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수십년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한 지금,
자본주의가 어떤 원리로 운영되고,
어떤 과정에서 위기로 빠져드는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혼돈과 공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사회를
위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의 형성은
두 가지 역사적 분리를 전제로 한다.
하나는 자본과 임금노동의 분리,
둘째는 생산단위 간의 분리(다수
자본의 경쟁) 이것이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성과 모순을 야기한다.
두 가지 특성에서 자본주의가 일반화된 상품 생산
체제라는 정의가 가능하다.
즉,
모든 자본주의 생산은 판매를 위해 생산된다.(이윤을
위한 생산) 각각의
생산자들은 오직 판매 시장을 통해서만 관계를 맺는다.
이것이 자본주의 고유의 무정부성(시장),
소외와 상품물신성을 낳는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존재했던 시장이 자본주의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는 제도가 된 것은 이처럼 자본이
오직 다수자본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편, 자본주의의 모든 상품은 판매를 위해 생산되므로 상품의 물리적 특성에서 비롯하는 고유의 사용가치와 별개의 교환가치를 지닌다. 교환가치는 각 상품들이 서로 교환되는 비율이다. 그런데 교환 가능하다는 것은 공통의 속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상품 생산에 투여된 사회적 노동이다. 그리고 교환 과정에서 상품 생산에 투여된 구체 노동은 사회적 노동의 일부, 추상 노동으로 바뀐다. 이 추상노동은 맹목적인 관계 맺기 속에서 사회적 필요 노동량을 이룬다. 이것이 가치법칙이다.
이 교환가치의 비교는 특정한 상품을 통해 가능하게 한 것이 화폐다.
자본과 임금노동의
분리는 노동력을 특수한 상품으로 만든다.
다른 생산수단들은 가치를 그대로 이전한다.
그러나 노동력은 그렇지 않다.
노동력은 생산요소 중 유일하게 자신에게 지불된
가치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상품이다.
노동력이 지불량보다 추가하는 가치가 바로
잉여가치다.
노동력 역시 상품이므로
기본적으로 노동력을 형성하는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재생산 비용)에
의해 그 가치가 측정된다.
이것이 임금이다.
그리고 노동력은 그
가치(임금)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내므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을
위해 매일 잉여노동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착취다.
이 잉여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전체에 대한
권리를 구매한 것으로 간주돼,
잉여노동의 양과 이 시간에 새롭게 만들어진
잉여가치에 대한 통제권을 쥔다.
결국 잉여가치는 자본이
그 자신(과 자신을
형성하는 사회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활동의 전제가 되므로 잉여가치(즉
착취)를 확보하고,
늘리는 것은 자본의 존재 이유가 된다.
그리하여 맑스가 말한
"축적을 위한 축적,
이윤을 위한 생산"이
자본의 특성이 된다.
노동자 관점에서 보면,
노동시간은 노동력 자신의 가치,
즉 임금에 해당하는 필요노동시간과 자본을 위해
일하는 잉여노동시간으로 구분된다.
이 잉여노동이 착취를 뜻하므로 착취에 저항하는
투쟁은 노동시간 투쟁이 된다.
자본은 오직 경쟁하는
다수 자본으로서만 존재하므로 자본간의 경쟁과 다툼은
필연적이다.(“자본은 서로 다투는 형제들”)
그리고
자본의 존재 이유가 착취를 늘리는 것이므로 자본 간의
경쟁(시장 경쟁)은
결국 생산성(착취율=임금:잉여가치=필요노동:잉여노동)을
높이는 경쟁이 된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원료, 기계 등 다른
생산수단들에도 투자하므로 투하된 전체 비용에 대한
수익율을 자신들의 지표로 삼는다.
이것이 이윤율(전체
투자 자본:잉여가치=총노동시간:잉여노동)이다.
따라서 이 각도 저
각도에서 봐도 노동과 자본의 갈등은 노동시간을 둘러싼
투쟁이 되는 것이다. 노동자는
잉여노동비율을 줄여야 한다.
자본은 이 시간을 늘려야 한다.
자본에게 절대적
잉여가치 증대는 노동시간을 늘리 것이나,
물리적 한계가 존재하므로 노동생산성을 높이거나
노동강도를 높여 상대적 잉여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더 보편화된다. 또,
자본 회전 속도를 빨리 하거나 특별 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들이 사용된다.
한편,
자본의 성장할수록 생산은 사회적 생산이 된다.
자본으로서 기능하기 위한 화폐 단위의 규모는
커져 간다. 이런 변화에서
주식회사와 신용제도가 발생한다.
생산이 사회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개별 생산단위의 생산물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고,
생산 과정 자체가 사회적으로 이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별 생산 단위들은
다른 생산 단위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서로의 생산물을 소비해야 한다.
이 점 때문에 생산
부문의 이윤은 여러 형태의 이윤으로 재분배된다.
