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공학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 평소 떠오르던 이런저런 단상들을 좀 두서 없이 정리함. 공학에 대한 것이지 공학은 아님. 공학 모름.



2012년 박근혜의 집권 전략

경제·안보 위기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정치 양극화 상황에 대한 대응.

기본 기조: 강력한 우파 결집 + 이를 통한 중간계급/중도보수 견인

보조 기조: 경제민주화 같은 약팔기로 야권 후보들과의 차이 흐리고 물타기

그해 총선 과반 달성과 대선 승리로 성공을 거둠.


이후 박근혜 주도 여권의 선거 기조로 주욱 이어짐. 2014년 선거에서는 서울시장, 다수의 교육감 선거에서 패하면서 낭패를 보기도 했으나, 각종 재/보선에서는 여전히 먹힘.


경제·안보 위기와 정치 양극화가 여전해 이번 총선에서도 기조 큰 변화 없음. 다만, 집권 후로서 복지 공약 파기, 노동개악 등 고통전가 공세로 보조 기조로 이용한 약팔기/물타기가 어려움. 이 때문에 지지층에 균열이 생김.

그래서 우파 결집을 더 강공으로 하려고 함. 다만, 야권이 약화돼 있는 것이 호재.


그럴수록 박근혜의 일방독주 스타일에 대한 반감과 정치 위기는 고착화됨. 심지어 세칭, 온건보수, 합리적 보수, 중도적 보수층, 중도층, 강남우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집단에서 지지층의 상당한 이탈을 초래함. 


노동운동 투쟁 분위기 회복했으나 정치지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에는 역부족. 다만 정의당 득표력이 소폭 상승. 


이런 상황에서 야권의 중구난방 사태와 통합 논쟁

전반적으로 노동자 투쟁 등으로 박근혜 지지 놓고 양극화 현상 발견되나, 재/보선은 턱없이 야권이 져 왔음. 이는 야권이 기대치 충족을 못 시키기 때문.


야권 주도자들은 이를 중원 확보 문제로 여기는 듯함. 그래서 문재인 파와 안철수 파 모두 2012년 박근혜 집권전략에서 벤치마킹을 하는 걸로 보임. 김종인/이상돈 영입 경쟁도 그 사례. 김종인 포지션의 모호함.(우파에겐 덜 우파, 좌파에겐 우파)이나, 노동운동 등과 일정한 선을 긋거나, 안철수가 경제는 진보지만, 안보는 보수다. 하는 식으로 나오는 것. 이는 앞서 지적했듯이 양자 구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새누리당을 찍다가 돌아서는 사람들을 잡겠다는 것.


그럼에도 양측의 구체 전략은 달라 보임.


문재인 파는 중원을 확보하는 2012 구도 어겐 전략인 듯. 즉, ‘보수 vs (약한) 진보’ 양자 구도 전략. 기존 정치양극화 추세에 안전하게 부합하겠다는 것. 기존 민주당 스탠스를 중심에 놓고 좌우로 벌려 하는 방식.(2012년과 비교하면 오른쪽으로 좀 더 강조함, 그때의 패배를 온건 보수 성향의 이른바 중원을 놓쳐서라고 평가하기 때문.) 그런데 이는 모순을 낳게 됨. 진보정당을 동맹으로 포섭하는 데 드는 정치비용이 오론쪽으로의 확장에 방해가 됨. 그러나 양자 구도를 만들려면 진보정당을 포섭해야 함. 그러나 흡수통합해 버리기에는 진보정당의 토대인 노동운동이 호락호락하지 않음. 그래서 늘 동요하고 기회주의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게 됨. 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자본가계급 정당으로서 더 왼쪽으로 갈 수도 없는 조건을 반영. 


안철수 파도 문제의식의 중심에는 정치 양극화에 대한 대응이란 문제가 있음. 안철수는 양극화에 맞서 국민통합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의 기반으로 온건 보수(중원)를 삼으려는 것.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가 바로 그런 전략에서 나온 구호. 안철수는 양자 구도가 아니라 강성보수-중도-강성진보(좌파)의 3자 구도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생각.(이는 공교롭게도 노무현 세력이 의도했든 아니든 2002년 노무현의 승리시 대선 구도다.) 안철수는 이번 총선을 이 대선 구도를 위한 사전 포석 계기로 삼으려 함. 따라서 야권연대, 특히 야권통합은 총선에는 도움이 돼도 대선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임. 따라서 안철수에게는 강성진보와도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함.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데, 정치 양극화 추세에서 사실상의 봉합 전략이라 장기화될 수 없음. 지금의 더민주당도 중도화로 가려 하면서 허덕이는데 이보다 더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에 공백이 생김. 이를 만회하려면 이 공백보다 오른쪽에서 얻는 표가 더 많아야 됨. 이것은 새누리당의 강력한 우측 구심으로 쉽지 않음. 그래서 왼쪽을 크게 약화시키거나 더 강한 우경적 제스쳐가 필요하게 됨. 안철수가 노동/진보 정치세력만이 아니라 더민주당의 온건진보들에게도 더 신경질적 공격을 할 가능성이 있음.  


이런 야권 대선 구도 전략의 미묘한 변화는 정치 양극화 효과 때문.


-양극화는 양 극에서 또 2차 양극화를 낳음. 특히 왼쪽에서 더 급진적으로 양극화를 추구하는 것과 양극화에 대한 반동으로 양극을 봉합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반동(역작용) 역시 발생하게 됨. 양극화 속의 양극화 발생. 이것이 강준만 등의 증오마케팅론, 싸가지진보론이 함축한 바이며, 노동운동 내에서 좌파가 지도부로 부상하는 동시에 야권 내에 강준만/조성주 류도 주목을 끈 이유.

-그런데 박근혜는 본인 자신이 우측 극(축)이므로 자기로 당기는 힘을 극대화할 수 있음. 그러므로 딜레마를 겪지는 않을 수 있음. 그 방향이 승리하냐를 떠나서. 그것은 투쟁의 힘이 강력/강경할 때만, 내부의 양극화를 촉발할 것임.

-반면, 더민주당은 양극화의 왼쪽 축이 아니므로 100% 능동변수가 못 되고 야권 전체 구역 안에서 좌우 압력에 시달리는 딜레마를 겪게 됨.(그래서 동요)

-노동운동이 더 부활해 노동/진보 정치 세력 내 좌파의 세력이 강해지면 더민당의 양자 구도 전략은 위협받게 됨. 

-이상의 요인들 때문에 더민당이든 국민당이든 포퓰리즘만으로 새누리를 고립시킬 수 없음. 그래서 안철수의 3자 구도나 문재인의 변형된 양자 구도 전략이 나오는 것이고, 두 전략 모두 노동운동을 적절 수준에서 관리해 자신들의 야권 내 헤게모니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해야 함.

-더민주당의 양자 전략은 현재 중원화를 중심에 두고 있으므로 노동/진보 정치세력과는 앞으로 갈등할 소지가 더 큼. 물론 선거 승리를 위해 야권연대를 진행하기는 할 것임. 그러나 2012년처럼 적극적이거나 개방적이지 않을 것임. 

-안철수의 중원 전략이 단순한 우경화와 몰락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사실은 전체 공식정치 판 자체가 좌경화해야 함. 그래야 안철수가 이전의 진보적 외양을 유지하면서도 중원 전략을 펼 수 있음.

-둘 모두의 상황을 보면, 노동/진보 정치세력의 전략적 야권연대는 선거공학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측면이 있음.

-더민주당이 양자 구도 전략을 고집하면, 아마도 내년에 가장 강력하게 부상할 인물은 박원순일 가능성이 높음. <한겨레> 등은 현직 서울시장으로서 이른바 행정능력과 엔지오개혁주의로 좌우 모두 어필 가능하다고 부각시킬 것이고 이것은 상당히 어필할 것임.

