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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딸 의혹: ‘공정’과 ‘정의’보다 계급 불평등이 문제다

검찰이 8월 27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사모펀드 투자 관련 의혹, 딸의 입시 특혜 의혹 수사를 명목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박근혜 정권을 수사하며 얻은 국민적 인기를 배경으로 일약 검찰총장이 된 윤석렬이 이 수사를 직접 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다음 달 자신들의 직속상관이 될 수도 있는 (차기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정권 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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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기사이고, 애초에 개인 사정으로 좀 늦게 나온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몇 가지 단상을 추가해 본다.

1. 어제 간담회를 봐도 서민층 청년들을 허탈하고 열받게 만든 문제에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는 본질을 인정했고, 그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은 회피했다.
2. 기레기 얘기가 나오는데, 오후 1시에 공지받고 3시30분에 시작했는데, 오히려 언론사들이 예고되지 않은 임의의 퍼포먼스를 생중계까지 해 준 것이야말로 조국 측 편의를 너무 봐 준 게 아닌가? 진행도 심문식 질문(문답을 반복 진행하며 답변에서 문제점을 끄집어내거나, 답변에 대한 반박 증거 제시하기)이 불가능해 뭔가를 끌어낼 수 없고 해명자에게 유리한 방식이었다.(활동가라면, 대의원대회 같은 데서 질의 시간에 집행부를 추궁하는 질문을 하면서 부딪치는 그런 문제.)
3. 조국 관련 기사가 수십만 건이고 황교안과 비교해 부당하다는데, 적어도 그 절반은 조국 옹호일 텐데 과장스럽다. 그만큼 현 정부가 중요한 인물로 부각시켰기 때문 아닌가? 사실 황교안과 비교하는 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4. 오히려 과소대표되는 것은 수백만 노동계급·서민의 허탈감과 분노다. 공식정치에서든 언론에서든 이들의 불만이야말로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5. 요즘 기레기/가짜뉴스 담론은 기성매체들의 계급적 보수성에 대한 비판 측면보다는 매체 환경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새 매체와 기성 매체 간, 즉 정치세력 간 경쟁에 (필요에 따라 선호하는 매체의 신뢰도를 높이려고) 활용되는 성격이 더 강한 듯하다. 물론 야밤에 문 두들기는 그런 행태를 옹호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조국 논란의 본질이 거기에 있는가?
6. 계급 문제로 조국을 비판하는 건, 출신 따져 사람들을 단정하는 천박한 노동자주의(기계적 유물론)가 아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강남좌파’는 바로 마르크스의 사상적·실천적 동반자 엥겔스였다. 여기서 강남좌파 얘기가 나오는 건 계급 문제가 드러나면서 위선도 동시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천박한 개념 사용은 유시민처럼 서울대·고려대 학생 집회를 특권층의 불평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입장들이라고 본다.(그러면서도 권력자 편에 서서 마스크를 문제삼는 야비함을 보라.)
7. 문재인이 취임사에서 말한 기회의 평등은 경쟁에 참여할 기회의 평등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다른 측면에서 근본적인 기회 평등을 말한다. 자이실현의 기회가 평등하려면 그것을 위한 자원(과 자원 배분 과정)에 접근할 권한 자체가 평등해야 한다.(그것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일부다.) 서민층 사람들이 조국 딸 문제가 합법이라도 분노스럽다고 하는 건, 본능적으로 이 점에서의 불평등을 문제삼는 것이다.(의식하든 못하든, 뭐라 표현하든) 그러니 조국을 옹호하는 이른바 진보적 자유주의 명사들이 이 점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또는 직시를 회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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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공무원 노동자들의 연금(후불 임금)을 대폭 깎았다. 국회가 법으로 특정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이런 폭거가 어딨나. 8:1 헌재랑 233:0 국회가 다른 게 뭐 있나. 다들 같잖다.

결국 청년들에게 일자리 1백만 개가 예전보다 더 나쁜 일자리가 됐다. 앞으로 공무원, 교사들은 국민연금 개선 어쩌고에 눈길도 돌리기 싫어질 것이다. 그걸 누가 뭐라 하랴? 그들은 국민연금 재원을 위해 자기 임금(공무원연금)이 깎인 사람들인데.
이런 결과가 계급 내 연대인가?
참 꼴좋은 '사회연대전략'이다.

“생산성 향상에 협조해 임금을 올린다.”
“임금을 깎아 고용을 보장받겠다.”
이런 주고받기를 어떻게 평가하든, 양보하는 주체, 그리고 그 양보의 대가로 무언가를 돌려받는 주체가 동일한 집단이다.
그런데 공무원연금 깎아 국민연금 상향하는 것은 누구는 양보하고 누구는 혜택받는 프로젝트다. 주는 주체와 받는 주체가 다르게 설정돼 있는 것이다.
참으로 고약한 ‘사회연대전략’이다. 

