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게이트’가 새누리당 정권의 총체적 정치 공작에 관한 ‘이명박근혜 게이트’로 발전하고 있다.
애초 박근혜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하 대화록)을 공개해서 선거 개입 의혹을 물타기하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과정에서 대화록 공개 자체가 이명박의 국정원과 짜고 박근혜 일당이 대선 전부터 검토해 온 ‘비밀 계획’이었음이 드러났다.
결국 몸통은 이명박과 박근혜이고 이들을 중심으로 국정원과 검찰, 경찰, 조중동, 방송이 총동원된 반동적 정치 공작이 지금 사태의 본질인 것이다.
이 총체적 비밀 정치 공작의 목표는, 2008년 촛불운동과 세계경제 위기 이후 위기와 공포감에서 탈출하려는 우파 지배자들이 노동자·민중 운동을 단속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어갈 우파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명박은 촛불운동 진압을 총지휘한 행정안전부 장관 원세훈을 이듬해 초 국정원장에 임명했다.
이 원세훈이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는 “더 이상 우리 땅에 발 붙이고 살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한 것이야말로 진짜 목표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서 “종북좌파 척결 … 방법으로는 내부사람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비열한 프락치·분열 공작도 암시했다.
이런 본질야말로 반동적 “심리전”이 단지 선거용만이 아니었던 이유다. 사실 심리전 개념 자체가 흑색선전을 통해 적을 고립시키고 은밀하지만 물리적인 공격으로 적의 저항 의지를 꺾는 것을 포함한다.
그래서 저들은 “종북” 마녀사냥을 벌이며 국가의 억압기구와 비밀경찰들을 ‘총동원’했다. 마치 노태우 정부가 공안정국을 조성하면서 안전기획부(국정원의 옛 이름)와 검찰, 경찰을 모아 ‘공안합동수사본부’를 꾸렸던 것처럼 말이다.
뿐만 아니라 경영진 물갈이, 노동조합과 PD수첩 등의 탄압과 해고, 마녀사냥, 조중동 종편 허가 등으로 반동적 심리전을 위한 매체 수단도 끝내 확보했다.
이런 공작의 결과, 이명박 집권 후 국가보안법 탄압이 꾸준히 늘어서 지난해에는 112건으로 첫해보다 2.4배나 입건이 늘었다.(통계청) 뿐만 아니라 탄압도 입체적으로 벌어졌다.
2009년에 경찰은 쌍용차 파업을 살인 진압하고, 검찰과 법원은 여러 항의 시위 참가자들에게 벌금을 남발하고 있을 때, 국정원에선 “불법집회나 불법노조 … 정상화”가 강조되고 있었다.
시국선언 교사들과 민주노동당 후원 교사들에 대한 징계와 검찰 기소, 유죄 판결이 전국에서 벌어지던 2011년 초에도 원세훈의 ‘지시 말씀’은 “[전교조의] 확실한 징계를 위해 직원에게 맡기기보다 지부장들이 유관기관장에게 직접 업무를 협조[하라]”는 것이었다.
원세훈은 또 2011년 한미FTA 국회 날치기 통과 나흘 전에 “여론 악화되고 난 후 수습하려는 것은 이미 늦은 것이므로 [한미FTA에 관한] 치밀한 사전 홍보대책을 수립,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또 ‘반값등록금 차단’도 지시했다.
지난해 총선 직후에는 조중동이 ‘통진당 주사파 장악설’ 소설을 쓰며 진격의 북을 울리고 새누리당은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를 운운했고 검찰은 당원 서버를 탈취했다. 이 때도 같은 시기에 “종북좌파 세력들이 국회에 다수 진출 … 이들이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하라]”는 원세훈의 지시가 하달되고 있었다.
“절라디언들은 죽여 버려야 한다”, “빨갱이 ×레” 같은 일베충급 막말의 배후에도 국정원의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이 있을 것이다.
정부의 반동적 조처를 할 때마다 국정원과 검찰, 경찰, 조중동 종편과 우익들이 함께 움직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공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한 달 새에만 ‘MBC 2580’ 불방 사태, YTN 보도 통제와 보도국 회의 사찰, 시국선언 학생회 사찰 등이 밝혀졌다. 지금도 국정원 내부에선 “표창원 제압”이나 “촛불 차단” 대책 문건이 작성돼 시행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현 국정원장 남재준도 대화록 공개 과정에서 이미 원세훈을 능가하는 대담함을 보여 줬다. 남재준은 7월 10일에 대화록의 노무현 발언이 “휴전선 포기”라며 다시 도발했다.
