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4일) 파시즘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참여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더군요. 지난해 여름만 해도 이명박 정부의 “위로부터 파시즘화” 같은 논의들이 나오는 등 논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말이 없어서 별로 참가자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아마도 포럼 조직자들은 이명박=파시즘론이 민주대연합론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파시즘 논쟁의 맥락을 검토해 보는 게 최근 정치전략 토론에서 유용할 거라고 판단한 듯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명박 정부는 파시즘 체제가 전혀 아닙니다. 나쁜 일을 하는 능력에서 이명박은 파시즘의 백 분의 일도 안 됩니다. 파시즘은 훨씬더 위력적인 반동 체제입니다.

히틀러에겐 자신에게 충성하고, 거리에서 목숨 걸고 노동조합원들과 좌파를 테러할 (심지어 침략전쟁에 나설) 열광적 당원이 수십만 명 있었습니다. 이명박에겐 다음 선거를 걱정하며 분열하는 다양한 분파의 여당과 관료 집단이 있고, '보수'받고 동원되는 보수단체들이 있을 뿐입니다.

파시즘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중간계급이 중심이 된 반동적 ‘대중운동’이라는 것입니다. 파시즘은경제위기로 파산 위협에 몰린 중간계급을 반자본 반노동 반진보 대중운동으로 동원해 성장합니다.

파시즘의 계급토대가 중간계급, 즉 소자산가가 핵심 기반이라는 것은 이들이 금융자본을 혐오하고 독점자본을 강령상 공격할 때조차 사유재산이나 기업활동의 자유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게다가 중간계급은 독자적으로 체제를 구성하고 지배할 경제적 능력이 없습니다.

결국 파시즘 운동은 누군가 위에서 구원을 해줘야 왕좌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파시즘의 집권은 극심한 공황기에 극도의 반동 체제가 아니면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보는 대자본이 反자본주의적 노동운동을 분쇄하려고 파시즘을 정치권력으로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제공황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온갖 분파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적당한 타협물을 내놓는 의회주의는 별 쓸모가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노동계급의 정당과 노조도 체제를 폭력적으로 재편하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파시즘이 부르주아민주주의마저 파괴하는 이유입니다.

역사적으로 파시스트가 집권에 성공한 곳에서 반자본 강령은 허울이 되고, 반동적 대중운동이 (노동계급 조직의 결성과 정치 자유를 허가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인)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좌파·노동운동의 진지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게 주된 특성이 됩니다.

중간계급은 동네와 직장, 거리에서 노동계급과 밀착해 존재하므로 외부에서 감시·사찰하는 비밀경찰들보다도 더 노동계급 대중의 조직들을 - 진보정당과 노동조합, 진보적 시민단체와 학생회, 각종 토론·동호회 모임 등- 파괴하기 용이합니다.

역사적 파시즘이 이처럼 극단적 반동적 야만주의로 자본주의를 구출하려는 전략이라는 점 때문에, 反파시즘이란 것이 혁명 아니면 반동인 위기의 시대에 자본주의와 싸우는 투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점에서 파시즘 운동의 계급 기반, 노동운동과 맺는 적대관계, 그리고 반(反)파시즘 운동에서 노동계급의 구실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실천에 반영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명박=파시즘 론은 이명박을 옳게 퇴진 대상으로 삼는 장점은 있지만, 이명박의 힘을 과장하는 바람에 오히려 선거심판론으로 빠지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운동이 활발하지 않을 때 적의 힘을 과장하니 비관론에 빠져 선거 심판론=민주당 의존에 기우는 요인이 됐습니다.

사실 이런 선거 의존 전략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파시즘화란 대의민주주의가 무력해 졌다는 건데, 민주당을 가장 중요한 동맹 대상으로 삼는다는 건 의회제에 의존한다는 거니까요.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이명박보다 더 강력한 파시즘과 맞서는 데에도 자본가당들과 연합한 결과는 매우 재앙적이었습니다. 파시즘이 극단적으로 반동적인 자본주의 구출 전략이라는 점에서 反파시즘 투쟁은 좌파적 노동운동의 단결이 절대적 필요조건입니다.

