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규명의 적들에게 또다시 배신당한 세월호 유가족들



<노동자 연대> 135호 | 발행 2014-10-06 | 입력 2014-10-02


박근혜는 9월 30일 각료회의에서 ‘야당의 발목 잡기 때문에 국정과 경제 살리기가 표류한다’고 했다. 특별법 타협 불가는 물론이고 단독 국회도 불사하라는 메시지를 새누리당에 전한 것이다.


바로 그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박영선은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완구와 3차 합의를 했다.


합의 내용은 ‘여야 합의로 특별검사 후보군 4인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어려운 인사는 배제하고, 유족 참여는 추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박영선은 야당 몫의 추천권에 유가족의 의사를 반영하겠다고 하지만, 이렇게 뒤통수만 치는 사람들을 어떻게 믿겠는가.


유족 참여는 보장하지 않으면서, 진실 규명에 적극적인 인사는 (중립성을 추구한답시고) 배제할 근거를 만들어 놨다. 정권의 압력에서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성역 없는 수사를 하길 바라는 유가족과 지지자들에게 합의문이 ‘최악의 공수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족대책위는 이를 거부하기로 했다. “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 특검 후보 추천에서 배제되어야 할 주체는 여당이지 유가족 대표가 아닙니다. … [합의문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특검의 범위를 정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9월 30일 가족대책위 기자회견문)


사실, 가족대책위는 “‘진상조사위원회 내에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라는 주장을 완화[해서라도] … 어떻게든 합의에 이르고 싶”어 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를 배신할 절호의 기회로 악용했고, 이는 또한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자신감을 키워 줬다.


권영국 변호사의 말처럼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 여부가 특검의 독립성과 실효성이 실제로 담보되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 될 것”(<한겨레>)이었는데도 말이다.



유가족 음주 시비에 구속영장 청구? 이건 마녀사냥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조직을 총동원해 세월호 유가족 때문에 민생이 파탄 난다는 식의 흑색 선전을 해댔다. 이것이 먹히는 데에는, 유가족을 정략적으로만 이용해 온 새정치연합의 무능과 위선이 도움이 됐다.


결국 경찰은 가족대책위 전(前) 임원들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쌍방 폭행이냐, 아니냐’로 상호 진술이 엇갈리고, CCTV 화면에서도 불분명한 점이 있으며, 도주 우려도 없는 경미하고 흔한 음주 시비 사건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괘씸죄이자 여론몰이를 통한 가족대책위 압박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안타깝게도 세월호 참사 일반인대책위도 가족대책위와 반목하고 사실상 여권에 유리한 언행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야비한 책략으로 ‘강요된 타협’을 이끌어 내려 한 것이다. 야합 이후 압박은 더 거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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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넉 달 반]

‘진실 파묻기’와 ‘친기업 경제 살리기’는 동전의 앞뒷면



세월호 참사의 감춰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진다면, 기업들과 국가 기관(국정원 포함)들의 부패와 무책임도 드러날 것이다. 민영화, 규제 완화 등과 연관된 유착과 무책임성도 드러날 것이다. 구조 지휘 책임을 내팽개친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이 밝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7월 30일 재보선 승리 이후 세월호 참사 진실 파묻기와 ‘친기업 경제 살리기’로의 국면 전환에 올인해 왔다. 마치 유가족이 경제 살리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 호도했다. 8월 26일 경제부총리 최경환, 29일 국무총리 정홍원 등이 나서서 경제 살리기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영산대 한성안 교수가 구체적 수치를 들어 반박했듯이, 세월호 참사와 경기 위축은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말하는 ‘민생’은 평범한 노동자와 서민의 생계를 뜻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기업 이윤 등 부자들의 수익을 가리키는 기업주들과 그 정치인들의 코드명이다. 그래서 박근혜가 안달하는 ‘민생’ 대책은 카지노와 영리 병원 허용, 크루즈산업 육성 등 기업주 돈벌이에 관한 것들뿐이다.


박근혜는 심지어 이번 일을 “재난재해 보험상품 개발 촉진 … 안전 산업 육성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안전’ 부문 민영화 등 재난을 본격적으로 상품화ㆍ시장화하자는 것이다. 8월 12일 내놓은 ‘제6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료 민영화 등 이윤과 시장 지향적 정책들로 가득하다.


바로 그런 정책들이 세월호 참사의 일부 원인들이었다. 참사를 낳은 지옥문을 더 크게 열어젖히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사고가 나든 말든, 구조를 하든 말든 보험 상품만 많아지면 되냐”며 울분을 토한다. 도대체 보험 가입을 안 해서 애꿎은 목숨이 가라앉았다는 말인가.


이처럼 노동계급 자녀들 구조에는 관심도 없던 정부가 기업주들 구조에는 전력을 다한다.


이런 방향 전환을 위해 박근혜는 경찰력을 이용해 민주주의도 더 억압하려 한다. 박근혜는 지난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습격한 강신용을 새 경찰청장에 임명했다. 그는 8월 25일 취임식에서 “도로 점거 [같은] … 불법 행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에는 사전에 경찰력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우선순위


결국 세월호 참사 넉 달 반 동안 우리가 목격한 것은, 이윤 경쟁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노동계급 사람들의 목숨과 안전은 전혀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속에서 이 우선순위를 바꿀 수 없다고 선언하며 지금의 야비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재ㆍ보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최대한 밀어붙여 보겠다는 의도이다. 체제의 위기를 강조해 정치적 위기를 단속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경제 살리기’ 기치는, 특히 박근혜가 “의회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부디 경제활성화와 국민안전, 민생안정을 위한 핵심 법안들을 이번 8월 임시국회에서 꼭 처리해[야 한다]”고 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진영 내 자유주의ㆍ개혁주의 정치세력들 ― 체제의 우선순위에 근본적으로 도전할 의사와 의지가 없는 정치세력들 ― 을 겨냥한, 특히 ‘장외투쟁’을 겨냥한 압박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당연한 요구다



독립적 진상 규명 기구에 수사권ㆍ기소권을 달라는 요구는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이 법안 자체는 사회 주류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협이 함께 만든 것이다. 법학자 수백 명도 법리상으로든 사법제도상으로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의회 제도를 채택한 국가에서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한국 같은 경우가 오히려 흔치 않는 경우다. 검찰이 법무부장관 직속 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소권 요구가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반대 논리는 정권의 보위가 걱정된다는 말의 가증스런 앞가림일 뿐이다.


권력과 자본의 외압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구성된 ‘독립적 진상 규명 기구’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수사해서 문제라는 비난도 옳지 않다. 


새누리당은 ‘자력 구제 금지 원칙’을 운운하는데, 피해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에 따른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고, 수사권과 기소권은 진상 규명을 위한 것이므로 유가족들의 요구는 자력 구제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자력 구제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학살당하던 민중이 국가권력을 봉기 등으로 심판하는 혁명적 자력 구제는 정당하다.)


오히려 (사고 원인의 일부인) 규제 완화와 구조 방기의 책임을 나눠 져야 하고, 조사 대상이 돼야 할 박근혜의 충복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수사 대상인) 피의자가 수사권을 갖겠다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비문명적인 야만이다.


결국 저들이 거부할수록 진실과 책임 규명의 알맹이가 통치자들의 부패와 무책임을 밝히는 문제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적 진상규명 기구가 꼭 필요하고, 이 기구가 설립된 뒤에도 엄청난 방해 공작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진정한 ‘책임 규명’을 위해서는 정권과의 (정치적인) 정면 대결을 감수할 태세를 갖춘, 지금보다 더 강력한 대중투쟁이 필요하다. 조직 노동운동이 중추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 <노동자 연대> 133호에 실림. http://wspap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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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넉 달 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에 

조직 노동자 계급이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단식 46일째 만인 8월 28일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단식을 중단했다. 진상 규명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김영오 씨가 단식을 중단한 건 “여당하고 유가족하고 대화하는데 진전도 없고 … 장기전이 될 것 같아서”였다( ‘김현정의 뉴스쇼’).


정부와 우익의 음해 공작이 노모의 건강과 둘째 딸 사생활까지 위협하는 것도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는 “[진도 체육관] 이틀째부터 정부가 나를 밥 먹는 데까지 계속 따라다녔다”며 정부의 통제 시도도 폭로했다.


그러나 “단식을 풀었다는 것 자체가 극한 대치를 누그러뜨리고 타협의 물꼬를 트는 측면이 있[다]”며 국회 협상에 기대를 걸자는 자유주의적 진단은 자의적인 것이다. 


