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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9.26 민주노총에 쏟아진 우경화 압력, 그러나 설득력은 없었다
  2. 2015.07.01 노동당―정의당 통합은 우경화다
  3. 2011.02.24 진보신당의 위기와 진보대통합 논쟁 2
  4. 2010.09.17 진보신당 논쟁과 대표 선거 ― 실패한 전략 반복하기?

민주노총에 쏟아진 우경화 압력, 그러나 설득력은 없었다

기사들 2017. 9. 26. 15:10


노동자대투쟁 30년 기념 정의당 토론회

민주노총에 쏟아진 우경화 압력, 

그러나 설득력은 없었다



  • 223호
  •  
  •  2017-09-25
  •  
| 주제: 
  • 개혁주의
  •  
  • 노동자 운동

9월 2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 기획토론회-노동이 있는 민주주의, 무엇을 할 것인가” 제하의 토론회가 열렸다. 정의당과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 미래정치센터가 주최했다.


1부에서는 최근 정의당에 입당해 “노동이 당당한 나라” 본부장을 맡은 김영훈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정의당의 노동 비전을 발표했다. 2부에서는 노중기 한신대 교수와 장석준 미래정치센터 부소장이 발표하고 노동운동 내 여러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이 토론자로 참여해 토론을 벌였다.


김영훈 본부장은 노조 조직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들을 강조했다. 향후 개헌 정국에 대응할 노동헌법쟁취공동행동(가)을 제안했고, 비정규직 대상 사업(상담과 조직화)을 강화하자고 했다.


김영훈 본부장은 노동자 당원들이 이런 활동에 앞장서 “노동 중심성을 실현”하자고도 했다. 민주노총이 “노조 할 권리”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건설하려는 시점에서 이런 입장은 정의당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를 비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의당의 행보가 대선 때 노동자들에게서 받은 지지에 비춰 여러 가지로 아쉬웠던 점을 고려하면 반가운 입장이다.


물론 경제 상황에 비춰 보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가 장밋빛이기만 할 리가 없다는 점에서 이 정도의 비전은 조금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격을 친자본주의 개혁 정부로 분명히 규정하고 노동운동의 정치적 독자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2부 토론이 이 부족한 점을 채워 주길 바랐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보다는 발표자 2명(노중기, 장석준)과 토론자들 다수가 주로 민주노총 현 집행부의 상대적 좌파성 비판에 집중했다. 이는 발표자와 토론자 총 9명 중 좌파 활동가가 2명 밖에 없었다는 패널 구성상의 불균형 탓도 있었을 것이다.


노중기 교수는 민주노조 운동이 조합주의(경제주의를 가리키는 듯)에 빠져 있고, 이 때문에 사회적 영향력이 줄었다고 주장했다. 노 교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할 산별노조가 투쟁을 미루니 별 수 없이 민주노총이 이를 받아안아 “뻥 파업”만 남발한다고 비판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지만, 노 교수의 대안은 투쟁성 강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민주노총이 투쟁 조직화 그만하고 노동운동의 ‘내셔널 센터’(전국적인 지휘부)로서 정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 교수(노무현 정부 시절에 노사정위원회 참가에 부정적이었던)는 문재인 정부 아래서는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민주노총 현 집행부를 비판했다.


노 교수의 근거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하고 있고 “촛불 항쟁”의 여파라는 것이다. 노 교수는 2000년대 중반에 (사회적 대화를 추진한) “민주노동당 다수파의 민주대연합” 노선을 “2중대 노선”, “개량주의”라고 비판했는데, 지금의 노사정위원회 노선과 어떻게 다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노 교수가 비전으로 내놓은 “비정규노동 중심의 사회연대체제 구축”이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참가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충분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노동귀족”론

장석준 부소장은 노동시간/소득/자산의 “재분배”를 통한 계급 내부 격차 줄이기를 노동의 과제로 내놓았다. 장 부소장은 임금총액 감소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조건을 달지 않았다. 장 부소장이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가 임금을 양보하는)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해 온 점에 비춰 보면, 이는 사실상 임금 총액이 줄어드는 노동시간 단축과 보편 증세(노동자 증세) 등을 추진하자고 제안한 셈이다.


장 부소장은 “[한국 노동 운동/정치가] 성숙의 시간을 허용받지 못했다”며 후발 주자인 한국 노동정치가 후진적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후발 자본주의 나라의 노동자 운동은 서유럽 노동운동이 걸어간 뒤를 그대로 좇아야 한다는 얘기다. 혁명이나 급진적 개혁은 미래의 일이고, 초보적인 복지국가(“사회국가”) 이루기나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서도 불균등·결합 발전이 적용된다는 것은 20세기 전반부에 러시아 혁명이 독일 등 더 선진적인 나라들의 혁명을 고무한 것으로 이미 입증됐다.


장 부소장의 단계주의 발전 개념은 그가 현실의 노동운동과 계급정치에 10년 전보다 더 냉소적으로 된 것을 반영하는 개념인 듯했다. 그는 또한, “민주노총이 발의[해도] 민주노총이 아닌 사람들이 참가했을 때 힘이 발휘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노동운동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뿐더러, 싸워 봐야 독자적으로는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토론자인 양동규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지난해 박근혜 퇴진 운동의 도화선이 된 노동개악 저지 철도노조 파업 등을 예로 들어 장 부소장의 견해를 반박했다. 그러자 장 부소장은 “철도노조 파업은 안녕들하십니까 자보 운동을 통해서[야] 사회운동이 됐다”고 냉소적으로 답했다.


양동규 위원장은 2016년의 74일간의 파업을 예로 든 것인데, 2013년 사례로 답한 것은 지난해 파업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듯 취급한 것으로, 노동자 투쟁에 별 관심이 없음을 드러낸 답변이었다. 게다가 문제의 2013년 파업만 놓고 봐도 인과관계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철도 파업이 (박근혜 초기에 주눅들어있던 청년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지 않았다면, 대자보 운동이 벌어졌을까? 반대로 대자보 운동이 먼저 벌어졌다면, 그것이 철도 파업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또는 그런 사회적 파급력을 낳을 수 있었을까?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장 부소장의 견해는 본말전도에 불과하다.


장 부소장은 발표에서 청년·여성 정체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승호 사이버노동대학 대표는 계급 정체성이 더 근본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서도 장 부소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19세기, 20세기에는 노동계급이란 말이 효과를 나타냈는데, 우리 시대에도 계속 그렇게 될까 의문이 있[다].”


사실상 현실의 노동계급이 분절화돼 계급으로 단결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기대도 걸지 않겠다고 말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가 왜 ‘계급’ 내 재분배를 주장하는지 궁금하다.


