로 국한시키는 경향.
쉽게 설렁설렁 볼 일 은 아니다. 좌파들도 이런 정치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체제의 주류 질서에서 인정하고 편입되는 것, 애티튜드, 미시적 해법 등을 중시하는 것에서 우리는 중간계급 전문직 세계관의 자유주의적/개인주의적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좌파 내부의 이데올로기도 굉장히 혼란스럽고 모순된 상황인 것이다.
극단적인 파당 정치를 뜻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는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수 년 전, 미국의 의회 양당 체제를 묘사하며 쓴 표현인데, 한국의 의회 정치도 20년 넘게 날카롭게 분열해 있다. 한국의 정치체제는 박근혜 탄핵으로 정당성을 부분 회복했지만, 분열은 더 깊어졌다. 애초에 불안정했던 한국의 의회(민주주의) 체제는 탄핵 이전에 구성된 채로 남아있기 때문에 모든 세력에게서 (각자의 이유로) 불신의 대상이다. 게다가 의회 바깥에서 두 당에 대한 노동계급의 반감도 만만한 상황은 아니다. 일종의 정치 양극화가 이런 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민주당이 우경화하면서도 자한당과 화합하지 못하는 이유이고, 자한당이 비토 정치에 더욱 몰두하는 배경이다. 이런 혼란기에는 적극 지지층에 더 충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인데, 그 결과 정치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 일종의 악순환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 경제적·지정학적 위기가 판을 흔들고 있기 때문에 의회주의적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이다. 상황을 종합하면, 좌파는 종파주의를 경계하면서 계급투쟁에 중점을 두고 사회주의 정치에 대한 청중을 (소규모라고 실망하지 말고) 늘리려고 해야 할 때로 보인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13년 만에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배상 대법원 판결을 받아 내고 소감을 말했다. “혼자만 남아 슬프고 서럽다.”
양승태 대법원이 대미·대일 관계를 고려해 판결을 일부러 질질 끄는 동안 피해자 동료들이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양승태 체제 아래서 벌어진 사법 농단의 본질이 (삼권분립 훼손 같은 권력 구조 문제가 아니라) 국가기관들이 사법권을 이용해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임을 이보다 더 잘 보여 주는 사례도 드물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이 사실상 고의적 행위이자 범죄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문재인이 임명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로 구성이 일부 바뀐 새 대법원 아래에서도 구 여권과 연계된 사법 농단 수사가 그동안 심각하게 방해받았다. 법원의 위상과 권력을 (외풍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동류 의식(계급 의식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에서였을 것이다. 법원은 대놓고 재판 개입 증거를 인멸한 유해용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또한 주거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양승태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했다.
그러다가 결국 강제징용 판결 사흘 전인 10월 27일에야 임종헌이 구속됐다. 임종헌은 법원 내 요직인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지낸 자로, 사법 농단의 실무 지휘자로 지목받아 왔다.
임종헌은 사돈의 회사인 세종호텔 노조 탄압 판결에도 도움을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원본][원본 정보]ⓒ조승진
그동안 ‘합법적’으로 자기 방어를 해 오던 법원도 임종헌 구속영장 기각까지 하는 건 무리라고 본 듯하다. 여론 악화 때문에 특별재판부라도 도입되면, 사법권을 독점해 온 법원 권력이 손상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법까지 만들어 설치될 특별재판부가 양승태 일당을 무죄 판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임종헌 구속이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의심이 크다. 이른바 사법권 독립과 권력의 추악한 실체를 지난 몇 달 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비공개로 조사한 판사들이 80명 남짓이라는데, 이들 다수가 임종헌을 책임자로 지목했다고 한다. 이는 고위 판사들의 카르텔이 흔들리는 것을 보여 주는 일이지만, 또한 임종헌 선에서 수사 확대를 막자는 공감대가 판사들 사이에 형성된 탓일 것이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면 양승태는 물론이고, 임종헌의 직속 상관인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지낸 박병대·차한성·고영한 등과 각각의 거래 재판에 임했던 판사들 모두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종헌은 구속 나흘째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검찰이 임종헌 구속 기한인 20일 안에 그 윗선인 양승태 등의 죄를 입증해 기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임종헌이 구속됐어도 법원에게는 무죄나 집행유예를 판결할 기회가 남아 있다.
그러나 꼼수일지라도 법원 권력의 핵심부에 있던 인사를 구속한 것은 대중의 적폐 청산 염원이 아직은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뜻일 게다.