-새누리당은 단기적으로 안철수의 총선 다자 구도 전략이 관철되는 게 유리하니 그것을 바랄 것, 그러나 길게 보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로 상징되는, 물론 안보는 평화, 경제는 보수일 수도 있음) 모순된 처지의 중간계급 기반을 치고 들어오는 안철수가 길게 보면 반가울리도 없음. 둘 다 분열된 (그래서 다투다 서로 약화되는) 상태를 관리하길 바랄 것임.


전략적 야권연대 방침은 대선에서 양자 구도를 전제한 것. 이를 이미 결정한 정의당이나 인민전선을 추구하는 구 통진당 계열들이 더민주당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면서 안철수를 고립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취하는 이유. 단기적으로 야권을 우경화하는 효과를 낳는 안철수는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나, 노동/진보 정치의 방향도 지속해서 양자 구도 전략이어서는 곤란함.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모두 양극화의 통합, 봉합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에 호응하는 전략적 야권연대는 필연적으로 노동운동을 적절 수준에서 관리하려는 전략에 호응하라는 압력에 크게 노출됨.


노동계급 운동은 독자노선을 기본으로 놓고, 공식정치 지형을 흔들고 왼쪽으로 오게 할 힘이 있는 계급투쟁 활성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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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ㆍ26 재보선에서 진보정당은 위기와 가능성을 모두 보여 줬다.

우선 진보정당과 후보들은 무대 위에서 별로 시선을 끌지 못했다.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가 얻은 표는 2퍼센트 남짓이었다. 야권연대를 위해 ‘어차피 사퇴할 후보’라며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조차 최규엽 후보 선거운동이 아니라 당선이 유력한 박원순 후보와 선을 대고 약속을 받아내기 바빴다.[각주:1]

진보의 독자성을 훼손해서라도 의회에 진출하는 게 실질적 개혁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해 온 게 민주노동당 지도부였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거둔 성적을 보면 성장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민주당과 단일화하지 않고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11~27퍼센트를 득표한 것이다. 이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는 거의 모두 낙선했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서울 노원구에서는 민주노동당이 당선했는데, 이는 민주노동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서울 양천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낙선한 것과 대조된다. 양천구에서 민주당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표의 70퍼센트도 채 가져가지 못했다.

반MB ‘계급’투표를 한 노동계급 청년세대가 민주당을 마뜩잖게 여기고 있으며 이들 중 의미있는 수가 진보정당을 지지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이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의 실체인 것이다[각주:2]

만약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대통합이 성공했다면 이 가능성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강령까지 후퇴시키며 친자본주의적인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추진하다가 진보대통합을 망쳐 버렸다.

그 결과 반한나라ㆍ비민주당 정서의 주도권을 안철수ㆍ박원순 등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안철수 현상에는 진보정당이 제대로 공백을 메꾸지 못한 탓도 있는 것이다. 

노동자ㆍ청년들이 계급적 각성을 하며 진보를 갈망하기 시작하는데, 노동자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약해지는 역설을 자초한 것이다. 진보정당 지도자들의 뼈아픈 패착이 아닐 수 없다[각주:3].  
 

계급적 분노
 
한편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가 그토록 그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던 유시민과 참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매우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각주:4]. 참여당이 여전히 구 집권세력인 민주당의 아류[각주:5]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분열까지 조장하면서 참여당과 통합하려 한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의 정당성은 더욱 약화됐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자들은 또다시 진보신당을 탈당한 새진보통합연대에게 참여당과의 “원샷 통합”을 수용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노회찬ㆍ심상정 등 통합연대 지도자들도 이 압박에 무원칙하게 타협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각주:6] 사실이라면 유감스런 일이다. 

민주당의 아류로 비치는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는 반한나라ㆍ비민주당 정서를 진보정당이 흡수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고, 민주노총에서 불필요한 분열을 재연할 것이다.

이는 지지자들에게 냉소와 환멸을 일으킬 것이고, 결국 진보정당의 정치적 존재감은 더 약화될 수 있다.

그리 되면
 ‘혁신과 통합’ 등 NGO 성향 인사들이 주도하는 야권통합 정당에 진보정당들이 들어오라는 압력도 커질 것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나 친노의 주도력은 많이 약화됐지만, 야권연대의 선거적 힘은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번째 역설인데, 야권통합의 실질적 대주주인 민주당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야권통합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여당과의 통합을 고집하면 일관되게 이 압력을 거스르기도 힘들다. 참여당은 진보정당과 ‘소통합’ 이후에 ‘혁신과 통합’과 함께 야권대통합으로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여당과의 통합이든 야권통합이든 모두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노선을 위태롭게 하는 퇴행적 시도다. ‘노동 없는 정치’가 정치 불신의 근본 배경인데, 그 정치를 해야 할 당의 독자적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청년세대는 이번 선거에서 1퍼센트 특권층이 지배하는 기성 정치 구조가 이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계급적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각성은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희망버스’와 최근 한미FTA 저지 운동이 그 사례다[각주:7]. 이들은 조직 노동운동의 투쟁에 대해서도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세력은 급진적인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한미FTA 저지 투쟁이나 ‘99퍼센트의 저항 운동’ 등을 건설하며 이들의 분노를 행동으로 조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각주:8] 

그 과정에서 반한나라ㆍ비민주당 개혁주의의 현재 수렴점인 진보적 NGO들과도 개방적으로 협력해 급진화하는 청년 대중과의 소통과 공동 실천을 강화한다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것이 이 계급적 각성의 급진적 정서에도 부합하며, 정치적으로도 더 급진화시킬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지지해 선출한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는 것이든 나쁜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든] 그런 대중행동으로만 개혁을 성취하고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축약해 <레프트21>68호에 실렸다. ☞ 바로 가기

※ 서울시장 재선거 과정이나 박원순 시장 선거운동, 그리고 안철수 현상에 관한 내 논평은 이전 포스트를 보세요. 

 
  1. 박원순 선본은 나경원에게 역전당한다고 경고등이 켜진 시점에서 노조들과 협약을 맺었다. 민주노총은 우리는 박 선본의 집토끼가 아니라며 협약을 해야 선거운동과 조합원 투표를 조직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본문으로]
  2. 이를 좀 더 들여다 보면 이 흐름의 현재 정치적 수렴점은 NGO·의회 개혁주의로 보인다. 일부에서 민주노동당 대표냐, 야권연대당 대표냐 하는 비판을 듣는 이정희 대표가 당 바깥에서 인기가 높은 것도 이정희 대표가 상징하는 포지션이 여기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수렴이 고정불변인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3. 공식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존재감 이 약돠되지 않았다면, 정치 지형상 급진화 속도는 더 빨랐을 가능성이 높다. [본문으로]
  4. 민주당도 출마한 두 곳에서 민주노동당 등과 단일화해 나갔으나 4퍼센트, 8퍼센트를 득표했다. 경기도지사 선거 때부터 보이는 참여당의 득표력 부진은 회복 기미를 찾기 힘들다. [본문으로]
  5. 어떤 이들은 본류로 보기도 한다.참여당 지도부가 주로 노무현 정부의 친위 정치인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6. 통합연대가 최종 결정한 결정문의 문구로만 봐서는 참여당과의 원샷 통합에 찬성했다고 보긴 어렵다. 약간 섣부른 비판이었다. [본문으로]
  7. 더 멀리 가면 2008년 촛불항쟁도 그럼 흐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
  8. 다른 야당과는 필요하고 서로 의견이 같은 쟁점에서 독립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사안별 연대를 하면 된다. 통합과 사안별 연대는 다른 문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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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여유있는 분은 서울시장 선거 관련 이전 글을 먼저 보시오. ☞
박원순 야권단일후보 선출을 보며 ― 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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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재보선에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심판하기 위해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의 박승흡 강원 인제군수 후보와 진보신당의 민동원 서울 양천구청장 후보 등 진보 후보들을 지지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박원순 후보가 나경원 후보를 거꾸러뜨리길 진심으로 바란다진보정당 후보가 없는 조건과 1퍼센트 대변 정권 심판 정서를 전제로 했을 때, 박 후보는 진보진영의 지지를 받을 만한 후보다.

