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의 참패와 민주당의 승리, 민주노동당의 약진으로 끝난 4·27 재보궐 선거 결과는 모순적 효과를 미칠 것이다.

MB 범야권연대 단일 후보들이 선전했고, 진보정당들과 양대 노총이 모두 이 단일화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일단은 이명박 정부에 분노해 온 노동자들에게 사기 진작 효과가 있을 것이다.

51일 메이데이 집회에서도 이 점이 확인됐다. 한국노총 집회에는 조합원 10만여 명이 참가했다. 민주노총의 서울 집회는 몇 년 만에 경찰 저지를 뚫고 도심 행진을 했다. 서울 명동 등 거리의 시민들도 ‘최저임금 인상’ 등 시위대의 요구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만난 한국노총의 한 간부는 “재보선에서 집권당의 약화가 확인되자 싸울 만하다는 쪽으로 조합원들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둘째, 그러나 막상 목소리를 높이는 쪽은 이런 분위기를 2012년 야권연대에 기초한 선거 심판론으로 끌고 가려는 쪽이 될 것이다.

민주당 최고위원 이인영과 “국민의 명령” 문성근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성과가 일회성으로 끝나선 안 된다’며 “야권 단일 정당”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이번 선거로] 야권연대의 정당성에 대해 어떤 의문도 망설임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연대 강화론은 선거에서 손쉽게 표를 얻으려는 선거공학적 계산에 바탕한 것이다.

셋째, 진보진영 내 통합 지지 세력도 조급해져서 진보대통합을 서두르려 할 것이다. 이미 내년 선거를 가장 중요한 정치 일정으로 삼는 이들에게 자칫하다간 민주당에 얻는 것 없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총선·대선 선거연합(일방적인 후보 단일화)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고려하는 세력들은 진보대통합으로 덩치를 키워 총선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둬야 지분을 받는 ―따라서 자신들 나름의 ‘명분’을 세울 수 있는― 연립정부 연합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대표자 연석회의가 논란과 불협화음 속에서도 3차 합의문을 낸 것도 이런 배경에서일 것이다.


복지국가 단일정당

이들 가운데 최근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지식인들이 몇몇 정치인들과 연합해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본부를 발족했다. 이들은 복지국가 강령을 중심으로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 단체의 산하 조직 격인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는 5월 초 이인영의 야권단일정당론을 환영하며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통합을 하는 가장 쉽고, 가장 빠르고, 가장 올바른 방법은 ‘가치중심’으로 정치권이 재편되는 ‘복지국가 단일정당’이라고”고 밝혔다.

사실상 독자적 진보정당의 길을 포기하고 보수정당의 개혁파들과 한살림을 차리자는 것이다.

서유럽 복지국가가 정당 차원의 계급 협력 전략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사진 출처: http://kafkago.tistory.com/414


이들과 한 배를 탄 진보신당 박용진 부대표는 “사회양극화에는 무심했던 진보세력도, 무능했던 개혁세력도 모두 책임이 있다”며 두 세력의 실천적·정책적 차이를 흐리고 물타기한다. 심지어 민주당과 단일정당을 해서 집권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진보는 “무책임”하고 “오만”한 것이라고 훈계한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대중이 공감할 만한 목표지만, 이는 ‘자본주의 극복’을 강령으로 채택한 기존 진보정당들보다 후퇴한 강령이다. 복지국가만 주요 목표인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와 전쟁, 핵공포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훨씬 더 포괄적인 반자본주의와 반제국주의 강령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들의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은 노동의 유연성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한마디로 반신자유주의 가치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강령인 것이다.

그 결과 논리적으로 복지국가 단일정당론은 급진좌파를 배제하고 민주당[일부?]과 손 잡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사실상 진보정당을 없애자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에 “보편적 복지”를 당헌에 삽입하고 무상 교육·보육·의료 실현을 강령에 포함했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 구현과 1백 퍼센트 배치되는 FTA 협약을 찬성하는 이 당에게 당헌 변경은 선거를 위한 립서비스에 불과해 보인다.

그것은 이 당의 핵심 기반이 자본가계급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진보연대가 “복지국가 정치동맹은 노동자 계급정치의 포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다.

그래서 사실 야권 단일정당론은 상시적 야권연대론의 필연적 귀결이다.

최규엽 새세상연구소 소장은 “[야권연대의] 정형화 된 후보 단일화 방식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정책 등이 미리미리 정비되고 선거운동이 전국적인 차원에서 통일적으로 수행되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책과 후보 선출에서 일사분란한 체계를 갖춘다면 단일 정당과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이런 논리가 연립정부 정당화로 발전하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선거로 개혁을 쟁취할 수 있다는 생각은 “투표로 심판하자”, “투표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로 표현되는데이는 사람들을 몇 년에 한 번 선거에 투표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야권연대

지금 반MB 정서가 야권연대로 수렴되는 듯한 것은 민주당은 여전히 못 믿겠고, 진보진영은 분열해 있으며, 노동자투쟁도 아직 계급세력관계를 뒤흔들 만큼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MB 정서는 민주당 왼쪽과 진보정당 사이 어디쯤에 있는 듯하다.

민주당이 왼쪽 깜빡이를 켠 이유다. 올해는 양대 노총의 메이데이 집회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진보정당들과 맺은 약속을 깨고 부자 감세와 한―EU FTA 통과를 한나라당과 합의했다. 전북 버스 파업 때는 반 년 가까이 사장들 편만 들었다. 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은 “[4당 정책] 합의문 내용은 굉장히 좋은 것 … 하지만 우리에게는 현실이 있다”고 털어놨다.

민주당은 결코 자본가 계급 기반이라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선거 때는 반MB 투사, 평상시엔 한나라당 2중대’를 반복하는 이유다.

야권연대는 이런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려 하므로 진보정당 고유의 정책과 실천이 후퇴해 우경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런데 민주당 대표 손학규는 51일 양 노총 본 집회에서 모두 연설한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위선적이게도 “야권 단일화의 성과”와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을 강조했다.[각주:1]

이는 민주노총 지도부도 야권연대의 우경화 논리에 젖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새 진보진영 상설연대체 민중의 힘() 상반기 계획에서 임단투 파업 시기를 집중하자는 제안이나 메이데이 집회를 서울로 집중해 위력적 시위를 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국민참여당과 진보정당들이 통합해야 한다는 진중권도 <한겨레> 53일치 칼럼에서 “‘미 제국주의’ 운운 … 같지도 않은 착각 속에 자신을 자폐시킨 채 개척교회 세우듯 사회주의 목회활동 …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향수”를 들먹이며 급진좌파를 비난했다. 아마 국민참여당을 진보대통합에서 배제하자는 좌파의 주장이 못마땅했던 듯하다.

이처럼 버전은 다양해도 야권연대 찬성론자들은 모두 진보정치의 우경화를 주장한다. 그래서 야권연대를 진지하게 추진하면 진보진영의 당면 투쟁 건설에 방해가 된다.

재보선 직후 양대 노총과 야3당이 공동 발의하기로 한 노조법 재개정안에는 ‘손배가압류 제한’과 ‘필수유지업무 폐지’ 같은 민주노총의 핵심 요구안들이 빠졌다. 민주당의 반대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파업권을 크게 제약해 왔고 정부와 기업주들가 노동자 저항을 억누르는 중요한 무기가 돼 왔다. 당장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 현대차 사측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그런 점에서 급진좌파들이 메이데이를 계기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의 민주대연합 노선 비판 목소리를 높인 것은 적절했다. 문제는 진보대통합을 바라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염원을 반영해 진보대통합 논의에 참가하면서 우경화를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야권단일화의 성과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선거 직후 작성한 내 글을 보시오. 그리고 그동안 진보진영 안에서 기본적인 합의는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이 아니라 노동이 주인되는 세상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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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4당 정책연합 합의문 내용은 … KTX가 용산역을 출발해서 서대전역을 지나고 있는데 용산역에서 ‘다시 돌아오라’고 하는 식의 내용도 있다.”

― 박지원의 5월 3일 기자간담회 발언, 표 먹고 오리발?


결국 한―EU FTA가 통과됐다. 한나라당이 또 강행 통과를 시킨 것이다.

국회 농성을 불사한 진보정당들을 의식해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합의를 번복했지만,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를 막지는 않았다. 사실상 묵인한 것이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한―EU FTA는 친환경무상급식 등 공공복지 정책을 제약하고 기업의 이윤 추구 자유만 늘려 주는 협정이다. 그래서 대기업은 찬성하고, 진보진영은 반대해 왔다. 심지어 협정문 한글 번역조차 엉터리여서 민주당조차 전면 재검증을 주장해 왔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야권연대[] … 4당 정책연합 합의문에 ‘한미FTA 재협상안 폐기와 전면적 검증 없는 한-EU FTA 비준 저지’를 명시했기에 이루어진 것”이라며 반발했다.

진보신당도 “선거의 승리를 안겨준 국민을 역시 일주일도 안 지나서 배신”했다고 성토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의원들은 4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하고,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며 저항했지만 의원들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손학규는 진보정당들의 도움으로 당선하자마자 한나라당의 한EU FTA 강행 통과를 묵인했다. 농성장에서조차 이런 자들과 악수를 해야 할까???


진보정당들의 저지 행동은 옳았다. 앞으로도 FTA는 무조건 폐기돼야 할 것이지 검토하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진보정당들이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물신숭배하듯이 중시한 것이 이런 사태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이정희 대표는 “진보의 정책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 ‘한―EU FTA 전면 검증’도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느라 ‘FTA 폐기’에서 후퇴한 정책이다.

합의의 주역 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은 “[한―EU FTA를 일단 저지한다는 야4당 정책연합 합의문에 관해] 의원총회에서 이런 논의가 구체적으로 없었고, 최고위에서도 있었는가 하는 기억이 없다”고 털어놨다. 민주당 자체가 야권연대의 정책 합의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또 박지원은 “[4당 정책] 합의문 내용은 굉장히 좋은 것 … 하지만 우리에게는 현실이 있다”고 털어놨다.

민주당은 결코 자본가 계급 기반이라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은 5월 4일 의원총회에서 합의를 번복하겠다고 결정했지만, 통과를 막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FTA가 대기업주들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고, 민주당은 이를 거스르기 힘들다. 이번과 같은 태도는 집권 가능성이 커질수록 더 강해질 것이다. ‘국익’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표 구걸할 때는 반MB 투사, 평상시엔 한나라당 2중대’를 반복하는 진짜 배경이다.

야권연대는 이런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려 하므로 진보정당 고유의 정책과 실천이 후퇴해 우경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429일 노조법 재개정 공동 발의에는 민주당의 거부로 민주노총의 핵심 요구들이 빠졌다.

반MB 야권연대가 단기적으로 선거적 실리를 가져다 주지만 중장기적으로 진보정치에 독이 된다는 경고가 옳다는 것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즉, 진정한 개혁을 위한 정치적 전진이 더뎌진다는 뜻이다.

진보대통합 연석회의에 참여한 진보 진영 대표자들은 ‘노동절 메시지’를 통해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현실화, 노동법 전면개정 등 노동현안과 한반도 평화 실현, 한미·EU FTA 폐기, 민중생존권 쟁취, 생태환경 보존 등 당면 현안에 공동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약속을 지키려면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협상은 민주대연합 노선과 분명히 선을 긋고 이 요구들을 실현할 독립적 대중투쟁을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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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약진했다. 국회의원, 구청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모두 한 명씩 당선자를 냈다. 낙선자들도 평균 20퍼센트가 넘는 득표를 했다.

특히, 전남 순천에서 ‘호남 최초 진보 국회의원’이 탄생한 것과 울산 동구청장에서 한나라당을 물리친 것은 큰 성과다.

다만 이것이 오롯이 진보정당 혼자의 힘, 아니면 진보진영의 단결력에서만 나온 성과는 아닌 게 아쉬움이다. 모두 야권연대를 표방한 후보들이기 때문이다. 

선거적 성공이라는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군소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유력 야당인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면 실리를 얻을 수는 있다고 말해 왔다. 특히 스타 정치인이 없는 대신 지역 조직력이 우수한 조건상 경쟁하는 (개혁적 이미지의) 민주당 후보가 없는 것은 선거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야권연대를 비판하면서도 진보 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된 곳은 (비판적일 때도 많지만) 조건 없이 진보 후보를  지지해 왔다. 아울러, 진보 후보가 없는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 여겨 지지할 만한 민주당 등의 후보가 있을 때는 비판적 투표를 할 수도 있다.

반MB 야권연대는 반MB 정서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주당도, 진보정당도 반MB 정서를 온전히 수렴하지 못하는 객관적 정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약진이 온전히 야권연대 덕분이고, 이번 결과로 야권연대가 완전한 정당성을 얻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약진한 선거 결과를 두고 “야권연대의 길을 닦아 온 것은 옳은 일이었음이 명백해졌[]”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공식 논평에서 이번 선거 결과를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야권이 연대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평가는 투쟁 건설보다는 야권연대를 더 열심히 추진하고, 대선 연합을 통한 연립정부로 나아가려는 노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그래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대표 문성근)은 선거 결과가 나오자 “야 5당은 … 야권단일정당 건설을 당론으로 채택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이 야권연대로 갈수록 선거에서 단기적 성공은 거둘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모순에 직면할 것이다.


계급 투표

1. 이번 선거의 진보정당 약진을 야권연대 효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순천에서 야권단일후보로 ‘호남 최초의 진보 국회의원’이 된 민주노동당 김선동 후보는 실제로는 민주당의 조직과 정치인들을 상대로 경쟁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민주당 정치인들은 김선동 후보를 “종북주의자”라고 색깔론 공격을 했다.

사실 민주당은 순천에서 “민주당을 겉으로 표명하는 후보를 안냈을 뿐이지 당선되면 결국 민주당으로 입당할 민주당 출신 무소속 후보의 당선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것”[각주:1]처럼 보였다.[각주:2]

민주노동당 김선동 후보를 떠받친 것은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계급투표’였다.[각주:3] 그리고 이것이 김해을의 국민참여당과 순천의 민주노동당이 비슷한 조건에서 다른 결과를 낳은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김선동 후보 자신은 야권 단일 후보를 강조하느박지원과 포옹하며 ‘내가 진짜 민주당 지지 후보’라고 말하는 등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흐리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했지만 말이다.

김선동 후보 자신이 건설플랜트노조 조합원이며, 2005년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 지원에서 주요한 구실을 한 바 있다. 게다가 순천은 여천공단, 광양공단 등 공단 노동자들이 많다. 이런 기반 위에서 민주노동당은 2008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에 맞서 1만 표가 넘게 득표한 바 있다.

이번에도 조합원 교육은 기본이고, 건설플랜트노조는 투표일 당일을 조합원총회 날로 잡아 투표 시간을 보장했고, 민주노총 전남본부 등이 ‘2만 표’를 목표로 열정적으로 계급투표를 조직했다. 선거운동의 주력은 지역 노동자들과 전국에서 자원한 민주노동당 학생 당원들이었다.

한나라당의 당선가능성이 거의 없는 호남에서는 보수적인 지역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통해 엮인다.

그 점에서 김선동 후보가 추가로 얻은 표의 일부는 민주당 지도부의 지지 덕분이겠지만 상당수는 지역 민주당의 보수성에 실망한 이탈표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할 것이다. 죽어도 민주당을 찍겠다는 표는 당선하면 민주당에 복당하겠다는 무소속 후보들에게 갔을 테니 말이다.

사실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당선한 곳은 대체로 노동자 밀집 지구로 진보정당이 그동안 강세를 보여 왔던 곳이다.

호남 제1호 진보 국회의원이 탄생한 감격의 순간. 그러나 안타깝게도 야권연대 노선과 계급투표 정책은 앞으로 상호충돌하게 될 것이다.


울산 동구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 노동자들의 지지로 세 번이나 진보 구청장을 만든 과거가 있다. 최근에는 두 번 연속 한나라당에 패배하긴 했지만 지난해 구청장 선거에서도 김종훈 후보는 이번보다 1만 표나 많이 얻었고 겨우 2.7퍼센트 차이로 낙선했다.

이번에도 현대중공업 소유주로 울산 동구가 지역구인 정몽준은 우파 노조들을 회유해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노조 집행부의 한나라당 지지 선언을 이끌어 냈고 25천여 명이나 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표를 막으려고 특별 잔업을 시켰으며 진보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야비하게 방해했다.

투표 당일날은 누굴 기표했는지 증거를 가져 오라는 사측의 협박 때문에 한 노동자가 투표용지를 핸드폰으로 찍다가 걸린 사례도 생겼다.

바로 이런 오만한 재벌 정치에 대한 반감과 척결 의지가 민주노동당 김종훈 후보에 대한 지지로 쏠린 것이다. 이곳은 사실 야권연대가 득표에 기여했다고 볼 수도 없다. 2002년부터 동구청장에 민주당이 후보를 낸 일도 없다.  

민주노총은 “순천과 울산, 분당에서 막판 2시간동안 투표율이 수직 상승한 것은 청년층과 함께 노동자들의 투표 참여였음은 알려진 바와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이길종 후보가 5천여 표를 얻어 도의원으로 당선한 경남 거제도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등의 노동자들이 몰려 있으며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 후보가 13천여 표를 득표해 아쉽게 2등을 했던 곳이다.

비록 낙선했지만 전주에서 황정구 진보신당 후보가 민주노동당 등과 연합해 36퍼센트나 득표한 것은 전북 버스 파업이 대중적으로 지지받고 있고, 투쟁에 바탕한 진보정당의 독자적 성장 전망이 결코 어둡지 않음을 보여 줬다.

그래서 야권연대론자들의 주장은 반만 맞다. 이처럼 자신의 지지 기반이 기여한 바를 경시하는 잘못된 평가는 이번 선거 기간 동안 진보적 정책과 자신이 대변해야 할 목소리를 약화시켜온 것과도 연관이 있다. 

한편, 일부 급진좌파들처럼 진보정당이 단순히 민주당에 구걸해 성과를 거둔 것처럼만 묘사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야권연대론자들과 똑같이 현장 노동자들의 정서와 구실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잘못이다.


실종된 진보의 목소리

2.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고 당선가능한 선거구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최우선 과제로 삼다 보니 막상 진보적 정책이 후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야권연대 정책 합의에서는 핵발전 폐쇄는 핵발전 정책 재검토로 약화됐고, 한미·-EU FTA 반대에서 재검토로 후퇴했다. 부유세나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의 요구도 포함되지 못했다.민주노총이 요구하는 노동법 재개정 8대 핵심 쟁점도 야4당-양 노총 공조 과정에서 요구가 축소된 상황이다.[각주:4]  

보편적 복지와 이를 위한 부자 증세, 핵발전 반대, 비정규직 정규직화, 임금 인상, 물가 통제 등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진보적 목소리를 스스로 낮춘 것이다.

분당에선 진보 양당 후보가 사실상 자진 사퇴했고, 강원도에선 민주노동당이 진보단체들과 협의도 없이 민주당과 단일화를 해 민주노총 강원본부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전국적 관심이 집중되는 선거구에서 진보 후보가 없다 보니 진보정당들의 존재감도 미약했다.

야권연대 찬양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조용히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대의는 희미해져 왔다. 그래서 이번 선거로 오히려 진보정당들에 대한 민주당의 우위가 더 강화됐다. 이것은 불길한 징조다.

