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우리은행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조사에서 시작해 은행권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로 번진 은행권 채용 비리 중간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검찰은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부산은행, 대구은행, 광주은행 등 6개 시중은행에서 임직원 38명(12명 구속, 추가로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성차별 채용으로 은행 자체를 기소)을 기소했다. 이중 은행장이 4명이다. 검찰은 신한금융그룹도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발표한 채용 비리의 다수는 이미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드러난 것들이었다.
은행 내부 고위 임원 자녀 부당 합격, 은행과 거래 관계에 있거나 은행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고위층 자녀의 청탁 합격, 성별·학력 차별 채용 등 총 695건이 기소됐다.
은행들은 청탁 대상자 명부를 작성해 채용 과정에 활용했다. 이런 관행이 얼마나 만연했는지, 국민은행에서는 채용팀장이 부행장 자녀와 이름·생년월일이 같은 지원자를 알아서 점수 조작으로 통과시켰다가 다른 인물임을 알고 최종 탈락시킨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특히 성 차별 채용은 학력 차별과 마찬가지로 커트라인을 넘은 지원자들을 대거 탈락시킨 것이라 죄질이 더 나쁘다.
KEB하나은행은 아예 처음부터 내부적으로 남녀 선발 비율을 4:1로 정해 놨다. 그러나 지원자에서 남성 비율이 50~60퍼센트 정도였으니, 여성 지원자들은 남성 지원자보다 적게 잡아도 두 배 이상 높은 경쟁률에 더 높은 커트라인이라는 피해를 본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아예 남녀의 합격을 대놓고 뒤바꿔 버렸다. 515명 합격자 중에서 남성은 113명이 추가 합격했고, 대신 여성 지원자 중 합격한 112명이 불합격으로 돼 버렸다.
문제는 이 정도 규모의 채용 비리가 수년 간 저질러졌는데도 실권을 가진 최고 경영자들을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성차별 채용 건은 은행 자체가 기소된 건인데 말이다. 조직적인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대규모 채용 비리가 일어났는데 시킨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기소된 695건 중 하나은행이 239건, 국민은행이 368건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적발된 채용 비리 과정 내내 최고 경영자였던 김정태, 윤종규 두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18일 오전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 앞 금융노조와 KB국민은행지부 간부들의 집회.ⓒ출처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그래서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 휴 규탄 성명을 내고 18일 오전에는 본점 앞에서 퇴진 요구 집회도 했다.
“당시 은행장으로서 채용비리의 총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윤종규 회장이 구속은커녕 기소 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는 사실은 황당하[다.] ... 채용 비리 사건의 발단은 금융감독원이 특정한 3건의 채용 비리 의혹, 그중에서도 서류전형 813등, 1차 면접 273등에서 최종면접 4등으로 합격한 윤종규 회장의 종손녀와 ... [또 다른 특혜를 받은] 전(前) 사외이사의 자녀였다.
“[윤종규 회장이] 구속자에 김앤장 변호사를 붙여 주고, 임원들과 부서장들이 100만 원씩, 30만 원씩 갹출을 해 도와 주려다 감독기관에 들켜 다시 돌려 주고, 구속자와 별도로 채용 비리 사건 대응을 위해 김앤장에 수십 억 원의 자문료를 주고 얻고자 한 결과[가 윤종규만 빠져나가는 것인가?]”
윤종규는 조합원의 파업 참가 방해와 노조 선거 개입 등을 자행하고 성과연봉제와 성과추진본부 도입 등 노동자 구조조정에 앞장선 악덕 경영자이기도 하다.
국민은행 다음으로 채용 비리 건수가 많은 하나은행의 회장 김정태도 윤종규와 마찬가지로 노조 탄압과 구조조정을 자행해 왔다.
“남녀 성비를 미리 결정해놓고 점수를 조작해가며 성차별 채용을 했는데도 은행장과 지주회장이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실제 업무를 수행한 실무자들만을 향했을 뿐 최종 책임자인 CEO들에게는 눈을 감았다. 특히 이번 수사 결과에 대해 1심 재판 결과를 보고 징계를 결정하겠다는 금융 당국의 입장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적폐 청산을 자임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검찰은 매번 줄타기를 해 왔다. 이번에도 채용비리는 수사해 수십 명을 기소했지만, 해외 주주들의 지지를 받은 두 최고 경영자는 기소하지 않았다.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은 대규모 투자와 신규 채용 등으로 여론의 화살을 돌리려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를 못살게 굴고, 청년들의 취업 꿈에 찬물을 끼얹은 은행권 적폐는 단죄를 받아야 한다.
금융노조와 해당 은행 지부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문제의 경영자들을 쫓아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6월 15일 금융노조는 산별 임단협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쟁의행위 수순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사용자들이 노조 요구안을 모조리 거부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의 부도덕한 경영진 퇴진 요구가 임단협 투쟁과 결합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사람들은 한반도 평화조차 반대하며 적폐 청산과 개혁의 발목을 잡는 자유한국당을 꼭 낙선시키고 싶어 했다. 당선 가능한 민주당 후보들에게 표가 쏠린 가장 큰 이유다.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 출신 정치인들과 지역 조직들이 선거 전에 민주당으로 대거 이동했다. 영남 지역에서 민주당 공천 후보자 수는 지난 지방선거의 2.6배로 늘었다(선출 정수 대비 민주당 출마자 수가 17퍼센트에서 42퍼센트로 증가). 민주당이 압승한 울산에서 민주당 구청장 당선자들 다수가 친박계 출신자들이다.
이렇게 우파를 포용한 민주당은 지방선거 압승을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한 우회전에 이용하고 있다. 김종필에게 훈장을 준 것은 시사적이다. 그는 5·16 쿠데타 주역으로 4월 혁명의 성과를 무로 돌리고 다름 아닌 민주당 정부를 전복한 자였다. 친문 조직들은 근거없는 사생활 의혹으로 친진보 성향인 이재명 비난에 앞장선 반면, 김종필의 더러운 공적 생활은 별로 비판하지 않았다.
종종 줄타기를 하겠지만, 앞으로 우회전만이 아니라 역주행도 보게 될 것이다ⓒ제공 <노동과세계>
문재인 정부는 노동 문제에서는 지방선거 전부터 우회전하기 시작했다. 1월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저임금을 고착화시킬 표준임금제(안)을 내놨고,2월 말 근로기준법 개악안을, 5월 말에는최저임금 삭감법까지 통과시켰다.
특히 후자는 반발을 샀다. 최저임금 1만 원 공약과 ‘소득 주도 성장’의 기조를 뒤엎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 정책을 현 정부의 친노동 기조를 보여 주는 증거로 봤다. 노동계 일부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기대한 배경이다.
그러나 문재인은 최저임금 개악 통과 직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어 소득 주도 성장이 아니라 ‘혁신 성장’을 강조했다. 혁신 성장은 민영화, 영리화, 노동유연화 등 친기업적으로 규제를 완화해 기업 투자를 고무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담론이다. 문재인은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 강화를 주문한 것이다.
그래서, ‘패싱’ 논란이 있었던 경제부총리 김동연이 6월 19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 회의에서 공무원·공기업 등 공공부문 전반에서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바로 박근혜가 추진했던 노동개악으로, 인건비 절감과 노동자 통제를 강화하려는 임금 정책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 소득주도성장론자인 청와대 경제수석 홍장표가 최근 밀려났다. 그 자리는 ‘모피아’(친기업적 재무부 관료) 출신자로서 반노동 색채가 뚜렷한 윤종원으로 대체됐다. 지난해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하면 전쟁 난다는 식의 황당 괴설을 써서 선거기사심의위원회 등의 경고까지 받은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가 경제수석 교체를 “잘된 인사”라며 칭찬했다.
물론 홍장표는 완전히 밀려나지는 않고 새 직책을 맡았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론을 아예 포기했다는 인상을 주는 건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바뀐 근로기준법 시행을 앞두고, 재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법 위반 사업주 처벌을 6개월 유예하기로 했다. 근로기준법은 총 노동시간을 줄인다는 명분을 악용해 임금 삭감을 유도하도록 개악됐었고, 기업주들은 그조차 부담스럽다고 떼쓰고 있었다.
정부는 기업주들의 초법적 요청을 받아 준 같은 날(6월 20일), 전교조의 법외노조화 직권 취소 요구는 대법원 계류 중이라 “불가능하다”고 거부했다. 현 대법관들은 전교조 관련 재판 거래 의혹 등을 부인한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이다. 1년을 기다린 교사들을 우롱하는 짓이다.
6월 26일 노동부는 개악된 근로기준법에 따른 유연근로제 가이드라인을 서둘러 발표했다. 유연(탄력) 근로는 인건비를 줄이면서 필요한 때 일을 더 시키는 제도다. 정부는 사용자 처벌은 미뤄 주고 노동자 부려 먹을 방법은 빨리 알려 준 것이다.