바로 그런 해석을 우려해 김영오 씨는 단식 중단 기자회견 도중 가족대책위 대변인에게 문자를 보내 “문재인 의원 등 단식 중인 의원들에게 국회로 돌아가라는 것이 장외투쟁 중단하시라는 게 아니고, 단식이 아니라 또 다른 방법으로 힘을 모아 달라는 뜻”이라고 거듭 밝혔다.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된 진실 규명 법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여전히 뻔뻔하다. 단식 중단이 자신들의 면담 등 소통 노력 때문이란다. 가족대책위는 곧바로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축했다. 새누리당과의 면담은 예상대로 별 무소득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진실 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국가정보원이 김영오 씨 주치의를 불법 사찰한 일도 들통났다. 심지어 박근혜는 세월호 생존 학생들의 면담 요구도 외면했다. 생존 학생들은 자신들이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했다”고 말한다. 눈앞에서 구경만 하던 해경들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적반하장으로 박근혜는 참사 원인의 일부인 친기업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도리어 확대하려 한다. 노동계급 사람들과 그 자녀들의 생명 구조를 외면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모자라, 살아남은 유가족과 나머지 노동계급의 삶도 유린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김영오 씨가 병원에 실려간 6일 동안 동조단식자가 전국에서 약 3만 명에 이르렀다. 


8월 27일 금속노조 경기지부가 파업 후 광화문으로 집결해 ‘김영오 조합원 생명살림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홈플러스노조는 29일 파업을 하고 세월호 특별법 촉구 집회를 하고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조직 노동운동이 더 적극 나서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고 참사 책임자들 모두에게 크고 작은 책임을 묻는 일은 정의를 세우고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과정이다.


또,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주의 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작업장 안전, 민영화, 핵발전 등의 문제도 의제화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조직 노동자들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에 내 일처럼 나서야 한다. 실제로 내 일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이런 참사 위험에 노출돼 있다.


문제의 원인이 이윤 경쟁에 있는 만큼 파업이라는 수단이 사용돼야 효과적이다. 파업으로 자본가들의 이윤을 공격해야 지백계급에게 최대한 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내 일처럼 분노한 상황에서 하루 총파업 정도가 전혀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금속노조의 28일 상경 파업 대오 다수가 민주노총의 광화문 집회로 오지 않고 귀향한 것은 아쉽다. 파업과 세월호 문제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다. 특히 그날 주력 대오였던 현대차와 기아차지부 집행부들의 협소한 경제주의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 <노동자 연대> 133호에 실림. http://wspap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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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정홍원을 유임시킨 것은 더는 인사 문제에 발목 잡히지 않고 정권 존재의 이유를 찾겠다는 뜻이다. 우파 지배자들이 합심해 박근혜를 민 것은 이런 친기업 반노동 공세를 잘 하라는 뜻이었다.


지금 한국 자본주의에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친기업 경제 살리기를 위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의료와 철도 등의 민영화, 공공부문 구조조정, 공공서비스 요금인상, 전교조를 비롯한 노동운동 탄압 등.


박근혜는 내각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부패하고 우파적인 인물들을 청와대 수석들로 임명하면서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비롯해 여러가지 국정과제들을 목표로 삼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수석실에서부터 중심을 딱 잡고 개혁의 동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각종 민영화, 규제완화, 임금과 복지 삭감 계획을 담고 있다. 따라서 나머지 장관 후보들의 임명도 강행하려 할 것이다. KBS 보복 인사도 준비할 것이다.


박근혜가 정치적 난관 속에서도 이런 공세를 펴는 것은 첫째,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주들을 위한 경제 살리기, 즉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성공하려면 조직 노동운동을 제압해야 한다.


둘째, 미국 힘의 약화가 친미 통치자 안에서 동요와 안보 위기감을 낳는 듯하다. 이 경우에도, 통치의 이완을 막아 보려면 역시 노동운동과 좌파를 단속해야 한다.


행정법원 재판부가 지난해 가처분 판결 때 논리를 뒤집어서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도 이런 맥락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 종합하면, 원래 그런 놈들이 위기감 속에서 더 칼날을 세우고 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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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인사 참극

강점이 약점이 되고 있는 박근혜의 우파 기반



※ 인사 참극이 박근혜의 정치 위기로 발전할 조짐마저 보인다. 



집권 2년차에 우파적 친정체제를 강화하려던 박근혜의 개각 시도가 반발에 부딪혀 부분적으로 좌절됐다. 안대희에 이어 문창극까지 인사청문회 문턱도 못 넘고 낙마한 뒤, 두 달 전에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을 유임시키겠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핵심 기반이 부패 집단임을 자인한 셈이다. 특히 정홍원은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대통령 대신 사퇴의 총대를 멘 것이었다. 이를 물렀으니 이 정권은 세월호에 어떤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천하의 몹쓸 정권이 된 것이다.



이번 인사 참극에서도 문제는 박근혜의 핵심 기반인 주류 엘리트 집단의 유달리 심한 부패였다. 표절한 논문으로 교수가 되고, 자기가 자기를 교수로 임명하고, 심지어 군대에서 군복무는 안 하고 석박사 학위를 따러 대학원에 다닐 정도로 부패한 특권층들이었다.


이런 자들을 앞세우려 했던 박근혜식 ‘국가 개조’가 1퍼센트 특권층을 위한 사회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점들과 특히 친일 언행이 노동계급과 보통 사람들의 커다란 반감을 샀다. 7ㆍ30 재보선을 염두에 둬야 하는 집권당 안에서 문창극에게 자진 사퇴하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반대로 우파 일부는 문창극 사퇴가 ‘좌파 선동에 밀리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양쪽 눈치를 모두 봐야 하는 난처함 속에서 박근혜는 지명 철회 대신 장막 뒤에서 문창극에게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 문창극이 사퇴하고서야 박근혜는 우파를 의식해, “앞으론 부디 잘못 알려진 사안들에 대한 소명의 기회를 청문회에서 줘[야 한다]”고 무마하려 했다.


이 모든 과정은 박근혜 정부의 위신만 떨어뜨렸다. 인사 개편은 우파 정부답게 경제 위기 고통전가 드라이브를 본격화하겠다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출발은커녕 운전수도 못 태우고 한달을 허비한 셈이 됐다.


이 때문에 신경질이 난 우파는 ‘KBS가 [문창극의] 교회 강연을 짜깁기 왜곡보도 한 것이 문제’라며 속죄양 삼기를 했다. 인사청문회 제도도 문제 삼는다. 박근혜도 지금 차기 KBS 사장에 더 우파적인 노동탄압 전문가를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의 강점은 그가 ‘우파의’ 여왕이라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 평범한 대중의 반감은 바로 그 점에 있다.


강점이 곧 약점인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박근혜의 그 유명한 ‘유체 이탈 화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파 공세를 펴려다가 반발이 크면 아랫것들 잘못인 양 살짝 후퇴했다가 다시 도발하는 방식을 반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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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세월호 참사를 역이용해 

민영화, 규제 완화, 노동조건 후퇴 추진하려 한다



세월호 참사의 배경에는 자본주의 우선순위에 따른 계급 차별 문제가 있다.

이윤지상주의가 노동계급 사람들의 생명을 내팽개친 것이다.

그래서 한국 자본주의의 최상위 통치자로서 박근혜는 책임전가로 일관해 왔다. 오히려 ‘이번 사고로 소비심리가 위축돼선 안 된다’며 기업주들 돈벌이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박근혜가 5월 19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마음에도 없는 눈물을 짜냈다. ‘국민 검사’로 불리던 안대희를 새 국무총리로 임명하고, 국정원장 남재준 등을 교체하기로 했다.

계급적 분노가 정권 책임론으로 번져 대중적 저항으로 발전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뒤로는 경찰 탄압도 늘었다.

세월호 참사 항의 시위 참가자 수백 명을 연행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시신을 탈취하고 지도부를 구속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교사선언에 징계의 칼을 들이대고 심지어 세월호 유가족을 미행하다가 들켰다. 해경은 해체한다더니 육지경찰은 더 바빠만졌다.

박근혜가 밝힌 “국가 개조”도 기만이다. 국가 불신 정서를 역이용해 연금 삭감 등 애먼 하위직 공무원을 때려잡으려 한다. 규제 완화와 민영화, 노동조건 후퇴 등을 알맹이로 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공공부문 ‘정상화’도 가속화하겠다고 한다. 이런 친기업 정책들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인데도 말이다.