남재준은 노무현의 국방장관 제의도 뿌리치고 나와 2007년부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 왔던 자다. 육군참모총장 출신들로 채워진 안보 라인(남재준―김장수―김관진)에서도 최고참이다. 무엇보다 국정원은 애초에 국민도 국회도 아닌 대통령에게 책임지도록 돼 있는 기관이다.
이런 자의 도발이 박근혜와 무관하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나 박근혜는, 법무장관을 통해 원세훈의 선거법 기소를 막으려 했고, 대화록 공개 때는 “NLL은 피로 지킨 곳”이라며 편을 들었고, 지금은 “자체 개혁을 하면 된다”며 국정원을 감싸고 있다.
박근혜는 도리어 사이버안보를 총괄하는 기능을 국정원에 맡기려 한다. 새누리당도 생떼를 부리며 국정조사를 방해하고 있다.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겠다는 것이고 강도질로 강도질을 덮겠다는 것이다. 색깔론 공세로 우파를 결집해 정당성 위기를 덮어 버리며, 철도 민영화 등 각종 개악 조처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는 사건을 축소·왜곡하고 그나마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주류 우파 집권세력의 심리전 매체가 된 방송과 종편들이 보도 외면, 색깔론으로 박근혜를 엄호하고 있다.
국정원 공작을 인터넷 댓글 문제로 축소해 수사 결과를 발표했던 검찰은 7월 10일 원세훈을 개인 비리로 구속했다. 같은 날 감사원은 이명박의 4대강이 ‘국민사기극’이었다고 발표했다. 박근혜는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라며 슬쩍 올라탔다.
그러나 이미 ‘이명박근혜’ 게이트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일당만 희생양 삼으려다가는 우파 분열과 추가 폭로 등 더 큰 역풍을 만날 수도 있다. 이미 원세훈이 ‘내가 다치면 친박 X파일을 까겠다’고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그러므로 박근혜의 이번 뻔뻔한 도발과 꼬리 자르기는 일관될 수 없다. 박근혜의 향후 행보는 우파를 결집하며 직진하는 듯하다가 멈추고 물타기로 우회하다가 다시 우파색으로 돌변하는 식의 동요가 특징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기본 축은 우파 결집에 있다.
지금 난 데 없는 ‘귀태’ 소동도 감사원 결과에 이명박 쪽이 반발하면서 나온 것이다. 또 귀태 소동은 우파 결집용일 뿐아니라 ‘그 놈이 그 놈’ 식의 더러운 판 만들기 책략이다. 조중동과 방송들은 또 정치권 막말 공방 등 물타기 식 양비론을 쏟아낼 것이다.
대중의 분노 때문에 일관된 행보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이런 책략들이 성공하려면 국회에서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민주당을 압박, 회유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대화록 열람에 새누리당과 합의하며 자신들이 ‘NLL 영토선’을 지킨 애국 세력이라는 것을 밝히는 데 더 치중하고 실효도 없을 국정조사에 안주하는 것이 한심한 까닭이다.
(직후에 귀태 발언을 한 홍익표 대변인이 사퇴했다. 귀태를 귀태라 못 부르는 민주당! 민주당의 이런 불철저함은 민주주의 문제에서도 노동계급이 진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그들의 운동이 그것의 방어와 확장에서 핵심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박근혜의 기본축은 정치적 반동이므로 이런 대응들은 정치 불안정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검찰 수사가 별 볼 일 없고 국정조사가 무력해질수록 국회가 아니라 거리에서 싸우자는 분노는 더 커질 것이다.
이미 촛불은 서울에서만 1만 명 규모를 넘어섰고, 진주의료원, 철도 민영화 등에 맞선 노동자 저항과 만나고 있다. 대학생들이 시작한 시국선언은 이제 교수와 종교계, 법조계, 언론계, 노동계 등으로 번지고 있다.
안철수가 얼마 전까지 이 문제를 여야간 ‘정쟁’이라며 거리를 두다가 화들짝 놀라 남재준 해임 요구에 뒤늦게 편승한 것도 이런 압력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박근혜 반동을 파탄낼 열쇠는 진보세력과 노동운동이 국회 절차에 의존하지 않는 대중투쟁을 얼마나 강력하게 건설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려면, 민주주의와 민영화 등 노동자 투쟁과 사회·경제적 쟁점들을 결합해 ‘이명박근혜’를 겨냥하는 총체적 반우파 투쟁을 건설하려 해야 한다. 2008년 촛불이 그렇게해서 성장했듯이 말이다.
아울러 종북 마녀사냥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종북을 골라내 차별하는 말이 아니다. 반우파 세력을 총칭하는 저들의 코드네임이다.
※ 이 글을 축약해 <레프트21> 108호에 실었습니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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