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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07.01 ‘국정교과서 퇴출법’ 발의를 환영하며
  3. 2015.06.30 이념을 버리자? 정치적 실용주의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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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지지율 하락 ― 왼쪽의 대안이 중요하다

기사들 2018. 10. 23. 18:17


문재인 지지율 하락 ― 왼쪽의 대안이 중요하다


  • 259호
  •  
  •  2018-09-13
  •  
| 주제: 
  • 공식정치
  •  
  •  주류정치

9월 첫째주 여론조사 대부분에서 문재인 국정수행 긍정평가도가 50퍼센트대 초반으로 취임 후 최하를 기록했다. 한 조사에서는 아예 50퍼센트 밑으로 떨어졌다.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5월 초 80퍼센트까지 갔던 지지율이 넉 달 만에 폭락한 것이다. 게다가 국정수행 부정평가도 함께 늘었다. 지지가 줄어든 것뿐 아니라 반감도 커진 것이다.

청와대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듯하다. 청와대 대변인은 9월 7일 이렇게 말했다.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고,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겠다.”

사실 청와대는 8월부터 심각하게 생각해 왔다. 4월에 약속했던 가을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자더니 결국 9월 4일 김정은에게 특사를 보내어 회담을 추석 직전으로 앞당겼다. 이른바 ‘추석 민심’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일 것이다. 물론 북미간 중재도 고려했을 것이다. 때마침 트럼프도 11월 초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9월 6일에는 대통령 주재로 “포용국가 전략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삶을 전 생애 주기에 걸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대선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로 내세웠던 주장이다. 당시 대선 캠프에 포용국가위원회를 만들었고, (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김병준보다 먼저)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성경륭 교수가 이를 이끌었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과 지지층 이탈의 연계 조짐이 보이자,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민주당의 새 당대표 이해찬,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까지 모두 공급 확대 카드를 꺼냈다. 국토부는 택지 확보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원인

문재인 지지율 하락에는 결정적으로 대중의 불만이 작용했다.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사실 문재인은 노동정책에서부터 급속히 우선회했다. 특히 설비투자가 줄고 고용지표가 악화했다. 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올해 3월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빚어진 일자리 위기에 정부 개입을 거부한 것은 문재인 본인이었다. 하지만 5월 이후 문재인은 ‘앗 뜨거’ 하는 태도로 삼성과 엘지 등에 투자 확대를 요청했고, 줬다 뺐는 최저임금 삭감 개악을 강행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은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에서도 인기 있는 구호였고,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은 부족했어도 촛불 염원의 일부 실현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인상된 최저임금(시급 7530원)이 적용된 지 겨우 다섯 달 만에 말짱 도루묵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참고 기다릴 때가 아니다
참고 기다릴 때가 아니다 문재인의 빠른 우경화에 맞서 대거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투쟁으로 기만적 노동정책을 폭로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조승진

그 뒤로도 문재인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추진하다가 당시 야당 지지층이 강하게 반대한 의료 영리화 정책을 ‘혁신 성장’의 이름으로 추진하려 한다. 국민연금 개악 추진도 반발을 사고 있다. ‘포용 국가’의 이름으로 평생 복지 운운한 것은 국민연금 개악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교조 노조 인정 등 간단한 노동적폐 청산조차 거부했다. 삼성 노조 파괴 공작에 대한 단죄 등도 속시원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개각에서도 기업과 노동정책을 다루는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는 보수적인 친기업 관료들을 장관으로 지명했다. 이들은 진선미, 유은혜 등과 달리 인사청문회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고, 업무를 개시하면 경제부총리 김동연과 보조를 맞출 것이다.

김동연과 대립한다는 장하성은 결코 친노동 개혁파가 아니다. 이 점에서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김동연과 장하성이 보수 대 진보 대결을 벌인다는 프레임은 웃기는 허수아비 놀음이다. 처음부터 우파에게 유리하다.

물론 부차적으로 여권의 분열도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가령 친문 핵심 그룹이라던 전해철(노무현 정부에서 문재인 후임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냄)이 보수적 경제관료 출신인 김진표 등과 손잡고 이재명 경기지사를 찍어내려 한 것이 그런 효과를 줬을 것이다.

특히 적폐 청산 등을 내세워 지지를 받는 정부에서 대통령 측근 실세가 상대적 개혁 인사들을 몰아내는 모양새는 우파에게 자신감을 회복할 기회를 줬을 것이다.

장차 여권 내분을 사전에 막고 김경수 등 친문 후계 구도 구축을 위한 것이었을 텐데, 효과는 거꾸로 나타난 셈이다.

우파 사기 재장전

문재인이 우선회하자 지지율이 하락하고, 그래서 좌측 깜빡이 켜는 시늉을 하는 것은 촛불 염원과 우파 통치 9년 적폐 사이에 문재인 정부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한때 그토록 높았던 지지율은 개혁 염원 때문이지 문재인의 ‘혁신 성장’ 따위를 지지해서가 아니었다.

촛불 운동은 전혀 혁명적이지는 않았어도 꽤 급진적인 개혁을 바랐다. 어쨌거나 정권 교체는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행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개혁주의의 헤게모니 탓에 정부의 개혁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개혁 조처들이 순전히 현 여권 덕분이라거나 자신들의 무임승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의 우선회가 왼쪽으로의 이탈을 낳은 것이다. 몇몇 조사에서 문재인 지지 이탈층의 다수가 20대 진보적 청년층이라고 한다. 또한 문재인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유일하게 정의당만 지지율이 올랐다. 늘어난 정의당 지지층 안에서 문재인 국정수행 지지율은 대폭 낮아졌다.

문재인의 민주당은 한국 지배계급의 제2선호 정당으로, 자신들이 전통적 여당보다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지배계급의 이익을 오히려 더 잘 보호할 수 있음을 입증하려는 정당이다. 그래서 그들 자신이 적폐 구조와 연결돼 있고, 대중이 바라는 적폐 청산을 전혀 일관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이 초기에 위세를 떨치며 구 여권을 강하게 압박한 것은 간절한 개혁 염원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우선회의 결과 지지율이 급속하게 떨어졌다. 이는 우파에게 사기 재장전의 계기가 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는 4월 남북정상회담 때는 만찬에 야당 대표들을 안 불렀다고 불평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고 동행 초대를 거절했다.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양보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김학용(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 추가 개악 의사를 숨기지 않는다. 또한 사법 농단이 확연히 드러났는데도 법원은 대놓고 증거 인멸 위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 판결을 내린다.

노조 파괴 공작 혐의를 받고 있는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이상훈의 구속영장은 또 기각됐다. 삼성은 이재용 구속 시점에서 약속했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약속을 최근에 뒤집었다.

〈중앙일보〉는 이런 주문을 했다. “불신을 씻으려면 정치적 경쟁자를 끌어안는 협치, 진영을 초월한 인재 등용, 현장의 외침을 듣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동굴을 뛰쳐나와야 한다.” 문재인이 “현장”의 사용자와 구 여권에게 불신을 샀으니, 양보와 후퇴로 해소하라는 것이다.

인천에서 개신교 우익이 성소수자 행사를 무산시킨 것, 난민 반대를 내세워 우익이 새로 결집하려는 시도 등도 눈여겨 보며 대응해야 한다.

물론 우파 야당들의 지지율이 즉시 회복되지는 않고 있다. 촛불 운동의 반우파 정서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그래서 또한 문재인은 개혁 포장지를 폐기하지 않고 있고, 몇몇 조처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회복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경제나 안보 상황이 불확실한 탓에 이런 아슬아슬한 상태가 오래가지는 못할 듯하다.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회복되지 못하면 이 나라 공식정치를 지배하는 두 정당 모두 위기인 셈이다. 구미에서처럼 정치 불안정과 새로운 양극화가 일어날 수 있다. 기성 정당들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말이다.

이런 때 진정한 진보, 즉 좌파는 반자본주의적·반제국주의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 개별 투쟁들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다. 이 투쟁들을 (정치적으로) 보편화하려 해야 한다. 우파들의 악선동에 맞서 난민 문제 등에서 노동계급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개혁주의적 운동 지도부들은 문재인 정부의 약화가 우파를 되살릴까 봐 문재인 비판에 더 주저하는 듯하다. 특히, 민주노총 지도부는 단연코 노동개악 때문에 문재인 지지율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사회적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해 현장 조합원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

문재인의 우선회가 우파 사기를 회복시켜 주는데도 노동운동이 문재인 비판을 삼가면 우파는 더 신이 날 수밖에 없다. 문재인을 두들겨서 그 왼쪽까지 침묵시키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는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계와 노동운동이 문재인에게 인내심 많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을 자초하는 길이다. 노무현 정부 후반부(대략 2005년 이후)의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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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퇴출법’ 발의를 환영하며

기사들 2016. 7. 1. 13:43


‘국정교과서 퇴출법’ 발의를 환영하며

국가 통제적 역사교육 강화 반대한다


<노동자 연대> 177호 | 발행 2016-06-29 | 입력 2016-06-28


6월 23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대표 발의자로 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도록 하는 경우에는 국회의 심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는 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위해 공동 입법을 한다는 야3당 합의에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뒤로도 교과서 집필진과 집필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예비비로 편성된 예산 44억 원의 사용처 정보도 밝히지 않는 등 문제를 일으켜 왔다.


44억 원 예산의 용도를 밝히지 않으려고 세금으로 변호사를 5명이나 사서 여덟 달을 버텼지만, 결국 44억 원 중 25억 원을 교과서 국정화 홍보에 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부 문서에는 국정화 반대 여론을 “소모적 논쟁”이라고 부르고 이를 잠재울 홍보가 필요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홍보 예산을 세금에서 갖다 썼어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노동개악, 세월호 참사, ‘위안부’ 문제 한일 합의, 보육 예산 사태 등과 겹쳐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한 이유가 됐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역사 교육에 대한 국가 통제 강화를 뜻한다는 점, 이는 교육 내용에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등 역사 왜곡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평범한 사람들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국정화 강행 당시, 박근혜는 친일이나 독재 미화 같은 건 있을 리 없다고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랬다면 굳이 기존의 교과서 검인정 체제를 국정화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궁극으로는 자유발행제로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역사서들도 교과서로 채택될 수 있어야 한다. ⓒ사진 조승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한 우익적 역사 왜곡과 재해석은 단지 박근혜가 자기 아버지 박정희를 미화하려는 의도(“효도”)에서 한 일만은 아니다. 한국 지배자들의 독재, 친일, 부패, 착취 경력을 은폐·미화해 한국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재확립하려는 것이다.


즉, 1987년 민주화 과정 시작 이후 학계와 교육계 모두에서 현 주류 지배자들의 과거(실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가 부정적으로 다뤄진 것을 되돌리려는 의도다. 어느 정도는 경제 성장과 국제적 지위 향상을 경험한 한국 지배자들의 자부심도 반영됐을 것이다. 전경련은 뉴라이트 등장 전부터 교과서 전반이 기업과 기업주들, 자유시장 체제를 긍정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며 이를 바꾸려고 애를 써 왔다.


그런데 이제는 세계경제 위기와 동아시아 안보 위기 때문에 한국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과거 냉전을 배경으로 경제 성장을 위해 벌였던 일, 즉 노동계급을 억눌러 쥐어짰던 일을 (1백 퍼센트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되풀이해야 할 처지에 있다. 그러므로 독재와 착취의 과거를 미화하는 것은 오늘날의 반동을 정당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박근혜에게는 선거 참패 때문에 포기하기엔 더 장기적이고 중요한 일들이 교과서 국정화의 배후에 있다. 따라서 “국정화 재검토를 협치의 시금석으로 삼자”(참여연대)는 일각의 요구를 박근혜 정부가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근혜는 오히려 총선 참패의 효과를 조기에 차단하려고 구조조정 공세를 펴며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를 강행하는 등 안간힘을 써 왔다.


그럼에도 대중적 반감이 강력하기 때문에 여권 내에서도 슬금슬금 레임덕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여전히 정권에 불리한 요인이다. 물렁한 야당들도 여소야대 구도를 만든 대중의 압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 대선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선 직후 좋은 기회를 놓치긴 했지만 사회운동의 대응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대형 집회들을 보면, 주최 측 예상보다 참가자도 많고 분위기도 밝다. 2016총선시민네트워크가 총선 직전에 온라인 설문과 심사 등을 거쳐 선정해 최근 발표한 “20대 국회: 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10대 과제”의 두 번째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폐지”다.(첫 번째가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이다.)


국회를 무대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되돌리는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역사 교육에 국가주의를 강화하려는 것은 체제의 정당성이 의심받는 경제·안보 위기 상황에서 현존 계급 지배 질서의 정당성을 재구축하려는 시도이므로, 국정 교과서를 반대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이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정제 저지에서 더 나아가, 자유발행제를 통해 다양한 역사 해석들이 교육에 반영돼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에 입각한 훌륭한 역사서들이 늘어나고 교과서로 채택될 기회가 보장되는 것이 노동계급의 정치의식 함양에 훨씬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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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을 버리자? 정치적 실용주의에 관해

주고받는 생각들 2015. 6. 30. 15:30

노동당 결집파 일부, 정의당 대표 선거에서 조성주 등 진보정치 일부에서 ‘낡은 이념정치를 버리자’는 얘기가 다시 나온다.


이념/이론은 한 개인 또는 한 집단이 세계를 일관되게 바라는 시각과 기준 즉 관점과 방법을 일컫는다.


이념/이론이 기본적으로 세계관의 문제라는 말은, 각자 개인적/집단적 경험과 그 경험에서 유추한 부분적 통찰들, 사회의 지배적 상식들을 조합해 나름의 ‘세상보기틀’을 만들어낸다. 즉, 그것은 일관된 체계를 갖춘 이론일 수도 있고, 짬뽕일 수도 있으며, 개인들의 개똥철학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나름의 이념/이론/세계관(인생관)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특정한 이념적 틀을 선호하거나 선택할 수도 있고, 이것저것 조합할 수는 있어도, 이념/이론 자체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각 개인들이 최종 취사선택해 얼개를 짜는 특정한 사고 체계는, 우리 뇌가 외부의 객관적 세계를 인식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인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벌이는 활동의 맥락에서 자신의 이념/이론(세상보기틀)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자신의 목적 실현에 유용한지를 검증할 뿐이다.


그래서 사실은 “이념이 쓸모 없고 당장의 먹고 사는 게 더 중요하며 그래서 거추장스런 이념을 벗어던지자”는 것이 하나의 이념이다. 