그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지해 온 민주노총 중앙파 상층 간부들 중 상당수는 오랫동안 민주노총의 상층 기구를 차지해 왔다. 그중 일부는 지금 정의당의 노동 측 기반이다. 그가 노동운동이 실패했다고 한 것에 이들은 포함되지 않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계급투쟁적 좌파

이날 토론자들은 통상의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발표자들의 발표문에 논평을 하기로 섭외된 것일 텐데, 정작 토론자들은 그보다는 민주노총 비판에 (의아할 정도로) 집중했다.


물론 노동운동은 성역이 아니고, 비판자들이 인용한 사례들에는 뼈아프게 새겨 들어야 할 지적들이 있었다. 노조 비리나 최근 기아차, 전교조 등에서 드러난 비정규직 배제 행태 등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비판들은 (다양한 소재들을 꺼내 놨지만) 하나같이 민주노총의 “전투적 조합주의”를 비정치성이나 집단 이기주의 정도로 취급했다. 계급 내부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임금 양보 등을 기피하면서 계급 대표성도, 사회적 영향력도 잃었다는 것이다. 뻥 파업이나 하면서 새 정부의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적 대화 기구에 불참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날 이런 목소리를 가장 높인 건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였다. 토론회 내내 그는 민주노총 현 집행부가 올해 최저임금 인상액이 (목표치로 제시한) 1만 원에 미달한 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성명을 낸 것을 문제 삼았다. 이남신 활동가는 민주노총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약화됐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단체의 A4 한 장짜리 최저임금 결정 비판 성명서가 운동의 대중적 발전에 해를 끼쳤다는 비판은 모순되어 앞뒤가 안 맞는다.


이남신 활동가는 문재인의 1만 원 공약과 민주노총의 올해 당장 1만 원 요구는 불과 2년 차인데, 그걸 문제 삼을 필요가 있냐고도 비판했다. 하지만 이 비판은 그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올해 인상액으로도 기뻐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눈높이”를 강조하며 민주노총의 반성적 평가를 관념적인 듯 비판해 놓고는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시점의 2년 차이가 별 것 아니라는 식(“빨라야 2년 앞당기는 것”)으로 얘기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 폭이 예년보다 높았지만(그래서 성과의 폭에 대한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공식 요구가 “지금 당장 1만 원”이었고, 대다수 운동 주체들이 6·30 파업에서도 “지금 당장 1만 원”을 요구한 점에 비춰 보면, 민주노총이 먼저 1만 원보다 낮은 양보안을 내는 등 기대치에 충분히 부합하게 행동하지 못한 것에 사과한 것이 그토록 문제 삼을 일은 아닌 듯하다. ‘원래 교섭 목표와 투쟁 목표는 다른 것’이라는 이남신 씨의 비판은 그 자신이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측 위원이었다는 점에서 변명조로 들린다.


그는 교육부의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에도 민주노총 추천 전문가로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비정규직 교사들의 정규직화를 주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전국기간제교사연합 대표단에게 ‘전원 정규직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차선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는 식으로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는 이날 자기가 그렇게 못한 것이 전교조 중집의 결정과 조합원들의 ‘기간제 정규직화 반대 투서’(심의위원회에 연서명해 보냈다고 한다) 때문인 것처럼 주장했다. 전교조가 잘못한 면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가 심의위원회 안에서 제대로 노동운동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한 것을 모두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겁해 보였다. 국회에서 열리는 이런 공개 토론회에서 전교조를 성토할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는 왜 전교조 입장을 비판하며 기간제 등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화를 주장하지 못했을까?


최저임금 관련한 이남신 씨 입장을 적극 지지한다는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최근 민주노총이 가장 열심히 한 투쟁이 통상임금 투쟁이었다”는 식으로 사실과도 다른 비판을 했다(알면서 그러는지, 정말 모르는 건지).


통상임금이나 공무원연금 같은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에서 오히려 문제였던 것은 ‘노동귀족’ 운운하는 비판에 위축돼 노동조합들 스스로 투쟁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었다. 오히려 그런 소심함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성과연봉제 등 새로운 공격을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한상균 집행부를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라고 비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기대하고 약속한 만큼 전투적인 노동조합 투쟁을 이끌어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건파 참가자들이 논리나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설득력 없는 비판을 이어가니, 이날의 민주노총 비판은 유감스럽게도 노동운동 이기주의(노동귀족론) 담론과 그다지 구별되지 않았다.


특히,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정규직 양보론에 대한 양동규 위원장의 반박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다. “차별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무슨 자본의 수탈 운운? … 민주노총 같은 집단, 권력을 가지고 있는 그 집단들이 너무 성찰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노동자들이 모아지지 않는 거예요. 중요한 책임은 그쪽에서 지셔야 [합니다.]”


민주노총을 싸잡아 차별 문제에 무지하다고 비판한 것은 참말도 아니고 특히, 근본적 페미니즘이 무리한 실천으로 노동운동 내 단결을 해치는 일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신 교수가 한술 더 떠, ‘정의당은 민주노총 말 듣지 말라’고까지 한 것은 부당했다. 이는 아마도 주최측인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나 김영훈 본부장이 이날 토론회에서 밝힌 정의당의 기조와도 맞지 않는 것일 테다.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들은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고립됐고 영향력 없다”는 주장들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토록 사회적 영향력이 없다면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섣불리 2천만 노동자 대표를 자임해도 되는지, 계급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나 있는지 앞뒤가 안 맞는데도 말이다.


노동운동이 고립됐다고?

이날 토론회에서 이런 온건 개혁주의 관점에서의 민주노총 비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날 토론회가 민주노총 비판 발언 일색이었던 것처럼만 보도한 것은 정확한 보도가 아니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승호 사이버노동대학 대표는 노중기 교수와 장석준 부소장의 발표가 체제의 개혁에 머문다고 비판하면서 노동운동은 “반제·반자본주의 진보 변혁”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장 부소장에게 “진보정치는 왜 자기 반성을 하지 않는가” 하며 따지기도 했다.