애초에 노동자·서민의 거대한 운동으로 전임 우파 정권이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추악한 사법 적폐의 비밀들이 폭로되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요컨대,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이 중요하다. 민주노총의 11월 투쟁이 사법 적폐 청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강력한 반우파 정서 때문에 우파에게 돌파구가 확 열리지는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10월 30일 스스로 공개한 보고서도 자신들이 정권을 잃은 요인으로 강경 대북·안보 노선을 지적했다. 즉, 너무 우파적이라서 지지를 잃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파들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부진을 이용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문재인의 우선회로 실망감이 커지면서 정치적 틈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운동 지도자들은 문재인에게 지지와 협력을 제공할 것이 아니라 그의 우선회에 맞선 투쟁으로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 그래야 세력균형을 더 왼쪽으로 이동시켜 적폐 청산에도 유리하다.
사법 농단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
사법 농단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부당한 재판 거래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국가 권력의 피해자들이었다. 쌍용차 노동자처럼 정부와 사용자의 대량 해고에 저항한 노동자들이나, 유신 독재 피해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 세월호 유가족, 전교조, 진보당 등.
사법 적폐 청산이 노동자·서민층의 정의이고 염원인 이유다.
이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출발점은 재판의 원상 회복일 것이다. 그러려면 재심이나 지연된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돼야 하고, 억울한 구속자들이 석방돼야 한다. 또한 재판이 아닌 불이익과 사찰 관련 문제는 신속히 국가의 사과와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사법 농단 세력을 철저히 수사해 법정에서 강력하게 단죄하는 것이다. 물론 철저한 사법부 개혁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적 단죄로써 지배계급이 함부로 저항 세력을 탄압할 수 없게는 할 수 있다. 피해자 구제는 그 하나다.
특별재판부를 어떻게 봐야 할까?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을 내놓았다. 그 안에 따르면, 대한변협과 이 재판을 맡을 법원(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의 판사들이 자기들 안에서 판사들을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그중 3명을 골라 임명하자는 것이다.
법원 밖이 아니라 안에서 새로운 합의부를 신설하는 형식이므로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파의 위헌 시비의 핵심은 유죄 판결을 목적으로 재판부를 구성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마녀사냥식 여론 재판으로 보이게 하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현행법 하에서도 재판부 기피나 제척이 가능하므로, 양승태 ‘장학생’들에게 재판을 맡기지 말자는 법이 꼭 위헌으로 해석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문제는 사법 농단 고위 판사들에게 유죄를 판결할 수 있느냐다. 대중 다수가 기존 법원을 못 믿겠으니 특별 재판부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확실하게 단죄를 하고 싶어서다.
재판 거래 건으로 검찰에 비공개 출석한 판사만 최소 80명이라는데, 법원의 재판부 무작위 배당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법원 스스로 압수수색·구속 영장 기각으로 판결 의중을 미리 선보이지 않았던가.
노동자들이 법과 법원을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다[원본][원본 정보]ⓒ출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특별재판부 설치 제안은 사법 농단의 계급적 본질을 꿰뚫어 본 노동자·서민층의 불신을 반영한 것이다. 우파가 박주민 안이 특별재판부의 1심을 국민참여재판으로 하도록 한 것에 특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파는 만에 하나 특별재판부가 구성되더라도 확실하게 유죄와 실형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거나, 유죄 판결을 인정하지 않을 속셈으로 지금 위헌 시비를 거는 듯하다.
법원 권력의 일부인 현직 판사들 중에서 선발되는 특별재판부의 판사들은 계급적 압력 속에서 판결하게 될 것이다. 결국 재판부 구성 방식보다는 어느 사회세력의 압력이 더 큰지가 수사와 판결에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법원 개혁?
지난 반년 간 고위 법관들은 대부분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다. 사법 농단이 가능했던 것은 이들과 당시에 정권을 쥔 우파, 기업인들의 이해관계가 계급적으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일부 바뀐 현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도 사법 적폐 청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앞에서 설명).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에 정권의 의지 부족도 한 요인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된다. 여기에도 계급 문제가 있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 자신이 6월에 내린 친기업적 판결도 우파 대법원이 법 개악을 기다리며 7년간 판결을 미룬 적폐를 계승한 것이었다. 그 판결은 휴일 초과 근무에 초과수당을 할증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는데, 그 판결이 가능하도록 민주당은 2월에 법을 개악했고 대법원이 이를 받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김명수 대법원은 이석기 전 의원 등 진보당 수감자들을 석방·사면하지 않는다.
김명수 대법원은 10월 30일, 표현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며 변희재의 이정희 전 진보당 대표 종북 낙인 찍기를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법원은 삼성의 무노조 공작 수사를 방해하는 판결을 내려 왔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물론이고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도 사법 적폐 청산 같은 사법부 개혁이 충분히 실행될 수 없다.