노동운동 상층이 국가를 매개로 자본과 대타협을 이루는 조건으로 노동계급 일부를 고립시켜 속죄양 삼는 것. 이것이 경제 위기 시대의 사회연대(노사정대타협)전략의 본질이고 핵심 내용이다.

사회연대전략의 구현 방식은 이렇다. 노동계급이 소득(시장임금)을 양보(임금 삭감, 보편증세, 보험료 인상 등)하는 대신 선한 국가(세금)를 매개로 한 사회임금(복지)을 늘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세금은 소득 있는 모든 계급이 내는 것이므로, 이 프로젝트는 ‘사회연대’인 것이다. 즉, 사회연대전략은 계급과 국민을 조화시키려는 개혁주의 프로젝트의 한 버전이다.

그 모델로 알려진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도 국가경쟁력(노동생산성) 협조를 매개로 수익성 높은 부문의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해 두 마리 토끼(계급 간 연대 = 계급 타협, 계급 내 연대 = 동일임금)를 모색한 것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당연히 국가적 차원의 노사정 협약이 필수적이다. 

이 제도는 임금 억제 기능 때문에 자본 다수의 지지를 받았으나(고수익 자본 일부는 임금 통제가 숙련 노동력의 유인(노동력의 수요 쪽 경쟁력)을 제약한다고 보고 부정적이었음), 경제 침체기에 노-자 양쪽 모두의 압력 속에서 파탄났다. 

논리상으론 선양보를 통한 사회개혁을 목표로 하나, 결과적으론 자본의 이간질에 힘만 실어주고 노동계급 분열시켜 사회개혁의 동력만 약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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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더 정치적으로 돼선 안 되는가



4월 20일 4·16가족협의회,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주최로 경찰 탄압 규탄과 시민 피해 상황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4·16연대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소속 단체이기도 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들은 이 기자회견을 지지해 여럿이 참가했다. 그런데 기자회견 직후 시민단체 활동가라고 밝힌 한 사람이 이들에게 ‘운동권이 많이 와서 외부 세력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유가족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운동의 중심에는 유가족들이 있다. 운동이 지속돼 올 수 있었던 것도 유가족들이 단호하게 진실 규명을 요구한 덕분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광범한 ‘외부 세력’의 연대가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정부와 우파는 유가족과 광범한 ‘외부 세력’을 분리시키려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시위에 정권 퇴진 구호가 나오거나 정치 단체나 사회운동 단체들, 노조가 참여하는 것을 두고 “불순 세력의 개입”, “외부 세력에 의한 정치적 변질”이라는 식으로 비난해 왔다. 익숙한 상투어들이다. 

특히 16일, 18일 집회 후에는 경찰이 강경하게 나오면서 우파 언론의 마녀사냥식 공세도 거세졌다. 아마 그 시민단체 활동가도 여기에 위축돼서 그런 발언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보며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이 깨달았듯이, 안전 문제조차도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다.

노동계급과 서민 대중에게는 이런 사고가 일어날 확률도 높고, 사고가 나면 구조를 못 받을 확률도 높다. 계급 간에 불평등하게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대형 사고는 대부분 작업장에서 일어난다. 이윤을 만들고 착취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공장, 건설 현장, 백화점, 철도나 선박 등등. 이런 공간들 대부분이 노동자나 서민 대중이 일하거나 이용하는 공간들이다. 이런 곳들에서 기업주들은 비용을 줄여 이윤을 늘리려고 노동자를 쥐어짜고 안전 투자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을 위해 국가는 안전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해 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오래된 건물의 수직 증축을 허용하고, 유해화학물질 취급 시설에 대한 관리 기준을 완화하는 등 규제 완화라는 돌팔이 ‘항암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안전 산업 육성’을 대안이라고 내놨다. 이는 위험에 대한 대비를 상품화한다는 것이고, 구매력이 떨어지는 노동계급과 서민 대중은 더 많은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기업의 이윤 추구만이 아니라 국가가 이를 도우려고 지속적으로 안전 규제를 약화시켜 온 것과도 관계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은 기업의 책임만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까지도 따져 묻는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운동이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를 제기하고, 박근혜 정부와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특별법 시행령 건에서도 보듯 박근혜 정부 스스로 진실 규명 방해 주범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참사 이후 이윤 획득을 가장 앞세우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의문과 각성이 커져 왔다. 유가족들 스스로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이런 모습을 보여 줬다.