19일 발표한 “서울시민권리선언”에서 박원순 후보는 집회ㆍ결사의 자유가 “시민의 권리”[각주:1]라고 밝혔다. “주거권 보장과 강제퇴거 방지”, “고용 안정과 적정 임금 보장”, “친환경 무상급식” 같은 대중의 요구도 “[서울]시의 의무”라고 약속했다.

박원순 후보는 선거 후반부에 “오세훈 전 시장은 이명박 전 시장의 아바타, 나경원 후보는 오세훈 전 시장의 아바타”라고 비판했고, “나경원이 노동자 편입니까? 박원순이 노동자 편입니까?” 라고 노동자의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박원순 후보에 대한 한나라당의 온갖 비방과 인신공격과 색깔론은 역겨워서 듣고 있기 괴로울 정도. 어느 트위터리안의 말마따나, 그들의 인신공격은 시궁창물이 수돗물에게 비위생적이라고 하는 꼴이다. 

그런데 선거운동 전반부에 박원순 후보의 지지도가 다소 정체하는 듯한 것에는 이뿐 아니라 박원순 후보의 초반 선거운동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첫째, 박원순 후보는 민주당 입당을 거절한 대신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주요 직책을 모두 민주당에게 줬다. ‘야권연대’에 충실해 왔던 민주노동당마저 반발해 철수할 정도였다[각주:2].


아쉬움


이는 박원순 후보의 정책과 메시지가 민주당의 포지션에 구속되는 결과를 낳았고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선본에서 잘 들리지 않는 효과를 냈다. 서울 양천구청장 선거에선 진보신당 후보를 빼고 민주당 후보와만 정책 협약식을 해 진보신당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親부자 反노동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자! 그런데 민주당은 과거의 뿌리와 현재의 행태를 볼 때, 심판할 주체가 못 된다. 새롭고 진보적인 세력이 나와서 이명박을 심판해 달라. 이것이 안철수 현상에 깔린 민심이다. 물론 여기서 안철수 교수가 이 과제에 적합한 세력이냐는 별개 문제다.

 

박원순 선본은 교육시민단체들이 모인 ‘교육연대’가 제안한 교육개혁 정책 협약을 곧바로 수용하지 않았고, 노동 부문의 정책 협약 체결도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한미FTA를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지금,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각주:3].

박원순 후보는 진보 진영에서는 금기시되는 <조선일보>와 인터뷰해서 국가보안법은 “남용될 수 있다면 그 조항은 개폐되는 게 맞다”며 전면 폐지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유럽 기준으로 치면 중도 우파”라고 자처하거나 “저는 천안함 북한 소행이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도 [우파의 색깔론 공세 앞에서] 수세적으로 비춰졌다.

오죽하면, 한나라당 관계자가 “민심은 기성정당을 외면하면서 박 후보를 지지했는데 박 후보가 자꾸 엉뚱하게 민주당에 의존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라고 평했겠는가.[각주:4] 

박원순 후보가 부상한 것이 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 정서라는 점에서 이런 행보는 그 자체로서뿐만아니라 지지자들에게도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이 문제에 관한 기초 논의는 ☞ 
안철수·박원순 현상과 진보정당의 가능성)

둘째, 박원순 후보는 이 선거를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한 분명한 심판의 장으로 삼지 못했다. “잘한 것도 분명히 있다”거나 “시정의 연속성을 중시하겠다”는 논법도 부적절했다.

여기에는 민주당뿐 아니라 박원순 후보가 추구해 온 대안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박 후보의 온정적 개혁주의는 재벌 기부와 사회적 기업 등 정부ㆍ기업과 협력ㆍ보완 관계로 일하는 “협치(거버넌스)”이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지원 같은 청년 실업 대안은 나경원과 별 차별성도 없었다.

그래서 지지자들 사이에선 박 후보가 “착한 시장 뽑기”에 나왔냐는 불만도 나왔다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박원순 후보 선거운동 출정식에서 덕담으로 “원순씨가 참 온순하십니다. 좋죠?”라고 했던 말이 사람들에게는 덕담으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진보정당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심판을 위해 박 후보에게 표를 던지려는 이들에게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지지층에서 비판이 일고 지지율도 답보하자, 박원순 후보는 다행히 16일부터 “더이상 온순 원순 아닙니다” 하며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앞서 지적한 아바타 발언이나, 시민권리선언도 이때부터 공약으로 발표되기 시작했다. 진보 교육단체들의 요구도 공약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지지자를 실망시킨 선거운동과 지지율 정체 기간과 선거운동 변화와 지지율 반등이 얼추 비슷하게 연동되고 있다. 여론조사를 1백 퍼센트 신뢰할 순 없지만, 그 추이는 내 주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걸로 보인다.

 

박원순 후보는 이제라도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해 더 선명하고 과감하게 이명박 정권과 나경원 후보를 비판하고, 급진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네거티브(무엇에 반대한다) 없는 포지티브(무엇을 추구한다)는 오히려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지지자들이 바란 건 1퍼센트 정부와 후보를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민주당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진보 활동가들은 박원순 투표로 1퍼센트 정치세력 거부 흐름과 함께하며, 재보선 이후에도 한미FTA 반대 투쟁과 ‘99퍼센트 행동’ 등 아래로부터 운동을 지속하며 독립적인 반MB 진보 대안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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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애초 10월 18일에 쓴 글이다.  

  1. 집회를 위한 광장 개방이 “시의 의무”라는 것이다. [본문으로]
  2. 선거 막판이 되자 다시 선대위로 복귀했다. [본문으로]
  3. 한국에서 2007년 이후 FTA 자체에 대한 입장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것이 돼 왔다는 점, 그 이유가 FTA는 복지 확대를 위한 정부 개입을 가로막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박 후보의 신중론은 큰 유감이다. [본문으로]
  4. 이 인터뷰는 오늘 오후에 추가한 것이다. 출처는 내일신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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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항쟁은 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 정서가 결집해 표현된 계기였다. 그때 광장에서 민주당과 달리 진보정당 정치인들을 환영을 받았다. 강기갑 의원 등은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9월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서울시장 출마에 뜻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 뒤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은 야권에선 “적수가 없다”(<국민일보>)고 할 만한 지지를 받고 있고 차기 대선주자 중 박근혜의 부동의 1위 자리를 위협하며 앞서기도 하는 유일한 인물이 됐다.

이런 안철수 현상을 두고 정치인과 평론가들은 대부분 “정치 불신”, “정당 실패”, “정당정치의 위기”라고 분석한다.

지금 정치에서 일차적인 불신의 대상은 누구보다 실패했고 불신받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다. 청와대와 국회를 장악하고서 소수 부자를 위한 정책만 펴고 있기 때문이다. 

1퍼센트 정치가 99퍼센트 평범한 다수의 일자리와 복지, 즉 미래를 위협한다는 인식이 갈수록 늘어나는 배경이다. 