양동규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자신의 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난 몇 년 간, 부족한 점도 있지만, 민주노총의 투쟁이 박근혜의 노동개악을 막아 내고, 박근혜 퇴진 운동을 촉발시킨 등의 성과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스스로의 힘을 자각해야 앞으로의 과제도 정확히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 양보를 주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양동규 위원장은 이렇게 반박했다. “[노동자 양보론 얘기하시는 분들은] 노동운동에 얘기하지 말고 ‘나눔과 상생’ 재단을 만드셔야 … 자본의 책임을 묻는 문제로 더욱더 예리하게 칼날을 벼리지 않는다면 망하겠다는 거예요. 자유주의 정부에게 이용되고 활용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교조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이렇게 지적했다. “전교조 결정 비판하는 것에 공감”하지만 “전교조, 문제 있다, 문 닫아야 된다”는 식의 얘기로 가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전교조 지도부가 지도력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전교조 운동의 조합원 대중의 상태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이 문제를 같이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최저임금 운동 평가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최저임금 1만 원을 민주노총이 가능하다고 보고] 사회적 운동으로 사회적 힘으로 끌고 가자 그랬는데, 다시 최임위이라는 울타리에 갇혔[다.] ... 문재인 공약 이행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 노동의 것으로 사회적 운동의 성과로 주도하지 못했다는 반성[이니 이를 오해하지 말고 열어놓고 논쟁하자.]” 동시에, “이미 [문재인 정부의] 관료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속도 조절해야 되겠[다고] 나오[는데] 내년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쟁[해야 할 상황]”이라며 이남신 씨의 ‘협치’ 전략을 비판했다.


토론회 전반에서 보인 온건파 참가자들의 신경질적인 태도는 조급함 때문으로 보인다. 문재인이 노무현 때처럼 우경화할지도 모르니, 집권 초에 신속하게 노정(정확히 말해 노사정) 협력 관계를 구축해 문재인 정부에게서 친노동 개혁을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인 듯하다. 민주노총 시절 이들과 인연이 깊었던 민주노총 중앙파 출신 문성현 씨가 노사정위원장으로 임명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국 이날 온건파들은 투쟁적 좌파 지도부를 자처하며 등장한 민주노총 현 집행팀이 노사정위 복귀를 주저하고 있는 것을 견제한 것이다.(한상균 집행부가 진보대통합당 건설 안건을 낸 것에 대한 암시적 비판도 있었지만, 이미 물 건너 간 프로젝트여서 이날 토론에서는 전혀 쟁점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날의 민주노총 성토는 지도부 비판의 형식을 빌려 사회적 대화 노선에 비판적인 계급투쟁적 좌파들에게 날린 화살이기도 하다. 마침 문재인 정부 초기의 노정 관계에 영향을 미칠 민주노총 직선제 2기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대화(협치)가 온건파의 욕심대로 진척되지 않는 것은 노동운동 내 좌파가 노사정 협조주의에 반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정리해고 도입 등 역사적 경험 때문에 노동자들 다수의 정서가 아직은 부정적인 기억이 커서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온건파들이 문재인 정부에게 친노동 개혁 제스처가 굼뜨다는 비판을 하지는 않고 좌파에게만 화살을 돌리는 것은 최소한의 공정성도 부족한 것이다.


이들은 마치 온건파들이 하면 ‘대중적’이고 좌파들이 주도하면 ‘비대중적’이며, 노동이 뒤로 물러서야 대중적이 되고, 노동이 앞에 나서면 대중이 떠나간다는 식의 근거도 없는 도식을 교조처럼 반복한다. 그러나 (민중총궐기 등) 좌파와 노동운동이 중심이 돼 출발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성공과 노동을 강조한 뒤로 득표가 성장한 정의당의 총·대선 경험 등을 봐도 그런 우파적 도식은 경험적 근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운동의 좌파성과 대중성의 관계는 계급세력균형의 영향을 받아 변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최신 조사 결과도 있다. 정의당 토론회 다음날 열린 9월 21일 한국노동연구원 주최 토론회에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노조가 불평등 완화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부정적으로 보는 응답보다 62.2퍼센트 더 많았다. 민주노조 운동이 가장 강력했던 1989년 수치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그 이후로 긍정적 인식이 줄었다가 다시 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정홍준 연구위원은 지난 10년 동안 부당한 대우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고 고용안정의 보호막이 되는 등 ‘노조의 효과’를 인정하는 응답이 계속 늘어 왔다고 지적한다. 이것이 다른 정치적 약점들을 다 정당화할 순 없지만, 적어도 노동조합이 사회적으로 고립됐고 지지도가 별로 없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음이 심지어 국책연구기관의 조사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아래서도 개혁을 얻어 내려면 노동자 대중이 스스로 싸워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기층에서 진정으로 좌파적인 조직들을 건설해야 한다. 그것이 경제주의를 극복할 진짜 계급정치이고, 혁명적 좌파가 해야 할 임무다. 사회적 대화론자들은 협치(서로 주고받는 정치협상)를 위해 노동계급 일부의 개선을 얻어 내고 일부가 손해를 감수하자고 주장하므로, 계급적 단결과 투쟁 구축을 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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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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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정의당 통합은 우경화다

기사들 2015. 7. 1. 18:07

※ 이 글은 지난주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발표한 글이다.




노동당 당대회에 부쳐
급진좌파인 노동당이 정의당과 통합하는 것은
오른쪽으로의 이동이다


6월 4일 국민모임,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정의당 등 4자 대표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총선 준비를 위해 9월쯤에는 “구체적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민주노총 전 위원장들 일부와 공공부문 노조 전현직 대표자 일부, 지식인, 예술인, 법률가 등도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관한 <노동자 연대> 입장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에 대해”를 보시오.)

그런데 진보 재결집 논의가 진전될수록 노동당 안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5월 23일 3차 전국위원회에서 독자파 전국위원들은 진보결집기획단 활동을 사실상 정지시키기로 결정했다. 나경채 대표가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서 일방적으로 국민모임 정동영과 단일화해 사퇴하는 등 당론과 절차를 어기며 진보 재결집을 추구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 때문에 나경채 대표는 6월 28일 당대회에 당원총투표 안건을 대의원 현장 발의로 냈다.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를 총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합당과 해산을 포함한 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이므로 당원총투표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당원들을 토론에 끌어들이고 결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더 민주적으로 보인다.(그러나 결집파의 이번 총투표 안건은 모호한 점이 있다.)

한편, 진보 재결집을 적극 추진해 온 것은 나경채 대표, 김종철·강상구 전 부대표 등이 중심인 ‘진보결집 전국당원모임’이다. 반면, 사회당계와 옛 진보신당 독자파 일부가 모인 신좌파당원회의는 좌파정당 독자 노선을 주장한다. 연합보다 노동당 강화가 우선이라는 ‘당의 미래’도 지금의 진보 재결집 논의에는 비판적이다. ‘무지개사회주의자연대’는 아직 공식 입장이 없다.

사실 ‘노동당’ 전체의 정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의당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 개혁주의라 할 수 있다. 노동당은 정의당의 온건한 개혁주의를 비판하며 좌파 정당을 표방해 왔다.

그런데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노동당 진보결집파의 최근 행보를 보건대, 진보 재결집 정당이 정의당보다 더 왼쪽 정당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합 대 독자’ 갈등은 기본으로 오른쪽으로 향하는 통합 움직임에 합류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급진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주류 개혁주의 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통합에 참여하는 것은 오른쪽으로의 이동이므로 그 통합에 반대하는 것이 옳다.