‘이윤보다 인간’이 우선인 사회를 만들려면, 더 많은 정치적 각성이 필요하고 정치적 운동과 정치적 조직이 필요하다. 정부와 우파의 협박은 이런 식의 사태 발전을 막으려는 것이다.

탄압 협박과 외부 세력 개입 운운은 분노한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이간시키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계급적 각성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좌파들이 세월호 참사에 적극 나서는 것은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다.

운동이 정치적으로 비치면 ‘역풍’이 분다는 수세적 태도가 도움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노동자 연대> 147호 | 발행 2015-04-27 | 입력 20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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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정치 방침 논쟁

어떤 노동자 정치가 필요한가



<노동자 연대> 139호 | 발행 2014-12-08 | 입력 2014-12-06



진보·좌파 다원주의는 단결을 위한 고육지책


처음 직선제로 치러지는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핵심 의제는 단연 박근혜 정부의 고통전가 파상 공세에 맞설 투쟁을 어떻게 조직할 것이냐였다. 민주노총 정치 방침이 중요한 쟁점이긴 해도 부차적인 쟁점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후보들의 정치 방침 정책에는 큰 차이가 확인됐다.

특히, 민주노총의 상층 지도부층이 연합한 전재환 후보 조는 진보대통합 정당을 만들어, 이를 지렛대로 정권 교체기에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하자고 주장했다. 이 경우에는 진보대통합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필수적인 일이 된다.

그러나 노동계 진보정당들이 사분오열해 노동운동 안에서 분열ㆍ갈등하는 상황이다. 한상균 후보 조와 허영구 후보 조 등도 진보대통합 계획 자체에 부정적인 견해를 대변했다.

△ 자본가들의 고통전가 공세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해 파업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노동자 정치다. ⓒ이미진


민주노총 지도부가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일이 가망도 없고 현명하지도 않다고 보는 이유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무리해서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결정하려 하면 노동조합의 단결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노동조합은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 노동조건을 공동으로 방어하려는 조직이니 말이다.

한상균 후보 조와 <노동자 연대>가 주장한 대로 민주노총이 진보ㆍ좌파 다원주의를 정치 방침으로 채택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 이유다.

진보ㆍ좌파 다원주의는 부르주아 정당들을 배제하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이 여러 진보정당과 좌파 정치단체 사이에 지지 대상을 열어 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동 정치는 의회와 정당 문제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정치 방침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민주노총의 투쟁 노선과도 연결되므로 진보ㆍ좌파 다원주의 안에서도 어떤 정치를 민주노총이 추구하는 것이 옳은지 하는 문제는 남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 개념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정치는 정당 문제를 포함하지만 그것으로만 환원되지는 않는다. 국가권력을 획득하거나 사용하는 문제, 국가기관의 통치 행위에 대응하는 문제, 정치적 견해ㆍ사상ㆍ신념 문제, 노동자 계급 전체의 쟁점과 단결 문제 등이 모두 ‘정치’에 포함된다.

이렇게 보면,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법안 제정, 정리해고 요건 완화 같은 법 개악 저지 등을 위해 파업과 시위를 수단 삼아 대중투쟁을 벌이는 것도 ‘노동 정치’다. 기업주들의 ‘철밥통론’ 같은 이간질에 맞서기, 정규직ㆍ비정규직의 단결을 위해 주장하고 투쟁하기도 정치적 문제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정치 개념은 협소하다. 또한 그들은 정치와 경제 영역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고 의식적으로 분업을 추구한다. 노조는 작업장 문제(‘경제’)를 맡고, 정당은 선거와 의회 협상(‘정치’)을 맡아야 한다고 본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정치 방침 문제가 개혁주의 정당 건설로 곧장 환원되는 것도 이런 분업주의의 발로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상층 지도자들이 흔히 ‘정치(투쟁)로 해결하자’고 말할 때는 사실 사회적 타협(노사정위원회, 정당을 매개로 한 의회 협상 등)이나 사회적 타협이 가능한 정권을 세워서 노동 현안들을 해결하자는 뜻이다.

전재환 후보 조가 내세운 정치방침과 전략 노선이 전형적으로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2015년을 준비기로,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6~17년을 투쟁기로 설정했다.

사실 진보 대통합 → 야권연대 →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이 구상은 최근 몇 년 동안 민주노총 상층 지도자들의 방침이기도 했다. 결국 정치로 해결하자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연대해 정권을 바꿔 노동 현안을 해결하자는 말이었다.

이런 전략은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소심함과 투쟁회피주의와 결합돼 노동자 계급의 독립적 이익을 지키는 전투적 투쟁을 기피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 선거에서도 전재환 후보 조의 계획도 당면 투쟁 과제를 회피하는 계획이라는 정당한 비판을 받았다.