정부의 태도 변화를 감지한 경영자총협회(경총)도 상근부회장 송영중을 이제는 해임하려고 한다. 그는 경총이 문재인에 코드를 맞추려고 영입한 노동부 출신자이다. 그는 최저임금 삭감법 국회 통과 당시에 최저임금위에서 논의하자는 노동계 의견에 동조했었다. 그 직후 경총은 그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6월 28일 쌍용차 노동자가 현실을 비관하며 자살했다. 같은 날, 경찰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의 중재를 거부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반면, 삼성 무노조 경영 수사는 삼성-노동부 커넥션을 밝혀 내고 있어도 구속자가 거의 없다. 한진 재벌은 망신은 당해도 구속은 안 된다.
촛불의 여파가 남은 상황에서 여전히 줄타기도 중간중간 재현될 것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홍영표는 한국노총 지도부를 다시 노사정위원회·최저임금위원회로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
문재인은 노동개악에 대한 저항을 제압하는 데에 선거 압승과 한반도 평화 국면을 이용할 것이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가 양보하라는 것이다. 노동운동 우파의 개혁주의 정치가 이 포퓰리즘 압력에 휘둘릴 것도 기대하면서 말이다.(이렇게 중도파가 북한 문제를 노동운동 억제에 이용하는 건 우파와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집권 1년이 지나며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의 실체가 드러났다. 최근 지방선거 이후 여권 지지율이 하락 추세(소폭이지만)인 건 노동 문제에서의 우회전과 관계 있을 것이다. 정부의 계급적 실체를 직시하고 단호하게 저항해야 한다.
한겨레 페북 관리자는 좀 자중하시라. ㄱ씨의 행동이 잘못인 건 맞지만, 그의 범행 동기가 왜 여성혐오냐고 물으면, 여성혐오 때문이라는 동어반복 말고 나올 답이 뭔가? 일종의 답정너 같은 것으로 현실에서도 논리로도 타당치가 않는 논법이다.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체에 강요한 인간 타락의 문제를 여성혐오로 치환시켜서 도대체 보통 여성들이 얻을 게 뭔지도 생각해 보시고. 남성을 무찔러 여성 취업문을 넓히면, 그건 무한경쟁에서 탈출인가? 서로 남혐, 여혐 하고 싸우자는 얘기밖에 더 되나? 그런 상황을 누가 좋아할까? 글 쓰다가 올라가 버려서 다시 덧붙이면, 기사 말미의 신지예 후보측의 답변이 공식 답변이라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대졸 무직자가 포스터를 찢은 게 남성 중심 기득권 정치의 공고한 단면이라니?!?! ㄱ씨는 그 공고한 남성 중심 기득권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된 사람이다. 나경원, 이언주, 이은재가 웃고 갈 노릇.
여성혐오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반감이 과장되게 표현되는 건 ‘백래시’ 때문이 아니라 높아진 자의식과 기대치에 사회 변화 속도가 부응하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본다. 이 밑바탕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한국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들도 사회(경제활동)에 진출하고 그에 따라 독립성이 고취된 현실이 있다고 본다.(부엌데기×) 다르게 표현하면, 여성 노동계급이 대거 형성되면서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것인데, 그 배경 하에서 고위층 성비도 조금 변화했다. 자본주의는 체제 안정을 위해서도 계급 사다리를 열어놔야 하는데, 그게 직장 안팎의 젠더 문제로도 확장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 전반에서 변화가 일어나긴 했다. 예전엔 진보와 보수의 경계선과 소위 여권(여성의 권익)에 대한 태도가 거의 일치하는 듯 보였는데, 지금은 인식의 개선 때문에 그렇게 동조화돼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박근혜가 꼴보수 노인층의 지지를 크게 받았던 걸 봐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익적 행태들을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행하거나 묵인하던 종류의 페미니즘이 최근 중동 출신의 난민들에게 쏟아붓는 인종차별적(우익적) 폭언(멸시와 천대)들을 봐도 알 수 있다. (※ 추가: 그럼에도 정치적 진보·좌파와 조직 노동운동이 사회의 평균보다 더 여성의 권익에 친화적인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생물학적 여성을 중심에 놓은 분리주의(정체성정치)의 급진주의에 동조할 수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비록 그들 언행의 사회학적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공감의 지평은 넓힐 수 있어도 말이다. 평범한 다수 여성(노동계급이 대부분인)에게는 삶의 문제인 취업, 임금, 일자리, 낙태, 육아 등등이 중요하다. 이 문제들에서 진보를 이루려면, 일반으로 말해 성별을 가리지 말고 계급으로 단결해야 유리하다. 계급으로 단결하려면 국경 밖으로도 시야를 넓혀야 한다. 우리랑 비슷한 처지의 외국인들을 못사는 나라에서 온 난민 약자라고 우습게 보고 천대해 봐야, 계급적 편견만 강화돼 국내인들끼리의 관계에서는 여러모로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경찰 수사부터 받게 됐다. 바른미래당이 이재명 당선인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직권남용죄, 제3자 뇌물죄 등의 혐의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선거 때 가한 사생활 공격의 후속 편이다.
그런데 고발된 혐의들이 억지스럽다.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는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선거운동에서 신분이나 경력, 재산, 특정 단체의 지지 등의 문제에서 허위사실을 기록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불륜 의혹’과 ‘형의 정신병원 입원에 개입한 의혹’을 부인한 게 선거법 위반이라는 건 너무 억지스럽다. 개인들 간의 ‘사적’ 관계를 단속과 수사의 대상으로 삼는 발상 자체가 괴이하다.
물론 본사를 성남시에 둔 네이버가 성남FC를 후원하도록 했다는 것(제3자 뇌물죄)은 사생활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이 혐의가 죄로 성립되려면 이재명 당선인이 네이버에 준 특혜와 성남FC가 후원을 받음으로써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얻을 이익이 밝혀져야 한다. 성남FC는 프로축구 시민구단으로 박근혜의 미르재단과 달리 사적인 축재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단체로 보기 어렵다. 이 점에서 의혹 제기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지지할 만한 정책이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의 근거가 불성실해 무책임하게 보이는 이 고발 목록은 사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전신)이 이미 4년 전 성남시장 선거에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후보를 공격할 때 써먹은 소재들이다. 그러나 별무소용이었고, 이재명 당선인은 성남시장 재임 시절 수년간 반복해서 공개 해명을 했다.
무엇보다개인 연애사나 가족사는 사생활(프라이버시)의 영역으로, 범죄적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면 노동계급 대중이 정치적 대표자 선출에서 주된 판단 기준으로 삼을 소재가 아니다.노동자들의 계급적 이해관계, 가령 일자리나 복지나 낙태권 같은 문제(에 대한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성인들의 (자유 의사에 따른) 연애를 유권자가 간섭할 이유도, 공직자일지라도 그의 연애 여부를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런 설득력 없는 의혹 제기들이 선거 공방에서 멈추지 않고 경찰(국가권력)의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 당선인의 스캔들 의혹을 재점화한 것은친문핵심 세력이다.
문재인 최측근 실세의 하나로 꼽히는 전해철이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 과정에서 케케묵은 의혹들을 다시 끄집어냈다. 경선 후에도 문재인 지지 열성 인자들은 공식 선거 시작 전에는 당 후보 교체를 요구하고, 후보 등록 후에는 자유한국당 남경필을 지지했다! 친문 세력은 이재명이 민중당(“경기동부”)과 연계돼 있다며 ‘색깔론’도 끌어들여 비난했다. “싸가지 없는 친노”의 원조격인 유시민도 선거 개표 방송에서 이재명 헐뜯기를 거들었다.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드루킹이 지난해 지지자들에게 ‘전해철을 위해 이재명을 견제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이것이 바둑이[김경수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짐]의 뜻’이라고 했다는 것도 언론에 공개됐다.
열성적인 친노친문 인자들은 전통적으로 온라인 활동(“온라인 민주주의”)을 중시하고 좌파·노동운동을 매우 싫어한다. 이들은 ‘좌파·노동운동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약화돼 실패했는데, 정작 이명박, 박근혜 시절에는 노동운동이 투쟁하지 않았다’는 가짜 서사를 온라인에서 유포해 왔다.
그런 그들이 사생활을 들춰내 경쟁자를 망신 주고 공직에서 밀어내는 우파의 애용 수법을 사용해 경쟁 인물을 공격한 것이다. 그 결과 친문 세력과 우파 야당이 합작해 이재명 헐뜯기에 나서는 모양이 연출됐다.
그런데도 이재명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촛불을 경과하며 형성돼 있는 대중의 정치의식 수준을 가늠케 한다.