현재 통합에 반대하는 쪽은 좌파 독자성과 ‘운동 정당’의 기치를 유지하며 기회를 엿보자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결집파인 김종철·장석준 전 부대표 등은 노동당과 정의당의 강령이 별 차이 없다고 반론을 편다. 이대로 가면 노동당의 약화가 되돌릴 수 없어져서 오히려 좌파에 불리해진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주류 사회민주주의 수준인 정의당 강령이나 4자 대표 공동선언이 “노동당은 위기의 시대를 넘어설 사회주의 대전환을 위해 탄생했다”고 규정한 노동당 강령에 못 미치는 것은 자명하다. 정치적 차이를 흐리는 방식으로 통합 참여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자세다. 이런 태도는 진보 재결집이 진보정치를 더 우경화시키는 데 일조할 거라는 의심을 키울 수 있다.

권태훈 부대표가 <레디앙> 릴레이 기고에서 다룬 ‘노동당 위기론’이 더 솔직한 진보결집파의 논거로 보인다.

한때 1만여 명을 훨씬 넘던 노동당의 당권자 수는 2010년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통합진보당 창당 직후인 2012년 초에 약 6천6백 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후 사회당과 통합한 2012년 4월 후 당권자 7천7백여 명으로 반등했다. 그런데 올해 초 당대표 선거에서 당권자 수는 5천5백60명이었다. ‘노동당’ 체제에서도 당원 감소세가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20~30대 청년 당원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운영되는 지역 당원협의회가 62곳뿐이고, 그나마 상근자는 4.5명에 불과하다. 김종철 전 부대표는 ‘중앙당 적자가 매달 7백만 원이고 중앙당 상근자에게 최저임금 수준밖에 줄 수 없어 대신 근무시간을 줄였다’고 밝혔다.(6월 22일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결국 현 상태로는 노동당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유의미한 진보정치세력으로서 구실을 하기 힘들다는 위기감이 진보 재결집론에 깔린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권태훈 부대표는 진보 분열이 위기의 큰 원인이고, 이런 분립 상태가 지속되면 정의당으로 표 쏠림 현상이 생겨 노동당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장석준 전 부대표가 진보 재결집을 통해서 “노동당 강령의 메시지가 드디어 그 수신자에 가 닿기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진보정치 재결집: 소망과 현실

새누리당 정권이 고통전가 정책을 쉼 없이 밀어붙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이 노골적인 친자본주의 정책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정의당 등 진보결집 정당이 새정치연합을 대체하겠다는 것은 쉽지는 않아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급진좌파가 이 당에 꼭 포함돼야 하느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왜냐하면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정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와 가까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당면한 정세에 대한 좌파의 과제와 연결되는 문제다.

우선, 현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와 같지 않다.

민주노동당 창당 시기는 1997년 한국 경제 공황과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 이후 노동운동의 정치적 각성이 최초로 주류 정당들에게서 독립적인 노동자 진보정당으로 이어지던 때였다. 이런 때는 좌파가 (독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런 노동계급 정치의식의 이동에 함께하며 단결과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미덕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진보정치 통합 노력은 두 차례나 분열을 겪었다.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적 갈등의 고조와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의 심화는 노동운동 안에서 결정적인 정치적 분화를 낳았다. 그것이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열, 특히 2012년 통합진보당 분열의 근본 배경이 됐다.

결국 사회민주주의 경향과 스탈린주의 경향이 분리했다(노동당, 정의당 vs 옛 진보당). 개혁주의 경향도 좌우로 분화했다(노동당 vs 정의당). 더 급진적인 좌파들은 지금의 진보 재결집 논의에서는 빠져 있다. 이런 분열·분화 상태가 현재 한국이 처한 경제적·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쉽게 해소되지는 못할 것이다.

둘째로, 관악을 재선거에서 국민모임 정동영이 큰 표차로 낙선한 것이나 노동당 당세가 약해진 것 등 때문에 지금 4자 통합 협상은 정의당이 주도할 공산이 큰 게 사실이다. 노동당 내 독자파들도 재결집의 핵심이 정의당과 노동당의 통합 문제라고 보고 있다.(당대회 끝장 토론 중)

정의당은 내부에 이질적인 경향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최근 당 강령 개정을 봐도 대체로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 때 “헌법 내 진보”론을 설파하기도 했던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 6월 24일 <레디앙> 인터뷰에서 “고데스베르크 강령(1959~1989년 독일사회민주당의 강령)처럼 낡은 이념과 과감한 단절을 통해 진보정치의 가치와 정통성을 계승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독일 사민당의 고데스베르크 강령(1959)은 “노동계급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국민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도날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20세기 서유럽의 좌파》, 이 책은 장석준 노동당 전 부대표가 추천한 책이기도 하다.)

또한 도날드 서순은 유럽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1960년대에 자본주의 폐지라는 목표를 단념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상징적 출발점 중 하나로 1959년 발표된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꼽는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자본주의 반대를 포기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냉전적 반공주의를 적극 수용하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반공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결합은  노동계급 투쟁의 분출을 대할 때나, (냉전 시기) 제국주의 간 지정학적 경쟁에서 (자국과 경쟁하는 스탈린주의 국가에 반대해) 궁극적으로 자국 지배계급을 편든다는 뜻이었다.

즉,사회민주주의가 더 노골적으로 자본주의 폐지나 계급투쟁을 기각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 체제 안에서의 선거적 ‘변화’ 추구에 머물겠다는 것을 뜻했다. 이것은 단지 친소 공산당을 배척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계급투쟁적 방식에 반대하는 것이었으며, 국가 안보 개념을 수용한 ‘헌법 내 진보’로 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유럽의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개혁 없는 개혁주의’ 단계를 지나 ‘개혁을 빼앗는 개혁주의’가 돼 있다.

이 때문에 옛 민주노동당의 창당 강령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자고 했던 것이다. 또 유럽에서 시리자 같은 좌파 개혁주의가 부상하는 맥락이기도 하다.

“위기의 시대에 사회주의 대전환”을 추구하는 노동당의 지향은 주류 사회민주주의 지향보다 왼쪽이다. 천호선, 심상정 등 정의당 지도부가 올 초 백령도 해병대와 천안함 위령탑을 방문해 “튼튼한 안보”를 주문한 것도 노동당의 “평화주의”와 정치적 차이가 있다.

따라서 급진좌파라면, 지금의 위기 국면에서 온건한 개혁주의 정당에 합류해 정치적으로 우경화할 게 아니라 다가올 격변에 대비해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맞다.