이런 세계관을 좀 더 다뤄 보자면, 먹고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마르크스 유물론의 기본적 전제다. 문제는 첫째,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삶이 단지 배고픔을 해결하거나 욕구 문제로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사람들이 먹고 입으며 살아가는 방식이 현재의 사회에 어떻게 구조화돼 있냐는 것이고, 셋째는 내가 어떻게 먹고 살 것이냐 하는 문제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자기 삶의 조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이것을 ‘계급 관계’에 기초해 설명한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은 ‘놀라워서’ 자신의 계급관계와 인식이 자동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념/이론은 객관적 사회관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개별적, 역사적 경험의 문제이고, 각 개인의 기질과 성격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이념/이론은 그것이 각 개인의 계급 관계에 들어맞든 안 맞든 어느 정도는 각 개인이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이유로 이념/이론은 인간 집단의 능동적/지적 활동들  속에서 복수로 경쟁하는 관념들이다. 우리 삶은 인식에서 실천까지 끊임없는 선택에 놓여있다. 많은 대중은 자신의 계급적 처지와 보고 듣고 배운 세계관들의 모순된 조합을 이념/이론으로 갖고 있다.


그래서 다수는 기존 사회의 기성 질서에 무조건 순종적이지도 않고, 완전히 혁명적으로 거부하는 입장도 아니다. 대체로 개혁주의적인 것이다. 개김과 순응의 적당한 섞임. 그 배합 비율은 격변적 사건의 경험이나 계급 세력관계에 따라 매번 바뀐다. 또 개인마다 다르다.


그래서 다시 강조하건대, 우리가 지각 있는 인간이라면 이념/이론/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첫째, 이념 없는 정치는 없다. 없는 걸 하자고 하는 사람은 사기꾼 아니면 무능한 인물일 것이다. 세계를 일관된 틀로 해석할 수 없는 정치가 미래 사회의 설계를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념 없는 정치는 전형적으로 흑묘백묘론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배부르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내가 왜 배고픈지를 알려고 해야 한다. 죄를 지어 감옥에 가도, 밥은 나오고, 부자들의 시종이 돼도 밥은 나온다. 굶어가며 투쟁하는 것도 밥을 위해서다. 


힘들고 지쳐도 정해진 시간 동안 노동력을 팔고, 비굴하게 웃고, 때론 땡볕에 집회를 하고 밥새워 농성을 하고 심지어 공장을 점거하고 경찰과 싸워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수틀리면 단식과 고공농성 같은 것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어떻게 배를 채울 것인가도 중요하다. 작은 성과, 작은 승리의 경험 좋다. 지금보다만 나으면 좋은 거다. 그런데 그 밥은 계속될 수 있는가? 아닌가? 이런 걸 이념 없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너무 나쁘니까 유승민이 박근혜에게 이기면, 그 자체로 진보인가? 맥락은 진보되, 그 자체는 진보가 아니다. 유승민이 부상하는 게 어딜 봐서 진보인가. 박근혜도 망설이던 싸드 도입하자고 난리치던 인간인데. 


다만 맥락상 대통령 권력이 약화되는 것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맥락상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건 왜 좋은지, 왜 좋게 됐는지, 좋은 일이 계속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


심지어 무엇이 정말로 좋은 건지에 대해서도 일관된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판단의 기준이 될 이념(이것의 통속적 버전이 가치관/세계관) 없이 무엇으로 이런 걸 판단할 수 있다는 건지 도저히 알지 못한다.


사실 밥에 의존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솥도, 쌀도 없기 때문이다. 급진적 이념? 과격한 투쟁? 이 모든 게 세상이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생활수단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운 좋으면) 착취받는 노동에 평생 시달려야 하고, 그 자리를 더 좋게 하려고 조직하고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계급의 이념/이론이다. 


이것을 체계 있게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이념/이론이고, 없는 사람이 더욱 더 이념/이론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다. 노동자들은 여럿이 싸워야 막강한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념/이론은 더 체계화돼야 하고, 효율적인 수단으로 보급돼야 한다. 이념/이론에 바탕한 조직이 필요한 이유다.


둘째, 그러니 없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와 이념을 배치시키는 것은 사실은 이념이론 일반이 아니라 특정한 이념/이론, 즉 계급투쟁의 이념/이론을 배제하자는 것이고, 투쟁의 고단함과 헌신을 버리자는 말의 그럴싸한 포장인 것이다. 


자력 해방을 위한 싸움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투쟁 없이는 자기 몫을 정당하게 쟁취할 수가 없다. 자기 행동 속에만 대중은 스스로의 힘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투쟁을 소모적으로 보는 것은 자력 해방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실상 그 가능성, 즉 노동계급 대중의 잠재적 자력 해방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대중 스스로 해방적 이념/이론을 비교 검토하고 취사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셋째,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세계를 총체적으로 체계 있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 노동자에겐 늘 계급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이념/이론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그러한 사회를 총체적으로 분석해 이해하고 변화의 길을 제시하는 이념/이론이 필요한 때다.


세계적 규모의 경제 위기가 국제정치의 향방을 한계 짓고, 국내의 임금, 노동조건, 복지 삭감을 추동한다. 이런 배경에서 강대국 간 갈등이 고조되며, 각국에서 정치 위기와 계급 적대가 격화되고 있다. 즉 노동자 개인들의 삶을 옥죄고 밥그릇을 위협하는 것이 거대한 사회구조적 위기와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법으로, 단협으로, 작업장의 관행으로 애써서 쌓아놓은 개혁 성과들이 반복해서 도루묵이 되기 때문에, 이 사회의 어떤 면이 그렇게 만드는지, 항구적 개혁을 이루려면 사회의 무엇, 또는 사회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반면, 갈수록 주류 언론, 출판, 교육 등은 노동 대중의 이런 욕구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개혁을 주지 못하는, 심지어 개혁을 도로 빼앗는 개혁주의 조직[기구]들도 대중의 욕구에, 또는 새로운 이념 제시에 실패하고 있다.


넷째, 따라서 이런 때에 자칭 ‘진보주의자’라는 사람들이 ‘이념의 정치화’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우경화의 정당화, 책임회피, 무능 셋 중 하나라고 본다. 대부분은 셋 다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으며, 대중에게 뭘 바꾸자고 설득할 수 있겠는가.


인식 상의 선택 기준과 방식을 포기한다는 것은 일관된 잣대 없이 그때그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념 배척주의가 실용주의인 이유다.


다섯째, 그래서 이들의 이념 포기 선언은 모든 이념의 포기 선언이 아니다. 사회를 변혁하자는 좌파 이념, 급진적 이론과 결별하자는 선언이다. 갈수록 하층민들을 나락으로 내모는 세상의 구조를 현상유지하면서 세탁질, 땜질에 그치자는 정치다. 그러므로 이것이 누구에게 보여 주려고 하는 선언인지는 분명하지 않겠는가.


오늘날 유럽판 진보정치의 대표주자인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위기는 단지 외부적 위기만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대표한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환멸과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동자 대중이 이런저런 방식의 세탁질에 이제는 기대할 게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정치 위기, 좌우 양극화(극우/파시스트의 성장과 좌파개혁주의 정당의 부상) 등이 일어나고 있다. 다수의 ‘상식적 개혁주의’ 세계관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변화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념이 대중에게 필요없다거나 대중은 이념적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하는 것은, 현상만 보고 이면을 보지 않는 것이고 사실은 대중을 수동적 객체로 보는 것이다. 이념을 이해하고 검증해 자기 것으로 만들 대중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출발부터 자기제한적인 것이다.


일상적 시기에 노동계급 대중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잠재력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구조적 잠재력이므로 이론(이념)적으로 이를 증명해야 하고, 둘째, 불가피하게 거듭 치러내야 하는 투쟁이 확대되고 깊어지며 스스로 힘을 자각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운동 정치에서 이념을 버리자는 말은, 노동계급 대중의 삶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그 잠재력을 부정함으로써 가장 유력한 길을 봉쇄하는 것이다.


이념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실용주의 언사들이 실천적으로 뜻하는 바는, 선거에서 좋은 당선자를 내는 것으로 진보정치의 임무, 진보적 노동 대중의 임무가 끝난다는 것이다. 이념을 따지지 말거나 이념적으로 편향된 인상을 주지 않아야 일상적인 때의 선거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념 배제론은 정치인과 지지자들의 맺는 관계가 투쟁에서의 소통과 연대, 논쟁이 아니라 선거 시기에 표를 매개로 이뤄지는 관계가 돼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배신당한 유권자들이 다음 선거에서 사후 복수 하는 것 말고는 사태를 바로잡을 수 없는 관계다. 거의 1백 년 가까이 개혁주의 정당들의 반복된 국제 경험이다.


때문에 실용주의의 자기제한적 발상으론 애초에 승리하는 싸움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아 ... 허무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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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2년 ― 지연된 반동 공세와 정치 양극화

기사들 2015. 3. 19. 12:03

※ 분량 제약 때문에 줄였던 부분 중 일부를 되살린 버전.


박근혜 2년

거듭 지연된 반동 공세와 팽팽해진 정치적 양극화




2012년 12월 박근혜가 당선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노동자와 활동가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파 재집권에 실의와 좌절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만만찮은 민심에 잘 보이려고 대선에서 “아버지[박정희]의 꿈이 복지국가”라는 흰소리를 해댔지만, 선진 노동자들은 대체로 그런 거짓말에 속지 않았다.(이 중 일부는 박근헤 당선으로 사기저하되기도 했지만 팽팽하던 세력균형이 바뀐 건 아니었다.)


이런 계급적 직관이 더 통찰력 있었다는 것이 취임식 전부터 분명해졌다. 박근혜 표 ‘신뢰의 정치’는 오로지 기업주들과 우파를 위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핵심 공약이던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 공약이 취임식도 하기 전에 폐기됐다. 기초생활보장 예산도 삭감했다. 당선 직후부터 대선 복지 공약은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서 거두어들이라고 ‘조언’했던 조중동은 이런 조처들을 반겼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 · 철도 · 은행 민영화 등을 공언하고 부자들에게 활로를 터 주려고 부동산 경기 부양책에 매달렸다. 그런 부담들은 은근슬쩍 노동자 증세로 때웠다.


결국,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이라며 호통치던 박근혜 2년 아래서, 부자에겐 ‘증세 없는 복지’가 제공되고 노동자 · 민중에게는 ‘늘어난 것은 세금과 빚뿐’인 현실이 됐다.


이런 고통전가 정책이 성공하려면 노동자 투쟁에도 족쇄를 씌워야 했다. 기업 규제를 “암 덩어리”라며 ‘규제 완화를 위한 전쟁’을 선동하던 박근혜는 노동운동에는 온갖 제약과 탄압을 선물했다.


박근혜 정부는 20년 전 민주노총 창립 이래 민주노총 본부를 경찰력으로 침탈한 첫 정부였다. 해직자에게서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라며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시도했다. 형법 내란 선동 · 음모죄 조항을 부활시키고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진보당을 해산시켰다. 불법 채증과 통신망 사찰을 남발하며 집회 참가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집권 3년차에는 더 본격적인 고통전가를 추진하려 한다. 정리해고는 물론이고 일반 해고까지 그 요건을 완화하고,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확대 정책으로 임금비용을 대폭 줄이려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시도는 정부 재정 부담을 줄일 뿐 아니라 국민연금 삭감, 전반적 임금 삭감으로 이어가려는 수작이다.



경제 · 안보 위기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를 전반적으로 악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박근혜 정부의 진정한 존재 이유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근이 버텼던 한국 자본주의도 곧 본격 위기로 빠져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져 왔다. 또한 경제 위기가 낳은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동북아시아에서도 강대국 간 갈등을 낳고 있다. 이런 갈등을 배경으로 한 미 · 중 사이의 줄타기 문제와 남북 갈등 심화를 놓고 한국 지배자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 안보의 이중 위기 속에서 우익 지배자들은 단호하게 노동자들을 공격해 경제 위기 고통을 전가하고 국가적 단속을 할 정부가 필요했다. 단순히 위기를 겪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안정적인 관리자”가 아닌 ‘공격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유신 DNA의 박근혜가 딱 적임자였다.


박근혜의 당선 과정부터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선거 개입으로 얼룩진 것은 이런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지지 기반 때문에 집권 과정은 물론이고 정부의 인사 전반이 부패와 반민주적 인물들의 향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신헌법의 기초자 김기춘, ‘미스터 국가보안법’ 황교안 등 엘리트 공안검사 출신, 군부 출신이 중용됐다. 심지어 미국 CIA에 협력했던 자까지 끌어들이려 했다.


올 2월 말에는 지지율 하락을 만회한다며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 현직 국정원장이자 공작정치의 대가인 이병기를 임명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북한 위협론으로 ‘빨갱이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주요 통치 수단으로 삼아 왔다(냉전적 반공주의). 이를 통해 자유주의 세력과 의회 내 진보정치 세력들을 위축 · 순치시키고 좌파의 영향력이 확산하는 것을 축소 ·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거듭 지연된 반동 공세


그러나 박근혜의 이런 우경화 본색은 자주 벽에 부딪혔다. 복지 공약 파기와 인사 파동으로 박근혜는 취임시 지지율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위선을 꿰뚫어 봤던 조직 노동자들이 정권 초기부터 고통전가 공세에 맞선 투쟁의 최선두에 서 왔고 이후 저항의 주 동력이었다.  박근혜 첫해 지지율 조사에서 부정적 평가가 가장 높고 지지율 하락 폭이 가장 컸던 때도 2013년 12월 철도 파업 때였다.


(※ 조직 노동자들은 대선 직후 잠시 우울함을 맛보기도 했고 개혁주의 리더들의 영향으로 정치적으로 명확하진 않았지만 세력균형에서 밀렸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곧바로 저항에 나섰다. 대선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세력균형이 노동계급에게 불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박근혜의 대선 때 언행과 공약이 실체와 달리 포퓰리즘적이었던 것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도 박근혜 정부에 타격이 됐다. 사건 자체가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에서 노동자 계급의 생명과 안전이 뒷순위로 밀렸음을 드러냈다. 이에 더해 박근혜가 기업과 관료를 보호하려고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에 전혀 성의가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불신과 분노는 더한층 커졌다.





이런 어려움에도 박근혜는 2년 내내 통치권 강화를 위해 국가기관 전반에 낙하산 인사를 단행하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이도 그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2013년 8월에는 노동운동 공격을 막 본격화하려는 시점에서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제동이 걸리는 판결이 나와 타격을 입었다.(당시 전교조 조합원들의 강경한 법외노조화 거부 태세가 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 2월에는 박근혜 당선에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을 구속하는 판결이 나왔다. 검찰 내부에서 이 사건 수사를 놓고 한때 항명이 일어나 청와대가 검찰총장까지 날릴 정도로 사건 은폐에 애를 썼는데도 그리된 것이다.