민주당 내 친문과 우파의 합작 행태는 이재명 당선인이 기성 정치권 안에서 (문재인보다) 상대적으로진보적인사(때로는 급진적 ‘언사’도 하는 인사)이고 종종 노동친화적 입장을 취해 온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당선인은 성남시장 재임 시절 (우파 정부의 반대 속에서 비록 충분치 않을지라도) 청년배당을 실시했다. 또, (국회 통과 후에 밝힌 입장이라 아쉽긴 하지만) 최저임금 삭감법에 반대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경기도 산하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기업과 계약시 비정규직 고용 기피 기업 우대 등을 공약했다.(물론 공약의 실 내용과 실천 여부는 이후 지속해서 검증할 문제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요구를 전폭 지지했음은 물론이다.(가톨릭의 “고의적 낙태” 찬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과 비교해 경기도 투표자가 183만 명가량 줄었는데도, 이재명 당선인은 대선 당시 문재인이 얻은 표보다 조금 더 많이 득표했다. 정당투표에서는 정의당을 지지한 약 12퍼센트의 유권자 중 다수도 도지사 투표에선 이재명 당선인을 찍었던 것같다.(경기도에서 정의당의 정당 득표와 도지사 후보 득표 차이는 약 53만 표다.) 이재명 당선인이 민주당 후보로서 당선하고 민주당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어도 친문 세력은 이런 표들이 두려울 것이다.
이런 정황과 맥락 등을 종합해 볼 때, 친문 세력이 앞장선 이재명 헐뜯기에는 (친문 세력에 대한) 민주당 내 경쟁자 견제(나 제거)를 넘어, 이재명 지지로 표현된진보 염원에 찬물을 끼얹고, 더 나아가 민주노총 등노동단체들을 공격하려는목적도 있어 보인다. 이재명 비방에 오불관언하지 말고 비판해야 하는 까닭이다.
마치 미국 민주당이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를 당 안에서 고사시키려 하고, 영국 노동당 우파들이 제러미 코빈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비슷한 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결코 인정한 적이 없지만, 조직 노동운동이 반(反)박근혜·반(反)노동개악을 기치로 파업과 시위를 벌이며 불을 붙인 촛불 운동이 승리한 덕분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문재인은 6월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선거 결과로 오만해지면 안 된다며 오히려 지방권력 감찰 등을 지시했다. “우리가 받았던 높은 지지는 … [매우 기쁘지만] …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 땀 나는 정도의 그런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2004년 자신을 구하고자 한 탄핵 반대 촛불을 보며 ‘저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 했다는 노무현의 발언이 떠오른다. 문재인은 촛불 염원 눈치 보기를 당분간 지속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물론 광역단체장 당선인들 중 차기 대선 주자들을 관리·견제하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고로 열성적 친문 세력도 곳곳에서 (문재인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이재명 당선인은 물론이고 조직 노동운동과 좌파에 대한 공격을 이어 갈 것이다. 최저임금이 개악됐으니, 자신의 노동조건을 두고 싸우는 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귀족론 공격도 더 거세질 것이다.
일단은 기쁘다. 탄성이 나온다. 촛불의 여파가 그때처럼 격하지는 않지만 1년을 넘게 지속하며 조금씩 파도처럼 밀고 가고 있다. 촛불이 우파를 약화시킨 공간 속에서 조심스럽게 시작됐던 남북화해 국면이 극적으로 힘을 얻으면서 우파 참패에 새로운 동력이 됐다.(진정한 평화가 되기엔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여전히 더 크지만) 그래서 많이들 예측했고 우파 야당들 스스로 반응했듯이(선거 내내 집토끼 지키기의 수세로 일관), 격한 반(反) 우파 정서가 일단은 민주당 몰아주기로 표현됐다.(우파 약세가 대선보다 좀 더 전국화됐고, 김문수 표를 보니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가 얻은 표를 대강 지켰다.) 그런 점에서 보면(선거 전 조건에 비춰 봐도) 광역단위에선 대체로 이재정이 교육감 된 것 말고 나올 결과가 나온 듯하다. 진보정당은 애초부터 주로 지역의 기초 단위에서의 전진에 초점을 뒀는데, 그 결과는 밤에 더 살펴 봐야 할 듯하다.(울산북구는 아쉽지만, 이미 선거 기간에 판세가 결정된 듯 보여서 ...) 오늘 선거 결과와 한반도 평화 국면 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좌우의 압력에 대항하는 힘은 당장은 세질 것이다. 그러나 점점 핑계 거리가 없어질 것이므로 밀어 준 만큼 지금보다 더 개혁 염원이 청와대로 집중될 것이고, 개혁 추진에 대한 조급함도 커질 것이다. 그래서 경제와 안보 문제에서 이변이 없다면, 총선까지 힘을 실어달라며 이 정부의 줄타기는 계속될 것같다. 그러나 이미 노동 문제에서 문재인은 촛불 염원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경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일부 경제 지표 악화를 이용해 지배계급이 압박하고 있기 때문) 촛불이 표현한 반(反) 우파 염원의 밑바탕에는 계급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우파 야당이 선거에서 찌그러지는 것은 과정에서의 목표이지, 그게 다가 아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아래로부터의 촛불 염원의 편에 서서 보자면, 할 일은 여전히 많고, 그것은 올곧게 개혁 염원을 대변하고 노동 개악 등에 반대해 투쟁을 건설하는 일일 것이다.
12년 전 한나라당 싹쓸이 분위기에 함께 휩쓸려 시무룩해 하던 민노당 시절 동료들이 생각난다. 만만치 않은 선거 경험 속에서 때마다 깨닫는 건 선거는 이전 활동의 결과물인데, 개인이 열심히 한 건 +@ 이고 제일 큰 요인이 선거 구도를 좌우하는 넓은 차원의 사회적 세력균형이라는 것. 이번처럼 분위기가 분명한 선거에서 전국 결과는 누구라도 대강 예측이 가능한 이유.
정당이나 개인의 개별적 노력은 대체로 바로바로 반영되지 않는다. 혁명, 항쟁, 공황, 전쟁 같은 격변적 사건이 이후의 일상(구조)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지, 일상이 단순히 누적된 효과로 구조가(따라서 일상이) 바뀌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격변적 사건의 발생에 일상적 실천이 기여했다면, 사실 의도한 바와 무관하게 새롭게 형성되는 맥락에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더 큰 변화를 추구하며 혁명 같은 격변으로 가는 길을 닦으려는 실천이다. 1980년대 초중반의 투쟁들과 87년 항쟁, 산발적인 反박근혜 투쟁들과 박근혜 퇴진 촛불 등등의 사례가 있다.아울러, 촛불 사건에 영향을 미친 일상은 노동운동이 실천한 일상이었지 민주당과 문재인이 우파와 공존하던 일상이 아니었다.
촛불은 혁명이 아니었고 가령 87항쟁(6, 7~8)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큰 사건이었다. 대중 참여 규모가 그래서 중요하다. 여진이 아직도 사회 곳곳으로 시간을 두고 잔잔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선거는 사건이 아니다. 그러니 촛불 여파가 새삼 크게 확인된 지금, 촛불이 선거 이후에도 또 한차례 변형된 맥락 속에서 영향을 미치는 거지 선거가 새로운 판을 만드는 원인인 게 아니다.(정의당이 광역비례에서 전국적으로 선전해 대선 때보다 더 많이 득표한 것이나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가 8만 표 넘게 얻은 것도 좋은 일이고 촛불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진정한 촛불 계승 정부가 아니므로 문재인은 선거 이후에도 지금처럼 계속 줄타기를 할 것이고, 노동계 진보/좌파에게는 여전히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좋은 기회들이 가까이 있다.
다른 각도에서 표현하면, 일상적 시기에 어떤 사건들의 결과로 생기는 열매는 그걸 심지도 않은 일상의 권력자들이 가져가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정작 세상을 바꾸는 건 투쟁하는 (그래서 일상의 구조를 흔들 만한 큰 투쟁을 만들어내는) 노동 대중(과 좌파)인 것이다.
일상의 실천에서도 정신과 목적에는 “혁명의 현실성”이란 문제의식이 깔려야 하는 이유다. 사실 그게 지금의 시대정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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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일 하루 전 단상]
드루킹 여론 조작이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한 정치 공작과 본질(지배계급 정당들의 공작적 여론 조작)에서 다를 바 없다고 보는 나로서는, 친문 강성들의 이재명 죽이기가 박근혜의 채동욱 죽이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개인 사생활 영역(프라이버시) 문제로 경쟁자 망신 주고 공직에서 끌어내리기.
이재명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재명이 문재인 왼쪽에 자리잡으며 이만큼 성장한 것이기 때문에(앞으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친문이 이재명 죽이기를 함으로써 나타나는 효과는 우파의 사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문재인의 최저임금 삭감법이 그러듯이.
그 점에서 그들이야말로 뜬금없는 친미 아부와 대연정 제안으로 한나라당과 우파 기만 되살려 준 노무현의 충실한 진성 후예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파를 약화시키려면 진보·좌파와 노동운동이 문재인의 위선적인 적폐 청산이나 노동 개악 등에 지금보다 더 사납게 반응해야 하고 다른 대안을 구축해야 한다.