고위 관료들의 퇴직 후 재취업을 규제한다는 것도 조삼모사다. 박근혜는 대신 관료직 자체에 더 많은 ‘민간’(사실상 기업 경영자들이나 친기업 전문가들)을 끌어들이겠다고 했다. 정경유착을 합법으로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박근혜의 국가 개조는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개조(구조조정)다. 이것은 우리 삶을 위협하는 이윤지상주의를 국가 전반에서 더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자를 그대로 두고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운운할 수 있겠는가!) 

새 총리 내정자 안대희는 2003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수사 때 유독 박근혜만 무죄로 풀어 준 전력이 있다. 관피아 척결한다는 내각 개편에 법피아 전관예우로 특혜 받아 온 인물을 앞세운 것이야말로 국민 우롱이다.

대국민 담화 이후 국면을 전환하고 위기에서 빠져나가려는 박근혜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은 이미 박근혜 퇴진 투쟁을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지금이야말로 박근혜 정부를 더 깊은 정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도록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힘을 동원해야 할 때다.

 



속죄양 만들고 국면 전환?

그러나 박근혜에게 커다란 책임이 있다

 

박근혜는 말로는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면서도 진짜 책임은 철저히 외면했다.

박근혜는 “해경의 구조업무가 실패”라며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말했다.

“구조·구난 업무는 사실상 등한시하고, … 해양안전에 대한 인력과 예산은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경의 구조 업무는 박근혜가 ‘해체’했다. 올해 초 정부의 예산 삭감 지시로 각 지방 해양경찰청의 수색구조계가 없어졌다. 이 부서는 ‘인명 구조, 수난구호명령, 선박 좌초·전복 대처’ 등을 맡고 있었다. 현 정부야말로 역대 최초로 재난관리 예산을 줄여 왔다.

박근혜는 “적재중량을 허위로 기재한 채 기준치를 훨씬 넘는 화물을 실었는데, 감독을 책임지는 누구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박의 과적과 화물 결박 현장 점검을 문서 제출로 하게 해 감독 기능을 없앤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다. 선장의 선박 안전관리 보고 의무도 없앴다.

박근혜는 “기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탐욕적으로 사익을 추구하여 취득한 이익은 모두 환수 …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기업의 사익 추구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들을 “쳐부술 원수”라며 ‘전쟁을 벌이자’고 선동한 것은 바로 박근혜다.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피해 보상을 회피한 삼성을 감싸며,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공약을 저버린 것도 박근혜다. 독재 통치의 유산으로 차지한 정수장학회, 영남대재단 등에서 사익을 위해 노조 탄압을 일삼아 온 것도 바로 박근혜다.

 

기업 이윤도 분노의 대상이 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이윤지상주의 시스템이 정당하냐라는 사회적 물음이 제기됐다.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철저한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고, 이윤을 우선해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던진 자본주의 체제의 우선순위 문제는 그동안 “돈보다 생명”, “이윤보다 안전”을 외쳐 온 노동자투쟁의 정당성과 보편성을 보여 줬다.

노동운동이 주력해 온 철도와 의료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철폐, 작업장 안전 등은 모두 이윤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문제들이며, 보통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과 떨어져 있지 않다.

노동자들은 이런 투쟁에서 승리했을 때 진정으로 사회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 예컨대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의료민영화를 막아내고 일자리를 지켰을 때 공공서비스를 방어할 수 있고, 화물 노동자들은 적정 운송료를 보장받을 때 과적, 과속의 위험으로부터 공공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그러려면, 거리 시위에 참가해 항의할 뿐 아니라 작업장에서 노동계급 고유의 투쟁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은 정치 위기를 심화시키고 이윤 우선 정책을 후퇴시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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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매도와 ‘순수 유족’론

저들이 두려워하는 계급적 분노와 박근혜 책임론




청와대 대변인 민경욱(이 자는 과거 국내 정치에 관련한 정보를 미국 CIA에 제공했다는 의혹이 있는 자다)은 “순수 유족” 운운하며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농성을 매도했다. 가짜 유족 쇼를 했던 정권이 가증스럽게도 ‘순수 유족’을 운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이윤 체제의 우선순위가 노동계급 사람들과 그 자녀들을 대거 희생시킨 사건이다. 


그래서 계급적 공분이 크다. 이번 참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비정치적으로 여겨졌던 안전 문제가 계급과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우파의 협박은 계급적 각성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분노한 노동계급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에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은 매우 ‘정치적’일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는 대정부 분노가 커지는 것도 시위 운동이 커지는 것도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적반하장격 협박을 통해서 분노한 사람들을 이간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 책임론은 단지 대통령이어서 도의적 책임을 지라는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의 원인 중에 이 정부도 포함된다.


박근혜야말로 (안전, 건강, 환경 등에 관한) 기업 규제를 “쳐부술 적”, “암 덩어리”라며 ‘규제 완화를 위해 전쟁을 치르자’고 ‘정치 선동’을 해 왔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최초로 재난관리 예산을 줄이고 있다. 화물결박 점검 완화도 박근혜가 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므로 이 시스템의 현재 최고위 통치자인 박근혜를 향해 (퇴진이든 무엇이든)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이 경우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위해서라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 죄인’이라는 식의 추모에 머물고 만다면 진정한 악을 제거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집회에서 정치적 구호와 주장이 나오면 ‘역풍’이 분다는 수세적 태도도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


세월호 참사를 이루는 선박 전복과 구조 방기의 원인들이 모두 정치적인 문제들이고, 더구나 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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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첫날부터 구조본부 해경 인력의 5분의 4가 구조가 아니라 유족 감시와 의전에 배치된 것은 현재의 국가가 무엇에 관심이 많고, 무엇에 관심이 적은지 보여 준다.


국가의 우선순위는 기업주들의 착취와 이윤 축적을 보장해 주며 계급 지배 질서를 유지하는 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연간 예산이 1조 원이 넘고, 국가간 경쟁과 연관된 대형 경비함에는 2천억~3천억 원을 쓰는 해경이 안전장비 구입에는 20여억 원밖에 배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구조장비가 없는 해양경찰서가 40퍼센트나 된다. 전용 헬기가 없어서 해경의 정예 특수구조대원들이 공항 두 곳을 거쳐 가느라 배가 다 가라앉은 뒤에야 사고 현장에 도착한 일은 희극적 비극이었다.


장비와 예산이 없으니 해경 대원들은 반복된 훈련으로 안전 관리나 구조에 숙달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제주와 진도의 관제센터에서 그리고 구조 현장에서 허둥지둥한 것은 사실상 ‘준비된 무능’이었다.


중앙 정부의 공공지출 삭감도 한 구실을 했다. 올해 초 기획재정부는 재정 위기를 이유로 예산 절감을 요구해, 각 지방 해양경찰청의 수색구조계가 폐지됐다. ‘인명 구조, 선박 인양, 수난구호명령, 충돌ㆍ좌초ㆍ전복ㆍ선박 화재 대처’를 맡은 부서가 가장 먼저 없어진 것이다.


사고 직후 한시가 급한데도 비용 문제를 들어 크레인 요청을 청해진해운에게 떠넘긴 일은 정부의 긴축 재정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잘 보여 준다.


그런데도 1백40억 원이 들어간 해경 고위층 전용 골프장은 지어졌다. 이곳은 해경 고위층이 중앙 정부 관료, 국회의원, 선박회사 소유주들과 관계를 돈독하게 할 목적으로 사용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커넥션이 수반한 양상들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정부와 국회가 선박회사들을 위해 안전 규제를 풀어 주고, 민영화로 이 부패 고리를 보강해 왔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선박연령 규제 완화만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도 직접적 책임이 있다. 선박의 과적과 화물 결박 현장 점검을 문서 제출로 대체하게 했고, 선장의 선박 안전관리 보고와 내부 심사 의무 등을 없앴다.


또한 안전관리ㆍ구조까지 법정 민간단체가 하도록 해 놓고, 퇴임한 관료들과 선박회사 소유주들이 이 단체에서 함께했다. 해운조합, 한국선급, 해양구조협회 모두 이런 단체다. 이런 네트워크 속에서 청해진해운 같은 선박회사들은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며 이윤을 벌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근 8년간 20년 이상 된 선박 수는 7배(6척→42척)로 늘었다. 그 결과, 2009년부터 해양사고가 7백~9백 건에서 1천7백~1천9백여 건 수준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는 경제 위기 때문에 노후 선박이 늘어나고 더 많은 과적을 한 결과로 보인다. 이런 사고 증가에 대한 경고가 있었는데도 오히려 정부는 안전 예산과 인력을 줄여 왔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국가의 부패와 무책임은 현 국가의 정당성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노동자 연대> 126호 게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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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첫날 이미 피해자 가족들 사이에서 ‘강남 (부촌의) 아이들이었다면 이렇게 하겠냐’며 분통 가득한 하소연이 나왔다.