3권 분립이 애초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를 통해 선출된 의회와 대통령 등을 견제하려고 교묘하게 고안된 부르주아 지배 체제인 점을 감안하면, 3권 분립이 자본주의 우익 정부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역설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통치 스타일은 ‘유신’이지만 유신 체제 회귀는 아니고, 이 정부 아래서 팽팽한 세력균형 때문에라도 지배자들이 쉽게 ‘동의에 의한 지배’의 장점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노동자 연대>의 전망이 옳았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식 반동이 거듭 지연된 것 때문에 이 정부는 우익 기반 안에서도 점차 신뢰를 잃어 왔다. 이 때문에 올해 박근혜는 더더욱 전면적인 반노동 공세를 관철하려고 악착같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애초에 이런 공격을 위해 집권한 정부가 집권 3년차에야 이를 본격화하겠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상황이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는 것도 보여 준다.



노동자 민주주의


이렇게 봤을 때, 정치적 양극화가 팽팽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 국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동운동이 저항의 선두에 섰지만 손에 쥐는 성과를 얻은 것도 없다는 점도 봐야 한다. 여기에는 운동의 정치, 특히 노동운동 상층 리더들의 개혁주의 정치의 문제가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박근혜 정부의 유신 회귀 반민주 세력에 맞서 새정치민주연합, 중간계급 등과의 계급 협력적 방식으로 싸우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즉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성장해 ‘강압’만으로는 이를 다루기 어려워지자, 어쩔 수 없이 자본가 계급이 부르주아 지배 체제에 노동자 민주주의 요소를 ‘일부’ 허용한 체제다.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합법적 임금 인상 투쟁, 복지 확대, 정치적 표현과 결사의 자유 등.


이는 민주주의의 동력이 노동자 투쟁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가 노동계급에게 권력을 분배해주는 체제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래서 노동계급과 자본가들 사이의 화해는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를 제기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오로지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권력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단절하는 과정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


때문에 계급을 가로질러 협력하자는 전략은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에서조차 효과적 방식이 못 된다. 자본의 이윤에 타격을 주는 노동계급의 고유한 투쟁 방식(이자 가장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야권연대에 기대를 걸고 자기 제한적으로 싸운 경우들이 그렇다.


부르주아 야당으로서 새정치연합은 자신들의 권력 접근을 보장할 절차적 민주주의의 일부 요소를 보호하는 문제 외에는 진지한 열의가 없다. 철도 파업, 연금, 세월호 참사 등에서 거듭 입증돼 왔다.


이런 분석이 노동운동에게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 위기가 계속될 것이므로 그에 따른 안보 위기, 정치 위기도 지속될 것이다. 이에 따른 지배계급의 동요와 신경질적인 탄압도 벌어질 것이다. 이는 박근혜가 가려는 길과 그가 느끼는 위기감을 동시에 보여 준다. 지금 박근혜는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을 국면 전환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


둘째, 노동운동은 계급투쟁적 전략으로 저항에 나서야 한다. 노동운동의 투쟁 태세가 확고하고 강력해 보일 때만 지배자들 안에서, 박근혜와 그 지지 기반 사이에서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셋째,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사회적 내용이 노동자 민주주의이므로 정치적 요구를 내건 투쟁뿐 아니라 부문적 경제투쟁들도 중요하다. 중요한 점은 두 가지 형태의 투쟁을 결합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둘 모두 이윤에 타격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노동자들의 투쟁이 단순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런 일들을 효과적으로 해 내려면 ‘정치’가 중요하다. 공식정치에 선거로 대응하는 것만이 노동자 정치가 아니다. 이간질에 맞서 노동자 계급을 단결시키기, 북한 위협 등 안보를 이용해 노동자 운동을 위축시키려는 시도 등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노동계급 운동 안에 더 많이 뿌리 내리고 성장해야 한다.




기사 원문: <노동자 연대> 144호 | online 입력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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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인 청와대 이전투구와 이후 전망

기사들 2014. 12. 21. 20:40

점입가경, 청와대 이전투구

 

 

<노동자 연대> 140호 | 발행 2014-12-22 | 입력 2014-12-20  

 

 

청와대의 이전투구 양상이 가관이다.

 

최근 소동의 시작은, 청와대 전 공직기강비서관 조응천 등이 박근혜의 전 비서실장 정윤회에 관해 만든 보고서가 폭로된 사건이었다.

 

선출된 적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임명된 적도 없는 정윤회 등이 청와대 비서실장(김기춘)을 교체하니 마니 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모의했다는 내용은 정권의 부패 실상을 미루어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보고서의 배후로 지목된 박근혜의 친동생 박지만 쪽 인사들이 보고서 작성 후 정권 요직에서 줄줄이 밀려난 것이 확인됐다.

 

이때만 해도 정윤회와 박지만 사이에서 벌이는 측근 간 권력 다툼인 것으로 보였다.

 

박근혜처럼 권위주의 통치 스타일의 정부에서는 상명하복식 권력 집중 때문에 비밀주의가 만연하고, 따라서 측근들이 월권을 하고 전횡을 휘두르는 부패상이 특히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나서서 ‘보고서 내용은 찌라시고, 보고서가 유출된 게 국기 문란이고 진짜 문제’라고 사실상 정윤회 편을 들었다.

 

박근혜의 발언은 그대로 검찰의 수사 가이드라인이 됐고, 검찰은 박근혜가 불러준 대로 수사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비호 덕분인지 정윤회는, 검찰에 불려갈 땐 국가정보원장도 통과한다는 보안검색대도 거치지 않고 위세 있게 검찰청에 들어가 조사를 받았다.

 

빨리 덮겠다는 의도였겠지만, 박근혜 스스로 측근 간 스캔들 문제를 자신이 직접 연루된 권력 스캔들로 키운 꼴이 돼 버렸다. 정윤회가 ‘진돗개가 되겠다’고 한 지 5일 만에 박근혜가 해명한답시고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고 한 것은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한 편의 코미디였다.

 

또한 청와대 내 통제력에 이완 조짐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박지만 부부에 대한 1백 쪽 분량의 동향 보고서도 봄에 청와대에서 유출됐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정윤회 보고서 작성자인 박관천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에 회의감이 든다”며 “언젠가는 내가 말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보고서 유출자로 몰린 최모 경위는 청와대의 압박이 부당하다며 자살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정부 지지율도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무리 떨어져도 40퍼센트라던 지지율이 12월 2~3째 주에는 3곳에서 3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특히 전통적 여권 지지층에서 지지율이 하락한 것이 눈에 띈다.

 

이뿐 아니다. 지금의 정치적 위기가 깊어지면, 여권에서 박근혜 세력과 이명박 세력 간 분열이 발전할 수도 있다. 지금 이명박계는 혹시라도 박근혜가 위기 모면용으로 자신들을 속죄양 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대응 카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는 일단 우익 내 균열을 봉합하려고 종북 몰이로 방향을 틀었다. 헌법 ‘죄판관’들은 당초 예상보다 선고기일을 앞당겨 진보당 해산과 의원직 박탈을 결정했다.


 

 

경제 위기와 통치자들의 위기감


 

박근혜의 조급하고 신경질적인 대응은, 정권의 위기감을 보여 준다.

 

최근 세계경제 상황이 다시 악화하면서, 한국 경제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노동자 계급에게 본격적인 경제 위기 고통전가 공세를 벌여야 할 상황인 것이다.

 

이 정부는 11월부터 노동자 계급 전반을 향한 파상공세를 시작했다. 공무원연금 연내 개악 시도, 의료 민영화, 해고 요건 완화, 통상임금 개악 등.

 

그런데 역시 청와대의 부패와 분열이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하다. 정권 내부의 추한 균열이 드러나고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칫 고통전가 드라이브의 동력이 약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ㆍ안보 위기에 겹쳐진 정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박근혜는 더욱 더 강성 우익적 본색을 강화할 것이다. 그것이 내부 균열 봉합에도 유리하다고 볼 것이다.

 

지배계급 처지에선 고통전가의 필요성이 절박할수록 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단속할 필요도 더 커지기 때문이다. 박근혜 본인이 정치권에 들어 온 이래로 줄곧 강성 우파의 대변자였다.

 

따라서 진보당 해산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진보당 통장을 압류하고 보궐선거 일정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하는 따위의 야비함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본색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리수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위기감이 크다는 것도 드러났다.

 

 

멈추지 않을 박근혜의 도발,

단호한 투쟁과 정치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첫째 정치 위기 속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노동자 계급 전반을 향한 고통전가 공세를 계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런 공세가 우익만 강화시키기보다는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사실 그동안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 부패 인사 문제, 복지 공약 철회, 서민 증세 등으로 박근혜 정부의 통치 정당성은 약화돼 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응은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최근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에서 보듯 반기업 정서도 상당하다.

 

친기업 경제 살리기로 돌진하려는 박근혜에게 이런 상황은 상당한 난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는 조직 노동자 운동이 선두에 서서 (비록 방어적인 과정이었지만) 박근혜의 고통전가 공세가 쉽게 전면화하지 못하는 방어막 구실을 해 왔기 때문이다.

 

호각지세를 이룬 세력균형에서 박근혜 정부의 무리수는 도리어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자극할 수도 있다.

 

민주노총 선진 노동자들의 정서도 이런 방향인 듯하다. 예상을 뒤엎고 한상균 후보가 1위를 한 민주노총 임원선거 1차 투표 결과가 좋은 증거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이 진보당 해산 결정에 위축되지 말고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만큼 단호하게 싸울 태세를 갖춰야 한다.(※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전면적인 투쟁을 호소하는 한상균 후보에게 투표해 당선토록 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일들을 잘하려면, 노동자 계급을 투쟁으로 단결시킬 정치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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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왜 우파 공세를 하려고 하는가

기사들 2014. 7. 1. 16:03




박근혜 정부가 정홍원을 유임시킨 것은 더는 인사 문제에 발목 잡히지 않고 정권 존재의 이유를 찾겠다는 뜻이다. 우파 지배자들이 합심해 박근혜를 민 것은 이런 친기업 반노동 공세를 잘 하라는 뜻이었다.


지금 한국 자본주의에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친기업 경제 살리기를 위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의료와 철도 등의 민영화, 공공부문 구조조정, 공공서비스 요금인상, 전교조를 비롯한 노동운동 탄압 등.


박근혜는 내각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부패하고 우파적인 인물들을 청와대 수석들로 임명하면서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비롯해 여러가지 국정과제들을 목표로 삼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수석실에서부터 중심을 딱 잡고 개혁의 동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각종 민영화, 규제완화, 임금과 복지 삭감 계획을 담고 있다. 따라서 나머지 장관 후보들의 임명도 강행하려 할 것이다. KBS 보복 인사도 준비할 것이다.


박근혜가 정치적 난관 속에서도 이런 공세를 펴는 것은 첫째,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주들을 위한 경제 살리기, 즉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성공하려면 조직 노동운동을 제압해야 한다.


둘째, 미국 힘의 약화가 친미 통치자 안에서 동요와 안보 위기감을 낳는 듯하다. 이 경우에도, 통치의 이완을 막아 보려면 역시 노동운동과 좌파를 단속해야 한다.


행정법원 재판부가 지난해 가처분 판결 때 논리를 뒤집어서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도 이런 맥락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 종합하면, 원래 그런 놈들이 위기감 속에서 더 칼날을 세우고 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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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마녀사냥

기사들 2014. 2. 12. 15:49

최근 ‘e-나라지표’를 통해 공개된 공식 통계를 보면, 국가보안법 기소율과 구속율 모두 2011년부터 다시 증가 추세다.


특히 박근혜 정부 첫 해인 2013년 기소율은 1997년 이후 처음으로 80퍼센트를 넘겼다. 구속자 수(38명)와 기소 건수(94건) 자체도 이명박 때(연평균 구속자 22.2명, 기소 55.8건)보다 증가했다.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의 본색 드러내기가 특히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국가기구의 강경화 추세는 국내에서 경제 위기, 지정학적 위기 등을 배경으로 자라나는 통치자들의 위기감과 초조함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지난 몇 년간 대체로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미국 정부의 양적완화 덕을 보며 버텨 왔다.


종속변수


그러나 회복되지 않는 세계경제 위기에서 나홀로 탈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에서 비롯한 최근 신흥국 위기는 한국 경제에도 경고등을 울리고 있다.


이런 처지에 국가재정 문제가 시급한 쟁점이 됐다. ‘공공부문 정상화’와 ‘민영화’ 문제가 시급해진 이유다. 한국 정부 자신이 경기부양으로 인플레를 용인했으므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도 커져 왔다.


이런 다급함 때문에 박근혜는, 한두 해 전부터 조금씩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조직 노동운동 전반을 동시다발로 공격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박근혜로선 노동운동과 본격 대결을 시작하기 전에 견제구를 날려야 할 뿐 아니라, 급진 좌파들의 노동운동 개입에도 대처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갈수록 대안으로서의 매력을 잃어가는 친북사상을 단죄의 이유로 내세움으로써, 탄압의 계급적 성격을 은폐하고 심지어 진보정치 세력 안에서 분열을 유도하려 한다.


이에 더해, 남한 통치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강대국들의 갈등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대북 적대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 상황이 주는 효과도 무시해선 안 된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각별히 친북사상을 문제 삼아 남북 간 전쟁시 내부 반란 위험을 과장한 것도 시사적이다.


(물론 박근혜는 올 봄 지방 선거 대응이나 정치 위기 예방 차원에서 대북 포퓰리즘 정책을 활용하고 싶은 유혹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진보진영을 분열시키는 효과도 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전략과 무관하게 움직일 수 없는 한국 통치자들의 처지 때문에 그런 독자적 움직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계 자본주의 위기와 제국주의 간 갈등 모두에서 종속변수인 한국 통치자들의 불안감 때문에 ‘외부 위협과 연계된 내부 세력’이라는 속죄양을 계속 찾게 될 것이다.


최근 ‘NLL 발언’을 이유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박창신 신부를 정식으로 수사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2ㆍ25 총파업


진보당 탄압과 최근 우익의 공세에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증거가 불충분해도 재판부의 무죄 선고를 기대하기는 힘들다(선고일 2월 17일). 만에 하나 내란 음모에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국가보안법은 유죄가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정치 세력과 노동운동은 단호하게 내란음모 피고인들의 처벌(마녀사냥)에 한 목소리로 반대해야 한다. 다행히 10만여 명이 구속자 석방 탄원 운동에 동참했다.


이제 초조해진 박근혜가 조직 노동운동 곳곳을 동시에 공격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일반화된 전국적 저항으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박근혜는 그럴수록 신경질적으로 나올 것이다.


조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하반기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박근혜의 교란ㆍ위축 시도에 흔들리지 말고 ‘2ㆍ25 총파업’ 등 자신의 요구와 의제를 앞세운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좌파도 여기에 기여해야 한다.