3. 선거연합에 발목이 잡혀 노동자 투쟁의 우군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전북 버스 노동자들이 민주당 지방정부의 탄압에 항의해 손학규에게 항의 방문을 하는데도 적극적으로 이들을 응원하거나 민주당을 비판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야권연대 노선의 진정한 약점이다. 친자본주의 정당인 민주당과의 연대를 공고히 할수록 진정한 개혁의 힘인 노동자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집권당이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에서 패배하고 정치 위기에 빠진 틈 사이로 KEC,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투쟁에 나섰는데, 이 투쟁의 발목을 잡은 것은 민주당이 포함된 야권 의원단의 중재 시도였다.

이들은 온정적 태도로 노사간 이해관계를 중재한다고 했지만, 기업주가 해고와 직장폐쇄, 무차별 폭력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투쟁을 접고 대화로 해결하자는 것은 노동자들의 무기만 빼앗을 뿐이었다. 이것은 민주당이 자본가계급에 기반한 친자본주의 정당이이기 때문이다.

4. 이런 약점들 때문에 야권연대 추진이 오히려 진보진영의 단결을 해쳤다.

이번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도 이갑용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야권연대에 반발해 독자 출마했다. 선진 노동자들은 특별한 하자 없는 두 진보 후보의 경쟁 속에서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일차 원인 제공은 민주노동당의 야권연대였다. (그래서 나는 단일화하길 바랐다.)

민주당 시절 살인적인 탄압을 받았던 투사들에게 민주대연합이 마뜩치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 기억을 잊으라고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각주:5] 게다가 민주노동당 울산시당과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선거 기간 동안 이갑용 후보를 배척하는 듯 행동했다.

물론 이갑용 후보가 민주노동당을 더는 진보정당이 아닌 듯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진 않다. 민주당과 연대했어도 김종훈 후보 자신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진보정당의 후보였고, 경력이나 공약에 지지 못 할 흠결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진보정당 당선으로 집권당과 정몽준에게 경고하고 싶었던 대중의 열망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민주대연합 반대,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상대적으로 더 좌파적인 목소리를 대변해 선진 노동자 일부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노동자 구청장은 노동조합을 지원하고 강화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은 신선했다.[각주:6]


향후 전망

이런 점들을 살펴 봤을 때 “김선동 후보의 당선으로 야권연대의 정당성에 대해 어떤 의문도 망설임도 없어질 것”이라는 이정희 대표의 기대는 헛된 것이다.

그럼에도 야권연대를 주도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성공한 재보선 결과 때문에 내년 야권연대 추진 노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 반대급부에선 진보대통합 협상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진보대통합을 해야 민주당 중심의 선거연합으로 끌려가지 않는다는 생각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대연합을 민주대연합의 사전단계[각주:7]로 보는 이들이 특히 그렇다. 한편에선 재보선 야권연대에 참여했으나 당세가 약해 거의 모든 곳에서 단일 후보로 선출되지 못해 위기감이 커진 진보신당의 통합파도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문제는 자신감이 생긴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지도부가 야권연대의 정당성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면서 패권적으로 진보대통합을 추진하는 경우다. 앞서 인용한 이정희 대표의 발언[각주:8]도 독자파가 주도한 진보신당의 당대회 결정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런 태도는 진보대연합 자체가 민주대연합의 사전단계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부추길 것이다. 야권연대에 비판적인 진보진영의 반발이 더 커지면 진보대통합은 더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진보진영의 분열 문제가 빨리 해소되지 않아 각개약진하면 각개격파 식으로 야권연대 압력에 더 내몰릴 수 있다.

따라서 분열을 피하며 유리한 기회를 노동자운동의 전진으로 연결시키려면, 실용주의적 선거공학이 아니라 계급투쟁과 계급정치의 관점에 서야 한다.

모순적이게도 단기적 선거 성공이 대중의 사기를 올려줄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지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과 이명박 정부의 추락을 기회 삼아 투표장만이 아니라 거리와 작업장에서도 정부와 사장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과 독립적인 진보대연합을 건설해 대중투쟁을 건설하며 힘을 모아야 한다.


  1. 최규엽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소장이 민중의 소리 기고 글에서 한 말. 실제로 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순용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만 참석한 바 있다. 박지원과 조순용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한솥밥 먹던 사이다. [본문으로]
  2. 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은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순용 후보의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하기까지 했다. 둘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본문으로]
  3. 민중의소리는 순천에서 “발은 계급투표로 머리는 야권연대로” 선거운동을 펼쳤다고 평가했는데, 사실 “발”과 “머리”가 일관성있게 움직일 순 없었다는 게 문제다. 서로 지시하는 방향이 다른 목표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4. ○노동자성 및 사용자성 확대 ○노조설립 절차 개선 ○손배가압류 제한 ○타임오프 폐지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 ○산별교섭 법제화 ○단체협약 해지권 제한 ○필수유지업무 폐지 중 ○손배가압류 제한 ○산별교섭 법제화 ○필수유지업무 폐지’를 제외한 5개 항을 공동 발의한다고 한다. [본문으로]
  5. 이 갑용 후보 자신이 공무원노조 징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구청장 직을 박탈당한 바 있다. 심지어 야권연대를 추진한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인 김창현 씨도 1998년 동구청장에 당선되자마자 김대중 정부의 국가보안법 탄압으로 구속된 적이 있다. [본문으로]
  6. 득표에서는 진보적 노동자들의 표가 당선 유력한 민주노동당 김종훈 후보에게 몰려 저조했다. 선거 관점에선 2천2백여 명(3.59퍼센트)이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운동을 조직하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본문으로]
  7. 진보대연합을 민주대연합의 사전 단계로 보는 것은 마치 전체의 부분(부속물)으로 보는 시각이다. 즉, 계급은 국민의 일부라는 사고인 것이다. 국민이 이해관계로 통일된 집단이 아니므로 이는 계급 화해 사상이고 오래된 개혁주의의 전제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정치세력도 한 사회 안이 모든 계급을 동시에 대변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국민’주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선과 배치되는 면이 있다. [본문으로]
  8. “김선동 후보의 당선으로 야권연대의 정당성에 대해 어떤 의문도 망설임도 없어질 것”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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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공습 개시일은 바로 8년 전에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날입니다. 날짜만 같은 게 아니죠. 그때처럼 폭격은 추악한 의도로 시작됐습니다. 벌써 민간인 피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분열해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다만 미국 등이 역량과 향후 전망 문제로 예상보다 소극적이고,진보진영이 분열한 게 차이라고 있습니다. 8년 전에 미국 지배자들은 거침 없었고, 전쟁반대로 진보진영이 단결해 있어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공동 행동을 곧바로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지난 10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전략이 실패한 것, 그래서 자신감이 부족한 것, 군사력 동원 자체도 쉽지 않은 것, 카다피는 서방과 화해한 지도자라는 점에서 그들은 제 개인적인 에상보다 좀더 뜨듯미지근하게 보입니다. 애초에 원하지 않은 개입이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그들의 폭격 의도가 더 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다피와 맺은 석유 개발 계획을 보호하고, 국내 정치 위기를 전쟁으로 돌리며(제국주의 지배자들의 전형적인 술책이기도 한), 중동 혁명으로 손상된 지역 패권을 유지하는 방편(특히 유럽 열강들의 패권)으로 개입했다는 의도가 더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국내 진보진영에 관해 말하자면, 지금은 진보신당은 비행금지구역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고 리비아 폭격 반대 집회에 불참했고 참여연대 등 엔지오들은 아직 입장을 내지 못했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사실상 폭격을 지지했습니다.

그래서 . 이날의 집회는 더 중요했습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단체와 개인들 다수는 진정으로 중동 항쟁을 지지하기 때문에 다국적군의 서방 폭격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습니다[각주:1].

서방 강대국들이 민주화를 지지한다며 공습을 시작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동 혁명을 지지하는 좌파들이 폭격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중동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자 민중은 대체로 서방 제국주의가 후원해 온 독재자들에게 반대해 들고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혁명 지지와 서방 군사 개입 반대를 연결해야 합니다. 서방 지배자들이 혁명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민중 혁명이 제국주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중동의 민중에게도 도움되지 않고, 제국주의를 우리가 이길 수 없다는 생각만 키워줄 뿐입니다. 한국의 우익들도 리비아 사례를 통해 북한 군사 압박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폭격 지지는 우익들의 반동적 의제에 힘을 실어줄 뿐인 것이죠. 

무엇보다 서방 폭격은 혁명을 방해하고 더 큰 인도적 재앙을 낳을 것이 분명합니다. 일부 언론이 리비아 민중이 서방 개입을 환영하는 듯 보도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너무 억압받던 일부 이라크 민중이 미군을 환영했지만, 곧 점령의 진실이 드러났고 이들은 대미 항전으로 나섰습니다.

전쟁에 내재한 논리에 따라 서방이 지상군 개입으로 나아가거나 리비아와 중동의 민중 저항이 서방의 군사 개입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게 될 때 일관되게 혁명을 지지하는 운동을 건설하려면, 지금 올바른 견해를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혁명이 더 진전돼 다른 나라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질 때도 이 논쟁은 반복될 가능성도 큽니다.


‘다국적군의 리비아 폭격 규탄 집회’가 26일 오후 4시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렸다.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나눔문화, 대학생사람연대, 전국학생행진, 경계를넘어, 사회주의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평화재향군인회, 고려대 문과대 학생회 등 열두 개 단체에서 2백여 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다국적군의 폭격에 반대하는 것이 리비아 항쟁을 돕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미진

참가자들은 “다국적군은 리비아 폭격을 중단하라!”, “폭격 반대! 서방 개입 반대!”들을 외치며 집회를 시작했다.

사회를 맡은 반전평화연대(준) 공동간사 김어진 씨는 오늘 집회에서 다양하게 준비한 발언들을 들으면서 구호 소리가 더 커지길 바란다며 구호를 선창했다.

민주노동당 최창준 자주통일위원장은 미국 정부의 위선을 규탄하며, 리비아 폭격과 한반도 평화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비행금지구역에 많은 이들이 헷갈렸지만, 실상을 보니 미국이 맘 놓고 폭격하는 곳이었다.

“미국은 사상 최대의 군사 훈련을 지금 한국에서 하고 있다. 리비아 폭격을 용인하면, 한반도 평화도 못 지킬 것이다.”

다함께 전지윤 운영위원은 민간인 희생을 막으려면 서방 군사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리비아 민주화를 폭격한다는 것은 MB가 친서민하겠다는 말보다 더 큰 거짓말이다.

“프랑스는 알제리 독립을 막으려고 2백만 명을 죽였고, 이탈리아는 리비아를 식민 지배하면서 인구의 3분의 1을 죽였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1백만 명이 넘게 학살했다.

“카다피의 악랄함은 바로 이 제국주의자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제국주의가 카다피를 막고 인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서방의 군사 개입과 동시에 바레인 등에서 유혈 진압이 시작됐다. 지금 군사 개입은 제국주의 반혁명의 시도인 것이다.

“중동의 민중 혁명과 국제연대를 결합해 중동을 거짓말 금지구역, 독재 금지 구역,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금지 구역으로 만들자.”

△8년 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날, 리비아에서 서방의 공습이 시작됐다. 리비아 공습의 폭력적이고 반혁명적 성격이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이미진

전국학생행진을 대표해 발언한 서울대 지윤 총학생회장은 “리비아 민중의 해방은 리비아 민중의 힘으로 이뤄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계를 넘어’의 수진 활동가는 1990년대 이라크 비행금지구역은 미국의 명분과 달리 억압받던 쿠르드족과 시아파 민중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폭격 후에 오히려 쿠르드족은 후세인에게 학살됐고, 폭격으로 망가진 삶의 터전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은 평범한 이라크인들이었다. 오히려 미국의 군사 개입은 2003년 전쟁으로 이어졌다. 같은 일이 발칸의 코소보에서 반복됐다.

“지금 리비아 민중을 구한다고 폭격을 지지하는 것은 이런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것은 당연한 방법이 결코 아니다. 서방은 리비아에서 민중이 죽어가는 화면을 계속 내보내며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프레임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왜 서방은 팔레스타인을 폭격하는 이스라엘에게 비행금지구역을 말하지 않을까.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대화로 해결하라고만 할까. 폭격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과거를 잊었느냐고. 리비아 민중이 정말 자기 해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나눔문화 김재현 활동가는 이 전쟁이 세계 평화를 더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방은 리비아 민중이 카다피에게 고통받고 있을 때, 무엇을 했는가. 오랜 경제 제재로 리비아 민중을 고통스럽게 해 왔다. 카다피에게 오히려 무기를 팔아 왔고 지원해 왔다.

“이번 전쟁은 인류 평화공존에 중대한 도전이다. ‘국민보호책임’은 전쟁의 문턱을 더 낮췄다. 이제 언제든 북한을 공격할 수 있게 됐고, 북한은 이 때문에 핵무장을 더 재촉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군사 개입이 세계 민중에게 좋은 결과를 낳은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믿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미진

사회진보연대 수열 활동가는 ‘민주화를 위한 군사 개입’이 고리대금업자의 광고와 같다고 비판했다.

“다급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것처럼 말하지만 대출업자들은 오히려 민중을 갈취한다.

“악덕 고리대금업자를 찾는 것처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군사개입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민중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줄 것이다.

“1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민중이 요구한 자유와 전기, 수도는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서방의 리비아 공습을 두고 한국 진보진영이 분열해 있지만, 이날 집회 연사들은 매우 인상적으로 서방 군사 개입의 본질과 효과를 폭로했다.

리비아와 중동의 민중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왜 서방 지배자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군사 개입에 반대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사회자의 바람대로 집회가 끝나갈수록 참가자들의 구호 소리는 높아지고 있었다.

폭탄은 해방을 가져올 수 없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이 평범한 진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태세가 돼 있음을 보여 줬다.

※ 출처: http://www.left21.com/article/9486





 

  1. 제가 볼 때, 민주노동당은 이 문제에서 불분명합니다. 당 논평에서 리비아 민중항쟁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가 없습니다. 이날 집회에서도 미국을 규탄하고, 이를 한반도 평화와 연결했지만, 리비아 항쟁을 지지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3세계 민족주의 관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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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최병천 비판을 보충하려 한다. 전형적인 인도주의 개입 찬성 논리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병천 씨[각주:1]가 “미국의 군사 개입을 찬성”한다며 밝힌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보편적 인권과 반제국주의(및 국민주권) 가치 중에서 전자가 ‘상위 가치’”다.

2. “‘민주주의 없는 ‘반제론’은 실패했음이 북한, 리비아를 통해 역사적/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

3.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굳이 국제적인 군사적 개입을 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데 지금 리비아에서 대결 구도는 ‘민중 vs 독재자’다. 리비아 혁명에 관한 태도를 결정하려면, 리비아의 혁명적 민중을 지지할 것이냐, 카다피 독재 체제를 지지할 것이냐 가운데에서 선택하면 된다.

이것이 ‘보편적 인권 vs 주권(반제국주의)’으로 바뀌는 것은 실제로는 대결 구도를 ‘민주적 제국주의 vs 카다피 체제’로 설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생기는 의문은 이것이 왜 ‘보편적 인권 vs 독재’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 vs 주권’인가 하는 것이다.

국가의 주권이란 사실상 국경 안에서 무력을 합법으로 독점하는 권리를 뜻하는데, 그 점에서 최병천의 구도는 오히려 카다피의 학살을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인정해 주는 것과 같을 수 있다.[각주:2]

그러나 리비아 혁명 민중의 편에 서면 카다피의 주권 논리는 가증스런 것이다. 어떤 합법 절차도 없이 무력을 독점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국가에게 ‘주권’이 있다고 인정할 민중은 없다.

결국 최병천은 이 혁명과 군사 개입 논쟁을 계급 분단선의 문제가 아니라 국경선의 문제, 즉 강대국 정부와 후진국 독재정부의 문제로 보는 셈이다.

그래서 ‘보편적 인권’을 대변할 행위 주체는 리비아 민중이 아니라 ‘민주적’ 제국주의 국가의 군대다. 

리비아 민중은 독자적 행위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역설적으로 승리할 가망이 있다면 군사 개입을 찬성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최병천에게 그들은 민주적 제국주의가 대신 해방시켜줘야 하는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다.[각주:3]

최병천은 ‘민주적’제국주의와 카다피 독재 정부 둘 가운데서 ‘민주적’ 제국주의를 지지하자고 말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보편적 인권 vs 반제국주의 주권’ 구도에는 좀더 이데올로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병천은 그동안 북한 같은 아류 스탈린주의 독재정권들의 실패에서 온건 개혁주의 노선의 정당성을 찾으려 해 왔다. 그에게 리비아나 북한은 유엔 등을 통해 절차만 거치면 인권을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가 ‘처리’해도 되는 국가다.

이 정권들이 위선적이게도 급진적이거나 반제국주의 수사들을 즐겨 써왔기 때문에 이 나라들의 독재와 가난은 오히려 급진적 반제국주의 정치의 신용도를 추락시킬 좋은 소재였다.그럭저럭 남는 장사였던 것이[각주:4].

그러나 세계경제에 깊숙하게 엮여 있는 한국경제에서 세계자본주의[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전략이 아니고선 불가역적인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없다.

초기의 환호가 잦아든 지금, 리비아 혁명은 목적의식적인 연속혁명을 추구해야만 카다피의 반동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그 점에서 이런 개혁주의 사고는 처음부터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설정한 문제틀에서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결국, 민중혁명도 신뢰하지 않고 제3세계 독재정부가 신뢰하지 않는 진보가 리비아 같은 사태에 직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것은 서방의 가치를 미화하며 민주적 제국주의의 구실에 기대는 것 뿐이다.

사실은 바로 이런 사고 방식 때문에 서방의 많은 자유주의 좌파들이 1990년대 이후(달리 말하면 냉전 이후) 서방 강대국들의 ‘인도주의 개입’ 논리에 휩쓸려 갔다

이와 관련해 토니 블레어는 1999년 나토의 세르비아 공격을 정당화하면서, 강대국들이 세계의 경찰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제3의 길’식 세계화 담론을 주장한바 있다. 

1990년대 이후 국제 구호 단체들 안에서도 균열이 일어나 중립주의에서 개입주의로 전향이 많이 일어났는데, 옥스팜의 각국 지부들이나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단체가 그렇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정치단체가 독일 녹색당인데,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등장한 이 당이 사회민주당과 연합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지지한 것은 참으로 몹쓸 장면이었다.

한때 혁명가였던 이 당의 리저 요슈카 피셔는 한때 슈뢰정 정부에서 장관직을 맡기도 했고, 녹색당 자체도 사민당의 단골 연정파트너 정당이 됐으나 좌파적 신용은 상당히 잃어 버렸다.

서방 군사 개입에 찬성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이렇듯 분명하다.

문제는 최근 잠시 소강 상태인 듯하던 리비아 국내 상황이 바뀌어 카다피가 우세해 보인다는 데에 있다.

서방의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같다.

첫째, 서방 강대국들이 결코 인도적이나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관련 글 보기 ☞ 제국주의와 인도주의)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인도주의 개입의 이름으로 학살과 약탈을 자행해 왔다. 바레인을 침공한 사우디 군대를 후원하는 것은 미국이다.