그토록 수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이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한 달을 보내며 분노한 것도 이 사건에 대한 계급 본능적 직관 때문이었다. (좌절감, 모욕감, 원통함, 분노 같은 모든 감정들)


박근혜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 계급 본능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경제에 도움 안 되는 사회 분열’을 각별히 강조한 까닭이다.


경쟁자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이윤을 얻어야 하는 기업주들은 다수의 안전을 위한 비용과 노력을 아까워한다. 기업들과 우선순위를 공유하는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돈 안 되는’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애시당초 관심과 의지가 없었다. 


그들은 달리 가진 것 없어 자녀가 유일한 ‘재산’이고 삶의 낙인 노동계급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도 없었다.


진실


사건 초기에 해경 관리는 사고 해역의 물살이 세서 해경 구조요원들의 희생이 우려돼 잠수부대 투입을 못했다고 했다. 


‘양성 비용이 (적어도) 수천만 원 들어간 구조요원들의 생명을 담보로 할 만큼 이 승객들이 값어치가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이에 국가 관료들과 기업주들 그 누구도 ‘그렇다’ 하고 명령하지 않았다.


이것이 노동계급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무슨 거대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물어야 할 정도인, 진실의 알맹이다.


이런 우선순위 문제는 다른 자본주의 나라의 재난 사고에서도 거듭 드러났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허리케인 카트리나, 런던 패딩턴역 열차 사고 등등등등)



※ <노동자 연대> 126호 게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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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윤 경쟁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체제에선 재연될 수 밖에 없다 

- 박근혜에게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다




5월 9일 새벽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청와대 앞에 주저앉았다.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이 책임지고 진상을 밝혀 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묻고도 싶었다.


그러나 ‘부모를 흉탄에 잃은 사람으로서 가족의 아픔을 이해한다’던 박근혜가 하소연하러 온 유가족들에게 들이댄 것은 따뜻한 위로와 환대가 아니라 방패 든 경찰 1천여 명과 경찰 차벽이었다. 


‘무능한 엄마ㆍ아빠여서 미안하다’며 땡볕을 가릴 천막도 양산도 마다하고 길바닥에서 면담 요청 결과만 기다린 유가족들에게 박근혜는 물 한 모금, 방석 하나 주지 않았다. 


대신 그 시각에 박근혜는 각료들을 모아 놓고 민생대책회의라는 것을 열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서민 경기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 불안이나 분열을 야기하는 일은 국민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도 했다. 


유가족과 서민 대중(민중)을 이간시키려 한 말들이다. 또한 ‘많은 아이들 목숨보다 기업주들의 돈벌이가 더 중요하다’고도 선언한 것이다. 


이 말은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의 비통한 심장에 가시를 박아넣었다. 이 가시는 기업 규제 완화를 위해 빼낸 기업주들의 손톱 밑 가시였을 것이다.


박근혜의 발언이야말로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본주의 체제와 그 국가의 우선순위는 기업 이윤에 있지, 평범한 다수의 생명과 안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이윤을 위한 맹목적 돌진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의 탐욕ㆍ부패ㆍ무책임이 쌓이고 쌓여 노동계급의 자녀들, 승객과 일부 선원들을 직접ㆍ간접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이는 작업 중에 다친 노동자에게 들어갈 산업재해 보험료를 아끼려고 119 구급차를 부르지 않아 결국 죽게 만든 제2롯데월드 건설현장 사고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은폐 범죄와 다르지 않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때 진실을 은폐하기에만 급급해 수백만 명을 위험에 처하게 한 간 나오토 일본 정부의 범죄와 다르지 않다.


박근혜의 발언은 이윤 지상주의에 대한 지배자들의 강박적 집착을 보여 준다. ‘국가 개조’에 나서겠다는 박근혜의 발언은 가증스럽게도 국가 불신 정서를 역이용해 공무원과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겠다는 말로 들린다.


분노


청와대 앞 농성이 정권책임론을 더 자극할까 봐, 박근혜 정부는 KBS 사장의 사과를 지시하는 양보 제스처도 취했다. 


그리고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와 일부 선원들을 살인죄로 기소해 속죄양 삼고 있다.(물론 모든 속죄양이 죄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정도로 대중의 분노가 진정이 안 될 것이므로 해경에서도 속죄양이 일부 나올 것이다.


이런 일들은 참사 전 박근혜의 ‘높은’ 지지율과 달리 이 정권이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실제로, 5월 10일 안산과 서울 등지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는 합쳐서 3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5월 17일 서울 집회의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박근혜는 5월 14일, 쌍용차 대한문 농성 시위자들에게 불법 시위 3진아웃제를 적용하겠다고 협박했다. 명백히 참사 항의 시위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주력해 온 철도와 의료 등의 민영화 반대, 작업장 안전, 핵발전 중단,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의 의제들은 하나같이 이윤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문제들이다.


자본의 이윤 동기에 제동을 걸 능력이 있는 노동자들이 노동계급 고유의 투쟁 방법을 사용하며 저항의 중심에 서야 하는 이유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의제들이 이 사회의 보편적인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한다.


※ <노동자연대> 126호 게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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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연대> 125호 5.9. 온라인 기사로. 그날 청와대 앞은 고요한 아우성이 넘쳐났다.


“세월호 사고는 ...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하고 망발을 한 KBS 보도국장 김시곤이 9일 낮 보도국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날 밤 유족들의 항의 방문 때 코빼기도 비추지 않은 KBS 사장 길환영도 9일 낮 농성장에 직접 나와 유족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 앞에서 고개숙인 KBS 길환영 사장 길환영 KBS사장이 9일 세월호 침몰사고 유가족들이 모여 있는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앞에서 물의를 일으킨 김시곤 KBS보도국장과 관련해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노동자 연대

유족 등 수백여 명이 청와대 앞까지 가서 진을 치고서야 그나마 조그만 결과물을 얻은 것이다. 유족들은 애초에 KBS 항의방문을 위한 상경이었던 만큼 이런 조처를 ‘사과’로 인정하고 농성을 마무리했다. 

유족들은 “저희 도와주러 오신 시민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게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이 나라를 바꿔 나갈 것입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하고 말했다.


계기


사실 KBS 김시곤의 망언은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다. 유족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이미 '전원 구조' 같은 터무니없는 오보와 편향 보도에 환멸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8일 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KBS를 둘러싼 경찰에게 울먹이며 길을 열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윤선

△KBS보도국장 김시곤이 세월호 참사와 교통사고 희생자를 비교하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가운데 8일 오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여의도 KBS본사를 항의방문하고 있다. ⓒ이윤선

그런데 KBS 사측은 8일 밤 상경해 항의 방문을 한 유족들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출입증이 없다며 문전박대했다. 새벽이 돼서야 얼굴을 보인 보도본부장은 ‘그런 발언은 없었다, 오해다’ 하는 어이없는 변명을 해댔다. 

사장의 사과와 당사자의 파면을 바란 유족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새벽에 청와대로 향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이날도 박근혜의 (자기 지지자가 아닌 노동계급의) 손님 맞이는 무례하고 야비하기 짝이 없었다. 만나서 말이라도 들어달라는 유족들의 요구에 박근혜가 보낸 답은 경찰 약 1천여 명과 경찰차벽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둘러싼 경찰병력 5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 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전날 밤부터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항의하고 있다. ⓒ이미진

△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신분증 5월 9일 오후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밤샘농성을 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 신분증’을 메고 있다. ⓒ이미진

결국 유족들은 그 새벽에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여기에 전날 정부를 규탄하는 만민공동회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도 함께했다.

아침이 밝자 SNS와 뉴스로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밤샘 항의방문과 농성으로 지친 이들에게 자발적으로 음료와 국물, 식사, 각종 물품을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생겨났고, 농성자들이 주문한 도시락 1백 개의 가격을 대신 치른 시민도 있었다. 

오전 11시경에는 생존자 학생들의 가족도 농성에 합류했다. 이들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한 재발 방지 대안 마련은 모든 피해자 가족의 요구라며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해 사람들에게 힘을 줬다.

정오경에는 유족 대표들이 중간 보고를 했다. 청와대 정무수석 박준우와 홍보수석 이정현은 유족 대표들이 전한 구조 과정의 부조리함을 듣고는 ‘자신들은 전혀 그런 상황을 몰랐다’ 하고 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혀를 찼다.