그런 투쟁이 성공적일수록 저들의 강경한 공세는 그 쓸모를 잃고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




※ <레프트21> 120호. 약간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 <레프트21>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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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대처를 얼마나 닮을 수 있을까

기사들 2014. 1. 13. 23:05




박근혜는 철도노조 파업에 대처하면서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처럼 보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것은 대처가 광원노조 파업을 깨뜨린 것을 연상시키려는 노림수였다. 이것이야말로 우익 지배자들이 박근혜에게 바라던 모습일 테니 말이다. 


박근혜 본인도 ‘원칙의 리더십은 물론 이공계 출신인 것까지 닮았다’고 흰소리를 하며 대처 리더십을 자신의 롤모델로 언급해 왔다. 


실제로 두 정부는 닮은 게 많다. 둘 다 신자유주의 강성 우파 정권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운동에게 “방패보다는 칼” 구실을 바라는 우익 지배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둘 다 기업 규제를 줄이고 복지 예산을 삭감하며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 주려 한다. 이를 위해 ‘법과 질서’와 냉전주의를 앞세워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강화하는 것도 닮은 꼴이다. 노동운동에 적대적이고 “법과 질서”로 위협하는 것도 닮았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성공한 대처 신화’를 한국에서 재연할 수 있을까? 세계경제 위기, 지정학적 환경, 계급세력균형 등을 비교 검토해서 확률적 예측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대처보다 훨씬 더 불리한 처지에 있고 운신의 폭도 좁다. 


경제 위기 효과


경제 위기는 노동운동의 분출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높아지는 실업률은 사기 저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당시 영국의 노동운동이 어떤 상태에서 경제 위기와 우파 집권기를 맞게 됐는지가 중요하다. 


1970년 집권한 영국 보수당 히스 정부와 우파 지배자들은 집권 첫 해에 ‘복지국가 유지를 통한 사회적 합의주의’를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전후 대호황이 불황에 자리를 내주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부실 기업 퇴출, 민영화, 노동조합 약화, 임금 통제 등 시장주의 공세가 주요 내용이었다(‘셀스던 합의’).


그러나 부실 기업 부도를 방치했다가 오히려 연관 기업들이 동반 추락하고 실업이 늘어나는 것은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1971년에는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약화시키는 법 개악을 했다가 노동계급의 전반적 반격에 직면했다. 한껏 고양된 산업투쟁의 전투성에 직면해 히스 정부는 레임덕에 빠졌고, 시장주의 공세를 포기했다. 당시 교육부장관이던 마거릿 대처는 ‘셀스던 합의’ 포기에 끝까지 저항했던 유일한 장관이었다. 


노동자 투쟁 고양의 결과로 1974년 노동당이 집권했다. 그러나 이 정부를 기다린 것은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의 경제 위기였다. 윌슨ㆍ캘러헌 정부는 영국 자본주의를 구하려고 노동계급을 배신했다. 그들은 보수당 정부가 추진했던 산업 구조조정과 임금 억제 정책을 이어받았다. 심지어 군대를 보내 파업을 진압했다.


영국 노총(TUC) 지도부는 자신들이 지지한 정부를 위해 투쟁을 자제하라고 설득하는 일을 맡았다. 노동당 정부는 현장조합원 운동의 리더들을 상근간부층으로 끌어들이는 법 개정을 했다. 기층의 압력을 완화시키는 제도 개혁으로 노총 지도부를 도운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 노조로 조직된 부문이 주도한 “불만의 겨울”(1978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임금 가이드라인에 저항한 노조들의 투쟁) 투쟁으로 임금 가이드라인을 분쇄하고 임금 상승을 얻어냈다. 하지만, 노동당과 오랫동안 연계돼 왔던 전통적인 노동운동 주축 부문의 사기와 확신은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노동당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보수당의 대안(노동당)은 있었지만, ‘배신한 노동당’의 대안은 없었다. 환멸과 대안 부재가 부른 정치적 혼란 때문에 상황이 반전되기가 힘들었다. 경기 침체와 실업 증가도 이런 상황에서는 사기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대처 정부는 이처럼 노동당 정부의 배신과 경제 위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전반적 사기가 꺾인 후에 바로 그 기회를 이용해 등장했다. 


광원 파업


그런데도 대처는 초기에 매우 신중해야 했다. 대처는 1980년 탄광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려다 노조가 반발하자 철회했다. 아직 노조와 대결할 준비가 안 됐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흥미롭게도 대처는 히스 정부가 노동운동 제압에 실패한 까닭이 노동조합의 ‘특권’을 한 번에 모두 뺏는 ‘노사관계법’을 섣불리 제정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예를 들면, 대처는 노동법 개악을 하면서 매우 순차적으로 접근했다. 그 초점은 피켓팅(대체인력 투입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투쟁)을 금지하고 파업과 관련한 노조 간부들의 면책특권을 없애는 것이었다. 


대처는 1983년 두 번째 총선에서 승리하고서야 탄광 구조조정을 본격화했다. 파업에 대비해 석탄을 비축해 놓고 탄광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대처가 연대 파업과 투쟁을 어렵게 만들고 노조관료 간 부문주의를 조장하고 난 뒤 비로소 영국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던 광원노조를 공격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대처가 막 집권했을 때 경제 상황은 지금의 박근혜처럼 암울했다. 영국 경제는 1980~81년 세계 공황의 한복판에 있었다. 1980~83년 사이에 제조업체의 약 4분의 1이 사라졌다. 실업자는 2백만 명까지 늘어났다. 


공교롭게도 1982년부터는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1984년부터는 실질적인 성장이 시작됐다. 물론 노동자들을 쥐어짠 결과였지만, 대처는 경기 회복을 민영화와 부자 감세, 기업 규제 완화, 노조 약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써먹을 수 있었다. 광원 파업은 오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적 노력에 해를 끼치는 ‘집단이기주의’라고 공격받았다. 


그럼에도 광원노조의 파업에 승리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처는 한때 양보를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바로 그 때 영국노총 지도자들은 연대파업을 취소해 버렸다. 버티다 못해 광원노조가 무릎을 꿇은 뒤에야, 실은 파업에 대비한 석탄 재고량이 거의 바닥나고 있었음이 알려졌다. 


이처럼 경기 침체와 전투성 저하, 지도부의 우경화 등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대처 집권기 노동운동은 부문주의와 투쟁 회피주의가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1984년 광원 파업이 1972년 파업 때와 달랐던 것은 바로 노동자 연대의 부족이었다. 자기 작업장에서 투쟁할 자신감이 없는 노동자들이 연대 파업에 나서는 건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차이점


박근혜는 대처가 광원노조 파업을 대했던 방식을 흉내 내면서 노동운동 전반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그에게는 대처가 가졌던 이점들이 별로 없다. 


우선, 세계경제 위기의 정도가 그때보다 심하고 따라서 한국 경제의 전망도 어둡다.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점차 회복되는 경제 상황을 억압적 신자유주의의 정당성 근거로 써먹었던 대처보다 불리한 점이다. 그래서 박근혜에게는 양보의 여지도 적다. 그래서 박근혜는 복지 공약을 대부분 백지화했고, 이것은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이것은 현실에서 '동의'에 기반한 통치전략(일부에 대한 경제적(부분적) 양보와 형식적 민주주의의 절차를 통한 지배전략)이 약화된다는 뜻이고 이는 저항이 거셀 경우 1970년대 초반 영국 보수당 정부처럼 지배계급이 내분을 겪을 위험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는 박근혜의 유신스타일 통치가 지배계급 내부 단속까지도 해야 한다는 뜻이고, 이런 통치전략이 강화할수록 실패의 위험성(판돈)도 커진다는 뜻이다.


또한 세계경제 위기에서 비롯한 제국주의 간 경쟁과 지정학적 불안정성도 박근혜에게는 운신의 폭을 좁히는 요인이다. 경제 위기는 국가 간 경쟁도 날카롭게 만든다. 특히 경제 위기가 불균등하게 전개되면서 국제 제국주의 질서의 세력균형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최근 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군사적 경쟁이 급속도로 날카로워진 배경이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해에 집권한 대처는 미국의 레이건 정부와 함께 신냉전을 부추긴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대처는 박근혜와 달리 강대국의 통치자였다. 국내 정치의 필요에 맞게 냉전주의를 조절할 수 있는 위치였고, 1985년 이후 신냉전이 해빙기로 전환하면서 운신의 폭을 넓혔다. 대처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국내 정치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 지배자들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성과 정치ㆍ군사적 차원의 한ㆍ미ㆍ일 동맹 강화 압력 속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 군사대국화하는 일본과의 동맹 강화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긴장 유발 요인이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니 대북 포퓰리즘을 활용할 여지도 크지 않다.(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정학적 쟁점들은 지배자들 내에서 분열 요인이 될 수 있다. 박근혜가 이 문제들에서 자신감보다는 신경질적으로 나오는 이유다.


경제 상황과 지정학적 환경이 박근혜에게 유리하지 못한 것은 취임 전후의 계급세력 균형과도 깊게 연관돼 있다. 


대처는 노동운동의 사기저하를 이용해 구조조정, 민영화, 노조 제압, 시장 경쟁과 법질서 확립을 슬로건 삼아 선거운동을 했다. 국가복지를 삭감하며 도리어 개인의 책임성을 요구했다. 민영화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처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고조되는 불만을 의식해 어울리지도 않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선거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이 지키지 못할 (그리고 못한) 약속은 정권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또, 철도 파업 내내 민영화를 하는 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이처럼 이데올로기 전투에서 박근혜는 불리한 처지다.


박근혜 정부의 맞은편에서는 1980년대 영국보다 더 전투적이고 투지가 살아나고 있는 조직 노동운동이 버티고 있다. 지난해 봄의 진주의료원 폐원 반대 투쟁부터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까지, 박근혜 정부에 맞서는 주된 동력은 노동자 투쟁이었다. 


박근혜는 유신 스타일의 공안통치 방식을 쓰려 하지만 그것이 노동운동에 크게 먹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광범한 대중의 지지를 받았고, 파업 동안 연대는 점차 확산됐다. 


조직 노동운동이 전투성을 조금씩 회복하는 상황에서는 경제 공황 같은 상황이 찾아오면 대처 때와 같은 사기 저하보다는 오히려 격렬한 계급투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공교롭게도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는 경제 위기 등의 다급함 때문에 노동운동을 동시에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는 도박을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있다.


개혁주의


그러므로 대처 당시 영국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우경화는 산업 현장의 전투성이 가라앉은 상황과 결부해서 이해해야 한다. 일면적으로, 배신적 개혁주의 지도자만 문제고, 그들만 아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처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 불리한 세력관계를 자초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자기 패배적 정책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정확히 직시하자는 것이다. 


대처는 1979년부터 치러진 세 번의 총선에서 내리 이겼는데, 매번 노동당의 득표 감소 덕을 봤다. 대처는 노동당에 져서 정권을 빼앗겼던 1964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얻은 것보다도 더 적은 득표율로 연이어 집권했다. “승리의 문턱에서 오히려 패배를 자초하는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놀라운 기술” 덕분이었다.


대처와 보수당이 포클랜드(말비나스) 전쟁을 1983년 총선을 위한 보수적 애국주의 캠페인으로 연결시켰을 때, 노동당 대표 마이클 풋은 이 전쟁을 지지하고 대처의 리더십을 칭송했다. 그것은 우익을 강화시켰고, 전통적 노동당 지지자들에게 실망과 환멸을 주는 행위였다.


1984년 당시 노동당 대표 닐 키녹은 광원 파업 때문에 노조를 비난했다. 영국 노총 지도부는 광원 파업 연대 건설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보수당의 노동법 개악을 받아들였다. 영국 노총이 1986년에 내놓은 문서 《일하는 사람들: 새로운 권리, 새로운 책임》은 이제 노동운동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파 지식인들도 이런 우경적 후퇴에 가담했는데, 공산당 소속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는 더는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전략이 불가능하니 화이트칼라 중간계급과 동맹을 맺고 온건한 의회주의 전략에 충실해야 한다는 “현대화”론을 강력하게 설파했다. “현대화”론은 스탈린주의 인민전선 전략의 1980년대 판이었다.


닐 키녹과 홉스봄 등은 노동당의 연이은 선거 패배를 [노동당이 상징한다고들 여긴] ‘계급정치’의 후퇴로 봤다. 그리고 그 후퇴의 책임이 자신들의 배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보수화’에 있다고 주장했다. 전반적 사기저하 탓에 이런 책임전가식 담론이 용인됐고, ‘정치’가 대중투쟁의 대용품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이때의 ‘정치’는 산업현장의 투쟁과 유기적으로 결부된 정치가 아니라 제도권의 의회ㆍ개혁주의 ‘정치’였을 뿐이다.


지금 세력관계상 한국의 노동운동 안에서 개혁주의자들이 1980년대 영국처럼 노골적으로 준동할 수는 없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의원단은 ‘불법’ 파업을 옹호했고, 비록 형식적인 것이었지만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연대파업 계획을 내놓았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좌파의 과제


따라서 한국의 좌파들은 대처 당시 영국보다 훨씬 더 나은 조건에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일부 좌파들은 박근혜의 우익적 공세를 과장하는 견해를 단념해야 한다. 흔히 그런 견해는 계급투쟁을 약화시킬 계급 타협(인민전선)을 추진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오히려 결코 불리하지 않은 세력관계를 이용해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 투쟁과 노동자 연대를 건설하는 일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의 전투성과 세력관계야말로 급진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고, 우파 정부를 패퇴시킬 진정한 힘이다. 물론 개혁주의자들도 기층의 압력을 받고 있으므로 초좌파적으로 그들을 대하기보다는, 현장 투쟁을 건설하는 일에 공동전선적 방식을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투쟁과 연대를 고무해 세력관계를 노동계급 편에 유리하게 만들려는 전략보다 법안 제출이나 당내 지도권 다툼 방식의 ‘정치’투쟁만으로도 사태를 바꿀 수 있다고 봤던 노동당 좌파들의 경험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이 중 토니 벤이 이끄는 ‘벤 좌파’는 1979년 총선에서 정권을 잃은 후 그 반작용으로 당내 선거에서 약진했다. 그러나 도취감에서 깨기도 전에 이들은 순식간에 세력을 잃고 변방으로 밀려났다. 계급투쟁의 수준이 낮아서 좌파의 의제를 추진할 실제 동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1983년에는 노동당 내 극좌파였던 ‘밀리턴트’ 경향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당에서 쫓겨났다. 이들이 주도하던 지구당은 폐쇄됐다. 런던시의회의 다수파를 장악한 “붉은 켄” 켄 리빙스턴 파도 계급투쟁과 유리된 정치투쟁의 한계를 보여 줬다. 광원 파업 패배로 세력관계가 기운 뒤인 1986년 대처는 광역시 정부 자체를 없애버렸다.(사라진 런던시의회는 2000년에야 부활한다.)