물론 문재인이 왼쪽의 압력에 순응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파에게는 이 중도 자유주의 정부를 약화시키고 소생할 기회가 계속 있다. 이 운명을 좌, 우, 중도 세력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결국에는 좌파의 구실과 성장, 노동운동의 ‘정치’가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그 정치는 친문의 이재명 죽이기를 폭로하고 비판할 정도로 영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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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추가 [6.15 단상 나도 덕담 할 줄 안다]
정식으로 선출된 진보교육감 후보라서 최악의 경우 찍어주고 욕을 해야 설득력 있을 것 같아서 한 조희연 교육감을 빼고는 어쩌다 보니, 다 여성 후보에게 투표를 하게 됐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어쨌거나 그 중 한 표가 여성 노동자 의원 탄생에 기여했으니 다행이다. 구의원은 진보 단일 후보라 해서 녹색당 후보를 찍었는데, 정의당/민중당/녹색당 단일 후보였다. 서울에선 시비례에 노동당이 출마하지 않았으니, 이번 선거에서 투표권자로서는 노동당과 전혀 인연이 없었던 셈이다.
여러 글들로 노동당을 응원하기도, 안타까워 하기도, 사납게 비판도 해 왔는데, 최근 노동당의 어려움을 보니 안타까움이 더 크다. 그러나 노동당 내 누구도 노동과 젠더 문제를 현명하게 결합시킬 수 있는 정치를 발전시키려 하지 않은 문제(회피할 수 없는 문제)는 쓰지만 다시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의당의 광역비례 득표가 꽤 나올 것 같은 느낌이 선거 막판에서야 들었다. 오비이락 슬로건에 불만이 많았는데(민주당 쓰나미 추수), 그 때문에 약간 냉철함을 잃은 듯하다. 저득표를 감수하고 서울, 경기 광역단체장을 출마시킨 건 광역비례 득표를 위해서였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경기에선 비례만 2명이 되는 쾌거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는 위상이 높은 만큼 이쪽도 출마 전에 이미 거물이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겠고, 전국적 구도가 훨씬 크게 작용하는 어려움도 있으며, 박원순과 이재명이 진보적으로 비치는 면이 강해서 더 어려웠을 것이다. 암튼 8년간 명맥이 끊겼던 여성 노동자 서울시의원의 역할을 권수정 의원이 잘 해 주길 바란다.
민중당은 선거평가 논평에서 광역 비례 총합 100만 표를 목표로 했다고 말했는데, 진심인지 모르겠다. 정의당이 대표 진보정당으로 총대선에서 상당히 자리잡아버린 상황에서 쉬운 목표가 아니었다. 게다가 신생정당 이미지 때문에 생소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광역단체장 득표는 전남 정도 빼고는 높기 어려웠다. 서울시장에서도 여성 노동자라는 상징성 때문에 표를 줬는데, 아쉽게도 득표는 생각보다도 낮더라. 1%는 나오길 바랐는데. 지역 조직이 강점인 만큼 그래도 저력을 발휘해 지역구로만 11명을 당선시켰다.
뼈아픈 곳은 울산일 것이다. 민주당 광풍에 휩쓸렸는데, 몇몇 아쉬운 지역구나 후보가 있다. 민중당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 문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아마 울산 단일화에 대한 재평가 요구가 나올 것같다. 의도했든 아니든 북구 후보를 독식한 모양새가 됐는데, 이도 사후 평가 거리가 되지 않을까. 울산/거제/창원 결과를 보면, 단일화나 단결을 잘 하기 위해서도 진보정당의 정치적 분화를 현실로 인정하는 게 현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월간 〈시대〉 6월호에 실린 신지예 후보(?)의 인터뷰를 읽어 보니, 2016년 총선 비례 때 받았던 좋은 인상의 이유도 좀 알 것 같다. 내가 그의 정치를 약간 편견을 갖고 본 면도 있는 것 같고. 노동 기반 정당은 아니고 동의하기 힘든 면도 없지 않지만, 더 크게 보아 진보정당으로서 녹색당, 청년 진보 정치인으로서 신지예 후보의 호성적에 박수를 보낸다.
전임 대법원장 체제에서 벌어진 ‘재판 거래’ 추문의 한복판에서 이영주 민주노총 전 사무총장의 재판이 시작됐다.
노동 개악 반대 파업과 박근혜 퇴진 민중총궐기 투쟁 등을 주도했다는 혐의다. 이 투쟁들은 세월호 참사 항의 투쟁과도 연계됐었다.
이 투쟁들이 폭력 시위였다며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징역형 3년을 선고받았고 최근에야 만기 출소를 반 년 앞두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영주 전 총장은 2년 동안 수배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말 구속됐다.
그러나 당시 투쟁이 정당했다는 것은 이미 정치적·사회적으로 판가름난 일이다.
민주노총이 앞장선 노동 개악 반대 투쟁,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 등은 박근혜의 중도 퇴진으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됐다. 승리한 촛불 운동은 노동 개악과 박근혜의 반(反)노동계급 정책들을 “적폐”로 판정했다.
이런 시위대의 저항이 아니라, 평화로운 시위를 가로막은 경찰의 강경 진압이 진정한 문제였다.
올해 5월 31일에는 헌법재판소조차 경찰이 법률 근거도 없이 최루액을 섞어 물대포를 쏜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2015년 민중총궐기에서 바로 그 위헌적인 살인 물대포를 맞아 백남기 농민이 사망했다. 민주적 권리를 깡그리 무시한 불법적 폭력에 두들겨 맞은 사람들이 도리어 ‘폭력 시위대’로 내몰려 죽고 구속되고 수배됐다.
바로 그런 작태들 때문에 박근혜가 쫓겨나 구속까지 된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박근혜 적폐는 청산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위선적이게도 한상균 전 위원장 사면을 거부하고 이영주 전 총장을 구속했다. 최저임금 삭감법을 개악하는 날, 한상균 전 위원장을 가석방해 치졸한 물타기나 하려고 했다. 이영주 전 총장이 당장 석방돼야 하는 이유이자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부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싸움에 나서야 할 이유다.
최근 우파 정권 아래서 자행된 반(反)노동계급적 적폐들의 한복판에 사법 적폐가 있었음이 폭로됐다. 해고, 임금, 노조 인정 등과 관련한 각종 반(反)노동계급적 판결이 정권·법원·재계 사이에서 조율되고 거래된 뚜렷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이 사법 적폐는 법을 이용해 사측·경찰·검찰이 탄압을 하고, 법원이 이를 정당화해주는 노동계급 억압 사슬의 한 고리였다.
그 고리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에서 살인적인 수압으로 최루액 물대포를 조준 발사토록 지휘해 백남기 농민을 사망케 한 당시 서울경찰청장 구은수가 6월 5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재용을 포함해 노조 와해 공작을 한 삼성 경영자들, ‘갑질 조절장애’인 한진 조 씨 일가 등은 죄를 짓고도 풀려나거나 구속되지 않았다.
반면, 이영주 전 총장은 구속 상태에서 11일, 12일 재판을 받고 있다.
사법부는 이영주 전 총장에게 죄를 물을 자격이 없다! 사실 한상균 전 위원장이 형량을 다 안 채우고 석방된 마당에 이영주 전 총장이 구속 재판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전 대법원장 양승태가 주도해 온갖 편파적 판결을 유도하고 조장한 증거 문서들이 일부 공개됐다.
5월 말 처음 공개될 때 인용되거나 목록만 발표됐던 문서들이 드러나면서 사건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졌다.
공개된 문서들은 양승태 측이 사법 권력 강화를 위해 반(反) 노동계급 판결을 행정·의회 권력과 거래하려 한 정황들을 아주 분명히 보여 준다.
판사들을 행정적으로 감독해 필요한 판결을 유도해 내려 한 시도 등도 발견된다. 본격적으로 수사해 파헤쳐야 할 문제들이다. 더 철저한 외부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이 문서들은 주로 양승태 체제의 법원행정처에서 그의 심복 구실을 하며 기획조정실장과 차장(법원행정처 서열 2위)을 지낸 임종헌이 작성하거나 작성을 지시한 것들이다.
문서를 공개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보고서의 결론에서 주로 양승태와 임종헌 등의 관료주의 문제로 사건의 본질을 축소했다. 조사단이 보고서에서 문제라고 언급한 중요 문서들 일부는 아직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사법 농단 사건의 실체가 충분히 드러났다고 할 수 없다.
임종헌이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을 봐도, (제목부터가) 3권 분립 와해가 아니라 세 권부가 독자적 이해를 가지고 거래를 해 왔음이 간접 증명된다.
“검사 시절부터 형성된 사법부에 대한 견제 의식과 심정적 반감”이 있는 민정수석 우병우가 대통령 비서실장을 제치고 박근혜의 최측근 구실을 하는 것에 대한 대응책을 고심한 흔적들도 그 사례다.