총ㆍ대선이 있었던 2012년이 최근의 전형적인 사례다.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권 교체에 기대를 걸고 전략적 야권연대에 ‘올인’하며 선거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본 대중투쟁 건설에 소홀했다. 그러다가 총선 결과가 시원찮자 그나마 공언했던 총력 투쟁 계획마저 흐지부지됐다.

그 결과, 초기에 기세를 올렸던 언론 파업, 금속 작업장 투쟁들이 혹독하게 탄압받았다. 주목 받았던 쌍용차 투쟁에 대한 연대도 더 확산되지 못했다. 그해 총·대선에서 박근혜에게 연달아 패배한 것은 어느 정도는 노동운동 상층 지도자들이 자초한 세력관계 때문이기도 했다.

지난해 말 철도노조 파업 탄압과 민주노총 경찰 침탈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즉각 대중적 항의투쟁을 조직하지 않고 ‘정치권’(심지어 새누리당 김무성까지 나선) 중재에 의존했다. 결국 대중적 공분이 크게 일었으나 조직되지 못해 투쟁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따라서 지금 노동운동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정치’ 자체가 아니라 보수적으로 투쟁의 잠재력을 억누르는 상층 지도자들의 온건한 ‘개혁주의’ 정치다.


노동 정치의 진정한 독립성


민주노총 정치 방침은 첫째, 노동자 ‘계급’의 정치라는 출발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회는 계급으로 분단돼 있고, 이 계급 분단선이 이 사회의 근본 분단선이다. 계급연합을 추구하는 포퓰리즘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말이다.

불가피한 경우에 일회적ㆍ부분적 야권연대를 할 수 있다 해도, 연립정부 추진 같은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진하려고 노동자 계급의 독립적 이익을 유보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둘째, 노동자 계급 고유의 힘, 즉 작업장에서 자본주의 이윤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을 발휘하는 것도 노동 정치의 중요한 수단이다.

예를 들어, 진보 정당은커녕 대변할 의원 한 명도 없었던 1997년 1월, 민주노총은 대중파업으로 정리해고 법제화 등 개악을 막아 냈다. 민주노총이 정치 파업으로 노동자 계급 전체를 위해 행동한 것이다. 

이 파업 동안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한국 정치의 주역이었다. 2013년 말 철도 노동자들이 민영화 반대 파업으로 박근혜에 맞선 가장 강력한 야당 구실을 했듯이 말이다. 의회의 정치 협상은 노동자 정치에서 훨씬 덜 중요한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또한 작업장 안팎에서 계급적 단결을 추구해야 파업 같은 수단이 실질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부분 파업으로 진행되는 현대중공업 노조 파업이 진정으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을 벌여야 한다.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내국인·이주 등의 차이로 노동자를 이간질하고 차별과 분열을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와 억압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정규직 양보론을 함축한 사회연대전략이 정치 방침으로 부적절한 이유다. 이 점에서는 허영구 후보 조와 좌파노동자회가 불안정노동자를 사회 변혁의 주체로 간주하거나 노동당 지식인들이 ‘포섭된 노동, 배제된 노동’ 식의 구분을 하는 것도 약점이다.

이들 모두 작업장 파업과 그것을 위한 단결의 중요성을 경시한다. 이런 입장들은 아무리 좌익적 언사로 포장해도 계급적 단결을 추구하는 데서 장애가 될 뿐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큰 경제적 힘과 조직력을 보유한 조직 노동운동이 앞장서 민중의 호민관 구실을 하도록 고무하고 촉구해야 한다.

셋째, 진보정당들이 전략적 야권연대를 염두에 두거나, 투쟁을 고무하기보다 협상이나 민주당에 의존하며 불필요한 양보를 하려 할 때, 노동운동이 정치적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조는 총선과 대선 선거 방침 같은 소시기 정치 방침에도 적용돼야 한다.

이것이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이 ‘정치조직’인 정당에게서 독자적이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둘 다 대중조직이고, 노동조합도 정당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계급의 부분을 대표한다.

독립성의 진정한 쟁점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가 다른 계급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 모두에 적용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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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현장에서 싸워야 한다, 

그리고 거리로도 나와야 한다




이윤이 창출되고 분배되는 산업 현장에서 투사들이 팔짱 끼고 있을 수만은 없다.


5월 28일에 일어난 서울 지하철 3호선 도곡역 방화 사건은 시사적이다. 사망자만 1백92명이 발생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사건이었다.


달랐던 것은 비상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한 노동자들의 존재였다.