△ 무언가 참고하려 뒤적일 때마다 감탄하는 책.《민중의 세계사》는 진보적 사회변화를 위해 미래를 전망하려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역사서. 제대로 돌아봐야 제대로 내다봅니다.

1930년대 파시즘이 문제가 된 국내의 자본가들이나 이른바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들조차 파시즘을 막기보다 파시즘과 맞서 싸우는 노동운동이나 국제적으론 소련을 더 경계했습니다.

독일에서 공산당은 스탈린의 멍청한 지령을 받고 종파적으로 反 파시스트 단결을 거부하다가 망하고, 사회민주당은 히틀러를 막는다며 우익 장군 힌덴부르크를 지지하다가 뒤통수를 맞습니다.

(그때 저명한 좌파 지도자 가운데서는 러시아혁명의 지도자이면서 당시 스탈린에게 박해받아 추방당한 상태였던 레온 트로츠키만이 이런 스탈린의 정치방침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反파시스트 노동계급 공동투쟁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그가 남긴 분석과 시야, 전망이야말로 ‘밤이 깊을수록 별은 빛난다’는 말의 표본입니다)

여기에서 교훈을 얻은 노동운동의 단결된 저항 때문에 파시즘을 약화시키고 인민전선이 집권했지만, 인민전선의 자본가당들은 사회당·공산당의 도움을 얻어 노동자투쟁을 잠재운 뒤에는 사회당을 팽하고 나찌 독일을 지지하는 정권을 스스로 세웁니다.

스페인 (인민전선) 공화국 정부를 주도한 자본가당들은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 반란군보다 노동자들의 反 파시스트 저항을 파괴하는 데 더 열을 올렸습니다.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무장해 싸우며 해방구를 형성한 곳에서만 파시스트 군대를 물리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국제적으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와 영국 정부는 스페인 공화정부 지원을 거부합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프랑코를 정치·군사적으로 지원했는데 말입니다. 영국의 처칠은 히틀러의 체코 점령 등을 묵인해  전쟁 준비를 방치합니다. 

그리고 멍청한 스탈린은 독일에선 反 파시스트 단결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가 이제는 이따위 자본가 정부들과 무비판적으로 협력하라고 각국 공산당에게 명령했습니다. 유일하게 스페인을 지원한 소련의 고문단은 공화파 정부의 좌파 마녀사냥을 나서서 돕습니다.

이 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反파시즘 전쟁’이라고 광고하는 건 역겨운 짓입니다.

그래서 토론에 참가한 어느 분의 말씀처럼 파시즘의 성공은 단지 체제의 위기와 이에 따른 중간계급의 상태만이 아니라, 좌파가 부패한 대가이기도 합니다.

한편, 파시즘을 전체주의 국가 형태로 이해하고 파시즘 체제와 스탈린주의 체제를 비슷하게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스탈린주의 체제가 나쁜 일당독재 국가이고 노동운동 등 저항운동이 억압하긴 했지만 파시즘 체제의 노동운동 궤멸 상태와 비교할 순 없습니다.

동구권에선 1953년 동독, 1956년 헝가리, 1968년 체코, 1978년(과 1989년) 중국 등 민주화 운동과 파업, 혁명이 주기적으로 생겨났습니다. 1989년엔 적지 않은 나라들이 대중 저항 때문에 정권이 붕괴했습니다.

반면 스페인에선 1939년 내전 패배 후 거의 30년 동안 저항운동이 등장 못했습니다. 앞 세대가 (운동과 조직, 육체적 생명 모두) 절멸해 저항운동의 전통이 이어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찌는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야만주의이고, 스탈린주의는 선진자본주의를 단시간에 따라잡으려는 3세계 독재입니다. 그래서 스탈린주의 나라 가운데 어느정도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들에선 충분하지 않지만 나름의 보편적 복지가 노동계급에게 제공됐습니다. 파시즘 체제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파시즘은 단지 기존의 진보르 파괴할 뿐입니다.