당시 사법부 최고위층은 원하는 입법을 위해 의회 다수당을 움직이게 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체제 수호적 이해관계가 일치했음이 드러난다.
해당 문서들은 청와대와 대법원 최고위층의 이해관계가 일치함을 강조하고 상호 협력에 따른 득실을 따진다.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 흠집날 수도 있는 원세훈 판결을 사법부 최고위층도 유심히 살피고 있음도 전달했다. 물론 협력 불발에 따른 ‘위험’(“더 이상 BH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다”)도 주지시킨다. 2016년의 조기 레임덕 발생 가능성도 언급된다.
조사단이 문서 손상 등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은 문서 목록에는 원세훈 재판처럼 특정 판결들 전에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재판 동향 등을 상의한 내용도 있다고 한다.
양승태 측은 박근혜 청와대에게 사법부가 “미래 지향적인 ‘경제 부흥’”과 “국가 경제 발전을 최우선 고려”해 “대통령이 추진 중인 노동·교육 등 4대 부문 개혁을 강력하게 지원”하는 판결들을 해 왔다고 제시한다.
ⓒ출처 철도노조
인혁당 등 반민주적 판결과 박정희 유신 체제하 긴급조치로 고통받은 이들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대법원 판결, 이석기 전 의원 등에 대한 중형 판결, 전교조 교사의 국가보안법 판결, 통상임금의 신의칙 판결,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과 철도노조 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 판결, KTX 승무원이 철도공사의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판결, 쌍용차와 콜텍의 정리해고가 법적 요건을 충족했다는 판결, 전교조 시국선언 유죄 판결, 전교조 법외노조화 통보 효력 인정 판결, 밀양송전탑 공사중지 가처분 기각 결정, 제주 해군기지 공사 법적 유효 판결 등이 그 예시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법원이 국회에 제시한 “신속하고 종국적인 배상 및 보상 방안”이 그대로 ‘4·16세월호참사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반영됐다. 양승태 측은 이를 두고 정권이 위기 상황을 조기 극복하도록 협조했다고 과시한다.
그들은 이것들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바람직한 노사 관계를 정립”하려고 노력한 판결이라고 불렀다. 소수 지배자들의 기득권 보장을 위해 노동자들의 삶과 저항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이고, 바람직한 노사관계라는 것이다. 그들의 솔직한 속내일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사법 적폐를 털겠다며 법원이 자체 내부 조사도 하지만, 정작 적폐 옹호 판결들은 이어지고 있다. 백남기 농민을 사망케 한 진압 작전을 지휘한 전 서울경찰청장 구은수에게 무죄를 선물했다. 이재용과 한진 조씨 일가를 모조리 석방·불구속 처리했다. 각종 반(反) 노동 판결들도 이어지고 있다.
계급적
“법관의 잘못된 재판에 대한 직무감독(검토계획)” 제목의 문서들은 이들이 이런 판결들을 위해 법관의 판결 내용들을 감독·통제하려 했음도 보여 준다. 임종헌 지시로 검토·작성했다는 문서들은 재판 결과에 대한 직무감독권 행사의 득실을 따져 보고 있다.
“튀는 판결의 최소화” 잇점도 있지만, 상급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정권으로 재판 결과가 교정되면 판사들의 내부 반발뿐 아니라 사법부 전체 신뢰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조사단의 “조사보고서”는 이 문제에 관해 당사자들을 조사한 결과, 재판 내용에 징계를 포함한 직무 감독 등의 사법행정권을 발동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우세해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상고법원 설립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고 해서 판사들의 (재산 등) 뒷조사까지 실시한 것이나 재판 감독권 행사 검토를 지시한 자가 모두 양승태의 심복인 임종헌인 걸 보면, 재판 내용에 대한 비공식적 간섭마저 없었다고 믿을 근거가 없다.
또 다른 문서(“각급 법원 주기적 점검 방안”)에서는 판사들을 대상으로 “가용한 비공식적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여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야 함 ... 큰 반발이 예상되므로, 철저한 보안 유지 필요” 등을 언급하고 있다.
끝으로, 문제의 재판들에서 다뤄진 KTX 승무원, 쌍용차 정리해고 등은 노무현 정부 때에 시작된 사건들이다. 노무현 정부의 불법 파견 허용과 해고 인정, 무책임한 쌍용차 해외 매각 등이 원죄가 됐다. 또한 전교조 법외노조화 철회나 이석기 전 의원 등 양심수 석방 등을 문재인 정부는 전혀 이행할 생각이 없다. 양승태의 사법 적폐 뒤에 숨어서 문재인 정부가 문제 해결에 침묵하는 것이 위선인 이유다.
녹색당 서울시장 선거 포스터는 명백하게 소수를 타겟팅한 것 아니었나? 기성 진보정당 지지층 중 (그 당들이 충분히 페미니즘적이지 않다고 불만이거나 하는) 일부를 뺏어 오겠다는 선거전략으로 봤고, 그건 그 나름으로 채택할 수 있는 정책으로 본다. 어차피 (선전과 초기 지지층(종자돈) 형성이 목표이지) 당선이 목표인 선거가 아니니. 그렇다면, 그 타겟팅 바깥에 있는 인물들이나, 그 타겟팅에 불안이나 반감을 느낀 기존 진보정당 사람들의 불평도 자연스러운 것.
그런데 반응이 좀 의아하다. 이런 반응들은 포스터 뜯는 것과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알려진 숫자를 봐서는 무슨 서울시 전역에서 공격이 가해지는 그런 건 전혀 아니라고 본다. 구의원 한 선거구에서만도 그보다 많이 벽보 붙을 텐데. 그런데 워마드 같은 데서 홍대 사건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페미니즘의 대표를 참칭하는 시절에 ‘페미니스트’ 호칭에 대한 물정모르는 반감 같은 게 일부에서 서툴게 표출될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걸 대중적 백래시 취급하는 건 과하다. 번역서 한 권 나오니 아무거나 백래시 백래시 갖다 붙이는데, 현실을 살펴 보면, 부적절해 보인다. 백래시 론에 깔린 정치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1980년대 백래시 론은 적어도 계급세력균형과 공식정치의 지형이 모두 우경화하는 레이건 시대를 배경으로, ‘68 시대’가 전진시킨 여성해방 담론, 권리 등에 우경적 공격이 가해지고 역진이 일어나는 걸 가리켰다. 적어도 현실 분석에 기초해 있긴 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이 그런 정치 상황인가??? 우파는 찌그러져 있고, 페미니즘 또는 여성 권리 신장 운동은 고양되고 있다. 이미 1년 전에 문재인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보조 슬로건을 써서 당선했다.(문제는 그러고 약속을 안 지킨다는 거지만)
아쉬운 건, 노동계급 남녀의 단결된 운동으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여기엔 상호간 책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과 단결이 아니라 과장된 피해자성과 생물학적 환원론을 연결시켜서 자기 진지를 방어하려고 하는 정체성 정치의 방어적 급진성이 오늘의 정세에 정말 효과적인 방향인지 모르겠다. 내가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가장 불만이었던 것도, 현실의 과장 측면보다는 소설 안에서 여성도 남성도 단 한 명도 현실에 저항하는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었다. 작품은 일부러 다큐처럼 구성했는데 말이다. 공감은 시선의 방향과 첫걸음일 뿐이지, 문제 해결에 관해 무엇도 말해주는 건 없다. 지금 필요한 게 ‘함성’일지, ‘비명’일지는 각자 판단할 몫이겠지만, 현실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별개로 ‘비명(미러링도 일종의 비명이라고 본다)’의 방식이 여성해방이라는 목적을 향해 가는 길에서 적어도 효과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운동에서 협력을 추구할 줄 알면서도 치열하게 논쟁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82년생 김지영》의 출간년도(2016년)와 1982년생을 맞춰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경력단절 위기에 처한 자녀가 매우 어린 기혼 여성의 분노를 컨셉으로 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여성의 삶과 주변 환경들을 우리가 경험적으로 두루 살펴 보면, 이 소설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시기 여성들에게 가족 안팎에서 가해지는 유무형의 (실재하는) 압력이 어떤 개인들에게는 남성 결탁 음모처럼 여겨질 법하다.
물론 그런 판단이 정확한 건 아니다. 핵심에는 노동계급에게 육아 책임이 전가되는 문제가 있음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은 가지만, 여러 억울함과 차별을 ‘개개인의 피해자화’라는 정서적 방법보다는 좀 더 분석적 계급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게 더 유용하고 해방적이라고 본다.
우파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하에서 재판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사법부 자체 조사에서 불거졌다. 사법 적폐의 실상이 일부 드러난 것이다.
5월 25일에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박근혜 정부 당시 대법원장 양승태가 법원 내 블랙리스트를 관리하고, 주요 판결을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한 의혹과 관련 자료들을 공개했다.
발표를 보면, 양승태는 법원행정처 판사인 임종헌 등을 통해 진보 성향이나 정부 비판적 판사들을 블랙리스트화해서 관리했다.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판사들의 모임도 사찰 대상이었다.