이 정권은 구조 상황과 관련한 언론 보도들을 모니터링조차 안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권의 좋은 친구’인 MBC와 KBS 등과 조중동만 보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유족들이 면담을 요구하며 잠 한숨 못 잔 몸으로 천막도 양산도 마다하며 오뉴월 땡볕을 견디고 있을 때, 박근혜는 또 반격에 골몰하는 지시를 하고 있었다. 기자가 잠시 들어간 농성장 앞 청운동 주민센터 내 TV에서는 마침 박근혜의 긴급민생대책회의 발언이 뉴스로 나오고 있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서민경기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박근혜는 “사회분열”이 경제회복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고 협박까지 했다.

몇백 미터 앞에 자신을 만나겠다고 온 피해자 가족들을 박대하면서, 생명과 안전, 고통과 한숨보다는 기업주들의 사업을 더 걱정한 것이다.

박근혜는 그동안에도 '조문 쇼' 등 온갖 책임 회피를 일삼고, 또 적반하장으로 ‘국가 개조’ 운운하며 이번 참사를 공공부문 ‘정상화’ 정책에 역이용할 궁리만 해 왔다. 

 

위기


그럼에도 오늘 정권의 조처는 박근혜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번 농성이 자칫 박근혜 책임론과 청와대 앞 대규모 농성으로 번질까 두려운 정권이 KBS 사장 길환영을 압박해 꼬리 자르기를 한 것이다. 

정무수석 박준우는 농성이 끝난 뒤 “사안이 굉장히 심각해 KBS에 최대한 노력을 해 달라고 부탁한 결과”라며 이런 추론을 사실로 인정했다.

이 때문에 김시곤은 사임의 변에서 “사사건건 보도본부에 개입한 길환영 사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대놓고 불만을 토로했다. 왜곡 보도는 애초에 진정한 안전과 생명 구조 의지가 없었던 정부를 감싸려는 것이었으니 억울하다는 것이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자다.

이런 추잡한 자들의 자중지란에서 드러나듯이,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계급 편향 본질과 부패를 환히 드러내며 박근혜의 정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이 정도 조처로 유족과 생존자 가족들, 그리고 이 참사에 함께 슬퍼하며 분노하는 수백만 대중을 위로할 순 없다. 애초 보도국장 (자진 사임이 아닌) 파면을 요구한 유족들로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농성이 끝은 아니다. 9일 아침 청와대 앞 농성에 새로 합류한 생존자 가족 한 분의 말처럼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추모와 규탄의 결합은 물론이고, 올바른 분석과 대안을 위한 토론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운 딸의 얼굴을 쓰다듬는 어머니  박근혜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밤샘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사진 속 딸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다. ⓒ이미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생존 학생의 응원 메세지를 들으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있다. 가족들은 생존 학생에게 "살아줘서 고맙다, 아들아 "외치며 화답했다. ⓒ이미진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사고 원인부터 구조, 수습 과정까지 자본주의 ‘이윤’체제의 우선순위가 노동계급 대중의 생명과 안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준 사건이다. 후순위는커녕 도대체 순위에 들어있기나 할까 하는 의심은 정당한 것이다.

안전 문제에서 드러난 국가의 부패와 무능은 바로 이 우선순위에서 비롯한 것이다. 구조 첫날부터 해경 인력의 5분의 4가 구조가 아니라 유족 감시에 배치된 것은 현재의 국가가 무엇에 유능하고, 무엇에 무능한지 보여 줬다. 

이것은 단지 대한민국 국가(또는 체제)의 문제만이 아니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의 카트리나 사태 때 부시 정부의 연방재난관리청은 (마치 한국의 해경처럼) 수많은 기관의 수송 관련 도움 제안을 거절하고, 부시 정부 지지자인 기업에게 버스 수송 사업을 맡겼다. 그런데 이 업체는 트럭 업체였다!

당시 수난을 당한 (대부분 흑인 등 가난한 노동계급이었던) 사람들이 겨우 살아나 처음 맞닥뜨린 것은 총을 든 군인들이었다. 미국의 통치자들은 (일상의 기초가 붕괴된 그 난리통 속에서도) ‘질서 유지’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체제의 우선순위다. 그 때문에 노동계급 대중의 다수가 본능적으로 이번 사고를 내 일처럼 여기고, 피해자들에게 깊이 공감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노동계급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제대로 된 세상에서 살려면 많은 것들을 바꾸고 싸워 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더는 통치자들이 시키는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경찰버스에 노란 종이배가 가득 붙어 있다.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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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에 관해 <노동자 연대>123호에 기사를 세 꼭지 썼다. ①노동부매뉴얼 전반의 정치적 맥락을 다룬 글, ②연공급제를 중심으로 임금체계 제도와 논쟁을 다룬 글, ③마르크스주의의 임금 이론을 약술한 글이다. 각각을 한 글의 세 꼭지처럼 썼기 때문에 하나만 읽으면 불완전하거나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아래 글 중 색이 다른 부분은 지면 분량상 줄인 내용들 중 내가 임의로 선별해 덧붙인 구절들이다.

☞ 이 글의 원문 주소: http://wspaper.org/article/14290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박근혜 정부가 또 하나의 무기를 내놓았다. 노동부가 3월 19일 발표한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이 그것이다.


노동부 매뉴얼은 대놓고 50대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야 한다고 말한다. 근속년수가 오래될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제 때문에 이들이 직무와 성과에 비해 너무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60세 정년제와 고령화 추세에 맞지 않[는]” 연공급제에 따른 고임금 탓이라고 주장한다. 부담을 느낀 기업주들이 중장년 노동자들에게는 “희망퇴직 형태로 조기퇴직을 실시”하고 청년들에게는 “신규채용을 주저하고, 정규직으로 채용할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등 일자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노동 현실에 조금만 눈 밝은 사람이라면, 노동부의 논리가 실은 경제 위기의 책임과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해 기업주들의 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수작이란 걸 바로 눈치챌 것이다.


노동부는 생산직 신규자 대비 30년 경력자의 임금이 3.3배로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높은 게 문제라고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더 불평등한) OECD 국가에서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문제는 말하지 않는다. 사실 한국 노동자 전체의 평균 근속년수가 6년 남짓인 상황에서 30년 경력자와 신규자를 비교한 것 자체가 상당히 허구적이다.


노동부가 밝혔듯이 기업주들이 “조기퇴직을 실시”해 왔다는 것이야말로 기업주들 스스로 이미 연공급제를 그 취지대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직무급제가 더 보편적인 미국과 유럽에서도 정규직 고용이 줄어든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은 경제 위기에 대응해 비용을 아끼고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자본가들의 선택의 결과이지 연공급제와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저들의 논리는 결국 정해진 인건비 안에서 노동자들끼리 다투라는 논리다. 


청년층의 정규직 신규 고용이 줄어든 이유를 연공급제에 따른 인건비 증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을 전가해 노동자 분열을 노리는 것이다. 이런 식의 분열 책략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기업주들은 1997년 IMF 위기 때 대규모 정리해고를 실행하면서도 정규직 고용안정이 청년층 신규 고용을 막는다는 논리를 폈었다. 그러나 그 뒤 경영상태가 호전된 대기업들은 이전의 정규직 고용 수준을 결코 회복하지 않았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직무급ㆍ직능급ㆍ성과급제 도입ㆍ확대를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지난해 통상임금 소송을 계기로 불거진 임금체계 개편 논란에 대한 자본가들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노동부 매뉴얼도 1월 23일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 이미 실렸던 내용이다.


통상임금 논쟁을 통해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체계에서 고정 기본급 비중이 적은 것이 문제임이 밝히 드러났다(제조업 평균 40퍼센트). 나머지를 각종 수당과 상여금들이 채우다 보니 근로기준법의 ‘통상임금’에 어떤 수당들이 포함되고 안 되는지 하는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그동안 사장들은 기본급 비중이 적은 임금체계를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할 수 있었다. 강성노조 작업장이라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조차 1년에 2천5백 시간 넘게 일하는 노동자가 1만7천여 명이나 됐다.(2012년)


그러므로 이 임금체계 논란에서 대안의 핵심은 연공급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함해 고정급 비중을 높이고 이를 충분히 인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거꾸로 기본급을 성과주의로 바꿔 고정급을 올리기 힘들고 불안정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상여금을 성과 기준으로 지급하라는 것도 (그나마 불완전한) 통상임금 판결마저 무력화하려는 술책이다.