당장 박근혜는 더 쉬운 해고와 더 낮은 임금을 위해 노동계급 전반의 조건을 악화시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급진적 대안을 내놓고 대중투쟁을 건설하는 데 직접 헌신할 ‘운동정당’이 더 중요하다.

주류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에서 공무원연금 삭감을 사실상 지지하는 태도를 취한 정의당과 ‘조직’을 합쳐서는 이런 과제 수행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정의당은 ‘현대화’와 ‘진보의 세속화’, ‘생활진보’의 이름으로 ‘운동권 정당’과 결별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군부대를 방문해 “튼튼한 안보”를 말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따라서 노동당이 독자적인 급진좌파 정당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노동자 투쟁, 민주주의, 세월호 등을 놓고 공동전선 방식으로 단결과 협력을 꾀하는 게 전체 노동운동에도 이로울 것이다.

ⓒ<노동자 연대> 151호 | online 입력 201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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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의 위기와 진보대통합 논쟁

기사들 2011. 2. 2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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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8일 끝난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 선거에서 한 선본의 웹 홍보물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당원들을 만나 다시 활동을 하자고 권유를 하면 대부분 ‘당이 사라지는데 지금 활동을 해서 뭐합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진보신당은 이제 희망도 미래도 사라져 버린 당으로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경섭 진보신당 서울 마포구 당협위원장도 최근 <레디앙>에 “얼어 죽고 굶어 죽게 생겨 버렸다. … 진보신당은 사람을 모을 돈도, 사람들의 발과 입으로 내세울 의원도 없다.”고 털어놨다.

진보신당 내부는 이 당의 선거적 성공 가망이 점점 없어진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이에 관해 더 자세한 제 견해는 ☞‘진보신당 논쟁과 대표 선거 ― 실패한 전략 반복하기?’를 보세요.)

‘존재의 위기감’ 때문에 심지어 분열 걱정까지 나온다. 통합파인 유의선 서울시당위원장 당선자가 당원총투표로 진로를 결정하자는 공약을 낸 것도 이런 맥락인 듯하다.

“[현재 당원 모두]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으로 함께 갔으면 합니다. …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냥 따로 가자’ ‘제 갈 길 가자’는 불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과 절대 함께 못하겠다며 독자 노선을 고집하는 일부 독자파의 태도는 당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사실 <조선일보>와 인터뷰해서 민주노동당을 종북주의라고 비판했던 조승수 대표 자신이 ‘종북파’의 핵심이라던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과 후보 단일화로 당선했다. 진보신당 지방의원 25명 가운데 21명이 사실상 민주노동당과 후보 단일화를 거쳐 당선했다.

독자파가 목소리를 높이지만, 냉정한 당의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정경섭 위원장은 독자 노선은 “그냥 고사되자는 거나 같은 소리”라고 비판한다.  

정경섭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의] 자주파는 적이 아니다.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고 옳게 지적한다. 진보정당이 차이점을 앞세워 분열할 게 아니라 이명박에 맞서서 공통의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진보신당 당원 다수는 이런 단결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당 선거에서 ‘진보통합정당에 단결해서 참여하자’는 유의선 후보가 절반 가까운 득표로 당선한 것과 통합파 두 후보의 득표 합계가 70퍼센트에 육박한 것은 이것을 보여 준다.

통합파 안에서도 국민참여당 같은 친자본가 정당과도 통합할 수 있다는 최선 후보보다 진보정당 통합이 우선이라는 유의선 후보가 갑절 더 많이 득표했는데, 둘 모두 범야권 선거연합 가능성은 열어뒀다.

유 당선자가 특별히 당원 총투표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당원 여론과 달리 당 지도부와 대의 기구에는 여전히 독자파가 많아 대의원대회에서 진보대통합 합류 방침이 통과될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분열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당원을 통합진보정당으로 조직하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일부 통합파 지도자들이 진보 대중의 진보대연합 지지에 부응하는 수준을 넘어서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하는 수준의  민주대연합까지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관련 내 글 보기 ☞ 연석회의 출범 ― 어떤 진보대연합인가)

심상전 진보신당 전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연합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진보대연합의 파트너인 민주노동당 지도부도 민주대연합 노선에 기울어 있다. (한편 민주노동당 지도부 주류가 실제로는 진보대통합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두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가 있는 민주당과 연합해서 이명박에 맞서겠다는 잘못된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민주당은 비정규직을 늘리는 직업안정법 개악을 한나라당과 합의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묻지마 통합’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독자파의 일부 주장에 일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석준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처럼 “범민주당 정권을 복원하는 것이 목표고, … [진보정당] 통합은 단지 그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단정하며 진보대연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선 진보신당 독자파의 태도는 일관되지도 않다. 말과 달리 독자파의 “진보정치의 독자성” 원칙은 ‘선거적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다.

진보신당의 독자파 대부분은 지난해 지방선거 때 당선 가능성 있는 후보들의 야권연대에 침묵했다. 장석준 실장도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고 있다. 최근 제출한 당발전계획[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독자파가 지도부 다수인 진보신당은 민주당이 제안한 4·27 재보선 야권 단일화 협상에 참가했다. 조승수 대표는 민주당을 비판했지만, 그가 서명한 공동 합의문은 “4·27 재보선부터 민주진보진영의 연합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였[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독자파들은 민주노동당의 자주파를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만 민주대연합을 비판하는 듯한 인상도 준다. 

무엇보다 조 대표가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때 야권공조로 공장에 가 농성 해제 종용에 동참한 사실에 대한 비판을 당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독자파는 민주노동당과 재통합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만 일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재통합이 자신들이 주도한 분당/창당 프로젝트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싸우는 노동자들과 진보 대중이 바라는 진보대연합은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이나 홍익대 미화노동자 파업 같은 투쟁에서 진보세력이 충심으로 단결해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보의 진정한 민생정치 아니겠는가.

그런 연대와 승리, 단결과 신뢰가 누적돼야 연합 조직을 함께 구성하는 것도 가능할 테고, 더 큰 투쟁으로 갈 정치적 자신감을 얻을 수 있으며, 선거에서 단일한 진보 후보를 내고 지지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장석준 실장의 말과 달리 다함께처럼 민주대연합에 반대하면서도 이런 투쟁적 진보대통합을 지지하고 추진하는 좌파들도 있다.

실제로 홍익대 투쟁처럼 진보정당과 진보 단체 들이 단결해 연대한 곳에서 노동자들의 사기도 높아졌고 투쟁도 전진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진보 양당이 단결한 곳에선 양당 지지율 합계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이런 방침은 국민참여당 등처럼 그 지지층은 탐나지만, 그 지도부는 연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세력들에 대한 태도에도 해법을 줄 수 있다. 기준도 전망도 모호한 ‘가치’가 아니라 실질적 ‘요구’와 ‘투쟁’으로 단결했을 때, 무능한 그 지도자들의 손아귀에서 진보적 대중을 왼쪽으로 끌어올 수 있다.