무엇보다반(反) 노동계급 판결을 위해 지배계급이 모의를 하고 거래해 온 관행이 일부 드러났다. 박근혜 하 대법원은 통상임금, 전교조, KTX 승무원, 철도노조 파업, 세월호, 통합진보당 등의 판결에서 재계와 박근혜 측과 재판을 놓고 상의와 보고를 해 왔다. 법원 내 공무원노조 대응 검토 문서도 있다.
대법원의 반 노동 판결은 많은 노동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KTX 열차승무원지부 김승하 지부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제공 최윤석
전교조가 낸 정부의 법외노조화 정당 판결에 대한 재항고가 기각되면 “[청와대와 법원] 양측에 윈윈의 결과가 될 것”라고도 했다. 이 검토 문서는 판결 시점의 유불리까지 계산하고 있다.
“신의칙”이라는 황당한 개념을 도입해 사측의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눈감아 준 대법원 판결의 의의는 이렇게 정리했다.
“재판 과정에서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최대한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 “판결·선고 결과에서도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의 고민을 잘 헤아리고 이를 십분 고려하여 준 것.”
독재 정권의 판결 등 과거사 재심에 관해서는 섣불리 국가 배상을 결정하지 말라는 지시도 나온다. 실제로 1974년 인혁당 판결 피해 가족들이 대법원 판결로 오히려 보상금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이 밖에도 성완종리스트 대응 방안, 전 국가정보원장 원세훈 판결 관련 동향과 대응, 통상임금의 경제적 영향 분석 등이 포함된 검토 문서 목록도 공개됐다. 상황이 이러하니 가령 “잘못된 재판에 대한 직무 감독 검토 파일” 같은 제목의 문서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2016년 11월에는 박근혜의 하야 가능성 검토 문건도 나온다.
이런 판결과 협상으로 사법부가 정부와 정치권에게서 얻어내려 한 것은 상고법원 설립이었던 것 같다. 대법원은 중요한 판결만 하고 별도로 상고 재판 건들을 처리하는 법원을 만들려 한 것이다. 판사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편리를 위해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전교조, KTX,쌍용차등 재판 거래가 폭로됐거나 그 시기의 부당한 판결로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 모두 분노해 반발하고 있다. 5월 29일에 KTX 승무원 노동자들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대법원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 어둠의 판결들로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 자살 등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KTX 승무원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2심에서 모두 이겼는데, 대법원이 납득 못할 이유로 판결을 뒤집어, 기존 판결로 지급받던 생계비를 토해내야 하는 처지로까지 몰렸다. 바로 이 판결 때문에 애통하게도 조합원 1명이 절망과 비관을 못 이기고 목숨을 버렸다.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고법 판결을 파기 환송시켜 회계 조작과 해고에 면죄부를 준 대법 판결 이후에 쌍용차에서는 노동자와 가족 등 4명이 세상을 등졌다.
계급 전선
일부에서는 3권 분립을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가 어겼다고 비판한다. 반대로 우파와 사법부 일각에서는판결 내용까지 문제 삼는 것은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판결 내용과 과정에서 드러나듯이진짜 문제는 3권 분립을 어긴 게 아니라, 권력을 쥔 자들이 노동계급을 적대하는 전선에서는 뜻과 행동을 조율해 왔다는 점이다.
법원 스스로 법리보다도 자신들 파벌과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고려를 우선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양승태는 박근혜의 강압에 떠밀려 이런 짓을 한 게 아니다.
자본주의 법 자체가 일반으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것이 아닌데도, 그 운영마저 이따위라면 노동자들이 사법부의 계급 편향적 판결을 불신하는 것은 정당하다.
현 대법원은 양승태 추가 조사 등에 미온적이다. 물론 한편에서는 검찰 수사에 맡기겠다는 말도 나온다. 당장은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그러나 눈치를 본다는 것 자체가 진정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적폐의 계급적 성격만 더 드러낼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법부 내 일이라며 책임지고 해결하기를 기피할 것이다. 최저임금법 개악안 국회 통과에 입 다물고 있듯이 말이다. 3권 분립 등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확립을 추구하는 개혁주의 정치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이번에 감리위원회가 분식회계라고 결론을 내려도 금융위 내 증권선물위원회를 한 번 더 거쳐야 하므로 결론은 더 지켜봐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경제관료들의 기구로 친기업 성격이 강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가 화제가 된 직접 계기는 5월 1일 금융감독원이 분식 회계 문제를 공개 지적한 일이다.
이것이 쟁점인 이유는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삼성 경영권의 핵심 기업이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 삼성증권 등을 지배한다. 그런데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작업 당시에 이재용은 삼성물산 지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재용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을 삼성물산과 합병시켜서 삼성물산 지분을 대량 확보하려 한 것이다.
박근혜와 이재용의 뇌물죄 혐의의 알맹이가 바로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지지해 준 문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일모직의 자회사로 삼성의 바이오(제약) 산업 진출용으로 만든 바이오벤처 기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경영권 승계 작업을 앞두고 (미국의 생명공학기업인 바이오젠과 합작으로 만든)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를 (바이오젠에게서 경영권을 지킨다는 핑계로) 인위적으로 높여 적자 행진이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단숨에 수조 원 흑자 회사로 전환시켰다. 자회사의 가치가 오르자, 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한) 시장 가치도 올랐고, 투자 자금도 2조 원 넘게 끌어모았다.
그 결과로 (삼성물산에 대해) 제일모직이 유리한 비율로 합병을 하게 된 것은 이재용에게 유리했지만, 기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손해라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것에 업무상 배임죄가 적용된 이유다.
그러므로 금감원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갈등은 삼성 경영권 승계와 이재용 뇌물죄 재판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갈등의 양상이 만만치 않은 이유다.(금감원장에 임명된 김기식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건드리려다가 비리 폭로라는 역공으로 밀려났다는 의혹이 있다. 김기식의 출신 단체인 참여연대는 2015년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문제를 지적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삼성과 갈등을 빚는 것은 낯설다. 노무현 정부가 친삼성 정부였던 것은 너무 공공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권 초에 정부가 임기 동안의 주도권을 놓고 재계와 샅바 싸움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재용이 재계의 대표 적폐로 공분의 대상인 것이 고려 대상이 됐을 것이다. 검찰이 무노조 경영 방침에 따른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와해 공작 수사를 벌이는 이유일 것이다. 삼성 그룹은 태극기 집회, 댓글부대 등에 돈을 대며 우파 통치를 지원하는 선봉이었다.
정부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들의 주주의 의결권 행사에 관한 자체 규범. 국민연금이 삼성 합병에 찬성한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맥락에서 거론됨.) 도입을 시사했다.
최근 친기업인 금융위원회도 삼성생명에게 20조 원이 넘는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하라고 압박했다. 관련 법(보험업법)이 개정될 예정이라는 게 근거다. 그러나 국회에서 아직 법안이 통과된 게 아니므로 금융위의 압박은 시늉 뿐일 확률이 높다.
또 하나의 적폐 청산 시험대가 될 것이다ⓒ이미진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기업주 편이다. 올 봄에 (박근혜도 못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개악에 성공했다. 5월 29일 국무회의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층 소득 확대에 걸림돌이 된다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 개혁이 궁극으로는 기업들의 경쟁력에 도움을 주려는 것으로 기업 규제와 사회적 책임 부과와는 본질적 관련이 없다는 게 이런 데서도 드러난다.
오히려 금융위원장 최종구는 금감원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공개 거론을 비판했다. 경제부총리 김동연도 금감원을 비판했다.
금감원의 대(對) 기업 공세는 결과도 신통치 않다. 금감원은 하나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KB국민금융지부 회장 윤종규의 채용 비리 혐의를 찾아내 제기했으나, 오히려 둘이 연임에 성공한 반면, 금감원장이 두 명이나 날아갔다. 해외 주주들이 두 회장을 지지하니, 금융위나 금감원도 꼼짝 못 했을 것이다.
적폐 청산 염원과 한국 자본주의 수호 사이에서 샛길을 찾던 문재인 정부에게 적폐 청산의 속도와 범위를 놓고 국가기관 내 엇박자들이 드러나는 건 위험 신호다. 25일에는 사법부의 반(反) 노동계급 판결 거래 의혹이 터져 나왔다. 정부 안에서도 섣부른 공개라며 곤혹해 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만약 5월 31일 금융위의 결정으로 이재용에 면죄부가 주어지고, 사법부 적폐에 대한 강력한 수사와 재심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문재인의 적폐 청산은 동력을 잃고 위기가 시작되는 계기로 바뀔 수 있다.
이미 최저임금 개악으로 노동자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문재인은 북미 정상회담 성공에 매달릴 듯하다. 그러려면 트럼프에 더 아부를 해야 하므로 그 길조차도 모순과 딜레마로 가득하다.