성과주의 임금제는 임금 책정을 개별화하고 내부 경쟁을 강화하며 직무 배치나 성과 측정 권한을 가진 사용자의 지위를 강화시킨다.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청년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할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오히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의 조사를 보면, 고졸ㆍ대졸 초임은 직무급 체계에서 가장 낮았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임금 개악 매뉴얼의 목적은, 첫째 노동계급 전반의 임금을 하락시키려는 시도이며, 둘째 노동자들의 단결을 약화시키고 사용자에 대한 종속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민주노총 정책 논평이 고령 노동자의 상대적 고임금이 문제라는 듯한 뉘앙스를 비친 것은 잘못이다.


한편,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부터 60세 정년제, 임금피크제 등을 추진해 왔다. 이는 큰 틀에서 “나쁜 일자리”로 고용률 70퍼센트를 확보한다는 ‘신자유주의식’ 사회안전망 계획의 일부들이다. 이런 일자리들로 노후복지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사회적 불만을 통제하려는 책략이다.


그 점에서 전반적 임금비용을 낮추려는 임금 개악 매뉴얼의 셋째 목적은 기업주들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나쁜 일자리”를 늘리려는 술책이 될 수 있다. 노동부 매뉴얼도 직무급 도입과 임금피크제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효과도 노리고 있을 것이다. 하나는 고용불안 등의 책임을 고령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노동계급 내부에서 분열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연공급제로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라면 대체로 노조가 강한 대기업이나 공기업 노동자들일 테므로 정부의 연공급제 공격은 ‘노동귀족론’의 새 버전인 셈이다.


둘째는 평생고용을 전제로 한 연공급제를 공격함으로써 청장년 노동자들에게 평생고용을 기대하지 말라는 신호를 주려는 것이다. 기업주들은 연공급제가 약화되면 정리해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감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따라서 노동부가 “[이 매뉴얼의] 임금체계 개편을 중장기적인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 과제로 삼[겠다]”고 한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노동운동은 경제 위기의 책임이 이 체제와 기업주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주장해야 한다. 성과주의 임금체계에 반대하고 고정급의 대폭 인상을 요구해야 한다.


불필요한 타협을 추구하는 개혁주의로는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힘들 것이다. 경제 위기가 심해질수록 고용과 임금에 대한 자본가들의 공격도 심해질 것이다. 상대적 격차를 빌미로 한 이간질도 더 극성일 것이다. 임금 노동자들이 효과적으로 단결과 저항을 구축하려면 변혁적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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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e-나라지표’를 통해 공개된 공식 통계를 보면, 국가보안법 기소율과 구속율 모두 2011년부터 다시 증가 추세다.


특히 박근혜 정부 첫 해인 2013년 기소율은 1997년 이후 처음으로 80퍼센트를 넘겼다. 구속자 수(38명)와 기소 건수(94건) 자체도 이명박 때(연평균 구속자 22.2명, 기소 55.8건)보다 증가했다.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의 본색 드러내기가 특히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국가기구의 강경화 추세는 국내에서 경제 위기, 지정학적 위기 등을 배경으로 자라나는 통치자들의 위기감과 초조함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지난 몇 년간 대체로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미국 정부의 양적완화 덕을 보며 버텨 왔다.


종속변수


그러나 회복되지 않는 세계경제 위기에서 나홀로 탈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에서 비롯한 최근 신흥국 위기는 한국 경제에도 경고등을 울리고 있다.


이런 처지에 국가재정 문제가 시급한 쟁점이 됐다. ‘공공부문 정상화’와 ‘민영화’ 문제가 시급해진 이유다. 한국 정부 자신이 경기부양으로 인플레를 용인했으므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도 커져 왔다.


이런 다급함 때문에 박근혜는, 한두 해 전부터 조금씩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조직 노동운동 전반을 동시다발로 공격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박근혜로선 노동운동과 본격 대결을 시작하기 전에 견제구를 날려야 할 뿐 아니라, 급진 좌파들의 노동운동 개입에도 대처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갈수록 대안으로서의 매력을 잃어가는 친북사상을 단죄의 이유로 내세움으로써, 탄압의 계급적 성격을 은폐하고 심지어 진보정치 세력 안에서 분열을 유도하려 한다.


이에 더해, 남한 통치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강대국들의 갈등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대북 적대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 상황이 주는 효과도 무시해선 안 된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각별히 친북사상을 문제 삼아 남북 간 전쟁시 내부 반란 위험을 과장한 것도 시사적이다.


(물론 박근혜는 올 봄 지방 선거 대응이나 정치 위기 예방 차원에서 대북 포퓰리즘 정책을 활용하고 싶은 유혹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진보진영을 분열시키는 효과도 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전략과 무관하게 움직일 수 없는 한국 통치자들의 처지 때문에 그런 독자적 움직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계 자본주의 위기와 제국주의 간 갈등 모두에서 종속변수인 한국 통치자들의 불안감 때문에 ‘외부 위협과 연계된 내부 세력’이라는 속죄양을 계속 찾게 될 것이다.


최근 ‘NLL 발언’을 이유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박창신 신부를 정식으로 수사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2ㆍ25 총파업


진보당 탄압과 최근 우익의 공세에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증거가 불충분해도 재판부의 무죄 선고를 기대하기는 힘들다(선고일 2월 17일). 만에 하나 내란 음모에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국가보안법은 유죄가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정치 세력과 노동운동은 단호하게 내란음모 피고인들의 처벌(마녀사냥)에 한 목소리로 반대해야 한다. 다행히 10만여 명이 구속자 석방 탄원 운동에 동참했다.


이제 초조해진 박근혜가 조직 노동운동 곳곳을 동시에 공격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일반화된 전국적 저항으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박근혜는 그럴수록 신경질적으로 나올 것이다.


조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하반기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박근혜의 교란ㆍ위축 시도에 흔들리지 말고 ‘2ㆍ25 총파업’ 등 자신의 요구와 의제를 앞세운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좌파도 여기에 기여해야 한다.


그런 투쟁이 성공적일수록 저들의 강경한 공세는 그 쓸모를 잃고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




※ <레프트21> 120호. 약간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 <레프트21>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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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철도노조 파업에 대처하면서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처럼 보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것은 대처가 광원노조 파업을 깨뜨린 것을 연상시키려는 노림수였다. 이것이야말로 우익 지배자들이 박근혜에게 바라던 모습일 테니 말이다. 


박근혜 본인도 ‘원칙의 리더십은 물론 이공계 출신인 것까지 닮았다’고 흰소리를 하며 대처 리더십을 자신의 롤모델로 언급해 왔다. 


실제로 두 정부는 닮은 게 많다. 둘 다 신자유주의 강성 우파 정권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운동에게 “방패보다는 칼” 구실을 바라는 우익 지배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둘 다 기업 규제를 줄이고 복지 예산을 삭감하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 주려 한다. 이를 위해 ‘법과 질서’와 냉전주의를 앞세워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강화하는 것도 닮은 꼴이다. 노동운동에 적대적이고 “법과 질서”로 위협하는 것도 닮았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성공한 대처 신화’를 한국에서 재연할 수 있을까? 세계경제 위기, 지정학적 환경, 계급세력균형 등을 비교 검토해서 확률적 예측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대처보다 훨씬 더 불리한 처지에 있고 운신의 폭도 좁다. 


경제 위기 효과


경제 위기는 노동운동의 분출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높아지는 실업률은 사기 저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당시 영국의 노동운동이 어떤 상태에서 경제 위기와 우파 집권기를 맞게 됐는지가 중요하다. 


1970년 집권한 영국 보수당 히스 정부와 우파 지배자들은 집권 첫 해에 ‘복지국가 유지를 통한 사회적 합의주의’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전후 대호황이 불황에 자리를 내주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부실 기업 퇴출, 민영화, 노동조합 약화, 임금 통제 등 시장주의 공세가 주요 내용이었다(‘셀스던 합의’).


그러나 부실 기업 부도를 방치했다가 오히려 연관 기업들이 동반 추락하고 실업이 늘어나는 것은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1971년에는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약화시키는 법 개악을 했다가 노동계급의 전반적 반격에 직면했다. 한껏 고양된 산업투쟁의 전투성에 직면해 히스 정부는 레임덕에 빠졌고, 시장주의 공세를 포기했다. 당시 교육부장관이던 마거릿 대처는 ‘셀스던 합의’ 포기에 끝까지 저항했던 유일한 장관이었다. 