반대로 그들에게 진보적 색을 칠해 주면서 연합하는 방식으로 하면 오히려 대중에게 그들에 대한 환상을 키워줄 뿐이다.

따라서 단언하건대, 다수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의심스런 행보를 핑계로 광범한 진보 대중의 단결 염원을 거부하는 것은 현명한 좌파의 태도가 아니다. 진보대연합을 지지하고 동참하면서, 그 속에서 진보대연합이 민주대연합의 사전 단계가 아니라 진보진영의 단결과 투쟁에 복무하도록 노력하는 게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그 점에서 현재 진보신당 내 통합 논쟁에서 빠진 것은 진보대통합의 목적에 관한 문제의식, “진보대통합이 어떻게 계급투쟁을 강화할 수 있느냐” 라고 본다. 어느 파도 선거공학적 관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집트와 중동의 민중 반란이 보여 주듯이 진정한 개혁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은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에 있다. 진보대연합은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 건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런 투쟁 속에서 서로 협력하고 신뢰를 쌓으며 선거에서도 진보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

한편, 단일한 정당 형태로 통합했다가 다시 당내 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정경섭 위원장은 “섣불리 통합했다가 다시 분열이라도 된다면 진보정치의 미래는 거의 끝”이라고 걱정한다.

신뢰에 바탕한 단결이 되려면 공통점을 앞세워야 하지만,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억압돼선 안 된다. 단일 정당 모델은 그 점에서 여전히 위험하다. 분당 경험은 차이점을 더 크고 분명하게 해 놓았다.

따라서 각 정치세력의 독자적 선전, 비판, 조직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10~20개의 진보적 행동강령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투쟁하는 공동전선 모델이 단결을 위해 더 효과적이다.


※ 이 글은 수정·축약해 <레프트21> 51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 보기   이 글은 그 기사를 보완해 논지를 더 보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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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논쟁과 대표 선거 ― 실패한 전략 반복하기?

내 기사 이야기 2010. 9. 17. 21:51

1. 진보신당은 9월 5일 당대회에서 ‘선거평가 및 당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특별위원회’(당발특위)가 마련한 당 발전 전략(안)에서 새 진보정당 추진기구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당발특위 발전안(관련 기사 :  진보신당의 당 발전전략안 ― 진보신당의 모순을 보여주다)은 진보신당의 진로 ― 연합정치와 당 정체성 ― 를 두고 벌인 논쟁을 봉합하는 절충안이라고 평가절하돼 왔는데, 진보통합 추진기구 설치는 이런 발전안에서 몇 안 되는 구체적 실천 계획이었습니다. 

겉보기엔 문구상 질적인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수정안 가결의 상징성이 큰 까닭입니다. 그래서 당 발전안 통과 후 연합정치 행보를 가속하려던 이른바 ‘통합파’의 입지가 당분간 축소될 것으로 보입니다[각주:1].
연합 지지파 안에서도 진보신당 상층부의 무원칙한 ‘연합정치’ 행보에 반감이 상당하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죠[각주:2].

그 결과, 심상정 전 대표는 대표 출마를 그뒤 고사하고, ‘독자파’ 출신 조승수 의원이 대표 선거에 단독 출마했습니다. 


2. 독자파와 통합파는 쟁점을 선명히 드러내는 명칭은 아닌데, 그 본질을 살피다 보면, 또 손쉽게 둘을 구분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제 관점에서 보면, 통합파는 말그대로 통합정당을 추구하므로 진보신당 자체는 통합진보정당으로 용해되는 것이고, 독자파는 선거연합은 반대하지 않지만[각주:3], 진보신당을 유지하면서 연합을 하자는 것입니다. 결국, 진보신당의 유지 여부가 쟁점인 것이죠.

물론 통합파도 통합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진보신당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 독자파도 세력의 재구성을 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으므로 우선 당을 강화하자는 데에서는 사실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입장의 차이가 불구대천의 차이인지 사실 좀 의심스럽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바로 그런 당 강화에 걸린 양쪽의 필요 때문에, 논쟁 주제가 연합의 범위에서 진보신당의 존재 이유 즉 당의 정체성 문제로 바뀐 것이라 봅니다. 연합이 제기된 것은 이대로는 진보신당이 존폐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체성 논쟁은 2년의 성공/실패 여부라는 평가 문제와 향후 진로 전망 문제를 모두 포함하는 쟁점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논쟁 구도가 연합의 범위 문제로 시작해 당 정체성 문제로 간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독자파의 핵심들이 민주노동당 선도탈당파인 점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연합의 범위 쟁점이 국민참여당·민주당에 머물지 않고 민주노동당 문제도 쟁점이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도탈당파에게 재통합은 창당 실패를 인정하는 거니까요.

사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진정한 차이는 진보신당 창당 기획을 포기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편의상 독자파와 통합파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도 그렇게 틀린 용어법은 아니겠다고 생각합니다.

3.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진 중심의 실세 그룹들, 즉 유시민이나 천호선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한 인물들이 주도하고 있고, 민주노동당은 최근 민주대연합 노선과 헌정회 지원과 인천 동구청장 사태 등으로 우경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통합파는 확실히 무원칙합니다. 그들은 진보신당의 위기를 선거공학에 바탕해 민주대연합에 가까운 통합 정당 노선으로 돌파하려 합니다.

국민참여당이나 민주당과 하는 통합에 반대하는 점에서 독자파가 더 올바른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독자파가 사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 같은 애초 진보진영의 독자 정당 건설의 목표를 좌파적으로 되살리며 통합파를 비판하는 건 아닙니다[각주:4]. 그들도 마찬가지로 선거 논리에 기대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도 대부분 민주당을 포함하는 선거연합은 찬성합니다. 둘째, 진보 양 당의 재통합을 바라는 민주노총 조합원 등 진보 대중의 바람을 외면합니다. 셋째, 선거 기반이 거의 없는 사회당과 통합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사실 별 관심이 없습니다.(더 좌파적인 그룹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그것은 독자파도 당 존립에 관한 위기감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통합파의 방식이 진보신당 주축 세력의 정치적 소멸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도로 민주노동당’에 그토록 반감이 큰 것도 그것이 자신들의 분당/창당 기획의 실패를 인정하는 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자주파와 세력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제도 선거판에선 집권당 출신인 국민참여당의 세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통합이든 연합이든 자기 기반이 확실해야 지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통합파의 아킬레스 건입니다. 통합파 리더들의 정치적(선거적) 상품성은 ‘진보정치’에 있기 때문에 진보신당이라는 기반을 버리고 개인적으로 통합 논의로 갈 순 없죠. 이 때문에 통합파가 당대회의 일시적 패배를 감수하고 독자파와 다시 동거에 들어간 것입니다.