정리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매우 우익적인 정부로서 공안통치 스타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조직 노동운동을 표적 삼는 공격에 혈안이 돼 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표방하는 것처럼 그리 강력하지는 않다. 이에 맞서는 한국 노동운동의 지금 분위기는 1980년대 영국 노동운동보다 더 강하고 전투적이다. 


이것은 노동자 투쟁이 박근혜 정부에 맞서는 핵심 동력이 될 것임을 일러 준다. 아울러 당분간 팽팽한 세력관계 때문에 이번 철도 파업처럼 투쟁들의 결과가 모호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요구의 외형적 성취 여부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반의 의식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혁명적 좌파는 노동계급이 사기와 전투성을 회복하고 있는 이때를 노동운동에 뿌리 내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의 경험에서 배우면서, 투쟁을 고무하고 노동자 연대를 구축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경제와 지정학적 위험이 다가오는 가운데, 이에 맞설 유일한 힘인 ‘노동계급 중심성’을 후퇴시키자는 주장은 대안 부재 상황에 스스로 자리잡는 것일 뿐이다.



※ 이 글은 <레프트21> 119호에 약간 축약해 실렸다. ☞ <레프트21>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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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성격과 전망, 그리고 진보의 과제

기사들 2013. 1. 6. 16:11


유례 없는 좌우 양극화 투표 속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했다. 박근혜가 복지 약속 따위를 지킬 거라고 믿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세계경제 침체가 한국 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오는 상황에서 재벌, 고위관료, 조중동, 옛 군부세력 등 1퍼센트 반동적 지배자들이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똘똘 뭉쳐서 박근혜의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한진, 쌍용차를 봐도 좌우 양극화 속에서 지배자들이 갈수록 참을성(인내와 양보 의지)을 잃어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그것이 유례 없는 보수대연합의 배경 아니겠는가.]


박근혜는 당선 기자회견에서 “국민대통합”을 강조했지만, 당선 직후 그가 만나 감사와 축하 인사를 주고 받은 이들은 정몽구 같은 재벌 오너들이었다. 탄압과 장기 투쟁에 지쳐 목숨을 끊거나 지금도 철탑 위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노동자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사실 박근혜 정치 기반의 뿌리는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이다. 정치 일선에 들어선 뒤에는 ‘TK+구 민정계+재벌+사학재단’ 같은 반동적 기득권층이 그의 든든한 기반이었다.


2012년 시사만화가협회에서 시상하는 올해의 시사만화상 우수상 수상작.


박근혜 정부에서 내각이나 실세로 중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군을 봐도, 이한구·진념·김광두·안종범 등 모두 강경한 신자유주의 우파들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면면도 [일부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마찬가지다.


이런 기반만 봐도 박근혜 당선은 명백히 친재벌 신자유주의(냉전주의) 강성 우파 정부를 예고한다. 국제적으로도 세계자본주의 지배자들은 2008년 경제 위기 직후 국가 개입과 경기부양에 돈을 쏟았지만, ‘긴축과 내핍 강요’라는 신자유주의 기조는 여전히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우파 결집을 추구하면서도 말은 ‘복지·경제민주화’ 등 포퓰리즘을 앞세웠던 박근혜도 선거 막판에는 ‘내가 말한 경제 민주화는 [5년 전] 줄푸세 공약과 다르지 않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부가 기본적으로 취할 방향은 분명하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노동계급 생활수준을 공격할 것이다. 미국 중심의 친제국주의 정책도 유지할 것이고, 대북 문제 뿐아니라 국내에서도 냉전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이에 대한 불만이 저항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민주적 권리를 축소하고 사회 분위기가 오른쪽으로 옮겨가도록 시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 성소수자, 좌파, 청소년 등을 마녀사냥하며 분열·지배 방식을 강화할 것이다. 이런 시도 때문에 한동안 상당히 불편한 시기가 될 것이다. 


2013년 예산도 신자유주의적 균형예산 기조로 확정했다. 그러면서도 제주 해군기지 예산은 전액 보전된 반면, 학비 호봉제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군부는 박근혜 당선 직후 발간한 ‘2012 국방백서’에 ‘NLL이 국경선’[각주:1]이라고 못박았다. 검찰은 해묵은 일을 끄집어내 국가보안법 마녀사냥도 다시 벌이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 사법부 등 국가기구에서의 우위를 이 과정에서 이용하려 할 텐데, 이는 우파적 반동 시도가 국가기구의 권위주의화 시도와 연결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노동운동에게도 민주주의 쟁점과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반동적 성격과 의도를 밝히는 것이 상황이 그들의 뜻대로만 흘러갈 거란 뜻은 아니다. 어떤 행위주체도 객관적 조건을 무시하고 의지만으로 세상을 주조할 순 없다.


지금껏 박근혜 정부와 지배계급의 반동화를 낳은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의지·방향을 살펴 봤으니,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의 반동성을 제약하는 조건을 따져보자. 첫째, 곧장 이 나라가 1987년 이전의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민주화의 핵심 동력인 노동운동의 조직과 의식이 [투지가 아주 높지는 않아도] 전반적으로 건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학자들의 허구적 과장과 달리 부르주아민주주의란 노동계급의 투쟁과 조직의 성장 속에서 확장돼 왔다.] 이런 힘이 유지되면 우파 정부가 들어서도 함부로 권위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박근혜 시대가 영국의 80년대로 가느냐, 한국의 80년대로 가느냐는 진보와 노동운동의 대응에 달려있다. 저들이 영국의 80년대로 가고 싶어하는 것이 분명해졌으므로.


둘째, 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친기업 정책에 대한 반발로 복지 요구가 강해져 왔다. 박근혜가 “등록금 부담 절반으로”, “고교 무상의무교육 시대!” 같은 구호로 대선 현수막을 도배했던 까닭이다. 


또 지난번 대선에서 이명박·이회창·이인제가 얻은 표를 모두 더하면 총유권자의 약 40퍼센트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이들이 모두 결집해 박근혜로 모은 표는 총유권자의 약 38.9퍼센트다. 우파 지지층이 크게 확장됐다고 보기 힘든 것이다.


<한겨레>의 신년 여론조사에선 무려 60.1퍼센트가 ‘차기 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를 묻는 질문에 “성장이 지연되더라도 복지와 분배가 우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5년 전보다 복지 응답은 늘고, 성장 응답은 줄었다[각주:2]. 더는 성장 담론이 예전처럼 일방적 우위가 아닌 것이다. 



이런 사회적 세력관계가 [격변에 가까운 사건 없이] 단번에 무너지진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장주의 같은 우파적 가치와 정책에 [이명박 초기보다도] 덜 우호적이고 ‘정치적 반대파’도 더 강경하게 결집한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셋째, 게다가 박근혜에겐 내핍 정책을 ‘사회적 타협’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게 해 줄 정치적 완충지대 기반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이명박조차도 [실패는 했지만] 한국노총 지도자들을 끌어들였는데, 박근혜는 그조차도 없다시피하다.
(※ 2015년에 필자의 추가 멘트: 노동운동 안에서 완충지대 기반이 거의 없다는 예측은 취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아 보면, 다소 부정확했으며 기계적이고 일면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 노사정위원회에 한국노총이 포함돼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노동운동 안에서 상층 노조관료주의의 발전, 한국노총의 전통적인 보수파 지도자 집단의 구실은 물론이고 그들과 개혁파 지도자들의 관계, 그리고 민주당을 매개로 한 연결 고리 등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의 주된 통치스타일이 피억압 대중의 저항을 살살 달래기보다는 윽박지르는 강성우파 스타일일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틀린 것은 아니다. 또한 체제 위기를 과장해 민주당을 압박하고 이를 통해 저항의 무마와 위기 탈출에 써먹을 것이라는 예측도 옳았다는 것이 거듭 증명됐다.) 


‘강제’(채찍)와 ‘동의’(당근) 두 축에서 동의 없이 강제에 주로 의존하는 통치는 당장은 편한 듯 보여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는 ‘국민적 합의’란 명분으로 각종 개악에 민주당을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 자체가 하나의 완충장치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정치 쟁점과 사회적 의제의 우선순위를 놓고 벌어지는 정치·이데올로기 투쟁의 주요 무대가 국회와 공식 정치권이 될 것으로 보인다.(거리 투쟁조차도 그 요구와 대상은 대체로 정부와 국회가 될 것이란 점에서도 더욱.)


민주당을 끌어들여 국회를 완충장치로 활용하려한다는 것은 국가기구의 권위주의화에도 명백한 제약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넷째, 박근혜가 표를 위해 내놨던 포퓰리즘 공약을 거둬들이는 것은 자신에게 투표했던 일부 하층 중간계급과 노동계급 후진 부위도 배신하는 것이다.


반대파가 완고한데, 정치적 완충지대를 못 갖춘 조건에서, 지지층이 이반하는 것은 재보선과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집권당의 안팎에서 상당한 긴장을 낳을 것이다.


정권을 잃을까 봐 뭉쳤던 보수대연합은 경제 위기 본격화 국면에서 민심 이반이 가중되면, 통치 방식을 놓고 분열할 수 있다. 궁지에 몰리면, 박근혜가 부패덩어리인 이명박 일당을 속죄양으로 삼으려 할 수도 있다. 


이런 분열이 상호경쟁적 부패 추문 폭로를 부추길 수 있다. 이런 과정들은 억눌리던 민중에게 저항에 나설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3당 합당(보수대연합)으로 우파 정권이 연장된 경우였던 김영삼 정부와 집권당이 1997년 경제 위기와 노동자투쟁의 압력 속에서 분열한 것이 이런 사례다. 


박근혜 세력 자체가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므로 부패 문제는 계속 쟁점이 될 것이다. 벌써 인수위원회 임명자들의 각종 비리 전력이 폭로되고 있다. 


바로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 ― 무엇보다 경제 위기라는 조건에서 나오는 상반된 압력 때문에 박근혜 세력은 인수위원회 인선 과정부터 최대한 말을 아끼며 신중하게 행보하고 있는 것이다.(조용한 인수위?) 박근혜 세력은 정치적 자본가로서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진 않는다 하더라도] 대중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도 어떤 복지는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다급하게 뻥카를 날리느라 재원 계획이 비어있다. 게다가 경제관료, 재벌들을 중심으로 긴축(내핍) 압력이 커지고 있다. 저들이 내놓을 복지란, 체제 수호를 위한 최소한의 복지, 위 사진처럼 사람들의 삶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수준에 머물 것이다.



물론 이런 전망이 반동적 공세에 경계를 늦춰도 된다는 뜻이 될 수는 없다. 객관적 조건은 모순된 압력을 낳고 있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반동적 의지가 제약받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저항의 기세와 의지를 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테니 말이다. 


노조이기주의 담론, 종북 마녀사냥, 여성, 성소수자, 이주자 등 각종 소수자 공격 등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며 노동계급을 분열·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영국 총리 대처가 처음부터 ‘강성 노동운동을 진압한 철의 여인’이었던 건 아니다. 전면적 저항을 피하려고 파업권 약화를 위한 법 개악도 집권 후 수 년에 걸쳐 단계별로 조심스럽게 추진했고, 인력 구조조정도 노동운동이 약한 부위부터 신중하게 시작했다. 


영국 노동운동의 핵심부대인 광원노조는, 이런 각개격파 속에서 어느새 고립됐고, 석탄까지 비축해 놓은 뒤 벌인 대처의 공격을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주력부대의 격렬한 전투와 유혈낭자한 패배로 영국 노동운동 전반이 침체하게 됐다.


지금은 지배계급이 반동화하는 경제 위기의 시대이므로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야금야금 먹어오는 공격에 무신경하면 노동운동이 결정적 순간에 무기력해질 수 있다. 각개격파 시도에 계급적 단결과 공동 대응을 추구해야 한다.  


요컨대, 객관적 조건만으로 유불리를 말할 순 없다. 주관적 의지와 단결 면에서 일단 저들이 한발 앞서 나갔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반동을 막고 그들 처지의 모순을 이용해 상황을 노동계급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가는 조직 노동운동과 반우파 청년들이 투쟁 태세를 얼마나 잘 갖추고 단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활동가들에게 가장 나쁜 것이 비관주의에 빠져 우경화하고 전선에서 이탈하는 것이라면, 현실 직시를 회피해 적을 과소평가하고 단결된 방어 전선 구축에 소홀한 것도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진짜 과제는 단결과 투쟁, 단호함을 얼마나 잘 촉진하느냐라고 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볼 때, [물론 점점 참을성이 없어지는 기업주들의 때이른 도발로 조직 노동운동의 한두 작업장 투쟁이 갑작스레 분출할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임기초 주요 양상은 작업장 투쟁보다는 정치와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미조직 청년들보다는 조직 노동자들이 먼저 각개전투를 벌일 것이다. 이런 투쟁들이 쉽게 이기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투쟁에서 박근혜의 정치 위기 양상이 누적된다면, 국면은 점차 대중투쟁에 유리하게 바뀌어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일부와 엔지오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개혁주의가 득세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대선 결과가 보여 주듯, 경제 위기 반동 시대에 개혁주의는 [노동계급을 투쟁 속에서 단결시킬 수 있는[각주:3]] 일관된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급진좌파가 민주주의 쟁점을 포함해서 단결과 공동 대응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한다. 독자적 폭로와 선전선동으로 박근혜의 모순을 위기로 바꾸려해야 한다. 박근혜가 필연적으로 맞게 될 정치 위기를 이용해 현장과 거리에서 실질적 투쟁이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경제 위기에 대한 급진적 대안도 선전해야 한다. 


정리하면, 개혁주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반우파 공동 투쟁 건설에 나서도록 하면서도, 독립적이고 효과적인 비판과 대안을 설득력 있게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각주:4]. 노동운동의 정치적 지도력을 재구축하고 걸맞는 정치 구조물을 세우는 일도 그 중 하나다. 


※ 이 글은 일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96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1. 이 주장이 왜 틀렸는지는 관련 주제를 다룬 이 블로그 글을 검색해 읽어 보시오. [본문으로]
  2. “일부가 희생되더라도 성장이 우선해야 한다”는 쪽은 36.8%였다. 비슷한 설문을 포함한 경향신문 신년 여론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 준다. 성장 담론이 힘을 잃었다고 할 순 없지만, 예전처럼 일방적 힘을 발휘하지는 못 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3.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대중투쟁만이 과제를 성취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강력한 대중투쟁의 힘을 보유한 조직 노동운동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본문으로]
  4. 경제 위기 시대에 맞서는 투쟁의 초점 구실을 할 수 있는 행동강령 같은 것을 내놓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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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우파 벽에 부딪힌 박근혜의 본색 찾기

내 기사 이야기 2012. 11. 23. 16:47


“지금은 경제 성장 지속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규제보다는 경제 활력을 고취해야 한다, 개별 기업 노사 문제 관여는 최소화해야 한다, 증세는 신중해야 한다.”