서방 강대국 정부들은 또 2000년대이후 카다피 정부와 유착해 왔다. 이명박 정부의 리비아 간첩 사건도 리비아 정부에 좀더 좋은 [로비] 선(線)을 대려는 시도에서 나온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쓴 다른 글을 보시오. ☞ 관련 기사 / 관련 포스트)

둘째, 서방의 군사 개입은 카다피의 가증스런 ‘학살 주권’이 아니라 리비아 혁명의 ‘주권’과 충돌할 것이라는 점이다. 혁명 세력이 장악했다는 석유 관련 시설 80퍼센트를 서방 군대는 가만히 둘 것인가.

서방 강대국들 입장에선 국유화된 석유 통제권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혁명 정부에게 맡길 수 없을 것이다. 벌써 EU 지배자들은 반군측에 카다피와 맺은 자신들의 석유개발권을 그대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혁명을 이끄는 세력은 과도정부와 전국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과도정부에는 구체제의 법무장관 등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 전국위원회는 이 과도정부와 명확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교착 상태 때문에 비행금지구역을 찬성하는 부류가 있을 만통일성이 부족하다. 

셋째, 리비아에서는 이집트나 튀니지와 달리 노동계급의 주도성이 적다. 그래서 기득권층의 과도 정부와 혁명위원회의 내부 분화가 충분하지 못한 것이고, 반카다피 대중을 혁명으로 동원하는 문제에서 사회적 내용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가 오일머니로 주택 제공 등 복지 혜택을 약속한 바가 있는데, 혁명위원회의 전국위원회는 이를 뛰어넘는 변혁 강령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다시 말해 리비아 혁명이 직면한 어려움은 서방의 지원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혁명 과정에서 폭력의 힘은 절대적으로 정치적 설득력(지지세력의 결집과 동원 능력)에 달려 있다.

군부가 감히 혁명에 총부리를 못 겨누고 후퇴한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에서도 이 점은 증명됐다. 2006년 레바논 헤즈볼라가 최정예 이스라엘 군대를 이긴 것도 이런 사례다. 지금까지 혁명 세력이 승승장구한 것도 그 때문이고, 그 점에서 카다피가 일방적으로 혁명세력을  ‘학살’하는 듯한 일부 보도는 과장에 가깝고, 가끔은 의도가 의심스럽다.

어려움이 있다면 앞서 말한 혁명 주도 세력의 내부 약점에서 비롯한 것과 더불어 혁명의 선제공격에 대항한 구체제의 반동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군대가 바레인 민주화 저항세력을 진압하려고 출동한 것을 보라. 사우디 군대를 후원하는 나라가 어디인가. 서방 강대국 가운데 사우디 군대를 막을 군사 개입을 말하는 나라가 있나?

오히려 서방의 군사 개입이 거론된 이후 서방의 음모에 맞서 아랍의 주권을 지킨다는 카다피의 거짓말이 먹힐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과도정부나 전국위원회가 서방 개입에 찬성하면 혁명 진영은 크게 분열할 수 있다. 실제로 서방의 군사개입 얘기가 나온 뒤로 혁명이 주춤하고 카다피의 반혁명 공세가 거세졌다. 

그렇다고 혁명이 후퇴하거나 끝장난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카다피는 리비아의 더 적은 지역을 톶제하고 있고, 공식 군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용병에 의존하고 있다. 벵가지가 쉽게 함락될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혁명은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다. 초기의 환호와 역습, 후퇴와 전진 등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 각 정치세력의 실체와 실력이 드러나는 치열한 대결의 장이다. 그리고 현재 중동 혁명은 단순히 독재자가 아니라 서방의 후원을 받는 독재자에 맞선 혁명이다. 

따라서 열쇠는 서방의 군사 개입에 있는 것이 아니다. 리비아 혁명의 운명은 이집트가 조금씩 그러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혁명으로, 다른 중동혁명과 연대하는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느냐에 달린 듯하다.

카다피의 이권이 다른 기득권 집단의 이권으로 넘어가는 식의 과도 정부 대안이 아니라 노동자권력 대안만이 카다피가 해결 못한 빈곤과 자유, 진정한 민중주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성마른 이들에게 이런 결론이 매우 무기력하거 냉소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실패가 명백한 길로 갈 수는 없다. 서방 군사 개입이 아니라 서방의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 혁명을 돕는 길이다.



  1. 진보신당 서울시당 부위원장/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본문으로]
  2. 그래서 그는 주권도 중요하긴 하므로 유엔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3. 여기서 주권 국가가 사라져도 국가가 통치하던 그 사회는 남는다. 주권을 가진 억압적 국가기구는 외국군대가 파괴할 수 있어도 그 사회에 사는 민중은 제국주의 군대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최병천에게 이 문제는 고려사항이 없다. 다른 좀더 덜 현학적인 표현과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룰 것이다. [본문으로]
  4. 그래서 온건 진보파들은 북한 정권과 일체감을 느끼는 민족해방파 식의 반제국주의 노선 뿐 아니라 다함께 같은 반자본주의적 반제국주의 노선도 혐오하는 것이다. 후자는 현재 국내외에서 현존하는 자본주의 질서(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질서)에 혁명적으로 도전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현존 질서에서 안주하려는 온건 진보파에겐 매우 거북스런 존재인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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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파업 찬반 투표가 가결됐군요. 총원- 4,700명, 투표- 4,697명(99.9%), 찬성- 4,516명(96.2%).  (3.16)
   현재 매각 관련 쟁점에 관한 제 의견은 http://enlucha.tistory.com/106를 보시오.

1.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과 외환카드를 합병할 때, 의도적인 주가 조작을 했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가 10일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 외환은행과 외환은행 대주주 LSF-KEB Holdings,SCA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것이죠. 이 사건은 그동안 1심 유죄 → 2심 무죄 → 3심 무죄 파기환송 순으로 엎치락뒤치락을 해 왔습니다.

명백한 사안인데도 재판 결과가 왔다갔다한 것은 거대 자본을 처벌하기가 참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은, 2003년 11월 론스타펀드 경영진들이 ‘Project Squire(시골 대지주)’라는 작전명[각주:1] 아래 고외환은행의 외환카드 합병을 앞두고 고의로 외환카드 거짓 감자설을 유포해서 주가를 폭락시키고 이득을 챙긴 사건입니다. 

론스타는 당시 단순한 주식 차익 따위가 아니라 합병 과정에서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유지하려고 주가를 조작한 것이었죠. 당시 주가대로 합병하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이 50퍼센트 밑으로 떨어질 수 있어 감자설을 유포해서 주가를 폭락시키고, 외환은행의 계열사 지원을 끊어 외환카드를 경영 위기로 몰아갔습니다.  

이 조작은 씨티그룹, 법률사무소 김앤장 등과 함께 공모해 이뤄졌습니다. 외환은행 불법 인수 작전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일이었습니다. (이때 작당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인데, 당시 인수 허가의 담당 국장이 지금 금융위원장인 김석동이었죠.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과 기업이 유착한 권력이 더 강한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식 합병 비율을 조작하고, 경영권 프리미엄(향후 주식을 팔 경우 시가보다 더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이득)을 갖는 대주주 자격을 유지한 것이죠.

이번에 대법원 재판부는 “성실히 감자 여부를 검토, 추진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자검토 내용을 발표했다”며 “이는 주가하락을 통해 론스타 펀드 등이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감자발표 감행을 공모한 것”이라고 판결했습니다[각주:2].

이 판결의 파장이 큰 것은 투기자본의 돈벌이 패턴 하나가 단죄를 받게 됐다는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외환카드 합병 과정에서 합병에 반대하던 노동자들이 탄압당하고,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됐습니다. 그런데 합병 자체가 부도덕한 기업주의 손으로 이뤄진 불법이기 때문에  당시 합병에 반대한 노동자들의 정당성을 다시 인정해야 하고,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을 원직 복직시켜야 합니다.


2. 이 판결로 론스타가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매물로 넘기고 수조 원의 돈을 챙겨 나가려던 계획에 큰 장애물이 생겼습니다. 

의혹투성이인 외환은행의 외환카드 합병 과정이 사실상 불법이라면, 외환카드를 인수한 외환은행도 장물이 됩니다. 도둑이 장물을 제값 다 받고도 프리미엄까지 챙겨 가는 거죠. 

아무리 한국 자본주의가 이익공유 같은 개념도 모르는 개판이라지만, 그로 말미암은 피해는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지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죠.

외환은행 노동자들도 론스타의 인수 후 인력 감축을 당했습니다. 지금 하나금융지주는 론스타가 요구하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감당 못해 국제 사채=투기자본에게서 돈을 꿔왔습니다. 인수합병후 기본적인 인력감축 말고도 경영 부실로 노동자들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금 외환은행 노동자들이 몇 달째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에 반대하며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2월 28일에도 서울시청 광장에서 외환은행 노동자 4천여 명이 촛불집회를 했었습니다. 거의 전 직원이 다 왔다해도 지나친 과장이 아닐 텐데, 분위기도 매우 뜨거웠습니다. 

그날 한국노총,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 등 몇몇 분들과 얘기를 나눴는데, 대체로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지주회사의 외환은행 인수 쪽으로 결론 내릴 의사가 크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석자 모두 자신감은 있어 보였습니다. 

그날 인상적인 연사는 민주노총 소속인 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의 연설이었습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몇 년 전 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했다가 그룹 자체가 부실 위기에 빠졌습니다. 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은 그 자체로 엄청난 규모의 대기업이라, 당시에도 금융권에선 이 인수합병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인수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처음엔 인수합병의 기본 수순인 피인수 합병 기업의 인력 구조조정(감축)이 진행됐는데, 인수 자금을 무리하게 끌어쓴 대가로 결국 인수한 모(母) 그룹 소속 기업들도 부실해져 인력 구조조정을 해야 했습니다. (관련 기사 ☞금호타이어 1천3백77명 대량해고 계획 철회하라 금호타이어는 대량해고를 중단하라)

권수정 위원장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인수되는 기업의 노동자 뿐아니라 인수하는 기업의 노동자들도 구조조정을 동반하는 인수합병에 함께 반대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노동자가 함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것이 현실적 사례인 것이죠.

그것은 합병에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동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례일 뿐아니라 하나은행의 노동자들에게도 지지와 연대를 촉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무리하게 투기자본(사실상 국제 사채)을 끌어들여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는 하나금융지주회사에게 ‘승자의 저주’를 경고하는 것이 외환은행 노동자들만은 아닙니다. 하나은행의 인수자금에서 절반이 빚입니다. 반대로 론스타는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르고도 막대한 돈을 챙겨 유유히 한국을 떠납니다. 

외환은행 노동자들은 론스타는 돈 벌어 떠나고 또 새로운 투기자본이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을 지배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아쉽게도 하나은행노조는 공식적으로 외환은행 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잘못입니다. 같은 은행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켜 함께 살자는데, 응당 지지와 연대로 답해야 합니다.


3. 김대중 정부부터 지난 10여 년 동안 은행 대형화 전쟁이 계속돼 왔습니다. 지금 대형 시중은행 4강권에 있는 은행들은 모두인수합병으로 그 자리에 올라 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은행 대형화로 각 은행들은 서로 영업 분야가 똑같아졌습니다. 경쟁 심화는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인수합병으로 인력 감축이 반복되면서 정규직 일자리는 줄었고, 그 결과는 다시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두세 사람이 하던 일은 이제는 한 사람이 하면서, 더 많은 실적 압박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그러니 은행권 고임금이란 건 어쩌면 허상일 수 있습니다. 일이 는 만큼 임금이 올라간 건 아니니까요. 게다가 노동자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상시적인 인력 감축 압박에도 시달리게 됐습니다. 

은행간 경쟁의 심화는 돈 되는 영업으로 은행들을 몰리게 했는데, 그것이 서민금융의 위축과 가계대출 시장의 비대화를 낳았습니다. 가계대출 확대와 카드/부동산 거품은 이 결과이기도 했는데, 이쪽으로 돈이 쏠린 이유는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회복이 불충분하게 이뤄지고, 1997년 이후 한국경제가 회복되지 못한 배경 속에서 기업 투자가 부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금융정책은 한국의 저축률을 심하게 떨어뜨렸는데, 이는 지금의 숫자 상의 경기회복이 빚더미 위에서 이뤄진 것이란 뜻입니다. 

집권 직후 추진한 이명박 정부의 기업과 부자 감세도 기업 투자의 부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근본에서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들이 돈만 쌓아 놓은 거죠.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경기부양 정책은 이런 패턴으로 오히려 돌아간 것이었고, 이것은 폭락 위기에 있던 한국 부동산 시장을 빚으로 되살린 것이고, 이것이 한쪽에선 전월세 대란을 낳고, 한쪽에선 저축은행 파산을 낳고 있습니다. 

한국 지배자들의 신자유주의 경제(금융) 정책은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4. 외환은행 노동자들은 내일(15일) 총파업 찬반투표를 합니다. 12일 전 직원 집회에서 결의한 것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예상대로 16일 하나금융의 인수계약을 승인하면 파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찬반투표는 정부에 대한 마지막 압박이자 경고입니다. 

사실 이 시점에선 지금 때를 놓치면 승리는 물 건너 갑니다. 파업을 하지 않으면 인수합병을 막기 힘들 것입니다. 이명박과 하나금융 회장 김승유의 관계 때문에 하나금융이 능력도 안 되는데 인수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죠. 

이 투쟁은 사실상 청와대를 향한 싸움입니다. 

은행 대형화 정책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모두 재경부 모피아들, 대형 금융자본(투기자본을 포함한)과 합작해 추진해 온 것이라는 점, 이명박 정부가 은행 대형화의 한 줄기로서 하나은행에 특혜를 주려는 합병이라는 점, 그 두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은행 부실과 노동자 인력 감축,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질 것이고, 더 길게는 대형 은행들이 수익성 위주 경영으로 내달려 금융의 서민 배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나쁜 것입니다.

따라서 이에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당합니다. 이 싸움이 이제 결론을 내야 할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2003년에 론스타에 맞선 싸움을 석연찮게 접었던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랍니다. 이제는 여론전이 아니라 노동자 고유의 힘을 동원한 힘 대결의 국면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은 외환은행 국내 임원들이 한 편인듯 하지만, 그들이 어느 경우든 자리를 잘 보전하려면 정부와 하나은행에 밉보여선 안 됩니다. 그들은 파업을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내부에서 합병에 반대하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는데, 이에 맞설 주체는 노동자와 노조 뿐입니다. 

하나금융의 부실 문제, 론스타의 먹튀와 불법 주가 조작 문제 등으로 정부와 금융위원회도 쉬운 결정이 아닐 겁니다. 1백만 명이나 외환은행 합병 반대 서명에서 보듯 국민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나은행보다 재정 상태가 더 좋은 국민은행도 3년 전 비싼 가격과 (부차적이지만) 여론을 이유로 합병 직전에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인수를 승인해도 론스타가 먹튀하고, 인수 승인을 하지 않아도 론스타가 또 고배당으로 먹튀한다고 딜레마라고 합니다. 사실 이는 핑계입니다. 

하지만, 온 좋게도 대법원이 답을 줬습니다. 론스타는 금융 불법 행위자입니다. 이들에게서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고 주식 거래를 정지시켜야 합니다. 외환은행은 국책은행으로 독자 생존하도록 하는 것이 낫습니다.

파업 찬반 투표는 아마도 압도적으로 가결될 것입니다. 금융위원회도 승인 심사를 다시 유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수록 하나금융지주는 무리한 계약조건 때문에 불리해지겠죠.

그럼에도 정부가 이 마지막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명박은 그토록 경계했던 민주노총이 아니라 점잖은(?) 은행 노동자들에게서 한방 먹고 레임덕이 심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려면, 외환은행 노동자들이 스스로 칼자루를 쥐어야 합니다. 저들의 일정에 맞춰 파업 경고만 하지 말고 유리한 기회를 잡았을 때 밀어붙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2월 28일 집회 같은 대규모 도심 집회로 말이죠.



※이 주제 관련한 최근 기사 ☞ 외환은행 매각 저지 투쟁 ― ‘먹튀 자본’ 론스타의 지분을 몰수해야 한다


  1. “이 작전의 실체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수사하던 대검 중수부가 2006년 9월 씨티그룹을 압수수색하면서 드러났다. 씨티그룹증권(옛 살로먼스미스바니)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자문을 맡았던 자문회사였는데, 검찰이 이 회사와 론스타 관계자, 김앤장 법률사무소 관계자들이 주가조작을 위해 주고받은 이메일을 손에 넣었던 것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주도로 열린 론스타 처벌 요구 기자회견문 가운데서 인용. [본문으로]
  2. 2008년 1심 재판부도 "실제 감자 의사가 없으면서 감자계획 검토를 언론에 발표해 외환카드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려 했다”고 인정해 유회원에게 징역 5년을, 외환은행과 대주주인 LSF-KEB Holdings, SCA에 각각 벌금 250억 원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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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당이 “노무현 정신 계승”을 기치로 창당한 지 1년이 됐다.
 
최근 이 친노 정당을 진보대통합에 포함하자는 견해가 커지고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국민참여당도 진보대통합의 연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고, 진보신당의 이창우 당대회 준비위원은 통합진보정당에 국민참여당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했다.
 
진보진영의 명망가들이 꽤 참여한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도 국민참여당을 진보대통합 대상으로 결정했다.
 
사실 유시민, 이재정, 천호선 등 국민참여당의 실질적인 리더들은 진보진영이 노무현 정부에 퇴진까지 요구하며 맞서 싸울 때 그 정부의 핵심에 있었다. 고위관료, 중소자본가, 상층중간계급 등 이 당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지도부와 그 계급기반, 재정은 모두 친자본주의적이다. 
 
그러나 이 당이 현재 원외 야당이라는 조건, 이명박의 반동 정책과 노무현 추모 열기로 말미암은 반사 이익, 노동운동 일부에 지지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참여당이 진보진영의 일부라는 잘못된 주장이 나오는 듯하다.
 
이 당은 최근 ‘노동대책 및 노동관련법 재개정을 위한 야5당―민주노총 회의’에도 참여하는데, 민주노총 전 사무총장 김영대가 이 당의 최고위원이다. 민주노총 내 비리 사건으로 민주노조운동에서 축출된 그는 민주노총 내 국민파 일부와 연계돼 있다. 국민참여당은 최근 전북 버스 파업과 홍익대 비정규직 투쟁 등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진지하게 정책적으로는 진보적 개혁을 지지하는 듯도 하다. 1월 초에 실시한 당원 이념에 관한 온라인 조사에서 당원 67퍼센트가 자신을 ‘대체로 진보’라고 답했고, 75퍼센트는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는 복지 이념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그 지도부와 당이 공식으로 표방하는 이데올로기는 이와 다르다.
 
국민참여당은 강령에서 “적극적인 대외개방”과 “선진통상국가”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 “군사력 강화” 등을 주장한다.
 
진보교연의 손호철 교수는 이를 두고 국민참여당이 “FTA 정당”이라고 주장한다. 김세균 교수는 “좌파신자유주의가 … 결국 신자유주의의 한 변종”이라며 진보대연합 대상에서 제외했다.
 
실천에서도 별 볼 일 없는데, 이 당의 실질적 리더인 유시민은 지난해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와 진보진영의 즉각적인 무상급식 실시 주장에 냉소를 보낸 바 있다.
 
FTA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FTA에 대한 극단적 평가는 감정대립만 될 뿐,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여론을 감안해 “현재의 재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일단 반대한다”는 애매한 태도를 보인 게 전부다.