진정한 사회 혁명이라면 애초에 기존 국가를 대체할 새 국가의 일부로서 완전히 새로운 재판부를 민주적으로 구성해 구 체제의 부패 범죄·비리들을 처리할 것이다. 대중의 개혁 염원을 실현하려면 운동은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
다급하게 앞당겨 추진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하락세는 멈췄지만, 역전된 건 아니다.
상반기의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끈 핵심 동력은 4월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반면, 나머지 쟁점들에서는 갈수록 큰 실망을 자아내는 일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특히, 노동과 사회·경제적 쟁점이 그렇다. 줬다 뺏은 최저임금 개악, 줄 듯하다가 뺏기만 한 노동시간 개악, 있는 일자리만 날아가게 한 제조업 구조조정, 비정규직 제로를 하겠다더니 정규직화 제로로 드러난 비정규직 대책 등은 노동자들을 분노케 했다. 해당 사업장들에서 조직화와 투쟁이 등장하는 배경일 것이다.
부유층 눈치 보느라고 부동산 문제에 어정쩡하게 대처하고, 국민연금 개악의 운을 띄운 것도 서민들 화를 돋웠다. 박근혜가 하려던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제주 관함식과 주민 탄압도 감점 요인이다.
이런 상황은 지지층을 결집하고 정권을 안정시킬 카드가 문재인에게 별로 없음을 보여 준다. 판문점 선언 비준을 국회를 거치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강행해 버린 것이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하다.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 트럼프의 일방적 군축조약 폐기 선언으로 거듭 확인된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미·중 갈등 심화, 문재인이 유럽 순방 중에 각국 지도자들의 동조를 별로 못 얻은 일 등 사정이 썩 좋지 않다. 북·미 간 물밑 협상도 크게 진척이 없어 보인다. 백악관은 북·미 정상회담 예상 일시를 계속 뒤로 미루고 있다. 이 상태라면, 일각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가 중간선거에서 이긴다 해도 북·미 간 화해 무드가 이어질지 미지수다.
적폐 청산은 감속 중
남북 문제와 함께 지지율 고공행진의 요인이었던 적폐 청산이 지지부진한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정부가 갈수록 우파 눈치를 더 많이 보기 때문이다.
10월 초 이명박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는데, 그것 말고는 별 진척이 없다.
사법 농단 수사가 진척이 없으니, 국가가 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는 일도 진척될 리 없다. 기무사 수사, 5·18 발포 명령권자 수사, 심지어 세월호 참사 조사도 지지부진하다.
오히려 집권 1년 반을 넘기면서 민주당 인사들의 비리 연루 소식이 슬슬 나온다. 새로운 부패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적폐 구조와 그 수혜 세력에 유착돼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재벌 총수들을 (그가 아무리 부패 범죄자라도) 계속 감옥에 가둬 두지도 못하고, 전임 정권 비리·부패 청산 운운하면서도 국가기관의 중·하급 관료까지 다 숙청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물론 적폐 청산에 지배자들의 저항이 거센 건 사실이다. 삼성 측의 무노조 공작에서 노조원이 피해자가 아니라거나, 증거를 제출했더니 증언이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판사들의 뻔뻔함을 보면 기가 막힌다.
그러나 문재인 본인이 재판 중이던 이재용을 우대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문화체육부 블랙리스트 관련 관료 중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은 자유한국당 권성동(검사 출신) 등이 연루된 강원랜드 취업비리 수사 외압 의혹을 무혐의 처분했다.
청와대 스스로 전교조 인정하기를 기피하고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등 양심수 석방 등도 노골적으로 기피한다. 삼권분립 운운하며 법원과 국회 탓만 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오히려 지지층 이반을 낳을 것이고 남북 화해 주도 말고는 문재인에게 지지층을 결집시킬 카드가 별로 없다[원본][원본 정보]ⓒ평양사진공동취재단
대조적인 유시민과 이재명
친문 핵심 인사들은 좌파와 노동운동이 발목을 잡은 게 노무현 정부 실패의 최대 요인이라고 본다. 문재인 자신과 유시민이 대표적이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과 우파 언론이 노무현을 탄핵까지 하며 못 살게 굴었는데도, 노동운동 탓을 더 많이 하는 건 친노 진영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파병, 노조법 개악, 한미FTA 체결, 제주 해군기지 건설 결정, 평택 미군기지 이전, 국민연금 개악, 비정규직법 개악 등 수많은 우파적 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진보진영은 필요한 수위의 저항을 제기하지 못했고 그 틈에 우파가 노무현에 대한 대중의 환멸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었다.
여권으로서는 지금의 반우파 정서를 계속 민주당 지지로 묶어 놓으려면 좌파가 이익을 얻는 걸 막아야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을 두고는 여권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는 듯하다.