마침 현장에 있던 서울메트로 노동자가 신속하게 초기 화재를 진압했다. 상황을 파악한 기관사와 도곡역 역무 노동자들 역시 일사분란하게 상하행 열차 운행을 중지시키고 안내방송을 하며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반면, 2003년 대구에선 기관사의 미숙한 대처뿐 아니라 서로 보완해 상황에 대처할 인원 자체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 사례는 평소에 작업장을 잘 파악하고 있고, 효과적인 매뉴얼에 따라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고 충실히 훈련한 노동자들이 충분히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이런 조건에서는 아무리 못해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각종 민영화 중단과 작업장 안전 확보, 인력 충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이 필요하다.


이런 요구들을 내놓고 각 작업장에서 싸우는 노동자 투쟁이 소중한 이유다. 물론 이런 투쟁은 거리의 항의와 병행돼야 한다.



노동자 투쟁이라는 대안이 추상적인가



세월호 참사가 던진 자본주의 체제의 우선순위 문제는 그동안 “돈보다 생명”, “이윤보다 안전”을 외쳐 온 노동자운동의 정당성과 보편성을 보여 줬다.


노동운동이 주력해 온 철도와 의료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철폐, 작업장 안전 등은 보통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과 떨어져 있지 않다. 이런 요구들은 모두 이윤 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것들이다.


노동자들의 이런 요구들은 사회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한다. 예컨대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의료 민영화를 막아 내고 일자리를 지켰을 때 공공의료를 방어할 수 있고, 화물 노동자들은 적정 운송료를 보장받을 때 과적, 과속의 위험으로부터 공공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그러려면, 거리 집회에 참가해 항의할 뿐 아니라 작업장에서 노동계급 고유의 투쟁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은 정치 위기를 심화시키고 이윤 우선 정책을 후퇴시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여러 진보정당들이 이런저런 안전 규제 강화 정책을 6ㆍ4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대부분 필요한 것들이다.


문제는 그것을 실현할 진짜 힘을 가진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추모와 항의가 정치적이면 안 되는가



정부와 우파는 세월호 참사 항의 시위에 정권 퇴진 구호가 나오거나 노동운동이 참여하는 것을 두고 불순한 의도로 추모 분위기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번 참사에서 (조직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노동계급의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듯이, 안전 문제조차도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다. 이윤 체제인 자본주의가 낳은 참극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과 가난한 대중에게는 이런 사고가 일어날 확률도 높고, 사고가 나면 구조를 못 받을 확률도 높다. 자원을 어디에 먼저 더 많이 배분할지는 노동계급에게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세월호 참사로 이윤 지상주의 시스템이 정당하냐라는 사회적 물음이 제기됐다.


이런 이유로 한국 사회의 지배자들인 대통령과 재벌, 고위 관료, 집권당(부차적으로는 제1야당도)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안 듣거나 듣는 척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사회 운영 시스템에 도전해야 하고, 진상을 파헤쳐 기업들과 박근혜 정부의 관련자들과 구호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윤을 우선해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들이 해결돼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 의식과 운동, 조직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야말로 박근혜와 우파에겐 재앙이다. 그래서 항의자들을 이간시키려는 것이다. 조삼모사식 행정 조직 개편이나 특정 제도 찬반 같은 문제로 공적인 논쟁을 제약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주범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해결의 주체로 나서는 위선과 뻔뻔함을 자칫 용인해 줄 수 있다. 


우파의 협박에 위축돼, 진실을 외면한다면 계속해서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수십 년간 반복돼 온 대형 사고들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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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매도와 ‘순수 유족’론

저들이 두려워하는 계급적 분노와 박근혜 책임론




청와대 대변인 민경욱(이 자는 과거 국내 정치에 관련한 정보를 미국 CIA에 제공했다는 의혹이 있는 자다)은 “순수 유족” 운운하며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농성을 매도했다. 가짜 유족 쇼를 했던 정권이 가증스럽게도 ‘순수 유족’을 운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이윤 체제의 우선순위가 노동계급 사람들과 그 자녀들을 대거 희생시킨 사건이다. 


그래서 계급적 공분이 크다. 이번 참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비정치적으로 여겨졌던 안전 문제가 계급과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우파의 협박은 계급적 각성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분노한 노동계급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에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은 매우 ‘정치적’일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는 대정부 분노가 커지는 것도 시위 운동이 커지는 것도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적반하장격 협박을 통해서 분노한 사람들을 이간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 책임론은 단지 대통령이어서 도의적 책임을 지라는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의 원인 중에 이 정부도 포함된다.