그래서 안철수 현상의 출발점은 반한나라당(MB·반보수·반재벌·반신자유주의) 정서다. 안철수 원장 스스로도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 집권 세력 … 나는 …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겨레>―KSOI 여론조사에서도 “안 원장 지지층의 정당 지지도(복수응답)를 보면, 민주노동당(72.5%), 민주당(62.7%), 무당파(46.6%) … 이념 성향도 진보(57%), 중도(45.7%), 보수(23.2%) 순이었다.”[각주:1]

 
그래서 “‘안철수 현상’으로 표상되는 … 가치의 방향은 공익, 경제정의, 공정으로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는 한귀영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 전문위원의 지적은 옳다.

그러므로 박근혜처럼 단순히 “한국 정치 전체의 위기”라고 뭉뚱그려 규정하는 것은 일면적일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과 우파의 실패를 물타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반MB 정서를 제1야당인 민주당이 아니라 안철수·박원순 등을 통해 표출하는 것일까. 그것은 민주당이 집권한 경험과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보여 준 모습 때문이다.

노무현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이명박 ‘비지니스 프렌들리’의 예고편이었고, MB 4년 동안 민주당은 “싸울 듯 하다가도 결국엔 무릎을 꿇[] … 갈짓자 행보”(시사평론가 김종배)를 보였다. 당장 한미FTA도 비슷하게 가고 있다.

노무현 추모 정서와 별개로 그 시절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서도 무려 73퍼센트가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자신의 가치와 이해를 대변해 줄 정치적 대안을 못찾는 것이다

한귀영 씨는 노무현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 때까지의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대중의 정치•경제적 인식은 이미 ‘좌클릭’하고 있는 데 반해, 정치권은 여전히 보수 편향에 머물러 있다”[각주:2]고 지적한다.

결국 거대 여당과 제1야당의 ‘통치’가 소수 특권층을 위해 다수의 삶을 고통에 빠뜨린 경험 때문에, 부패 소굴이 된 기성 정치 질서 바깥에서 “사회 공헌의 성공 신화”(<한겨레21>)를 써 온 안철수 원장, 박원순 후보 같은 이들이 지지를 받는 것이다.

김어준의 표현을 빌면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는” 부자들의 집단과 사회 공헌에 앞장서 온 양식있는 인물들은 대칭의 존재로 보이게 마련이다. 

사실 이 MB 정서와 민주당 불신(반한나라·비민주당 개혁주의)의 밑바탕에는 계급 문제가 놓여 있다. 1퍼센트를 위해 99퍼센트를 희생시키는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정치 불신과 정당정치의 위기는 투표율 저하로 나타났었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대선 투표율은 89.2퍼센트나 됐지만, 2007년 대선 투표율은 63퍼센트였다. 2008년 총선 투표율은 과반도 안 되는 46.1퍼센트였다. 청년층의 투표율은 평균의 절반이었다.


계급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이를 두고 “노동자의 정치적 이해가 대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 ‘안철수·박원순 현상’을 초래했다. … 지금 갈등의 축은 세대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노동과 고용의 문제”라고 정확히 지적한다.

그렇다면 왜 지금 진보정당은 노동계급의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최 교수는 진보정당이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수립한 뒤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기존 정당과 타협[했다면] … 상당한 힘을 갖는 주요 정당”이 됐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계급 대중정당 노선에서 더 멀어져 “기존 정당과 타협”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의 ‘묻지마 야권연대’나 강령 후퇴,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야말로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존재감만 후퇴시켰다.

서울시장 야권후보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의 존재감이 미약했던 것은 이런 방향의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각주:3]. 최근 야권연대로 쏠쏠한 선거 실적을 거든 민주노동당은 역설이게도 2008년보다 정당지지율이 낮다. 운동권 정당의 모습에서 벗어나겠다며 민주노동당에서 분열해 “현실적인 정책대안”을 추구하려던 진보신당의 추락도 눈여겨 봐야 한다[각주:4].

대중의 정치 불신이 계급 문제라면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자들의 단견과 달리] 진보정당이 “노동자가 중심에 선 진보정당”을 지향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제3세력으로 출발해 10년 이상 … 뿌리 내려온 정당이 있는가? … 진보정당을 통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잠재적 세력이 우리 사회에 굳건히 존재한다.”(노회찬) “2004년 민노당의 역사적인 의회 진출 때도 국민들이 진보정당 사람들에게 열광했다.”(김영훈) 따라서 “민주노총 중심의 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권영길)

그러므로 문제는 애초의 좌표가 아니라 실제로 진보 개혁을 실현할 힘을 모으고 발휘하는 과정에 있다고 봐야 한다[각주:5].

그 점에서 ‘노동 없는 진보정치’로 후퇴하는 걸 막으려면최 교수의 제안[각주:6]보다는 “‘도로 민노당’이 되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권영길 의원의 말이나 “진보의 개념을 수정할 것이 아니라 원래 설정된 좌표[] …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노회찬 전 의원의 말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이제 이것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이냐는 과제가 남는다.

진보대통합 차별화된 정책과 담론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권과 재벌을 무력화시킬 유일한 사회세력으로서 노동계급의 파업과 시위 건설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진보정치의 신뢰 문제는 계급의식 문제일 뿐아니라 개혁 쟁취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며, 각국의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지속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저항과 불만이 자라나고 있다.

미국 유력 주간지 <타임>의 여론조사에서는 월가 점령 시위 지지가 54퍼센트로 우익단체인 티파티나 오바마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진영이 ‘반한나라·비민주당의 진보적 제3 대안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급진적 대안을 분명히 하되, 대중과 유연하게 대화[각주:7]하며, 진보 대중의 단결을 추구하며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희망버스’는 그처럼 ‘다른 정치’의 가능성을 한국에서도 보여 줬다. 좌파가 지금 후퇴하는 계급정치를 다시 전진시키려면 이런 과정에 개입해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한다. 