11월 8일 박근혜를 만난 전경련, 경총 등 경제5단체 회장들이 던진 말들이다. 박근혜에게 5년 전 기조인 ‘줄푸세’(신자유주의적 우파 정책 기조)로 돌아가라는 요구다.


박근혜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경제 민주화’ 구호가 “특정 대기업 때리기, 기업들 편가르기 [등으로] 잘못 알려진 부분도 많다”며 해명했다.[각주:1] 이런 식으로 박근혜는 우파 기득권 세력과 만남을 이어가며, 더 분명한 어조로 “성장”과 “안보”를 강조하고 있다. 


우파 신문 <세계일보> 주최 안보 심포지움에서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확실한 [대북]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보수 기독교 아성인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가서 “우리 경제 성장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만큼 발전시킨 것도 교회의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아부했다.


레임덕인 이명박의 내곡동 특검 방해도 새누리당의 엄호 없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온갖 낡은 보수세력들이 박근혜 지지로 결집하고 있다. 선거법 등을 이용한 진보진영 재갈 물리기도 벌어지고 있고, NLL 문제로 국정원장을 고발하는 등 꼼수도 자행되고 있다.


여러 내부 갈등이 있었지만 이제 박 캠프에서는 이한구(대우), 김광두(현대차 사외이사), 현명관(삼성), 김성주(대성) 같은 재벌그룹 출신 인사들이 중용되고 있다. 정몽준도 선대위원장으로 기용됐다.


허울 뿐인 ‘국민대통합’ 가면을 벗고서 ‘1퍼센트 보수 대통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우향우의 배경에는, 반우파 정서의 벽 앞에서 좌절한 박근혜의 선거 책략 뿐아니라, 주류 지배자들의 커져가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아 세계경제 위기 확산 국면에서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대유럽 수출은 16퍼센트나 줄었다.


따라서 지배자들은 저항의 섟을 죽이며 [고통 전가의 다른 이름인] ‘고통 분담’을 요구해야 하는 마당에, 우파인 박근혜마저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는 식으로 말하는 게 위험해 보였을 것이다. 


주류 지배자들은 지난해말과 올해초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와 재집권 실패가 유력해 보였을 때는, 플랜B로서 민주당 집권을 염두에 두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보이지 않는 압력들을 동원해 [오른쪽에서] 민주당을 혹독하게 공격하며 길들이려 한 바 있다. (진보정당과 야권연대를 하지 말라는 압력도 이때 본격화됐다.)


무엇보다, 박근혜의 중도층 확보 노력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조사를 봐도, 박근혜 대세론 붕괴 후 필사적 우파 결집(보수대연합) 노력으로 보합세를 유지하곤 있으나 부동층 흡수는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전히 박근혜가 다자 대결 1위인] <한겨레> 조사에서도 60퍼센트가 ‘새누리당의 재집권’보다 ‘정권 교체’가 낫다고 답했다. 





그러므로 집토끼 묶는 것에 치중하는 박근혜의 우향우는 앞으로 보수대연합과 투표율 떨어뜨리기로 나아갈 것이다. 집권 우파가 믿을 것은, 반우파 정서가 표로 결집하지 못하도록 민주당의 실정과 약점을 이용하고, (이런 일이 가능할 정도로 민주당에 대한 불신은 만만치 않다) 진보진영을 탄압하며 폭로와 색깔론의 복마전을 만들 것이다. 당연히 투표시간 연장은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요새 새누리당의 공식 논평은 하루 열 건 가까이 야당 후보 비리 의혹 제기인데, 대변인을 일곱이나 둔 것이 바로 이런 일을 하려고 한 듯하다! 14일 하루에만 네 가지 의혹을 8개의 논평으로 발표했다. 새누리당은 관계자는 “화살 1백 발을 쏴서 그중 한 개가 맞으면 맞는 것”이라고 하는 실정이다.


요약하면,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최근 1~2주 사이에 부패 우파 본색에 충실해지고 있는 것은 반우파 정서를 뚫기 힘든 상황에서 집토끼라도 지키자는 선거 책략에 더해 지배계급의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야당들의 무기력 때문에 박근혜가 다시 여력을 회복하면, 국민대통합 시늉을 다시 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라는 것, 박근혜가 중도 흉내가 결코 확장성의 한계를 깨지 못한다는 점이 바뀌는 건 아니다[각주:2]. 


2007년만 해도 그는 ’줄푸세’를 내세우며 우파 결집에 여념 없었다. “제가 꿈꾸는 사회도 바로 뉴라이트가 꿈꾸는 사회와 같다. 공권력이 바로 서야 한다.” “불법파업과 집단 이기주의, 기업은 규제 ... 이것이 우리 경제의 큰 병”이라고 핏대를 세웠다.


이미 박근혜는 당권을 장악한 직후인 2004년 가을에 이른바 4대 개혁 입법(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과거사규명법·언론관계법 개정) 반대 투쟁에 ‘올인’했다. 그녀는 이 투쟁을 “국가정체성 수호” 투쟁이라고 불렀다.[각주:3]


이 투쟁을 놓고 당내 논란이 일었는데, 박근혜는 자서전에서 당시 의원총회를 이렇게 회상했다. “가장 민주적 방법으로 투표를 통해서 대표인 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해 주었다.” 이것이 지금껏 10년째 ‘정당 개혁’과 ‘정치 쇄신’을 내세우는 박근혜의 ‘민주주의관’이다.


그녀의 국가관은 1퍼센트 기득권 세력을 철저하게 옹호한다는 점에서도 우파적이었다. 박근혜는 노무현의 온건한 사립학교법 개정을 놓고 “나라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는 법은 절대 통과되어서는 안 되며 법의 뿌리가 허물어지면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고 강변했다.


박근혜는 1980년 전두환의 도움을 받아 사실상 소유주로 영남대 재단에 진입했다가 1989년 학원 민주화 투쟁 때 쫓겨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개악된 사학법으로 가장 먼저 구 재단이 복귀한 곳이 바로 영남대다. 


박근혜는 노무현 정부가 물러서면서 이미 2006년부터 복귀를 준비해 왔는데, 결국 새 이사진의 과반수를 임명했다. 재단 복귀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창조컨설팅과 합작해 영남대의료원노조를 무지막지하게 탄압해 노조는 지금껏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러던 박근혜가 “내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라는 궤변을 내뱉으며 꼴사납게도 ‘복지’와 ‘경제 민주화’ 시늉(복지 코스프레?)이라도 낸 것은 순전히 사회적 세력관계가 우파에게 유리하지 않고, 복지와 분배 같은 진보 의제가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여당 내 야당이라고 했지만 정작 18대 국회에서 이명박의 친기업·반민주·반노동 정책과 대립한 적이 없다.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4대강, 부자 감세에 적극 찬성했고, 쇠고기 협상 결과, 용산 사태에는 침묵했다. 최근에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국정조사 요구를 거부했다.[각주:4]


박근혜의 최근 영입 인사 중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로 유명해진 안대희가 있는데, 안대희는 당시 유독 박근혜의 2억 원 수수 의혹만 수사하지 않았다. 안대희와 함께 들어온 남기춘은 7인회 일원인 김기춘(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과 함께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조작의 원흉이기도 하다. 


박근혜의 본색, 집권 목표라는 건 이처럼 반동적 쿠데타와 1퍼센트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권을 세우려는 추악한 권력욕일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문재인과 안철수가 ‘안보’와 ‘성장’이라는 우파 프레임을 수용해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린 반우파 청년세대를 결집시키지 못 하고 있다. 선명하게 변별력 있는 대안이 유력하게 부상하지 않으니, 우파에 위기가 왔는데도 지지세가 붕괴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결과가 어떨지 미리 예측하기 힘든 선거다. 그렇다고, 개혁주의적 진보정치에 공백과 균열이 생긴 마당에 선거판 안에서 쉽사리 대안을 찾기도 힘든 현실이다. 


김소연, 김순자 두 후보도 훌륭하고, 통진당 이정희, 진정당 심상정 후보도 비진보 후보들과 대면 훨 낫지만, 후보의 성격과 자질과 득표수는 별개 문제다. 이들 모두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의 일부들을 각각 대표하고 있어 한 표를 던져야 하는 선거에서는 이들에게 투표하는 것이 진보진영 전체의 과제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세 후보 진영 모두 선거가 아닌 투쟁의 영역에서는 예상되는 득표수보다도 더 큰 힘과 역량,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영역에서는 단결된 대응이 가능하고, 또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황이 지날수록 경제 위기 때문에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방식과 속도, 태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노동계급에게 고통전가 공세가 예상된다는 점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의 참을성이 점차 없어진다는 신호들이 보이고 있다. 


이런 요소들에 상황을 비춰 보면, 우파 재집권을 저지하자는 반박근혜 정서에 공감하면서도 투표 그 자체보다는 미래의 공세에 대비해 정치적·조직적 태세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대중투쟁으로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일 없이 투표로만 주류 우파를 물리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다. 사실 불가능하다. 그 점에서 최근 벌어진 노동자투쟁들은 좋은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정권교체가 나은 일이긴 하나, 진보적 정권교체라 부를 것은 못 된다.


그래서 투표로만 놓고 보면, [박근혜 저지를 위한 단일화 후보든, 진보 노동 후보든]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하는 것이 낫겠다. 누구에게 투표하더라도 향후 운동의 과제에 비춰 부차적 비중일 수밖에 없을 듯하므로. 


  1. 전경련 전무 이승철은 “오늘 [박근혜와 안철수] 두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 못지않게 경제성장도 필요하다는 뜻을 보여 와 그동안의 경제민주화 논의와 관련된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화답했다. [본문으로]
  2. 올 4월 총선에서 박근헤의 중도화가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한 이들은 민주당 등 야당에게도 빼앗긴 중원, 중도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근혜와 민주당 사이의 중도로 가자는 것은 야당들이 우경화해야 한다는 것이므로, 박근혜를 돕는 멍청한 짓이 되었다. 물론, 재벌과 주류엘리트에게 잘 보이려는 민주당의 본성을 감안하면 그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3. 당시 법사위원장이던 한나라당 최연희가 ‘[여론 때문에]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도대체 국가관이 있는 겁니까?” 하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위세를 떨치던 공안검사 출신에게 ‘국가관’을 따져 물을 정도니 박근혜의 국가관이 얼마나 우파적인지 알 만하다. [본문으로]
  4. 유일하게 이명박과 대립한 게 행정수도 문제였는데, 사실 박정희가 1970년대 말에 지금의 세종시에 포함된 충남 연기군 장기지구를 유력한 제1후보지로 놓고 행정수도 이전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박근혜의 집착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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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좌파’ 마녀사냥의 추악한 의도

기사들 2012. 5. 30. 13:35


통합진보당 사태를 위기 탈출의 계기로 삼으려는 집권 우파가 필사적인 공안 탄압으로 도발하고 있다.


검찰은 주먹과 방패로 통합진보당 당원명부를 강탈해 갔고,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당선자를 ‘종북 주사파’라며 국회 제명을 추진하고 있다. 


급진좌파 단체 ‘노동해방실천연대’ 활동가 네 명을 이적단체 구성 혐의로 체포했고, 다음날엔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를 깨부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 계좌도 뒤진다고 한다.


우파들이 이렇게 도발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안고 있는 심각한 정치·경제적 위기감 때문이다. 


2010년 이후 잠시 진정되는 듯하던 세계경제 위기가 최근 다시 격화되고 있다. 특히 수출 강화로 추락을 피해 온 한국 자본주의에게 유럽과 중국의 경기 침체는 커다란 위협이다.


저축은행들의 잇따른 퇴출은 권력 실세들의 복마전 같은 비리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연계된 경기부양책의 실패와 가계대출 부실화 등 심각한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가계대출은 줄지 않는데, 실질적인 가처분소득이 줄고 있고, 물가는 내려올 줄 모른다. 이른바 ‘MB ‘물가 품목’ 중 공공요금을 뺀 30개에서 돼지고기와 달걀을 빼곤 모두 가격이 올랐다. 


경제 위기와 생활고는, 기층의 불만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고, 노동자투쟁을 자극할 수도 있다. 이런 걱정 때문에 대표적인 친기업 우파 신자유주의자인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한구마저 ‘물가를 잡으려면 대기업 독점 이익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경제 위기 대처 방안을 놓고 지배계급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부패 비리가 계속 밝혀지는 것은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집권 우파들에겐 치명타다. 


정권이 레임덕에 빠져 있고 부패와 실정으로 지독한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집권당을 장악한 박근혜조차 정권과의 차별화와 갈등의 길로 이끌릴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게다가 당을 박근혜 일인 체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대선 내부 경선 규칙을 둘러싼 비박 대선 주자들의 반발도 갈수록 커질 것이다. 


결국 경제 위기 대처 문제, 이명박과 차별화하는 문제, 차기 대선 후보 선정 문제 등에서 새누리당과 우파 내부, 심지어  친박계 안에서도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처지니 우파들에겐 언론 파업, 쌍용차 해고자 투쟁 등에 사회적 지지가 커지는 것이 정권을 향한 비수처럼 느껴질 테고, 두 배로 의석을 늘린 통합진보당도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8월 총파업, 금속노조와 화물연대의 투쟁도 예고되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 위기의 전조가 드리운 상황에서 집권당은 취약해져 있고, 대중의 불만은 고조되며 투쟁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우파가 우리편을 교란하고, 자신들은 단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통합진보당의 선거 부정 사태가 낳은 진보진영의 내분과 위기를 한껏 이용하며 공안 탄압으로 가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할 법하다. 





우파들은 우선, 조중동과 MB 방송을 이용해 통합진보당 사태를 더 추악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는 데 이용하고 있다. 


최고 실세들인 최시중과 박영준이 구속된 파이시티 사건은 이명박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비리와 대선자금 문제로 수사를 확대해야 하는데, 검찰은 은근슬쩍 개인 비리로 덮어버렸다. “정권 실세들의 닥치고 먹자판”이라는 저축은행 비리도 묻히고 있다. 


무엇보다 불법 사찰 관련해 진경락 문건이 폭로돼 사찰 사건의 몸통이 이명박이라는 게 명명백백히 밝혀졌는데, 이 사건도 가려지고 있다. 