박근혜야말로 (안전, 건강, 환경 등에 관한) 기업 규제를 “쳐부술 적”, “암 덩어리”라며 ‘규제 완화를 위해 전쟁을 치르자’고 ‘정치 선동’을 해 왔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최초로 재난관리 예산을 줄이고 있다. 화물결박 점검 완화도 박근혜가 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므로 이 시스템의 현재 최고위 통치자인 박근혜를 향해 (퇴진이든 무엇이든)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이 경우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위해서라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 죄인’이라는 식의 추모에 머물고 만다면 진정한 악을 제거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집회에서 정치적 구호와 주장이 나오면 ‘역풍’이 분다는 수세적 태도도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


세월호 참사를 이루는 선박 전복과 구조 방기의 원인들이 모두 정치적인 문제들이고, 더구나 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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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첫날 이미 피해자 가족들 사이에서 ‘강남 (부촌의) 아이들이었다면 이렇게 하겠냐’며 분통 가득한 하소연이 나왔다.


그토록 수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이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한 달을 보내며 분노한 것도 이 사건에 대한 계급 본능적 직관 때문이었다. (좌절감, 모욕감, 원통함, 분노 같은 모든 감정들)


박근혜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 계급 본능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경제에 도움 안 되는 사회 분열’을 각별히 강조한 까닭이다.


경쟁자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이윤을 얻어야 하는 기업주들은 다수의 안전을 위한 비용과 노력을 아까워한다. 기업들과 우선순위를 공유하는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돈 안 되는’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애시당초 관심과 의지가 없었다. 


그들은 달리 가진 것 없어 자녀가 유일한 ‘재산’이고 삶의 낙인 노동계급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도 없었다.


진실


사건 초기에 해경 관리는 사고 해역의 물살이 세서 해경 구조요원들의 희생이 우려돼 잠수부대 투입을 못했다고 했다. 


‘양성 비용이 (적어도) 수천만 원 들어간 구조요원들의 생명을 담보로 할 만큼 이 승객들이 값어치가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이에 국가 관료들과 기업주들 그 누구도 ‘그렇다’ 하고 명령하지 않았다.


이것이 노동계급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무슨 거대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물어야 할 정도인, 진실의 알맹이다.


이런 우선순위 문제는 다른 자본주의 나라의 재난 사고에서도 거듭 드러났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허리케인 카트리나, 런던 패딩턴역 열차 사고 등등등등)



※ <노동자 연대> 126호 게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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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던 ‘맑시즘2010’이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주엔 <한겨레>에 단신으로 행사 개최 소식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행사 참가를 권유하거나 후원을 받으려 소개할 때, “맑시즘이 도대체 뭐냐”, “왜 맑시즘이라고 이름을 바꿨냐” 하고 물어보십니다. 아마도 한국에선 아직도 법적으로 껄끄러운 문제를 안고 있는 ‘맑시즘’을 행사 명칭으로 쓰는 게 신기하신가 봅니다.

워낙 유명한 연사들과 솔깃한 주제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고 오래 된 행사기 때문에 단 한 명도 순전히 행사 이름 때문에 참가하기 싫다는 분은 보질 못했습니다.

올해는 2년 만에 잘 아는 한 노조에 찾아가 후원과 참가를 권유했는데요, 예전에는 그냥 후원해 주셨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찾아가서인지 이것저것 물으시다가 “맑시즘을 한마디로 설명해 봐라” 하고 반농담 반진담으로 대답을 강요하시더군요.

저는 맑시즘=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이 집단적 힘으로 스스로 해방하자는 사상이라고 답했습니다.(그래서 진짜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소련과 북한을 사회주의로 볼 수 없다는 양념을 덧붙여서요)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를 분석해 위기의 메카니즘을 밝혀내려 노력하는 것은 단지 학술적(학문적 호기심) 동기에서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노동계급의 집단적 자기해방이라는 이 근원적 목표을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정치·경제적 잠재력을 파악해 이를 현실로 옮길 전략과 전술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마르크스주의 연구와 실천에 깔린 근원적 동기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늘 ‘실천에 도움이 되는 이론’, ‘이론에 바탕한 실천’을 추구하고, 그 이론은 수백 년 계급투쟁의 역사(경험을 일반화한 이론)와 오늘날 노동계급의 의식과 투쟁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쟁점을 다루는 생생하며 풍부한 사상과 실천의 전통입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자들은 누구일까요.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계급을 가장 넓게 정의할 때 기준은  ‘생계를 위해서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쉽게 말해 인구 전체를 구분하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가족까지 모두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압도다수를 차지합니다.
노동계급 가족의 일부로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학생과 실업자), 다양한 이유로 노동력을 판매하는 게 어려운 사람(전업 주부와 아동, 노인, 일부 장애인, 차별 받는 소수자들 등)도 포함하니까요.