노동자 투쟁 고양의 결과로 1974년 노동당이 집권했다. 그러나 이 정부를 기다린 것은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의 경제 위기였다. 윌슨ㆍ캘러헌 정부는 영국 자본주의를 구하려고 노동계급을 배신했다. 그들은 보수당 정부가 추진했던 산업 구조조정과 임금 억제 정책을 이어받았다. 심지어 군대를 보내 파업을 진압했다.


영국 노총(TUC) 지도부는 자신들이 지지한 정부를 위해 투쟁을 자제하라고 설득하는 일을 맡았다. 노동당 정부는 현장조합원 운동의 리더들을 상근간부층으로 끌어들이는 법 개정을 했다. 기층의 압력을 완화시키는 제도 개혁으로 노총 지도부를 도운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 노조로 조직된 부문이 주도한 “불만의 겨울”(1978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임금 가이드라인에 저항한 노조들의 투쟁) 투쟁으로 임금 가이드라인을 분쇄하고 임금 상승을 얻어냈다. 하지만, 노동당과 오랫동안 연계돼 왔던 전통적인 노동운동 주축 부문의 사기와 확신은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노동당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보수당의 대안(노동당)은 있었지만, ‘배신한 노동당’의 대안은 없었다. 환멸과 대안 부재가 부른 정치적 혼란 때문에 상황이 반전되기가 힘들었다. 경기 침체와 실업 증가도 이런 상황에서는 사기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대처 정부는 이처럼 노동당 정부의 배신과 경제 위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전반적 사기가 꺾인 후에 바로 그 기회를 이용해 등장했다. 


광원 파업


그런데도 대처는 초기에 매우 신중해야 했다. 대처는 1980년 탄광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려다 노조가 반발하자 철회했다. 아직 노조와 대결할 준비가 안 됐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흥미롭게도 대처는 히스 정부가 노동운동 제압에 실패한 까닭이 노동조합의 ‘특권’을 한 번에 모두 뺏는 ‘노사관계법’을 섣불리 제정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예를 들면, 대처는 노동법 개악을 하면서 매우 순차적으로 접근했다. 그 초점은 피켓팅(대체인력 투입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투쟁)을 금지하고 파업과 관련한 노조 간부들의 면책특권을 없애는 것이었다. 


대처는 1983년 두 번째 총선에서 승리하고서야 탄광 구조조정을 본격화했다. 파업에 대비해 석탄을 비축해 놓고 탄광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대처가 연대 파업과 투쟁을 어렵게 만들고 노조관료 간 부문주의를 조장하고 난 뒤 비로소 영국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던 광원노조를 공격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대처가 막 집권했을 때 경제 상황은 지금의 박근혜처럼 암울했다. 영국 경제는 1980~81년 세계 공황의 한복판에 있었다. 1980~83년 사이에 제조업체의 약 4분의 1이 사라졌다. 실업자는 2백만 명까지 늘어났다. 


공교롭게도 1982년부터는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1984년부터는 실질적인 성장이 시작됐다. 물론 노동자들을 쥐어짠 결과였지만, 대처는 경기 회복을 민영화와 부자 감세, 기업 규제 완화, 노조 약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써먹을 수 있었다. 광원 파업은 오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적 노력에 해를 끼치는 ‘집단이기주의’라고 공격받았다. 


그럼에도 광원노조의 파업에 승리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처는 한때 양보를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바로 그 때 영국노총 지도자들은 연대파업을 취소해 버렸다. 버티다 못해 광원노조가 무릎을 꿇은 뒤에야, 실은 파업에 대비한 석탄 재고량이 거의 바닥나고 있었음이 알려졌다. 


이처럼 경기 침체와 전투성 저하, 지도부의 우경화 등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대처 집권기 노동운동은 부문주의와 투쟁 회피주의가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1984년 광원 파업이 1972년 파업 때와 달랐던 것은 바로 노동자 연대의 부족이었다. 자기 작업장에서 투쟁할 자신감이 없는 노동자들이 연대 파업에 나서는 건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차이점


박근혜는 대처가 광원노조 파업을 대했던 방식을 흉내 내면서 노동운동 전반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그에게는 대처가 가졌던 이점들이 별로 없다. 


우선, 세계경제 위기의 정도가 그때보다 심하고 따라서 한국 경제의 전망도 어둡다.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점차 회복되는 경제 상황을 억압적 신자유주의의 정당성 근거로 써먹었던 대처보다 불리한 점이다. 그래서 박근혜에게는 양보의 여지도 적다. 그래서 박근혜는 복지 공약을 대부분 백지화했고, 이것은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이것은 현실에서 '동의'에 기반한 통치전략(일부에 대한 경제적(부분적) 양보와 형식적 민주주의의 절차를 통한 지배전략)이 약화된다는 뜻이고 이는 저항이 거셀 경우 1970년대 초반 영국 보수당 정부처럼 지배계급이 내분을 겪을 위험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는 박근혜의 유신스타일 통치가 지배계급 내부 단속까지도 해야 한다는 뜻이고, 이런 통치전략이 강화할수록 실패의 위험성(판돈)도 커진다는 뜻이다.


또한 세계경제 위기에서 비롯한 제국주의 간 경쟁과 지정학적 불안정성도 박근혜에게는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요인이다. 경제 위기는 국가 간 경쟁도 날카롭게 만든다. 특히 경제 위기가 불균등하게 전개되면서 국제 제국주의 질서의 세력균형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최근 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군사적 경쟁이 급속도로 날카로워진 배경이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해에 집권한 대처는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함께 신냉전을 부추긴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대처는 박근혜와 달리 강대국의 통치자였다. 국내 정치의 필요에 맞게 냉전주의를 조절할 수 있는 위치였고, 1985년 이후 신냉전이 해빙기로 전환하면서 운신의 폭을 넓혔다. 대처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국내 정치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 지배자들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성과 정치ㆍ군사적 차원의 한ㆍ미ㆍ일 동맹 강화 압력 속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 군사대국화하는 일본과의 동맹 강화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긴장 유발 요인이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니 대북 포퓰리즘을 활용할 여지도 크지 않다.(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정학적 쟁점들은 지배자들 내에서 분열 요인이 될 수 있다. 박근혜가 이 문제들에서 자신감보다는 신경질적으로 나오는 이유다.


경제 상황과 지정학적 환경이 박근혜에게 유리하지 못한 것은 취임 전후의 계급세력 균형과도 깊게 연관돼 있다. 


대처는 노동운동의 사기저하를 이용해 구조조정, 민영화, 노조 제압, 시장 경쟁과 법질서 확립을 슬로건 삼아 선거운동을 했다. 국가복지를 삭감하며 도리어 개인의 책임성을 요구했다. 민영화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처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고조되는 불만을 의식해 어울리지도 않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선거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이 지키지 못할 (그리고 못한) 약속은 정권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또, 철도 파업 내내 민영화를 하는 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이처럼 이데올로기 전투에서 박근혜는 불리한 처지다.


박근혜 정부의 맞은편에서는 1980년대 영국보다 더 전투적이고 투지가 살아나고 있는 조직 노동운동이 버티고 있다. 지난해 봄의 진주의료원 폐원 반대 투쟁부터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까지, 박근혜 정부에 맞서는 주된 동력은 노동자 투쟁이었다. 


박근혜는 유신 스타일의 공안통치 방식을 쓰려 하지만 그것이 노동운동에 크게 먹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광범한 대중의 지지를 받았고, 파업 동안 연대는 점차 확산됐다. 


조직 노동운동이 전투성을 조금씩 회복하는 상황에서는 경제 공황 같은 상황이 찾아오면 대처 때와 같은 사기 저하보다는 오히려 격렬한 계급투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공교롭게도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는 경제 위기 등의 다급함 때문에 노동운동을 동시에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는 도박을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있다.


개혁주의


그러므로 대처 당시 영국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우경화는 산업 현장의 전투성이 가라앉은 상황과 결부해서 이해해야 한다. 일면적으로, 배신적 개혁주의 지도자만 문제고, 그들만 아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처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 불리한 세력관계를 자초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자기 패배적 정책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정확히 직시하자는 것이다. 


대처는 1979년부터 치러진 세 번의 총선에서 내리 이겼는데, 매번 노동당의 득표 감소 덕을 봤다. 대처는 노동당에 져서 정권을 빼앗겼던 1964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얻은 것보다도 더 적은 득표율로 연이어 집권했다. “승리의 문턱에서 오히려 패배를 자초하는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놀라운 기술” 덕분이었다.