무엇보다 이들이 계승한다는 노무현 정부가 파병, 한미FTA, 새만금 사업, 노동 탄압 등에서 진보진영보다 보수와 더 코드를 맞춰 온 사실에 분명한 단절 노력은 없다.

이것은 이들이 비록 일부 진지한 진보적 지지자들을 두고 있다고 해도 그 당의 본질은 명백하게 자유주의적 친자본주의 당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 이 글은 참여당 창당 1년에 맞춰 1월초에 쓴 미발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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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에 관한 제 지난 글(아덴만 축배 뒤의 진실: 소말리아에서 철군해야)에 몇 개의 댓글로 몇몇 분이 반론을 폈습니다. 

길거리에 삥 뜯겨 봤냐, 그런 상황에서도 불쌍한 해적 운운하며 한가한 소리 할 수 있냐는 반론이 가장 많은 듯합니다. 쉽게 말해 한국 선박이 피해를 보는데 정부가 범죄자인 해적을 사살해서라도 한국 선박 구하는 건 필요한 일 아니냐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서 결과적으로 성공한 작전을 왜 비하하느냐, 정부가 또 돈으로 해결해야 하느냐 하는 반론성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반론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첫째 답변은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 성공했다고 문제가 끝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정부의 과장 광고 탓에 일부 사람들은 군사적으로도 불가능한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청해부대가 지금까지 한국 선박을 직접 호송한 것이 242회입니다. 같은 기간에 국토해양부가 밝힌 해당 수역 통과 한국 선박은 1천62 척입니다[각주:1]. 한 회에 여러 척을 호송한다고 해도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소말리아 해안선이 청해부대 작전 지역보다 넓은 데다가[각주:2], 1척의 구축함이므로 한국과 교대시 공백도 있습니다[각주:3]

게다가 강대국들의 함대가 소말리아 해역에 진을 치자, 해적들의 활동 범위는 오히려 인도양 전역으로 넓어졌습니다. 마치 풍선효과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한국 해군이 인도양은커녕 소말리아 해역을 완전히 평정할 능력이 되나요? 한국 자체로는 추가 파병이 불가능합니다. 여섯 개 뿐인 4천5백 톤급(이지스함 바로 아래 급) 구축함 중 하나가 그곳에 가 있습니다[각주:4].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청해부대는 한국 선박 보호를 위한 독자 작전이 아니라 대 테러 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미군 제5함대의 연합해군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연합 함대의 일원으로 파병됐다는 겁니다.

군사작전이 최선이라는 논리대로라면, 최소한 구축함 한 척을 더 보내야 할텐데, 아무리 소말리아 해역이 중요해도 본토를 지키는 해군 전력의 핵심 구축함 가운데 3분의 1을 먼 곳에 보낼 수 있는 간 큰 나라는 없습니다[각주:5].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서해에서 북한과 군사적 긴장을 유발한 상태입니다.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군사 강대국들도 유엔 결의안을 명분으로 함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도 해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유엔이 해적을 좇아 내륙으로 쳐들어갈 권리까지 결의안으로 채택했는데도 그렇습니다. 

청해 부대가 직접 해적을 물리친 작전도 이미 14회입니다. 그런데도 해적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왜일까요? 

선박을 호송 중인 청해부대 대조영함.(함은 계속 교체함) ⓒroknavy http://www.flickr.com/photos/roknavyhq/5055901829/


이번에 문제가 된 해적 13명(피살 8명과 체포 5명) 중 10명이 한 동네(푼틀란드 갈카요) 출신이라고 하죠. 부산에서 조사 받는 해적들은 유치장에서 세 끼 꼬박 나오는 밥에 “굿”을 연발하고 있다고 하네요. 소말리아 해적이 기업화했다 해도 그들이 생계 때문에 ‘해적’이 된 사람들이지 광기어린 테러리스트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간접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말리아에서 해적이 생겨나는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점은 사실관계만 확인해도 분명해 보입니다. 무리한 작전은 오히려 석해균 선장의 목숨을 뺏을 뻔했습니다.

둘째, 한국 정부의 태도입니다. 어느 분이 매번 한국 정부가 인질값을 내야 하느냐고 물으셨는데,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인질값을 지불한 적도 협상에 임한 적도 없습니다. 

인질값 협상은 모두 개인 차원이나 선박을 보유한 기업 차원에서 이뤄졌구요. 이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금미호 선원들은 여태 풀려 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미호가 영세 어선이라 배 자체로 이미 담보 대출을 받은 상태라 정부에게 몸값을 지불할 돈의 대출을 요구했는데도 정부는 거절했습니다. 이쯤되면 표현상 비약이긴 하지만, 돈 없다고 몸값을 열 배나 낮춰 준 해적이 더 인간적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대기업에 속하는 삼호해운의 선박만 구출해 주고 만 것입니다. 그나마도 무리한 작전[각주:6]을 펴느라 석해균 선장은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그의 완쾌를 빕니다)

이쯤되면 결과적으로 성공한 한 번의 작전으로 정부가 할 일을 다했다고 칭찬할 것은 칭찬하자고 할 근거가 부족한 것 아닐까요?

셋째,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이중적 태도입니다. 국제상공회의소의 국제해사국이 낸 통계(2003~2008)를 보면, 소말리아와 아덴만 해역에서 해적 행위가 늘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인도네시아와 인근 말라카 해협 등이 훨씬더 많은 해적행위 발생지였습니다[각주:7]

그러나 유엔은 이 지역에 내륙 침입권까지 주는 각국의 해군 파견 결의를 한 바가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2003년과 2004년 해적행위는 빈도 면에서 2008년 아덴만보다 더 많습니다. 아덴만 해적이 늘기 시작한 2007년조차도 해적행위 숫자 자체는 그해 인도네시아와 비슷했습니다.

절대 규모에서 소말리아 해역의 해적 행위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인데, 한국 정부(국토해양부) 통계는 이조차도 2008년 1~2분기에는 2007년 1~2분기와 발생 숫자가 같습니다. 의심스럽게도 유엔은 2008년 6월에 이미 소말리아에 해군을 파견하자는 결의안을 통과시킵니다.(가장 폭발적으로 이 지역 해적 사건이 늘어난 것은 강대국 함대들이 온 후인 2009년 상반기입니다.) 

이런 차이는 해당 지역과 해당 지역의 국가에 대한 (유엔을 움직이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인도네시아와 그 주변국들은 서방 강대국들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죠. 

소말리아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른데, 하나는 정부가 붕괴한 상태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국에 적대적인 이슬람 정부가 등장할 뻔한(2006) 국가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소말리아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공격 대상이 됐죠. 미국이 소말리아를 폭격하고(2007) 미국의 사주를 받은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를 침공한(2006) 배경입니다[각주:8]



소말리아 자체는 별 것 없지만 그 지정학적 위치는 아라비아 반도와 마주보는 위치로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들, 중동 석유가 나가는 뱃길에 자리잡은 나라라는 겁니다. 이런 곳에 미국을 앞세운 서방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통제력을 유지·강화하려 합니다. 

유엔에서 내륙 침입권까지 확보하면서 소말리아 해안에 강대국들이 함대를 파견한 이유입니다. 

게다가 강대국들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석유가 계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최강대국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군사기지를 바라고, 아라비아 반도를 마주 보는 소말리아도 좋은 후보지 가운데 하나입니다[각주:9]. 소말리아를 통해 아라비아 반도 특히 예멘을 경계하고[각주:10] 아프리카 내륙으로는 케냐와 수단 등에 군사적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넷째, 여전히 소말리아에서 가난한 사람들 일부에게 해적으로 살도록 하는 사회경제적 배경이 해결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초 소말리아 정부의 붕괴는 미국과 소련이 부추긴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사주로 에티오피아를 쳐들어간 소말리아 정부는 패배하고 약화된 군사정부는 분열합니다. 이것이 내전의 시작이죠.'

아버지 부시가 보내고 클린턴이 지휘한 미군은 평화유지군이란 깃발 아래 학살을 자행합니다. 미군은 평화 구호 활동이 아니라 군벌들 간 내전에서 특정 군벌을 편들어 자국에 우호적 정부를 만들려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군은 아이디드라는 장군을 편들었는데, 어쩌다 아이디드가 고분고분하지 않자 이들과 미군이 싸우게 된 겁니다. 2006년에는 에티오피아 침공이 있었구요.

여기에 정부 붕괴를 틈타 소말리아 영해에서 다른 나라 배들이 어업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버리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죠. 연평도 식으로 치면 이들의 어업은 국경(영해선) 침범입니다. 이런데도 함대를 보내는 게 자국 선박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면, 저는 과연 누가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질을 하는 것이냐 되묻고 싶습니다. 

한국 정부는 2000년대부터 ‘대양 해군’을 부르짖어 왔습니다. 한미FTA를 ‘선진통상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선전해 왔습니다.(이명박 정부는 ‘성숙한 세계국가’) 이런 목표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소말리아 파병과 군사력 과시가 제게는 한묶음으로 보입니다. 이 묶음은 전임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 모두 공유한 목표이고 믿음이었습니다. 

청해부대 소속 UDT가 삼호주얼리 호에서 작전을 실행하는 실제 모습. 출처: 자주국방네트워크(KDN) http://koreadefence.net/detail.php?number=1495&thread=22r01



자국 배는 4분의 1도 ‘커버’ 못 하면서 그 배나 되는 외국 선박을 호위한 것은 청해부대의 진정한 임무가 아덴만과 소말리아 해역, 그리고 인도양에서 미국 중심의 군사 질서에서 한몫 하는 걸로 그런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한마디로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전략의 하나로 소말리아에 가 있는 겁니다. 한국 지배자들은 ‘소제국주의’로 나아가는 듯 보입니다. 

따라서 저는 튀니지와 이집트인들이 보여 줬듯, 소말리아인들에게도 스스로 정부를 구성할 권한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미국이 침략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먼 얘기지만, 미국의 뜻을 거슬러 민중이 봉기한 튀니지와 이집트는 민주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저도 한국인 인질이 더 없었으면 좋겠고, 지금 잡힌 인질도 풀려났으면 합니다. 한국인 선원들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같은 이유로 소말리아 민중의 안전과 생계도 중요합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정부라면 인질값을 주고라도 선원들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해적행위가 없어지도록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탐욕스런 개입을 중단하고 소말리아의 모든 해역에서 제국주의 군함들은 철수해야 합니다. 차라리 조건 없는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게 낫습니다. 차라리 정부가 금미호 선원들의 몸값을 지원하지 않는 걸 비판하십시오. 

국민의 세금을 먹는 정부가 국민의 안전에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 간접적으로 보면, 한국민의 위험은 바로 그 세금으로 미국의 침략 전쟁을 도우러 중동에 파병한 대가이기도 합니다. 그 파병으로 도운 것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고, 그것이 지금 소말리아를 망친 주범이니까요. 
  1. 이 시기에 대해 조선일보의 1월 25일자(인터넷에는 24일 밤) 사설은 “2009년 3월~2010년 10월 한국 국적 또는 한국인이 탄 선박 925척이 소말리아 해역을 통과했지만 청해부대 호위를 받은 경우는 13%인 120척뿐이었다. 게다가 소말리아 해적은 활동 범위를 인도양 전역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본문으로]
  2. 청해부대의 호송 작전 거리는 아덴만 일부인 1천2백 킬로미터라고 합니다. 소말리아 해안선은 총 3천 킬로미터가 넘습니다. [본문으로]
  3. 해군은 6개월 주기로 교대하는 구축함 왕복에 총 8주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4. 그보다 작은 배는 장거리까지 나가 작전할 능력이 안 되고, 이보다 큰 이지스함은 단 두 척이라 나라 밖으로 보낼 수 없다고 한다. [본문으로]
  5. 지금도 돌아온 구축함의 정비 기간을 포함하면 몇 달은 두 척을 뺀 네 척만 운용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지금 인도 해군과 MOU를 체결하고 인도 구축함의 도움을 받기로 했죠. 그런데 이는 한국 해군도 인도 선박을 함께 호송해 주는 것이니 절대적인 대책은 될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6. 한국 주말 언론 보도에 시점을 맞추려던 것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도 들긴 합니다. [본문으로]
  7. 이 지역에선 아시아지역해적퇴치협정이란 걸 맺었는데, 이 협정은 주변국들끼리의 협정이다. [본문으로]
  8. 한마디로 정부를 붕괴시킨 것은 미국이라는 것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이 내륙 진입권리까지 각국 해군 함대에게 준 것은 확인 사살과 같은 짓입니다. [본문으로]
  9. 현재는 소말리아 인접국인 지부티에 미군 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지부티는 아덴만 안에 있는 소국입니다. [본문으로]
  10. 미국은 예멘도 알카에다 근거지라며 군사적 통제를 하려 합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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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 기사: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관련 글: 착한 소비의 딜레마 ― 마르크스주의 관점  / 신세계·이마트와 정용진의 이념적 소비
(이 글은 부족하지만 위 글의 보론 성격으로 쓴 글입니다. 함께 읽어주세요~)

1.
오늘날 윤리적 소비, 즉 착한 소비 운동은  “소비는 돈으로 하는 투표”나 “돈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표어를 내세웁니다. 

그래서 그것은 단지 소비자운동만은 아닙니다. 사회구조와 관련해 매우 포괄적인 주제들을 다룹니다. 

소비로 기업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사회 책임 투자를 촉구하는 운동이나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는 것으로 발전합니다. 

선진 제국과 다국적 기업의 수탈적 무역에 대한 반대가 공정무역으로, 선진국 은행에 저축한 돈이 비윤리적으로 쓰이는 것에 반대하려는 생각이 지역 화폐나 비영리은행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은행들에게 하는 저축이 이 은행들의 미국 채권 투자를 통해 미국의 전비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중국, 대만, 한국 등과 더불어 미국에 대한 채권 국가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윤리적 소비운동은 참여하기도 쉽고, 의미도 가지는 운동으로 비춰지는 듯합니다. 저도 가능한 영역에서는 윤리적 소비를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윤리적 소비가 목표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2.
우선, 불매 운동과 윤리적 소비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사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친환경 제품을 사자는 것은 반환경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안적 소비 형태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폭넓은 방식인 불매운동은 대체로 윤리적 소비운동의 가장 초보적인 방식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가장 높은 수준의 윤리적 소비운동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최근 몇 년 새 한국타이어[각주:1]와 이랜드, 조선일보 광고기업리스트, 미국산 쇠고기 취급 대형 마트 등 다양한 불매운동의 사례가 있습니다.  며칠 전엔 ‘삼성’과 정면 대결하자는 분들이 ‘삼성불매운동’을 제안하는 《굿바이삼성》이라는 책을 냈다는데, 이것도 한 사례입니다.

윤리적 소비가 불매운동이라는 초보 방법으로 되돌아 간 것은 삼성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삼성을 대체할 수 있는 기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보험, 화재보험, 가전제품, 핸드폰, 컴퓨터 등 삼성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삼성의 경쟁기업들은 삼성보다 작아서 악행의 규모가 더 작은 기업들 뿐입니다.

무노조 삼성이 싫다고 노조 탄압 LG 제품을 사야 하나? 윤리적 소비를 일상에서 실천하려는 많은 분들이 고민했을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윤리적 소비운동이 부딪치는 가장 딜레마이자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럽히고 어지럽히는 가장 나쁜 기업을 윤리적 소비의 어떤 방법으로도 혼내 주기 힘들다는 것이죠.

자본주의 시장에서 독과점, 즉 집적[각주:2]과 집중[각주:3]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정용진 때문에 쟁점인 유통업계를 예로 들면, 대기업 유통 마트 진입에 반대하는 동네 슈퍼들도 이전에 자신들끼리 이런 과정을 거치곤 했습니다. 지금 대형마트 반대자들은 이전 경쟁의 생존자들인 거죠.

이것은 이론상으로도 경험상으로도 이미 확인된 내용입니다. 대기업조차도 이를 피할 순 없습니다. 다국적 기업인 월마트, 까르푸가 실패해 떠났고 이랜드도 실패해 삼성에 넘겼습니다. 이 경쟁은 국가를 동원하기도 합니다. 양쪽 모두 공정거래위와 국회를 동원합니다. 

이런 시장의 특성상 이마트가 싫어 다른 대안 유통업체를 찾아 봐도 나쁜 기업을 만나는 걸 피하기 힘듭니다. 그것은 다른 소비재 시장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3.
그래서 윤리적 소비 운동은 대안적 소비 운동으로 나가자는 분도 있습니다. 대체로 우리에게 소비를 강요하는 대기업들의 소비 품목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 생활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물품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자동차, 대형TV, 핸드폰, 보험상품, 주식투자, 비행기 여행, 패스트푸드 등.

안타깝게도 이것은 사회의 다수인 노동 대중들의 삶과 유리된 소비 생활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핸드폰 안 쓰겠다는 사람을 누가 고용하려 하겠으며, 오늘날 컴퓨터와 TV 등을 통한 매스미디어를 접촉하지 않고서 취업과 업무에 필요한 업무 지식을 습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가용의 경우도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콩나물 시루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너무 힘든 건 사실입니다. 패스트푸드 형태로 육식을 섭취하는 건 바쁜 도시 노동자들에게는 불가피한 면도 없지 않습니다. 화재보험 없인 자가용을 굴릴 수 없고 체제가 생존을 책임져 주지 않으므로 생명보험이나 연금보험이라도 들어놔야 안심이 됩니다.

그래서 대안적 소비 운동은 근본주의적인 자급자족 소농 공동체운동으로 발전하거나 아니면 나쁜기업에 대한 생필품 의존을 인정하고, 커피나 초콜릿 같은 기호품 소비에서 윤리를 찾는 온건한 형태에 머물게 됩니다.
 

이런 기호품 소비는 시장이 작아 대기업들을 변화시키는 데 매우 부족한 상품들입니다. 

게다가 커피, 바나나, 초콜릿, 차 등의 기호품 소비는
선진국에서 20세기 들어서 대중적 유행이 됐는데, 이 작물들의 역사는 예전 남미와 아프리카의 플랜테이션 노예농장과 연관이 있습니다. 풍족한 농업지대가 식민본국의 기호품 소비를 위한 단일경작 노예농장으로 바뀌는 겁니다. 

20세기 중반부터 선진국들은 가난한 나라에 돈을 꿔 주고 엄청난 고금리로 이 돈을 갚도록 합니다. 외채의 덫에 걸린 가난한 나라들은 자국의 식량 공급을 파괴하면서까지 선진국 시장에서 돈 되는 작물의 단일 경작으로 농업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공정무역이 취급하는 기호품들이 대체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식민지 시대부터 형식적 독립국인 지금까지 이 지역들은 만성적인 식량위기 상태입니다. (참조 ☞ 여기) 공정무역기업과 거래하는 제3세계 농민들은 거대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이 아니라 소농들입니다. 거대 커피농장 자체를 네슬레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경영하니까요. 