4. 그렇다고 독자파에게 당장 실현가능한 뚜렷한 비전이나 기반이 있는 건 아닙니다. 조승수, 김정진, 한석호, 장석준 등 선도탈당파를 이뤘던 독자파들이 “주체의 재구성”을 이루자고 강하게 주장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통합파의 “세력의 재구성”에 맞서 독자파가 내놓은 “주체의 재구성”은 실패한 창당 기획의 반복에 불과합니다.

조승수 의원은 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재벌(=대자본)과 싸우는 당”이 되겠다고 했는데, 자본가 싸우는 당이 왜 노동자(계급 전체)당이 아니라 비정규직(계급 일부)당이어야 할까요.

장석준은 정규직(조직 노동운동의 주요 구성 집단)은 신자유주의에 포섭됐고, “20대, 여성 등의 비정규직”은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됐다고 말합니다. 배제된 사람들의 당이 되자는 거죠.

즉,
“비정규직당” 노선은 노동계급 정당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비정규직당” 노선은 조직 노동운동과 거리두기라는 정치적 함의를 지닌 용어로 봐야 합니다.

독자파의 주요 인물들이 민주노동당 분당 전 정규직 노동운동의 정치·경제적 양보로 노동계급 복지를 늘리자는 사회연대전략 지지자들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장석준은 최근 이른바 ‘비정규직당 노선’을 1960년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신좌파와 연관시키는 데, 당시 신좌파는 반스탈린주의나 환경 등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대변했으나 엘리트주의, 총체적 사회 분석의 결여, 종파주의 등으로 빠지기도 했습니다.


구 좌파와 비교해 가장 중요한 특징은 노동계급 기반과 유리되면서 총체적 사회변혁 전략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막상 1968년 이후 세계적 반란 사태(흔히 68혁명이라 부르는)에서 주요한 구실을 할 수 없었습니다. 체제를 뒤흔든 건 그들이 일차원적 인간이 됐다고 무시한 노동계급의 집단적 저항이었습니다.

결국, 친노동 이미지는 유지하되 조직 노동자 운동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 “비정규직당” 노선의 실체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창당 기획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미 실패한 그 기획 말입니다[각주:5].



5. 장석준은 비정규직당 노선의 성공가능성을 386 유권자들의 가치 투표에서 찾습니다. 독자파도 마찬가지로 선거공학에 의존한다는 한 방증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저는 20대와 여성으로 상징하는 미조직 청년 집단이 매우 불균등하고 유동적인 집단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진술이라 봅니다. 즉 수백만 명이나 되는 이 집단이 왜 자신들의 집단 투표가 아니라 386의 가치 투표에 의존해야 하는 걸까요.

이들이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됐다는 이유만으로 진보에 친화적일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쟁 논리에 20대 청년층이 포섭돼 희망이 없다는 비관주의가 근거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구 좌파가 마르크스의 말을 좇아 노동계급에 기초해 계급 정치를 주장할 때, 그것은 단지 교조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계급’이라는 관계가 불가피하게 강요하는 것들, 즉 지배적 자본과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스스로 작업장을 기초로 조직하게 되며 진보적 사회변화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들을 성찰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건 때문에 계급 정치를 고수하는 것은 이들 말로 어느 정도 이념의 경직성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경직성을 피하려 계급 의제를 버린다면  그것은 첫째 주관적 소망 때문에 객관적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며, 둘째, 안정적 진지가 없는 전략은 불안정하고 득표에 의존하는 선거정치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정적으로 기업과 사회를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그들의 노동은 이들에게 사회를 멈출 수 있고 사회를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잠재력을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에서 문제 해결 세력은 조직 노동운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사화 변혁의 핵심 주체 세력입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문제 해결조차 열쇠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연대에 있습니다. 장석준 등이 동희오토 투쟁을 강조하는데, 그 투쟁의 열쇠는 기아차(+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적극적인 연대 투쟁에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많은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에 맞서는 매우 중요한 항구적 진지입니다[각주:6].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포기하는 반동을 선택하지 않는 한 노동조합을 와해시킬 순 없습니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혁명이냐 반동이냐 하는 선택의 상황이겠죠. 이때야말로 조직 노동계급의 저항이 결정적일 겁니다.

노동계급을 분할해 한쪽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이들을 분열시키고 내부 불신을 조장하는 것으로 우리 편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20대 불안정 노동층 또는 진보·개혁 성향의 청년 대중을 조직하는 것이 꼭 조직 노동자운동과 거리두기에 바탕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힘을 고무해 이 힘을 발휘하는 투쟁을 통해 청년들의 급진화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힘들어 보여도)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입니다. 이런 세력의 동원을 거부하는 건 자본주의의 근본적 대안을 만들겠다는 창당 목표와도 모순됩니다.

한편, 정규직 노동운동이 신자유주의자들에 포섭됐다고 하는 건 정확하지도 정직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습니다.

신자유주의 거품(부채) 호황에 정규직 노동자 개인들 일부가 관심을 보이고 하는 건 포섭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소득이 자산 거품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벌어진 불가피한 선택으로 봐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주요 기간산업과 공공부문에 조직 노동운동이야말로 한국 지배자들에게 가장 위협적 존재입니다. 한국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에 한편에서 양보하면서도 한편에서 공격을 지속하는 것은 이들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국가운영과 경제(기업의 이윤활동)를 뒤흔들고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세력입니다.

조돈문 교수는 2년 전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집단이 민주노총 조합원 즉, 조직 노동자층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상시적으로 이명박의 신자유주의와 대결하는 조직된 집단이 바로 이들입니다[각주:7].

덧붙여, 신자유주의 노선이 2008년 위기 이후 그 신용을 잃고 각국 지배자들이 혼합 정책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반대만으로는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기 힘들 거라는 점도 지적 대상입니다.

결국 조직 노동운동과 거리를 두며 유동적인 청년층에 기댄다는 것은 촛불항쟁 때와 같은 성장을 다시 한번 꿈꿔 보겠다는 것인데, 짧았던 황금시절의 추억은 다시 반복되지 않습니다.


6. 정치 지형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2007년 당시 이명박 당선 후 정치지형이 매우 우경화된 듯 보였고, 이런 보수화 흐름에 호응하지 않으면 2007 대선 72만 표에서 보듯 진보정당이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습니다.

진보신당의 창당 기획은 기존 진보정당보다 우경화한 진보정당을 만들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있는 미조직 청년층을 선거적 관점에서 조직하려는 플랜이었습니다. 이 선거주의적 우경화가 진보신당을 스타 정치인에 의존하는 당으로 만든 것이죠. 