※ 이글은 축약해 <레프트21> 67호에 실렸다. ☞ 바로 가기

  1. 9월 19일 한겨레 보도. [본문으로]
  2. 최근 한귀영 씨가 박사 논문을 다듬어 출판한 ‘진보대통령 vs 보수대통령’은 참고할 만하다. [본문으로]
  3. 예를 들어, 국민참여경선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는 17,891명 참여자 중 467명만 지지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이 참가자를 조직했는데도 그 수치밖에 나오지 않은 것은 진보정당 지지자들도 최규엽을 찍지 않았다는 것인데, 어차피 사퇴가 사람들의 인식에서 굳어지니 일종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골수 지지자라도 어차피 사퇴할 후보를 적극 지지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본문으로]
  4. 어떤 이들은 2010년 지방선거 서울시장에서 노회찬이 완주해 한명숙을 떨어뜨린 게 진보신당 추락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때 노회찬을 찍은 사람의 평가라면 줏대 없는 사람이고, 한명숙을 찍은 사람의 평가라면, 자기 능력을 과대망상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특정세력이나 인물의 지지율을 올릴 순 있지만 내릴 순 없다. 그리고 한명숙의 패배는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한 결과다.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참패한 것은 이후 추락의 원인이 아니라 이전의 추락 과정을 확인시킨 계기에 불과했다. 의회적 사민주의로 가려던 목적의식적 기획인 진보신당 창당은 사실 2008년 총선에서 대표주자들이 낙선하면서 시작부터 일그러졌다. 조승수 전 대표의 당선조차 민주노동당의 양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자력으로 선거에서 주요 포스트를 확보할 수 없는 당의 능력을 최종 확인한 것이 2010년 6·2 선거인 것이다. 그런 깨달음이 바로 독자파를 위축시키고, 진보신당의 위기를 촉발한 것이다. [본문으로]
  5. 진보대통합의 실패, 민주노총의 무기력, 참여당 논란 등이 최근의 신뢰 추락과 존재감 상실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본문으로]
  6. 최장집 교수는 정치란 의회정치이고, 따라고 정치의 핵심은 정당이라고 본다. 그래서 최 교수는 2008년 촛불항쟁이 정당정치를 위협한다며 정권퇴진으로 가지 말고 의회정치로 복귀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3년 후 당시 논쟁을 결산하면, 틀린 것은 최장집 교수인 것이 명백해 보인다. [본문으로]
  7. 이것은 사용하는 언어의 문제기도 하다. 예전부터 운동권 사투리에 대한 자각과 냉소는 있어 왔다. 문제는 진보의 논리적 개념들을 쉽게 표현하는 게 그 의미와 가치를 속류화하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신자유주의를 다른 어떤 단어로 대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라고도 많이 사용하는데, 신자유주의 정책이 장기적 경제 위기 대응책이긴 하나, 단기적 호황 때도 신자유주의 전략은 지속되니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기도 하다. 자조적으로 보면, 이런 것이 상상력과 능력의 문제이기도 한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계급이란 단어가 그렇다. 매우 쉽지 않고 낯선 단어이기는 하지만, 그것처럼 계급을 대변하는 정치, 사회의 문제를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와 개념)은 없다. 지난해와 올해 유럽과 미국 시위에서 계급투쟁이라는 단어가 보편화하는 걸 보면 계급 같은 단어를 쓰는 게 전혀 문제가 아니다. 자주 써서 금기를 깨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그 점에서 2004년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의원단 활동에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전략적 시각을 지닌다면, 계급 정치를 그 단어대로 선명하게 강조하는 게 대단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계급 분단선이 더 커지고 계급투쟁도 고양되고 있으므로 더 쉬운 일이 됐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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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 후보로 박원순 변호사가 뽑혀 여론조사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무소속 박원순후보가 거대 야당인 민주당을 제치고 단일 후보가 된것은 “‘안철수 바람’을 토대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 정서 등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결과”(<미디어오늘>)로 볼 수 있다.

박원순 후보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의 창립을 주도하고, 2000년 총선 낙천·낙선 운동을 비롯해 국가보안법 반대,재벌 개혁,부패 추방 등 권력 감시 운동에 앞장서 온 진보적 NGO의 대표 인사다.

이처럼 기성 정치 바깥에서 진보·개혁적 사회운동 경력을 쌓아 온 박원순 후보의 부상은 ‘제도권’ 정치에 대한 비판이 반한나라·비민주당의 온건 개혁주의로 향하는 최근 경향을 보여 주는 듯하다.


박원순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제가 만난 시민들의 공통된 요구는 ‘내 삶을 바꿔 달라’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기성 양당 구조가 전혀 평범한 다수의 삶을 보호하거나 개선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불만을 잘 보여 준다.

이런 불만이 왼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우파 ‘시민후보’로 나섰던 이석연이 박원순 후보와는 대조적으로 “기성정치의 벽을 뚫는데 한계가 있다”며  꾀죄죄하게 중도 사퇴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안철수·박원순 바람이 불면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물론이고 민주당과참여당, 친노 정치인들의 지지율이 주춤하거나 추락한 것도 이같은 대중적 반감의 한 사례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위기감이 크다. 대선 전초전이라는 서울시장 선거에 제1야당이 후보를 못 내 체면을 구겼기 때문이다. 당대표 손학규가 사퇴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했는데,민주당은 손학규 말고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형편이다.

이런 민주당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민주당은 부자감세,한미·EUFTA, 미디어악법 등 중요한 쟁점마다 결정적 순간에 한나라당과 타협하며 반MB대중의 뒤통수를 쳐 왔다.


진보정치


문제는 이런 상황에 진보정치 세력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그동안 진보의 독자적 목소리보다는 민주당과의 협력이나 참여당과의 통합을 더 중시해 왔다. 기성정당 질서에 편입되는 방식에 중점을 둔 것이다.

반대로 진보정치 세력의 단결을 통해 기성 정치와 구분되는 대안을 내놓으려는 노력에는 소홀했다. 그
러다 보니, 최근 몇몇 선거에서 선거연합으로 실리를 얻기는 했지만 막상 정치적 존재감은 후퇴했다.

이번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가 기대와 조직력보다 저조한 지지를 받은 것도 진보세력이 분열해 있고 독자적으로 뚜렷한 존재감을 못 드러내는 상황에서 ‘어차피 사퇴할 후보’로 비춰진 것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좌파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며 진보 염원 청년·대중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박원순 후보는 “노동3권만큼 중요한 시민권이 어디 있냐”며 노동계급 문제에 우호적이긴 하다.

또 친환경 무상급식공공 무상 보육고용안정과 청년 실업 해결서울시와 산하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해고자 복직[각주:1] 등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를 위해 “토건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보편적 복지 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다.

진보진영은 박원순 후보와 이러한 진보적 요구·과제들을 지지하되, 이명박 정부와 우파의 방해를 뚫고 이런 과제들을 실현 가능하게 만들 독립적인 대중행동 건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겨운 적반하장 검증론


한나라당은 아름다운재단이 재벌 기부 받은 것을 두고 “위선진보”라고 비난한다청와대 대통령실장 임태희도 “순수한 나눔이 아니면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우선 ‘도적으로서 완벽한 정권’인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그런 말을 할 자격 자체가 없다.

SLS그룹와 부산 저축은행들의 로비자금이 청와대까지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것이“순수한 나눔”인가불법 탈세를 저지른 이건희 사면에 앞장선 자들은 또 어느 당이었던가이 정부야말로 재벌의 ‘차떼기’후원 대가로 탈세,노조 탄압산재 노동자 외면감세 혜택을 줘 왔다.

임태희는 “자선사업하는게 대기업의 본분은 아니”라고도 했는데기업의 공익 기부는 면세 혜택을받기 때문에 기업들 스스로 이미지 전략으로 활용하는 ‘영리’ 사업일 뿐이다

오히려 최근 “따뜻한 자본주의”니 “자본주의 4.0”이니 하면서 ‘기부’를 강조하다가 이제 박원순을 비난하는 <조선일보>의 행태가 더 일관성 없고 황당무계하기만 하다. 

늘 뒤가 구린대가성 돈을 받아왔던 자들 눈에 세상이 구려 보이는건 똥개 눈에 뭐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그래서 한나라당이 박원순 후보를 “청문회 수준으로 검증”하겠다고 했을 때,한 네티즌은 “무조건 봐 주겠다는 뜻”이라고 비웃었다[각주:2].

사실 한나라당의 속마음은 “좌파 야합 정치쇼”라는 마녀사냥 용어에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2008년 총선에서 개혁 공천하겠다며 박원순 후보를 “전국구 1번자리”인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다김문수가 두 번이나 박 후보를 직접 찾아갔다. 아름다운 재단에는 이명박도 기부한 바 있다그냥 자기들끼리 “우파 전향검증쇼”나 하는 게 어떨까.


온정적 개혁주의
 

우파들의 헛소리와달리 박원순 후보의 정책과 대안은 온정적 개혁주의다.

박원순 후보는 사회적 기업을 통한 복지 제공이 공공복지의 보완 구실을 하며 일자리 창출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이것은 좋은 취지와 부분적으로는 현실가능한 정책을 담고 있지만경제 위기와 양극화의 진정한 원인 에도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기업도 이윤 논리를 따르는 ‘기업’이므로 돈 없는 복지 소비자인 서민들에게 복지 전달자 구실을 하려면 결국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비용 절감 압력도 피할 수 없다. ‘아름다운 가게’조차 박봉을 감수하는 직원과 무급 자원봉사자들 없이는 유지가 어려운 상태다.