둘째, “종북 좌파 척결”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내세워 분열 위기에 놓인 우파의 결집을 유지하려 한다. 반면에 통합진보당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낙인 찍어 진보 대중에게 환멸을 심어주고 진보진영을 분열시키려 한다. 


검찰은 통합진보당 내부 혼란에 대한 “국민적 공분” 때문이라지만,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수사에 ‘민주노동당에서 13년 동안 입당·탈당한 약 20만 명의 명부’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공안당국의 당원명부 입수는 진보 대중을 위축시키고, 좌파나 공무원노조·전교조 등을 향한 또다른 공안 탄압을 위한 ‘강도 행각’일 뿐이다. 군대 내부 숙청에 이 명부를 활용하겠다는 발상을 보라. 


이 과정에서 우파들은 대한민국 체제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세력은 국가기구에 들어갈 수 없다며, 선거에서 받은 지지도 무시하고 국회에서 제명을 하겠다고 한다 . 


셋째, 이런 분열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에게 통합진보당과 대선 연대로 ‘종북 좌파’가 정부 안에 들어오게 할 것이냐며 압박을 하고 있다. 조중동은 ‘종북좌파’ 이석기를 노무현과 문재인이 청와대에 있으면서 사면복권시켰다며 공격하고 있다. 


선거로 당선한 이들은 사상 검증해서 의원직을 박탈하겠다는 우파적 히스테리는 위기에 직면한 자본가들이 자유민주주의 교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드러내는 도발일 뿐아니라, 우파적 지배자들이 친북좌파의 국가기구 진입을 얼마나 혐오하는지도 보여 준다.


검찰이 압수한 당원명부로 이석기 당선자의 금품수수 의혹을 수사하겠다는 것은  국회 제명이 실패할 경우 국회에서 제명할 명분을 찾으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결국 우파의 전략은 경제 위기를 앞두고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운동을 약화시키고 민주당을 길들여 사회 세력관계를 역전시키고, 우파의 우위를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이참에 지난 2~3년 동안 진보의 복지 확대 요구에 끌려다녔던 수모도 만회하고 싶을 것이다[각주:1]. 


‘우리 편의 약점은 감추고 뭉치게 하면서, 적들은 분열시키자’는 노림수인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권 우파들은 정권 재창출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도발은 도박에 가깝다. 자칫 하다간 거듭 확인된 청년세대의 반우파 정서와 노동자 투쟁이 만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들의 공격도 그토록 신경질적이고 필사적인 것이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의 총선 이후 행보는 이런 집권당의 전략을 오히려 돕는 구실을 하고 있다. 


총선 직후 민주당 지도부의 지시로 만든 ‘4·11 총선 평가와 과제’ 보고서는 “야권연대는 민주당이 주도권을 상실하고 유권자를 야권연대의 ‘정치적 볼모’로 삼아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좌편향으로 중도층 유권자를 우파에게 뺏긴 것이 총선 패인’이라는 뜻이다. 한미FTA 폐기나 제주 해군기지 중단 같은 정책이 안보 불안감을 줬다는 평가와 같은 맥락이다. 


이런 평가를 정당화하려고 이 보고서는 “4·11 총선에서 일관된 진보, 일관된 보수로 … 정의할 수 없는 ‘이념적 혼재층’이 51.7퍼센트로 대폭 증가했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이 민주당 왼쪽표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좌우 양쪽을 모두 흡수하려면 통합진보당을 위축시키거나, 민주당에 확실히 종속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판단에서 진보정당을 국회에서 배제·고립시키는 국회선진화법을 새누리당과 합의해 기성 양당 구조를 공고히 하려한 것이다. 또 반이명박 투쟁을 삼가고 안철수와 연립정부를 구성하자는 등 이박연대가 추진된 배경이기도 한 것이다. 


최근 민주당 대표 경선 결과가 지역별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까지 나타나는 것은 주요 후보들이 이런 비전을 공유하면서 서로 별다른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보진영의 대응이 매우 중요해 졌다. 더는 민주당에게 의존하는 자세를 보여선 곤란하다. 그들은 종북좌파 마녀사냥에서 새누리당의 2중대 노릇을 할 가능성이 크다.


진보진영은 우파들의 공안 탄압에 맞서 광범위하게 단결하는 범진보적 대응기구를 구성해 투쟁을 건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동춘 교수의 말처럼 “조봉암 사형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동조하고 박수쳤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후 박정희에게 죽었다. 진보정치 복원에 수십년 걸렸는데 … 이 일을 우선 막을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운동의 쇄신 과제를 뒤로 미뤄만 놓을 수는 없다. 쇄신은 추진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애국가를 부르자’는 등 ‘국가기구를 존중하자’는 식의 우경적 타협으로 가선 안 될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정치지형을 우경화시키려는 우파의 기를 살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뒤에 숨어서 가리려는 이명박과 우파들의 치부를 들춰서 열정적으로 폭로하고, 박근혜의 우파적 본질과 모순을 공격해야 한다. 


그러면서 언론 파업, 쌍용차 투쟁 등과 정권의 부패와 공안 탄압에 맞서는 정치적 행동들을 연결하고, 연대를 건설하면 얼마든지 우파의 더러운 의도를 좌절시킬 수 있다. 



※ 이 글은 <레프트21>82호에 축약해서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1. 그러므로, 이념이 아니라 실사구시적 복지 논쟁으로 전환해 정치의 구실을 복원하자는 논리는 현실과 들어맞지 않는 공상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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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작된 예산 전쟁, 4대강만 반대하면 되나

내 기사 이야기 2009. 11. 20. 16:28
관련 기사: 이것이 "MB 양극화 예산"이다


16일(월)부터 국회 예산 심의 기간입니다. 그래야 올해 안에 예산안을 통과시켜 내년도 예산을 차질 없이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집권 여당에게는 밀어붙이기와 야당 달래기를 잘 섞어야 할 때입니다. 야당들이 이 때를 여당에게 양보를 얻어낼 기회로 여기기 때문이죠. 지역구 의원들에겐 자기 지역구 관련 예산을 늘리느라 바쁠 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정부의 총액 예산 안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의 예산을 늘리려 하니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예산 전쟁"이라고 합니다.

이런 예산  다툼이 단지 협잡인 것만은 아닙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누구를 위한 예산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느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레프트21>이 줄기차게 이명박 정부의 2010년도 예산안을 비판하고 폭로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올해 야당들은 4대강과 세종시 문제로 이명박 정부의 예산안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특히 4대강 예산과 세종시 문제에 열의가 높습니다.

이명박이 말을 뒤집은 탓에 세종시 문제가 한나라당 내분을 낳고 있고 4대강 반대 여론도 많지만 이들의 문제제기는 정략적인 면이 큽니다. 본질을 말하자면, 4대강이나 세종시 모두 대규모 토목 공사입니다. 세 당들은 단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 유리한 토목 사업에 더 많은 예산을 넣기 위해 싸우는 것일 뿐입니다.

세종시 원안대로 행정부처가 옮겨가봐야 현지민들에겐 집값 좀 오르고 서비스업이 조금 활성화되는 것 말고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그렇다고 기업도시로 바꾸면 현지민들이 취업할 일자리가 특별히 늘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FTA 실험 도시가 될 확률이 크죠.

충남 서산의 동희오토 공장은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주 공장인 화성보다 생산성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공장은 전원 비정규직 공장으로 유명하죠. 그래서 서산에는 동희오토에 일 안 해 본 젊은이가 드물 정도지만  거꾸로 거기서 일하다 안 잘려본 젊은이도 드물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불황기에 이렇게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 아니라면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늘릴 만한 시설 투자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도시형 수정안도 별 볼 일 없긴 매한가지입니다. 송도형 기업도시라면 오히려 평범한 현지민들에겐 재앙입니다.

그래서 진짜 예산 싸움은 세종시냐 4대강이냐, 아니면 세종시 원안이냐 수정안이냐에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폭 추경예산을 늘렸던 지난해와 올해 예산과 달리 '작은 정부' 지향을 분명히 하며 예산 축소와 지출 통제를 표방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복지예산이 대폭 삭감됐죠) 진보 진영의 예산 싸움은 단순히 주어진 총액 안에서 우선순위를 다투는 문제로만 다룰 수 없습니다.


지출을 늘리라고 말해야 하고 지출을 줄이는 근본 배경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정부의 세금 수입이 줄었습니다. 수입이 줄었는데 균형 예산을 하려면 지출을 줄여야죠. 정부의 수입이 줄어든 것은 재벌과 부자에게 대규모 감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재벌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줘 그들에게 돈을 많이 쥐어줘야 투자가 활성화돼 경기가 살아나고 그러면 상품 판매와 고용이 늘어나 오히려 세금이 늘어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실패한 레이거노믹스 플랜은 현실에서 복병을 만납니다. 정부 전망대로 하더라도 지난해 말과 올초 최악의 경기 침체에서 벗어난 대가로 내년 늘어날 세금 수입은 정부의 감세 규모에 못 미칩니다.

그래서 부자 증세와 공공·복지 지출 증대가 우리의 구호가 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주요 진보적 엔지오들이 '재정건전성' 악화를 MB예산안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빚더미 예산"이라 표현했고 정창수 함께하는시민행동 연구원은 "빛의 속도로 늘어나는 빚"이라고 지적합니다.

물론, 늘어나는 국가채무의 부담을 서민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높고 4대강은 낭비 예산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비판엔 나름 합리성도 있지만 균형 재정 기조는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적 발상입니다. 바탕에 수익성 논리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이런 논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예산을 늘려서 4대강과 세종시 사업을 모두 진행하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여당일 때는 그런 논리로 늘 복지예산 축소를 정당화했습니다.

마침 투기자본감시센터 활동으로 친분이 있는 송종운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연구원이 최근 한 토론회에서 저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발표한 적이 있어 이런저런 자문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송 연구원은 복지예산 확충 같은 예산 각론과 더불어 정부 재정 정책의 기조로서 "수익성 vs 공공성"이라는 거대담론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도 "재정건전성 문제의 근본 원인이 과다 지출이 아니라 과소 세입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저는 지금 채무 수준에선 재정건전성이 화두가 되는 것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봅니다. 오 실장님과 약간 생각이 다른거죠.

예산을 무한정 늘릴 수 없다해도  '필요'가 먼저고 여기에 수입을 맞춰야 합니다. 여전히 한국은 OECD 평균보다 GDP 대비 국가재정 비율이 10퍼센트 넘게 낮습니다. 건전성이 문제가 아닌 거죠.

당연히 부자 증세가 '필요'를 맞춰야 합니다.(자칫 통화량 증가로 지출 확대를 실행하려단 인플레이션으로 '시망'할 겁니다) 우리는 부자 감세를 철회해 삭감된 복지 예산을 원상복구하고 오히려 부자 증세로 공공·복지 지출을 더 늘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업 살리기에만 특단의 대책을 추구할 게 아니라 평범한 다수를 살리는 데도 특단의 대책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민주노동당이 이정희 의원의 대표 발의로 소득세-고용안정세-자본이득세 등 부자증세안을 발표한 것을 환영합니다.

숫자만 나오면 당황하는 제가 몇 번의 기사로 부끄럽게도 마치 예산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괴로운 일이지만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묻고 또 묻는 길밖엔 없는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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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이 세상을 움직이는가

생각 좀 해볼까 2009. 10. 9. 02:15
  
오늘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토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제도 주제지만 저보다 더 나이 어린 사람들과 하는 토론은 늘 흥미롭습니다. 세파에 찌들기 전이라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의심을 많이 합니다. 질문도 기발한 것이 많습니다.

오늘 주제는 마르크스주의로 본 경제위기라는 제목으로 최근의 상황이 경기회복인지 거품인지까지 다루는 꽤 방대한 주제였습니다.

어려운 주제라 그런지 토론이 활발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가한 학생 중 한 명이 흥미로운 주장을 했습니다.

대강 요약하면, 인류 발전의 원동력은 '인간의 욕심'이기 때문에 인간의 욕심에 가장 부합하는 자본주의 경쟁체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가장 오래된 주장이기도 하고 가장 흔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욕구 실현을 외면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체계적으로 가로막힌 상황을 바꾸려는 이론이자 전략입니다. 

그런데도 마르크스주의를 다루는 토론에서 이런 질문이 흔히 나오는 것은 사회주의를 자처했던 체제들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이 나라들을 인용해 마르크스주의의 신용에 흠집을 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 소련의 가짜 사회주의가 인민에게 절제와 일방적인 이타심을 강요한 것은 체제가 인민들에게 충분히 풍족하게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지배자들이 그렇게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렇다고 이 가짜 사회주의보다 서방 자본주의 경제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이 질문 하나면 충분합니다.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정부 재정이 악화돼 복지 지출을 줄이면서도 국방비 지출은 늘어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미국과 소련, 남한과 북한, 본질에서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욕심이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주장은 왜 자본주의에서 특정한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이기적 탐욕은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어떤 사람들은 기본적 욕구마저 무시당하고 심한 경우, 강제로 억압당하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업 수익성이 줄어 투자처가 마땅하지 않은 기업과 부자들은 자신들의 소득이 줄었기 때문에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합니다. 그러나 그 세금이 깎인 것 때문에 25만 명의 결식 아동이 방학 중에 급식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월가의 탐욕스런 금융자본가들의 파생상품 투자가 왜 한때는 경제의 구원자였다가 지금은 저주 받을 행위가 됐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업과 부자들이 주식과 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고 이를 독차지하는 반면,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재산 가치가 폭락하는 손해를 보고 심지어 세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는 사정은 어떻습니까.

이처럼 자본주의는 경제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욕심은 구조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고 억압합니다. 어느 계급 소속이냐에 따라 어떤 이들의 욕심은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못 끼칩니다.

인간의 욕심 이론은 이처럼 아무것도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단지 자본가들이 자기 탐욕을 정당화하려고 내놓은 변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론자들에게 왜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은 이기적인가라고 묻는다면 본래 이기적이니까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한 해에도 수만 명의 신입생들을 받는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 활동의 기본 동력이라는 이 엉터리 공리에 바탕한 학문을 가르칩니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인간의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늘 변함 없었는데, 왜 인류 역사의 3분의 2가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사회였을까요. 

그게 당시 인류의 잠재적 생산능력의 수준에 부합했기 때문이죠. 생산성이 너무 낮아 협력해 수렵과 채집을 해야 했고, 공동으로 식량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함께 나누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역사 발전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자본주의는 특유의 역동성으로 생산 능력을 혁신했지만, 자기 모순 때문에 그 생산 능력을 스스로 파괴합니다.

주기적인 경제 공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졌을 때에도 생산과 분배에 필요한 핵심 요소들은 어디로 사라진 게 아니라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원료도, 기계도, 공장도, 일할 사람도 그대로 있습니다. 부족한 건 기업의 이윤입니다.