단일경작 수출은 농업 위기를 낳고, 변덕스런 국제 식량시장에 해당 지역 농민과 노동대중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지금 커피의 경우 과잉 공급이 낮은 산지 가격의 주요 배경입니다[각주:4]. 근본에서 이런 수출의존, 수출용 단일경작체제를 바꾸지 않도록 하는 공정무역이 과연 정말 선한 것이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다국적 기업들보다는 더 많은 가격을 쳐 주니 상대적으로 훨씬 더 윤리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상대적 고비용은 기업 이윤을 감소시키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부담합니다. 시장 관계로 만나는 것이므로 이것이 진정으로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관계인지는 의문입니다. 공정무역 시장이 커지면 자본력이 약한 공정기업들을 밀어내고 대기업들이 시장을 나눠 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정무역도 세계 무역의 진정한 불공정 구조를 바꿀 수는 없다고 결론 내닐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수탈적인 세계무역구조를 미화시키기도 합니다. 

결국 대안적 소비 운동은 대기업의 시장 과점과 시장 구조 자체의 비민주성과 불공정성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 다수 대중의 대안적 삶의 형태가 되기에 부족합니다. 소비 운동이 중산층 운동처럼 보이는 이유죠.  

생협과 로컬푸드 등도 대안적 소비라 할 수 있는데, 식품 안전이란 면에서 윤리적일 수 있고, 한국처럼 자영농이 많은 구조에서는 양쪽에 모두 이득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더 비용이 더 들고, 생산의 질을 유지하려면 보편화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구조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상을 바꾸는 소비는 되질 못합니다. 

이런 점들은 윤리적 소비가 생산자에 대한 자선 효과를 노리는 것인지, 개인 소비의 질 향상을 기대하는 것인지 모호하게 만듭니다. 

다른 한편, 바로 이 점이 소비(취향과 능력)가 생산(규율과 소득)에 매여 있는 또다른 증거이기도 합니다.

△ 공정무역 매출은 매년 늘고 있다. 공정무역 시장이 커지면 공정무역마크를 단 대기업 상품들을 보게 될 것이다. 기업으로선 손해보는 건 아니다. 공정가격을 산지에서 지불한 만큼 판매가격을 올려 받기 때문이다.



4.
자본주의에서 기업 이윤(잉여가치)은 판매차익이 아니라 “출입구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팻말이 붙어있는,가려져 있는 생산의 장소”(마르크스)에서생겨납니다.

이 곳에서 자본가들은 자신이 구매한 노동력에게 약속한 대가(임금)보다 더 많은 노동(잉여노동)을 부과합니다. 이 잉여노동의 결과로 생겨난 추가적인 재화와 서비스가 잉여가치인데, 자본은 이를 이윤이라고 부릅니다.


즉, 전체 생산과정에 투자된 자본 가운데 원료는 그대로 생산품의 가치에 이전되며, 기계도 감가상각되어 생산품 가치에 이전됩니다. 노동만 유일하게 자신의 가치(임금)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착취’입니다. 즉, 마르크스주의에서 착취는 부당거래로 만든 차익이나 수탈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경제주체의 소득은 이처럼 노동자 착취에 바탕한 생산과정에 기여한 몫을 그 비율 만큼 배분받는 것입니다.

노동력 제공, 공장과 창고 등 토지의 대여, 현금 대출, 법과 경찰로 기업을 보호하는 국가, 생산품 판매와 배송, 노동력의 교육과 치료 등이 임금과 지대, 이자, 세금, 수수료 등으로 실제 이윤이 나는 생산 영역에서 노동자와 나머지 자본, 그리고 국가에 배분됩니다.

나머지 자본과 국가가 가져가는 몫의 노동은 실제로 이 부문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했으므로 이 노동자들은 이 배분되는 몫에서 임금을 받습니다. 이 노동자들도 잉여노동을 한 것이므로 착취를 받습니다.

결국, 이 소득 배분 과정은 잉여가치 생산과 실현, 배분 과정에서 구성된 자본의 연결망이 노동자들 전체를 착취하는 것, 즉 집합적 착취 관계의 형성을 보여줍니다. (한편에선 화폐 물신주의, 즉 화폐가 신비한 구매력을 가지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이마트의 힘은 싼 판매가격이 아니라 싼 구매비용에 있다는 겁니다. 싼 판매가격은 시장 점유율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싼 판매가격으로 시장을 과점해도 이윤을 남기려면 투자와 산출(매출)을 대비해 후자의 비율이 높아야 합니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쟁의 본질이 단순한 유통과 판매가 아니라 경쟁적 축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판매노동자를 저임금에 쓰고, 현금과 유통망의 힘으로 생산기업들을 압박해 더 높은 착취강도로 더 싸게 물건을 공급하도록 만들 수 있는 힘[각주:5]입니다.

이것이 대형유통자본에겐 있고, 동네 중소 상인에겐 없는, 대기업이 영세상인들을 몰락시키는 힘입니다. 그래서 대기업은 사는 물건부터 사는 장소까지 우리가 자신을 피할 수 없도록 포위합니다.

한편, 중소기업도 생산비용을 낮출 수만 있다면 대체로 대형유통마트에 납품하는 게 매출을 늘릴 수 있으므로 이득이 됩니다. 소상인들도 경쟁하려면 구매비용을 낮추는 데 같은 이해관계를 가집니다. 더 싼 상품 공급을 바라는 거죠. 서로 싸우는 듯 보이는 대기업-중소기업-유통기업-중소상인이 한편에선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 이유입니다. 

이 가운데 소비재를 취급하는 소상인들은 대기업과 싸우면서도 노동자투쟁은 환영하지 않고, 생산기업 노동자의 임금 인상은 바라지 않으면서 소비자로서 노동자의 임금 인상은 바랍니다. 중간계급의 모순된 처지란 바로 이런 겁니다[각주:6].



5.
이 얘기를 장황하게 한 또다른 이유는 소비가 기업 이윤에 타격을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첫째, 노동자들의 전체 소득을 합해도 전체 생산 몫의 일부이므로 소비재 수요가 기업 이윤에 타격을 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둘째, 소득의 원천이 기업들의 이윤 생산 과정이므로 앞서 지적했듯이 소비행태 등 생활방식도 생산과 결부된 필요와 문화에 대체로 종속됩니다.

셋째,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누구를 윤리적 소비의 파트너로 택하더라도 경제의 근본 구조는 전혀 손상되지 않습니다.

넷째 이 점도 매우 중요한데, 자본주의 경제에서 진정한 소비자는 생산과정에서 온갖 생산요소와 제반서비스를 구매하는 생산자본이라는 겁니다[각주:7].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투자가 수요를 창출하는 원리입니다.

좀더 부가하면, 바로 이런 자본주의 투자의 성격 때문에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의 소비능력이 자본주의 전체의 생산물보다 적은데도, 심지어 농민 등을 다 합쳐도 총투자액이나 총산출물에는 못 미치게 돼 있는데도 일반적으로 과소소비 공황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나면, 소비로 기업 이윤에 타격을 준다는 생각은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공상을 좇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선 노동력 판매, 즉 취업을 해야만 하는데, 반대로 인간의 노동력이 판매 대상이 될 정도로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체제에서 소비 행위를 회피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이런 거부할 수 없는 현실 때무에 오늘날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근본주의 대안은 상품시장과 노동의 소외를 폐지하는 반자본주의 노동자 혁명이거나 아니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생산자급자족 공동체 밖에는 없습니다.

소생산자 공동체는 사실상 도시 노동자들이 귀농하자는 것인데, 막대한 식량과 재화, 서비스를 쌓아두고도 수억 명을 굶겨 죽이는 체제의 부정의를 바꾸는 것은 더 힘들어지는 대안이 아닌가 합니다. 국가권력에 대한 정치적 도전을 회피할 뿐아니라, 소생산 공동체의 경제력으론 대기업들의 경제력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6.
결국 윤리적 소비 운동의 기업 비판은 기업을 변화시키는 개혁주의 대안으로서 종합하면, 윤리적 자본주의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정상적인 작동이 착취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근본에서 윤리적 자본주의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사에서 썼듯이 나쁜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시장 경쟁 아래서 개별 기업은 경쟁을 위해 생산비용을 줄이고, 노동자에게 더 일을 시키고 노동자 수를 줄이며, 다른 사회 책임 투자를 줄여야 합니다.

그래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 책임 투자, 은행 이윤의 지역 재투자, 사회적 기업 등 착한 기업 만들기 프로젝트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하나의 이윤기계인데, 그 속성상 사회 책임 투자조차 직간접적이거나 장단기적으로 이윤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복지 투자는 중장기 시야에서 기업 이미지 마케팅이 가장 큰 목적입니다.

시중은행들의 막대한 수익과 경영자 고임금이 문제가 되자, 2006년경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은행들이 강조한다거나[각주:8], 아들 문제로 폭력 사건을 일으킨 김승연의 한화그룹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늘린 것이 대표 사례입니다.

가장 위선적인 것은 삼성이 또 하나의 가족이니 뭐니 하는 것이겠죠. 이들은 일정액의 사회적 기부를 통해 법인세 감면 효과도 노립니다.

요즘 유행하는 사회적 기업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대부분 국가 보조 없이는 운영이 안 됩니다. 이윤을 못 남기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고된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립니다. 경쟁력 부족은 틈새시장과 국가보조, 개인 기부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사회적 기업이 이명박 같은 친(나쁜)기업 정부에게 의존하려는 이유[각주:9]인데, 이들이 스스로 이윤을 내서 독립적으로 생존하려면 지금보다 더 비용을 절감하는 경영, 즉 이윤 확보를 가장 우선하는 경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사회적기업의 업무 영역과 관계있습니다. 사회적기업은 대체로 업무 자체가 복지 대행인 경우가 많습니다. 행복도시락 등이요. 그런데, 이런 복지는 조세를 통해 국가복지로 해야 합니다.

국가복지를 민영화하는 것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 복지를 탈정치화하자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관료주의와 시장 효율성을 대립시키는 방식의 논리인데요, 본질은 복지비 부담을 누가 질 것이냐 하는 겁니다. 

결국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사회적기업과 국가복지와 충돌할 수도 있다는 뜻인데요, 왜냐면 해당 분야에서 국가복지를 강화하면 사회적기업의 영역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사회적 기업도 경영자본이 필요한 점에서 다른 기업과 다르지 않다. 이윤 추구를 억제하려면 자선에 의존해야 하는데, 자선에 의존하는 것은 스스로 ‘기업’이라고 부르는 것과 너무 동떨어진 행동이다. 국가 보조와 개인 기부에 의존하는 것은 자생력 있는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내보이는 일이다.



7.
그런데, 이 문제들은 비영리(NPO[각주:10]) 은행이 있다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첫째, 자구책은 될지언정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재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둘째, 비영리 은행도 돈은 갚아야 합니다. 자급자족 공동체가 아니라면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 은행의 대출을 받아도 앞서 그 돈을 갚으려면 앞서 지적한 경쟁=이윤 창출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셋째, 결국 받은 돈으로 해야 할 일은 시장에 나가 돈을 버는 일입니다. 구조적으로 시장 경쟁은 모든 참가자에게 성공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시장이 지배하는 구조와 대결하지 않으면  뭔가 다들 부실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비영리 은행이 기여할 수 있는 건 소생산자(농민)들이 자급자족 공동체를 꾸리는 경우 정도입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는 사회의 총체적 거부는 될지언정, 총체적 변혁 전략은 아닌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온존한다는 점에서 체제 거부 자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경우, 자급자족 공동체조차 필수품을 구하려고 자신들의 농산물을 팔아야 합니다. 물론 유기 농산물인데, 이렇게 되면 결국 이들도 시장을 통해 체제의 다른 생산자들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 공동체는 자신의 삶은 바꾸지만, 사회 구조는 단 하나도 바꾸질 못합니다.

8.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막강한 소수의 기업들은 막대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배분을 결정하지만, 그 결정은 무정부적 시장에서 혈투와 같은 경쟁의 시험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기업도 나쁜 기업이 돼야 한다는 압력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경쟁은 주기적인 과잉생산 위기를 낳습니다.

국가는 노동자들의 세금으로 기업들을 지원하고, 부동산 투기 거품을 부양하며, 이런 기업들이 경영에 실패해 노동자를 짜를 때면 경찰을 보내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때려 잡습니다.

그래서 나쁜 기업을 없애려면 국가권력에 도전하고,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소비 투표가 아니라 기업들을 민중적 민주적 계획 아래 종속시켜 민주적으로 생산을 결정해야 합니다.

□ 참고도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알마, 2007)
《굿머니 ― 착한 돈은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착한책가게, 2010)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실천문학사, 2010)
《나쁜 기업》(프로메테우스, 2008)

□ 참고기사

※ 지역화폐는 다루지 않았는데, 한국에선 아직까지 영향력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1. 이명박 사돈 기업으로 위험한 작업 환경으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데도 처벌받지 않는 죽음의 공장으로 불린다. [본문으로]
  2. 기업의 절대 규모가 커지는 것. [본문으로]
  3. 경쟁하는 기업의 수가 줄어드는 것. 즉 집적과 집중이란 시장 경쟁이 갈수록 덩치가 커지는 소수의 기업들의 지배로 바뀌는 현상. [본문으로]
  4. 옥스팜은 공정무역이 과잉생산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공정가격으로 5백만 자루(약 1억 달러)를 사서 폐기 처분하자고 제안합니다. 이것이 공정무역운동의 초라한 현실입니다. [본문으로]
  5. 대체로 축적된 자본의 규모와 이에 따른 국가에 대한 영향력이 이 힘의 크기를 결정한다. [본문으로]
  6. 사실, SSM이 들어오기 전까지 동네 슈퍼들도 그 동네 수준에서는 경쟁을 통한 집적과 집중 과정을 거치곤 했습니다. [본문으로]
  7. 이 구매 과정이 아까 말한 소득의 배분 과정과 동일합니다. [본문으로]
  8. 서민 대상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이명박이 박원순 변호사에게서 빼앗아 갔다고 문제가 됐었는데, 이 사업을 애초에 후원한 하나은행은 비정규직 차별이 가장 심한 은행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으로]
  9. 사회적 기업은 법인세 추가 감면 등 세제 지원과 국고 보조를 바라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10. Non Profit Organigations.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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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보신당은 9월 5일 당대회에서 ‘선거평가 및 당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특별위원회’(당발특위)가 마련한 당 발전 전략()에서 새 진보정당 추진기구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당발특위 발전안(관련 기사 :  진보신당의 당 발전전략안 ― 진보신당의 모순을 보여주다)은 진보신당의 진로 ― 연합정치와 당 정체성 ― 를 두고 벌인 논쟁을 봉합하는 절충안이라고 평가절하돼 왔는데, 진보통합 추진기구 설치는 이런 발전안에서 몇 안 되는 구체적 실천 계획이었습니다. 

겉보기엔 문구상 질적인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수정안 가결의 상징성이 큰 까닭입니다. 그래서 당 발전안 통과 후 연합정치 행보를 가속하려던 이른바 ‘통합파’의 입지가 당분간 축소될 것으로 보입니다[각주:1].
연합 지지파 안에서도 진보신당 상층부의 무원칙한 ‘연합정치’ 행보에 반감이 상당하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죠[각주:2].

그 결과, 심상정 전 대표는 대표 출마를 그뒤 고사하고, ‘독자파’ 출신 조승수 의원이 대표 선거에 단독 출마했습니다. 


2. 독자파와 통합파는 쟁점을 선명히 드러내는 명칭은 아닌데, 그 본질을 살피다 보면, 또 손쉽게 둘을 구분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제 관점에서 보면, 통합파는 말그대로 통합정당을 추구하므로 진보신당 자체는 통합진보정당으로 용해되는 것이고, 독자파는 선거연합은 반대하지 않지만[각주:3], 진보신당을 유지하면서 연합을 하자는 것입니다. 결국, 진보신당의 유지 여부가 쟁점인 것이죠.

물론 통합파도 통합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진보신당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 독자파도 세력의 재구성을 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으므로 우선 당을 강화하자는 데에서는 사실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입장의 차이가 불구대천의 차이인지 사실 좀 의심스럽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바로 그런 당 강화에 걸린 양쪽의 필요 때문에, 논쟁 주제가 연합의 범위에서 진보신당의 존재 이유 즉 당의 정체성 문제로 바뀐 것이라 봅니다. 연합이 제기된 것은 이대로는 진보신당이 존폐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체성 논쟁은 2년의 성공/실패 여부라는 평가 문제와 향후 진로 전망 문제를 모두 포함하는 쟁점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논쟁 구도가 연합의 범위 문제로 시작해 당 정체성 문제로 간 것을 이해할 수 있고, 독자파의 핵심들이 민주노동당 선도탈당파인 점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연합의 범위 쟁점이 국민참여당·민주당에 머물지 않고 민주노동당 문제도 쟁점이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도탈당파에게 재통합은 창당 실패를 인정하는 거니까요.

사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진정한 차이는 진보신당 창당 기획을 포기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편의상 독자파와 통합파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도 그렇게 틀린 용어법은 아니겠다고 생각합니다.

3.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진 중심의 실세 그룹들, 즉 유시민이나 천호선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한 인물들이 주도하고 있고, 민주노동당은 최근 민주대연합 노선과 헌정회 지원과 인천 동구청장 사태 등으로 우경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통합파는 확실히 무원칙합니다. 그들은 진보신당의 위기를 선거공학에 바탕해 민주대연합에 가까운 통합 정당 노선으로 돌파하려 합니다.

국민참여당이나 민주당과 하는 통합에 반대하는 점에서 독자파가 더 올바른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독자파가 사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 같은 애초 진보진영의 독자 정당 건설의 목표를 좌파적으로 되살리며 통합파를 비판하는 건 아닙니다[각주:4]. 그들도 마찬가지로 선거 논리에 기대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도 대부분 민주당을 포함하는 선거연합은 찬성합니다. 둘째, 진보 양 당의 재통합을 바라는 민주노총 조합원 등 진보 대중의 바람을 외면합니다. 셋째, 선거 기반이 거의 없는 사회당과 통합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사실 별 관심이 없습니다.(더 좌파적인 그룹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그것은 독자파도 당 존립에 관한 위기감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통합파의 방식이 진보신당 주축 세력의 정치적 소멸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게 이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도로 민주노동당’에 그토록 반감이 큰 것도 그것이 자신들의 분당/창당 기획의 실패를 인정하는 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자주파와 세력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제도 선거판에선 집권당 출신인 국민참여당의 세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통합이든 연합이든 자기 기반이 확실해야 지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통합파의 아킬레스 건입니다. 통합파 리더들의 정치적(선거적) 상품성은 ‘진보정치’에 있기 때문에 진보신당이라는 기반을 버리고 개인적으로 통합 논의로 갈 순 없죠. 이 때문에 통합파가 당대회의 일시적 패배를 감수하고 독자파와 다시 동거에 들어간 것입니다.


4. 그렇다고 독자파에게 당장 실현가능한 뚜렷한 비전이나 기반이 있는 건 아닙니다. 조승수, 김정진, 한석호, 장석준 등 선도탈당파를 이뤘던 독자파들이 “주체의 재구성”을 이루자고 강하게 주장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통합파의 “세력의 재구성”에 맞서 독자파가 내놓은 “주체의 재구성”은 실패한 창당 기획의 반복에 불과합니다.

조승수 의원은 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재벌(=대자본)과 싸우는 당”이 되겠다고 했는데, 자본가 싸우는 당이 왜 노동자(계급 전체)당이 아니라 비정규직(계급 일부)당이어야 할까요.

장석준은 정규직(조직 노동운동의 주요 구성 집단)은 신자유주의에 포섭됐고, “20대, 여성 등의 비정규직”은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됐다고 말합니다. 배제된 사람들의 당이 되자는 거죠.