참여연대에서는 정부와 기업에 의존하지 않는 시민운동을 표방해 온 박원순후보가 아름다운재단부터는 정부와 대기업 후원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기업’이 복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의도치 않게 복지의 민영화라는 신자유주의에 부응할위험이 있다.

그래서 보편 복지는 부자 증세로 국가의 복지 재원을 늘리고 제도화하는게 가장 효과적이다. 일자리는 국가의 직접 투자로 공공부문에 복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사회적 기업보다 더 효과적이다.

것은 재벌에게 “나눔”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친기업 정부·재벌 체제에 맞선 정치적 대중투쟁으로만가능하다.

그런데 박 후보는 “시위는 어차피 사그라지게 되어 있[]”면서“참여연대 15천명 회원이면 간사 50~60명이 지속적으로 사회의 맑은 샘물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말한 바 있다. 대중의 주체적 행동을 중시하기보다는 대중을 공익적 엘리트들의 수동적 후원자로 여기는 것이다.

한편, 사회적 기업 방식의 허약함은 이명박이 아름다운재단의  파트너인 하나은행과 미소금융을 하면서 아름다운재단의 
마이크로크레딧(서민소액저리대출) 사업이 파탄난 데서도 드러난다.

박 후보는 “시민운동을 적처럼 대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미소금융 사례에서 보듯 최근 시민운동이 중요시해온 협치를 곳곳에서 파괴했다. 

그 결과, 시민운동도 정치세력화해야 한다는 정서가 생겼는데, 그 대표주자가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의 빅텐트론이다. 박원순 후보의 출마도 이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데, 이는 빅텐트론에서 보듯 여전히 민주당 의존성을 버리진 못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박원순 후보로 모아진 기대감과 정치적 긴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박 후보가 내세우고 힘겨운 서민과 청년들이 공감하는 소박한 이상조차도 민주당과의 공동정부에 의존하는 방식보다는 독립적인 대중행동에 바탕해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 이 글은 일부 축약해 <레프트21> 66호에 실렸습니다. ☞ 기사 보기

 

  1. 상당히 민감한 공약이며 당선된다면 꼭 지켜져야 하는 공약 1순위를 다투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본문으로]
  2.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인사청문회 대상 중 82퍼센트가 위장전입과 투기 전력자다. 탈세도 심각하다. 그런데 이들은 거의 인사청문회를 무사통과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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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 기사: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관련 글: 착한 소비의 딜레마 ― 마르크스주의 관점  / 신세계·이마트와 정용진의 이념적 소비
(이 글은 부족하지만 위 글의 보론 성격으로 쓴 글입니다. 함께 읽어주세요~)

1.
오늘날 윤리적 소비, 즉 착한 소비 운동은  “소비는 돈으로 하는 투표”나 “돈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표어를 내세웁니다. 

그래서 그것은 단지 소비자운동만은 아닙니다. 사회구조와 관련해 매우 포괄적인 주제들을 다룹니다. 

소비로 기업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사회 책임 투자를 촉구하는 운동이나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는 것으로 발전합니다. 

선진 제국과 다국적 기업의 수탈적 무역에 대한 반대가 공정무역으로, 선진국 은행에 저축한 돈이 비윤리적으로 쓰이는 것에 반대하려는 생각이 지역 화폐나 비영리은행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은행들에게 하는 저축이 이 은행들의 미국 채권 투자를 통해 미국의 전비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중국, 대만, 한국 등과 더불어 미국에 대한 채권 국가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윤리적 소비운동은 참여하기도 쉽고, 의미도 가지는 운동으로 비춰지는 듯합니다. 저도 가능한 영역에서는 윤리적 소비를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윤리적 소비가 목표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2.
우선, 불매 운동과 윤리적 소비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사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친환경 제품을 사자는 것은 반환경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안적 소비 형태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폭넓은 방식인 불매운동은 대체로 윤리적 소비운동의 가장 초보적인 방식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가장 높은 수준의 윤리적 소비운동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최근 몇 년 새 한국타이어[각주:1]와 이랜드, 조선일보 광고기업리스트, 미국산 쇠고기 취급 대형 마트 등 다양한 불매운동의 사례가 있습니다.  며칠 전엔 ‘삼성’과 정면 대결하자는 분들이 ‘삼성불매운동’을 제안하는 《굿바이삼성》이라는 책을 냈다는데, 이것도 한 사례입니다.

윤리적 소비가 불매운동이라는 초보 방법으로 되돌아 간 것은 삼성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삼성을 대체할 수 있는 기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보험, 화재보험, 가전제품, 핸드폰, 컴퓨터 등 삼성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삼성의 경쟁기업들은 삼성보다 작아서 악행의 규모가 더 작은 기업들 뿐입니다.

무노조 삼성이 싫다고 노조 탄압 LG 제품을 사야 하나? 윤리적 소비를 일상에서 실천하려는 많은 분들이 고민했을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윤리적 소비운동이 부딪치는 가장 딜레마이자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럽히고 어지럽히는 가장 나쁜 기업을 윤리적 소비의 어떤 방법으로도 혼내 주기 힘들다는 것이죠.

자본주의 시장에서 독과점, 즉 집적[각주:2]과 집중[각주:3]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정용진 때문에 쟁점인 유통업계를 예로 들면, 대기업 유통 마트 진입에 반대하는 동네 슈퍼들도 이전에 자신들끼리 이런 과정을 거치곤 했습니다. 지금 대형마트 반대자들은 이전 경쟁의 생존자들인 거죠.

이것은 이론상으로도 경험상으로도 이미 확인된 내용입니다. 대기업조차도 이를 피할 순 없습니다. 다국적 기업인 월마트, 까르푸가 실패해 떠났고 이랜드도 실패해 삼성에 넘겼습니다. 이 경쟁은 국가를 동원하기도 합니다. 양쪽 모두 공정거래위와 국회를 동원합니다. 

이런 시장의 특성상 이마트가 싫어 다른 대안 유통업체를 찾아 봐도 나쁜 기업을 만나는 걸 피하기 힘듭니다. 그것은 다른 소비재 시장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3.
그래서 윤리적 소비 운동은 대안적 소비 운동으로 나가자는 분도 있습니다. 대체로 우리에게 소비를 강요하는 대기업들의 소비 품목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 생활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물품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자동차, 대형TV, 핸드폰, 보험상품, 주식투자, 비행기 여행, 패스트푸드 등.

안타깝게도 이것은 사회의 다수인 노동 대중들의 삶과 유리된 소비 생활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핸드폰 안 쓰겠다는 사람을 누가 고용하려 하겠으며, 오늘날 컴퓨터와 TV 등을 통한 매스미디어를 접촉하지 않고서 취업과 업무에 필요한 업무 지식을 습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가용의 경우도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콩나물 시루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너무 힘든 건 사실입니다. 패스트푸드 형태로 육식을 섭취하는 건 바쁜 도시 노동자들에게는 불가피한 면도 없지 않습니다. 화재보험 없인 자가용을 굴릴 수 없고 체제가 생존을 책임져 주지 않으므로 생명보험이나 연금보험이라도 들어놔야 안심이 됩니다.

그래서 대안적 소비 운동은 근본주의적인 자급자족 소농 공동체운동으로 발전하거나 아니면 나쁜기업에 대한 생필품 의존을 인정하고, 커피나 초콜릿 같은 기호품 소비에서 윤리를 찾는 온건한 형태에 머물게 됩니다.
 

이런 기호품 소비는 시장이 작아 대기업들을 변화시키는 데 매우 부족한 상품들입니다. 