스탈린주의 강제수용소와 정치수 억압도 끔찍하지만, 수백만 명을 ‘죽이려고 죽인’ 홀로코스트에 비교하긴 힘듭니다. 그 악질성과 규모 면에서 말이죠. 

결국 자본주의 안에 내재한 광기가 이런 미치광이들이 집권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겁니다. 히틀러가 시작한 제2차세계대전은 독일자본주의가 세계대공황을 벗어나려는 (자본의 논리에서는) 합리적 선택이었습니다.

국제교역이 붕괴하는 상황에서 국가자본주의적으로 성장을 유지하려면 원료와 값싼 노동력을 확보해야 하고, 이는 곧 독일자본주의의 영토 확장을 뜻했습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인민전선 정부를 수립하기 전 좌파와 노동운동은 단결해 거리에서 파시스트 운동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이 인민전선 정부를 지지하며 발목 잡혔을 때, 파시스트에게 패배했습니다. 이것이 파시스트와 맞서 싸운 역사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파시스트 운동은 없지만, 파시즘을 낳을 요소들이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유럽에서도 헝가리 등에서 최근 강성 파시스트가 성장했습니다. 경제위기의 고통, 신자유주의의 야만이란 배경적 요소는 존재합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를 실행한 좌파 정부 탓에 좌파를 향한 환멸이 있습니다. 희망의 질식 상태가 파시즘의 가장 본질적 심리일 것입니다.

파시즘을 막으려면 파시즘을 낳는 이런 배경적 요소들을 청소해야 합니다. 파시스트가 쥐떼라면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는 쥐떼가 서식하는 하수구입니다. 쥐떼도 막아야 하지만, 하수구도 청소해야 합니다. 좌파가 건설적 희망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페인의 프랑코 체제를 결국 약 40년 만에 무너뜨린 건 패배와 학살의 경험에서 자유로운 새 세대의 노동계급 운동이었습니다. 어떤 철권 통치도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하려면 노동자들을 산업으로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들을 다 때려 죽일 수도 없습니다.

파시즘 같은 광기의 체제를 막으려면 똘똘 뭉친 反자본주의 노동자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답입니다. 대기업주를 대변하는 이명박 정부와 맞서 싸워 진보적 노동운동이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에서 파시즘이 등장하는 것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길입니다.


※ 참고도서(추천)

《민중의 세계사》(크리스 하먼, 책갈피, 2004)
《히틀러》(1, 2) (이언 커쇼, 교양인, 2010)
《트로츠키의 반(反)파시즘투쟁》(L.트로츠키, 풀무질,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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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2010 웹사이트 바로 가기 ☞ ‘맑시즘2010 - 끝나지 않은 위기, 저항의 사상’

맑시즘 포럼이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2001년 겨울, 서울대에서 도전적으로 시작했던 행사가 여름 고려대에서 열리는 안정적 행사로 바뀌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주최는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였고, 명칭은 “3일 간의 토론광장”이었습니다. 주요 연사는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와 홍석천 배우, 손석춘 씨, 홍세화 씨 등 광범한 진보운동을 대표하는 명사들이 많았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 1년을 맞던 때이기도 했고, 홍석천 씨는 동성애자인 걸 언론이 폭로해 곤경에 처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통신과 국민·주택은행 파업 직후였으며,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이 벌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여름(8월) 행사를 시작한 2003년은 반전운동이 한국에서 태어나던 시기로, 영국의 반전운동가들이 주목받는 연사였습니다. 박노자가 요맘때 인기 좌파 지식인이었습니다. 이 해에는 예년처럼 겨울에 했다가, 여름에 개최를 했는데, 겨울엔 명칭이 “변혁인가 야만인가”였고, 여름부터 “전쟁과 변혁의 시대”로 바뀌어 2006년까지 이 명칭으로 진행됩니다.