즉,
비정규직당” 노선은 노동계급 정당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비정규직당” 노선은 조직 노동운동과 거리두기라는 정치적 함의를 지닌 용어로 봐야 합니다.

독자파의 주요 인물들이 민주노동당 분당 전 정규직 노동운동의 정치·경제적 양보로 노동계급 복지를 늘리자는 사회연대전략 지지자들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장석준은 최근 이른바 ‘비정규직당 노선’을 1960년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신좌파와 연관시키는 데, 당시 신좌파는 반스탈린주의나 환경 등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대변했으나 엘리트주의, 총체적 사회 분석의 결여, 종파주의 등으로 빠지기도 했습니다.


구 좌파와 비교해 가장 중요한 특징은 노동계급 기반과 유리되면서 총체적 사회변혁 전략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막상 1968년 이후 세계적 반란 사태(흔히 68혁명이라 부르는)에서 주요한 구실을 할 수 없었습니다. 체제를 뒤흔든 건 그들이 일차원적 인간이 됐다고 무시한 노동계급의 집단적 저항이었습니다.

결국, 친노동 이미지는 유지하되 조직 노동자 운동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 “비정규직당” 노선의 실체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창당 기획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미 실패한 그 기획 말입니다[각주:5].



5. 장석준은 비정규직당 노선의 성공가능성을 386 유권자들의 가치 투표에서 찾습니다. 독자파도 마찬가지로 선거공학에 의존한다는 한 방증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저는 20대와 여성으로 상징하는 미조직 청년 집단이 매우 불균등하고 유동적인 집단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진술이라 봅니다. 즉 수백만 명이나 되는 이 집단이 왜 자신들의 집단 투표가 아니라 386의 가치 투표에 의존해야 하는 걸까요.

이들이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됐다는 이유만으로 진보에 친화적일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쟁 논리에 20대 청년층이 포섭돼 희망이 없다는 비관주의가 근거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구 좌파가 마르크스의 말을 좇아 노동계급에 기초해 계급 정치를 주장할 때, 그것은 단지 교조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계급’이라는 관계가 불가피하게 강요하는 것들, 즉 지배적 자본과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스스로 작업장을 기초로 조직하게 되며 진보적 사회변화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들을 성찰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건 때문에 계급 정치를 고수하는 것은 이들 말로 어느 정도 이념의 경직성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경직성을 피하려 계급 의제를 버린다면  그것은 첫째 주관적 소망 때문에 객관적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며, 둘째, 안정적 진지가 없는 전략은 불안정하고 득표에 의존하는 선거정치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정적으로 기업과 사회를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그들의 노동은 이들에게 사회를 멈출 수 있고 사회를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잠재력을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에서 문제 해결 세력은 조직 노동운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사화 변혁의 핵심 주체 세력입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문제 해결조차 열쇠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연대에 있습니다. 장석준 등이 동희오토 투쟁을 강조하는데, 그 투쟁의 열쇠는 기아차(+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적극적인 연대 투쟁에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많은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에 맞서는 매우 중요한 항구적 진지입니다[각주:6].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포기하는 반동을 선택하지 않는 한 노동조합을 와해시킬 순 없습니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혁명이냐 반동이냐 하는 선택의 상황이겠죠. 이때야말로 조직 노동계급의 저항이 결정적일 겁니다.

노동계급을 분할해 한쪽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이들을 분열시키고 내부 불신을 조장하는 것으로 우리 편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20대 불안정 노동층 또는 진보·개혁 성향의 청년 대중을 조직하는 것이 꼭 조직 노동자운동과 거리두기에 바탕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힘을 고무해 이 힘을 발휘하는 투쟁을 통해 청년들의 급진화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힘들어 보여도)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입니다. 이런 세력의 동원을 거부하는 건 자본주의의 근본적 대안을 만들겠다는 창당 목표와도 모순됩니다.

한편, 정규직 노동운동이 신자유주의자들에 포섭됐다고 하는 건 정확하지도 정직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습니다.

신자유주의 거품(부채) 호황에 정규직 노동자 개인들 일부가 관심을 보이고 하는 건 포섭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소득이 자산 거품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벌어진 불가피한 선택으로 봐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주요 기간산업과 공공부문에 조직 노동운동이야말로 한국 지배자들에게 가장 위협적 존재입니다. 한국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에 한편에서 양보하면서도 한편에서 공격을 지속하는 것은 이들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국가운영과 경제(기업의 이윤활동)를 뒤흔들고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세력입니다.

조돈문 교수는 2년 전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집단이 민주노총 조합원 즉, 조직 노동자층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상시적으로 이명박의 신자유주의와 대결하는 조직된 집단이 바로 이들입니다[각주:7].

덧붙여, 신자유주의 노선이 2008년 위기 이후 그 신용을 잃고 각국 지배자들이 혼합 정책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반대만으로는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기 힘들 거라는 점도 지적 대상입니다.

결국 조직 노동운동과 거리를 두며 유동적인 청년층에 기댄다는 것은 촛불항쟁 때와 같은 성장을 다시 한번 꿈꿔 보겠다는 것인데, 짧았던 황금시절의 추억은 다시 반복되지 않습니다.


6. 정치 지형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2007년 당시 이명박 당선 후 정치지형이 매우 우경화된 듯 보였고, 이런 보수화 흐름에 호응하지 않으면 2007 대선 72만 표에서 보듯 진보정당이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습니다.

진보신당의 창당 기획은 기존 진보정당보다 우경화한 진보정당을 만들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있는 미조직 청년층을 선거적 관점에서 조직하려는 플랜이었습니다. 이 선거주의적 우경화가 진보신당을 스타 정치인에 의존하는 당으로 만든 것이죠. 

이 기성정당 닮아가기가 진보신당 주도세력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면서 민주노동당에 새겨진 이미지, 즉 친북(대한민국 국가기구의 정통성)[각주:8]과 계급(자본주의와 적대)을 새 진보정당에서 지워버리려 한 까닭입니다. 중요한 쟁점이었지만, 이들의 비판 방식과 내용은 좌파적이지 않고 우파적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진보신당이 촛불항쟁에서 성장한 것은 당시 정치 상황의 모순[각주:9](행동 수준과 이데올로기준의 격차)을 반영한 것이었는데, 진보신당 창당 프로젝트는 행동의 급진화가 아니라 사회의 보수화(우경화)를 예측하고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촛불항쟁이 사그라들고, 대신 이명박의 거듭된 실정 때문에 온건개혁주의가 성장하면서 민주당의 주요 주자들마저 진보와 복지국가를 읊조리며, 친노 세력이 부활해 국민참여당을 창당해 진보세력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마저 최근 우경화했습니다. 큰 바다 같던 오른쪽 공백은 더 큰 세력들이 채우고, 왼쪽 특히 조직 노동자 기반은 스스로 거리두기를 해 온 탓에 진보신당의 입지는 매우 협소해 졌습니다.

그럼에도 조직 노동운동이 그 위력을 한껏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지면서 이들의 이른바 신좌파적 상상력은 성마른 미조직 청년층과 지친 노동운동 출신 활동가들에게 기대감을 일시적으로 줄 순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7. 이런 의미에서 진보신당의 창당기획이던 비정규직당 노선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 무정형의 청년세대 조직화에 성공도 해 봤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융화시키지 못해 곤란도 겪었잖습니까.

종북주의 비판도 대중적으로는 먹히질 않아 분당의 이유 즉, 존재의 이유를 대중적으로 설득하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국회의원을 둘이나 데리고 나왔는데도 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울산에서 민주노동당의 양보를 얻고서야 의원 한 명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민주노총의 영향력이 요즘 약해지면서 노동계급정당이라는 사상이 당장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거공학이나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엄밀한 현실 분석과 전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2008년 세계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 위기는 근본적 시야와 근본적 대안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즉 이 사회의 다수는 노동계급[각주:10]입니다.이명박 정부는 약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진보적 정치 대안의 부재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변혁의 전망, 진보정치의 핵심 과제는 노동계급 정치를 강화
(단결과 투쟁력, 정치의식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단결된 투쟁만이 대자본가들의 권력을 위협하고 양보를 얻어낼 수 있고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열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투쟁에 헌신하겠다는 것 자체는 매우 좋은 일이고, 사실상 차기 대표인 조승수 의원이 말한대로 재벌과 싸우려는 것도 고무적입니다. 진작 이랬어야죠. 사실 재벌과 싸우는 당이라는 기치는 창당 기획보다 진일보한 유일한 것으로 그나마 고무적인 변화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결과를 내려면 계급 정치가 가장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문제는 이것은 또 피하려 한다는 거죠.
진보신당 스스로 강령에서 자본주의의 극복을 말하고 있다면 당내 좌파는 이 문제에서 더 진지해져야 합니다.

고통분담론에 분칠을 한 건강보험하나로 같은 양보론이 아니라 강력한 시장 통제와 소득 재분배(강력한 누진세와 기본소득 등 도입), 부실기업 공기업화를 통한 고용보장 등을 내놔야 합니다.

덧붙이면, 좌파의 대안 강령과 정책은 이런 운동을 고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최근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반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보대연합도 노동계급을 진보적으로 단결시키는 맥락에서 추진돼야 합니다. 이런 과제를 수행할 정치단체가 필수적이겠죠.

이것이 되려면 좌파는 ‘계급’과 ‘사회주의’라는 의제를 복원해야 합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불충분한 태도를 비판하는 데서 멈추는 것은 의회 활동과 노동자 부문의 투쟁을 분리하고 노동운동과 거리 두기 하는 것을 정당화할 뿐입니다.

(10.2 최종 수정)
  1. 당분간은 이번 선거 출마에서 보듯 통합파가 양보해 분열을 막으려 할텐데, 대통합을 주장하는 이들이 자기 당의 분열을 선택하는 것도 모양새가 우스울 수 있는데다가, 각 정당의 통합시 통합파의 리더가 발휘할 영향력과 챙길 수 있는 지분은 진보신당의 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2. 물론 표결 자체는 과반수에 3표를 넘겼습니다만, 원안을 지지한 사람들이 노회찬, 심상정 등 진보신당의 대주주라는 점을 고려해야죠. [본문으로]
  3. 사회당과는 통합을 하자는 독자파도 있죠. 또, 독자파들도 방법론은 분분하지만,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을 포함하는 선거연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4. 그들이 비록 대부분 PD좌파 출신이긴 하지만 말이다. [본문으로]
  5. 종파주의도 반영된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노동운동가들이 민주노총에서 소수파인 까닭에 정규직=민주노총=민주노동당 식의 개념짓기로 비정규직에 집착하는 면도 있다. [본문으로]
  6. 최근 유럽에서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에 맞서는 투쟁의 선두에는 노동계급이 있다. 엊그제 스페인의 1천만 명 총파업이나 프랑스, 그리스의 투쟁은 좋은 사례다. 물론, 이 투쟁들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한국의 노동자 투쟁의 활성화가 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G20 항의시위에 민주노총 조합원이 대규모로 참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본문으로]
  7. 어쩌니 저쩌니 해도 비정규직 문제로 집회도 하고 파업도 하는 유일한 사회세력은 다름아닌 민주노총 조합원들입니다. [본문으로]
  8. 자주파는 원래 북한 정부를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하므로 남한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이 문제에서 많이 변한 듯하다. 원인은 따로 살펴보겠다. 문제는 이 점이 자주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1980년대 민중운동은 북한에 대한 태도와 관계 없이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 기구를 물려받고 미국 제국주의와 결탁해 건설돼 군사독재로 유지돼 온 대한민국 국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남한에서 친북노선 비판이 자칫하면 남한 시장경제 체제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은 게 이 때문이다. 우리는 남북 양 체제에 모두 급진적 비판을 가해야 한다. [본문으로]
  9. 촛불항쟁은 정권 퇴진을 외치고 수도 한복판에서 1백만 명이 참가하는 등 매우 급진적인 대규모 투쟁이었으나 이 운동의 이데올로기는 온건개혁주의 수준에 머물렀다. 거기에는 이명박의 반동 때문에 사람들이 급진화한 데서 오는 효과도 있었다. [본문으로]
  10. 경제 활동 인구의 3분의 2가 임금노동자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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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웹진에 7월초에 청탁받아 기고한 글을 업데이트 수정한 것입니다. 새세상연구소 쪽에서는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정희 신임 당 대표에게 바라는 내용을 써 달라고 청탁했고, 나중에 나온 웹진을 보니 긍정적 의견과 제 의견, 두 개가 실렸더군요.

청탁받은 시점이 7월초니 지금과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그때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민주연합 노선 집착과 그에 따른 우경화가 더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 생각난 김에 전체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 둔 채, 분량과 매체의 성격상 포함하지 못한 더 비판적인 내용과 지난 한달 반 동안 변화된 상황을 보충해 블로그에 옮겨 봅니다. 


민주노동당은 당장 이명박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 진보진영의 투쟁 태세 구축에 중요한 몫을 해야 한다. 좋든싫든 민주노동당이 진보진영의 다수파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6·2 지방선거 참패 후 친서민·중도·실용을 다시 꺼내고 대기업을 비판하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려 했으나 8·8 돌격대 내각 인선으로 그 본심을 드러냈다.

정부는 타임오프 등으로 민주노조 운동의 발을 묶으려 하고, ‘4대강 죽이기’를 계속 밀어붙이려 한다. 한국진보연대를 친북 마녀사냥에 이용해 좌파를 단속하고 민주적 권리도 더 옥죄려 한다.

물론 이것은 경기 회복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집권당의 불신과 분열이라는 정치 위기에 빠진 정부의 몸부림이므로 이런 반동 공세가 저들의 강력함으로 보여주는 징표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가 선전포고를 한 만큼 우리 쪽도 맞설 태세를 갖춰야 한다. 저들의 돌격에 맞서려면 투쟁 태세 뿐아니라 강력한 진보 대안 구축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정책과 세력 모두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의 단결과 강화에 복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이탈하려는 4대강 반대를 강조하거나 PD수첩 불방 사태에 즉각 대응한 것은 괜찮은 대응이었다.

한편, 민주노동당 지도부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투표율 저조 문제는 아마도 당원들(특히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자발적 열의가 예전만 못하다는 지역 활동가들의 호소를 증명한 바일 것이다.

나는 이 문제와 현재 민주노동당의 문제점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본다. 대략 세 가지 문제가 민주노동당이 더는 진보적 대중과 당원, 조직 노동자들에게 영감을 주지 못하는 것과 관계있다고 본다.

첫째, 반MB 민주연합 노선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상충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있다[각주:1].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주대연합 노선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각주:2]

둘째, 민주대연합 노선과도 연관되는 문제인데, 진보정당들이 경제위기 시대에 걸맞는 수준의 진보적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셋째, 민주노동당 분당의 교훈 가운데 민주노동당이 먼저 해결할 몫으로 남겨진 패권주의 문제가 있다. 이 패권주의는 민주노동당의 비중 때문에 진보진영 전체의 단결에도 영향을 미친다.


민주대연합 노선을 당장 폐기해야


우선, 민주대연합 노선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표의 총합이라는 단순 산술 계산(선거공학)에서 보면 계급보다 국민이 커 보인다.

이 관점에서는 민주노동당의 현 지도부는 진보대연합과 민주대연합을 보완관계로 보는 게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대등한 보완 관계가 아니라 진보연합이나 노동자정치세력화(계급) 등이 반MB 민주연합(국민)의 부속물이 된다.

이 말이 실천에서 뜻하는 바는 둘 가운데 민주대연합이 늘 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분을 위해 전체의 단결을 희생할 순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진보대연합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민주대연합 노선으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노골적으로 질주하는 논리적 배경이다. 노골적인 자주파 일부는 (민주대연합을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단결에 기초한 변혁 노선을 소아병적 분열주의로 취급한다[각주:3].

그러나 과연 국민이 계급보다 포괄적인가.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핵심 배경은 1997년 1월 대중파업이다. 이때의 정치적 각성과 대중적 자신감이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그때 의석 1백 석의 국민회의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를 막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법외 노조였고 자신을 대표할 국회의원 한 명 없던 민주노총의 대중파업은 오만한 대통령 김영삼의 대국민 사과와 날치기 철회를 이끌어 냈다[각주:4].

이처럼 조직된 노동계급의 힘은 단지 표수의 총합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 삼성그룹 보스 이건희와 가난한 철거민이 선거에선 똑같이 한 표를 가지지만, 정치·경제·사회적 영향력이 비교할 수 없게 차이 나는 것과 같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분단선이 계급에 있고, 진정한 권력은 계급 관계에서 나온다. 자본가들의 권력 원천은 기업 이윤과 무장력의 독점(국가)이다. 노동계급은 이 이윤 생산과 국가 운영을 실제로 담당하는 존재다. 이 점에서 두 계급은 화해할 수 없는 이해관계를 이루며, 노동계급은 사회를 변혁하고 해방시킬 역사적 잠재력(=잠재적 경제 권력)을 가지게 된다[각주:5].

바꿔 말하면, 노동자들은 계급으로 단결하고 계급으로 행동할 때 (지금은 잠재돼 있지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이미 예전에 개발도상국 수준을 넘어선 국가다. 당연히 산업화가 매우 진전한 자본주의 국가이므로 노동계급이 인구의 다수다. 노동계급 중심성 노선과 계급 단결 전략이야말로 실질적인 힘 면에서, 심지어 득표 면에서도 더 현실적이고 민주적이며 강력한 다수파 전략이다[각주:6]

오히려 단순한 선거 논리에 따른 민주대연합 노선은 이 힘을 억제하게 된다. 이것이 진짜 문제다. 계급 연합인 민주대연합은 첫째, 그 구성원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다르므로 불안정한 동맹일 수밖에 없다. 둘째, 이 불안한 동맹을 유지하려면 누군가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의 지배계급인 (자본가계급의 일부인) 자본가 당들은 결코 희생하지 않으려 한다. 결국 희생되는 건 노동계급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독립성이다.

민주당을 보자. 저들은 이명박 집권 후 복지를 말해 왔지만 부자 증세를 말하지 않고, 4대강 반대를 말하지만 4대강에 찬성한 후보를 공천하며, 이명박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만,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정책(부자 감세와 한미FTA 등)은 반성하거나 철회하지 않았다. 이명박을 핑계삼아 비정규직 악법을 좋은 법이라 호도하기도 한다.

이런 민주당의 이율배반은 기업주들의 당이라는 근본 성격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일부의 기대와 달리 민주당은 사회 변화를 위해 고쳐 쓸 수 없다. 

노동자 진보정당의 지도부가 자본가 정당과 동맹을 고집하면 할수록 노동계급 대중이 독자적으로 싸울 힘을 잃게 되는 이유다. 불필요한 양보와 후퇴를 강요당할 뿐이다. 그래서 이정희 대표의 말과 달리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차이는 “작은 차이”가 아니다[각주:7]. “작은 차이”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있는 것이다. 7·28 재보선 패배는 바로 이 점을 대중이 아직 잊지는 않고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민주당은 5월 MBC 파업을 지지했지만, 선거에 도움 되는 한에서만 그렇게 했다. 노조의 파업 종료 후 보도 투쟁(?) 결정은 민주당이 바라는 바였다. 엔지오가 매개가 된 이 압력을 진보정당들은 추수했다.