게다가 커피, 바나나, 초콜릿, 차 등의 기호품 소비는
선진국에서 20세기 들어서 대중적 유행이 됐는데, 이 작물들의 역사는 예전 남미와 아프리카의 플랜테이션 노예농장과 연관이 있습니다. 풍족한 농업지대가 식민본국의 기호품 소비를 위한 단일경작 노예농장으로 바뀌는 겁니다. 

20세기 중반부터 선진국들은 가난한 나라에 돈을 꿔 주고 엄청난 고금리로 이 돈을 갚도록 합니다. 외채의 덫에 걸린 가난한 나라들은 자국의 식량 공급을 파괴하면서까지 선진국 시장에서 돈 되는 작물의 단일 경작으로 농업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공정무역이 취급하는 기호품들이 대체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식민지 시대부터 형식적 독립국인 지금까지 이 지역들은 만성적인 식량위기 상태입니다. (참조 ☞ 여기) 공정무역기업과 거래하는 제3세계 농민들은 거대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이 아니라 소농들입니다. 거대 커피농장 자체를 네슬레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경영하니까요. 

단일경작 수출은 농업 위기를 낳고, 변덕스런 국제 식량시장에 해당 지역 농민과 노동대중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지금 커피의 경우 과잉 공급이 낮은 산지 가격의 주요 배경입니다[각주:4]. 근본에서 이런 수출의존, 수출용 단일경작체제를 바꾸지 않도록 하는 공정무역이 과연 정말 선한 것이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다국적 기업들보다는 더 많은 가격을 쳐 주니 상대적으로 훨씬 더 윤리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상대적 고비용은 기업 이윤을 감소시키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부담합니다. 시장 관계로 만나는 것이므로 이것이 진정으로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관계인지는 의문입니다. 공정무역 시장이 커지면 자본력이 약한 공정기업들을 밀어내고 대기업들이 시장을 나눠 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정무역도 세계 무역의 진정한 불공정 구조를 바꿀 수는 없다고 결론 내닐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수탈적인 세계무역구조를 미화시키기도 합니다. 

결국 대안적 소비 운동은 대기업의 시장 과점과 시장 구조 자체의 비민주성과 불공정성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 다수 대중의 대안적 삶의 형태가 되기에 부족합니다. 소비 운동이 중산층 운동처럼 보이는 이유죠.  

생협과 로컬푸드 등도 대안적 소비라 할 수 있는데, 식품 안전이란 면에서 윤리적일 수 있고, 한국처럼 자영농이 많은 구조에서는 양쪽에 모두 이득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더 비용이 더 들고, 생산의 질을 유지하려면 보편화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구조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상을 바꾸는 소비는 되질 못합니다. 

이런 점들은 윤리적 소비가 생산자에 대한 자선 효과를 노리는 것인지, 개인 소비의 질 향상을 기대하는 것인지 모호하게 만듭니다. 

다른 한편, 바로 이 점이 소비(취향과 능력)가 생산(규율과 소득)에 매여 있는 또다른 증거이기도 합니다.

△ 공정무역 매출은 매년 늘고 있다. 공정무역 시장이 커지면 공정무역마크를 단 대기업 상품들을 보게 될 것이다. 기업으로선 손해보는 건 아니다. 공정가격을 산지에서 지불한 만큼 판매가격을 올려 받기 때문이다.



4.
자본주의에서 기업 이윤(잉여가치)은 판매차익이 아니라 “출입구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팻말이 붙어있는,가려져 있는 생산의 장소”(마르크스)에서생겨납니다.

이 곳에서 자본가들은 자신이 구매한 노동력에게 약속한 대가(임금)보다 더 많은 노동(잉여노동)을 부과합니다. 이 잉여노동의 결과로 생겨난 추가적인 재화와 서비스가 잉여가치인데, 자본은 이를 이윤이라고 부릅니다.


즉, 전체 생산과정에 투자된 자본 가운데 원료는 그대로 생산품의 가치에 이전되며, 기계도 감가상각되어 생산품 가치에 이전됩니다. 노동만 유일하게 자신의 가치(임금)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착취’입니다. 즉, 마르크스주의에서 착취는 부당거래로 만든 차익이나 수탈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경제주체의 소득은 이처럼 노동자 착취에 바탕한 생산과정에 기여한 몫을 그 비율 만큼 배분받는 것입니다.

노동력 제공, 공장과 창고 등 토지의 대여, 현금 대출, 법과 경찰로 기업을 보호하는 국가, 생산품 판매와 배송, 노동력의 교육과 치료 등이 임금과 지대, 이자, 세금, 수수료 등으로 실제 이윤이 나는 생산 영역에서 노동자와 나머지 자본, 그리고 국가에 배분됩니다.

나머지 자본과 국가가 가져가는 몫의 노동은 실제로 이 부문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했으므로 이 노동자들은 이 배분되는 몫에서 임금을 받습니다. 이 노동자들도 잉여노동을 한 것이므로 착취를 받습니다.

결국, 이 소득 배분 과정은 잉여가치 생산과 실현, 배분 과정에서 구성된 자본의 연결망이 노동자들 전체를 착취하는 것, 즉 집합적 착취 관계의 형성을 보여줍니다. (한편에선 화폐 물신주의, 즉 화폐가 신비한 구매력을 가지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이마트의 힘은 싼 판매가격이 아니라 싼 구매비용에 있다는 겁니다. 싼 판매가격은 시장 점유율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싼 판매가격으로 시장을 과점해도 이윤을 남기려면 투자와 산출(매출)을 대비해 후자의 비율이 높아야 합니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쟁의 본질이 단순한 유통과 판매가 아니라 경쟁적 축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판매노동자를 저임금에 쓰고, 현금과 유통망의 힘으로 생산기업들을 압박해 더 높은 착취강도로 더 싸게 물건을 공급하도록 만들 수 있는 힘[각주:5]입니다.

이것이 대형유통자본에겐 있고, 동네 중소 상인에겐 없는, 대기업이 영세상인들을 몰락시키는 힘입니다. 그래서 대기업은 사는 물건부터 사는 장소까지 우리가 자신을 피할 수 없도록 포위합니다.

한편, 중소기업도 생산비용을 낮출 수만 있다면 대체로 대형유통마트에 납품하는 게 매출을 늘릴 수 있으므로 이득이 됩니다. 소상인들도 경쟁하려면 구매비용을 낮추는 데 같은 이해관계를 가집니다. 더 싼 상품 공급을 바라는 거죠. 서로 싸우는 듯 보이는 대기업-중소기업-유통기업-중소상인이 한편에선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 이유입니다. 

이 가운데 소비재를 취급하는 소상인들은 대기업과 싸우면서도 노동자투쟁은 환영하지 않고, 생산기업 노동자의 임금 인상은 바라지 않으면서 소비자로서 노동자의 임금 인상은 바랍니다. 중간계급의 모순된 처지란 바로 이런 겁니다[각주:6].



5.
이 얘기를 장황하게 한 또다른 이유는 소비가 기업 이윤에 타격을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첫째, 노동자들의 전체 소득을 합해도 전체 생산 몫의 일부이므로 소비재 수요가 기업 이윤에 타격을 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둘째, 소득의 원천이 기업들의 이윤 생산 과정이므로 앞서 지적했듯이 소비행태 등 생활방식도 생산과 결부된 필요와 문화에 대체로 종속됩니다.

셋째,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누구를 윤리적 소비의 파트너로 택하더라도 경제의 근본 구조는 전혀 손상되지 않습니다.

넷째 이 점도 매우 중요한데, 자본주의 경제에서 진정한 소비자는 생산과정에서 온갖 생산요소와 제반서비스를 구매하는 생산자본이라는 겁니다[각주:7].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투자가 수요를 창출하는 원리입니다.