2004년 후엔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인기 연사였죠. 또 이때부터 국내 최대의 진보 토론회라는 홍보를 시작한 걸로 기억합니다. 연인원이 아닌 참가자 수가 1천여 명이 넘는 토론회는 유일했으니까요.

지금 막 KB금융지주 회장이 된 어윤대가 고려대 총장 시절에 행사를 물리적으로 막아 외대와 경희대에서 한 적도 있었죠. 경희대도 행사 허가는 공식으로 해주질 않아, 크라운 관에 거대 에어콘을 나르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이땐 회기역에서 경희대 행사장까지 셔틀버스를 한 노동자의 도움으로 운영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2000년대 중반은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와 사회공공성이 부각되던 시기였습니다. 정태인, 우석균, 이강택PD 등은 신자유주의를 매우 구체적으로 폭로하는 전문가면서 참여적 지식인들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강택 PD의 강연은 바닥에 앉아서 본 기억이 나네요.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의제로 부각돼 비정규직 관련 주제나 연사들이 인기있었습니다. 특히, KTX와 이랜드 등의 투쟁사례와 연설은 많은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영감을 줬습니다.

2007년 이때 지금의 이름(‘맑시즘20OO’)으로 행사 명칭이 바뀝니다. 이 행사가 예상을 깨고 성공하고 롱런하자, 고무적이게도 많은 진보 단체들이 벤치마킹을 하며 대규모 토론 포럼들을 열었습니다. 주최측으로선 구별되는 자기 색깔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긴 했습니다.

2008년에는 사그라들고 있긴 했지만 촛불항쟁 와중이라 촛불 청소년/청년 들의 참가와 발언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촛불항쟁의 리더들인 조계사 수배자 동지들과 이원 생중계로 개막식을 진행했던 게 가장 인상적이었죠.

포럼 기간 중인 8월 15일 대규모 촛불집회가 계획돼, 맑시즘의 공식 일정으로 집회 참여를 넣기도 했습니다. 차 대절 얘기도 나왔는데 경찰에 '단체로' 낚시 당할 수 있어 개별로 가서 맑시즘 깃발로 모이는 방식으로 참여해 행진했었죠. 이 해 행사의 마지막은 윈디시티와 킹스턴루디스카, 두 우월한 그룹이 장식했습니다.
 
2008년부터 세계경제 위기가 시작되고 있었으므로 이듬해인 지난해까지 맑스주의 경제학 강연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행사 이름과 잘 맞아 떨어진 거죠. 그때 가장 중요한 투쟁이던 쌍용차 지원 집회 참가도 행사 프로그램으로 넣어서 맑시즘 참가자들이 경기도 평택까지 함께 간 기억이 납니다.

그날 정문에서 뛰느라 참 고생한 기억이 나는군요. 밤늦게 서울 왔더니 아직도 고대 앞에서 토론용(?) 뒤풀이를 하는 이들이 있던...ㅋ


그리고 맑시즘에 가장 많이 온 해외 연사인 고(故) 크리스 하먼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깊은 사상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직접 대화를 해 보진 못했지만, 웬지 선생님처럼 기억되는 분입니다.

그 기간 동안 논쟁에도 참여해 보고, 도우미도 열심히 했습니다. 처음엔 주로 사회과학 할인도서 판매장 도우미를 많이 했죠. ‘독서컨설팅’이라는 괴직업을 앞세워서요. ‘맑시즘’의 자랑인 탁아방과 문화행사들도 기억나는 것들이 많네요. 탁아방 꾸미기는 정말 힘듭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토론하는 행사인 만큼 많은 동지(同志)들과 친구가 되는 게 젤 남는 장사이기도 합니다. 주최측도 그런 면에서 도움을 많이 주죠. 저도 그런 식으로 알게 된 분들이 있습니다.