그래서 기업의 이윤이라는 기름칠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자본주의란 체제는 영원불멸의 체제가 아니라 특정한 생산력 수준 하에서 이뤄졌던 일시적 체제인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이제 역사적 수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기본적 욕구는커녕 생존을 위협하는 체제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마르크스가 경고한 것보다 더 위험한 세상이 됐습니다.

지구를 서른 번이나 없앨 수 있는 핵폭탄을 품에 안고서 평화를 보장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광기어린 체제입니다.

한때 자본주의 발전을 이끌었던 석유 관련 기업들은 무작위한 CO2 배출이 환경을 파괴하고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쳐 인류 전체를 절멸시킬 수 있는데도 당장 자신들의 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CO2 배출을 억제하지 않습니다.

적게 투자해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식품기업의 탐욕은 광우병이라는 재앙적인 질병을 만들어냈습니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과 경제이론은 이런 광란의 경제 체제의 탄생과 변화, 실상을 어느 이론보다 훨씬 더 일관되게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게 그 질문을 던진 학생이 제 답변을 듣고 어떤 고민을 더 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학생은 토론이 끝나고 나서 자신은 상위 20퍼센트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평범한 노동계급 출신 젊은이가 자본주의에서 개인적으로 성공할 확률을 반반으로 볼 수 있다면, 자본주의를 근본에서 바꾸는 실천이 성공할 확률도 반반입니다.

확률이 같다면, 더 정의롭고 도덕적으로 가치있는 쪽에 서는 게 낳지 않을까요. 한 번 뿐인 인생인데 말입니다. 제가 볼 때 이건 로또보다는 훨씬 확률 높은 베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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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파업을 돌아보며 미래를 묻다

생각 좀 해볼까 2009. 9. 19. 21:39

정확히 77일이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해고에 반대하며 공장을 점거하고, 이 공장을 차지하기 위한 노-사-정의 다툼이 벌어지는 동안 우리 사회는 하나의 시험대에 올랐다.

파업이 보여준 격렬한 갈등과 분열은 우리의 양식에 질문을 던졌다.

왜 문제를 일으킨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따로 있는가. 정의는 왜 공장 문 앞에서 멈추는가. 왜 법은 약자를 위해 그 육중한 몸을 일으키지 않는가. 이 갈등을 끝낼 대안은 없는가. 

사실관계 논란을 재탕하는 건 이제 시간낭비다. 진실은 명백하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됐다는 정부가 일자리를 지켜 달라는 노동자 ‘국민’에게 테러리스트 진압 특수 부대를 보냈다. 쌍용차를 망친 대주주 상하이차 경영진은 누구도 징벌을 받지 않았다.

지금껏 이 문제를 다뤄 온 이들과 약간 다른 각도에서 물음을 던져 보는 게 낫겠다.

맹목적 경쟁

쌍용차 사건은 수천 명의 직원과 수백 개 유관 기업을 거느린 대기업이 파산 위기로 내몰린 것이다. 경영을 맡은 대주주들의 부실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위기의 직접적 계기였다.

그러나 지금 세계적으로 자동차 산업의 과잉 생산은 3천만 대에 달한다. 이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연간 생산량 3백80만 대(2008년 기준)의 약 8곱절이다.

지난해 6월 파산 보호에 들어간 세계 최대 기업 GM은 생산 설비의 거의 절반을 폐기해야 한다. 일본 도요타도 4백만 대를 생산할 설비와 인력을 축소해야 할 처지다.

기업들의 맹목적인 시장점유율 경쟁이 과잉 설비를 낳았다. 조율되지 않은 투자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동 균형을 이룰 거라는 신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은 파산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야 했다. 시장자본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는 한국의 1년 국내총생산액보다 많은 돈을 부실 기업들에게 쏟아 부었다. 이명박 정부 역시 비슷한 용도로 올해 예산의 3분의 2를 이미 7월경에 다 써버렸다.

온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고 기업들을 살리는 동안, 수익성 회복을 위해 부실 기업의 노동자들은 해고됐다. 고삐 풀린 시장을 비판하던 또다른 주류 경제학도 이 문제는 외면했다. 

요컨대, 쌍용차 파업은 “기업 수익성이 사람보다 우선”이라는 시장 경제의 공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항변이었다. 게다가, 자유시장의 징벌은 늘 노동자들에게만 가해진다. 대주주와 대기업 임원들은 여전히 특권층의 지위를 유지했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국가가 책임지고 공장을 친환경 대중교통 생산 기지로 전환하면 환경과 일자리를 모두 지키며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처는 사기업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공공의 이익과 사기업의 이익이 충돌한다면 무엇이 우선일까.

미래를 의심하기

“아빠, 우리 이제 자가용 못 타요?” “응.” “왜요?” “회사가 어려워서 더 이상 월급을 받을 수 없거든.” “회사가 왜 어려워졌는데요?” “음, 자동차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그렇단다.”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 잘려야 하는 사회. 한 쪽에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다른 한 쪽에선 첨단 생산 시설이 고철덩이가 되는 사회. 식량이 너무 많이 생산돼 농민이 망하고 식량이 버려지는데, 수 억 명의 사람들이 굶어죽는 사회.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제 나라 국민들의 생존권을 앞장서 짓밟는 사회.

이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사회가 우리 모두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할 세상이다. ‘이윤을 위한 경제, 판매를 위한 생산’이라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법칙은 이미 역사적·도덕적 한계에 부딪힌 듯하다. 0.1퍼센트 부자의 길은 열려 있지만, 모두 함께 사는 길은 닫혀 있다.

쌍용차 파업은 우리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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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회복이냐 거품이냐, 진짜 친서민 대안은?

내 기사 이야기 2009. 9. 19. 13:44

왜 우리들의 삶은 더 곤궁한가

거품과 함께 커지는 서민들의 고통


관련 기사: <레프트21>14호
"경기 회복? 친서민? ─ 거품과 함께 서민 고통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보도가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그동안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뿌린 수백조 원의 돈이 ‘수요를 늘려 인플레이션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한다는 말도 들려 온다.

정부가 그렇게 많은 돈을 풀었다면, 우리 같은 갑남을녀의 주머니도 좀 풍족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 경제, 바닥을 쳤는가

 

경제가 바닥을 쳤다는 이들은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리고, 가장 빨리 경기 침체에서 벗어났다는 데 고무돼 있다. 올 2/4분기엔 자동차, 철강 등에서 최대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부는 이제 올해 안에 출구 전략을 써야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경기가 회복되는데, 유동성 공급이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신중한 부류도 있다. 전 경제부총리 김진표는 “회복 국면으로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 지적한다. 실업률이 오르고 수출이 줄어드는 추세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현 경제 상황에 대한 기업주들의 인식을 조사한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5백 개 상장기업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자사가 저점을 찍기 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의 경기 회복은 정부 재정 지출에 의존하는 매우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완성차 판매 회복은 5월부터 시행된 정부 지원책(차량 교체시 세금 감면) 덕택이다. 5~7월 총판매량은 지난해 동기보다 23퍼센트 증가했다. 그럼에도 월별 판매량은 7월부터 다시 하락하고 있다. 세금 감면 혜택이 없었다면 상황은 더 나빴을 것이다.

주요한 경기 선행 지표라 할 수 있는 7월 기계 수주액이나 건설 수주액 역시 공공부문의 발주가 늘어 다시 증가할 수 있었다. 민간부문의 발주는 큰 폭으로 줄었다.

그 결과, 지금 정부는 올해 쓸 수 있는 예산의 3분의 2에 달하는 1백85조 원을 7월까지 다 소진했다. 현재 남은 예산 여력은 87조 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그렇게 풀린 돈이 자산 거품 조성으로 쏠리는 형국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다시 늘린 것도 다른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2천년 대 이후 장기 침체 속에서 기업들은 차입을 줄여 왔다. 세계적 위기인 요즘, 이 패턴이 더욱 고착화됐다.

현재 가계저축률은 4퍼센트 대인 반면, 기업 저축률은 16퍼센트 대에 달한다. 대기업 사내 유보금이 1백조 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설사 돈을 빌려도 이를 다시 재무적 투자, 즉 금융과 부동산 투기에 사용하고 있다.

 

출구 전략 딜레마

 

무역수지 흑자 역시 올 상반기까지 지속된 고환율, 저유가 덕분이라는 게 중론이다. 환율이 1천2백 원대로 내려오고 유가가 다시 상승하면서 이 효과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푼 4조 위안 넘는 돈이 사실상 원자재 투기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수출 시장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이 돈을 원료 사재기에 쏟아 붓고 있다. 이 탓에 무역 회복 없이 원자재 값만 폭등하고 있다.

기업 지원과 법인세 인하로 투자 유인을 늘리자는 정부 대책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그 래서 국내외에서 지배자들은 출구 전략 딜레마에 빠져 있다. 수익성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재정 지출은 거품만 키우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져간다. 그렇다고 출구 전략을 개시해 거품이 터지면 지난해처럼 추락할 위험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도 딜레마다. 정부 지출은 늘었는데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들은 지배자들 사이에 출구 전략(금리 인상 등)의 시기와 강도 등 경제 위기 해법을 둘러싼 정치적 내분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인플레이션(물기 인상)은 임금 인상에 대한 압력을 낳을 수 있다. 소득 저하는 소비를 줄여 경기 회복의 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대체로 신중한 태세인 노동운동이 거품 호황의 고통을 더 참지 않고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저항에 나선다면 지배자들의 내분도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이런 내분을 봉합해 기득권을 유지하며 자신들 앞에 놓인 딜레마들을 해결하는 길은 저항을 억누르고 평범한 다수에게 위기의 대가를 전가하는 길 뿐이다. 그리고 소심한 이명박 정부는 내년 초까지 출구 전략 사용을 피할 것이다.

 

거품이 커지는 만큼 그늘도 커지고

 

지난해부터 이명박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을 올리고 세율을 낮췄다. 버블세븐 해제,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DTI) 제한 완화 등 각종 부동산 규제를 대거 해제했다.

초저금리 기조 속에서 부동산 규제 해제는 곧바로 부동산 거품이 다시 커지는 걸로 나타났다. 1년 전 부동산 몰락의 공포가 역전돼 “돈 버는 투자는 결국 부동산”이라는 신화가 재연됐다.

위기가 심각했지만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꾸준히 올라 6월말 현재 2백66조 원에 달한다. 그 결과, 현재 서울 아파트 1백21만 가구의 시가 총액은 사상 최초로 7백조 원을 돌파했다.

이것이 전월세 대란의 주범이다. 집값이 뛰니 전월세 임대료도 뛰었다. 이젠 아파트는 물론이고 서민 밀집 지구의 오래된 다세대 주택들조차 전세가가 1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

뉴타운 동시 재개발도 큰 영향을 미쳤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역은 대학가 자취방도 전세값이 천만 원 단위로, 월세 보증금과 사글세가 갑절 가까이 뛰었다.

대규모 뉴타운 재개발로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대거 늘어나 전월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 집 없는 서민들은 이제 1층에서 반지하로, 3층에서 옥탑방으로 옮겨야 한다. 그도 아니면 아예 직장과 학교에서 더 먼 도심 외곽으로 떠나야 한다.

거품 호황에서 배제된 이들의 밥상은 더 초라해졌다. 설탕, 밀가루 등은 물론이고 계란, 두부, 닭고기, 유제품, 어묵 등 서민 식품의 가격이 날개를 달았다. 갈치는 그 빛깔 답게 귀족 생선이 됐다. 요샌 반찬거리 두세 개 사면 만 원에서 동전 몇 푼 겨우 남는다.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줄고, 빚은 늘고 

 

동네 골목까지 파고드는 대형 마트(SSM)들도 물가 인상을 막지 못한 셈이다.

올해 식료품의 소비자가격 상승률이 평균 9.5퍼센트로, 지난해의 갑절이다. 7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OECD 평균의 열 한 곱이다.

생필품과 전월세가 올라도 소득이 함께 오르면 버텨 볼 용기라도 낼 텐데. 문제는 소득마저 줄고 있다는 데 있다.

올 상반기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5백2조여 원인 반면, 가계대출 총규모는 6백97조 원이 넘는다. 소득 증가율은 사상 최저이고 부채 증가율은 사상 최고다.

그래서 소득 대비 부채 비율 역시 1.39곱절로 사상 최고치다. 돈이 없다고 안 먹고 안 쓸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를 물가 인상률에도 못 미치게 올려(2.7퍼센트) 실질적으론 삭감해 버렸다.

만 2년 된 기간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데 앞장서고, 최우선 정책기조로 고용유연화를 내세우고 있다. 고용이 불안해 지면 소득이 늘어나길 기대하는 건 더 힘들어진다.

반면, 강부자 정권답게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하고 다주택 보유자의 양도소득세와 상속세, 특별소비세를 모두 인하했다. 막대한 재정 투입 정책에도 부자 감세를 고집하더니 내년 민생 예산은 10조 원이나 삭감됐다.

결국, 소득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상위 10퍼센트 소득은 하위 10퍼센트의 4.7곱절로 OECD 평균인 4.2곱절보다 더 높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요구들”

 

요컨대 경기 회복은 멀었고 그나마 정부의 재정 투자도 부자와 대기업에 몰리고 있다. 경제 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친부자 정책은 서민의 삶을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벌이는 친서민 유화책도 사태의 본질을 역전시킬 정도는 못 되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이런 유화책조차 우익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따라서 이를 역전시키려면 경제 위기에 대한 좌파적 대안과 행동이 절실하다.  (<레프트21>이 제시한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삼성경제연구소는 정부의 빈곤 대책이 단순히 현금지급식이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소득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금 지급식 복지는 오히려 더 늘어야 한다.

조건 없는 전 국민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고, 최저 임금과 최저 생계비 기준을 대폭 인상해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안전판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 규제를 강화해 물가를 통제해야 한다.

강력한 부동산 보유 규제로 주거권을 보장하고 저렴하고 질 좋은 영구 임대 주택을 충분히 보급해야 한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시장이 조만간 스스로 회복할 전망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물가 인상과 실질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노동운동 없이, 거품 회복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 없이, 그래서 저항에 직면한 지배자들이 위기의 해법을 둘러싸고 분열해 약화되는 일 없이, 지금의 정부 아래서 이런 개혁들이 실행될 것 같지 않다.

자본주의의 위기 시대에 더 나은 삶을 위해 대중적인 저항 행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찬성해야 하는 이유다.

 


출구전략(Exit Strategy)

경제 위기에 대응해 정부가 ‘비상 대책’으로 쏟아 부은 유동성 자금을 회수하는 것. 주로 정부 지출을 줄이고, 낮췄던 금리를 다시 인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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