결국 현실에서 노동계급 운동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대중투쟁을 강화하는 전략이야말로 진보 개혁 쟁취의 진정한 동력이다. 이것은 낡은 교과서의 반복이 아니고 거친 구호도 아니다. 민주노동당에게 혁명당이 되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 위기 시대에 실질적인 진보 개혁을 성취할 현실적 전략·전술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급 대신 국민’, ‘투쟁 대신 투표’를 말하는 반mb 민주연합 노선은 이 진정한 동력을 파괴하는 재앙의 씨앗인 것이다. 이 점에서 진보대연합도 같은 이름의 서로 다른 버전을 구분해야 한다.

진보대연합도 마찬가지다. 노동계급의 단결에 복무하고 진정한 힘을 발휘하려면 민주대연합 안에서 지본을 높이려는 선거공학적 시도여서는 안 된다.


진보적 사회 변화의 비전을 제시해야


다음으로 경제 위기 시대에 걸맞는 진보적 사회 변화의 비전을 만드는 데에 주력하기 바란다. 여기서도 민주대연합 노선에서 비롯하는 약점들이 문제가 된다.

이정희 대표가 내세우는 ‘수도권과 청년층 기반 확대’, ‘명쾌하고 유연한 진보’의 문구 자체를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이냐다.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는 개별 정책의 진보성에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진보적으로 재편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는 데 있다.

게다가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대에는 정부와 기업주들이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 당장 어렵지 않은 기업조차 만연한 위기가 자신을 덮칠 때를 대비해 비용을 절감해야 하므로 대체로 불황기에는 투쟁이 길고 격렬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진보정당은 대중투쟁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를 통한 정치·사회 지형의 급진화와 원칙이 분명한 가치·이념 논쟁 없이 진보·개혁 청년 세대를 노동계급의 편으로 끌어 올 수 없다.

이 점에서도 민주대연합과 진보와 노동계급의 단결 노선은 상충되는 면이 있다. 단기 연대가 아니라 연립 정부를 염두에 두는 야권연대라면 정책과 노선을 최대공약수[각주:8] 수준에 맞춰야 하므로 목소리를 낮추는 건 진보진영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첫째가 올해 민주노동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지향 부분을 삭제하려 한 시도다[각주:9].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은 더 큰 진보적 비전 제시로 기타 보수정당들과 차별화하길 포기하고, 민주당이 제시한 무상급식 수준에서 멈췄다.

이란 제재에 대한 반대 논평도 그렇다. 이라크 등에서 봤듯 경제 제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이란 제재 반대 논평에는 세계 평화도 인도적 재난에 대한 우려도 없다. 세상에 한국 ‘기업’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게 이유다. 스스로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버리는 논평을 한 것이다.

이번에 당선한 인천의 구청장들은 자치단체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벌써부터 약속한 개혁을 볼품 없게 만들려 하는 듯 보인다. 그와 반대로 중앙 정부에게 재정을 더 내놓으라고 싸워야 할 일이다.

진보정당의 정책 담당들과 국회의원들은 정부 재정 적자가 늘어나는 걸 걱정하지 말고, 공공부문과 복지 지출이 늘지 않는 걸 물고 늘어져야 한다. 이런 비판과 투쟁에 재정 위기를 이유로 집권당과 민주당이 반대하면, 기업과 부자에게 증세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지난해 6월 정책당대회에서 나는 쌍용차 사례를 들며 ‘부도기업의 공기업화’ 요구를 채택하자는 안건을 낸 바 있다. 그때 이정희 대표는 직접 나서 ‘국회에서 통과될 현실성이 없다[각주:10]’, ‘진보정당이 뜬구름 잡는 정당으로 보이면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특단의 위기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다시 해외 매각이 진행되는 쌍용차에 구조조정 조건 없는 공기업화 말고 어떤 고용보장 대책이 있을 수 있는가[각주:11].뜬구름 잡는 건 내가 아니라 지금처럼 위기로 이해관계의 대립이 첨예해진 상황에서 자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진보 개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노동자 양보론을 포함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캠페인 의제[각주:12]를 수용하려는 태도도 우려스럽다. 애초 민주노동당은 보장성 강화만 수용하고, 보험료 인상은 수용하지 않는 입장이었다[각주:13]. 그런데 이정희 대표가 나서서 이 입장을 뒤집으려 한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작은 개혁도 소홀히 하면 안 되지만, 진보정당 아니면 제시할 수 없는 그런 대안사회의 비전이 없다면 진보정당은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의 보완재에 불과한 만년 소수파 야당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패권주의로 우경화 밀어붙여


끝으로, 이정희 대표가 말한 ‘유연한 진보’의 모습은 정작 당 운영에서 드러나야 한다.

지난 2년 동안 당 운영은 일사분란함을 강조하는 쪽으로 계속 바뀌어 왔다. 불가피한 면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분당의 원인 가운데 민주노동당 몫으로 남은 패권주의 문제가 더 심해졌다.

게다가 민주대연합 노선과 우경화는 기존의 당 운영 방식이 민망할 정도로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다.

진보정당의 당 대표란 사람이 자신의 당이 반진보 정권이라고 싸웠던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자들을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말하는데 다수파는 침묵이다.

당은 민주대연합 노선을 집권전략으로 채택한 바가 없는데도 지난 최고위원회와 이정희 대표 등 현 지도부 다수가 ‘민주대연합을 통한 (연립정부) 집권’을 말한다.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 일방 사퇴 건도 어느 공식 의결 단위에서도 결정된 바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제대로 된 해명조차 없다.

일방적 다수결 방침도, 소수파의 어거지도 모두 문제일 것이다. 문제는 현재 당내 다수파는 자신들이 내린 결정도 임의로 번복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럴 때, 소수파가 의견을 반영할 수단이 남아 있는가[각주:14].

진보진영 전체에서 민주노동당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거취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됐다. 신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민주대연합 노선과 우경화 추진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게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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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재보선의 쓰라린 교훈 직시해야



  1.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새 대표와 상견례를 한 자리에서 “민주노동당의 반MB 연대연합, 진보대통합 노선에 그야말로 배타적 지지를 보낸다. 2012년을 앞둔 두 가지 전략적 과제를 수행하는 길에서 민주노총은 제2의 정치세력화, 제2의 노동자 정치운동을 한다는 결의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모순을 일으킬 것이다. [본문으로]
  2. 현재 당분간 전국적 선거 일정이 없고, 진보 양당이 민주대연합 노선을 배제하지 않고 있어서 민주연합을 반대하는 것이 곧바로 대안적 진보연합 건설 논의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3. 민주대연합 노선에 푹 빠지다보니 이젠 초기에 보이던 부끄러움마저 잊었다. 가령 내 기사를 민주노동당 게시판에 올렸을 때 달린 막말 댓글이 한 사례다. [본문으로]
  4. 이 파업으로 김영삼은 완전히 레임덕에 빠졌다.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이 구속된 것도 바로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이 성공한 여파였다. [본문으로]
  5. 달리 말해 자본가계급은 노동계급을 억눌러 지배함으로써만 자신의 지배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자신들의 현실적 권력이 노동계급의 (암묵적이든 아니든) 복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노동계급이 잉여노동 제공을 거부한다면 저들이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현실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되지만, 실천으로 구현하려면 좀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본문으로]
  6. 장기 관점에선 득표력에도 더 이득인 것이다. 진보정당의 득표가 는다고 자동으로 세상이 좋아지는 건 아니며 그래서 선거주의(표 만능주의)에 빠지면 안 되겠지만, 득표의 성장 자체는 진보·개혁 대중에겐 일시적 자신감을 줄 수 있으므로 좋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7. 그 대가는 단지 선거에서 독자 후보를 못 내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책과 정치 노선 자체가 우경화하게 된다. 내가 다음 둘째 제안에서 다루려는 게 바로 이 문제다. [본문으로]
  8. 어감상 최소공배수를 비유어로 많이 쓰긴 하나, 내가 볼 땐 최대공약수가 더 적확한 비유인 듯하다. 100(좌파)과 10(민주당)의 최대공약수는 10이다. [본문으로]
  9. 이 시도는 이정희 대표 체제에서 더 목적의식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온건하게 바뀔 당 강령 개정안은 아마 내년에 개최할 정책 당대회에서 통과될 것이다. 지금처럼 자주파 지도부가 이정희 대표를 계속 추수한다면 말이다. [본문으로]
  10. 여기서 주요 고려 사항은 민주당이 동의해 주냐 였을 것으로 본다. [본문으로]
  11. 정부(산업은행)는 상하이차와 비슷한 성격의 인도 마힌드라 사를 쌍용차 우선 매각 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본문으로]
  12.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시 다룰 것이다. [본문으로]
  13. 진보적 보건의료운동 진영에서도 전 국민 1만1천 원 인상 운동에 반대해 정부와 기업주들의 부담을 늘리는 1백만원 상한제 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본문으로]
  14.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만 10년을 넘긴 당원이지만, 이 당에서 활동하는 게 의미가 있는가 라는 근본적 의문을 품게 된다. 사실 앞서 지적한 최근 민주노동당의 문제점들은 내가 굳이 당원이 아니더라도 마땅히 비판해야 할 문제들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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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복지국가는 양보가 아니라 투쟁으로 가능


오늘(12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보편적 복지와 6·2 지방선거”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각주:1]

제가 볼 때 이 토론회를 특징짓는 주요 쟁점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지금 '개발'에서 '복지'로 사회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이냐 였습니다.
셋째는 보편주의 복지와 선별주의/잔여주의 복지와 관계 문제였습니다.


조원희 국민대 교수는 10년 넘게 급진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린 한국사회에서는 위기를 계기로 진보와 복지 쪽으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니다. 

고양에서 온 엔지오 활동가는 지방선거 공약 공모를 했는데, 예년과 달리 개발 공약은 없고 삶의 질과 관련된 공약이 다수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를 두고 사회자인 이상이 교수는 고양은 중산층 도시이므로 고양의 변화는 중산층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겨레> 이창곤 기자는 최근 <한겨레>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지 정당과 관계 없이 보편 복지를 바라는 여론이 다수였다고 밝혔습니다.(곧 기사로 나온답니다)

올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주요 선거 이슈가 되고, 전면 급식을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인 점과 그래서 민주당까지 나서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변화가 있는 듯합니다.

그동안 10년 가까이 위기의 깊이와 폭이 더 커졌다는 방증이라 봅니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어쨌든 반갑고 힘이 되는 토론이었습니다.

둘째, 재원 문제는 누구나 중요하다고 인정했지만, 이번 선거 공약과 관련해서는 속시원한 해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민주당 발표자(추경민)는 아동수당을 예로 들며, 만1세까지 주는 걸로 공약을 짰다고 밝혔습니다. 재원 때문이죠. 아울러,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내세운 무상급식·무상보육을 하려면 중앙정부가 떠안아야 할 몫이 있는데, 이를 거부할 경우 지방정부로선 난처해 진다고 말했습니다.

진보신당 발표자(장석준)는 역시 재원 문제 때문에 아동수당을 만 3세까지 주는 걸로 공약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건강보험도 보장성을 올리되, 재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를 위해 보험료를 함께 올리는 계획을 내놨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노동당 발표자(고영국)는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12세까지로 하겠다고 했지만, 대신 액수는 적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습니다. 기존 예산에서 조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다만, 제도 도입에 상징적 의미를 더 두자는 차원에서 연령만 과감하게 올렸다는 겁니다.

저는 민주당 쪽의 설명을 들으며, "결국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보다 당선도 되기 전에 한나라당 때문에 하기 힘들다는 알리바이부터 대는구나" 하고 있었는데!! 뒤이어 발제한 진보정당 정책 담당자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더 아쉬운 것은 민주당의 책임회피식 자세를 비판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심지어, 조원희 교수 등이 복지를 주장할 진보정치세력이 그동안 제로베이스에 있었다는 듯이 주장했는데도 반론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두 진보정당은 모두 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누진적인 증세를 해야 한다는 정책을 갖고 있습니다. 4대강 같은 토건 예산 가운데 상당액을 복지 예산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동수당이란 것도 애초에 없던 것이므로 뭐 두 살이든 열 살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닙니다.

제가 우려한 건 복지제도 요구에 접근하는 이들의 관점입니다. 복지 요구에 재원 계획을 함께 내놓는 건 당연히 중요합니다. 이유는 그것이 복지에 드는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를 제시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진영의 재원 계획에는 부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논거와 요구가 포함돼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재분배일테니까요. 그래서 저들이 돈을 댈 여력이 있다는 것, 그 여분의 돈이 엉뚱한 데 쓰이거나 부자들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점을 선명하게 밝혀야[각주:2]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주류 집단(관료/언론/기업주 등)에게 책임(수권능력) 정당으로 인정 받으려는 목적이라면 오히려 진보정당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이리 되면, 요구를 실현할 수단으로 재원 마련을 궁리하는 게 아니라, 있는 재원 안에서 요구를 조정하는 식으로 본말이 전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석준 씨가 건강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강화를 연결하는 설명이 딱 이랬습니다[각주:3].

지금 같은 기업주와 부자들이 금고를 꽁꽁 숨겨놓으려 하고 정부도 재정적자에 민감해지는 경제 위기의 시대에 재원 먼저 걱정하게 되면 제대로 요구를 내걸 수 있을지, 요구를 내걸더라도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앞서 살폈듯이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 조건에서 민주당이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쪽으로 옮겨온 것인 만큼 진보진영은 여기서 상황을 더 급진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한데[각주:4], 진보 정치세력은 더 온건해지는 쪽으로 상황에 적응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인용했듯이, 한명숙, 유시민 모두 집권 시절 무상급식에 반대했던 양반들입니다. 민주당의 정책 실행 의지를 아직 완전히 믿기 힘들기 때문에 무상급식 하나만 봐도 진보정당의 독자적 구실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진보 양당은 오히려 반mb 단일화란 명분으로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는 문제에 다들 걸려 넘어져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이 길로 미친듯이 달려가면서 진보의 단결을 내팽개치고, 진보신당은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면서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 두 당의 따로 놀기와 민주대연합 문제로 진보의 동력이 약화된 거죠.

이런 문제들이 복지가 화두인 선거에서 보편 복지 정책의 선두주자인 진보 양당이 거의 두각을 못 나타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2000년 이후 이번처럼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없는 선거는 처음입니다.

한편, 발제자 중 한 분인 인하대 윤홍식 교수는 보편주의/선별주의/잔여주의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봅니다.예를 들어,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은 보편주의 제도지만, '65'라는 선별 조건을 부과하므로 선별적 보편주의 제도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윤 교수는 보편/선별주의는 조합이 가능하며, 보편주의의 대립물은 선별주의가 아니라 자산조사에 기초해 특정 계층에만 복지를 지급하는 잔여주의 복지라는 겁니다.

잔여주의 복지는 권리로서 복지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굶어죽지는 마라 하고 주는 시혜성 복지 (철학이자 제도)로 오히려 복지의존성(우익들이 말하는 복지병)을 더 강화합니다. 경제적 자활 능력이 생기면 복지 혜택이 사라지니까요.

여기에 '잔여주의'란 용어가 어려워 대중이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다는 이상이 교수 등의 반론 비슷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윤 교수는 선별주의 대응이 효과적일 때도 있는데,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면 대응을 잘못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게 (일반인에겐 그닥 필요 없는) 편의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제가 있습니다.(윤 교수가 말하려고 한 바는 신사회 위험으로 보이는데, 구체적 사례를 들지 않아 그냥 제가 이해하기 쉬운 사례로 들어봤습니다)

고무와 걱정과 유익한 정보를 함께 준 토론회였습니다.

※ 그밖에도 토론해 볼 만한 다양한 쟁점들이 있었는데, 이 한 편의 글에서 다 다루기는 힘들 듯합니다. 늘 그랬듯이 또 한번 미뤄야죠. 출구전략과 보편 복지를 연관짓는 시각도 흥미로웠구요, 복지국가를 사회정책+경제정책으로도 보는 시각도 사회투자론과 연결해 토론해 볼 만한 주제라고 봅니다.

  1. 주최 단체는 참여연대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지역복지운동단체네트워크, 한국여성단체연합. [본문으로]
  2.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란 구호는 이런 정신을 반영한 구호였습니다. 이상이 교수가 이 구호를 진보적 잔여주의 구호라 비판하는 것은 왜곡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이 슬로건을 내걸었을 때 요구한 것은 부유세를 만들어, 보편주의 복지제도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으로]
  3. 이 계획은 국민들이 선 보험료 인상을 결의하자는 겁니다. 그러나 보험료를 올리는데 다수가 동의해도, 보장성을 높이려면 '보험료 인상 결의'를 무기로 결국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보장성 확대를 위한 '투쟁'을 '보험료 인상'으로 대체하려는 게 이 계획의 핵심으로 보이는데, 결국 투쟁이 필요하다면, 이 계획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모순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4. 대중적 지지를 받는 무상급식을 민주노총 등의 투쟁 의제로 삼아 대중 캠페인을 건설할지, 아니면 무상급식보다 더 포괄적이고 급진적 요구를 제출할지 하는 논점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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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레프트21> 독자 연행의 배경 - 진실을 말한 죄?
연행된 김지태 씨의 글: 진실을 알리기 위해, 탄압에 굴하지 않겠다”
독자들이 보내준 응원글 모음: 연행자를 응원하는 <레프트21> 독자들의 목소리
사건 직후 첫 기사: 정부 비판적인 진보 언론에 대한 마구잡이 탄압


7일 강남역에서 <레프트21>을 판매하다가 연행되신 분들이 어제(10일) 밤 연행 47시간 만에 풀려 나오셨습니다.

서초경찰서는 유치장 안에서도 인권 침해를 수차례 저질렀더군요.
반말에 욕에, 변기가 막혀 직원 화장실 좀 쓰는데 빨리 나오라고 욕하질 않나, CCTV도 있는데, 캠코더를 유치장 방 앞에 세워놓고 찍질 않나. 참.

결국 첨엔 사상검증, 선거법 위반 어쩌고 씨부렁 거리더니 막상 조사에선 옹색하게도 '미신고 집회'를 초점으로 질문했습니다.


연행됐던 분들은 모두 오늘(매주 월/금이 정기 거리 판매일) 강남역에 다시 신문 판매하러 나가셨습니다. 오늘 저녁 강남역과 대학로, 신촌역 등 거리 판매대엔 연행 소식 들으시고 일부러 <레프트21>을 사러 오신 분들도 꽤 계셨답니다.(일부에선 사복경찰들이 여전히 판매대를 위협·방해하는 일이 있었다네요)

강남촛불, 구속노동자후원회가 연행된 분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NTM뉴스 김종현 기자 님도 연행 과정을 촬영해서 사건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유치장 안에서는 하루 먼저 잡혀 온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유치장 항의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민주노동당 이상규 서울시당 위원장 님은 면회도 가셨더군요. 그밖에도 수많은 익명의 네티즌과 트위터리안들이 무한RT와 펌으로 응원해 주셨습니다.

풀려나신 분들께 여러 ‘진보·민주 시민’들의 도움을 잘 전해드렸습니다. 앞으로 검찰이 기소한다면, 연행된 분들에게는 특히 이번 응원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기업 광고도 안 받는 독종 진보 언론에게 독자의 성원 만큼, 지지자들이 늘어나는 것 만큼 값진 무기는 없습니다.
새삼 결의를 다지고 말 것도 없이 늘 긴장감과 투지에 넘치는 신문사지만, 그래도 새삼 다시 한번 힘을 얻었습니다.