여당 대표 이해찬은 진보·좌파 세력을 달래가며 단속하는 게 낫다고 보는 듯하다. 민주노총을 찾아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복귀를 설득한 것도 그였다. 물론 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친문 친위세력은 진보·좌파 세력을 아예 입 다물게 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노무현 시절에 부동산 원가 공개, 국민연금 개악, 한미FTA 체결 등으로 여권 대선 주자들이 반발해 노무현이 고립된 일을 반면교사 삼아 미리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권의 내분을 막으려다 되레 앞당기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친문 친위세력이 최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유시민을 추대해 사실상 정치 일선에 복귀시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노무현재단은 사실상 정치조직이다. 한명숙·문재인·이해찬 등 친노 그룹의 좌장격 인물들이 이사장직을 맡아 왔다. 햇병아리 초선 의원에서 일약 경남도지사로 올라선 김경수가 노무현재단 실무자 출신이고, 이재정 경기교육감, 정현백 전 여성부장관 등이 재단 이사 출신이다.
유시민은 진보 연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달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복지부 장관할 때 국민연금 개악을 지휘했고,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방에 적극 찬성했다.
유시민은 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 합당을 추진할 때(2011년 말) 이를 반대하는 참여당 당원들을 이렇게 설득했다: 합당은 진보진영이 문재인/민주당 정부 아래서 정권에 대한 좌파적 반대로 나아가지 못하게 안에서 개입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민노당 이정희 대표의 헌법 존중 의지를 이런저런 형식의 만남에서 확인했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자는 정책을 내놓고 국회의 법 개정과 민주당의 당론 채택을 요구했다. 성남시에서 호평받았던 청년배당을 경기도 차원에서 확대 실시하기로 했다.
이재명 지사의 개혁 약속이 대중의 개혁 염원을 고무하고 기대를 부추기는 것은 우선회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에게는 탐탁찮은 일일 것이다.
경찰은 겨우 휴대폰 2대를 압수할 목적으로 이 지사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을 벌였다. 드루킹을 만난 적이 없다는 거짓말이 들통났던 김경수는 민주당 전체의 보호막을 얻었는데 반해, 이 지사가 수차례 해명된 사건으로 수사받을 때는 민주당의 누구도 편들며 나서지 않는다. 청와대의 의중이 작용했을 것이다. 문재인은 방북 수행단에 접경지 단체장인 이 지사를 포함시키지 않았다.(이 지사가 최근 자신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을 너무 심하게 공격했다고 한 건 친문에 대한 경고이기도 타협 신호이기도 하다. 결국 실패하고 우파만 고무하게 될 얼치기 개혁 정부와 타협하기보다는, 공언한 개혁을 한사코 실행해 대중을 고무하는 것이 이 지사 자신에게나 노동자·서민에게나 좋은 일일 것이다.)
보수대통합 추진하는 우파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구두선에 불과함이 슬슬 드러나면서 지지율 위기를 겪자, 우파가 기운을 되찾고 있다. 우파는 박근혜 퇴진 이후 책임 공방과 돈 문제 등으로 사분오열했었다. 그러나 최근 보수대통합 운운하며 내후년 총선에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것에 대한 위기감도 작용할 것이므로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
민주당은 부패 폭로로 대응한다. 적폐 청산 프레임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유치원 비리 폭로도 이 맥락 속에서 벌인 일로 볼 수 있다. 임명 과정에서 상처받은 유은혜 교육부장관을 돕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 개인은 상당한 용기를 발휘했지만 말이다.
유치원 운영자들은 교육공무원의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원생들을 안 받겠다고도 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은 오보를 불사하며 서울교통공사 등의 정규직 전환 비리 등을 문제 삼는다. 전형적인 피장파장 전법이지만, 이 공격은 민주당 정부, 민주당 지자체, 공기업, 노조 등을 모두 겨냥한다.
문재인의 지지율이 떨어져도 우파가 곧바로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직까지 강력한 반우파 정서 때문이다. 특히 노동운동의 동향이 만만찮다. 승리한 박근혜 퇴진 운동에 조직 노동운동이 (초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덕분이다.
노동계 안팎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문재인과 일전을 벌이기를 꺼리므로, 투쟁들이 보편화되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말이다.
중도파 정부는 구두선으로 표방한 개혁에 실패하면 좌우 양쪽의 공격을 받는다. 그런데 노무현 후반부와 달리 지금은 우파가 분열해 약화돼 있다. 노동자 투쟁에 유리한 요인이다.
그러나 임금과 노동조건 개악이 목적임을 분명히 한 문재인과 사회적 대화를 추구하는 건 잃을 게 더 많다. 자칫 노무현 후반부처럼 좌파적 대안을 건설할 기회를 놓치고 우파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유리한 조건들을 이용해서 문재인의 신자유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