좀더 부가하면, 바로 이런 자본주의 투자의 성격 때문에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의 소비능력이 자본주의 전체의 생산물보다 적은데도, 심지어 농민 등을 다 합쳐도 총투자액이나 총산출물에는 못 미치게 돼 있는데도 일반적으로 과소소비 공황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나면, 소비로 기업 이윤에 타격을 준다는 생각은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공상을 좇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선 노동력 판매, 즉 취업을 해야만 하는데, 반대로 인간의 노동력이 판매 대상이 될 정도로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체제에서 소비 행위를 회피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이런 거부할 수 없는 현실 때무에 오늘날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근본주의 대안은 상품시장과 노동의 소외를 폐지하는 반자본주의 노동자 혁명이거나 아니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생산자급자족 공동체 밖에는 없습니다.

소생산자 공동체는 사실상 도시 노동자들이 귀농하자는 것인데, 막대한 식량과 재화, 서비스를 쌓아두고도 수억 명을 굶겨 죽이는 체제의 부정의를 바꾸는 것은 더 힘들어지는 대안이 아닌가 합니다. 국가권력에 대한 정치적 도전을 회피할 뿐아니라, 소생산 공동체의 경제력으론 대기업들의 경제력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6.
결국 윤리적 소비 운동의 기업 비판은 기업을 변화시키는 개혁주의 대안으로서 종합하면, 윤리적 자본주의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정상적인 작동이 착취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근본에서 윤리적 자본주의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사에서 썼듯이 나쁜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시장 경쟁 아래서 개별 기업은 경쟁을 위해 생산비용을 줄이고, 노동자에게 더 일을 시키고 노동자 수를 줄이며, 다른 사회 책임 투자를 줄여야 합니다.

그래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 책임 투자, 은행 이윤의 지역 재투자, 사회적 기업 등 착한 기업 만들기 프로젝트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하나의 이윤기계인데, 그 속성상 사회 책임 투자조차 직간접적이거나 장단기적으로 이윤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복지 투자는 중장기 시야에서 기업 이미지 마케팅이 가장 큰 목적입니다.

시중은행들의 막대한 수익과 경영자 고임금이 문제가 되자, 2006년경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은행들이 강조한다거나[각주:8], 아들 문제로 폭력 사건을 일으킨 김승연의 한화그룹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늘린 것이 대표 사례입니다.

가장 위선적인 것은 삼성이 또 하나의 가족이니 뭐니 하는 것이겠죠. 이들은 일정액의 사회적 기부를 통해 법인세 감면 효과도 노립니다.

요즘 유행하는 사회적 기업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대부분 국가 보조 없이는 운영이 안 됩니다. 이윤을 못 남기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고된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립니다. 경쟁력 부족은 틈새시장과 국가보조, 개인 기부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사회적 기업이 이명박 같은 친(나쁜)기업 정부에게 의존하려는 이유[각주:9]인데, 이들이 스스로 이윤을 내서 독립적으로 생존하려면 지금보다 더 비용을 절감하는 경영, 즉 이윤 확보를 가장 우선하는 경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사회적기업의 업무 영역과 관계있습니다. 사회적기업은 대체로 업무 자체가 복지 대행인 경우가 많습니다. 행복도시락 등이요. 그런데, 이런 복지는 조세를 통해 국가복지로 해야 합니다.

국가복지를 민영화하는 것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 복지를 탈정치화하자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관료주의와 시장 효율성을 대립시키는 방식의 논리인데요, 본질은 복지비 부담을 누가 질 것이냐 하는 겁니다. 

결국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사회적기업과 국가복지와 충돌할 수도 있다는 뜻인데요, 왜냐면 해당 분야에서 국가복지를 강화하면 사회적기업의 영역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사회적 기업도 경영자본이 필요한 점에서 다른 기업과 다르지 않다. 이윤 추구를 억제하려면 자선에 의존해야 하는데, 자선에 의존하는 것은 스스로 ‘기업’이라고 부르는 것과 너무 동떨어진 행동이다. 국가 보조와 개인 기부에 의존하는 것은 자생력 있는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내보이는 일이다.



7.
그런데, 이 문제들은 비영리(NPO[각주:10]) 은행이 있다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첫째, 자구책은 될지언정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재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둘째, 비영리 은행도 돈은 갚아야 합니다. 자급자족 공동체가 아니라면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 은행의 대출을 받아도 앞서 그 돈을 갚으려면 앞서 지적한 경쟁=이윤 창출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셋째, 결국 받은 돈으로 해야 할 일은 시장에 나가 돈을 버는 일입니다. 구조적으로 시장 경쟁은 모든 참가자에게 성공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시장이 지배하는 구조와 대결하지 않으면  뭔가 다들 부실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비영리 은행이 기여할 수 있는 건 소생산자(농민)들이 자급자족 공동체를 꾸리는 경우 정도입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는 사회의 총체적 거부는 될지언정, 총체적 변혁 전략은 아닌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온존한다는 점에서 체제 거부 자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경우, 자급자족 공동체조차 필수품을 구하려고 자신들의 농산물을 팔아야 합니다. 물론 유기 농산물인데, 이렇게 되면 결국 이들도 시장을 통해 체제의 다른 생산자들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 공동체는 자신의 삶은 바꾸지만, 사회 구조는 단 하나도 바꾸질 못합니다.

8.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막강한 소수의 기업들은 막대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배분을 결정하지만, 그 결정은 무정부적 시장에서 혈투와 같은 경쟁의 시험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기업도 나쁜 기업이 돼야 한다는 압력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경쟁은 주기적인 과잉생산 위기를 낳습니다.

국가는 노동자들의 세금으로 기업들을 지원하고, 부동산 투기 거품을 부양하며, 이런 기업들이 경영에 실패해 노동자를 짜를 때면 경찰을 보내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때려 잡습니다.

그래서 나쁜 기업을 없애려면 국가권력에 도전하고,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소비 투표가 아니라 기업들을 민중적 민주적 계획 아래 종속시켜 민주적으로 생산을 결정해야 합니다.

□ 참고도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알마, 2007)
《굿머니 ― 착한 돈은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착한책가게, 2010)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실천문학사, 2010)
《나쁜 기업》(프로메테우스, 2008)

□ 참고기사

※ 지역화폐는 다루지 않았는데, 한국에선 아직까지 영향력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1. 이명박 사돈 기업으로 위험한 작업 환경으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데도 처벌받지 않는 죽음의 공장으로 불린다. [본문으로]
  2. 기업의 절대 규모가 커지는 것. [본문으로]
  3. 경쟁하는 기업의 수가 줄어드는 것. 즉 집적과 집중이란 시장 경쟁이 갈수록 덩치가 커지는 소수의 기업들의 지배로 바뀌는 현상. [본문으로]
  4. 옥스팜은 공정무역이 과잉생산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공정가격으로 5백만 자루(약 1억 달러)를 사서 폐기 처분하자고 제안합니다. 이것이 공정무역운동의 초라한 현실입니다. [본문으로]
  5. 대체로 축적된 자본의 규모와 이에 따른 국가에 대한 영향력이 이 힘의 크기를 결정한다. [본문으로]
  6. 사실, SSM이 들어오기 전까지 동네 슈퍼들도 그 동네 수준에서는 경쟁을 통한 집적과 집중 과정을 거치곤 했습니다. [본문으로]
  7. 이 구매 과정이 아까 말한 소득의 배분 과정과 동일합니다. [본문으로]
  8. 서민 대상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이명박이 박원순 변호사에게서 빼앗아 갔다고 문제가 됐었는데, 이 사업을 애초에 후원한 하나은행은 비정규직 차별이 가장 심한 은행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으로]
  9. 사회적 기업은 법인세 추가 감면 등 세제 지원과 국고 보조를 바라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10. Non Profit Organigations.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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