금요일 밤부터 오늘 낮까지 첫 속보 기사는 6천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경찰이 신경질적으로 문제 삼은 “안보 위기는 사기다”는 제목의 표지 기사도 조회수가 수직 상승했습니다. 오프라인 발행을 하기 때문에 평상시 사이트 조회수보다는 꽤 많은 숫자지요. 그밖에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이 조회수가 2만여 건을 넘었습니다. 트위터 RT는 다 세지 못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트윗은 5월 7일 밤에 올라온 "아까 강남역에서 신문 한 부 샀는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분은 조금만 늦게 그 곳을 지나셨으면 신문을 못 사실 뻔 했습니다. ㅋ

오늘 연행자 중 한 분인 김지태 씨가 아고라에 쓴 글도  순식간에 베스트로 올라갔고, 지금은 조회수가 4천 건을 향하는 군요. 중요한 것은 댓글 가운데,  이번 일로 <레프트21>을 알게 됐다, 한 부 사 보겠다, 볼 때마다 꼭 사겠다, 거리 판매 장소에 찾아가겠다, 1년 정기구독 신청했다 등 물질적 응원까지 해 주시려는 분들이 생겼다는 겁니다[각주:1].

사실, 기업 광고 없는 독립 언론에게는 신문을 구입하고(이왕이면 정기구독) 재정 후원하는 것, 좋은 글을 보내주고 주변 지인들에게 권하는 것, 이게 가장 확실한 지지와 성원 아니겠습니까.


<레프트21>이 좌파 안에서 보이는 영향력에 대면 대중적으론 아직 많이 알려진 신문이 아니라는 점에 비춰보면, 이런 지지와 성원은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권리 침해에 많은 분들이 분노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신문사 사무실은 괜찮냐고 물으셨는데, 사실 신문사 사무실은 평온했습니다. 결국, 일선 경찰서가 합법 정기 간행물의 판매까지 자의적으로 방해할 정도로 오버하는 행태가 많은 이들을 공분케 한 듯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아직은 의도적으로 (합법 간행물을 공격하는) 무도한 도박을 할 정도로 기세가 높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 정도로 궁지에 몰린 상태도 아닙니다.

첫 속보 기사 뒤의 후속 기사를 맡으면서 본의 아니게 주말에 기자들 취재 전화를 많이 받았는데요, ,저도 얼른 취재해서 기사를 써야 했는데도!! 알찬 취재원 구실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노조 홍보부장 시절에 기자 응대 자주 해 봤지만, 간만의 변신이었으니...

중요한 건 적지 않은 기자들이 주말인데도 관심있게 취재해 줬다는 겁니다. 심지어 기대 못한 방송국 기자들도.(당연히 파업이던 MBC 빼고) zzz 글 쓰다 잠들었네요. 분명히 5월 10일 밤에 글을 쓰고 있었는데... 얼른 글 마무리하고 정식으로 자야겠네요. 의자왕은 의자에서 3천 시간도 잔다고는 하던데... 언론 탄압이 워낙 노골적이라 딱히 진보라 하기 힘든 매체의 젊은 기자들도  어느 정도는 적극적으로 다루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각주:2].

사실, 서초서 유치장 인권 침해 문제로 아는 기자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는데 흔쾌히 도움을 주셨습니다. 인권침해 사실 제보에 대한 확인 취재를 통해 정당하게 서초경찰서를 압박해 준 거죠.(캠코더 철수에 저도 5퍼센트 정도는 기여한 걸까요?[각주:3])

시민들과 기자들의 태도를 볼 때,
 천안함 빌미로 안보 정국 만들기, 선거 앞두고 비판 언론 틀어 막기 등 이명박의 언로(言路) 봉쇄 시도는 (우리 편이 아주 멍청하게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계속 실패 중이고, 앞으로도 실패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만만으론 저들을 괴롭힐 수 있을 뿐 그로기 상태로 몰고갈 순 없습니다. 저들을 녹다운시키려면 조직된 저항 행동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를 만드는 데 <레프트21>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싸워야 할 거짓, 써야할 진실이 다시한번 분명해 졌습니다. 대중 저항이라는 들불이 퍼지는 데 진실이라는 불씨가 될 것입니다.

탄압으로 진실을 잠시 가릴 순 있어도, 진실을 없앨 순 없습니다. 우리가 늘 그 증거가 될 것입니다.

<레프트21> 정기구독 신청
<레프트21>에 응원 글 보내기

<레프트21> 정기 거리 판매: 매주 월.금 저녁 7~8시

·강남역 6번 출구 1백 미터 파리크라상 앞
·신촌역 3번 출구 버거킹 앞
· 홍대입구역 4번 출구
·혜화역 4번 출구
·명동 예술극장 앞
·건대입구역 5번 출구

  1. 드라마 '히어로'의 용덕일보와 비교하시는 글이 있던데, 어느 정도 칭찬인 건가요? 기득권에 맞서는 삼류 신문 기자의 활약상 정도만 듣고 이 드라마는 보질 못해서요. [본문으로]
  2. ‘민중의 소리’(5.7)와 ‘미디어오늘’(5.10) 말고는 전통적 인터넷 진보언론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좀 의아하고 아쉬운 점이겠네요. [본문으로]
  3. 암튼, 취재 당하기와 취재하기를 병행하며 산만한 정신 상태를 유한 결과, 처음 사이트에 올린 기사에 코엑스가 서초구에 있다는 실수를 하기에 이릅니다. 바로 고치긴 했지만, 정신 없던 정신 상태와 강북보이 티만 팍 내고 말았네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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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기본소득제도 도입

사람들에겐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단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제도가 그 수단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제도는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누진세를 강화하고 주식과 토지 등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국방비를 줄이면 일정한 수준의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

출처: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에 기본소득제 도입이 추가됐습니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적정 액수의 소득을 국가가 지급하는 제도입니다.주민등록이 된 모든 국민은 개인 통장을 국가에 등록하고 국가는 매달 이 통장에 기본소득을 입금합니다. 이는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소득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지지하는 사람들[각주:1]은 대체로 부자 증세를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내용의 기본소득제도가 도입된다면 소득 하락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와 서민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다.

대기업주와 땅부자, 주식부자들은 일하지 않는 사람에 돈을 주는 건 노동의욕을 떨어뜨려 경제의 생산성을 낮춘다고 말합니다.

지금처럼 실질 실업률이 13퍼센트에 이르고 경제위기를 빌미로 대규모 해고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말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정당화하는 수작일 뿐입니다.

사 실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부자들은 정부의 거품 정책으로 앉아서 돈을 법니다. 부동산 가격이 노동소득보다 빨리 오르면 집을 사려는 월급쟁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재산 손실을 보게 됩니다.

한국의 1백 대 주식 부자들의 74퍼센트가 재벌 2·3·4세들입니다. 이들 다수가 미성년자입니다.이들이야말로 소득을 창출하는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평범한 노동자들 수백 명이 평생 모아도 벌지 못할 돈을 소유합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세계적 차원에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협력적 노동의 기여 없이는 결코 부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업주와 부자들이 이 사회 전체 구성원을 위해 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권리를 보장하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체적 이유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정주부와 어린이 노인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이들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여 사회적 지위를 더 높이고 천대와 차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본소득의 보장은 실업 상태의 노동자가 당장 생계를 위해 열악한 저임금 일자리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신대 강남훈 교수가 기본소득 재원을 계산했습니다. 만 19세까지 30만 원, 만 39세까지 40만 원, 만54세까지 50만 원, 그 이상은 60만 원을 매달 지급하면 현재 인구 기준에서는 1년에 2백15조 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무상 교육․의료 비용을 더하면 총 2백40조 원이 필요합니다.

강남훈 교수는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는 원칙에서 이자와 배당 등 불로소득에 30퍼센트의 소득세를 매기고 토지세와 주식 거래 양도소득세를 도입하자고 말합니다.[각주:2] (한국은 주식 거래 차익에 무는 증권거래세가 0.3퍼센트에 불과함.)

진보 진영의 일부는 이 주장에서 기존 복지제도 일부를 기본소득 재원에 사용하자는 말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소수지만 기본소득 요구가 신자유주의 플랜의 하나인듯 말하는 단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이런 인식은 과도하다고 봅니다.

강 교수의 제안을 보면, 국민연금에 한정해 재원을 돌리자는 것인데, 그것은 국민연금 제도 자체는 개념상으로 기본소득처럼 보편주의 복지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본 성격이 같기 때문에 더 포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데 당겨쓰자는 겁니다. 전 합리적이라 봅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현재 인구의 절반이 소득이 부족해 국민연금 미가입 상태입니다. 국민 절반이 연금을 받질 못하는 것이죠. 평균 소득이 1백50만 원 정도일 때, 이 소득 기준으로 20년을 납부해도 65세부터 월 30만 원을 조금 넘게 받습니다.(물론, 이 정도도 사보험보단 훨씬 높은 급여입니다)

이런 한국의 조건에서 지금 당장 모든 국민에게 40~60만 원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 기존 연금 일부를 돌리는 건 그리 불합리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밖에 고용보험이나 기초생활보장법, 장애연금 등이 좀 중요한 현금지불식 복지제도라 할 수 있는데, 이 제도들은 그 지급액이 생계 유지에 도움이 되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두 제도 모두 수급 자격을 심사하고 부정수급을 감시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며 수급자에게 사회적 모멸감을 줍니다. 기본소득은 조건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제도에 비해 장점이 있습니다.(실업급여는 예외일 수 있겠네요)

물론 일부 기본소득 모델은 이런 제도까지 통폐합하자고 합니다. 이 점은 논쟁거리이며, 전 이 견해엔 반대합니다. 이런 '필요에 따른 지급'이라는 목표는 중요한 것이고, 이에 비춰 이 제도들은 지속돼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실업을 개인의 문제라고 가르칩니다. 신자유주의는 '생산적 복지' 등의 이름으로 노동 여부/의지/능력과 복지를 연계시키려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는 신자유주의적 복지에 저항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편, 기본소득의 존재를 이유로 기업주들이 저임금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모든 계층에 주는 소득제도는 소득 차이를 그대로 가져가므로 소득 재분배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고용 노동자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 거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실업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실 자본주의에서 도입되는 모든 복지 제도(개혁) 안은 경기변동 탓에 후퇴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기존 제도의 비용 이전이나 불로소득 논란에 있는 게 아닙니다.

급진좌파가 개혁 요구를 낼 때, 제도의 완결성이나 (체제 안에서) 실현가능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됩니다. 반대로 첫째, 돈을 어느 계급이 부담하는가를 제기하는가. 둘째, 요구가 노동계급의 의식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가, 셋째, 노동계급의 단결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개혁 요구는 싸워야 실현이 가능하므로 요구의 내용 자체가 이 싸움을 크고 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복지제도를 다룰 때 늘 명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제도의 세부 설계(와 그에 바탕한 실현가능성 판단)는 오히려 부차적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레프트21> 6호 "부자 증세로 기본소득 쟁취해야"  ⓒ사진 제공 권문석 사회당 기본소득위원장

이 기준에서 한국 좌파들의 기본소득 요구를 보면, 재원을 자본가들이 져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모든 이에게 지급하지만, 그 돈이 부자들의 누진세와 불로소득에 매긴 세금에서 나옵니다. 과정 자체가 소득의 재분배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점과 관련해 덧붙이면, 주식과 부동산 등 투기로 번 불로소득은 경제의 다른 부문에서 생산한 부를 약탈한 것에 불과하므로 불로소득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는 것은 정당합니다.

기업들에게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공급하려 사회와 개인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보육에서 교육, 복지를 실행합니다. 노동자들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올린 기업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업들에게 줘야 할 것은 '해고의 자유'가 아니라 복지 비용 부담 의무입니다. 

이런 점들에서 분명하다면 기본소득 요구는 꽤 쓸 만한 요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혁신적인 요구가 단지 대화와 설득으로 채택되진 않을 것입니다. 이 제도 하나가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 질서를 근본에서 바꾸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요구는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를 어느 정도 거부합니다. 기본소득 지지자가 많아지는 것은 시장 논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폭넓게 단결해 싸운다면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권력자들인 대기업주들과 벌일 싸움입니다. 특히, 경제 위기 시대에는 대자본가들이 사회 전반에 경제 위기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에 조직 노동자들의 저항이 매우 중요해 집니다. 기간 산업 등에 고용된 '조직 노동자들'이 사회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지위를 갖는 이유입니다.

기본소득 요구는 이 점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 규모가 커 실업자가 늘어나는 때 조직 노동자들과 미조직 노동자, 실업자 등이  단결해 싸울 수 있는 요구입니다.

경제 위기 시대에 <레프트21>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중행동의 요구로 기본소득 요구를 포함시킨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1.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단체로는 사회당과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있고, 학자로는 한신대 강남훈 교수와 시립대 곽노완 교수 등이 있습니다. 이들 사이엔 약간 색조 차이가 있습니다. 기본소득 지지 단체와 개인들은 기본소득네트워크 (http://cafe.daum.net/basicincome)를 구성해 정보를 공유하고 활동합니다. 제가 취재한 기본소득 국제학생대회도 이 네트워크가 주축이 돼서 개최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2. 강남훈 교수가 재원 마련에 적용한 주요 기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① 모든 소득에 과세한다. ② 근로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지금대로 유지. ③ 불로소득(이자·배당·증권양도소득 등)은 30퍼센트 과세. ④ 환경 관련 세금 통합해 환경세로. ⑤ 재산세, 종부세 등은 토지세로 통합해 3% 과세. ⑥ 250조원 정도 추정되는 지하경제 철저 과세. ⑦ 단계적으로 연금을 기본소득으로 전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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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민주노동당 10주년 기념 학술대회 - 진보정당의 미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민주노동당이 10년 됐습니다. 요샌 이래저래 위상이 떨어졌지만 한때 지지율이 20퍼센트에 육박한 적도 있었고, 2000년대 초반에는 많은 진보 대중들의 기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분당 때를 빼면 개인적으로 제일 강렬한 에피소드는 바로 창당 첫해에 있었던 총선이었습니다. 그 때 전 울산 북구 선거운동에 자원해서 내려갔습니다. 울산 북구는 현대자동차공장이 있어 전설의 투사들이 인구의 다수입니다. 그래서 권영길 전 대표가 출마한 창원(을)과 함께 유일하게 당선 가능 지역으로 본 곳입니다.

그러나 현대차 조합원들을 볼 새도 없이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정자동이라는 한적한, 그러나 풍경은 끝내주는 어촌에서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원래 한나라당이 전통적으로 강세인 지역이었죠. 까막눈인 어촌 할머니들 대상으로 기호5번 대신 손가락 다섯개를 꼽아주며 왼쪽에서 다섯번째 칸이라고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개표 날, 출구조사 방송은 창원은 낙선, 울산 북구는 민주노동당 당선으로 나왔습니다. 새벽2시까지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 후보를 앞섰습니다. MBC 메인 방송에서 당선 인터뷰를 하고, 한겨레신문은 선거운동원들이 모두 만세삼창을 하는 '1면용' 사진을 찍어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3시에 제가 선거운동을 했던 마지막 투표소에서 대역전(패)극이 시작됐죠. 5백 표차 낙선!! 충격 두 배, 민망함 두 배, 분함 두 배 였습니다.

그 민주노동당이 10년을 버텼습니다. 원내 정당으론 7년째입니다. 그러나 지금 희망이 되질 못합니다. 분당은 계기인 것이고, 가치와 세력, 전략에서 대안을 만들지 못했습니다.(최근엔 정치 위기에 시달리는 이명박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10년 만의 최대 탄압입니다. ☞관련기사)

그래서 국제 진보정당운동의 경험을 돌아보며 전략 노선을 재검토할 주제가 창당10년 토론회에 반영된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유럽 사회민주주의와 라틴아메리카 21세기 사회주의 실험.

차베스가 대표하는 21세기 사회주의 모델은 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과 비교해 훨씬 더 급진적이고 투쟁적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온건한 의회 정치 전략인 유럽 사회민주주의 지지 대 급진적 대중행동을 함께 추구하는 라틴아메리카 21세기 사회주의 지지로 분명히 갈렸습니다.

둘 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토론자는 없었습니다. 다만, 정성진 교수가 유럽에서도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약화를 딛고 급진좌파정당들이 성장했다는 점을 들어 유럽 좌파에 온건 사회민주주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고, 그 점에서 전체 상황도 나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토론 내용은 위의 관련 기사 링크 참조)

한국에서도 사회민주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정치단체 등에선 제3의 길을 많이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현지 진보진영에서 워낙 평판이 안 좋아 국제적으로도 인기가 형편없습니다. 그러나 이날 유팔무 교수는 한국이 복지 등 여러 면에서 유럽보다 열악하므로 제3의 길 수준의 사회민주주의라도 추구하자는 게 결코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전 그런 심정은 공감이 갑니다)

노동계급과 기층민중 정체성도 버리고, 의원 입법활동이 중심이 도는 국민정당으로 거듭나자는 겁니다. 노동자 경영참가 제도 같은 게 도입되면, 투쟁도 필요 없다는 겁니다. 저는 유 교수 주장을 보면서 사회민주주의야말로 '소망'의 정치, '공상'의 전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 교수는 집권이야말로 '선'(善)이라고 했지만, 집권이 개혁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말로만 서민 개혁을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조차 우파들에게 탄핵의 수모를 겪고, 결국 집권 3년차에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말하기에 이릅니다. 완전 항복선언이었던 거죠.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은 대기업의 소유주와 대주주 들입니다. 그리고 이 이너써클 출신이거나 이 집단의 후원을 받는 정치인, 행정관료, 사법관료, 군부의 장성 들이 폐쇄적 주류 지배계급 집단을 이룹니다. 

그들의 힘의 원천, 즉 자본주의의 절대반지는 대기업들의 이윤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합니다. 지금처럼 기업 이윤(수익성)이 충분하지 않을 때 저들은 노동계급에게 양보하고 개혁과 변화를 제공하기는커녕 그나마 과거의 개혁들을 되돌리려 합니다.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 기업 수익성에 해가 된다고 보면 정부도 괴롭힙니다. 그래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부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한때 집권 도미노를 일으켰으나 지금은 모두 왜소한 상태로 밀려나 있습니다. 애초부터 시장권력에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차베스 정부는 그 반대였죠. 사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1999년 차베스를 시작으로 유럽처럼 중도좌파들의 집권 도미노가 벌어졌습니다. 여기서도 중도좌파 정부 무력화 시도가 벌어졌죠. 

베네수엘라 지배계급 주류도 차베스 정부를 3번이나 전복하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차베스 개혁을 지지하는 대중운동이 이를 막아냅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쿠아도르 등에서 활발히 벌어진 라틴아메리카의 21세기 사회주의는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도 지배계급 주류가 후원한 이명박 정부가 집권해 각종 반동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 정치 위기 속에서 저항의 싹을 자르려 합니다. 심지어 중도우파 정당인 민주당조차 심심치 않게 거리 정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유팔무 교수의 제3의 길 찬양이나 온건한 의회정치 전략은 개혁을 성취하기엔 무력합니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21세기 사회주의 전략도 전진이 쉽지 않습니다. 지배계급의 권력 원천에 더 진지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날선 토론이 진행된 만큼이나 앞으로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주제입니다. (틈틈이 민주노동당 10년을 쟁점별로 돌아보는 글을 쓰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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