더많은 배움의 기억에 관한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각주:1].


  1. 아, 11일 만에 올린 글이군요. 아, 6월은 슬럼프의 계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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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8일)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가  한국에 온다

페레스는 깡패국가의 대통령답게 이번 팔레스타인 구호 선박 학살 사건[각주:1](☞ 관련 기사  /  /  / )이 “한국에 대한 북한의 도발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호전적인 주변 국가의 도발에 대해선 엄중히 대응하는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천안함 사태를 두고는 "명백한 군사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매일경제> 63일치)

이래서 이명박은 페레스를 좋아한다. 이명박은 이미 올해 초 다보스포럼에서도 페레스와 회담을 한 바 있다. 이명박은 올 2월 따분하기 짝이 없는 국정홍보 라디오 연설에서 페레스가 해 줬다는 말을 자랑스레 소개하기도 했다.

이 뿐인가.
이명박 정부는 이번 구호 선박 사건이 나자, 6월 1일 책임 소재 언급 없이 “깊은 유감”과 “심심한 애도”를 표하는 애매한 외교부 논평을 낸 뒤, 6월 2일 이스라엘 정부를 규탄하는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안 투표에서 기권했다[각주:2]

한국 정부는 지난해 연초에도 비슷한 사건을 두고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했다

그때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무차별 폭격해 민간인 수천 명을 죽였다.(☞ 관련 기사) 유엔인권이사회는 이를 규탄하고 이스라엘 군 철수와 폭격 중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두 번 다 결의안에 반대했다)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對 팔레스타인 정책(깡패국가의 짓)을 사실상 지지하는 몇 안 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다.

이스라엘과 군사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 정부는 이번 방한을 무기 수출을 늘리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군수업체 기업주들을 위해서다. 전경련은 이를 위해 6월 10일 삼성 소유의 신라호텔에서 페레스 일행과 비즈니스포럼을 열 계획이다.

<
예루살렘 포스트>(528일치)를 보면, 페레스와 함께 오는 이스라엘 기업인들은, 주로 벤처 기업인들로 구성됐다는 한국 쪽 보도와 달리, 주로 엘빗시스템스, 이스라엘 에어크래프트, 엘타 등 이스라엘의 주요 군수업체 경영자들이다.[각주:3]

페레스는 방한 전 한국의 훈련용 초음속 제트기인 “T-50”에 관심 있다고 밝혔다. 아니나다를까, 페레스의 방한 보도가 나간 뒤, T-50에 부품을 납품하는 방산기업 삼성테크윈과 퍼스텍의 주가가 급상승세를 탄다는 주식 보도가 나왔다

양국의 전쟁광들이 무기와 이권, 외교적 지지를 놓고 거래하려는 게 이번 페레스 방한의 진짜 모습이다. 한국 정부는 혹시나 페레스 방한 반대 시위가 벌어질까봐 벌써부터 경찰 경호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반면에
애초 페레스가 방한 뒤 가려던 베트남에선 정부가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방문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 정도만 봐도 우리가 페레스의 방한에 반대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Left21.com

 

 

ⓒ<레프트21> 33호 | 발행 2010-06-05 | 입력 2010-06-04

 이 글은 기사 원문을(http://www.left21.com/article/8213) 보충·변형한 것이다.

 

  1. 6월 5일에도 이스라엘은 아일랜드 국적의 구호 선박을 나포했다. 이번엔 천만다행이게도 인명 살상이 없었다. [본문으로]
  2. 한국은 부끄럽게도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이다. 이번 표결 관련 정보는 유엔인권이사회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ohchr.org/en/NewsEvents/Pages/DisplayNews.aspx?NewsID=10095&LangID=E) [본문으로]
  3. “The business delegation includes CEOs from companies such as Elbit Systems, ECI Telecom, Israel Aircraft Industries, Elta, RAD Data Communication, and Naan, among others.”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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