5월 21일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만기 출소를 반년 앞두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조계사에서 구속된 지 2년 5개월여 만이다. 지난 1년 동안 노동계만이 아니라 종교계도 한상균 위원장 사면을 요구해 왔다. 박근혜의 악행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다 구속됐으므로, 박근혜가 파렴치범으로 탄핵된 마당에 사면·복권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를 거절했고, 오히려 같은 죄목으로 2년 넘게 수배 생활을 하던 이영주 전 사무총장을 구속했다. 게다가 정부는 석방 당일 국회에서 최저임금법 개악을 시도했다. 대통령이 해외 방문으로 청와대를 비운 사이에 여당이 국회에서 개악을 시도하는 일은 박근혜 때 흔히 보던 일이다.
5월 21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원본]ⓒ조승진한편, 이번에도 이석기 전 의원 등의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 구속자들은 가석방에서 배제됐다.
이 사건은 자주파 성향의 활동가들이 모여 자신들끼리 정치 토론을 벌인 것을 마치 봉기 준비 모임이라도 되는 양 왜곡·과장한 사건이다. 그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프락치 공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국정원이 공개한 강연 내용에 왜곡이 있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결국, 당시 박근혜 정부가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과 임기 첫해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노동자 투쟁을 막아 보려고 상황을 뻥튀기해 여러 활동가들을 구속한 사건이었다. 물론 그 시도는 실패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한국 구명위원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유독 내란음모 사건 구속자들을 가석방에서[조차] 배제하고 있[다.]”
구명위원회는 정권이 바뀐 후 1년 동안 종단, 엔지오(NGO), 국제인권단체들이 줄기차게 노력했지만 납득할 만한 해명도 없다고 정부를 규탄했다.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도 현재 구속된 양심수 15명을 모두 특별사면으로 석방해야 한다고 논평을 냈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면서도 양심수 석방에 관심이 없는 일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위선을 보여 준다. 남북 화해를 추구하는 마당에 국가보안법과 (그에 준하는) 형법상 내란음모 조항을 이용한 탄압을 시정하려 하지 않는 것도 위선이다.
문재인이 내놓은 (노동 존중을 포함한) 기본권 확대 개헌안이 선거를 위한 정략적 보수 야당 폭로용에 불과하다는 것도 드러난다.
1년 전 문재인 취임 직후 난데없이 민주노총과 사드 반대 성주 주민들, 좌파 노동단체들에게 온라인 비난이 가해졌다.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으니 문재인 정부에게 뭘 해 달라고 떼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민주노총이 이명박을 지지했다는 '가짜뉴스'도 등장했다. 총리 이낙연이 기자 시절 전두환을 찬양한 기사를 찾아내 폭로한 〈노동자 연대〉 기사는 가짜뉴스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박근혜 퇴진 촛불에서 민주노총은 환영받았고, 사드 배치 철회 요구도 지지를 받았다. 촛불 광장에서 우파 정권 출신자들은 너나없이 “부역자”로 취급받았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이런 공격은 문재인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 쟁점들에서 문재인 세력이 선제 공격을 한 것이었다. 여론 공작과 달리 노동자들은 문재인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약속 위반을 비판할 자격이 있다.
가령, 최근 민주노총은 2017년부터 올해 4월까지 민주노총 조합원이 7만 6447명 늘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자료를 더 살펴보면 “[가입 증가 추세는] 2016년부터 목도되고 있는 경향”(민주노총)이다. 촛불 전인 2016년에 이미 3만 6343명이 가입해 가입 규모가 대폭 증가했다.
이를 봐도 부분적으로 활성화되던 노동자 투쟁이 촛불보다 선행 요인이었다. 신규 가입이 가장 많은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 등은 박근혜 첫해부터 투쟁의 포문을 연 노조들이다.
2015년 4.24 총파업은 이후 투쟁의 예고편이기도 했지만, 세월호 1주기 투쟁을 힘있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원본]ⓒ조승진
민주노총도 “2015년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과 민중총궐기 등으로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을 선도적으로 이끌었으며, 2016~2017 박근혜 퇴진 촛불항쟁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데 대한 대중적 주목이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노동자 투쟁이 매개가 돼 촉발된 촛불 운동이 박근혜를 쫓아냈고 우파를 약화시켰고, 덕분에 문재인이 집권했다. 따라서문재인이 노동자 투쟁에 빚을 진 것이지, 그 반대가 전혀 아니다.
개혁의 성격
문재인 정부의 성격 문제를 보자. 이 정부는 민주당 정부이자 노무현 계승 정부다. 민주당도 지배계급에기반한 친자본주의 정당이다. 김동연 같은 경제관료들이 실권을 쥐고 있고, 노조 파괴 공작 연루자가 청와대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의 실세들은 주로 노무현의 청와대에서 문재인과 손발을 맞췄던 사람들이 많다. 김경수도 그중 하나다.
전임 민주당 정부들은 “제3의 길” 노선을 추구해 왔다. 이를 생산적 복지, 사회투자국가 등으로 불렀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적 포용국가”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 어젠다를 풀어 말하면, 시장경제에 강조점이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 성장에 강조점이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이다. 문재인의 개혁은한국 자본주의의 생산성과 성장 동력을 제고하려는 합리화라고 볼 수 있다.
가령 “재벌 개혁”은 포퓰리즘적인 구호지만, 노동자들의 편에 서는 반反기업주의가 전혀 아니다. 바이오(의료 민영화) 등 신 산업을 육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 재벌들이 문어발 구조에 안주하지 말고 투자를 늘리라는 것이다. 또한 중소기업도 경쟁에 끼게 해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기업이 해고를 더 쉽게 하되, 대신 조금 더 관대한 실업보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을 통해서 국가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주자는 게 문재인 정부의 복지다.
그래서 재벌 개혁이나 소득주도성장론의 논리는 이렇다.
“재벌 독과점이 문제다. 이들의 갑질로부터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을 살려야 한다. 그런데 재벌의 갑질에는 고임금을 압박하는 강성노조가 중요한 요인이다. 비정규직 임금을 늘려 정규직과의 차이를 좁히면 비정규직을 고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 정규직이 임금을 내리면 이런 상생이 가능하다(문재인식 동일노동 동일임금).”
결국, 경제주체 간 상생과 소득주도 성장에서는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양보가 핵심 내용이다. 이런 양보를 받아 내려니 ‘사회적 대화’가 중요한 것이다.
‘변화’의 성격문재인 정부는 노동자 투쟁에 빚지며 탄생하고도 노동계급 염원과는 함께 가려 하지 않는다[원본]ⓒ출처 청와대
문재인의 정치 개혁도 자신들이 한국 자본주의를 더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음을 보여 주려는 것에 초점이 있다. 정치 구조를 시스템화(견제와 균형)해서 누가 집권해도 안정적인 통치를 하자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민주적 권리 신장은 진정한 목표가 아니다. 그래서 김정은과는 “10초 월북”으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같은 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보다 먼저 노무현 청와대의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은 현행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에 당선하자마자 레임덕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법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추진도 해 보기 전에 임기가 끝나 책임 정치가 어렵다고 한다. 이런 문제의식들이 문재인의 개헌안에 반영돼 있다.
또한 적폐 청산 염원을 포퓰리즘적으로 활용해 경쟁세력인 우파에게 유리한 인적·제도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중도·진보 포퓰리즘 세력을 포섭하는 효과도 노린다.
안보에서의 목표도 ‘부국강병’이다.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지만, 평화를 통한 성장을 강조한다. 진보를 자처하지만 한미동맹 유지·강화에 이견이 없다. 자주 국방도 강조한다. 미국의 패권 질서 유지에 한국이 더 기여해 한국 자본주의의 위상을 더 높이려는 것이다.
딜레마
문재인 정부의 기조는,친미적 자주,좌파 신자유주의,사회적 대화 중시같은 노무현 정부의 특징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은 국가 발전을 위한 국민 통합(계급 화해)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집권 후 얼마 안 가서 진보 개혁을 바란 대중의 실망과 반발, 환멸과 분노에 부딪힌 전임 민주당 정부들과 문재인 정부는 달라 보인다. 왜 그럴까?
앞서 지적했듯이 정권 출범 전후의 사회적(계급) 세력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훨씬 더 반(反)우파 흐름이 강력한 상황에서 문재인은 임기를 시작했다.
1주년을 맞아 〈한겨레〉는 문재인 지지율을 높이는 요인들로 남북 정상회담, 촛불 뒤 역전된 보수·진보 지형, 보수 야당의 지리멸렬 등을 꼽았다.
남북정상회담 당일 한 독일 기자는 지난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이번이 다른 것은 대통령이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회담을 여는 거라고 지적했다. 정상회담은 높은 지지율의 계기이지 원인은 아니다. 강력한 반(反) 우파층의 형성이라는 세력균형 문제를 더 주된 요인으로 다뤄야 한다.