이자, 지대,
상업, 국가 등이
가치의 생산과 실현에 도움을 준 대가로 이윤을 재분배
받는다. 또한,
부문간 이윤율 격차는 자본 간의 이동을 초래해
이윤율을 평균화시킨다.
결국 자본은 자기
고용자에 대한 착취물을 대가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자본 간의 소득 분배는 집합적 자본으로서 집합적
노동자에게 착취한 양을 재분배하는 메커니즘이다.
이 체계 속에서 개별 자본과 노동자들이 '개인'대
'개인'이
아니라 '계급'
대 '계급'으로
대립하게 된다. 경쟁하고
분열해 있는 자본이 노동에 대항해선 합심단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자본은 서로 다투는 형제들”)
이처럼 자본은
상품자본-생산자본-
화폐자본의 형태로 운동하는 존재이며,
노동에 대한 잉여노동의 착취를 존재 조건으로
하는 특정한(역사적)
사회적 관계다.
한편,
자본 간의 경쟁은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 노동자가
처리할 수 있는 생산수단의 양,
즉 불변자본의 양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노동에 대한 자본의 가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단순한 수량 비율은 기술적 구성이라 한다.
그러나 수량 변화는 가격 변화에 따라 가치가
변동하므로 가격 변화를 고정시켜 고안한 유기적 구성의
개념을 사용한다)
노동력만이 새로운
가치(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자본 투자와 노동의 비율에서 전자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즉, 유기적
구성이 높아질수록 전체 투자 비용에 대비한 잉여가치,
즉 이윤몫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경향이 발생한다.
이것이 이윤율 저하 경향이다.
그리고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지는 것은 자본이 점차 과잉 축적되고
있다는 뜻이다. 생산성이
높아져 생산수단 자체의 가치가 하락하는 상쇄 효과도
존재하나, 자본에게는
애초에 투하된 자본에 대한 이윤 비율이 중요하므로
이 상쇄 효과는 한계가 있다.
이윤율 저하 경향은 공황의 기본 배경이 된다.
또한 자본간 경쟁
격화는 생산의 무정부성을 확대한다.
시장의 무정부성은 생산재를 소비하는 1부문과
소비재를 생산하는 2부문
사이의 불균형을 야기한다.
이 불균형을 사회적으로 조절하는 장치가 자본주의에는
원리상 존재하지 않는다.(세계적으로
시장 제도를 폐지하지 않는 한 그러하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더는 자본주의가 아닐 것이다)
이윤율 저하와 경제의
불비례 상황은 공황으로 이어진다.
공황이 발생하면 자본은 파산,
폐기 등의 방법으로 과잉 축적된 자본들의 가치를
파괴함으로써 유기적 구성을 낮춘다.
이에 따라 이윤율이 다시 회복되고,
생산은 재개된다.
문제는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개별 자본들의 규모가 워낙 커져 공황을 통한 가치
파괴와 호황의 재개라는 과정이 단순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높아진
집적과 집중은 개별 자본의 파산이 창조적 파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큰 충격을 주므로 국가가 개입해서
공황을 막는다.
이는 과잉 축적(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문제
해결을 지연시켜 폭력적 공황 이후의 회복이라는 패턴
대신 장기 불황으로 상황을 이끈다.
이윤율은 회복되도 이전 호황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는 장기 불황의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세계 경제 공황이 70년대
이후 세계 장기 불황 시기에 생산 투자를 못 하는
자본들이 여러 해법이 실패한 끝에 자산 투자로 거품을
유도했다 붕괴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목격했듯이 자본 구조조정보다는 자본
살리기를 위해 거품 유지 정책을 펴면서 과잉 축적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심한 장기 불황에 빠져들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 봤듯이,
사회적 생산과 사적(=개별적≠개인적)
전유의 모순과 생산력의 발달이라는 결과는 여러
파생적 모순을 낳는다. 예를
들어, 주식회사와
신용제도는 이런 모순의 현실 형태다.
두 제도는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제도다.
자본주의에서는 높아진
생산성이 생산력 파괴의 원인이다.
생산성을 높이려는 개별 자본들의 합리성이 체제
전체에는 비합리적 결과를 이끌어 낸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모순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호황과 공황의
반복은 자본주의에서 영원히 계속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공황은 높아진 생산력을 자본주의라는 생산관계 또는
생산양식이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한다는 단말마의
비명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자본의 한계는 자본 그 자체다.
[출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본 자본주의의 경제적 측면
요점 해설|작성자
꿈동산 (2008.12.4)
※ 예전 열심히 돈 벌던 시절에 정리했던 글인데, 우연히 검색하다 걸렸다. 신기하고 기특해서 오타만 수정해 다시 올려 본다. 이 글에는 국가와 제국주의(전쟁), 기타 차별과 억압은 포함되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글의 취지가 경제 원리를 요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