우리나라 노동자들을 1천5백만여 명으로 추산하는데, 이들에 가구당 평균 가족수 2.8명을 곱하면 4천2백만 명에 이릅니다. 물론, 이보다는 조금 못 미치겠죠, 부모자식이 모두 노동자인데, 자식이 아직 가구 독립을 하지 않았다면 중복계산이 될테니까요. 어쨌든 우리는 넓은 범위의 노동계급이 한국 같은 산업화된 사회에서 압도다수라는 건 대충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엄밀하게 보려면 좀더 좁혀 봐야 합니다. 실제 경제 활동에서 계급으로서 대립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마르크스가 분석한 계급투쟁의 실질적인 행위주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인 이건희의 손자가 직접 노동과정을 통제하고, 노조 탄압을 지휘하며, 정치권 로비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간단하게 이들의 구성을 경제활동인구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데, 통계청 자료를 보면 그 수가 2천5백만 명 정도 됩니다. 이중 고위임직원이 30여만 명이고, 전문가로 분류되는 일부 상층 전문직을 제외하면, 1천5백만 명 정도가 임금노동자로 볼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자영업자가 4백만여 명, 농민이 2백만 명이 조금 못 되는 걸로 나타납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계급의 경제적 힘은 자본주의의 시작이자 끝인 기업 이윤 활동(생산과 판매, 유통)을 실제로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나옵니다. 이들이 이윤 활동을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 발전은 자본을 독점시키므로 노동자들도 집단으로 모여서 노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그 힘에 있지만, 암튼 산업국가들에선 인구상으로도 다수파라는 거죠.(마르크스주의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 매우 민주적인 사상인 겁니다~) 

튼, 노동자들의 경제적 힘은 주요 작업장이 파업을 할 때 잘 나타납니다. 현대차 공장에서 파업을 하면, 파업 참가자들의 파업기간 동안 임금 총액보다 수십수백 배 많은 돈이 손실을 봅니다[각주:1]. 철도 같은 운수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원료와 출근 노동자들 수송까지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칩니다.

파업 때 흔한 경제 손실 비난은 거꾸로 그 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에서 얼마나 큰 구실을 하는지 또 평소에 얼마나 많은 잉여노동을 기업주들에게 제공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노동자들은 조중동이나 정부가 이런 비난을 하면 앞으로 억울해 할 게 아니라 자랑스러워 해야 합니다. 그런 중요한 사람들에게 이따위 대접을 하냐고 큰소리 칠 일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개인으로는 이 힘을 발휘할 수 없고 노동과정의 집단성 때문에 집단으로만 이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계급으로서 이들이 정치권력을 잡고 경제질서를 바꿀 때 자본주의의 사적 성격을 분쇄하면서도 사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힘이 있는 겁니다.

그 결과, 노동계급은 자기 자신을 해방할 뿐 아니라 다른 피억압대중들을 해방시킵니다. 노동계급이 진지하게 자본주의 체제를 해체하는 데 도전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을 “보편적” 계급이라고 불렀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면, 자본가들은 실제로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노동자들에게 다 시키면서 그 힘을 이용한 세상의 운영과 지배는 자신들이 독점합니다. 물론, 노동계급의 힘이 센 곳에서는 대의제 민주주의 형태로 조금 권력을 개방하기도 합니다. 물론 비혁명적 노동계급 진보정당들은 그 과정에서 많이 순하게 변합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법과 제도, 군대와 경찰을 통한 억압과 함께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기 때문입니다.[각주:2]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계급(과 피억압대중)을 분열시켜 약화키는 각종 차별과 천대, 억압의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분열 시도에 맞서 노동계급을 단결시켜 혁명적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성공한 투쟁과 실패한 투쟁의 경험(조직과 이념)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에는 녹아들어 있습니다.(노동계급을 억압하는 데 이용된 스탈린주의나 노동계급을 대신하려는 마오주의에서는 이런 교훈을 찾기 힘듭니다) 

추상적 가치나 원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의 피와 땀이 얼룩진 역사 속에서 역사 발전의 일반적 경향을 찾아내려 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역사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이론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돌아보기는 그래서 이론(분석과 일반화)을 경시하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 점에서 ‘맑시즘2010’의 많은 주제들이 당장 노동운동과 연관이 없어 보여도 사실은 노동계급이 삶과 투쟁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이럴진대, 맑시즘2010이 노동계급 문제를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노동운동의 당면 과제들을 중요하게 다뤄야 합니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사회 변화의 주역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진보포럼 맑시즘은 단순 학술행사가 아니므로 조직 노동운동과 그 안의 선진 활동가들이 하는 실천적 고민을 다루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진보포럼 맑시즘에서는 노동운동의 쟁점 토론은 물론이고, 늘 당시 최전선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참가해 강연도 하고 연대의 장을 만들어 왔습니다. 2007년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 때는 비정규직 투쟁 사례 발표 토론이 인기를 끌었고, 행사 마지막 날엔 문화공연과 후원주점을 결합해 대형 행사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엔 개막식에 쌍용차 가족대책위 대표가 눈물 쏙 빼는 연설을 해 주셨고, 참가자 가운데 신청을 받아 쌍용차 지원 집회를 다녀오기도 했구요, 2006년 개막식에는 KTX 비정규직 위원장이 감동적인 연설을 하셨습니다. 하종강, 김진숙 선생님들도 단골 인기 연사이십니다.