대처와 보수당이 포클랜드(말비나스) 전쟁을 1983년 총선을 위한 보수적 애국주의 캠페인으로 연결시켰을 때, 노동당 대표 마이클 풋은 이 전쟁을 지지하고 대처의 리더십을 칭송했다. 그것은 우익을 강화시켰고, 전통적 노동당 지지자들에게 실망과 환멸을 주는 행위였다.


1984년 당시 노동당 대표 닐 키녹은 광원 파업 때문에 노조를 비난했다. 영국 노총 지도부는 광원 파업 연대 건설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보수당의 노동법 개악을 받아들였다. 영국 노총이 1986년에 내놓은 문서 《일하는 사람들: 새로운 권리, 새로운 책임》은 이제 노동운동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파 지식인들도 이런 우경적 후퇴에 가담했는데, 공산당 소속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는 더는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전략이 불가능하니 화이트칼라 중간계급과 동맹을 맺고 온건한 의회주의 전략에 충실해야 한다는 “현대화”론을 강력하게 설파했다. “현대화”론은 스탈린주의 인민전선 전략의 1980년대 판이었다.


닐 키녹과 홉스봄 등은 노동당의 연이은 선거 패배를 [노동당이 상징한다고들 여긴] ‘계급정치’의 후퇴로 봤다. 그리고 그 후퇴의 책임이 자신들의 배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보수화’에 있다고 주장했다. 전반적 사기저하 탓에 이런 책임전가식 담론이 용인됐고, ‘정치’가 대중투쟁의 대용품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이때의 ‘정치’는 산업현장의 투쟁과 유기적으로 결부된 정치가 아니라 제도권의 의회ㆍ개혁주의 ‘정치’였을 뿐이다.


지금 세력관계상 한국의 노동운동 안에서 개혁주의자들이 1980년대 영국처럼 노골적으로 준동할 수는 없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의원단은 ‘불법’ 파업을 옹호했고, 비록 형식적인 것이었지만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연대파업 계획을 내놓았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좌파의 과제


따라서 한국의 좌파들은 대처 당시 영국보다 훨씬 더 나은 조건에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일부 좌파들은 박근혜의 우익적 공세를 과장하는 견해를 단념해야 한다. 흔히 그런 견해는 계급투쟁을 약화시킬 계급 타협(인민전선)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오히려 결코 불리하지 않은 세력관계를 이용해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 투쟁과 노동자 연대를 건설하는 일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의 전투성과 세력관계야말로 급진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고, 우파 정부를 패퇴시킬 진정한 힘이다. 물론 개혁주의자들도 기층의 압력을 받고 있으므로 초좌파적으로 그들을 대하기보다는, 현장 투쟁을 건설하는 일에 공동전선적 방식을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투쟁과 연대를 고무해 세력관계를 노동계급 편에 유리하게 만들려는 전략보다 법안 제출이나 당내 지도권 다툼 방식의 ‘정치’투쟁만으로도 사태를 바꿀 수 있다고 봤던 노동당 좌파들의 경험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이 중 토니 벤이 이끄는 ‘벤 좌파’는 1979년 총선에서 정권을 잃은 후 그 반작용으로 당내 선거에서 약진했다. 그러나 도취감에서 깨기도 전에 이들은 순식간에 세력을 잃고 변방으로 밀려났다. 계급투쟁의 수준이 낮아서 좌파의 의제를 추진할 실제 동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1983년에는 노동당 내 극좌파였던 ‘밀리턴트’ 경향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당에서 쫓겨났다. 이들이 주도하던 지구당은 폐쇄됐다. 런던시의회의 다수파를 장악한 “붉은 켄” 켄 리빙스턴 파도 계급투쟁과 유리된 정치투쟁의 한계를 보여 줬다. 광원 파업 패배로 세력관계가 기운 뒤인 1986년 대처는 광역시 정부 자체를 없애버렸다.(사라진 런던시의회는 2000년에야 부활한다.)


정리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매우 우익적인 정부로서 공안통치 스타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조직 노동운동을 표적 삼는 공격에 혈안이 돼 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표방하는 것처럼 그리 강력하지는 않다. 이에 맞서는 한국 노동운동의 지금 분위기는 1980년대 영국 노동운동보다 더 강하고 전투적이다. 


이것은 노동자 투쟁이 박근혜 정부에 맞서는 핵심 동력이 될 것임을 일러 준다. 아울러 당분간 팽팽한 세력관계 때문에 이번 철도 파업처럼 투쟁들의 결과가 모호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요구의 외형적 성취 여부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반의 의식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혁명적 좌파는 노동계급이 사기와 전투성을 회복하고 있는 이때를 노동운동에 뿌리 내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의 경험에서 배우면서, 투쟁을 고무하고 노동자 연대를 구축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경제와 지정학적 위험이 다가오는 가운데, 이에 맞설 유일한 힘인 ‘노동계급 중심성’을 후퇴시키자는 주장은 대안 부재 상황에 스스로 자리잡는 것일 뿐이다.



※ 이 글은 <레프트21> 119호에 약간 축약해 실렸다. ☞ <레프트21>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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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12월 2일 감사원장 황찬현, 검찰총장 김진태, 보건복지부장관 문형표 임명을 강행했다. 


마침 그 시각이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당 지도부 회담이 열리던 때였으니, 도발적 인사로, 각종 개악과 고통전가 정책 강행 의지를 과시하겠다는 박근혜의 악의만큼은 확실히 전달된 셈이다. 


이번에 수장을 임명한 검찰, 감사원은 국정원, 경찰청, 국세청, 금감원 등과 함께 전방위적인 사정ㆍ사찰ㆍ억압 기능으로 정권의 통치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관들이다.  


박근혜가 이들에게 내린 지시도 의미심장하다. 검찰총장 김진태에게는 “어떤 경우라도 헌법을 부인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그런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생각 자체를 못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사상 탄압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박근혜와 강성 우익들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사상ㆍ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 등 민주적 기본권이 아니라] ‘자유시장’과 ‘사적소유권’ 보장으로 본다는 점에서 민영화 반대 파업 등 노동운동에 대한 강경 대처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가 감사원장 황찬현에게 지시한 것도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공공부문ㆍ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부조리, 공직 기강 해이를 확실하게 바로잡으라.” 한 달 전 경제부총리 현오석도 공기업 구조조정을 예고하며 ‘공공부문의 파티는 끝났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또 예산안 통과 등에서 국회에서의 여야 합의 처리라는 일각의 기대를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이미 감사원장 임명 동의안을 단독 처리했고, 날치기를 어렵게 해 놓은 국회선진화법을 흠집내기 시작했다. 


교체된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팀이 또다시 1백만 건이 넘는 트윗을 공개하고, 천주교 사제들 일부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또 한 번 반동의 기치를 세운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날로 악화되는 경제ㆍ안보 상황에 대한 우익의 신경질적 인식이 있다. 국가 재정 위기가 심화되고 있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이후 중국과 미ㆍ일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어도 문제로 한국 지배자들도 당사자가 되면서 군비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우익을 극도로 예민하고 참을성 없는 상태로 만든다. 계급 지배 질서가 손상되지 않도록 반대자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방식으로 나오는 까닭이다. 


냉전 초기와 ‘테러와의 전쟁’ 같은 대결적 대외 정책기에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국내 억압을 강화했던 것이나, 1998~99년 경제 공황 속에서 오히려 김대중 정부가 국가보안법 탄압과 노동 탄압을 강화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온갖 반민주 퇴행과 복지ㆍ경제민주화 공약 파기, 국가기관 대선개입 폭로 속에서도 우리 편의 저항이 시원찮았던 것도 박근혜가 다시 채찍을 쥐는 데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만이 분노와 행동으로 폭발하지 않은 것은 ‘올해 국회 법안 처리 0건’에서 보듯 의도치 않게 개악 드라이브가 지연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조바심을 내며 우익적 공세의 고삐를 쥐는 게 이 정부에게도 도박인 이유다. 


이런 역설과 모순 속에서도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것은, 저들이 말하는 ‘국민적 여론’이 바로 자본가들의 여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은 정부와 여당이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등에 강경하고 신경질적으로 나올 것이다. 각종 개악을 연말 정기국회에서 밀어붙이려 할 수도 있다.


노동운동이 위축되지 않고 정부의 공세에 단호한 의지와 전투적 태세로 맞서며 불만의 초점 구실을 한다면,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진보운동가들은 당면한 노동자 투쟁들을 적극 지지하며 노동자 연대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


※ <레프트21>117호에 실린 글. ☞ 바로가기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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