문재인은 촛불 때부터 지배계급 다수에게 자신이 이 성난 대중을 잘 관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려 했다. 그런데 그러려면 어느 정도는 그 염원을 받아안는 시늉도 해야 한다. 사실 이것이 핵심 딜레마다. 적폐 청산을 공언했지만 가다서다 하며 지배계급과 노동계급 양쪽 눈치를 보며 신중하게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삼성 무노조 경영 수사처럼 재벌을 압박하기도 하지만, 막상 이재용 등은 모두 석방됐다. 근로기준법 개악 같은 선물도 줬다. 노동자들에게는 무엇을 줬나? ‘희망에 찬 약속’을 줬다. 문제는 약속 ‘이행’은 선물 목록에 없다는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노동 개악 완전 철회, 노조 인정, 민주노총 지도부 석방 등등.
그런데도 운동 진영이 문재인 비판을 회피한다. 높은 지지율 때문에 문재인 정부를 허투루 비판하다가 고립되고 비난 받을 걸 염려하거나, 문재인 비판이 행여라도 우파 부활에 도움 될까 봐 걱정한다. 〈한겨레〉는 주류 보수 야당이 지리멸렬한 걸 대안 부재라고 지적했지만, 진보·좌파도 대안 세력으로 존재감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개혁의 본질이 드러나고 실망할수록 왼쪽 대안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파(의 부활)에 유리해진다. 문재인 정부는 그 본성상 우파와는 타협해도 좌파와는 타협할 수가 없다. 이를 잘 아는 강성 문재인 지지 세력은 좌파를 침묵시키는 데에 사활을 거는 것이다.
문재인 국정수행 지지율이 높지만, 개별 건들로 보면, 드루킹 특검이나 김기식 사퇴는 찬성이 절반을 넘었다. 묻지마 지지는 아닌 것이다. 현상만으로 상황을 판단해선 안 된다. 좌파에게도 기회는 있다.
그럼에도 더 나은 대안이 제공되지 않으면 문재인 지지율은 유지될 것이다. 적어도 보수 야당에 의해서 문재인 정부가 약화되는 건 보고 싶지 않아서이다.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다. 지금도 정상회담이 잘되기를 바라서 지지가 높은 것이다.
개혁을 쟁취하려면 대규모 투쟁이 필요하다. 그것은 노동자 투쟁일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계급투쟁의 정치가 대안이 되도록 해야 한다. 경험의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래도 지금 대중 투쟁을 위해 준비하고 개입하는 일들은 할 수 있다. 여기에 좌파의 존재 이유가 있다.
어느새 운동 안에 개혁주의 분위기가 세졌네! 하고 생각한 순간, 원칙과 이론, 전략(정치)의 자리를 정체성정치나 감수성 등의 용어로 포장된 도덕주의가 채우기 시작했다. 여러 실수와 이론 취약, 사기 저하 등으로 새 페미니즘에 대응하지 못한 기존 좌파들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며 ‘운동권 사또 놀이’ 하려는 쪽에서 자신들은 도덕적 의무에서 예외인 듯 구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곳곳에서 분열과 불신을 일으켜 그나마의 긍정성도 까먹으면서도 돌이켜 성찰할 줄을 모른다. 자기중심주의와 분별없는 열정이 문제인데, 나이 문제도 아니다. 민주노총 여성부장의 해괴한 행태가 딱 그렇기 때문이다.
워커스/참세상도 전통있는 좌파매체였는데 어쩌다 보니 참 이런 수준이다. 진정성있게 성찰하고 시정하려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극단적으로 굴수록 워마드 종류나 부추겨 결과적으로 좌파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자신들의 자아만 맹동적 분열적 혐오주의의 깊은 심연으로 삼켜져 버릴 뿐임을 직시했으면 좋겠다.(5.19)
2.
홍대 건 수사가 이례적으로 빨랐다는 말은 동의하기가 힘들다. 남성 누드모델이 무슨 사회적 힘이 있다고(누드모델 보호에 무슨 실익이 있다고) 경찰이 그러겠는가. 게다가 일반 몰카와 달리 이건 수 명으로 용의자가 특정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용의자는 경찰에서 핸드폰을 버렸다고 증언했다. 그러니 구속 요건은 된다.
물론 피의자 입건과 구속은 다르긴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구속됐다기에는 전후 정황이 맞질 않고 경찰이 이리저리 눈치 보다가 처리한 걸로 본다. 그러나 이게 진정한 쟁점이 아니므로 이렇게 논쟁이 되는 것은 누군가의 의도적 발화/행동에 의한 프레임 이동으로 볼 수 있다.
이제 문재인이 한마디 거드니, 경찰청장까지 대(對) 여성 범죄 수사를 철저하게 한다고 한다. 이것은 이중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성들의 불만과 위협에 대한 조처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국가/경찰에게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라고 요구한 것이라는 점.
결국 스스로의 정체성을 항구적 피해자로 자리매김하며 생물학적 남성 전체를 적(단일 집단)으로 돌리는 종류의 페미니즘은 사회에서 해방의 힘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국가와 동맹하고 국가의 통제력 강화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가기 십상이라는 게 새삼 입증되고 있다고 본다. 이것이 중간계급적 개혁주의와 ‘잘’ 결합되면 그 ‘국가의 여성화’(생물학적 여성의 고위직 진출 지지)에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는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그들 스스로 표방했던 페미니즘의 희석이다.(5.21)
3.
오늘날 좌파와 진보가 이런 종류의 페미니즘과 대결하기는커녕 아부하기에 바쁘다는 건, 혁명이든 개혁이든 대중 스스로 단결한 행동으로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대(大)전망에서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개개인들의 관계와 태도, 도덕성을 개선하려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성해방 문제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변혁과 개인의 혁신을 어떻게 관계 지으려 하는가? 마르크스는 일찌기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 혹은 자기변혁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또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했다. 혁명이 필요한 이유는 그 과정에서만 대중이 스스로를 혁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알맹이를 이루는 노동계급의 자력해방과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정신의 한 측면이다.
그러므로 집단적 실천, 혁명적 실천, 계급투쟁과 계급투쟁에의 의식적 개입 활동을 개개인들의 의식과 도덕성을 바꾸는 일과 대립시키고 경멸하는 일은 오해 아니면 의도적 기각 행위다. 둘 중 무엇이든 그 자신은 노동계급 대중이 스스로 자기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다.(워마드가 남성 비하적 용도로 쓰는 단어들이 대체로 노동계급 남성을 비하는 것임도 시사적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좌파가 이런 종류의 정치에 굴복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개혁주의로의 후퇴이고 따라서 정치의 타락이다.(5.21)
4.
메이드 인 다겐함은 꽤 괜찮은 영화다. 영국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화에 물꼬를 튼 걸로 평가되는 다겐함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묘사한다. (실제로는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는 법안을 발의하려 했던) 노동당 윌슨 내각의 노동부장관 바버라 캐슬이 미화된 게 아쉽지만 말이다.
그런데 변혁정치는 이 영화가 자본만이 아니라 남편과의 전쟁도 치르는 걸 보여 준 영화라고 평한다. 그러고 보면, 영화가 바버라 캐슬을 좋게 묘사한 것에 페미니즘의 영향이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파업 와중에 남편과도 전쟁을 치러야 했다는 식으로 영화를 평하는 것은 생뚱맞다. 도대체 파업 노동자의 현실을 알고나 하는 건지, 영화를 성실하게 본 건지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평이다. 영화의 주인공 가정의 갈등에는 (물론 남성적 편견도 전혀 없진 않겠지만) 무노동무임금이 적용되는 파업이 길어지고(생활고가 심해지고) 파업의 승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배경이 있다.
그러니 주인공 부부의 갈등은 남여 역할을 바꿔 놔도 흔히 벌어지는 갈등이다. 그걸 남성 파업 노동자가 나는 와이프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파업을 했다고 묘사해야 하나? 아내의 파업이 승리하는 게 남편 노동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나??? 영화에서는 파업 승리가 불투명해지면서 여성 노동자들도 갈등을 겪고 이탈자도 생긴다. 그것을 여성혐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나?
뿐만 아니다. 영화에는 파업 여성 노동자들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좌파 남성 활동가가 비중있는 배역으로 나온다. 주인공의 남편은 부인의 고군분투를 직접 목격하고 사과하고 전폭적 지지를 표한다. 주인공 여성은 남편과 논쟁하면서도 남편을 투쟁하는 노동자의 관점으로 설득하려 하지, 너는 여혐이야 하는 식으로 내몰지 않는다. 다소 페미니즘 성향이 있더라도 영화 자체는 결코 남성(노동계급)에 적대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영화평을 통해 노동자들의 현실과 투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도 미루어 짐작이 된다. 둘 다에 동의하기가 힘들다. 그런 편협한 관점이 아니고도 얼마든지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영화에 고무되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찬양할 수 있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을 표방했는데, 변혁당의 정치가 갈수록 수상해진다.(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