올해 맑시즘 2010도 다섯 개의 강연이 ‘노동계급과 투쟁’ 항목으로 준비돼 있습니다.(맑시즘2010 웹사이트의 연사/주제/시간표 메뉴에서 주제 소개로 들어가시오.)


김진숙·하종강 선생님의 강연은 무조건 추천입니다. 저도 여러번 강연을 들었는데요. 특히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싶은 초심자 분들께 특강추(특별강력추천)요. 다루는 대상에 애정이 넘치면 쓴소리도 달게 느껴집니다. 그게 생생함과 분명함과 더불어 두 분 강연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가슴을 열고 들으면 이 분들이 알아서 웃기고 울리고 합니다. 그래서 눈물콧물 흘리면서 듣다 보면 가슴에 묵직한 희망과 열정이 남습니다. 

정병호 씨가 다루는 주제도 마르크스의 계급이론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께는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앞에서 제가 수박겉핥기로 다룬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어조가 강약 변화가 적어 조금 졸리게 할 때도 있지만, 찬찬히 듣고 있으면 말 하나하나가 다 교과서입니다[각주:3]. 아주 가끔 섞어주는 농담과 그때 씨익 날리는 웃음이 매력적인 연사입니다.

나머지 두 주제는 좀더 전문적입니다. 당면 전략 과제들을 다루는 건데요[각주:4]. 패널 토론이라는 게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노동운동의 전략 논쟁은 노동운동 안의 대표적인 급진좌파들이 모여서 하는 토론이라 흥미로울 듯합니다.

사노위를 대표하는 박성인 씨는 메이데이 출판사 대표도 했고 옛 <현장에서 미래를> 잡지에서 이론과 정세분석 글을 주로 쓰던 노련한 활동가이며, 박준형 씨는 공공노조의 활동가로 수년간 활동하고 계십니다. 전지윤 '님'은 무조건 추천[각주:5]입니다. 제가 볼 때 명료한 단어 선택이 정말 최곱니다.

다함께는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그동안 정치적 노조운동을 당면 노동운동의 상(想)으로 제시해 왔는데, 이것이 사회진보연대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론이나 사노위의 변혁적 노동운동론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며 들어보는 게 토론의 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공공부문 선진화 관련 토론은 제목만 봐서는 따분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2008년 위기에 긴급 재정 투입으로 각국 정부들이 대응했기 때문에 재정 뒷받침으로 일어난 경기 회복과 정부의 재정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 재정위기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시대 매우 중요한 고리가 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와 노동운동을 결합해 고민하는 분들은 아마 피해가기 힘든 주제일 겁니다. 

조상수 씨와 정종남 씨는 공공부문 주제로 맑시즘에서 이미 패널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조상수 씨는 공공부문 노동운동을 오랫동안 해 온 베테랑 활동가입니다. 정종남 씨는 쌍용차 파업 등에서 노동운동단체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으며 활동해 왔기 때문에 이론과 결부된 깊이있는 주제를 현장감 있고 흥미롭게 다룰 수 있는 능력자입니다. 

이 글을 흥미롭게 읽으신 분들이라면 맑시즘2010에서 새로운 만족을 얻을 거라 생각합니다. 맑시즘2010에 관심과 기대를 품고 오시는 분들이라면 그냥 그 장소에서 얼굴만 스쳐도 정겨운 동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 이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바,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주장의 한 증거입니다. [본문으로]
  2. 사실 사병들과 말단 경찰은 대부분 노동계급 청년들에서 충원하므로 그 존재 자체가 노동계급의 분열을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한편에선 노동계급이 굴종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상품물신성 효과도 있다고 마르크스가 지적했는데, 중요하지만 그 자체로 너무 방대한 내용이므로 여기서는 그냥 패스~ [본문으로]
  3. 그래서 졸린가? [본문으로]
  4. 이 주제는 초심자들이 많이 선택하지 않을 듯하고, 초심자가 아닌 분들은 제가 뭐라 하든 신경 안 쓸테니 추천 글 쓰기가 좀 난처하군요. [본문으로]
  5. 사이에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넣어서 읽으시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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