이 기성정당 닮아가기가 진보신당 주도세력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면서 민주노동당에 새겨진 이미지, 즉 친북(대한민국 국가기구의 정통성)[각주:8]과 계급(자본주의와 적대)을 새 진보정당에서 지워버리려 한 까닭입니다. 중요한 쟁점이었지만, 이들의 비판 방식과 내용은 좌파적이지 않고 우파적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진보신당이 촛불항쟁에서 성장한 것은 당시 정치 상황의 모순[각주:9](행동 수준과 이데올로기준의 격차)을 반영한 것이었는데, 진보신당 창당 프로젝트는 행동의 급진화가 아니라 사회의 보수화(우경화)를 예측하고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촛불항쟁이 사그라들고, 대신 이명박의 거듭된 실정 때문에 온건개혁주의가 성장하면서 민주당의 주요 주자들마저 진보와 복지국가를 읊조리며, 친노 세력이 부활해 국민참여당을 창당해 진보세력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마저 최근 우경화했습니다. 큰 바다 같던 오른쪽 공백은 더 큰 세력들이 채우고, 왼쪽 특히 조직 노동자 기반은 스스로 거리두기를 해 온 탓에 진보신당의 입지는 매우 협소해 졌습니다.

그럼에도 조직 노동운동이 그 위력을 한껏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지면서 이들의 이른바 신좌파적 상상력은 성마른 미조직 청년층과 지친 노동운동 출신 활동가들에게 기대감을 일시적으로 줄 순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7. 이런 의미에서 진보신당의 창당기획이던 비정규직당 노선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 무정형의 청년세대 조직화에 성공도 해 봤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융화시키지 못해 곤란도 겪었잖습니까.

종북주의 비판도 대중적으로는 먹히질 않아 분당의 이유 즉, 존재의 이유를 대중적으로 설득하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국회의원을 둘이나 데리고 나왔는데도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울산에서 민주노동당의 양보를 얻고서야 의원 한 명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민주노총의 영향력이 요즘 약해지면서 노동계급정당이라는 사상이 당장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거공학이나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엄밀한 현실 분석과 전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2008년 세계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 위기는 근본적 시야와 근본적 대안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즉 이 사회의 다수는 노동계급[각주:10]입니다.이명박 정부는 약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진보적 정치 대안의 부재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변혁의 전망, 진보정치의 핵심 과제는 노동계급 정치를 강화
(단결과 투쟁력, 정치의식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단결된 투쟁만이 대자본가들의 권력을 위협하고 양보를 얻어낼 수 있고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열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투쟁에 헌신하겠다는 것 자체는 매우 좋은 일이고, 사실상 차기 대표인 조승수 의원이 말한대로 재벌과 싸우려는 것도 고무적입니다. 진작 이랬어야죠. 사실 재벌과 싸우는 당이라는 기치는 창당 기획보다 진일보한 유일한 것으로 그나마 고무적인 변화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결과를 내려면 계급 정치가 가장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문제는 이것은 또 피하려 한다는 거죠.
진보신당 스스로 강령에서 자본주의의 극복을 말하고 있다면 당내 좌파는 이 문제에서 더 진지해져야 합니다.

고통분담론에 분칠을 한 건강보험하나로 같은 양보론이 아니라 강력한 시장 통제와 소득 재분배(강력한 누진세와 기본소득 등 도입), 부실기업 공기업화를 통한 고용보장 등을 내놔야 합니다.

덧붙이면, 좌파의 대안 강령과 정책은 이런 운동을 고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최근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반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보대연합도 노동계급을 진보적으로 단결시키는 맥락에서 추진돼야 합니다. 이런 과제를 수행할 정치단체가 필수적이겠죠.

이것이 되려면 좌파는 ‘계급’과 ‘사회주의’라는 의제를 복원해야 합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불충분한 태도를 비판하는 데서 멈추는 것은 의회 활동과 노동자 부문의 투쟁을 분리하고 노동운동과 거리 두기 하는 것을 정당화할 뿐입니다.

(10.2 최종 수정)
  1. 당분간은 이번 선거 출마에서 보듯 통합파가 양보해 분열을 막으려 할텐데, 대통합을 주장하는 이들이 자기 당의 분열을 선택하는 것도 모양새가 우스울 수 있는데다가, 각 정당의 통합시 통합파의 리더가 발휘할 영향력과 챙길 수 있는 지분은 진보신당의 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2. 물론 표결 자체는 과반수에 3표를 넘겼습니다만, 원안을 지지한 사람들이 노회찬, 심상정 등 진보신당의 대주주라는 점을 고려해야죠. [본문으로]
  3. 사회당과는 통합을 하자는 독자파도 있죠. 또, 독자파들도 방법론은 분분하지만,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을 포함하는 선거연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4. 그들이 비록 대부분 PD좌파 출신이긴 하지만 말이다. [본문으로]
  5. 종파주의도 반영된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노동운동가들이 민주노총에서 소수파인 까닭에 정규직=민주노총=민주노동당 식의 개념짓기로 비정규직에 집착하는 면도 있다. [본문으로]
  6. 최근 유럽에서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에 맞서는 투쟁의 선두에는 노동계급이 있다. 엊그제 스페인의 1천만 명 총파업이나 프랑스, 그리스의 투쟁은 좋은 사례다. 물론, 이 투쟁들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한국의 노동자 투쟁의 활성화가 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G20 항의시위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대규모로 참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본문으로]
  7. 어쩌니 저쩌니 해도 비정규직 문제로 집회도 하고 파업도 하는 유일한 사회세력은 다름아닌 민주노총 조합원들입니다. [본문으로]
  8. 자주파는 원래 북한 정부를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하므로 남한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이 문제에서 많이 변한 듯하다. 원인은 따로 살펴보겠다. 문제는 이 점이 자주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1980년대 민중운동은 북한에 대한 태도와 관계 없이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 기구를 물려받고 미국 제국주의와 결탁해 건설돼 군사독재로 유지돼 온 대한민국 국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남한에서 친북노선 비판이 자칫하면 남한 시장경제 체제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은 게 이 때문이다. 우리는 남북 양 체제에 모두 급진적 비판을 가해야 한다. [본문으로]
  9. 촛불항쟁은 정권 퇴진을 외치고 수도 한복판에서 1백만 명이 참가하는 등 매우 급진적인 대규모 투쟁이었으나 이 운동의 이데올로기는 온건개혁주의 수준에 머물렀다. 거기에는 이명박의 반동 때문에 사람들이 급진화한 데서 오는 효과도 있었다. [본문으로]
  10. 경제 활동 인구의 3분의 2가 임금노동자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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